
<정치적 수사학>은 정치인들의 자서전 내용에 대한 수사학적 비평을 모은 글입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의 현우식 회원이 진행합니다. 월 1회 업로드 예정입니다.
여는 글
다시 선거철이다.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 정치인들의 말과 글이 미디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시기가 되면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말도, 때로는 거짓말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수많은 언론인과 정치평론가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지만, 앞으로 얼마간 우리는 이 말과 글의 향연 속에서 나름대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정치사상, 정치사회학 연구자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연구는 분명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때로 그것은 유권자의 관심과 너무 멀어 연구자들의 세계에만 머물곤 한다. 진영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매일 같이 소비되는 정치평론은 지지자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으나, 유권자들에는 해로울 때가 많다. 연구보다는 가깝고, 정치평론보다는 건강한 그런 비평은 없을까. 이 글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치적 수사학
앞으로 내가 연재하고자 하는 <정치적 수사학>은 정치인의 말과 글에 대한 수사학적인 비평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rhetoric)을 ‘설득의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사학을 논리적 대화의 적으로 보았던 플라톤과도, 오직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소피스트들과도 달리 수사학을 통해 정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보기에 수사학은 윤리적·정치적 목적을 대중 연설과 법정에서 실제로 구현해내는 기술이자, 개연적인 방식으로 참과 거짓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바람과 달리 오랫동안 수사학은 언어학과 논리학에 비해 부차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에서도 ‘레토릭’이라고 하면 주로 기만적이거나 관습적인 수사를 칭하는 경우일 때가 많다. 한편으로 현대 정치(철)학에서도 수사학을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 1935~2014)는 모든 사회적 삶이 일반화된 수사학(generalized rhetoric)의 관점에서 기술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사회 속에서 의미와 정체성이 구성되는 논리가 수사학과 형식적으로 유사하다는 전제로부터 비롯된 주장이다. 2014년 출간한 그의 마지막 저서는 『사회의 수사학적 기초(The Rhetorical Foundations of Society)』이기도 했다.
라클라우의 관점을 따르면 수사학은 단지 ‘설득의 기술’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사회가 어떻게 수사학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사회 구조, 사회 안에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정치적 경계, 이를 통해 형성되는 정치적 주체성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담론적이고 정동적(affective)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 과정이 때로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보이더라도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실재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이 라클라우의 입장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말과 글을 비평할 때 라클라우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적용될 수 있다. 정치인들의 말과 글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단지 이들의 말과 글이 ‘사실’에 비추어 허구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세계관이 사회적 사실을 만들어 내고,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 분할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탈진실과 가짜뉴스의 시대에 ‘진짜’ 뉴스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진실과 가짜뉴스라는 말이 있기도 훨씬 전부터 정치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회와 사회 안의 정치적 경계를 만들어 냈다. <정치적 수사학>은 그러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정치인의 자서전 다시 읽기
<정치적 수사학>은 정치인들의 자서전을 수사학적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 알다시피 많은 정치인들은 자신의 생각하는 사회상과 정치적 입장을 구체화하기 위해, 때로는 선거를 앞두고 세를 결집하기 위해 자서전을 출판한다. 자서전의 내용은 주된 독자인 지지층에 의해 재생산되기도 한다. 열렬한 지지자가 아닌 이상 정치인들의 자서전을 꼼꼼하게 읽고 분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서전이야말로 정치인들이 말과 글을 통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틀짓고, ‘우리’와 ‘그들’을 분할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텍스트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정치인들의 자서전을 다시 읽을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자서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실재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정치인들의 말과 글을 해독함으로써 우리는 당장의 선거에서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보다 긴 호흡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적 입장을 메타적인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획이 어디에서 끝날 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는 오랫동안 직감적으로 느껴 왔다. 그것은 정치인 이준석의 자서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속적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성공’한 청년 정치인이자, 온갖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는 ‘갈라치기’의 대명사로도 알려진 그는 어떤 사회를 꿈꾸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재편하고자 했을까. 왜 어떤 사람들은 이준석의 정치에 끌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을까. 지방선거에서 이준석의 출마 여부와는 별개로, 앞으로 또 다른 ‘이준석 키즈’들이 등장하고, 이준석의 정치가 반복될 것을 고려할 때,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글쓴이: 현우식
제주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향했으나, 기대와는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이후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말과 글을 매개로 생각과 질문들을 언어로 옮기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이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라클라우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정치사상과 정치사회학, 정치비평을 넘나들며 말하고 쓰는 일을 이어가고자 한다. 라클라우의 사상은 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정치에 대한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커뮤니케이션북스, 2025)를 함께 썼다. 제주대학교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치고 있으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대안정치공간 모색에서도 공동 게재됩니다. 관련 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