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 사용설명서 : 독서 안내
번역: 황재민 | 알튀세르 번역집단
이 글은 파나지오티스 소티리스(Panagiotis Sotiris)가 영어로 작성한 것을 로맹 도트쿠르(Romain Dautcourt)가 불역해 웹진 Période에 2017년 7월17일 등재된 것을 다시 번역한 것이다. http://revueperiode.net/5279-2/
■ 알튀세르의 저작이 겪은 고난은 외면과 무시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익히 알려진” 사상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헤겔의 말대로 “일반적으로 익히 알려진 것은 익히 알려졌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몰인식된다.” 저마다 알튀세르를 읽지 않고서 알튀세르를 안다고들 한다. 이런 탓에 이 프랑스철학자 하면 생기 없는 학술적 마르크스주의의 방울을 단 허수아비, 1960년대 사상의 거추장스러운 기념비 등을 떠올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활동가들더러 그토록 동시적으로 논박과 찬양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말에 귀기울여보라는 주문은 황당한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스 좌파의 “알튀세르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는 활동가 파나지오티스 소티리스가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알튀세르 저작에 파고들기 위한 그 저작 사용법이라 할 만한 것을 제시한다. 소티리스는 알튀세르 사상이 지닌 여러 측면들을 크게 세 가지 “계기들”로 세분화하고 있다. (1) 마르크스주의적인 철학 실천의 재정의, (2) 이데올로기 사상의 근본적 쇄신, 그리고 (3) 공산주의 운동의 전략적 개조. 가장 나중 것이라고 해서 결코 그 무게감이 덜하지 않은 이 마지막 계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와 거리를 둔 정치를 고안할 필요성 등이다. - Période
알튀세르를 읽기 위한 안내서를 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작이 방대한 까닭에 그렇다. 따라서 나는 알튀세르 저작의 주요한 틀을 이루는 주제들에 따라 정리해 볼 생각이다. 그래야 독자들이 여러 방향에서 그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도 시작은 ▲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 2017]라는 게 불문율. 알튀세르 살아생전에 출간된 모든 작품들 가운데 책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저작이다. 물론 책의 실제 꾸밈은 그간 발표한 논저들을 모으고 서문을 붙인 모양새이지만 말이다.
195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 내부 논쟁의 경과에 흥미를 가진 자라면 ≪마르크스를 위하여≫가 필독서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알튀세르는 비역사주의적 역사유물론, 이론적 반인간주의의 주창자. 또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진화해 가는 과정에서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론적 실천의 이론, 이데올로기 개념, 정세에 대한 독창적 사고 등도 이때 밑그림이 그려졌다.
마냥 정치 저작이라 말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공산주의 운동의 확산에 뒤이어 곧장 서구와 동구를 막론하고 우경화 및 심각한 전략적 위기가 드러난 시기, 마르크스주의 내부에 인간주의와 관료주의의 요소들이 섞여드는 경향으로 대표된 그 위기의 시기에 개입했던 불후의 저작임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가 행한 이 개입의 숨은 의도는 이론적 명확성을 수단삼아 정치노선의 좌경화를 촉진하기가 될 것이다.
□ 알튀세르와 알튀세르주의자들, 그리고 이들이 선언한 새로운 유물론적 인식론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은 자연스레 ▲ ≪자본을 읽자≫(1965)[김은주ㆍ진태원ㆍ안준범 옮김, 그린비, 근간]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알튀세르, 랑시에르, 마슈레, 에스타블레, 발리바르 5인의 글이 모두 실린 판본을 손에 쥐는 것이 좋다.
여기 실린 알튀세르의 글은 목적론과 경험주의에서 탈피한 인식론의 개념화라는 그의 최초 시도에서 가장 물오른 진술. 물론 이 같은 시도가 그의 접근방식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발리바르의 글은 구조 이론을 통해 역사유물론을 재개념화하는 중요한 시도다. 이로써 마르크스주의적 구조주의라는 패러다임의 길이 열린다.
마슈레와 에스타블레는 마르크스의 ≪자본≫에 내장된 개념적 설계에 관해 값진 통찰을 제공한다.
랑시에르의 글이 만약 군계일학이라면 그 이유는 ≪자본≫의 “가치형태”에 대한 독창적 해석을 제공했다는 그 공이 현저하게 크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이후 이 글을 자기 것으로 인정치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 알튀세르는 1966년에 행한 몇 가지 개입들 이후로 철학적ㆍ이론적 자기비판의 시기에 돌입한다. 공산주의 운동의 우경화가 갖는 함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잠재적으로 “과학들의 과학”으로 개념화하는 것의 한계 등이 이 자기비판을 통해 따져 묻게 될 사안들이다. 이러한 이론적 전회는 반목적론적 유물론의 핵심 개념인 “마주침”을 중심으로 한 이론적 작업을 수반하게 되지만, 당시 출판된 작품들 속에서는 마주침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알튀세르 저작 상의 이 첫번째 전회는 대신 세 수준에서 나타난 철학의 재정의라는 모습을 띤다.
▲ ≪레닌과 철학≫(1968)[진태원 옮김, <레닌과 철학>,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2008]
이 저작은 레닌의 철학적 개입에 대한 옹호이자, 철학의 정치적 성격 및 이론 내의 정치적 개입을 옹호하는 독창적 논변이다.
▲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74)[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번역상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불어 원문 또는 영역본을 참조하기를 권한다.]
알튀세르의 이 강의 모음은 이론 내로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명제로서 철학의 종별성을 재사유하려는 시도이다. 철학과 과학의 구분, 관념론의 여러 변종에 관한 내용들도 발견된다.
▲ ≪존 루이스에게 답함≫(Maspero, 1973) (저작집 ≪마키아벨리의 고독 외≫(PUF, 1998)[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에도 수록)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지지자들을 겨냥한 논쟁적 저술. 최종심급에서 이론 속의 계급투쟁이라는 철학의 재정의, 그리고 개인숭배에 대한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기 위해 스탈린주의의 이론적 요소들에 대한 재규명이 동시적으로 전개된다.
▲ <철학의 전화 La Transformation de la philosophie>[서관모ㆍ백승욱 옮김, ≪철학에 대하여≫, 동문선, 1997]
1976년 강의록인 이 글에서는 철학적 체계의 전통적 형태들을 사회ㆍ정치적 지배관계들의 재생산에 결부시킴으로써 철학에 관한 알튀세르의 구상이 좀더 무르익는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유물론의 새로운 실천. 이러한 실천의 목적은 하위 계급들의 집합적인 사회적 실천들의 해방에 관여하면서 전통철학의 관념론에 맞서 싸우는 데 있다.
▲ 자기비판 관련서로서 1970년대에 출간된 것들 가운데는 ≪자기비판의 요소들≫(Hachette, 1974)[부분번역: 김석민 옮김, <스피노자에 관하여>,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저작집 ≪마키아벨리의 고독 외≫(PUF, 1998)[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에도 수록)을 꼽아 볼 수 있다. 알튀세르가 여기에 내놓은 것은 자기비판의 “공개적” 진술. 그러는 가운데 구조주의와의 단절이 강조된다. 자신의 사고에는 스피노자주의적 요소들이 있다는 점도 환기하고 있다.
▲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라는 1965년 저작에 대한 자기비판이 갈무리되는 것은 바로 그의 이론적 진화 과정이 술회되는 <아미엥에서의 주장 La soutenance d’Amiens>(1975)[김동수 옮김, ≪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1]에서.
▲ 그러나 이 1965년 이후 시기를 대표하는 것은 알튀세르가 시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 이론. 사실 우리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1970)이라는 제목을 단 그 초고 성격의 논문에 대한 수많은 인용들을 통해 알튀세르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런데 알튀세르가 글머리 주에서 밝히듯 이 작품은 ≪재생산에 대하여≫[진태원ㆍ황재민 옮김, 리시올, 근간]라는 더 큰 분량의 원고에서 발췌한 것. 1970년 논고에서 그치기보다는 ≪재생산에 대하여≫를 전부 다 읽는 편이 좋다. ≪재생산에 대하여≫는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들의 구실,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 정치의 새로운 실천에 대한 필요 등 알튀세르주의의 여러 문제 설정들에 관한 보다 넓은 시야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을 정치 및 역사와 관련시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람시가 제기한 물음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대면한 것이기도 한 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에 관한 이론이 프랑스공산당 정치 방침의 좌경화 요구와 겹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조망 안에서다.
□ 우리는 이제 정치적 정세에 대한 알튀세르의 개입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의 정치적 사유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게 되었다.
▲ 가상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검은 소≫는 1976년 전후에 작성된 것으로, 지난 2016년 프랑스대학출판부를 통해 출판되었다[배세진 옮김, 생각의힘, 근간]. 이는 프랑스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좌표를 완전히 포기했던 해당 시기에 어떻게 알튀세르가 당의 조직적ㆍ정치적 형태들에 대한 비판을 행하는지 보여주는 최종 사례. 이런 의미에 이 저작은 알튀세르의 스탈린주의 비판을 대표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비판에 찬동했던 발리바르의 작품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최인락 옮김, ≪민주주의와 독재≫, 연구사, 1988]도 같이 참고할 수 있겠다.
▲ ≪제22차 당대회≫(1978)는 문제가 된 프랑스공산당의 정치 방침과 이것이 제기한 문제들에 관해 알튀세르가 행한 발언을 담아낸 소책자이다[이진경 옮김,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 새길, 1992; 김경민 옮김,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백의, 1992에 국역 수록]. 대중들 및 대중들의 이해관계가 스스로 표출될 수 있도록 만들 필요성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적들도 포함하고 있다.
▲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Enfin la crise du Marxisme!>(1977), <유한한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1978) [이진경 옮김,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 새길, 1992; 김경민 옮김,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백의, 1992에 국역 수록]
이 두 작품은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의 위기에 관한 알튀세르의 가장 개방적인 공적 표명들이다. 대중들의 집단적 발의들 및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빈틈들에 기입된 공산주의의 잠재적 형태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표현되고 있다.
▲ <자신의 한계들에서의 마르크스>(1978) (≪철학ㆍ정치 저작선≫, 제1권, Stock/IMEC, 1994에 수록)
사후에 출간된 이 작품에는 국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그람시 비판, 풀란차스의 계급 관계들의 응축으로서의 국가 개념에 대한 비판 등등에 관련한 알튀세르 사상의 가장 상세한 진술이 나타난다. 알튀세르의 국가론은 사회 세력들을 정치적ㆍ제도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기계라는 정의로 제시된다. 이는 노동자계급 및 그 조직들이 국가와 거리를 두고 확립될 필요성에 기초해서 정치를 사고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 1970년대에 작성되었으나 사후에 출간된 다른 한 작품 ≪마키아벨리와 우리≫(≪철학ㆍ정치 저작선≫, 제2권, Stock/IMEC, 1995에 수록; Tallandier, 2009로 별도 출간)은 전적으로 정치와 관련된다. 이 독특한 작품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은 가장 발본적인 마키아벨리 저작 읽기, 그리고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알튀세르 자신의 사고의 진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덤으로 우리는 정치적 사유가 개념화한 정세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알튀세르 저작의 백미라 할 작품인 것이다.
□ 마주침의 유물론 또는 우발성의 유물론의 출현에 대해서도 일련의 알튀세르 작업물들이 이루는 하나의 틀 안에서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작업물들 가운데 몇몇은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가 작성되기 전인 1984년 이전에 속한 것들이다.
▲ 1980년대에 쓴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Le Courant Souterrain du matérialisme de la rencontre>[서관모ㆍ백승욱 옮김, ≪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새길, 1996에 번역 수록]은 일종의 강령 선언에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읽음으로써 그러한 문제 설정이 알튀세르 작업 내부에서 출현한 방식을 탐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 출간된 네 권의 작품들은 알튀세르 저작에서 마주침의 유물론의 출현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 ≪1972년 루소 강의≫[황재민 옮김, 그린비, 근간]는 루소 저작, 특히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관해, 그리고 루소에 관한 알튀세르의 이전 강의들에 관해 얼마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입하면 좋을 작품이다.
▲ ≪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안준범 옮김, 현실문화, 근간]은 철학과 마주침의 유물론을 재고찰하기 위해 가공한 작품이다.
▲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주재형 옮김, 그린비, 근간]
▲ ≪마키아벨리와 우리≫(Tallandier, 2009)
위의 네 권의 작품들은 알튀세르 특유의 그 발상이 1980년대 이전에 어떻게 진화해 나왔는가에 대한 값진 조망을 제공하는 것들로서, 상기한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그리고 ▲ 1985-86년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 가운데 나온 우발성의 유물론에 대한 소개[≪철학에 대하여≫, 서관모ㆍ백승욱 옮김, 동문선, 1997]를 좀더 잘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이 1970년대 작품들이 드러내 보이는 사실은 마주침이라는 통념이란 (1980년대에 속하는 몇몇 작품들이 우리에게 심어줄지 모르는 바대로) 알튀세르에게서 막연한 철학적, 심지어 시학적 중요성을 갖는 것이 아닌, 개량주의에 대한 공산주의 좌파의 비판을 재고한다는 보다 큰 틀의 시도에서 우회 불가능한 한 요소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모든 구상과 전면적으로 단절하는 공산주의 정치의 복잡한, 때맞지 않은, 개방적 성격을 반추하기 위한 길로서 “마주침”)에 내포된 정치적 첨예함은 알튀세르의 이론적 가공물들이 지닌 중요성을 이해하고자 할 때 매우 중요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 이렇게 알튀세르 저작에서 핵심 자료들로 꼽힌 것들을 읽고 난 후라면 다른 작품들로도 고개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
▲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1959)[김석민 옮김,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에 국역 수록]
알튀세르 저작 가운데 유일한 전문 연구논문이라 할 이 작품은 목적론적이지 않은 역사관을 발전시키려는 알튀세르의 최초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몽테스키외 저작에 대한 매우 수준 높은 독해이기도 하다.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Stock/IMEC, 2007[1992])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
필히 알튀세르 저작 전체를 읽고 난 다음 이 자서전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알튀세르의 생애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책. 물론 자서전 형식이 늘 그렇듯 우리를 착오로 이끄는 측면도 있다. 1980년대의 비극 이후의 알튀세르처럼 그 일신상의 상황이 굴곡으로 점철되어 있는 경우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2007년에 발행된 제2판에는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에 관한 알튀세르 작업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글들이 일정 분량을 점하고 있다.
▲ ≪프란카에게 보내는 편지(1961-1973)≫(Stock/IMEC, 1998)는 독서의 유혹을 강하게 일으키는 작품. 알튀세르가 맞닥뜨린 당대 정치적ㆍ이론적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개관하는 데 유용하다. 알튀세르의 삶을 집어삼킨 우울증 관련 일화들도 언급되고 있다.
≪프란카에게 보내는 편지≫가 알튀세르 사상을 개관할 수 있게 하는 정보를 주는 반면, ▲ ≪엘렌에게 보내는 편지≫(Grasset/IMEC, 2011)는 전기적 맥락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