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에게 연극이란 “허구적 위험”일 뿐인가? (2/3)
마르크뱅상 올레
황재민 옮김 | 알튀세르 번역집단
(1) 원문은 Howlett, Marc-Vincent, «Le Théatre n’est-il pour Althusser qu’un «Risque Fictif»?», dans Lire Althusser aujourd’hui, l’Harmattan, 1997. (2) 옮긴이의 개입은 중괄호 { } 안에 넣었다. 대개 인용 문헌들의 한국어판 서지 사항이다. |
(1/3에서 계속)
그런데 여기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강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감을 지닌 표현이 바로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1694년을 기점으로 연극 전통에 포함된 한 단어, 곧 특권층 관람자들이 자리하는 무대 측면들과 무대의 뒤편을 가리키는 ‘라 캉토나드’(la cantonade)라고 하는 한 단어에 준거하고 있다. “무대 가장자리에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은 1752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서, “무대 뒤편에 있다고 가정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것을 요구하는 장면 지시”를 가리킨다. 연극 용어의 이러한 출전을 알튀세르가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기 크레모니니에 관한 텍스트 같은 알튀세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 표현이 나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의 반복된 사용이 연속성과 동일성의 관념과 단절하는 이중의 타자의 존재 유형을 표시하는 만큼, 참고사항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라캉 원전 안에서 이 표현의 쓰임을 알고 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크레모니니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들이라는 주제에 관련해서 인간들이 붙잡혀 있는 원환 이미지를 반사하는 거울 형태를 탐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원환의 방향/의미(sens)는 그 원환과는 다른 것에 의해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 고정된다. 그 차이란 다름 아닌 원환 옆에 놓인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수직선들의 현존이다. 수직선들은 개별자-인간들에서 개별자-대상들로, 또 그 역으로 무한히 향하는 영속적인 반사와는 다른 사태, 곧 이데올로기적 실존의 그 원환과는 다른 사태를 ‘형상화’한다. 원환과는 다른 것에 의한, 원을 그리지 않는 다른 구조에 의한, 그 어떤 발생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무게라는 다른 본성의 법칙에 의한, 이 원환의 결정, 이것이야말로 그 결정된 부재로부터 이후 크레모니니의 작품들 전체를 사로잡는 것이다.” 더 나아가, 크레모니니가 이러한 순환성을 그리기 위한 거울들을 포기할 때, 이 순환성은 곧바로 스스로를 사물들의 원환 속에 붙잡혀 있는 시선들 및 몸짓들의 원환으로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와 관련하여 알튀세르는 “가시적 관계들을 지배하는 결정된 부재”를 그리려는 시도에 대해 말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조건들’을 ‘그리기’, 사회적 관계들을 그리기, 주어진 한 사회 속의 생산 관계들이나 계급 투쟁 형태들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의 대상들을 통해서 가시적인 관계들을 그릴 수는 있다. 관계들이 대상들의 배치에 따라 관계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결정된 부재를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가시적인 관계들 말이다. 인간들의 구체적 실존을 지배하는, 즉 인간들이 대상들과 맺는, 그리고 인간들이 인간들과 맺는 관계들의 체험된 이데올로기를 알려주는 구조, 즉 이러한 구조는, 그것이 구조인 한에서, 결코 현존으로, 직접적으로, 실정적으로, 양각으로 그려질 수는 없고, 오직 부재의 지표들에 의해 부정적으로만, 흔적들과 효과들에 의해 음각으로만 그려질 수 있을 뿐이다. 결정된 부재를 그리는 이러한 음각은 문제시되었던 변별적 차이들 속에 매우 분명하게 새겨진다. 다시 말해, 그려진 대상이 그 대상의 본질에 합치되지 않고 그것과는 다른 것에 근접하게 된다는 사실에, (인간들과 대상들 간의 관계 같은) 습관적인 관계들이 역전되고 어긋나게 된다는 사실에, 요컨대 모든 것을 요약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즉 크레모니니는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 즉 원과 나란히 그리고 원과 떨어져서, 하지만 동시에 원의 곁에서, 원의 법칙을 거부하는,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원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의 효과성을 나타내는 어떤 것, 즉 묵직한 수직선들을 동시에 그리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의 원을 그릴 수 없다는 사실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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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에 비추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무대 가장자리에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이 매번 어떤 근접성의 관념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근접성은 가까이 있는 것, 게다가 근친 관계에 있는 것과, 의미(여기서는 변증법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를 생산하는 다른 현실성의 긍정 사이의 관계 부재인 셈이다. 마치 동일자의 무한한 융합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가는 상상적 순환성 속에 상징적인 것이 기입되어야만 했다는 듯이. 베르톨라치의 작품에서 인간 이하의 남자들과 여자들(“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이 이루는 한없는 공허함과 대립되는 드라마(의식의 변증법)의 강렬한 시간이 역사의 시간을 향한 단절과 탈출로 우리를 이끄는 반면에, 최소한 알튀세르가 이해한 바의 크레모니니에게 있어서, 원환의 거부는 묵직한 수직선들을 통해 “무대 가장자리에” [원환을 고정시키는/그리는] 회화의 공간으로 단번에 이행한다. 베르톨라치가, 그리고 아마도 연극이라는 것 전체가 나중에 오는 것을, 그러니까 바깥의 경험, 그 모든 기대/예상에 열려있는 환유의 경험 내지는 적어도 의미의 환유의 경험을 노리는/겨냥하는 만큼, 회화적 경험은 어떤 의미로부터 작업/노동 및 생산을 단번에 해방시킬 수 있는 시선과 사유의 흐름을 그 그림의 공간 자체 안에서 병치 작용을 통해 응축시킬 것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방법에 있어서 엄밀히 구조주의의 영향 하에 있는 이러한 해석 작업은 (비록 구조주의라는 이 말이 다소간 이 운동에 가담한 모든 이들을 거슬리게 해 거부될 만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구조 인과성은 전체, 부재하는 원인, 관계들 등과 대열을 이루어 필수적인 준거점으로 남아있다) 베르톨라치의 작업, 스트렐러에 의해 수행된 폭로뿐만 아니라, 관객의 감정/감동 또한 중시한다.
“관객들의 감동은 단지 민중의 삶 구석구석을 실감나게 ‘제시’한 데서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 민중의 비참에 의해서도, (…) 니나, 아버지, 토가소가 이루는 번득이는 드라마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그러한 구조와 이 구조가 지닌 심오한 의미에 대한 비의식적 지각에 의해서 설명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트렐레르가 펼쳐낸 장면을 맞닥뜨린 관객은 불분명한 것임에 틀림없는 어떤 의식에, 관객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말과 몸짓보다 심오하며, 등장인물들이 결코 그것을 성찰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대로 살아가게 되는 직접적 운명보다 심오한 어떤 깊숙이 숨겨진 의미에” 이르게 된다. 말하자면 관객은 니나의 위치에 서게 된다. 출발점에 있으며 미결의 상태인 위치가 그것이다.
알튀세르가 대가답게 이끌어 간 이러한 장면 분석은 당연히 브레히트의 분석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그 당시에 연극이 자라났던 환경 등은 브레히트를 필수적인 준거점으로 여기게 만든다. 물론 우리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준거점이 그 찬란함을 잃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우리는 알튀세르가 브레히트를 읽었음을 알고 있다. 브레히트의 이론적 텍스트들에 대한 사본, 그리고 수험생용으로 인색하게 배포되는 작은 메모지 위에 공들여 적은 필기들, 또한 브레히트의 이론적 논저들의 복사본 여백과 본문 등에 남긴 메모들, 이러한 것들은 알튀세르도 브레히트주의자를 자처하는 자들만큼이나 브레히트를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으로부터 브레히트를 보는 일정한 양면적 시각이 드러나게 된다.
물론 알튀세르는 베르톨라치의 희곡을 규제하는 구조화, 그가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은 그러한 구조화를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갈릴레이의 생애』 등에서도 확인한다. 그것은 곧 “잠재적인 비대칭적ㆍ비판적 구조, 무대 가장자리의(à la cantonade) 변증법의 구조”이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이렇게 확인/인정하는 와중에, 비록 부인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다음을 암시하는 한 가지 주의점을 언급한다. 즉, 의식과 (이런 의식에 결부된 소위 변증법과는 상이하고 이질적인) 현실성 간의 대결이 말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러한 것들이 말해진다는 사실로 인해 바로 질문들이 제기되는 공간 자체가 닫혀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답할 수 있는 여지를 주려고 하지 않은 채, 너무 성급히 결론 내리려고 바라는 것은 거짓 해법들이나 위험 회피를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장에 알튀세르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점을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즉, 말해지든 그렇지 않든 사태들이 그처럼 배열된다고 한다면, 비대칭적이고 탈중심화된 구조가 정말 존재한다면, 유물론적 연극은 그러한 구조화 형태와 동일한 외연을 지닐 것이다. 연극은 의식이 자체의 발전을 통해 현실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자체와는 다른 것의 근본적 발견”에 의해 그러한 현실에 접근하도록 한다. 여기서 알튀세르가 펼치고 있는 생각은 그의 반인간주의, 즉 드라마적 물음과 연결된 모든 자기의식 형태들과 작별하는 일로 통하는 것이다. 다만 그는 브레히트에게는 끝내 이별을 고하지 않고 독자로서 의심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감각의 소여들을 전도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국 감각 바깥에서 연극을 구축하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 즉 알튀세르도 동의할 것 같은, 하지만 브레히트가 끝까지 옹호할 수는 없었던 이러한 불가능성 테제 속에 브레히트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튀세르가 탈중심화 속에 유물론적 물음을 설정하면서 채택한 전망은 종국에는 고전적인 연출들 전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즉 모든 고전적인 연출들은 자기의식의 역량 전체와 긴밀하게 부합하는 극작법적 문학에 준거한다는 관점 말이다. 따라서 그는 약간은 성급한 이러한 주장과 관련하여, 세익스피어와 몰리에르 같은 저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예외적이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만약 우리가 알튀세르에게 몇몇 저자들의 다른 해석들을 제시했다면 예외들이 더 많이 규칙을 만들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고전적 미학을 규정하려고 하다가 그러한 고전들에 관한 일반적 담론 및 “드라마적 의식의 중심에 있는 통일성”에 포섭되는 유명한 세 가지 통일성 규칙에 속아넘어가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알튀세르는 그 자신이 고발하는 것, 즉 고전 연극을 틀 지운다고 가정되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끌리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알튀세르가 라신 비극을 독해하고자 한 바르트의 작업이나, 그리스 비극과 코르네유 비극을 연출했던 비테즈 같이 알튀세르와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이들의 작업에 대해 좀더 민감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반영 형태로 드라마의 조건들의 총체를 자기 안에” 포괄하는 모든 인물을 싸잡아 무시해 버리는 것이 곧 연극성의 조건들 자체 안에 있는 모든 자생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 주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인물로 환원되지 않는 잠재적 구조로 통한다. 인물은 자신이 “구조의 추상적 요소들”이 갖는 불균형 및 역동성의 연기/틈새(연극에서의 연기와, 변동의 공간으로서의 틈새라는 jeu 단어의 이중적 의미에서)와 연루된다는 점에 대해 맹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브레히트 극작법의 핵심이 나타난다. 즉 (알튀세르가 “Verfremdungs-Effekt”, “V-효과”라고 필기하곤 했던) 거리두기 효과,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로 이해된 모든 카타르시스와의 결별을 불러일으키는 일체의 동일화의 거부.
이러한 주제들은 너무도 잘 알려진 것들이라 더 다룰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여기서 그 주제들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알튀세르가 그 주제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알튀세르가 그것들을 비판에 부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두기 개념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거리에서 알튀세르가 브레히트에 대해 취한 첫 번째 “거리”를 확인한다. 이러한 비판이 생겨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브레히트는 순수 기술적인 물음들에서 비롯하는 연극적 실천을 고찰하는 데 갇혀 있다. 반면 알튀세르는 연극 이론에 관한 성찰을 기대하는 것 같다. 벌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에서 알튀세르는 몇 가지 유보를 표명한다.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의 해석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표현해서, 알튀세르가 보기에 브레히트가 단순한 재현 기술의 차원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브레히트의 탈중심화는 부지불식간에 부차적인 인물들 위에 “긍정적 주인공”의 동일화 및 역할을 재중심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전면적 탈중심화나 혁명(?)이 아닌 중재나 개혁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마치 연극 속에서 작동되는 “회수”가 모든 동력의 부재를 의미하게 될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브레히트는 간단한 개혁만을 제공함으로써 혁명을 불발시켰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브레히트는 새로운 극작법을 연극인, 곧 연극 기술자의 기능으로 때우려고 했던 것 같다. 기술적, 심리적 전복들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관객이 극과 유지하게 되는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놓칠지도 모른다. 알튀세르가 가진 의혹은 다음과 같이 표출된다. “관객과 극 사이에 거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거리가 단지 심리적(기술적) 처리나 인물들의 심리적 양상 속에서만이 아니라 극 자체 내에서 생산되어야만 한다. (인물들은 정말 주인공들 아니면 비주인공들인가?…)”
알튀세르의 이러한 유보는 브레히트가 어떤 대담(1953년 3월7일자)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이종현 옮김, http://en-movement.net/16)에 이 대담의 원문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 옮긴이})에서 진술한 바와 관련해 취해지는 것으로서, 알튀세르는 그 대담에 나타난 브레히트의 진술을 자신의 강의안 속에 인용하기도 한다. 분량상 여기에 다 옮기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진술의 요점만을 제시하겠다.
― 브레히트의 연극은 사람들의 행동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브레히트는 “철학”이라는 용어를 그 “순진한” 의미에서 사용한다고 말한다.
― 이 순진함을 변명하려고 브레히트는 아인슈타인을 인용한다. 아인슈타인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직 두 명의 사람을 성찰해왔음을 뜻하는 내용이다. 즉 “광선을 따라가는 사람과 자유낙하 중인 승강기 안의 사람.” (그야말로 스스로를 순진하다고 할 만한 자가 아닐 수 없다!)
― 브레히트가 수행할 수 있었던 변화들은 본질적으로 연극 활동 내부에서 작동되는 것과 관련 있다.
― 브레히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론적 저작을 그만 읽었으면 한다. 대신 자신의 관객들을 보고 자신의 연극에 의해 생산된 효과들을 탐구했으면 한다.
― 브레히트의 원리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번째 테제를 반복하는 강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속하는 것으로서, 세계를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 마지막 지점에서 출발해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행한 혁명을 마르크스가 철학의 장에서 창출해낸 혁명과 대비시키는데,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튀세르에 따르면, 브레히트가 연극 내에서 행한 새로운 조치들은, 마르크스가 주도한 철학적 혁명, 즉 “철학의 실천 내에서의 혁명”과 동일한 자격/위상에서, “연극적 실천 내에서의 혁명의 효과들”로 간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