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알튀세르에게 연극이란 허구적 위험”일 뿐인가? (2/3)

 

마르크뱅상 올레

황재민 옮김 | 알튀세르 번역집단

 

(1) 원문은 Howlett, Marc-Vincent, «Le Théatre n’est-il pour Althusser qu’un «Risque Fictif»?», dans Lire Althusser aujourd’hui, l’Harmattan, 1997.

(2) 옮긴이의 개입은 중괄호 { } 안에 넣었다. 대개 인용 문헌들의 한국어판 서지 사항이다.

 

(1/3에서 계속)

그런데 여기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강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감을 지닌 표현이 바로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1694년을 기점으로 연극 전통에 포함된 한 단어, 곧 특권층 관람자들이 자리하는 무대 측면들과 무대의 뒤편을 가리키는 라 캉토나드’(la cantonade)라고 하는 한 단어에 준거하고 있다. “무대 가장자리에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은 1752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서, “무대 뒤편에 있다고 가정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것을 요구하는 장면 지시를 가리킨다.[각주:1] 연극 용어의 이러한 출전을 알튀세르가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기 크레모니니에 관한 텍스트 같은 알튀세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 표현이 나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의 반복된 사용이 연속성과 동일성의 관념과 단절하는 이중의 타자의 존재 유형을 표시하는 만큼, 참고사항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라캉 원전 안에서 이 표현의 쓰임을 알고 있다.[각주:2] 알튀세르에 따르면 크레모니니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들이라는 주제에 관련해서 인간들이 붙잡혀 있는 원환[각주:3] 이미지를 반사하는 거울 형태를 탐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원환의 방향/의미(sens)는 그 원환과는 다른 것에 의해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 고정된다. 그 차이란 다름 아닌 원환 옆에 놓인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수직선들의 현존이다. 수직선들은 개별자-인간들에서 개별자-대상들로, 또 그 역으로 무한히 향하는 영속적인 반사와는 다른 사태,  이데올로기적 실존의 그 원환과는 다른 사태 형상화한다. 원환과는 다른 것에 의한, 원을 그리지 않는 다른 구조에 의한, 그 어떤 발생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무게라는 다른 본성의 법칙에 의한, 이 원환의 결정, 이것이야말로 그 결정된 부재로부터 이후 크레모니니의 작품들 전체를 사로잡는 것이다.”[각주:4] 더 나아가, 크레모니니가 이러한 순환성을 그리기 위한 거울들을 포기할 때, 이 순환성은 곧바로 스스로를 사물들의 원환 속에 붙잡혀 있는 시선들 및 몸짓들의 원환으로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와 관련하여 알튀세르는 가시적 관계들을 지배하는 결정된 부재를 그리려는 시도에 대해 말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조건들 그리기’, 사회적 관계들을 그리기, 주어진 한 사회 속의 생산 관계들이나 계급 투쟁 형태들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각주:5]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의 대상들을 통해서 가시적인 관계들을 그릴 수는 있다. 관계들이 대상들의 배치에 따라 관계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결정된 부재를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가시적인 관계들 말이다. 인간들의 구체적 실존을 지배하는, 즉 인간들이 대상들과 맺는, 그리고 인간들이 인간들과 맺는 관계들의 체험된 이데올로기를 알려주는 구조, 즉 이러한 구조는, 그것이 구조인 한에서, 결코 현존으로, 직접적으로, 실정적으로, 양각으로 그려질 수는 없고, 오직 부재의 지표들에 의해 부정적으로만, 흔적들과 효과들에 의해 음각으로만 그려질 수 있을 뿐이다. 결정된 부재를 그리는 이러한 음각은 문제시되었던 변별적 차이들 속에 매우 분명하게 새겨진다. 다시 말해, 그려진 대상이 그 대상의 본질에 합치되지 않고 그것과는 다른 것에 근접하게 된다는 사실에, (인간들과 대상들 간의 관계 같은) 습관적인 관계들이 역전되고 어긋나게 된다는 사실에, 요컨대 모든 것을 요약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즉 크레모니니는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 즉 원과 나란히 그리고 원과 떨어져서, 하지만 동시에 원의 곁에서, 원의 법칙을 거부하는,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원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의 효과성을 나타내는 어떤 것, 즉 묵직한 수직선들을 동시에 그리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의 원을 그릴 수 없다는 사실에 새겨진다.”[각주:6]


 



 


이 인용문에 비추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무대 가장자리에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이 매번 어떤 근접성의 관념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근접성은 가까이 있는 것, 게다가 근친 관계에 있는 것과, 의미(여기서는 변증법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를 생산하는 다른 현실성의 긍정 사이의 관계 부재인 셈이다. 마치 동일자의 무한한 융합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가는 상상적 순환성 속에 상징적인 것이 기입되어야만 했다는 듯이. 베르톨라치의 작품에서 인간 이하의 남자들과 여자들(“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이 이루는 한없는 공허함과 대립되는 드라마(의식의 변증법)의 강렬한 시간이 역사의 시간을 향한 단절과 탈출로 우리를 이끄는 반면에, 최소한 알튀세르가 이해한 바의 크레모니니에게 있어서, 원환의 거부는 묵직한 수직선들을 통해 무대 가장자리에” [원환을 고정시키는/그리는] 회화의 공간으로 단번에 이행한다. 베르톨라치가, 그리고 아마도 연극이라는 것 전체가 나중에 오는 것을, 그러니까 바깥의 경험, 그 모든 기대/예상에 열려있는 환유의 경험 내지는 적어도 의미의 환유의 경험을 노리는/겨냥하는 만큼, 회화적 경험은 어떤 의미로부터 작업/노동 및 생산을 단번에 해방시킬 수 있는 시선과 사유의 흐름을 그 그림의 공간 자체 안에서 병치 작용을 통해 응축시킬 것이다.[각주:7]

그런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방법에 있어서 엄밀히 구조주의의 영향 하에 있는 이러한 해석 작업은 (비록 구조주의라는 이 말이 다소간 이 운동에 가담한 모든 이들을 거슬리게 해 거부될 만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구조 인과성은 전체, 부재하는 원인, 관계들 등과 대열을 이루어 필수적인 준거점으로 남아있다) 베르톨라치의 작업, 스트렐러에 의해 수행된 폭로뿐만 아니라, 관객의 감정/감동 또한 중시한다.

관객들의 감동은 단지 민중의 삶 구석구석을 실감나게 제시한 데서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 민중의 비참에 의해서도, () 니나, 아버지, 토가소가 이루는 번득이는 드라마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그러한 구조와 이 구조가 지닌 심오한 의미에 대한 비의식적 지각에 의해서 설명되는 것이다.”[각주:8] 한 마디로 스트렐레르가 펼쳐낸 장면을 맞닥뜨린 관객은 불분명한 것임에 틀림없는 어떤 의식에, 관객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말과 몸짓보다 심오하며, 등장인물들이 결코 그것을 성찰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대로 살아가게 되는 직접적 운명보다 심오한 어떤 깊숙이 숨겨진 의미에[각주:9] 이르게 된다. 말하자면 관객은 니나의 위치에 서게 된다. 출발점에 있으며 미결의 상태인 위치가 그것이다.

알튀세르가 대가답게 이끌어 간 이러한 장면 분석은 당연히 브레히트의 분석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그 당시에 연극이 자라났던 환경 등은 브레히트를 필수적인 준거점으로 여기게 만든다. 물론 우리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준거점이 그 찬란함을 잃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각주:10] 우리는 알튀세르가 브레히트를 읽었음을 알고 있다.[각주:11] 브레히트의 이론적 텍스트들에 대한 사본, 그리고 수험생용으로 인색하게 배포되는 작은 메모지 위에 공들여 적은 필기들, 또한 브레히트의 이론적 논저들의 복사본 여백과 본문 등에 남긴 메모들, 이러한 것들은 알튀세르도 브레히트주의자를 자처하는 자들만큼이나 브레히트를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으로부터 브레히트를 보는 일정한 양면적 시각이 드러나게 된다.


물론 알튀세르는 베르톨라치의 희곡을 규제하는 구조화, 그가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은 그러한 구조화를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갈릴레이의 생애 등에서도 확인한다. 것은 곧 잠재적인 비대칭적비판적 구조, 무대 가장자리의(à la cantonade) 변증법의 구조이다.[각주:12] 그런데 알튀세르는 이렇게 확인/인정하는 와중에, 비록 부인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다음을 암시하는 한 가지 주의점을 언급한다. , 의식과 (이런 의식에 결부된 소위 변증법과는 상이하고 이질적인) 현실성 간의 대결이 말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러한 것들이 말해진다는 사실로 인해 바로 질문들이 제기되는 공간 자체가 닫혀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답할 수 있는 여지를 주려고 하지 않은 채, 너무 성급히 결론 내리려고 바라는 것은 거짓 해법들이나 위험 회피를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장에 알튀세르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점을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 말해지든 그렇지 않든 사태들이 그처럼 배열된다고 한다면, 비대칭적이고 탈중심화된 구조가 정말 존재한다면, 유물론적 연극은 그러한 구조화 형태와 동일한 외연을 지닐 것이다. 연극은 의식이 자체의 발전을 통해 현실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자체와는 다른 것의 근본적 발견에 의해 그러한 현실에 접근하도록 한다.[각주:13] 여기서 알튀세르가 펼치고 있는 생각은 그의 반인간주의, 즉 드라마적 물음과 연결된 모든 자기의식 형태들과 작별하는 일로 통하는 것이다. 다만 그는 브레히트에게는 끝내 이별을 고하지 않고 독자로서 의심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감각의 소여들을 전도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국 감각 바깥에서 연극을 구축하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 즉 알튀세르도 동의할 것 같은, 하지만 브레히트가 끝까지 옹호할 수는 없었던 이러한 불가능성 테제 속에 브레히트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튀세르가 탈중심화 속에 유물론적 물음을 설정하면서 채택한 전망은 종국에는 고전적인 연출들 전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즉 모든 고전적인 연출들은 자기의식의 역량 전체와 긴밀하게 부합하는 극작법적 문학에 준거한다는 관점 말이다. 따라서 그는 약간은 성급한 이러한 주장과 관련하여, 세익스피어와 몰리에르 같은 저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예외적이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만약 우리가 알튀세르에게 몇몇 저자들의 다른 해석들을 제시했다면 예외들이 더 많이 규칙을 만들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고전적 미학을 규정하려고 하다가 그러한 고전들에 관한 일반적 담론 및 드라마적 의식의 중심에 있는 통일성[각주:14]에 포섭되는 유명한 세 가지 통일성 규칙에 속아넘어가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알튀세르는 그 자신이 고발하는 것, 즉 고전 연극을 틀 지운다고 가정되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끌리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알튀세르가 라신 비극을 독해하고자 한 바르트의 작업이나, 그리스 비극과 코르네유 비극을 연출했던 비테즈 같이 알튀세르와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이들의 작업에 대해 좀더 민감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반영 형태로 드라마의 조건들의 총체를 자기 안에[각주:15] 포괄하는 모든 인물을 싸잡아 무시해 버리는 것이 곧 연극성의 조건들 자체 안에 있는 모든 자생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 주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인물로 환원되지 않는 잠재적 구조로 통한다. 인물은 자신이 구조의 추상적 요소들[각주:16]이 갖는 불균형 및 역동성의 연기/틈새(연극에서의 연기와, 변동의 공간으로서의 틈새라는 jeu 단어의 이중적 의미에서[각주:17])와 연루된다는 점에 대해 맹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브레히트 극작법[각주:18]의 핵심이 나타난다.  (알튀세르가 “Verfremdungs-Effekt”, “V-효과라고 필기하곤 했던) 거리두기 효과,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로 이해된 모든 카타르시스와의 결별을 불러일으키는 일체의 동일화의 거부.

이러한 주제들은 너무도 잘 알려진 것들이라 더 다룰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여기서 그 주제들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알튀세르가 그 주제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알튀세르가 그것들을 비판에 부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두기 개념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거리에서 알튀세르가 브레히트에 대해 취한 첫 번째 거리를 확인한다. 이러한 비판이 생겨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브레히트는 순수 기술적인 물음들에서 비롯하는 연극적 실천을 고찰하는 데 갇혀 있다. 반면 알튀세르는 연극 이론에 관한 성찰을 기대하는 것 같다. 벌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에서 알튀세르는 몇 가지 유보를 표명한다.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의 해석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각주:19] 달리 표현해서, 알튀세르가 보기에 브레히트가 단순한 재현 기술의 차원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브레히트의 탈중심화는 부지불식간에 부차적인 인물들 위에 긍정적 주인공의 동일화 및 역할을 재중심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전면적 탈중심화나 혁명(?)이 아닌 중재나 개혁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마치 연극 속에서 작동되는 회수가 모든 동력의 부재를 의미하게 될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브레히트는 간단한 개혁만을 제공함으로써 혁명을 불발시켰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브레히트는 새로운 극작법을 연극인, 곧 연극 기술자의 기능으로 때우려고 했던 것 같다. 기술적, 심리적 전복들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관객이 극과 유지하게 되는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놓칠지도 모른다. 알튀세르가 가진 의혹은 다음과 같이 표출된다. “관객과 극 사이에 거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거리가 단지 심리적(기술적) 처리나 인물들의 심리적 양상 속에서만이 아니라 극 자체 내에서 생산되어야만 한다. (인물들은 정말 주인공들 아니면 비주인공들인가?)”[각주:20]

알튀세르의 이러한 유보는 브레히트가 어떤 대담(1953 37일자)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이종현 옮김, http://en-movement.net/16)에 이 대담의 원문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 옮긴이})에서 진술한 바와 관련해 취해지는 것으로서, 알튀세르는 그 대담에 나타난 브레히트의 진술을 자신의 강의안 속에 인용하기도 한다. 분량상 여기에 다 옮기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진술의 요점만을 제시하겠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사람들의 행동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브레히트는 철학이라는 용어를 그 순진한 의미에서 사용한다고 말한다.

 이 순진함을 변명하려고 브레히트는 아인슈타인을 인용한다. 아인슈타인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직 두 명의 사람을 성찰해왔음을 뜻하는 내용이다.  광선을 따라가는 사람과 자유낙하 중인 승강기 안의 사람.” (그야말로 스스로를 순진하다고 할 만한 자가 아닐 수 없다!)

 브레히트가 수행할 수 있었던 변화들은 본질적으로 연극 활동 내부에서 작동되는 것과 관련 있다.

 브레히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론적 저작을 그만 읽었으면 한다. 대신 자신의 관객들을 보고 자신의 연극에 의해 생산된 효과들을 탐구했으면 한다.

 브레히트의 원리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번째 테제를 반복하는 강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속하는 것으로서, 세계를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 마지막 지점에서 출발해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행한 혁명을 마르크스가 철학의 장에서 창출해낸 혁명과 대비시키는데,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튀세르에 따르면, 브레히트가 연극 내에서 행한 새로운 조치들은, 마르크스가 주도한 철학적 혁명,  철학의 실천 내에서의 혁명과 동일한 자격/위상에서, “연극적 실천 내에서의 혁명의 효과들로 간주되어야 한다.[각주:21]





  1. Le Robert,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langue française. [본문으로]
  2. Jacques Lacan, Télévision, p. 10, Ed. du Seuil, 1974. “왜냐하면 텔레비전[의 시청자들]과 오랫동안 제가 그들 앞에서 세미나를 진행해 온 그러한 청중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의 시청자들]과 세미나의 청중들 두 경우 모두에는 동일한 하나의 시선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 시선을 향해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그 시선의 이름으로/그 시선을 고려해서 말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거기서 무대 바깥에다 대고/불특정한 누군가에게(à la cantonade)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제가 말한 것에 정통한 사람들, 그러니까 바보가 아닌 자들, 분석가로 추정되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세르주 코테(Serge Cottet)가 나에게 일러준 라캉 세미나 11권의 다음 대목도 있다. “나와 너의 기능으로부터 이끌어낸 이론적 분류를 여기서 활용하자면, 당연하게도 그(아이)는 타자에게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타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말을 하는 것은 타자들, 가령 능동적 교육이라 불리는 것에 속하는 몇 가지 방법들 속에서 주어지는 것과 같은 간단한 조작적 놀이에 함께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동안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 아이, 저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아이들은 그러니까 무대 가장자리에로(à la cantonade)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담화, 그것을 말귀를 알아듣는 자는 잘 이해할거라는 거죠.” Séminaire XI,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p. 189, Ed. du Seuil, 1973. {맹정현ㆍ이수련 옮김, 『자크 라캉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새물결, 2008, p. 315.} [본문으로]
  3. 묵직한 수직선과 결합돼 있는 이 원환 이미지는 알튀세르의 분석에서 항구적인 이미지 정식인 것 같다. 알튀세르가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해설했을 때도 그렇지 않았던가? 특히 기원의 원환, 즉 자신만의 것으로서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그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쁜 기원의 원환인 순수 자연 상태와, 여러 원환들에 의해 과정들, 단절들, 사건들, 차이들이 이어지는 자연 상태 간의 단절을 해설할 때가 그렇다. 비록 이러한 과정에 대한 착상이 갖는 효과들이 루소의 눈에 가시적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역사에 관한 하나의 사유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곳이다. (cf. cours à l’E.N.S en 1972 sur l’idée de nature chez Rousseau. {이 강의의 녹취록은 Cours sur Rousseau라는 제목으로 2012년에 정식 출판된다.}) [본문으로]
  4. Louis Althusser,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2, p. 580. {이진수 옮김, 「추상 화가 크레모니니」, 『레닌과 철학』, 백의, 1991, p. 241.} [본문으로]
  5. ibid., note 1, p. 581를 참조할 것. 지면 하단의 각주로 놓인 이 주석은 Skira 판 텍스트{Cremonini. Peintures 1953-1987, 1988}에는 빠져 있어 이제는 Stock/Imec 판 알튀세르 선집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주석이 알리는 것은 “무대 가장자리에로”(à la cantonade)라는 표현의 동일한 활용을 넘어서는 연극과 회화의 상호 참조 효과이다. 알튀세르는 크레모니니와 연극을 명시적으로 관련시킨다. “내 생각에 {몰리에르 작품} 󰡔조르주 당댕󰡕에 대한 플랑숑의 연출, 그러니까 1966년 7월 아비뇽에서 내가 관람한 것과 같은 그 무대가 범한 실수가 바로 그것이다. 사회 계급들이 갖는 ‘구조적 효과들’ 가운데 몇몇만을 다루게 되는 한 텍스트에서 사회 계급들을 그 자체 그대로 무대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본문으로]
  6. ibid., p. 581. {이진수 옮김, 「추상 화가 크레모니니」, 『레닌과 철학』, 백의, 1991, p. 242-243.} [본문으로]
  7. 당장에 우리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크레모니니 작업의 한계와 울타리라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지적들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8.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2.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47.} [본문으로]
  9. ibid. p. 142.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p. 247-248.} [본문으로]
  10. 진정한 브레히트의 시대는 1954년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Berliner Ensemble)의 공연과 함께 개시되어 60년대 말 종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문으로]
  11. 알튀세르의 몇몇 수고들을 보면 베르나르 도르트(Bernard Dort)의 『브레히트 읽기』(Lecture de Brecht, Ed. du Seuil)도 읽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브레히트에 관한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들(Essais critiques, Ed. du Seuil에 포함된 것들)을 읽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더구나 알튀세르는 바르트의 그 어떤 점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없다. [본문으로]
  12.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3.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48.} [본문으로]
  13.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4.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0.} [본문으로]
  14.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4.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1.} [본문으로]
  15.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5.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2.} [본문으로]
  16.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6.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3.} [본문으로]
  17. Louis Althusser, «Sur Brecht et Marx»,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2, p. 542-543. Stock-Imec. {이종현 옮김,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http://en-movement.net/16.} [본문으로]
  18. 프랑수아 르뇨(François Regnault)는 “공리적” 정식화의 노련한 기교를 써서 브레히트 체계를 세 가지 원리 속에서 규정한 바 있다.“1. 거리는 연극의 본질적 차원이어야 한다.2. 풍자는 연극의 본질적 기법이어야 한다.3. 정치는 연극의 본질적 상관 요소여야 한다.” “이것들은 “위대한 교육법”으로서 연극적 단자론의 기초들이다.” Les pouvoirs du théâtre, Hommage à Bernard Dort, p. 205, Ed. du Seuil, 1995. [본문으로]
  19.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7.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5.} [본문으로]
  20.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7.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5.} [본문으로]
  21. 알튀세르의 「레닌과 철학」이라는 강연문을 재독해하면서 이 점을 좀더 깊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강연의 진행을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철학을 통해 세계의 변혁을 제안하면서 실로 새로운 과학을 창조했다. 이 과학이 새로운 철학, 아니면 적어도 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낳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새로운) 실천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Lénine et la philosophie (Maspero, 1969), p. 44-45. {진태원 옮김, 「레닌과 철학」,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2008, p. 326.}) [본문으로]
댓글 로드 중…

최근에 게시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