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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튀세르를 번역하자> 번역 연재

알튀세르에게 연극이란 허구적 위험일 뿐인가? (3/3)

마르크뱅상 올레

황재민 옮김

 

(1) 원문은 Howlett, Marc-Vincent, «Le Théatre n’est-il pour Althusser qu’un «Risque Fictif»?», dans Lire Althusser aujourd’hui, l’Harmattan, 1997.

(2) 옮긴이의 개입은 중괄호 { } 안에 넣었다. 대개 인용 문헌들의 한국어판 서지 사항이다.

#연재 1회분

#연재 2회분

 

하지만 알튀세르는 철학의 본성과 메커니즘들에 관한 이론에 대해 순진한 자들(naïfs)”[각주:1]이었던 마르크스와 레닌처럼, 브레히트 역시 연극의 본성과 메커니즘들에 대해[각주:2] 얼마간 똑같이 순진함을 드러낸다고 서둘러 단정한다(여기서 브레히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브레히트 자신이 아니라 알튀세르이다). 알튀세르에게 그들의 대상, 즉 철학과 연극의 본성과 메커니즘들에 대한 다소 명료한 인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철학적 실천 안에서, 그리고 브레히트의 연극적 실천 안에서[각주:3]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순진함은 극복되는것임에 분명하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점을 함의한다. 그러니까 문제는 철학이나 연극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브레히트가 말한 밤의 여흥이나 심심풀이를 위한 연극, 심미적 향락의 연극이 지닌 기만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연극적 최면 상태와 순수 향락의 어지러움에서 해방되기는 브레히트의 구호가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적연극에 대항한 이러한 도전에는, 또 브레히트적인 소송을 반복하는 알튀세르의 글 안에는 글자 그대로의 모럴리스트적인 외침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알튀세르가 17세기 모럴리스트들, 특히 파스칼에 대한 위대한 독자였다는 점 말고도, 알튀세르의 또 다른 중요한 읽을거리였던 루소의 외침을 연상시키게 된다. 자신이 보기에 관객을 웃기는[각주:4] 것 말고는 다른 임무는 갖지 않는 연극에 대항해 투쟁한 그 루소 말이다. 루소가 취한 이 즐거움, 또는 루소를 엄습한 이 즐거움은 우리로 하여금 연극에 관하여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발견되는 그 갈팡질팡, 즉 루소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주석을 통해, 몇 가지 곤혹스러운 점들에 대한 반론을 예상하면서, 자신도 몇몇 연극 상연에서는 유쾌함을 느꼈음을 시인할 때의 그 갈팡질팡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각주:5] 여흥을 위한 연극에 대한 공격, 오늘에도 장려해 마지않아야 하는 이 공격은 그러한 연극이 끊임없이 쓰게 되는 가면을 찢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한 연극은 정치의 바깥에 있기를 바라기에 사방에서 정치적이다. 지금 보기에는 전부 틀에 박힌 말 같지만, 그럼에도 이는 브레히트가 정치적 연극을 주장하면서 사실은 단지 연극의 본질을 되풀이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연극 비판은 그 근본에서 차라리 칸트적이다. , 알튀세르가 여러 번 반복해 말하듯이, 연극은 삶이 아니기에..., 어떤 조건에서 연극은 연극이 되는가? 이러한 교정은 자리 이동의 효과들을 초래한다. 이 경우에 알튀세르는 거리내기(décalage) 효과[각주:6]라고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이 용어들로써 “Verfremdungs-Effekt(소격효과)”라는 브레히트의 표현을 옮긴다.

어쨌든 연극적 실천 속에서 정치를 재발견한다는 것이 연극이 곧 정치라는 것으로 귀착하지 않는다. 철학이 곧 정치다, 과학이다 등등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연극 속에서 정치를 재현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각주:7] 그러기 위해서는정치를 재현하는 자리를 차지하기위해서는자리 이동의 효과들을 말 그대로 활동 속에 놓이도록 해야 한다. ,

“{관객들의 머릿속에 있는 연극의}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연극을 이동시켜야한다. 이는 연극과 현실의 분리를 강조하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공백, 거리를창설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그 무대 위에서 이 거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극본에 대한 이해를 이동시켜야한다.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 바로 브레히트 서사극이라 칭한 새로운 이해 방식이다. 이는 연출가의 작업이 결정적인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베르톨라치에 관한 알튀세르의 1962년 텍스트{피콜로 극단}에서 논의됐던 바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1968년 글{브레히트와 마르크스에 대하여}에서는 당장 베르톨라치의 극본이 브레히트의 극본보다 덜 좋은것으로 간주된다. 알튀세르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브레히트의 갈릴레오의 생애를 예로 든다. 알다시피 알튀세르가 1962년 텍스트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갈릴레오의 생애억척어멈과 그 자식들과 더불어, 자리 이동의 작업이 극본 쓰기 그 자체 안에 위치하는 극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요컨대 최소한 이 점과 관련해서는 브레히트에 대해 언급된 유보들은 더 이상 여기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관객들과 배우들이 배우의 연기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배우들의 연기를 이동시켜야한다.

이 삼중의 자리 이동은 일체의 동일시 형태와 단절할 수 있게 해준다. 이로써 관객은 비판적 입장에 다시 서게 되고, “방침을/당파를 가지고(prendre parti), 판단하고, 표결하고, 결심하게된다. 위와 같은 정식들에 대해 나는 판단을 유보하고자 한다. 이 정식들의 효과가 몇몇의 연출가들에게는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이 정식들에 주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알튀세르는 계속해서 철학과 연극 간의 대비가 갖는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둘을 그렇게까지 동일한 비판적 운명에 결박하려 한다면 당연하게도 그 둘을 뭉쳐놓게 될 위험, 더 나아가서는 철학과 과학 사이에 관해 그가 고발한 것과 동등한 정도로 관점상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 알튀세르는 철학이 과학과의 관계 속에서 과학들의 진정한 자리를 엄폐해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철학은 실로 철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보다는 철학과 과학 간의 철학적 관계에 대한 반성을 수행해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각주:8] 여기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극이 곧 철학이 아니라면 연극이 철학에 비해 갖는 종별성은 무엇인가? 다르게 말해서, 브레히트는 연극과 마르크스주의 철학 간의 철학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관계를 분석하지 않았는가?

위와 같이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알튀세르는 그렇게 물음을 던졌음직하다. 브레히트와 마르크스에 대하여의 작성 시기는 1968년 초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알튀세르는 몇 달 전부터 이미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과학도들에게 철학 강의{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를 하면서 브레히트와 마르크스에 대하여의 테제를 자신의 분석이 갖는 강점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결국 자신의 분석 속에서 부분과 전체를 겹쳐놓음에 의해 함정에 빠지는가? 알튀세르가 분명히 말하지는 않지만, 그가 브레히트의 분석이 갖는 한계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브레히트는 어떤 점에서 연극이 종별적인 무언가[각주:9]인지를 아주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브레히트의 고찰이 알튀세르에게 꾸준한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알튀세르가 주목하는 것은 브레히트의 연극이 보여주고 보이게 만드는 기능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알튀세르가 타자기로 친 자신의 원고 여백에다 적어놓은 바대로 그 보여주기”(montrer)는 일종의 증명하기”(démontrer)임이 드러난다. 나아가 알튀세르는 과학 시대의 연극을 선도하려는 브레히트의 욕망 속에는 계몽주의자”(Aufklärer)의 모습이 있다고도 덧붙인다. 그러한 소망이 매우 의심스럽게 보이긴 하지만 알튀세르는 그것을 비판의 중심에 놓지 않는 것 같다. 알튀세르는 차라리 다른 시각에서 브레히트에 대한 비판에 착수한다. 앞서 인용한 독서 기록장에는 알튀세르가 브레히트의 이론적 입장들과 관련하여 제기한 물음들이 나온다. 브레히트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성공적으로 다루는지, 그에게 약간의 역사주의적 경향도 존재하지 않는지 등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브레히트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착수하지 못했다. 적어도 공간된 알튀세르의 작품들 속에는 이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 연극론에 관한 밀라노 강연에서도 그에 대해 이야기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각주:10] 결국 알튀세르는 공개적으로는 브레히트를 인용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필시 다른 점에 있었을 것이다.

브레히트가 바란 것은 무엇인가? 브레히트는 여흥이란 곧 결국 통제하는 자가 느끼는, 그리고 세계의 변혁에 동참할 수 있다고생각하는 자가 느끼는 쾌락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보여주고 기분 전환시키기를 바란 것이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꼬여서 브레히트에게는 정치지도원같은 냄새가, 앙트완 비테의 비난조 표현을 다시 쓰자면 극 안내 책자같은 냄새가 풍기게 된다.[각주:11] 가르치기와 재미있게 하기[각주:12], 이는 모든 사기들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한쌍이다. 우리는 이 쌍이 모든 미학적 성찰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되며, 이 쌍이 인식 영역에 기입되어 있는 모든 미학의 강제된 통로라는 것을 기억한다. 또한 우리는 칸트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이 쌍이, 모든 미학은 최종분석에서는 스스로가 지배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견해,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술은 다른 소통 형태들이 끝내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포착해 내고자 한다는 견해에 근거를 부여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러한 발상은 우리의 서구 지성을 관통하는 것으로, 우리는 상징적 실천들에 대한 모든 분석 형태들에서 이를 쉽게(그것도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신화에서 사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세계에 대한 통제권을 쟁취하면서 그로부터 자신감 이상의 어떤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재미있게 하면서 가르치기, 그러나 누구를, 어떤 주체들을, 어떤 관객들을 가르치는가? 브레히트를 읽은 알튀세르에 따르면, 연극적 실천은 인간들의 의견과 행동, “관념과 행동, 차라리 행동 속의 관념에 영향을 발휘한다. 연극은 그러한 행동의 표현이고, 여기엔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이 존재한다. 관객은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를 재인지하기 위해온다. 알튀세르는 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에서 관객의 사회적 자리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관객이 단지 그 자신의 심리적 자리로만 소환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동일시 개념 및 이것의 다소간 가혹한 귀결로서 승화와 해소 등의 개념들을 형성할 수 있는 심리주의적 해석에 격분해 있었던 것이다. 관객 의식은 우선 사회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의식[각주:13]으로 정의되었다. 따라서 재인지는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재인지는 관객의 만족이 표하는 최초의 징표이다. “거기 있었지.” 하고 말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관객은 맞아, 그렇지.” 라고 말한다. 둘 사이에는 그러한 재인지의 이데올로기적 틀 바로 그 내부에서 자기만족에 놓이는 동일한 자기 담론과 자기 긍정이 있다. 극본과 관객 사이에는 어떠한 거리도 존재하지 않고, “극본 자체가 관객 의식이다.”[각주:14] 연극이 자기 갱신에 다름 아닐 때 드러내는 그 무력함(나는 이 무력함의 의심스러운 성격과 그것에 대한 알튀세르의 침묵 속의 걱정을 역설함으로써, 이 무력함을 강조했다)을 확인한 알튀세르는 브레히트 연극의 기능이란 곧 범접하기 힘든 형상을뒤흔들고 부동의 것, 즉 미망에 사로잡힌 의식의 신화적 세계라는 그 확고부동한 지반을 움직이게 하는 것[각주:15]이라고 생각한다. 그로써 관객은 새로운 의식에 이르는데, () 이는 모든 의식과 마찬가지로 미완성이지만, 그 미완성 자체, 그 쟁취한 거리, 그 한없는 활동적 비판의 작업에 의해 움직인다[각주:16]는 것이다. 달리 말해 브레히트 연극의 기능은 새로운 관객의 생산,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하고, 공연을 완성하기 위해서만 시작하는, 그러나 그것을 삶 속에서 완성하기 위해서만 시작하는 이 배우/행위자의 생산인 것이다.[각주:17]

, 알튀세르에게 1962년에는{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에서는} 당연해 보였던 것이 1968년에는{브레히트와 마르크스에 대하여에서는} 덜 그런 것 같다. 그 이데올로기적 자기 재인지가 진정으로 흥미로운것이 되려면 약간의 거리, 즉 알튀세르가 어떤 도박, 일정한 위험을 무릅쓴 도박[각주:18]이라고 칭한 것이 이데올로기적 자기 재인지에 들어있어야만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연극 관람은 결국 그 연극을 실감나게 하는 동력으로서 하나의 의심을 제기하는 일이며, 도박/위험(risque)은 바로 그러한 의심에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박/위험을 내세우면서도 그 도박/위험을 타자에게 돌리면서 계속해서 도박/위험을 피하려고 한다. 이데올로기적 자기 재인지의 원리는 자신이 감행한 그 도박/위험의 극복에서 작용한다. 카타르시스는 고통을 피하기라는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브레히트가 그러한 허구적 도박/위험을 의식하고 있다고 보려고 하지만, 브레히트 연극에 브레히트 자신이 말한 그 허구적 도박/위험을 피할 일체의 수단들이 주어졌다고 알튀세르가 전적으로 확신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타개책에 대한 구상, 당파를 갖는 것에 대한 구상, “긍정적 주인공의 갱신, 연극의 종별적 차원에 대한 성찰의 불가능성 등은 그만큼 알튀세르가 내놓은 유보의 징표들이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유보들이 항상 뚜렷하지는 않고 말하자면 여백에 머문다는 점이다. 그 유보들의 책임이 예술 일반에, 또는 특히 연극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채로 말이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스트렐레르의 공연에 대해 지적하듯 아마도 거기엔 도덕적 안일함에 기여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인정될 만한 무언의 담론의 도래[각주:19]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 나는 앞서 언급한 바 있었던 무대 가장자리”(cantonade)에서 상연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더 제대로 이해하고자 빠올로 그라씨에게 보내는 196836일자 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각주:20] 알튀세르가 관람한 것은 스트렐레르의 새 극작품 두 주인을 섬기는 하인 아를르캥(카를로 골도니 원작)이었다. 알튀세르는 이탈리아 연극의 대체 불가능한 어떤 것에 대해 말한다.[각주:21]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것을 연기한 자들 안에 살아있는 무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 역사는 들을 수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배우들 말고도 모든 인간들이 감내해야 하는 그 노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노고란 그들의 노동, 그들의 투쟁들, 그들의 삶으로부터 그들이 배운 것을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배우들이란 행동하는(agir) 사람들이다.”[각주:22] 그러나 알튀세르는 여러 차례 언급된 이러한 주제들을 뒤로 하고 배우(솔레리 분)의 연기에, 보다 특수하게는 그의 신체에 주목한다. 알튀세르는 무대 위의 모든 다른 신체들과는 전적으로 다르게 고유하게 성적인 차원으로 기능하는 그 신체에, 그 이상한 신체에, 그 신체가 가진 성으로서의 상징적 기능에 매료된다. 알튀세르는 그 이상한 신체에 속한 특성들은 인물들 간의 교환들이 이뤄지는 일정한 작용 속에서 남근의 상징적 기능을 명시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각주:23] 그러므로 아를르캥은 굶주린 자라기보다는 만인에 대한 굶주림에 굶주린 자이다. 아를르캥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의 탈중심화된 중심이다. 그는 파악 불가능하게 현존한다. 결코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기에 파악 불가능하고, 그가 없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현존한다. 굶주림과 성, 굶주린 자들(민중)과 생명()의 이러한 중첩은 오직 민중만이 말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인간들이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는 최종 심급에서 굶주림과 성을 그 이름으로 하는 두 현실들위에 서 있다.”[각주:24]

갑자기 새로운 차원이 돌발한다. 어렵지 않게 그 무용성을 가늠할 수 있는 막연한 심리주의의 차원이 아닌, 다른 무대에 속한 은밀하고 집요한 차원, 즉 무대 가장자리의 그 구멍(cette coulisse de la cantonade). 알튀세르는 (비밀스럽게 서재에 있을 때) 이에 관해 더 유창하게 떠들었음직하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공개적으로도 완곡한 방법을 통해 그 차원에 대한 탐문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거기서 진정한 고통의 세계를 발견한 자들이 갖게 되는 조심스러움을 동반한 것이었다. 알튀세르는 이 다른 무대 속의 연기를 탐문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가 초대했던 그 사람(배우),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와 함께 당시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영광을 나누었던 그 사람(배우)과 함께 말이다. 나는 물론 라캉, “무대 가장자리에 대고/아무에게나[각주:25] 말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라캉, 다른 유형의 변증법을 고안했던 라캉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 라캉의 변증법을 동일한 시기 알튀세르가 끊임없이 재구성하려 했던 변증법과 접합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했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밀라노』에 대한 해석들과는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다음과 같은 구상을 강조하는 것은 무익하지 않다. 즉 민중이 아를르캥의 목소리와 신체를 통해 자신의 굶주림에 대한 굶주림과 뒤섞인 자신의 생에 대한 긍정 속에서, 굶주림과 성의 접합 속에서, 마침내 수수께끼의 형상으로 부각된 무언의 담론의 일반 기표가 되며, 그러한 일반 기표는 극장에서, 연극 속에서 무언의 담론과 우리를 결속시키는 결집 지점들을 검토하는 데에 고유한 것이라는 구상 말이다.

 


  1. Louis Althusser, Lénine et la philosophie, p. 15. Petite collection Maspero, 1969. {진태원 옮김, 「레닌과 철학」, p. 285.} 「레닌과 철학」은 「브레히트와 마르크스에 대하여」와 같은 시기에 쓰인 저작이다. {「레닌과 철학」은 1968년 2월에 작성되어 1969년 처음 출판되고, 1972년에는 다른 논문들과 함께 증보판으로 출판된다. 1968년 3월경에 작성된 「브레히트와 마르크스에 대하여」는 1968년 4월 1일 밀라노 연극론 강연용으로 준비된 것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발표되지 않고 대신 「빠올로 그라씨에게 보내는 편지(1968년 3월 6일자)」가 낭독된다.} [본문으로]
  2. {원문 표현은 “en regard des mécanismes de la nature et du théâtre”이다. 접속사 et의 위치가 잘못된 것으로 간주해 “en regard des mécanismes et de la nature du théâtre”로 보고 번안했다.} [본문으로]
  3. Louis Althusser, «Sur Brecht et Marx», op. cit., p. 546. {이종현 옮김,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두 번째, http://en-movement.net/20.} [본문으로]
  4. Jean-Jacques Rousseau, Lettre à D’Alembert, O.C. V, p. 38 et 39,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Gallimard, 1995. [본문으로]
  5. ibid. p. 120. [본문으로]
  6. Louis Althusser, «Sur Brecht et Marx», op. cit., p. 549. {이종현 옮김,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두 번째, http://en-movement.net/20.} 알튀세르가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관련해 이 거리내기(décalag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특정 유형의 연극이 생겨날 수 있게 하는 궁지로 이해하면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7. ibid. p. 550. {이종현 옮김,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두 번째, http://en-movement.net/20.} [본문으로]
  8. Louis Althusser, «Du côté de la philosophi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2, p. 262. [본문으로]
  9. Louis Althusser, «Sur Brecht et Marx», op. cit., p. 553. {이종현 옮김,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세 번째, http://en-movement.net/22.} [본문으로]
  10. 알튀세르는 역사주의를 뚜렷이 보여주는 브레히트의 몇몇 정식들, 특히 Petit organon pour le théâtre (L’Arche) {김기선 옮김, 「연극을 위한 소 지침서」, 『 서사극 이론』, 한마당, 1999}의 38, 39, 40번째 단락들에 대한 거부감을 자신의 독서 기록장에서 표하고 있다. 물론 동시에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의 다른 글들, 특히 Effets d’éloignement dans l’art du comédien chinois(L’Arche){이상면 편역, 「중국 연극예술의 소외효과에 대해」, 『브레히트와 동양연극』, 평민사, 2001}에서는 그와 같은 비판이 다소 완곡해져야 함을 인정한다. 브레히트적 이데올로기관도 때때로 논의 대상이 된다. 알튀세르는 브레히트가 이데올로기적인 것과 익숙해진 것을 혼동하고 단지 반향이라는 생각에 머무는 것 등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본문으로]
  11. Antoine Vitez, Le théâtre des idées, p. 118-119, Gallimard. [본문으로]
  12. 17세기 장밥티스트 상퉬(Santeul)로부터 유래한 전통적 표현 “Castigat ridendo mores”를 가리키는 표현. [본문으로]
  13. Louis Althusser, Pour Marx, p. 149.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59.} [본문으로]
  14. ibid., p. 151.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62.} 이런 점에서 알튀세르가 루소의 「연극에 관하여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를 반추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볼 수 있다. 루소의 편지에는 무대와 객석 간의 도착적 동질성에 대항하는 동일한 풍자, 즉 루소가 보기에 카타르시스라는 관념 자체를 낡은 것으로 만드는 동일한 풍자가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루소와 브레히트는 다른 많은 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상통하고 있다. 브레히트가 자신의 서사극을 비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으로 구상했음을 잊지 말자. [본문으로]
  15. ibid., p. 151.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62.} [본문으로]
  16. ibid., p. 151.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62.} [본문으로]
  17. ibid., p. 151.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62.} [본문으로]
  18. Louis Althusser, «Sur Brecht et Marx», op. cit., p. 555. {원문에는 쪽수가 553로 잘못 표기되었다.} {이종현 옮김,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 세 번째, http://en-movement.net/22.} [본문으로]
  19. ibid., p. 152.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63.} [본문으로]
  20. Louis Althusser, Lettre à Paolo Grassi, 6 mars 1968,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2, p. 535. {이찬선 옮김, 「빠올로 그라씨에게 보내는 편지(1968년 3월 6일자)」, http://en-movement.net/41} [본문으로]
  21. op. cit., p. 535. [본문으로]
  22. op. cit., p. 536. [본문으로]
  23. op. cit., p. 537. [본문으로]
  24. ibid. [본문으로]
  25. Jacques Lacan, Télévision, p. 10, Ed. du Seui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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