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과 공동체의 전복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번역: 연구공간L 이승준
이 고찰들은 “여성 문제”를 규정하고 분석하려는 시도이며, 여성문제를 “여자의 역할” 전체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여자의 역할은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우선 주부를 이러한 여자의 역할에서 중심인물로 위치시킨다. 우리는 모든 여성이 주부이며 심지어는 가정 밖에서 일하는 이들도 계속 주부라고 가정한다. 즉 세계적인 수준에서 한 여성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은, 그녀가 어디에 있든 어떤 계급에 속하든 노동시간량 및 노동의 본성으로 측정될 뿐만 아니라 또한 삶과 삶이 발생하는 관계의 질로 측정되는 가사노동에 특정한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노동계급 여성의 지위에 집중하지만, 이는 노동계급 여성들만이 착취당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글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계급 주부의 역할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수불가결하며, 다른 모든 여성들의 지위의 결정요인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성을 하나의 계층(caste)으로 보는 모든 분석은 노동계급 주부들이 지닌 지위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주부를 중심적인 것으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이전에 존재했던 가족 집단이나 공동체 유형들을 파괴함으로써 어떻게 근대적 가족과 그 가족 안에서의 주부의 역할을 만들었는지를 간략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파괴]과정은 결코 완료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록 서구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에 대해 말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또한 제3세계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한 그와 동일한 파괴의 과정이 제3세계에서 일어났음에 틀림없고, 또 일어나고 있는 중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되었다고 알려진 서구 나라들에서의 가족이 자본주의 하에서 취할 수 있는 가족의 최종 형태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경향들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러한 가족을 만들었으며, 또 오늘날 여성의 역할인 바의 것을 만들었는지를 각각 한 과정 안의 하나의 계기로 분석한 결과여야 한다.
우리는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의 지위 역시 분석함으로써 여자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고찰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이것은 차후에 할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는 단지 주부의 경험과 일하는 여성의 경험이라는 분명하게 분리된 두 가지 경험 사이의 연관을 지적하고자 한다.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여성들이 전개했던 매일 매일의 투쟁들은 공장 및 가정 조직과 직접적으로 부딪쳤다. 그 뒤로 가정 안팎에서 여성들의 “불신”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래서 시공간적으로 조직된 규율체제인 공장과, 노동력 재생산 조직인 사회적 공장과 직접적으로 부딪쳤다. 무단결근은 더 늘어나고, 근무일정은 더 무시되며, 직업이동은 더 잦아지는 이러한 경향은 젊은 남녀 노동자들 모두가 공유하는 바이다. 그러나 남성이 자신의 중대한 청년기에 새로운 가족의 생계만을 책임지는 데 반해, 대체로 이러한 방식에 한정되지 않고 항상 집안일에 대해 고민해야만 하는 여성들은 노동 규율로부터 훨씬 더 유리/이탈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생산적 흐름에 파열을 내고, 그에 따라 자본에게 더 높은 비용을 치르게 한다. (이것은 임금 차별을 위한 하나의 구실인데, 이 임금 차별로 자본은 자신의 손실을 수차례에 걸쳐 보상받는다.) 주부 집단이 일하는 남편들에게 아이를 떠맡길 때 그녀들은 바로 이러한 유리/이탈의 경향을 표현한다. 이러한 경향은 공장 체제 및 사회적 공장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결정적인 형태들 중 하나이며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이다.
* * * *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수많은 여성운동들이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여성운동은 사회의 근본 갈등이 남녀 간 갈등이라고 믿는 운동에서부터 여성의 지위가 계급 착취를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운동에 이르는 다양한 지향과 범위를 지니고 있다.
얼핏 보면 전자[남녀 간 갈등이 사회의 근본 갈등이라고 믿는 운동]의 위상 및 태도가 특히 이전에 정치 투쟁들에 전투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지닌 여성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생각에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성 착취를 기본적인 사회적 모순으로 보는 여성들이 우리 자신의 좌절의 정도—이 좌절을 수백만의 여성들은 운동 내외부에서 경험했다—를 가늠케 하는 극히 중요한 지표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레즈비언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우리가 언급하는 아래의 견해는 특히 미국의 여성 운동의 한 분파가 표현한 것이다.) “함께 했기에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남성과의 관계를 참을 수 없고, 남성과의 관계가 우리를 필연적으로 종속시켰던 권력 관계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우리의 여성 교제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는 바뀌었고, 우리의 힘은 확산되었으며 그 목표가 정해졌다.” 여성 동성애 운동은 이러한 거부로부터 발전했는데, 이 운동은 성별간 권력 투쟁에서 자유롭고, 생물학적인 사회 단위에서도 자유로운 어떤 관계의 가능성들을 주장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더 폭넓은 사회적 잠재력, 따라서 성적인 잠재력에 개방할 필요를 주장한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은 좌절을 표현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가족의 어떤 본성이 이러한 규모의 위기를 촉발시켰는지를 밝혀야만 한다. 우선 여성에 대한 억압은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것은 여성으로서 겪는 더욱 심한 여성착취였으며, 결국 여성해방의 가능성이었다.
자본주의 가족의 기원들
자본주의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과 가족은 농업생산과 장인(匠人) 생산의 중심이었다. 자본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생산의 사회화가 그 중심에 공장을 두고 조직되었다. 생산의 새로운 중심인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임금을 받았고, 배제된 사람은 임금을 받지 못했다. 여성, 어린아이, 노인은 사회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보였던 그들의 노동에 가족이 의존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상대적인 권력을 상실했다. 자본은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생산을 파괴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공장과 사무실에 기본적인 사회적 생산을 집중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본질상 남성을 가족으로부터 떼어내 임금 노동자로 전환시켰다. 자본은 여성, 어린이, 노인 그리고 병든 사람에 대한, 한 마디로 임금을 받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재정적 책임의 짐을 남성의 어깨에 지웠다. 그 순간부터 아이를 낳지 않고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가정에서 축출되기 시작했다. 남성 다음으로 가정에서 배제된 첫 번째 사람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즉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이제 가족은 생산적이기를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교육의 중심이기를 중단했다.
남성들이 엄격한 노동 분업에 기반한 가부장제 가족의 전제군주적 수장이었던 한에서, 여성의 경험, 어린이의 경험, 남성의 경험은 서로 모순되는 경험이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농노 공동체의 각 구성원들의 노동은 봉건 영주의 번영이거나 그게 아니면 그들의 생존이라는 목적을 향해 있는 듯 보였다. 이런 한에서 전체 농노 공동체는 여성, 어린이 그리고 남성이 동일한 정도로 연루된 부자유의 통일체 안에서 협력하도록 강제되었는데, 이것을 자본주의는 깨부숴야만 했다. 이 점에서 자유롭지 않은 개인, 부자유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농노제에서 자유로운 노동력으로의 이행은 남성 프롤레타리아트를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와 분리시켰고 양자 모두를 그들의 아이들과 분리시켰다. 자유롭지 못한 가부장은 “자유로운” 임금 소득자로 변형되었고, 성별 및 세대의 모순적인 경험 위에 더욱 심각한 소외가, 그리고 그에 따라 더욱 전복적인 관계가 세워졌다.
우리가 강조해야만 하는 것은 이러한 어른에게서 아이를 분리하는 일이 남성으로부터 여성의 분리가 지닌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며, 또한 여성운동의 투쟁 조직이, 비록 그것이 남성과 관계맺을 일체의 가능성을 격렬히 거부하는 형태를 띨지라도, 어째서 임금노동의 “자유”에 기초한 분리를 극복하는 것만을 목표로 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교육에서의 계급투쟁
최근 몇 년 동안 등장한 — 특히 학생운동의 등장과 더불어 — 학교에 대한 분석은 학교가 이데올로기적인 훈육의 중심지이자 노동력 및 노동력의 주인을 형성하는 중심지임을 분명히 밝혀왔다. 전혀 분석에서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리 심도 있게 분석되지 않은 것은 이 모든 것에 선행하는 것이 바로 무엇이냐는 것이다. 즉 그것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첫날에 자기들이 교실에 처넣어지고 그들의 부모가 갑자기 자기를 버리고 떠난다는 걸 알아차릴 때 흔히 느끼는 절망이다. 그러나 정확히 이 지점에서 학교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보게 되면 초등학교 어린이는 좀 더 나이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배운 “무상 점심, 무상 통학, 무상 교재”를 요구함으로써만 상급 학교 학생들과 연합될 수 있는 그런 부속물이 아니다. 노동자의 아들과 딸인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학교가 어떤 점에서는 그들을 부모에게 그리고 동년배들에게 등을 돌리게 만든다고 늘 인식하며, 그 결과 공부와 “교육받는” 일에 본능적 저항감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저항 때문에 영국에서는 흑인 아이들을 학습부진아 학교에 가둬놓는다. 흑인 노동계급의 아이처럼 유럽의 노동계급 아이는 선생님이 아이를 방어하기보다 계급을 공격하는 자로서,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의 엄마 아빠와 대립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본주의는 지배 계급이 조직 및 통제하는 제도들에서 피착취자의 자녀가 훈육되고 교육을 받는 첫 번째 생산 체제이다.
유치원에서 시작하는 이러한 낯선 주입이 가족의 분열에 기반한다는 것에 대한 마지막 증거는, 대학에 입학한 노동계급의 아이들(대학에 들어가는 이는 그 중 극소수다)이 너무 세뇌되어서 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공동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아이들은 학교 및 학교가 제공한 교육에 본능적으로 반항하는 첫 번째 사람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학교로 데려가 가둬둔다. 왜냐하면 부모는 그들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 즉 그들 부모들이 가둬진 일관 작업대나 부엌에서 벗어나려면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만일 한 노동계급의 자녀가 특별한 자질을 보이면, 가족 전체는 종종 남은 자녀들을 희생시키면서, 그리고 그 아이가 가족 모두를 노동계급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는 도박에 가까운 기대를 품으면서 즉각 이 아이에게 집중하고, 그에게 최상의 여건을 제공한다. 이는 사실상 자본이 부모들의 열망에 기대 신선한 노동력을 길러내는 데 부모가 조력하게 하는 방식이 된다.
이탈리아에서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데 점점 더 실패하고 있다.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은 이러한 저항이 아직 조직되지 않았을 때에도 항상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에서 교육받는 동안 아이들의 저항이 늘어나는 동시에, 자본이 그들의 나이에 내리는 규정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그들의 저항도 늘어난다. 아이들은 그들이 본 모든 것을 원한다. 즉 그들은 물건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에 돈을 내야하고, 돈을 내기 위해서는 임금을 받아야 하고, 따라서 또한 한 명의 성인이어야 한다는 점을 아직 이해하지는 못한다. 텔레비전이 아이들에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 것을 그들이 왜 가질 수 없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그들이 어른이 되는 임의의 시점을 설명하는 것을 계속해서 더 어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그들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어린 세대는 자신의 나이를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시위해 보이고 있다. 즉 1960년대에 이미 미국 남부에서는 6세 어린이들이 경찰견에 대항했다. 오늘날 우리는 남부 이탈리아와 북아일랜드에서 동일한 현상을 발견하는데, 거기에서 아이들은 어른만큼이나 반항에 적극적이었다. 아이들(그리고 여성들)이 역사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인정되면, 의심할 나위 없이 혁명 투쟁들에 매우 어린 사람들(그리고 여성들)이 참여한 다른 사례들이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직접적인 생산에서 그들이 배제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그로 인한 그들의 참여의 자율성이다. 공장들에서 청년들은 나이든 노동자의 지도를 거부하며, 도시 폭동에서는 청년들이 핵심이다. 대도시의 핵가족 세대들은 입헌 권력의 틀을 뒤흔드는 과정을 주도했던 청년 및 학생 운동을 만들어 냈다. 제 3세계에서 청년 실업자는 종종 노조로 조직된 노동계급보다 먼저 거리에 서 있다.
런던의 『타임즈』 1971년 6월 1일자 기사는 기록해 둘 만한데, 여기에는 어떤 교장이 한 학생을 체벌한 것을 문책한 것 때문에 소집된 교장 회합에 관한 소식이 실려 있다. “분란을 일으키고 무책임한 부류들이 모든 권위의 힘을 부식시키려는 짐짓 계획된 의도를 가지고 골목 어귀마다 숨어 있다.” 이것은 “우리의 문명을 세우게 하고, 또한 가장 훌륭한 요새들 중 일부가 우리의 학교들이게 해주는 가치들을 파괴하려는 음모이다.”
비임금자에 대한 착취
우리는 이 절에서는 특히 노동계급과 그 중에서도 흑인 아이들과 청년들 사이에서, 꾸준하게 퍼지고 있는 반란의 태도에 대해 몇 가지 평가를 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여성 운동의 폭발 및 여성운동 자체가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어떤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제되었던 이들의 반란, 생산체계에 의해 분리되었던 이들의 반란, 그리고 자신들의 사회적 실존을 방해하는 세력을 파괴할 필요를 행동으로 표현하지만 이번에는 개인들로 결집하는 이들의 반란을 다루고자 한다.
여성들과 아이들은 배제되어 왔다. 배제를 통한 착취에 반대하는 한 쪽의 반란은 다른 한 쪽의 반란의 지표이다.
자본이 남성을 충원하고 그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한, 자본은 남성과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들 간의 분열을 만들어냈다. 즉 임금을 받지 않는 이들은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에, 사회적 반란의 주체들이 될 수 없다고 간주된다.
맑스 이래로, 자본이 임금을 통해 지배하고 발전한다는 것, 즉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가 임금노동자이며 그/녀에 대한 직접적 착취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노동계급운동 조직들이 분명하게 밝히지도 않았고, 또한 가정하지도 않은 것은 바로 임금을 통해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착취가 조직되어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착취는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착취[당한다는 사실]를 숨기기 때문이다. 즉 임금은 공장의 단체협상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지배했다. 여성들이 관련되어 있는 노동은 자본 바깥에서 하는 개인적 서비스처럼 보인다. 여성은 남성의 맹목적인 성차별주의로 인해 고통받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으로만 보였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일반적인 “불의”와 “나쁘고 불합리한 행위”를 의미했으며, 이 점을 깨달은 소수(남성)는 이것이 착취가 아니라 “억압”이라고 우리에게 확신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압”은 자본주의 사회의 더 만연해있는 또 다른 측면을 감춘다. 자본이 아이들을 가정으로부터 몰아내 학교로 보내는 것은 단지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더 “생산적인” 노동을 방해하기 때문만도 아이들을 세뇌시키기 위해서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임금을 통한 자본의 지배는 모든 신체건장한 사람을 노동 분업의 법칙 하에서 기능하도록, 그리고 비록 직접 고용되진 않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본 지배의 팽창 및 확대에 유리한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강제한다. 바로 그것이 학교의 근본적인 의미이다. 아이들에 관련되어 있는 노동은, 아이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롤레타리아의 자녀는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도록 강제되었다. 이것은 무한한 학습의 가능성들과 대립하는 자본주의적 평준화이다. 다른 한편 여성은 숙련되지 않았다고 간주되는 노동, 즉 생산을 위해 노동자를 출산·양육·훈육·조력하는 노동을 수행하도록 강요된 채 가정에 고립되어 왔다. 사회적 생산의 순환에서 여성의 역할은 비가시적인 채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그녀의 노동의 산물인 노동자들만이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그녀 자신은 전자본주의적 노동 조건들 안에 갇혀 전혀 임금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전자본주의적인 노동 조건들”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단지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써야만 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가장 잘 갖춰진 미국의 주방도 현재의 기술 발전의 수준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 주방들은 기껏해야 19세기의 기술수준을 반영한다. 만일 당신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시간당 임금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신이 당신의 노동을 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염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노동과의 양적인 차이일 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이며, 그 차이는 바로 이러한 노동이 생산하리라고 예정된 상품의 종류로부터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 생산성은 자본과 노동계급의 대결이 존재하지 않는 한 증가하지 않는다. 즉 기술 혁신과 협업은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계기이자 동시에 자본주의적 반응의 계기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상품 생산 일반에 대한 사실이라면, 그것은 특정한 종류의 상품 생산인 노동력 생산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 기술 혁신이 필요노동의 한계를 더 낮출 수 있다고 해도, 또한 산업에서의 노동계급 투쟁이 자유 시간을 얻기 위해 그러한 혁신을 이용할 수 있다 해도, 주부에 대해서는 똑같이 말할 수 없다. 주부가 고립된 채 아이를 출산 및 양육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한, 집안 허드렛일의 고도의 기계화는 여성에게 어떠한 자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보살피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은 언제나 일한다. 그렇다면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의 높은 생산성은, 예를 들어 요리, 설거지, 청소와 같은 특정한 서비스와 관련될 수 있을 뿐이다. 여성의 노동일은 기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끝이 없다.
여자의 무능력이라는 신화를 공고화하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도래하자, 여성들은 가족 감방에 유폐된 고립의 처지, 모든 측면에서 남성에게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자유로운 임금 노예의 새로운 자율성이 그녀에게는 부정되며, 그녀는 인격적 의존이라는 전자본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번에는 현재를 지배하는 고도로 사회화된 대규모 생산과 대비되기 때문에 더욱 짐승처럼 다뤄진다. 특정한 일을 해내고, 특정한 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여성의 외관상의 무능력은 여성의 역사에 기원을 두는데, 이 역사는 어떤 점에서는 평균이하 특수 학급의 “학습 부진아”들의 역사와 매우 유사하다. 여성들이 직접적인 사회화된 생산에서 차단되고 가정에 고립되는 한, 이웃 외에는 사회생활의 모든 가능성이 여성들에게는 부정되며, 그에 따라 그들은 사회적 지식 및 사회적 교육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여성들이 집단적인 산업 투쟁 및 여타 대중 투쟁을 조직하고 계획하는 폭넓은 경험을 박탈당할 때, 그들은 사회적 반란의 경험이라는 교육의 기본적인 원천을 부정당한다. 이러한 경험은 일차적으로 당신 자신의 능력, 즉 당신의 힘과 당신이 속한 계급의 능력 및 힘을 배우는 경험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겪는 고립은 사회에 그리고 여성 스스로에게 여성의 무능력이라는 신화를 공고히 한다.
바로 이러한 신비가 감췄던 것이 있는데, 첫째, 노동계급이 공동체에서의 대중 투쟁들, 즉 임대료 파업(rent strike), 인플레이션에 반대하는 투쟁 등을 일반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을 정도로 거기에 끊임없는 비공식적인 여성조직이 그 토대로 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직접적인 생산 순환에서의 투쟁들에서 공식적·비공식적인 여성의 지지와 여성 조직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순간 이러한 끊임없는 여성네트워크는 바로 그 “무능한 여성”의 재능·에너지·강력함을 통해 부상하고 발전한다. 그러나 신화는 죽지 않는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 살아남으려고(실직 기간 동안) 또는 살아남아 승리하려고(파업 기간 동안) — 승리를 외칠 수 있었을 때 승리자의 전리품은 계급 “일반”에 속했다. 여성들이 자신들을 위해 특별히 뭔가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건 드문 일이었다. 투쟁이 가정의 권력구조와 그것이 공장과 맺는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바꿔보려는 목표를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드문 일이었다. 파업을 하던 실직을 하던 여성의 노동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자궁의 자본주의적 기능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한 명의 인격으로서 여성이 파괴된다는 것이 또한 그녀의 신체적 온전함(physical integrity)의 직접적인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에 앞서 이미 일련의 길들이기의 체제 및 형식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효과적인 출산 통제의 방법 역시 경험했는데, 이 방법은 뚜렷한 이유없이 사라졌다. 자본은 가족을 핵가족으로 정립했고,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노동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서의 여성을 핵가족 안에서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핵가족이 여성의 노동 활동의 창조성 및 발전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던 것처럼, 그것은 여성의 성적·심리적·정서적 자율성의 표현을 차단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두뇌에서 자궁에 이르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여성의 신체적 온전함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기차·자동차·비행기 생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은, 수세기 동안 부엌이라는 몇 평 안 되는 동일한 공간에 고립된 채 똑같은 빗자루를 쓰는 것과 동일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비행기를 만드는 데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남성의 역사와 여성의 역사 사이의 차이가 실제적인 투쟁형식의 차이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토록 오랫동안 비가시적으로 있었던 것을, 즉 여성 투쟁들이 과거에 취했던 상이한 형태들을 마침내 드러내 준다고 가정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도둑맞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으로 변형된 자신들의 성 생활을 도둑맞았다. 즉 우리가 가사 서비스의 기술적 수준에 대해 했던 동일한 고찰들이 출산 통제(그에 덧붙여 산부인과의 전 영역)에 적용되며, 출산 통제에 관한 연구는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무시되어 왔다. 그러는 동안 여성들은 아이를 가지도록 강제당하고, 또 가장 원시적인 출산 통제기술들이 실패했을 때 예상되어지는 낙태를 할 권리를 금지당했다.
자본은 여성의 이러한 전적인 위축으로부터 여자의 역할을 구축했고, 가족 안에서의 남성을 이 축소의 도구로 만들었다. 임금 노동자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남성은 여성들에 대한 착취인 이 특유한 착취의 특유한 도구였다.
노동 분업의 동성애
이 점에서 우리는 남녀 간의 타락한 관계가, 사회가 여성을 객체로 즉 남성의 “보완물”로 종속시키면서 남녀에게 부과했던 그러한 균열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결정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는 여성운동 내의 경향들, 즉 여성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남성 일반에 맞서는 쪽으로 끌고 가길 원하며, 더 이상 자신들의 힘을 남성과의 성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쓰기를 바라지 않는 경향들의 폭발적 증가를 타당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적 관계 각각은 늘 여성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권력 관계는 애정 및 친밀감의 어떠한 가능성도 방해한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서 권력은 자신의 권리로 성적인 애정 및 친밀감을 명령한다. 이러한 점에서, 동성애 운동은 섹슈얼리티와 권력을 떼어놓는 가장 대중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성애는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틀 자체에 뿌리박고 있다. 즉 서로가 하루 종일 분리된 채 가정에는 여성들이, 공장과 사무실에는 남성들이 있는 곳, 그게 아니면 전형적인 공장처럼 1,000명의 여성과 10명의 감독관 남성을 둔 곳, 또는 50명의 전문직 남성을 위해 일하는 타이핑 직원(물론 여성들)이 있는 곳 말이다. 이 모든 상황들은 이미 동성애적인 생활 틀이다.
자본이 이성애를 하나의 종교로 끌어올리는 반면, 그와 동시에 실제로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서로 접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자본은 성적·경제적· 사회적 훈육을 제외한 이성애의 토대를 허물어 버린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출발해야 할 현실이다. 동성애 경향들의 폭발적 증가는 운동에게 있어 중요했고, 또 지금도 중요하다. 바로 그 경향들이 여성투쟁의 특수성을 스스로 선언하고 무엇보다도 여성착취의 모든 양상들 및 전후관계를 아주 상세하게 밝힐 긴급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