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읻다출판사에서 마리나 츠베타예바 시선집 『끝의 시』가 출간되었습니다. '위트앤시니컬x읻다' 연속행사의 일환으로 6월 5일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츠베타예바의 삶과 시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서 읽었던 원고를 2회에 걸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의 차례가 오리라!
오늘은 6월 5일이고 내일은 6월 6일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날 두 가지를 기념합니다. 하나는 ‘러시아어의 아버지’, ‘러시아시의 태양’으로 칭송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생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기념하여 2010년에 유엔이 제정한 ‘러시아어의 날’입니다. 푸시킨의 생일과 러시아어의 날을 앞두고 러시아 시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갖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이 자리는 ‘특강’이라기보다는 ‘작가 소개’ 또는 ‘책 소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제가 츠베타예바의 시들을 우리말로 옮겼지만 제 전공은 츠베타예바의 친구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를 쓴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서정시입니다. 그래서 츠베타예바에 대해 ‘특강’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힘닿는 데까지 모으고 읽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츠베타예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가급적이면 시선집의 역자후기에는 없는 내용들, 또는 역자후기에는 있지만 더 자세하게 펼쳐내야 하는 내용들을 다루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쇼스타코비치가 츠베타예바의 시 여섯 편에 붙인 가곡들 중 첫 번째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선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시로 1913년 콕테벨에서 쓴 시입니다. 콕테벨은 크림반도 남동부에 있는 바닷가 마을입니다. 더불어 마그다 나흐만이 역시 1913년 콕테벨에서 그린 츠베타예바의 초상화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츠베타예바가 살아있을 때 그린 유일한 초상화입니다.
< 마리나 츠베타예바> 마그다 나흐만 作 (콕테벨,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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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оим стихам, написанным так рано,
Что и не знала я, что я - поэт,
Сорвавшимся, как брызги из фонтана,
Как искры из ракет,
Ворвавшися, как маленькие черти,
В святилище, где сон и фимиам,
Моим стихам о юности и смерти,
-Нечитанным стихам!
Разбросанным в пыли по магазинам,
Где их никто не брал и не берет,
Моим стихам, как драгоценным винам,
Настанет свой черед.
Коктебель, 13 мая 1913
***
어려서 쓴 나의 시들아,
내가-시인인 줄도 모르고 쓴 시들아,
분수대의 물방울처럼 뛰쳐나와
로켓의 불꽃이 된 시들아,
조그만 새끼 악마들처럼, 꿈과 향이 있는
성소에 쳐들어가버린,
청춘과 죽음에 대한 나의 시들아,
-읽히지 못한 시들아!
아무도 고르지 않고,
가게마다 먼지를 뒤집어쓴
나의 시들아, 귀한 포도주 같은
나의 시들아, 너희의 차례가 오리라.
1913년 5월 13일, 콕테벨
이 시를 시선집의 첫 번째 시로 배치해보았는데요,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츠베타예바가 외치는 것처럼 그녀의 시들의 ‘차례’가 오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차례’가 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의 ‘차례’가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몇 가지 장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츠베타예바라는 장벽
첫 번째 장벽은 그녀가 프랑스도, 독일도, 영국도 아닌 ‘러시아’의 시인이라는 점입니다. 1917년에 찍은 그녀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러시아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우선 러시아 사람의 이름이 매우 어렵습니다.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라는 이름은 아주 낯섭니다. 러시아 문학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긴 이름에서 이바노브나는 부칭이라고 하는 것인데 아버지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딸일 경우에는 아버지의 이름에 ‘-오브나’ 또는 ‘-예브나’를 붙이고 아들일 경우에는 ‘-오비치’ 또는 ‘-예비치’를 붙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의 이름에서 독특한 또 한 가지는 ‘성(姓)’인데요, 남자일 경우에는 성의 어미가 자음으로 끝나고, 여자일 경우에는 모음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의 아버지는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츠베타예프’입니다. 그는 오늘날 모스크바의 국립푸시킨조형예술박물관의 전신인 알렉산드르3세조형예술박물관의 설립자이자 관장이었습니다.
1917년의 마리나 츠베타예바. 그리고 이름과 성의 이니셜을 적은 서명 'МЦ'
이런 식의 이름 체계는 사실 서구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을 때 고꾸라지는 지점은 독특한 이름 체계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는 유럽일까요, 아시아일까요? 유럽 플러스 아시아를 뜻하는 편리한 단어 ‘유라시아’가 있지만 이것도 사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닙니다. 1920-30년대 러시아 망명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유라시아주의(евразийство)’라는 것이 유행했는데요, 이들은 러시아 문명은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속하지 않는다며 러시아의 독특성을 강조했습니다. 2001년에는 러시아 주도로 ‘유라시아 경제공동체’라는 것이 결성되어서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처럼 맥락에 따라 ‘유라시아’라는 말이 다양한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기에 우리는 섣불리 러시아를 가리켜 ‘유라시아’라는 말로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러시아 연방 전체를 유럽과 아시아로 구분하는 한 가지 편리한 방법이 있긴 합니다. 18세기 초반에 러시아의 지리학자 바실리 타티셰프는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유럽 러시아, 동쪽은 시베리아 및 아시아 러시아라고 구분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스크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를 하다가 잠시 한국에 돌아왔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입국금지가 내려져 돌아가지 못한 모스크바는 일명 ‘유럽 러시아’에 속합니다. 그리운 모스크바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유럽 러시아’인 모스크바에 오시는 한국 여행객들을 만나고 도와드릴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분들께서 러시아에 대해 보이시는 독특한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모스크바에 여행 오시는 분들 대부분은 유럽 전역을 여행하시고 더 이상 가실 곳이 없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둘째, 그러다보니 그분들께서는 러시아의 모든 것을 유럽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평가하십니다. 또는, 서구권에서 한국으로 들여온 선진문물과 러시아의 모든 것을 비교하십니다. 감히 뭉뚱그려보자면 역시 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러시아는 유럽에 속하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유럽, 옥시덴탈리즘의 관점에서 평가되는 이등 유럽입니다. 둘째,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내린 서구식 사고와 문화 때문에 호사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동구권, 특히 소련 붕괴 이후에는 ‘오리엔트’에 있는 우리가 우리보다 더 ‘오리엔트’스럽다고 여기는 동구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바로 역(逆)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되는 ‘동구권’입니다.
1896년 민영환 외 5인은 고종의 특명을 받아 모스크바에 도착해 니콜라이 황제의 대관식을 참관하고 페테르부르크에 머물다가 시베리아를 거쳐 귀국했다고 합니다. 이때, 사절단 중 한 명이었던 윤치호, 미국에서 유학했던 윤치호는 모스크바에 대해서 영어로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건축과 의복에는 아시아적인, 따라서 그로테스크한 것이 많다.”[각주:1]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있는 저도 사실 이러한 시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등 유럽으로서의 러시아, 역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되는 러시아라는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920-40년대 한국 문학계에서는 ‘시베리아의 향수’가 하나의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지리산 항쟁 후 체포된 좌익 시인 유진오는 감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시베리아가 그립다!” 그런데 그는 시베리아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주인공 최석은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고 합니다. “눈 덮인 시베리아의 인적 없는 삼림 지대로 한정 없이 헤매다가 기운 진하는 곳에서 이 모습을 마치고 싶소.” 최석 역시 시베리아에 가보지 않았습니다.[각주:2]
이처럼 극도로 낭만화된 러시아의 표상은 한국전쟁 이후 적국이 된 소련에 대한 공포의 감정, 일명 ‘공로(恐露)’ 의식과 병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 문학에는 심오한 정신성이 있다라던가, 역시 문학은 러시아 문학이라던가 하는 말들이 낭만화된 러시아, 유럽의 이성적, 자본주의적 문화로는 포섭되지 않는 ‘정신의 러시아’라는 표상에 속한다면, 불곰국 또는 스탈린의 나라라는 말들은 우리와는 다른 ‘야만의 러시아’라는 표상에 속합니다. 우리가 츠베타예바의 시를 읽을 때에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양극단의 표상들이 배음(倍音)으로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츠베타예바의 시선집을 엮고 번역하면서 저는 이 책이 어떻게 하면 ‘야만의 러시아’로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신의 러시아’라는 클리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장벽이 츠베타예바를 ‘러시아’의 시인으로 규정하면서 생기는 곤란함이라면, 두 번째 장벽은 츠베타예바의 생애(生厓)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벼랑, 낭떠러지, 끄트머리를 뜻하는 ‘애’자로 한자를 바꾸어 보았습니다. 역자후기에 자세히 설명하였지만 츠베타예바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혁명이 일어나 남편이 백군에 가담하는 바람에 온갖 고초를 겪고, 체코, 프랑스 등 유럽을 떠돌며 평생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가까스로 모스크바에 돌아왔지만 남편과 딸이 정치범 혐의를 받아 체포되었고 마침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피난 갔던 옐라부가에서 목을 매 자살한 뒤에도 그녀가 어디에 묻혔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1941년 8월 31일에 죽은 그녀는 9월 2일에 옐라부가에 있는 페트로파블롭스코예 공동묘지 돌벽 근처에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1960년이 되어서야 동생인 시인 아나스타시야 츠베타예바가 “1941년에 묻힌 이름 없는 무덤 네 개 중에 한 곳”을 가리켰고 “공동묘지의 이쪽에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가 묻혔다(В этой стороне кладбища похоронена Марина Ивановна Цветаева)”라는 문구가 적힌 십자가를 세웠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츠베타예바의 묘지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이 공동묘지에는 ‘마트베예바 버전’, ‘추르바노바 버전’ 등 그녀의 지인들이 주장하는 두 개의 무덤이 더 있다고 합니다.
소련은 기념비를 무척 좋아하는 나라였습니다. 유명 작가, 예술가, 정치인의 동상, 심지어 이 집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다는 현판이 모스크바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츠베타예바의 무덤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에서 소련 공식문학계가 츠베타예바를 꽤 차갑게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소련 당국이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서 제한조치를 완화했던 해빙기에는 츠베타예바의 책들이 사후 출간된 바 있습니다. 1961년에는 국영예술문학출판사에서 『선집』(Цветаева М.И. Избранное. М.: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художественной литературы, 1961)이, 1965년에는 <시인 도서관> 시리즈에서 보다 더 많은 작품을 수록한 『선집』(Цветаева М.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Библиотека поэта. Большая серия. М.: 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 1965)이 출간되었습니다.[각주:3]그밖에 공간(公刊)되지 않은 작품들은 소련의 젊은 문인들 사이에서 몰래 수고본으로 돌았던 모양입니다. 프랑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러시아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트 리모노프의 삶에 대해서 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1960년대 이야기입니다. “저녁 때 철제 셔터가 내려지고 나면 서점에서 술이 돌면서 시끌벅적한 난상 토론이 벌어지고, 사미즈다트(직역하면 ’자가 출판‘이라는 뜻)로 불리는 금서의 불법 복사본들도 서로 교환해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복사본을 수중에 넣은 사람이 몇 부를 더 복사해 주변에 또 돌리는 식으로 불가코프, 만델시탐, 아흐마토바, 츠베타예바, 필냐크, 플라토노프 등 당시 소비에틑 문단에서 활동하던 현역 작가들 대부분의 작품이 유통되었다.”[각주:4]이후 1970-80년대에는 츠베타예바의 시가 영화 사운드트랙에 활용되기도 했지만 이 시기에 그녀의 시집은 소련 내에서는 출간되지 못하고 서구에서 '타미즈다트'(해외에서 출간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사미즈다트(самиздат)'의 '삼(сам)'은 '스스로'를 뜻하고, '타미즈다트(тамиздат)'의 '탐(там)'은 '저곳, 그곳'을 뜻합니다)로 가끔 출간되었을 뿐입니다.그러나 그녀가 독특한 가치를 지닌 시인이라는 점은 소련 대중들에게도 인식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소련 병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소년들』에는 다음 구절이 나옵니다. “다른 아가씨는 웨이트리스였어요.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는 아이였지만 츠베타예바를 좋아 했어요. 교대근무를 마치고 오면 앉아서 카드점을 치곤 했죠.”[각주:5]그리고 소련이 붕괴하기 일 년 전인 1990년에는<시인 도서관> 시리즈에서 그녀의 시를 시집 별로 묶어서 『시와 포에마』를 내는데 이 판본은 65년판 선집을 보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침내1994-1995년에는 일곱 권짜리 전집이 나옵니다.
수전 손탁이 런던에서 출간된 츠베타예바의 산문집 영역본에 「시인의 산문(A Poet’s Prose)」이라는 서문을 썼던 것이 1983년이었습니다. 츠베타예바에 대한 깊이 있는 평론이 80년대 초반에 등장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구에서는 츠베타예바가 그보다 더 일찍이 주목 받았던 모양입니다.아무래도릴케와 서신을 주고받은 덕분이겠지요. 그 영향인지우리나라의 1960년대 잡지들에도 츠베타예바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잡지 『월간세대』 1963년 6월 창간호에는 파트리샤 블래이크의 글 「소련 지성의 저항」이 번역되어 실리는데, 여기서 츠베타예바는 소련의 젊은 시인들의 ‘마스타’로 여겨집니다. “작가들은 그들의 과거와의 연계를 맺기 위하여―그들이 이미 진절미 내던 19세기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학적 역사가 구속된 바로 그 시점인 과거와의―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파스테르나크의 방법으로(또는 안나 아카마토파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정당히 그들의 것인 마스타에게로 즉 블록, 츠베타예바, 흘레브니코프, 맨델슈탐 및 산문에 있어서 바벨 및 올레샤에게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각주:6]또, 그 유명한 잡지 『사상계』 1966년 5월호에 번역되어 실린 레오폴드 라베츠의 글 「이것이 모스크바의 재판이다」에서 저자는 “오직 내가 心通할 수 있는 작가들에게만 몰두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츠베타예바, 만델슈탐, 파스테르나크에 대해서 썼다.”[각주:7]당시 우리나라 독자들은 츠베타예바의 시를 접하지는 못했더라도 외국 필자들의 말을 통해서 츠베타예바가 러시아 문학의 ‘마스타’라는 것,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 있는 작가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츠베타예바 수용사에 대한 저의 조사는 결코 완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색다를 것 없는 두 문장이 한국에서 츠베타예바라는 장벽을 넘는 시발점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파스테르나크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 '장벽을 넘어'를 가져와 츠베타예바 수용사를 설명하는 슬라이드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1994년 고려원에서는 이득재 선생님께서 옮기신 ‘마리나 쓰베따예바’의 『오래 된 모스끄바의 작은 집들』이 출간되었고, 2004년에는 석영중 선생님께서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에 츠베타예바의 시를 다수 포함시키셨습니다. 그밖에도 다수의 러시아 시선집에는 츠베타예바의 시가 빠지지 않고 수록되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심지어 2015년에는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초상>이라는 연극도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츠베타예바 역은 서이숙 배우께서 연기하셨구요. 정말이지 츠베타예바의 시들의 ‘차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시는 일기다”: 츠베타예바의 내밀한 서정시들
이제 본격적으로 츠베타예바의 시들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선집에서 제사, 즉 에피그라프 격인 첫 번째 시를 읽고 나면 두 번째 시 「나쁜 변명」이 나옵니다. 아마 그 유치함과 사사로움에 크게 실망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시는 영어권의 선집들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장 유치하고 사사로운 이 시를 꼭 넣고 싶었습니다. 츠베타예바의 초기 서정시들이 지니는 내밀함, 즉 “나의 시는 일기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내밀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자후기에도 썼듯 츠베타예바는 첫 번째 시집 『저녁 앨범』에 시의 수준을 따지지 않고 그동안 썼던 거의 모든 시들을 수록했습니다. 그리고 시집 전체는 개인의 일기를 출판해 유명세를 떨쳤던 화가 마리야 바시키르체바에게 바쳤습니다. 츠베타예바뿐만 아니라 발레리 브류소프,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 조르주 바타유, 버나드 쇼 등은 그녀의 일기를 읽고 환호했다고 합니다. 츠베타예바가 자신의 사소한 모든 것을 시에 적으려고 하는 까닭을 우리는 바시키르체바가 자신의 일기에 붙이는 서문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나의 상자들을 헤집을 테고, 그러면 이 일기를 발견할 것이다. 나의 가족은 내 일기를 읽고서는 없앨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남긴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나를 언제나 무섭게 했다! 삶을 살고, 공명심도 가져보고, 고통스러워하고 울면서 싸우다가 결국에는―망각되는 것... 마치 결코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이 망각되는 것...[각주:8]
인간의 유한성에서 비롯된 무와 망각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일상의 생각과 사건들을 모두 적으려는 욕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시는 일기처럼 매 순간 삶의 기록이 됩니다. 츠베타예바의 초기 시들에서 나타난 사사로움은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츠베타예바에게는 이러한 내밀함을 표현하는 아주 독특한 방식이 있습니다. 이 방식은 시선집 23쪽에 수록된 시 “나는 마음에 들어요...”에서 잘 드러납니다. 우선 이 시로 만든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러시아에서 매년 12월 31일 저녁이면 제1채널에서 틀어주는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였던 노래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가수 알라 푸가쵸바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요, 푸가쵸바는 우리나라에서 심수봉 씨가 번안해서 부른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을 불렀던 가수입니다.
***
Мне нравится, что Вы больны не мной,
Мне нравится, что я больна не Вами,
Что никогда тяжелый шар земной
Не уплывет под нашими ногами.
Мне нравится, что можно быть смешной—
Распущенной—и не играть словами,
И не краснеть удушливой волной,
Слегка соприкоснувшись рукавами.
Мне нравится еще, что Вы при мне
Спокойно обнимаете другую,
Не прочите мне в адовом огне
Гореть за то, что я не Вас целую.
Что имя нежное мое, мой нежный, не
Упоминаете ни днем ни ночью—всуе…
Что никогда в церковной тишине
Не пропоют над нами: аллилуйя!
Спасибо Вам и сердцем и рукой
За то, что Вы меня—не зная сами!—
Так любите: за мой ночной покой,
За редкость встреч закатными часами,
За наши не-гулянья под луной,
За солнце не у нас над головами,
За то, что Вы больны—увы!—не мной,
За то, что я больна—увы!—не Вами.
3 мая 1915
***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나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나도 당신 때문에 아픈 건 아니니,
무거운 지구는 결코
우리의 발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니.
마음에 들어요, 우스운 여자가 될 수 있으니까 —
문란한 여자 말이에요 — 이젠 말장난을 안 해도,
숨 막히는 파도에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니까,
소매를 살짝 스쳤다고 해서.
정말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를 껴안는 것이,
내가 당신에게 입맞춤하지 않는다 해서
당신이 나를 지옥의 불길로 보내지 않을 테니까.
나의 부드러운 이름을, 내 사랑, 당신이
낮이고 밤이고 읊조리지 않아도 되니까 — 헛되이…
조용한 교회에서 우리를 위해
노래 부르지 않아도 되니까: 할렐루야!
심장에 한 손을 얹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신이 나를 — 자기도 모르게! —
그토록 사랑해주시어: 나의 이 밤의 평온 그리고,
해 지는 시간에 만나는 일 줄어들 테니,
달빛 아래 우리가 산책하지 — 않아도 됨이,
태양은 우리의 머리 위로 빛나지 않을 테니,
당신이 아픈 게 — 아! — 나 때문이 아니라니,
내가 아픈 게 — 아! — 당신 때문이 아니라니.
1915년 5월 3일
여주인공이 아주 매력적으로 그리고 사랑스럽게 부르는 이 시에는 몇 가지 언어적 트릭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정어의 사용이 시의 의미에 독특한 각을 냅니다. 시의 첫 두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나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이, / 마음에 들어요, 나도 당신 때문에 아픈 건 아니니”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직역을 해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아프다는 것이, 그런데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 마음에 들어요, 내가 아프다는 것이, 그런데 그게 당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이별을 한 뒤에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이 서로 안부를 물을 때, 둘은 서로 때문에 아프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할 겁니다. 그렇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나 때문에 아프지 않아 한다는 것이 / 마음에 들어요, 나도 당신 때문에 아프지 않으니” 즉 서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애써 드러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츠베타예바의 시에서 화자는 일단 “나는 아프다”라고 합니다. 러시아어 문장도 한국어처럼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데요, 화자는 “나는 아픈데, 그게 너 때문은 아니야”라고 덧붙입니다.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는커녕 “난 아파, 그런데 김칫국 마시지마, 그게 너 때문은 아니야”라고 쏘아붙이는 겁니다. 반어적으로 읽는다면, “난 아파, 사실은 너 때문에 말이야”라고 말하는 걸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죽어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표현하는 것이지요.
제가 “태양은 우리의 머리 위로 빛나지 않을 테니”라고 한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직역해서 풀어보면 “태양이 있어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 태양은 우리의 머리 위에는 없습니다.”가 됩니다. 화자는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언제나 조건이 붙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우리는 이 고마운 모든 것과 상관없다’입니다. 그러나 사실 고마움에는 조건이 붙기 어렵습니다. “선물 받은 말은 이빨을 들여다보지 않는다(Дареному коню в зубы не смотрят)”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습니다. 보통 말이 건강한지 확인할 때 이빨을 살펴본다고 하는데요, 이 속담은 어떤 선물이든 토 달지 말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츠베타예바의 이 시는 속담의 지혜를 거스르며 ‘고마움’에 끊임없이 토를 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잘 읽힐 것 같은 시의 의미 구조에 모서리를 만들어 냅니다.
또, 부정어를 활용해 신조어도 만듭니다. 25쪽에 “달빛 아래 우리가 산책하지-않아도 됨이”라는 구절에서 “우리가 산책하지-않아도 됨”(наши не-гулянья)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우리의 非-산책들이”, 또는 “우리의 산책-아닌 것들”이 되고, 영어로 직역하면 “our no-walks”가 됩니다. 이 신조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산책을 제외한 일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화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달빛아래 나는 당신과 산책하지 않고 있어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당신과 산책하던 달빛아래’는 오히려 ‘당신과 산책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고 애써 어색하게 집어넣은 부정어는 오히려 연인과 산책하던 과거를 도드라지게 만듭니다. 사실 “달빛 아래”라는 표현은 “산책”이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서로 어울릴 법한 두 단어 사이에 부정어를 넣음으로써 자연스러운 의미 구성에 파열을 내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골치 아픈 말놀이에서 벗어나 사랑이 넘치는 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에 곡을 붙여 영화 <잔혹한 로망스>의 사운드트랙으로 만든 걸 들어보시죠. 나누어드린 자료의 1쪽에 있는 번역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2
Под лаской плюшевого пледа
Вчерашний вызываю сон.
Что это было?―Чья победа?
Кто побежден?
Всё передумываю снова,
Всем перемучиваюсь вновь.
В том, для чего не знаю слова,
Была ль любовь?
Кто был охотник?―Кто―добыча?
Всё дьявольски-наоборот!
Что понял, длительно мурлыча,
Сибирский кот?
В том поединке своеволий
Кто, в чьей руке был только мяч?
Чье сердце―Ваше ли, мое ли
Летело вскачь?
И все-таки―что ж это было?
Чего так хочется и жаль?
Так и не знаю: победила ль?
Побеждена ль?
23 октября 1914
2
보풀거리는 융단의 애무를 받으며
어제의 꿈을 불러내본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누가 이긴 걸까?
누가 진 걸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본다,
처음인양 모든 것에 괴로워해 본다,
뭐라 이름붙일 지 모르는 그것에
사랑이 있었던 걸까?
사냥꾼은 누구일까?―사냥감은―또 누구?
지독히도-뒤집힌 모든 것!
느릿느릿 가르랑거리는 시베리아의 수고양이야,
너는 뭘 좀 알겠니?
아무도 지지 않으려는 결투에서
도대체 누가 공을 거머쥐었나요?
누구의 심장이―당신, 아니면 나의
심장이 온힘을 다해 날아간 건가요?
도대체 이게 다 뭘까?
무엇을 그리도 원하고 안타까워할까?
가장 알 수 없는 건: 내가 이긴 건지?
내가 진 건지?
1914년 10월 23일
이 작품은 세르게이 에프론과 결혼한 츠베타예바가 유부녀 신분으로 뜨겁게 사귀었던 시인 소피야 파르노크에게 바치는 시 17편을 묶은 연작 「여자친구」 중 두 번째 시입니다. 파르노크는 당시에도 이미 스스로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사포’로 유명한 파르노크의 시 두 편의 번역은 큐큐에서 나온 LGBT 세계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에 수록되었습니다. 츠베타예바와 파르노크의 연애는 당시 모스크바의 문단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 제목의 역사가 재미있습니다. 파르노크와 1914년부터 연애했던 츠베타예바는 1916년 결국 남편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19-1920년 “젊은 시절에 쓴 시들”이라는 선집을 준비하면서 파르노크에게 바쳤던 열일곱 편의 시들을 묶어 ‘실수’라고 이름붙입니다. 마치 파르노크와 연애했던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이 제목이 자신의 내밀한 삶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너무 직설적이라고 느꼈는지 보다 중립적인 제목으로 바꿉니다.[각주:9]그렇게 새로 붙인 이름이 ‘여자친구’입니다. 여기서도 츠베타예바의 초기 시가 얼마나 내밀함에 집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수’라는 제목이 젊은 시인이 저지른 사랑의 불장난을 뜻한다면, ‘여자친구’는 애인이었던 파르노크를 단지 우정을 나눈 친구로 확정짓습니다.
소피야 파르노크(С.Я. Парнок,1885-1933)
내밀함에 대한 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들은 1920년대에도 이어집니다. 시선집의 초반부를 읽을 때 느끼는 츠베타예바의 이미지, 즉 사랑하고 이별하며 울부짖는 여자의 이미지가 당대에도 널리 퍼져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츠베타예바의 이별시는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1925년 하리코프(현재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의 출판사 <코스모스>에서는 『곤두선 파르나스』라는 제목의 작은 책이 출판됩니다. 에스테르 파페르나야, 알렉산드르 로젠베르크, 알렉산드르 핀켈이 당시에 유명했던 시인들의 시를 숫염소와 개, 그리고 도시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 ‘베베를레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패러디한 시들을 모은 책입니다. 파르나스는 그리스에 있는 산으로 신화에서 아폴론과 뮤즈 여신들이 살고 있는 산, 즉 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산입니다. 이 책에서 알렉산드르 핀켈은 숫염소를 주인공으로 해서 츠베타예바의 시를 패러디했습니다. 숫염소는 러시아 문화에서 바람둥이 남자, 못 돼먹은 남자를 가리킵니다. 핀켈의 시를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
Вчера лишь нежила козла ―
Слиянье черного и белого,
А нынче я уж не мила ―
“Мой козлик, 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Вчера еще в ногах лежал,
Взаимно на него глядела я,
А нынче в лес он убежал ―
“Мой козлик, 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И серым волком в злом бору
Похищенное, похищенное,
Ты, счастие мое, ни тпру,
Ни ну ― сожратое, сожрённое.
И только ножки да рога,
Вот ―ножки да рога успела я
Прибрать от зверского врага ―
“Мой козлик, что тебе я седалала?”
Как жить теперь ― в сухом огне?
Как в степь уйти заледенелую?
Вот что ты, козлик, сделал мне!
“Мой козлик, 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1924 г.
***
어제의 나는 숫염소를 기쁘게 해주어 —
검은 것과 흰 것이 서로 물들고 있었는데,
오늘의 나는 예쁘지 않네 —
“나의 작은 염소야,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어제만 해도 그가 내 다리에 누워,
나도 그를 바라보았는데,
오늘의 그는 숲으로 도망쳤네 —
“나의 작은 염소야,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사악한 숲에서 회색 늑대에게
덥석 붙잡힌, 목덜미를 붙잡힌,
너, 나의 행복, 꼼짝도 못한 채,
우걱우걱 잡아먹힌 나의 행복.
앙상한 다리와 뿔만 남은 너,
내가 이렇게—사나운 적이 남긴
다리와 뿔을 간신히 추려왔어 —
“나의 작은 염소야,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바싹바싹 마르는 불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평원으로 어떻게 떠나야 할까?
그래 작은 염소야, 네가 나한테 한 짓이야!
“나의 작은 염소야,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1924년
『곤두선 파르나스』(하리코프, 1925)
츠베타예바의 시적 특징이 느껴지시는지요? 그 다음에는 핀켈이 패러디하는 츠베타예바의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
Вчера еще в глаза глядел,
А нынче―всё косится в сторону!
Вчера еще до птиц сидел,―
Все жаворонки нынче―вороны!
Я глупая, а ты умен,
Живой, а я остолбенелая.
О вопль женщин всех времен:
“Мой милый, 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И слезы ей―вода, и кровь―
Вода,―в крови, в слезах умылася!
Не мать, а мачеха―Любовь:
Не ждите ни суда, ни милости.
Увозят милых корабли,
Уводит их дорога белая...
И стон стоит вдоль всей земли:
“Мой милый, 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Вчера еще―в ногах лежал!
Равнял с Китайскою Державою!
Враз обе рученьки разжал,―
Жизнь выпала―копейкой ржавою!
Детоубийцей на суду
Стою―немилая, несмелая.
Я и в аду тебе скажу:
“Мой милый, 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Спрошу я стул, спрошу кровать:
“За что, за что терплю и бедствую?”
“Отцеловал―колесовать:
Другую целовать”,―ответствуют.
Жить приучил в само́м огне,
Сам бросил―в степь заледенелую!
Вот что ты, милый, сделал мне!
Мой милый, что́ тебе―ясделалал?
Всё ведаю―не прекословь!
Вновь зрячая―уж не любовница!
Где отступается Любовь,
Там подступает Смерть-садовница.
Само―что́ дерево трясти!―
В срок яблоко спадает спелое...
―За всё, за всё меня прости,
Мой милый,―что тебе я сделала!
14 июня 1920
***
어제만 해도 눈을 바라봐 주었는데,
오늘은 다른 쪽으로 눈을 흘기네!
어제만 해도 새가 울 때까지 있어주었는데,—
종달새들은 오늘—까마귀가 되었네!
나는 바보고, 너는 똑똑하고,
너는 생기가 넘치고, 나는 기둥처럼 굳었고.
오 모든 시대 모든 여자들의 절규:
“내 사랑,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그녀에게 눈물은—물, 피도—
물,—핏물에, 눈물에 얼굴을 씻었다!
엄마가 아니라 새엄마야—사랑이란:
심판도, 자비도 기다리지 마세요.
배들이 내 사랑을 태워간다,
하얀 길이 내 사랑을 데려간다...
신음소리가 대지 위에 서 있다:
“내 사랑,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어제만 해도—내 다리에 누웠는데!
나보고 만리장성같다 했는데!
작은 두 손을 뿌리치니,—
삶이 툭 떨어졌어—녹슨 코페이카처럼!
법정에 선, 아이 죽인 여자처럼
못생기고 겁 많은—내가 서 있다.
지옥에서도 말할 거야:
“내 사랑,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의자에게도 묻고, 침대에게도 물어야지:
“어째서 나는 견디며 아파해야 하니?”
“키스도 안 해주다니—바퀴에 묶어 찢어 죽이겠네:
다른 여자에게 키스하겠네,”—의자와 침대의 대답.
타오르는 불 속에 살라 하고
얼어붙은 평원에 내버린 사람!
그래 내 사랑, 네가 나한테 한 짓이야!
내 사랑, 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다 알고 있어—말대꾸하지 마!
두 눈을 뜬 나는—더 이상 애인이 아니야!
사랑이 물러나는 곳에
정원사-죽음이 슬그머니 들어선다.
어쩌자고—나무를 흔드니!—
때가 되면 사과가 떨어질 텐데...
—이 모든 것, 제발 용서해줘,
내 사랑,—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니!
1920년 6월 14일
저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츠베타예바가 1920년에 쓴 시 “어제만 해도 눈을 바라봐 주었는데...”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시입니다. 우선 「끝의 시」에 나올 이별 모티프를 예비하고 있습니다. 또, 뒤에서 두 번째 연에 나오는 ‘정원사-죽음’의 형상은 시선집 267쪽에 있는 「고아에게 부치는 시 7」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나중에 직접 두 시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이별 모티프가 ‘끝’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끝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진영, 『시베리아의 향수. 근대 한국과 러시아 문학, 1896-1946』, 이숲, 2017, 37쪽 [본문으로]
행사에서 이 원고를 읽을 때는 츠베타예바의 선집이 이미 1961, 1965년 두 번에 걸쳐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해서 1990년에 출간된 선집을 최초의 선집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성실히 조사하지 못한 탓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행사에 참석했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본문으로]
Дневник Марии Башкирцевой. СПб., 1894. С. 5-6. цит. по: Шевеленко И. Литературный путь Цветаевой: идеология, идентичность автора в контексте эпохи. М.: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2015. С. 26. [본문으로]
Швейцер В. Быт и бытие Марины Цветаевой. SYNTAXIS, 1988. С. 12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