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는 2022년 4월 28일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 주최의 "학술커먼즈의 역사와 경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1. 통로: 고정희로부터 <또 하나의 문화>까지
1991년 6월 9일 지리산에서 생을 마감한 고정희 시인의 유고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을 엮어 낸 사람은 조형이며 편집인은 사회학자 조옥라이다. 예외적이게도 고정희 시인의 마지막 모습은 조옥라, 조(한)혜정, 김은실 등의 사회학자들에 의해 씌어졌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에는 1984~1991년이라는 기간 동안 가까운 친구들에게 시인이 보낸 편지가 정리되어 있는데, 편집자인 중의 하나였던 조형은 편집의 글에서 “문학 세계와 실천 운동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편지 중에서 일부를 골라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형이 언급하고 있는 편지는 고정희가 <또 하나의 문화>라는 동인지 그룹의 창단멤버이자 주요 동인으로 활동했던 시기인 1984~1991년 동안에 작성된 것이다. 이와 같이 <또 하나의 문화> 측에서 선별해 낸 시간성은 고정희를 80년대 여성운동사에서 두 개의 장면 위에 동시에 위치시킬 수 있다. 하나는 <또 하나의 문화>라는 여성문화운동의 장이며, 다른 하나는 여성해방문학이라는 장에서 고정희의 자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 취할 수 있는 정보는 <또 하나의 문화>는 문화운동 또는 여성해방문학의 장(場)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이해를 통해 시인 고정희를 통해 <또 하나의 문화>로 다가가는 하나의 통로가 열리게 한다.
<또 하나의 문화>제3호는 “여성 해방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졌는데, 책을 여는 권두시로 고정희의 「우리 봇물을 트자」라는 작품이 배치되어 있다.
(……) 우리 서로 봇물을 트자 할머니의 노동을 어루만지고 어머니의 보습을 씻어 주던 차랑차랑한 봇물을 이제 트자 (중략) 오랫동안 홀로 꿈꾸던 벗이여 그대 홀로 꿈길을 맴돌던 봇물, 스스로 넘치는 봇물을 터서 제멋대로 치솟은 장벽을 허물고 제멋대로 들어앉은 빙산을 넘어가자 오천년 이땅을 좀먹는 암벽, 억압의 암반에 굴착기를 내리고 사랑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캄캄한 수맥에 빛을 내리자 (……)
대표적인 ‘행사시’의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성 해방의 문학”이라는 제3호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할머니와 어머니로 불리는 이전 세대의 노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들이 의지했던 보의 물을 터트려 홀로 꿈꾸던 벗과 홀로 꿈길을 맴돌던 ‘그대’에게로 나아가 종내는 캄캄한 땅 속까지 길을 내어보자고 제안한다. 과거부터 여기까지 또는 미래로 가는 길로 물줄기가 뻗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연대’와 ‘공존’의 가치를 지향하는 ‘우리 서로 봇물을 트자’라는 제언은 당시 <또 하나의 문화>를 비롯한 1980년대 여성주의운동 전체를 아우르려는 의미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보’라는 구획된 공간의 한정성을 터트려 유기적으로 연결되자는 ‘봇물’의 의미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여성의 과거의 시간성으로부터 현재로 연결시키는 통로가 열린다고 할 수 있을까?
1980년대는 한국 여성운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1983년의 <여성평우회>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여성운동단체들이 설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1984년도에 출간한 <또 하나의 문화>도 하나의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고정희의 유고집을 출판한 주체가 <또 하나의 문화>였다거나, 또는 “여성 해방의 문학”이라는 제호를 가진 3집을 출간했다고 해도 <또 하나의 문화>라는 동인지는 단연코 문학주의 동인지라고 볼 수 없다. 이 장면은 시인 고정희와 <또 하나의 문화>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장면일 뿐, <또 하나의 문화>는 이름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문화’ 운동을 지향했던 동인 모임인 것이다. 이를테면 <여성 평우회>는 빈민지역의 여성과 아동을 조사하고 철거 지역의 철거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의 빈민 운동을 기반으로 한 여성노동자 운동을 조직했다. 여성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때에는 여성의 불평등 구조를 밝히고 제3세계 여성들의 노동현실을 정리한 『제3세계 여성노동』을 출간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각주:1] 이런 점에서 <여성 평우회>는 여성노동자 주체의 빈곤과 노동조건을 바꾸려는 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화>의 첫 번째 제호는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로 <또 하나의 문화>가 호명하는 주체는 “부모”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영선은 <또 하나의 문화>를 비롯한 1980년대 여성운동을 “여성 주체 기획과 주부운동론”으로 정리한 바 있다. [각주:2]그리고 더 나아간 정리 중에서는 <또 하나의 문화>가 ‘비정치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990년대 영 페미니즘 운동의 산파 노릇을 했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각주:3]이런 점에서 <또 하나의 문화>는 1980년대의 성인 여성의 대다수가 포함되는 ‘주부’, ‘어머니’라는 대중을 대상으로 여성주의 대안문화와 지식의 생산지였다는 이해가 가능하다.
1980년대는 80년도의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 항쟁에 대한 기억 속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뜨거운 정치적인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88올림픽이라는 ‘메가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는 점에서 “혁명 공간이 만들어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줬다”는 식의 발전 서사도 공존될 수 있다. [각주:4]또 다른 측면인 사회학에서도 흥미로운 발돋움의 시기로 기억될 수 있는데 여성주의운동의 활발한 도약과 더불어 ‘여성 더하기’ 식의 사회학이 아닌 ‘여성학 개념’을 이용한 여성 경험을 가시화한 시기가 1980년대라는 것이다. [각주:5]이러한 이유로 정치적, 문화적, 사회학적으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1980년대 연구는 ‘대중’으로서의 ‘여성’인 ‘주부’에 대한 주체화 기획을 통해 대안사회를 만들려는 <또 하나의 문화>를 여성주의적 지식운동의 산물인 ‘지식커먼즈’ 형성 과정의 한 줄기로 이해해보려고 한다.
2. 슬로건: 대안적 문화를 만들고 실천해 가는 동인들의 모임
<또 하나의 문화>는 1984년도 제1호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로 시작하여 2003년 제17호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를 마지막으로 간행되었다. 제1호부터 제17호까지 일관된 슬로건이 제시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또 하나의 문화」는 인간적 삶의 양식을 담은 대안적 문화를 만들고 이를 실천해 가는 동인들의 모임입니다. 이 모임은 남녀가 진정한 벗으로 협력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특히 하나의 대안 문화를 사회에 심음으로써 유연한 사회 체계를 향한 변화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화>라는 이름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건 ‘대안 문화’가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그들의 진단이다. “유연한 사회 체계를 향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사회 체계 자체가 꽤나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대안’ 사회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간적 삶의 양식”을 실천해나가려는 그들이 문제시하고 있는 경직된 문화와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간 문화의 목적은 어디로 정향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를 지식커먼즈라고 이름할 수 있는가?
연구자가 도출한 연구의 결과물은 거의 대부분이 논문이나 단행본으로 제출되기 위해 작성된다. 만약 한 연구자가 논문을 작성한다고 하자. 그의 창작물이 논문이 되려면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차원에서 축적된 연구사(史)라는 토대를 전제로 수행될 때에만 독창적이고 개별적인 논문으로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연구란 “언제나 복수의 주체들이 관여한다”고 설명된다.[각주:6] 과거 연구에 대한 검토 없이 ‘새로움’의 조건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은 공공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는가? 연구자가 만들어 낸 지식은 복수의 주체들과 함께 함으로써 지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 과정은 학제라는 제도를 통해 보장될 수 있지만 배타적인 지식재산권으로 출원하는 성격의 지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식커먼즈’로 이해될 수 있다. “커먼즈는 우리가 공유하는 재화만이 아니라 새로운 집합적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지식커먼즈는 (……) 지식 생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꾸리고 살아가는 일이다. (……) 즉 문제는 지식 생산을 중심으로 우리가 얼마나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가이다. 그러므로 공유해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다”[각주:7]라는 입장은 <또 하나의 문화>가 1980년대의 주체로 불러내는 ‘여성’과 ‘주부’를 통해서 지식만이 아닌 대안적인 문화와 삶을 펼쳐나가는 과정을 해석하는 데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식커먼즈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인간적 삶의 양식”을 실천해나가고 대안 문화를 통해 여성 주체를 둘러싼 새로운 앎을 생산하는 <또 하나의 문화>를 읽어보려 한다. 제1호를 펴내면서 진행된 좌담은 <또 하나의 문화>를 새롭게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들의 발간 취지와 문제의식 그리고 제1호의 구성에 대한 내용으로 간략할 수 있다. 우선, “또 하나의 문화”의 의미를 규정하는데, 대담에 참여한 동인 장필화는 “기존문화가 가지고 있는 보수성, 즉 사회 구성원에게 기존문화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보수성과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획일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또 하나의 문화’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기존 문화에 대항하는 여러 개의 문화 중에서도 ‘다른 문화’나 ‘대안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의식은 점차 퍼져서 지배문화가 될 수도 있고, 부분문화도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지배적인 상징체계에 대한 대안적 상징체계”인 ‘반문화’를 ‘다른 문화’에 포함시키면서, 지배적인 상징체계란 “가부장제나 남녀불평등”이라고 말한다. 대담에 참여한 동인 대부분이 여기에 동의하면서 ‘反’의 슬로건을 가지되 극단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의미는 지배체제가 그러하듯 ‘바꾸려고 강요한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지배 문화에 대한 비판자가 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세대가 맡는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또 하나의 문화>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조은: 지금까지는 사회과학의 논리로 너무 구조적인 변화만을 강조하고 일상생활의 구체적 변화를 간과한 측면이 있었어요. 구조와 개인, 제도와 생활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특히 여성운동은 일상적이고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운동의 차원에서 무시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사실은 일상적인 변화, 삶의 양식의 변화가 궁극적인 목표 아니에요?
조옥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녀관계의 변화가 제도의 변화만으로 해결될 일시적인 것은 아니지요.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면서 일상적인 것이니까 아주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좌파 여성운동에서 시작되었던 <여성 평우회>나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던 맑스주의페미니즘 계열의 <여성>지와는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좌담이라 할 수 있다.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구조적 변화를 강조해왔던 이제까지의 경향은 구조 속에 있는 개인 그리고 제도 안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과학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의 면을 비판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점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장필화: 기존의 남녀관계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이분법에 따라 규정되어 왔지요. 공적 영역은 공식적이고 제도적이며 사회 변화를 주관하는 중심적 활동이 전개되는 부분으로서 남성의 영역이라고 인정되어 온 반면, 사적 영역은 가정을 위시한 비공식적 영역으로서 여성의 영역으로 인정되어 왔잖아요? 남녀관계가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인 공사영역의 이분법이 재검토되어야 할 것 같아요.
조혜정: (중략) 산업화되면서 공적 영역은 급격히 확대되고 따라서 사회는 인간성이 무시되기 쉬운 공적 영역 우선주의, 예를 들어 경제발전 우선주의 등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됩니다. 한편 공적 영역이 거대조직화 되고 경쟁이 치열한 곳이 될수록 사적 영역은 공적 영역으로부터 유일하게 인간성이 보장되는 ‘피난처’로 등장하게 되며 사수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인지되지요. 이때 여성은 그 사적 보루를 지키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적 영역은 그리고 그 영역을 지켜온 여성들은 변동을 주도하는 공적 영역에서 점차 유리되고 보수성의 온상으로, 수동적 시민으로 남게 됩니다.
공사영역의 분리는 여성을 사회진출로부터 배제시키며 여성과 남성을 불평등하게 위치시키고 남성가장모델형 임금체계를 유지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가정에 여성을 위치시키고 사적인 영역에 있는 비공식적 영역에만 있음으로 해서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시민으로 만든다는 것이 동인들이 생각하는 '공사영역 분리'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인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 제도와 상호 의존적인 개인의 영역에 있는 문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도 중요한 문제이다.
조형: (중략) 오랫동안 가정의 영역에 머물던 여성이 사회적 영역에 처음 들어갈 때는 자기 모델이 없어요. 이런 때에 여성들이 나타내는 행동상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남장을 한다든지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든지 하는 등으로 남성적인 기준에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상에 따라서 완전히 여성답게 행동하는 경우이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모두 형식에 있어서는 남성적이에요(웃음)
조혜정: 이 문제에 있어서는 시대적 특수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겁니다. 선배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게,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었거든요. 그만큼 상황이 어려웠던 거죠. ‘여성과 조직’ 즉 기업체나 정부조직 등에서 활약하는 미국 여성에 관한 연구결과에서 밝혀진 사실인데요, 공적 영역에 진출한 여성들은 자기 업무 외에 모성적 역할을 하든가, 그 조직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든가, 성적 대상물이 되든가, 철의 여인이 되든가 이 네 가지 유형 중 어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역할 기대에 맞추어야 했다고 합니다.
조형: ‘철의 여인’이라기보다 명예남자지요.(웃음)
여성이 공적영역으로 진출할 때 자신에 앞선 세대가 없기 때문에, 그 전례가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모델’이 없는 상태는 이들이 중요하게 지적하는 공사영역 분리의 부정적인 작용이다. 공적인 장에서 여성은 남성을 따라하는 ‘명예 남성’의 꼴이 될 수 있으므로 이들이 앞에서 비판했던 경직된 문화와 바꿔야할 문화를 스스로 반복해서 생산하는 꼴이 된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적영역에서의 여성 ‘주체’의 등장이며, 제도와 개인의 대립 속에서 해결되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바람직한 ‘주체’ 또는 ‘모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 이들이 보기에 여성이 공적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적영역에 들어간다고 해도 공사영역이 구분되어 있다면 여성은 공과 사를 모두 책임지는 이중의 역할을 다 수행해야 한다. 변화는 제도만이 아니라 문화의 내용까지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
장필화: (중략) 가정과 사회가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기 위한 제시와 욕구, 이건 다시 말해서 이제까지 공적 영역을 접한 남성들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지요. 아버지의 역할 변화가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조혜정: 그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성이 사회의 영역으로 들어갈 떄, 그리고 그 사회적 영역을 변화시켜 나갈 때, 남성은 그래서 비워진 가정내의 영역을 메꾸고 가정의 영역에 변화를 가져와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여성은 여전히 두 영역에서 이중의 역할을 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회변화는 불가능합니다.
동인들의 대화에 전제된 여성 모델은 기혼자 여성을 포함한 것이다. 이로써 윤곽이 잡히는 <또 하나의 문화>의 여성 ‘주체’의 상은 기혼자 여성이며, 공적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또는 그것을 준비하는 세대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율성에 따라서 움직이는 자유로운 개인이 이 여성의 모델 속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문화>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주축으로 ‘기혼 여성’이라는 주체를 호명하고 이들이 만드는 ‘가족’을 포함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자 한다. 여성의 ‘모델’과 남성의 역할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양성성’이다.
맑스주의 이론을 전유한 페미니즘이 겨냥하여 비판하는 것은 가부장제적 가족을 전제한 남성가장형(남성부양자/여성의존자) 임금체계이다. 남성가장의 노동에 포함된 여성의 재생산노동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것이 맑스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이다. 한편, 자유로운 개인이 공적영역에서 언제든 노동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듯한 동인들의 주장은 임금체계보다는 문화적이고 의식적인 차원에서 양성성을 갖춘 ‘모델’을 가질 때 문제가 해결된다는 해법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문화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동인들 대부분이 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의 사회학을 전공한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대안의 제시는 무지의 소산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이 주 독자층으로 삼은 대상은 기혼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대안 문화로서의 가족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전략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가족이라는 삶의 형식을 해체하지 않고, 개인의 의식을 바꿔본다면 문화까지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이들의 계산은 또 하나의 전제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그 의도가 이해될 것이다.
조혜정: 현재 어떤 행동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음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목표가 새로운 제도를 이루어갈 사람, 평등주의적인 사람을 키워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자도 포함해서죠. 예를 들어 평등한 의식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교과서를 쓸 사람,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 사람, 그 외 정치가, 법관, 교사 등 평등사상에 근거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전문적 영역에서 능력을 살려 갈 사람을 키우는 것 말입니다.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사람들이 모아지고 커야 합니다. 현재는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인이 대부분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안 문화’를 창조하자는 의제를 제시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젊은 세대’를 이끌어가려는 의지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운동의 대상: 모순을 느끼고 있는 젊은 세대”라는 소주제를 통해서도 그 의지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전제하는 것에는 문화를 바꾸는 이들이 키워나갈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제1호의 제목이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은 가족문화를 주요 운동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에 대한 공동의 지식을 구축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공사영역 구분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 점에서 검토되고 있지만 반복되어 비판되는 것은 “사회와 유리되고 가정만을 지키는 여성들의 남편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녀에 대한 집착이 불가피”[각주:8]해서 오히려 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 속에서의 여성 모델을 구축하면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양쪽에 출몰할 수 있는 ‘양성성’은 1970년대 샌드라 벰이 구축한 심리학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정진경은 「미래를 향한 열린 어린이의 삶: 양성성」이라는 글에서 벰의 주요 업적 중에서도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두 가지의 성의 특성이 공존할 수 있고 균형의 정도는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한다. 바람직한 남성적 특성이나 여성적 특성이 혼합된 상태라고 생각하여 ‘이상형으로 설정’하기보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것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앞으로 어린이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 사회는 생산체계가 거의 자동화되어 있어 신체적 힘에 의한 노동이 필요없고 창의적 생활의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시각을 소개하고 그의 낙관론에 따라 전통적 성역할 규범은 필요하지 않고 공사영역의 구분도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이 제1호의 좌담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① “또 하나의 문화”는 “다른 문화” 또는 “대안 문화”를 의미하며 기존의 보수적인 가부장제나 남녀불평등에서 대한 “반 문화”를 지향한다. ②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제도와 개인의 변화가 모두 수반되어야 하며 그 변화는 공사영역의 분리를 거부하는 데에서 발견된다. ③ 공사영역을 구분을 넘어서서 여성의 공적활동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④ 양성성의 개발은 공사영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⑤ 양성성은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을 위해 필요하다.
부부와 자녀를 모델로 둔 핵가족모델을 지켜내고, 이 모델 속에서 문화를 변화시킬 주체를 기대하는 이들의 기획은 문화와 개인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문화’에만 기대를 걸었다고 평가하며 한계를 긋기에는 성급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제1호에서는 아시아 여성 단위의 여성 연구 및 행동 연결망을 다루는 글 「ARWAN(아시아 여성 연구 및 행동 연결망)의 지상논단」을 소개하며 아시아 여성 운동의 현황을 공유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가정 속에서의 여성 개인을 통한 문화 변혁에 시선을 가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2호에서는 1983년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된 이경숙씨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청구했는데, 서울민사지법 합의 15부는 25세를 여성의 정년으로 보고, 26세는 퇴직 연령으로 계산하였고, 26~55세까지는 일용도시여성근로자 일당임금 4천원으로 인정하여 배상금액을 판결한 경우가 소개된다. [각주:9] 이 사건에 대하여 <여성 평우회>는 “결혼퇴직제를 정당화시킨 사법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25세 여성 조기정년제 철폐를 위한 여성단체 연합회 결성 및 활동”을 통해서 3차의 공개 토론회가 진행되었는데, 3차에 걸친 연속토론회는 <여성의 전화>, <여성 평우회>, <또 하나의 문화>가 맡아 진행하였다. <또 하나의 문화>가 진행한 토론회에서는 “가사노동의 본질과 여성운동적 차원에서의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 결과 “25세 여성조기정년체 철폐하라!”는 결의문이 채택되었고, 여성단체가 결합하여 여성문제를 해결한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단지 문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담론을 형성했다는 정도로 <또 하나의 문화>의 ‘지식커먼즈’라는 ‘집합적 주체 형성기’를 설명할 수 없게 한다.
또한 <또 하나의 문화>는 제1호에서 제17호를 제작하는 과정은 편집 동인의 기획과 필자 섭외 등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 하나의 집회”라고 부를 수 있는 공동 작업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완성된 매호의 제작 과정에는 동인들이 ‘소모임’을 만들고 소집단의 의견을 수렴하여 동인들을 공동체로 묶는 전체모임을 갖기도 했다.
동인모임의 짜임새와 구체적 활동 1) 특집 중심의 무크지를 연1회 펴낸다. 2) 필요에 따라 총회가 열리나 대개의 활동은 소집단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3) 조직의 차원에서 개인, 소집단의 의견을 수렴하고 동인들을 한 공동체로 묶는 주요기제로 전체모임 그리고 소집단 모임 외에 동인회보를 펴낸다. 회보는 원고가 모여지는 대로 수시로 출간되는데 내용은 무엇인건 동인들이 서로 나누고 싶은 것이면 된다. 4) 소집단활동과 전체 모임의 융합, 출판물편집을 위한 기구로서 무크지 편집부, 동인회보 편집부, 소집단 활동기획부와 재정부를 둔다. 5) 재정은 동인회비로 운영한다. 입회비는 10,000원, 연회비 5,000원이다. (학생은 1/2) 한편 책 인쇄와 특별지원으로 기금을 마련한다. [각주:10]
이 글의 시작에서 소개했던 고정희 시인의 작업인 「한국 여성문학의 흐름」은 ‘여성문학’에 대한 최초의 역사화 시킨 결과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 작업은 “우영미, 강석경, 천양희, 송우혜, 이성애, 김방옥, 고정희 등이 참여한 문학인 모임의 공동연구라는 과정 속에서 생산된 글”[각주:11]로 볼 수 있다. 대안적인 공동의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은 저자 한 사람으로부터 생산될 수도 있지만 고정희의 그것처럼 공동의 작업을 통해서 그 결과물로 나타났다는 점은 <또 하나의 문화>가 대안 문화라는 것을 직접 만드는 주체를 만드는 동시에 그 주체가 되고자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더 이상 ‘정상 가족’은 없다, 여성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2003년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또 하나의 문화> 제17호의 제목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인데, 글의 첫 장에 해당하는 “다시 비전을 세우며”는 “더 이상 ‘정상 가족’은 없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1984년도에는 가정 안에서 주부 여성 주체를 생산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문화>는 가족의 존재를 의문시하며 핏줄주의를 넘어서는 동시대적 현상을 받아들이자는 제안을 한다. 이제 여성주의 문화운동에서 ‘가족’은 필수 항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혼란한 이 시대에 ‘민족주의는 반역’이듯이 ‘가족주의는 야만’이고, 이 둘의 핵을 이루는 ‘핏줄주의’는 저주를 낳고 있”다고 하며, “부부는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가족과 동거 제도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창간 동인인 조형·박혜란·조한혜정은 ‘탈근대’ ‘포스트’ 시대의 여성주의가 품어야 하는 가족이라는 공간성은 이제 ‘식구’나 ‘주거 공동체’로 바뀔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고, 국가에 ‘보살핌’을 떠넘기는 국가 사회주의도 아니다. 국가와 자본이 ‘위로부터의 정치’를 통해 가족을 만들어 왔다면 이제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통해 국가와 자본을 바꾸어 가야 한다. 기업이나 국가 기구가 아니라 개개인의 욕망에 바탕을 둔 주거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시민적, 자발적 보살핌의 체제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거대한 조직과 수직적 권력의 원리로 움직이는 조직은 서서히 마비되어 간다. 절대 권력/폭력을 가진 ‘조직 지배적 제국’에서 생기 있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절감하기 시작했다. (……) 지금까지 갖고 공간이 거대한 권력을 향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여자들이 동원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공간이었다면, 앞으로 우리가 만들 다양한 ‘살림’의 공간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자신의 꿈을 따라 만들어 보는 열린 공간일 것이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피로 물든 ‘근대 기획’을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감각과 몸을 만들고, 다양한 집을 짓고, 사회의 판을 짤 아지트들을 마련할 것이다. [각주:12]
20년 전에 ‘대안 문화’를 창조하는 것으로 <또 하나의 문화>를 이룩해보자고 했던 동인들의 문화를 통한 변혁의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그 대안에 전제되었던 ‘가족’이나 ‘조직’이라는 틀의 변형이 필요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정상 가족이 탈구된 자리에 가족에 대한 상상은 2003년이 되면 게이 가족 이야기로도 소개될 수 있다. ‘기러기 아빠’의 자살 기사를 소개하면서, 서동진은 자신의 게이 가족을 나란히 놓으며 대학에서 ‘가족 사회학 수업’에서 내놓을 만한 소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 사회학이란 가족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는 것으로 “우리가 가족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우연한 것인지 드러내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각주:13]는다고 소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실 가족이라는 것이 사회적 실체란 없음을 증명하는 계기로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동진은 자신이 자신의 게이 가족 이야기를 써나가는 방식은 이미 대표적인 이야기 장르인 근대 사회의 가족 서사를 통해서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주체, 다른 화법, 다른 행동으로 말해질 수 있었던 관계는 모두 ‘가족’이라는 서사에 갇혀서 두 남성의 관계가 ‘아내’의 역할과 ‘남편’의 역할과 같은 그것을 재생산하거나 모방하는 방식으로 말해지도록 조정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히스테리로 만들어진 집’이 된다.
대안 문화로 가족 안의 개인으로서의 ‘여성’ 주체를 만들려고 했던 기획은 이제 ‘정상 가족’의 해체를 통해 다른 서사의 틀로 또는 다른 에이전트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서동진의 글이 자리한 곳에 있다. 2003년 <또 하나의 문화>를 창간한 주역들이 모여 “세 번째 프로젝트”라는 꼭지를 마련한다. 1984년 30~40대였던 그들이 2003년에는 오십대가 되어 자신들이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고백하고 다만 ‘정상 가족’으로만 살지 않았음을 알린다. 조형은 결혼한 지 12년이 지나고, 이혼도 아닌 별거의 상태로 살아온 기억을 써내려 간다. 이제 우리는 노년을 준비하는 시기에 있고, 그 노년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의도일 것이다.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꺼내며 삶의 원형은 ‘독거’라며,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린다. 조옥라는 비혼주의자로 살다가 사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에게는 사별한 아내에게서 낳은 자식들이 있고, 그들의 어머니가 아닌 새엄마라는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정상 가족’이 아닌 어떤 가족의 성장기를 적는다. 한림화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하는 의미로 함께 사는 남자와 낳은 아이에게 부모 성 함께 쓰도록 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신의 이름이 어떤 점에서 정치적인 가를 알게 하는 과정 속에서 ‘정상 가족’의 테두리 바깥의 ‘가족’ 또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2006년에 권고되기 직전에 여성주의 운동에서는 ‘정상 가족’의 불가능성이 이미 이야기되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3년 <또 하나의 문화>의 기획을 보면, 여성을 대중 주체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정상 가족’에서의 ‘주부’라는 역할은 변형되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또 하나의 문화>가 시작한 지식 커먼즈의 운동은 가족 속에서의 ‘주부’라는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그 가족과 주부의 모델이 해체되는 통로에 들어간 것이다.
조한혜정: 기존의 가족 개념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이나 문제는 없었나요?
이상화: 우리 집은 세대주가 세 명이고 동거인이 한 명으로 되어 있어요. 한번은 우리 집 큰 아이인 우주가 큰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했어요.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보호자가 될 수 없어서, 우주의 동생을 불러와야 했어요.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법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지요. 밖에서 정상 가족이니 비정상 가족이니 이야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제도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럴 때 어렵지요. [각주:14]
이상화: 나는 가족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공간임을 강조하고 싶어요. 한번 구성된 가족은 누군가가 나갔거나 죽을 경우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지요. 우리 언니는 사십대 초반에 남편이 죽고 혼자 자식 둘을 기르고 살았는데 자식들이 결혼하면 자식이랑 같이 안 산다고 선언했어요. 언니가 우리가 늙으면 우리끼리 함께 같이 살자고 제의해서 나도 좋다고 했어요. (……) 아주 많이 늙은 다음에도 혼자서 잘 하는 사람은 혼자 살겠지만, 혼자 살기보다 다른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에게 가족의 재구성은 친구나 자매일 가능성이 높지요. [각주:15]
분명 ‘가족’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보호자’가 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점에서 법과 제도는 혈연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상화의 발언과 같이 가족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정상 가족’이라고 불리는 남성 가장과 여성 양육자에 의해 만들어진 가정의 자녀는 결국 그 가정을 이탈하는 과정을 겪도록 생애 주기는 짜인 것이다. 그 생애 주기를 통해서 새로운 ‘정상 가족’이 생길 거라는 기대가 사라지는 시대가 동인들이 50대가 된 2003년의 장면이다. 동인들이 <또 하나의 문화>를 창간한 시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여성주의적 담론은 ‘가족’ 속에서의 ‘주부’이자 ‘직업인’의 모델이고 그들이 안착할 수 있는 ‘대안 문화’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동의와 공감 속에서 2003년은 이제 ‘다른 관계 맺기’가 요구되는데 이는 다시 동인들의 생애 주기와 관련된다. [각주:16] 동시에 2000년대 초반이래 저출산 현상은 가족위기론을 유발하였다. 가족의 생명이 다했다는 주장은 동인들의 생애 주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인 한편, 2000년대 초반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과도 연장선상에 있었다. 따라서지식 커먼즈로서 <또 하나의 문화>는 저출산 상황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가족이 아닌 가족에 대한 공적 담론을 제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의 커먼즈는 여성 모델에 대한 “지식 생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꾸리고 살아가는 일”로 가족 이야기를 새로 쓴다.
4. 나가면서
글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대상은 고정희 시인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정희를 <또 하나의 문화>로 이어주는 통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시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고정희 시인이 어떻게 여성해방문학의 관점에서 여성문학사를 작성할 수 있었는지 호기심이 일었기에 <또 하나의 문화>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그렇게(통로라고) 썼다. 그러다 덕분에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여성해방운동이 민주화운동과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지만 다시 하나로 통일되거나 동일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민중운동이자 대중운동인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자신의 줄기를 찾아낸 여성해방운동은 ‘주체’에 대한 기획이 필요했다.
다시 고정희로 시선을 돌려본다. 민중의 시인이자 여성해방문학을 써나갔던 고정희는 <또 하나의 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고정희의 사유가 여성주의와 아시아 여성의 인권문제로 확장되는 1980년대에 <또 하나의 문화>가 있었다. ‘중산층’의 ‘여성주의’ 또는 ‘엘리티시즘’이라고 비판 받기도 하는 이 동인지가 사실은 ‘문화 운동’으로서 공동 작업을 통해 여성에 대한 지식을 형성했고, 그런 공동적인 것의 기획을 통해서 고정희라는 스펙트럼이 넓은 시인이 등장할 수도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고정희는 <여성신문>의 창립 주간을 맡기도 했다) 비록 1991년 고정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와 같이 대안 문화기획의 측면에서 여성해방운동을 만들어갔던 세대는, 또 그 지식의 주요 대상이었던 ‘가족’을 해체하는 지적 여성에 동참했다. 가족의 해체는 수사적인 측면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2000년대 이후로 출산율이 전세계에서 최하로 떨어진 국가가 되면서, 그리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상상력과 실천이 요구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문화>는 인정해야만 했다. 더 이상은 ‘정상 가족’을 구성하거나 비판하는 방식을 통해서 여성주의적 ‘주체’를 생산하고 그 지식을 축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필자는 최근에 고정희를 2020년대의 사람으로 연장해 생각할 만한 이야기를 마주하기도 했다. 내가 소속한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는 ‘하자센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동료 S가 있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자센터’의 프로그램에는 고정희 생가로 가서 글쓰기를 하고, 고정희 시인의 옛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S와 같은 ‘하자센터’ 출신에는 이길보라와 이슬아 작가도 있었는데, 이길보라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고글리(=‘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만나 글도 쓰고 문화 작업도 하는 이들의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에 덧붙여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이 시인이 나의 비빌 언덕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시로 나는 또문을 만나고 대안 교육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삶을 함께 뚜벅뚜벅 걸어갈 동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4년 11월 또하나의 문화 30주년 칼럼)
<또 하나의 문화>의 초대편집자 중의 하나인 조한혜정 교수는 서울시의 예산을 받아 '하자 센터'라는 대안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문화>가 1983년에 만들어내고자 했던 '대안으로서의 교육기관'이 관주도 형식으로 접속된 측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정희와 다음 세대들과의 접속과 양성이 이뤄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또 하나의 문화>는 여성주의 잡지의 출판은 멈춰있다. 그러나 17권의 출판물이 쌓여가는 동안 여성에 대한 지식과 여성이 속한 공동체의 지식을 생산하려 해왔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동료를 만드는 하나의 길이 되어주고 있다.
총 17권이나 되는 <또 하나의 문화>의 모든 면면을 살펴가며 이 발표문을 작성하기에는 필자의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20여 년 여성주의적 지식을 망라할 수 있는 지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발표문은 하나의 시작점 정도 또는 여성주의적 지식 생성의 하나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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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순, 「1980년대 여성평우회의 기층여성 중심의 활동과 여성운동의 방향 논쟁」, 『역사문제연구』제43호, 2020. 참조.[본문으로]
김영선, 「1980년대 여성운동의 새로운 여성 주체 기획과 주부운동론」, 『여성과 역사』28, 2018.[본문으로]
오자은, 「올림픽의 무의식: 1987년 6월 항쟁과 88년 서울 올림픽 사이」, 『한국근대문학연구』19(2), 2018, 79쪽.[본문으로]
<또 하나의 문화>의 주요 동인이었던 조형이나 조혜정이 ‘여성학 개념’을 사용하여 “성 차별, 성 평등, 성별 권력관계, 페미니즘, 성별 분업, 가부장제”등을 동원하여 성별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 연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재경, 「한국 사회학에서 ‘여성’ 연구의 성장과 도전」, 『사회과학연구논총』Vol.11,2003, 28~31쪽)[본문으로]
199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은 푸코의 저서를 국내에 소개하게 됨으로써 탈근대적 가족론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푸코만이 아니라 사랑의 개념을 역사화시키면서 근대적인 사랑의 본질이 갖는 순수한 관계로서의 성격, 그것의 후기근대적 활성화 가능성을 타진한 기든스의 『친밀성의 구조변동』(『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으로 국내 출간)가 소개되었다. 이 번역서는 가족제도와 성역할 규범의 약화, 개인적 삶의 일대기 구성이란 가치가 증대되는 90년대의 한국 상황에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특히 여성주의자들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인,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관계”와 친밀성의 개념, 사랑의 개념을 역사화하면서 후기 근대적 가족변화의 위기와 가능성을 동시에 짚어낸 대안적 가족개념(부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김혜경,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 비판적 가족담론의 변화: 비동시성의 동시성」, 『가족과문화』제24집 4호, 2010.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