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회원이 스베틀라나 보임의 <<오프모던의 건축>>에 대해 서평을 썼습니다. 작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어 서교연 아방가르드 세미나에서도 다룬 적 있는 책입니다. 이 서평에서는 매우 읽기 어려운 책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마음 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러시아연구> 제33권 제2호, 2023. 07. [서평] 이종현 – ‘낯설게하기’와 모험의 주체: 스베틀라나 보임, <오프모던의 건축>>, 김수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3. – SNU 링크에 걸려있는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사이트에서 pdf 파일을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인무브 편집팀
이종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작고 매력적인 이 책은 흥미로운 투덜거림으로 시작된다. 서론에 해당하는 1장 <모험의 건축과 오프모던>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나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안in’에 있고자 골몰하는 카리스마적인 포스트비판의 저 모든 [접두어들], ‘포스트post’ ‘신neo’ ‘전위avant’ ‘트랜스trans’ 따위가 지긋지긋하다.”(8쪽) 언뜻 이 푸념은 서구 문화를 비판하는 Z-시인 알렉산드르 펠레빈(А. Пелевин)의 시구와 공명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거의 안드레이, 아르세니 타르콥스키처럼 / 제길, 알아서 읽으라지. / 포스트-포스트, 메타-메타(Почти как Тарковский, Андрей, Арсений / Чёрт их там разберёт. / Пост-пост, мета-мета).”(ПоэZия русского лета,2023) 그러나 ‘포스트’, ‘메타’ 등의 접두어가 가리키는 모든 외부성을 기각하고 러시아의 정통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펠레빈과 달리 보임은 이 접두어들마저 “카리스마적”이라고, 비판 담론이 지니는 모종의 내부성을 수호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밖out’에 있는 게 아니라 [옆으로] ‘빗겨나off’ 있기”(8쪽)이다.
그런데 ‘건축’이라는 말을 제목에 달고 있는 책이 과연 “‘빗겨나’ 있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건축물의 존재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뚝 솟아있는 건축물은 하중을 버틸 수 있는 체계의 힘을 그 내부에 지니는 존재이고, 붕괴한 건축물은 그 힘이 외부로 발산해 버린 잔해로 존재한다. 여기서 어떻게 ‘빗겨나’ 있는 건축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시공 중인 건축도 결국에는 완공을 지향하기에 내부로 포섭되고, 철거 중인 건축도 골재를 하나하나 겉으로 드러내며 끝없이 외부를 지향한다.
그러한 까닭에 본론이 시작되는 2장 <타틀린의 테크네와 혁명적 폐허>에서 보임은 결코 지어진 적 없는, 완공된 것도 붕괴한 것도 아닌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를 ‘오프모던 건축’의 머릿돌로 설정한다. 여기서 모던, 포스트모던과 구별되는 오프모던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오프모던이란 “위기와 진보의 논리를 따르는 대신에 비판적 근대성의 옆 골목, 측면의 잠재성들에 관한 탐구를 수반”(8쪽)하는 것이며, “계산 불가능한 것과의 마주침”, “인간의 가능성들을 밀어붙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지는transgress 않는”(13쪽) “한계의 경험”(12쪽)이다. 타틀린의 탑에 이 정의를 대입해 보면, 언제나 기획으로만 남아있는 이 탑은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건축의 한계란 무엇인지 묻기 위해 극한까지 그 가능성을 몰아세운다. 따라서 보임이 강조하듯, 타틀린의 탑이 “기술적 문제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건설되지 못한 것”(26쪽)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진보의 절정으로서의 모던, 혹은 모던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포스트모던이라는 이항 대립 자체를 문제화하는, 두 대립항 사이의 비스듬한 공간으로서 이 탑의 기획을 바라보아야 한다.
보임은 타틀린의 탑으로부터 ‘오프모던’이라는 개념의 단초를 추출한 뒤, 세 번째 글 <낯설게하기의 건축과 자유의 커브>에서시클롭스키의 유명한 개념으로 오프모던의 정치학을 사유한다. 이때, 건축은 삶과 세계의 ‘구축’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되고, 본래 시학에 속하는 낯설게하기는 타틀린의 탑이 건축의 영역에서 개시했던 ‘오프’의 역할을 삶의 세계에서 수행한다. 보임에 따르면, “낯설게하기 장치는 예술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의 과정에, 대단원을 저지하고 미루는 것에, 인지적인 양가성과 유희에 방점을 두는”(56쪽) 것이며, 이를 통해 “예술가는 삶 자체에 ‘감각을 되돌려줄’ 수 있도록, 세계를 재발명하고 관찰자로 하여금 그것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57쪽) 돕는다. 이때 예술은 어디까지나 삶과 구분되는 영역으로서 그 “이상함과 차별성이 유지될 경우에만”(58쪽) 나름의 의미와 기능을 갖는다. 더 나아가 보임은 낯설게하기가 작동하는 예술의 예로 시클롭스키의 논문집 <<기사 말의 행보(Ход коня)>>(1923)의 첫 번째 서문을 가져오는데, 이 기사 말의 움직임은 곧 “세계를 위한낯설게하기”(65)라고 할 수 있다.
기사 말의 이상한 행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술의 관례성이다. [...] 두 번째 이유는 그 기사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인데, 즉 그는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 우리의 일그러진 길은 용감한 자들의 길이다. 하지만 달리 어쩌겠는가, 우리는 두 눈을 갖고 있으며, 충직한 졸병들이나 충실하게 한 길만 가는 왕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Шкловский 1923: 9, 10, 11; 60쪽에서 재인용)
“충직한 졸병들이나” “왕”은 “한 길만” 가고, 이들을 거스르고자 하는 자들은 그 길에 맞서는 또 다른 ‘한 길’을 갈 것이다. 한편, 기사 말은 ‘+’에는 ‘-’가 맞선다는 자동화된 논리에서 벗어나 어느 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는 “사선을 따라 비스듬하게 지그재그로 움직인다.”(59쪽) 여기서 체스판이 세계를, 졸병들이 충직한 신민(subject)을, 왕이 정치적 공동체의 ‘믿음직한’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기사 말은 정치의 영역에서 무엇을 가리킬까? 시클롭스키의 말에 따르자면, 그는 “자유롭지 않고”, 진취적으로 “앞으로” 움직일 수도 없다. 그래서 기사 말의 길은 “일그러진 길(изломанная дорога)”이다. 기사 말은 그저 “일그러진 길”을 따라가는 것 외에 적극적인 행보를 시도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의 대답은 보임이 시클롭스키의 글에서 인용을 생략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의 두 번째 이유 전체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이유는 그 기사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не свободен)이다. 그는 옆으로/비스듬히 움직이는데(ходит в бок), 왜냐하면 그는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금지되어(запрещена) 있기 때문이다.”(Шкловский 1923:10) 기사 말의 움직임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단 하나의 행위, 즉 “옆으로/비스듬히 움직이는 것”만큼은 긍정문으로 제시된다. 이 구절을 염두에 두었을 보임은 기사 말이 오로지 사행(斜行)이라는 움직임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이며 이 “옆으로/비스듬히 움직이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off’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바로 이 ‘в бок’에서 얻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을 짚어 보면 보임이 구체적으로 기사 말의 정치적 주체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주체는 “공적 무대 위에서의 행위, [...] 공통의 언어를 요구하지만 그와 더불어 얼마간의 계산 불가능성과 운, 기회와 희망, 놀라움과 경이를 필요로 하는 그런 행위”(63쪽)로 자신을 규명하는 자다. 위로부터 주권과 위치를 부여받지 않았기에, 그러면서도 세계의 ‘게임의 규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규칙들 사이의 비스듬한 길을 찾는 ‘모험의 주체’인 것이다. 이 주체의 움직임은 보임이 참조하는 자유에 대한 아렌트의 정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자유란 “근대적인 삶의 자동화 및 일상화”를 벗어나게 하는 “근본적으로 이상한 것”(아렌트 2005, 62쪽에서 재인용)이다. 즉, 기사 말은 낯설게하기를 통해 세계를 감각하고 자유의 비스듬한 운동을 시도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주체가 된다.
이로써 타틀린의 탑이 가리키는 ‘오프’의 방향은 시클롭스키의 낯설게하기를 거쳐 삶과 정치의 영역으로 번역된다. 한편, 기사 말처럼 대담하게 진행되던 논의는 4장 <서스펜션 건축과 프로젝트 시학>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은 타틀린의 탑이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상상력을 제공했는지, 그로써 어떻게 러시아 아방가르드 내부에 “훨씬 더 커다란 다양성이 존재”(68)하게 되었는지 압축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젠시테인은 이 탑을 보며 고골이 쓴 건축에 관한 에세이 <오늘날의 건축에 관하여(Об архитектуре нынешнего времени)>(1835)를 떠올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건축, 문학, 영화를 가로지르며 탄생했는지 탐구했다. 또, 1920년대 후반 모스크바를 방문한 벤야민은 분명 타틀린의 탑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이 탑이 가르쳐주었을 ‘오프’의 관점으로 모스크바를 바라본다. 그는 “관광과는 거리가 먼 구식 장소들, 예컨대 야외 시장, 장난감 박물관, 옛 모스크바의 망가진 탑 따위를 방문”(74쪽)하면서 “도시적 경험의 묘사와 [경험과 묘사] 둘 다를 낯설게 만드는 비판적 이론 사이의 제3의 방식을 연습”(76쪽)했다. 벤야민은 경험, 묘사, 비판적 이론 그 어떤 것의 내부에도 침잠하지 않으면서 세 가지 태도 사이를 지그재그로 다닌다.
사실 4장은 보임의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보임 역시 논의를 꾸준히 앞으로 밀고 나가지 않고 타틀린, 에이젠시테인, 벤야민 사이를 ‘사행’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대목은 바로 다음이다. “아방가르드적 상상력의 발본성은 정확하게 그것의 아토피아적인atopian 혹은 헤테로토피아적인heterotopian 성격에 있다.”(68쪽)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5장 <설치 건축과 현대의 폐허애호주의>에서 나오는 다음 언술과 겹쳐서 읽어야 한다.
서구의 예술가들이 종종 소비에트 유토피아의 예지적 잠재력과 대담한 이국성에 매료되었다면, 소비에트 예술가들은 이제 그 유토피아가 예술과 삶의 일상 업무 속에서 변형되는 과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폐허가 된 유토피아의 위상에 더 깊게 연결되었던 소비에트 예술가들은 그것들을 숭배할 필요가 없었다.(83쪽)
타틀린을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서 유토피아적 기획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왕’처럼 비전을 세우고 앞으로만 나아갔다고 말하는 셈이다. 물론 그들의 프로젝트에서 유토피아적 비전은 중요한 동기 중 하나로 기능했다. 타틀린 역시 제3인터내셔널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걸맞은 탑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전들이 사소해지고 일상 속에 용해되어 폐허가 된 것을 목도한 소비에트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과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보임의 눈에는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유토피아로만 상찬하는 서구 지식인들의 태도가 ‘나이브’한 것으로 보였으리라. 따라서 보임은 다섯 번째 글에서 타틀린이 남긴 ‘오프’에 대한 가르침이 소비에트 예술가들에게서 어떻게 이어지고 변모하는지 추적한다. 그들이 타틀린에게서 배운 것은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진취적으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백일몽 사이의 공간을 비스듬히 파고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리야 카바코프, 옐레나 옐라기나, 이고르 마카레비치, 레오니드 소코프 등이 만들어낸 비순응적(non-conformist) 예술 작품들에서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의 형상은 “후생after-life 혹은 반생half-life”(85쪽)을 살아간다.
보임이 이처럼 유토피아적 성격을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객관화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이 보리스 그로이스의 입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보임은 타틀린의 탑을 연상케 하는 굴라크 감시탑을 내세운 레오니드 소코프의 <감시탑, 군인으로서의 자화상>(1996)에 대해 논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틀린의 탑이 곧장 굴라크의 감시탑을 “초래한” 것이 아니다. 즉, 그것들은 동일한 “스탈린의 종합작업total work of Stalinism”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들은 아방가르드의 유토피아주의와 스탈린식 국가의 공식적 목적론 사이의 직접적인 연속성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로이스가 말한 '스탈린의 종합예술Total Art of Stalinism'과 반대로 [...] 21세기의 원근법적 “폐허-응시”는 예술적 구역과 국가적 구역을 더 정확히 그려낼 수 있는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방가르드는 다채로운 현상이었고, 예술적 혁명과 사회적 혁명 간의 유비에 관한 성급한 일반화는 그것의 역사적 특수성을 온전히 그려내지 못한다. [...] 오히려 그것들은[타틀린의 탑과 굴라크의 감시탑 – 필자] 소비에트 모더니티의 동일한 문화적 풍경에 속해 있었다.(91, 93쪽)
여기서 보임이 책 전체에 걸쳐 되풀이하며 강조하는 두 가지 논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아방가르드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내적 논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타틀린의 탑이 유토피아적 비전을 품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원한 잠재성의 기획으로 남으면서 소비에트 모더니티에 ‘오프’적인 공간을 열었다. 이때, 소코프가 타틀린의 탑과 유사한 굴라크의 감시탑을 세우고 자신을 그 탑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내세운 까닭은 이 현실 속 ‘오프’의 틈새를 가리키려는 데 있다. 두 탑은 서로 다른 차원의 현실을 가리키는 ‘폐허’이고, 이와 동시에 소비에트 모더니티라는 다층적인 세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폐허는 다른 보이지 않는 폐허를 가리키고 있다”(93-94쪽)는 보임의 말처럼 두 탑은 동시적인 사태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관계가 아니다.
두 번째 논점은 예술과 정치는 엄연히 구별되는 영역이므로 보다 섬세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장에서도 보임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예술적 혁명이 곧 정치적 혁명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1917년의 – 필자] 정치적 혁명은 [1914년의 – 필자] 예술적 혁명의 행보를 뒤따랐을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불성실하게.” 이러한 관점에서 스탈린의 기획은 근본적으로 자신과 다른 아방가르드의 비전을 ‘불성실하게’ 차용한 것이고, 바로 그렇기에 스탈린이 열어젖힌 세계 속에서도 타틀린의 탑은 ‘오프’의 존재 방식을 비공식적인 틈새에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보임이 예술과 삶/정치를 구별하는 태도는 둘의 관계를 낯설게하기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규명하려는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낯설게하기는 예술을 예술적이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똑같은 정도로, 그것은 삶을 삶답게, 살아갈 가치가 있게 만들어준다. [...] 낯설게하기는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까발리지만 결코 그것을 흐려놓거나 없애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매끄럽게 예술로 재봉질하는 일도, 정치의 전면적인 미학화도 촉진할 생각이 없다.”(56-57쪽)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낯설게하기는 여전히 예술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삶은 규정되지 않은 복잡다단한 무언가로, 정치는 정치 나름의 복잡성으로 진행되게 한다. 다만, 낯설게하기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은 주체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 삶에 한 가지 길만 있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주어진 길을 ‘빗겨나갈’ 때 삶이 삶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다.
아방가르드가 전체주의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논박하면서 그 전복성을 구제하는 보임의 논리는 아방가르드의 매혹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안도는 사실 가상적일 수 있는데, 보임도 말하고 있듯, 낯설게하기의 운동은 “얼마간의 계산 불가능성과 운, 기회와 희망, 놀라움과 경이를 필요로 하는 그런 행위”(63쪽)이기 때문이다. ‘오프’의 행보는 정치적 자유를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운’과 ‘기회’의 강력한 자장 아래서 주체를 크나큰 위험에도 노출 시킨다. 낯설게하기의 주체는 비스듬한 운동을 하다가 모든 체스 말을 하나의 ‘몸’으로 만들려는 ‘왕’에게 ‘인터셉트’ 당할 수 있다. ‘오프’의 운동 자체가 그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기에 이렇게 되묻게 된다. 스탈린의 기획이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혁명을 ‘불성실하게’ 차용하는 동안, ‘오프’의 주체는 왜 경각심을 갖고 저항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계속 ‘오프’의 행보를 이어가며(스스로 ‘왕’에게 잡아 먹힌 줄도 모른 채) 예술과 정치 사이의 틈새를 파고들기만 했던 것일까?
타틀린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소비에트 개념주의 예술가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보임은 소비에트의 예술가들이 “뮤지엄의 경건함 없이 아방가르드의 대상들에 접근”(83쪽)했기에 서구의 유토피아 예찬과 질적으로 다른 ‘오프’의 행보를 이어나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 ‘뮤지엄’에 전시되고 일종의 ‘정전’이 된 이들은 여전히 ‘오프’의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 ‘오프’의 움직임 자체가 자동화되어 결국 “뮤지엄 문화나 예술 시장”(83쪽)의 지체(肢體)가 되어 버린 것 아닐까? 폐허, 추론, 잠재성의 영역에서 영원히 운동해야 하는 ‘오프’의 움직임 자체는 사실상 정치와 엄격히 선을 긋는 동시에 은근히 상징자본의 위력에 몸을 내맡긴 것 아닐까? 시클롭스키의 말대로 ‘왕’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대가로 자기도 모르게 어느 ‘왕’에게든 복무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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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게나마 이 지점까지 생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이 난해한 책을 유려한 우리말로 옮긴 역자 덕분이다. 보임의 ‘비스듬한’ 문체를 최대한 ‘곧게’ 펴고 충실한 해제로(무려 본문 분량의 절반을 웃돈다) 압축적인 보임의 생각에 문화사적 두께를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평이라는 장르가 어쨌든 책의 훌륭함과 부족함을 따지는 것을 덕목으로 삼는다고 할 때, 다음 한 가지 사소한 실수를 짚을 수밖에 없겠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의 비약과 지연 사이에서 그만 ‘incorporating’이라는 단어의 번역어가 소실되고 말았다.
건축가 유리 아바쿠모프Yuri Avvakumov는 <페레스트로이카 탑Perestroika Tower>(1990)을 만들었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걸작 중 하나인 보리스 이오판과 베라 무히나Vera Mukhina의 조각상 <노동자와 집단[농장] 농민Worker and Collective Farmer>(1936-37)도 그중 하나다.(97쪽)
원문은 다음과 같다.
Archiect Yuri Avvakumov created the Perestroika Tower(1990), incorporating Boris Iofan and Vera Mukhina’s sculpture Worker and Collective Farmer(1946-37), one of Socialist Realism’s masterpieces.(Boym 2008: 33)
98쪽에 실린 도면을 살펴보면 탑의 꼭대기에는 각각 노동자와 농민을 상징하는 망치와 낫이 있다. 모스크바의 베데엔하, 즉 소련국민경제성과전람회장(ВДНХ, Выставка достижений народного хозяйства СССР) 앞에 있는 조각상 <노동자와 집단농장 여성 농민(Рабочий и колхозница>의 주인공들이 들고 있는 연장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때, 아바쿠모프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걸작 중 하나”를 <페레스트로이카 탑>의 몸으로 흡수했다(incorporate).
마지막으로 이 책이 포함된 ‘채석장’ 시리즈를 만든 기획자와 편집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에이젠시테인의 작업 노트와 이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2008)이라는 영화를 만든 알렉산더 클루게의 후기를 통합한 <<'자본'에 대한 노트>>(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알렉산더 클루게, 김수환·유운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라는 점이 무척이나 반갑다. 러시아 문화사의 숨겨진 보물이 다른 문화권의 텍스트 속에서 “후생 혹은 반생”을 살고 훌륭한 기획을 통해 채굴되었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 소비에트에서 미국을 거쳐 우리에게 ‘비스듬히’ 건너온 보임의 책처럼 앞으로 더 많은 슬라브·유라시아의 지적 모험이 <채석장> 시리즈에서 소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