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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버라드, 양자역학, 그리고 상호배타성의 역설 (1)

Karen Barad,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6), 544 pp.

 

 

트레버 핀치(Trevor Pinch)

번역: 김강기명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김강기명 회원이 우리 웹진에 아주 드문, 그래서 더욱 귀한 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해 주었습니다. 카렌 버라드가 2006년에 출간한 저서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에 대한 트레버 핀치의 서평입니다. 카렌 버라드는 우리나라에서도 '행위자적 실제론'으로 알려진 페미니스트 입자물리학자입니다. 핀치는 버라드의 책을 논평하면서 그녀가 제시하는 개념들의 역사와 그녀가 전개하는 작업의 전략들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읽기 쉽지는 않지만 신유물론 관련하여 주목 받는 버라드의 주저를 다루고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꼭 읽고 질문들을 만들어야 할 글입니다. - 편집부

  원문: Trevor Pinch, “Review: Karen Barad, Quantum Mechanics, and the Paradox of Mutual Exclusivity.” Social Studies of Science, vol. 41, no. 3, 2011, pp. 431–441, https://doi.org/10.1177/0306312711400657

 

 

 

 

 

나는 최근에 카렌 버라드와 함께 강연을 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있었다. 우리의 경이롭게 다양한 과학기술학 분야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나는 전자 음악에 대해 논하고 그녀는 양자역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는 Moog 신디사이저의 역사가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악기의 제작자이자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물리학의 철학자,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실천가일 뿐만 아니라 실제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나는 한때 물리학 학부생이었고, 양자역학이라는주제로 과학기술학의 기초를 닦았다. 과학기술학에서 우리의 연구 대상과의 관계는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특히 우리가 점점 더 우리가 연구하는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주제를 다룰 때 말이다. 나는 카렌 버라드의 작업을 검토하면서 그녀의 프로젝트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이 보다 넓은 주제에 대해서도 조금 성찰해 보려고 한다. 

 

 

양자 얽힘

 

버라드의 강연 대부분은 거대한 거리로 분리된 양자 시스템 사이의 다소 신비로운 순간적 상관관계인 양자 얽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최근의 양자물리학 실험에 대한 재미있고 명쾌한 설명이었다. 그녀는 관련 실험과 그 결과를 우아하게 묘사했지만, 그러한 실험을 해체하거나 맥락화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자신의 과학기술학 입장, 즉 그녀가 '행위자적 실재론agential realism'이라고 부르는 접근법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했다. 이런 전개에 놀란 나는 과학기술학의 형이상학적 입장이 물리학 실험의 결과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만약 실험 결과가 달랐다면? 그럼 우리는행위자적 실재론에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그녀의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그녀는 자신의 과학기술학 작업이 물리학의 최고의 작업과 나란히 서거나 쓰러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와우!

 

얽힘 실험은 '양자역학의 기초'라고 불리던 주제의 핵심에 있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자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많은 기술의 기반이 되며, 지금까지 그 예측이 항상 검증되어 왔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특이한 이론이다. 모든 면에서 그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의미하는 바, 즉 그 기초는 악명 높게 모호하다. 양자역학의 '큰 쟁점'이라고 할수 있는 것, 즉 양자역학의 완전성과 실재와의 대응, 그것이 기술하는 근본적 실체들의 본성, 그리고 그것들이 공간, 시간, 물질에대한 우리의 개념에 의미하는 바, 그리고 측정 도구와 측정되는 시스템 사이의 관계 등은 1930년대 이 이론이 처음 정립되었을때 선도적인 물리학자들에 의해 많이 논의되곤 했다. 아인슈타인과 보어 사이의 유명한 논쟁과 통계적 기반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이 이론을 싫어했다는 사실은 전설적이다. 보어의 영향력에 경의를 표하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은 받아들여진 지혜가 되었고, 물리학자들은 기꺼이 실험실에 머물면서 점점 더 기초적인 쟁점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여전히 계산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으며, 기술(원자폭탄 포함)을 만들 수 있고, 그들의 작업에 대한 자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기초적인 쟁점에 대한 걱정은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모든 물리학자들이 아는 바와 같이, 철학은 당신에게 약간 도움이 될수야 있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이 분야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그것이 어떻게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그리고 다시 물리학으로 전환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단순히 물리학 이상의 것이 되었다. 버라드가 그녀의 조밀하고 중요한 책에서 지적하듯이, 양자컴퓨터, 양자 암호, 심지어 공상과학 분야인 양자 텔레포테이션은 이러한 얽힘 실험에 그 존재를 빚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분야의 역사적 전환은 검토하지 않는다. 버라드는 역사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에든버러 과학기술학 대학원생이 쓴 이 실험에 관한 유일한 과학기술학 논문(Harvey, 1981)조차도 언급하지 않는다. Harvey는 1970년대 후반에 일하던 많은 실험가들을 인터뷰했고, 자신의 논문에서 철학을 실제 실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이 분야를 훨씬 더 '그럴듯하게' (즉, 자금을 받을 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이 물리학자들이 결과를 얻는 데 있어서의 사회적, 물질적 실천과 결과의 신뢰성이 버라드의 다소 간략한 설명에서 제안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음을 보여준다.

 

얽힘 실험으로 이어진 아이디어는 처음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 포돌스키, 로젠에 의해 현재 널리 'EPR'로 알려진 1935년의 유명한 논문에서 사고실험으로 제안되었다. 현대적 형태의 이 실험들은 한때 상호작용했던 두 개의 원격 입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색하는 것을 포함한다. '스핀'으로 알려진 양자역학적 성질이 각 실험가에 의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측정된다. 원격으로 분리된 실험가들(앨리스와 밥이라고 불린다)은 다음과 같이 작업한다. 입자들이 광원으로부터 분리되면 앨리스는 무작위로 자신의 검출기를 설정하여 한 입자의 '스핀'을 한 방향으로 측정하고, 밥은 무작위로 자신의 검출기를 설정하여 다른 입자에 대해 같은 작업을 한다. 앨리스와 밥이 스핀을 측정할 방향을 선택할 때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고, 앨리스와 밥이 원칙적으로 수십억 마일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위치에서의 입자의 스핀은 벨의 정리로 알려진 정리에 의해 예측된 정도로 순간적으로 상관되어(corelated)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버라드의 얽힘 실험과 보어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초기 논쟁에 대한 설명은 매우 명쾌하다. 그녀가 물리학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설하는 데 있어 대단한 해설자라는 점과 양자역학의 기초, 특히 아인슈타인과 보어 사이의 유명한 논쟁에서 무엇이 쟁점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또한 대담한 사상가이기도 한데, 이는 점점 더 평범해지는 과학기술학 시대에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그녀는 이 분야에 대한 새로운 형이상학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적어도 이 리뷰어에게는) 그녀가 자신의 행위자적 실재론 접근법의 윤곽을 그릴 때, 그녀의 글쓰기는 물리학을 다룰 때의 수정같이 맑은 글에서 행위성, 내부작용, 생성, 현상, 인과성, 역학, 물질성, 포스트휴먼의 역할 등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일련의 너무나 조밀한 주장들로 바뀐다. 문장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인용하는 것은 불공평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일부 섹션은 내가 최근 이 분야에서 읽은 가장 조밀한 산문 중 일부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녀의 책은 또한 반복으로 인해 다소 고통받고 있으며, 서로 다른장에 있는 단락들이 때로는 이전 단락을 반복하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등 부주의하게 편집되었다. 또한 Andy Pickering, John Law, Annemarie Mol, Lucy Suchman 등의 작업과 같은 과학기술학의 다른 관련 접근법들과의 교류는 각주에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손실이다(그녀의 주요 이론적 논의는 푸코, 버틀러, 해러웨이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다루겠다. 

 

물리학을 다룰 때조차도 버라드는 가차없는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며, <코펜하겐>과 같은 유명한 연극에서처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은유를 사용하면서도 그 배후의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양자역학의 대중적 설명의 한계를 정당하게 폭로한다. 그녀의 표적은 측정 도구와 측정되는 시스템 사이의 관계가 '교란' 정도의 문제로 오해되는 (양자 물리학에 대한 대중의) 흔한오해이다. 이는 타이어 공기압을 측정할 때 필연적으로 소량의 공기가 빠져나감으로써 실제 공기압에 가해지는 교란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특히 보어가 측정의 문제에 대해 훨씬 더 깊이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단순히 측정 도구와 측정되는 시스템 사이의 어떤 종류의 교란이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Trevor Pinch, 1952-2021✝︎

 

양자역학의 맥락화

 

버라드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얽힘 실험과 아인슈타인과 보어 사이의 초기 논쟁에 대한 그녀의 설명의 내용과 어조에서 무언가에 놀랐다. 그녀는 이 부분들을 주로 물리학자들이 쓰는 방식으로 쓴다. Kuhn이 유명하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물리학의 역사를, 매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역사를 논하는 물리학자들로부터 구출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책에서 가장 이상한 결핍 중 하나는Kuhn의 작업인데, 이는 그의 양자역학사에 대한 중요한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기술학 그 자체에 대한 선구적인 기여를 고려할 때그렇다. 그녀의 양자 실험에 대한 설명은 아무데서나 보는 시각이라기보다는 다소 휘그주의적(*역사진보주의적)인 설명이다. 실험들은 모두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것, 즉 양자 얽힘에 대한 진실로 이어진다. 그녀는 보어의 기여를 오해하고 무시한 동료 물리학자들을 꾸짖으며, 그녀의 전반적인 목표는 보어의 접근법을 되살리고 거기에 더하는 것이다. 그녀는 실험을 개념적으로(그리고 분명하게) 마치 리뷰 논문에서처럼 대단히 기술적인 세부사항까지 - 지저분한 역사, 공백, 어둠 속에서의 모색과 비틀거림, 그리고 사회적, 역사적 맥락의 대부분 없이도 - 묘사한다. 물리학자들의 표준적인 방식으로, 아인슈타인과 보어와 같은 양자역학계 엘리트들은 그들의 '훌륭한' 통찰력으로 인해 존경받으며, 종종 보어가 단지 코펜하겐 출신의 남자가 아니라 신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녀의 책의 다른 곳에서 그녀는 지식을 상황화할 필요성에 대해 도나 해러웨이와 의견을 같이하는데, 이러한 실험들을 상황화하지 못한 것은 이 책의 역설 중 하나이다. 

 

물론 버라드는 항상 자신이 실험의 개념적 기초를 보여주고 있으며 심층적이고 맥락화된 해석보다는 철학적 입장에 더 가까운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학은 여기서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그것들을 포함시키면 우리는 그녀가 책의 다른 부분에서 주장하는 대로 실험을 보기 시작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녀는 과학을 일반적으로 우발적인 인간의 이해관계, 지저분한 물질성과 실천, 그리고 문화적, 기술적, 군사적 이해관계의 더 넓은 별자리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고싶어 한다. 실험을 그렇게 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버라드가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과학기술학의 새로운 존재론을 위한 명백한 토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조금 덜 갖게 만든다. 

 

역사에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도가니와 물리학자들의 가장 큰 승리이자 죄책감의 원천인 원자폭탄, 그리고 순응이 그 날의 질서가 되었고 전후의 거대하게 부유한 물리학 공동체만이 군사-산업적 맥락과 결탁하여 생산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물질적 기반시설과 장치들을 제공했던 이후의 냉전-매카시 시대, 그리고 버클리대 물리학과가 주요한 역할을 했던 반문화와1960년대의 정치적 시위, 그리고 팽창이 끝나고 물리학 박사들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어 종종 대안적인 자금 출처를 모색했던 이후의 긴축 시대이다. 양자역학은 우연히 버라드가 질타하는 문화 산업의 엄청나게 인기 있는 원천이 된 것이 아니다. 반문화와 제휴한 양자물리학은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난해한 양자 세계를 대중문화의 전면으로 끌어냈다. 

 

나는 아직 대부분 쓰여져야 할 역사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물리학사와 과학기술학의 경계에서 일하는 현대물리학의역사가들과 사회학자들의 작업은 그녀가 지나치게 경건하게 묘사하는 물리학 문화를 구성하고 맥락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각주:1] 대담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문헌을 그냥 지나쳐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술 문헌이 당신이 만들고 싶은 바로 그 요점들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때, 당신은 그것을 무시하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또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은 코펜하겐합의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양자이론을 해석하는 일이 철학자들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소수의 물리학자들이다.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그러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다.

 

Karen Barad, 1956-

 

 

코펜하겐의 반대자로서의

 

매카시 시대에 증언을 거부한 공산주의 동료여행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봄은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1951년 프린스턴 대학에서의 직위를 강제로 박탈당하고 미국을 영원히 떠났다. 봄은 당시 양자역학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대담했던 소련의 물리학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이 물리학자들과 그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완전히 말해지지 않았다(하지만 Cross, 1991; Forstner, 2008; Pinch, 1976, 1977 참조). 1975년에 내가 봄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론을 이해하려고노력하기 위해 당시 많은 물리학자들이 가능한 최고의 설명으로 여겼던 1951년의 교과서를 썼다고 말했고, 그가 그것을 깊이 파고들수록 그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더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어의 관념론적 형이상학을 거부했다. 봄이 1952년에 양자이론에 대한 그의 경쟁적인 유물론적 해석(숨겨진 변수 해석으로 알려짐)을 내놓았을 때,2) 그는 코펜하겐의 벽에 부딪혔다. 보어의 동료인 레온 로젠펠트가 참수인 역할을 맡았고, 존 폰 노이만의 널리 인정받는 증명이 그러한 이론들이 매우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봄의 양자역학 버전은 틀림없이 잘못되었다고 세상에 선언했다. 양자역학의 해석이 단순한 철학의 문제라면, 수학적 증명은 항상 철학을 이길 것이었다(Pinch, 1977). 봄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연구(원래의EPR 실험의 단순화 포함)는 이후의 얽힘 실험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 1966년의 핵심 논문으로 봄의 접근법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벨이었다. 벨은 봄에 대항하여 사용된 '증명'이 그 모든 세월 동안 검토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으며 사소하게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봄은 즉시 그의 숨겨진 변수 이론의 새로운 버전을 출판했다.

 

1977년, 나는 봄이 미국으로 개선하던 때 우연히 버클리에 있었다. 그것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위대한 양자물리학자가 마침내미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언론자유운동이 시작된 곳에 있었다. 또한 그것은 물리학을 실천하는 매우 변화된 맥락이기도 했다. 얽힘 실험가 존 클라우저, 노벨상 수상자 제프리 츄, '물리학의 도'의 저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버클리에서 기본물리학 그룹으로 알려진 모임의 구성원이었다(Kaiser, 2009). 이 그룹은 얽힘 실험뿐만 아니라 초감각 지각(ESP) 실험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봄은 버클리 물리학자들로 가득 찬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당시의 초능력 신동 유리 겔러와 함께 한 그의 버크벡 동료 존 헤이스티드의 결과 일부를 발표했다. 매우 존경받는 양자물리학자는 동료 물리학자들로 구성된 청중이 열심히 살펴볼 수 있도록 구부러진 금속 조각 여러 개를 들어 보였다. 스탠포드 연구소(SRI)에서는 두 명의 레이저 물리학자인 타르그와 푸토프가 《네이처》지에 겔러에 대한 그들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그의 텔레파시 능력이 유효하다고 선언했다. 잠시 동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해 보였다. 양자역학의 역설이 초심리학 분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Collins and Pinch, 2008 [1982]). 그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유리 겔러는 사기 혐의를 받았고 이전에 그를 지지했던 물리학자들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1970년대가 1980년대로 바뀌면서, 대처와 레이건 시대에 물리학자들은 우리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다른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양자 얽힘은 군사 및 기업 자금과 더욱 얽히게 되어 양자 컴퓨팅,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을 탄생시켰다.

 

 

보어의 관계론

 

버라드는 그녀의 가장 기술적인 장(물리학 측면에서)의 시작 부분에서 이렇게 쓴다. "나의 프로젝트는 과학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과학기술학의 접근법에서 출발한다. 내 설명에서 과학의 연구와 자연의 연구는 함께 손잡고 간다"(248쪽). 이것으로 그녀는 물리학에 참여하는 것이 그녀에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그녀는 실험실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리학에 대한 그녀의 사고의 결과, 특히 양자역학에 대한 보어의 견해가 과학기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의 주장은 얽힘 실험과 양자역학에 대한 보어의 견해가 적절하게 해석될 때, 과학기술학에서 우리가 행위성과 물질 세계와의 관계와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견해는 고전적인 이중슬릿 실험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은 이 실험이 양자역학의 모든 신비를 수반한다고 주장했다. 이 실험은 파동-입자 이중성을 보여준다. 전자(또는 원자나 광자)의 빔을 두 개의 슬릿을 통과시키면 잘 알려진 간섭 무늬가 생성된다. 이 간섭 무늬(두 개의 물결이 서로 강화할 때 만들어지는 것과 유사함)는 한 번에 하나의 전자만이 시스템을 통과할 때에도 발생한다. 물질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로 이루어져 있는가? 간섭 무늬는파동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치 안에 한 번에 하나의 전자만 있다면 이는 입자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을 설정하여 전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탐지해보자. 버라드는 광자 방출에 의해 붕괴하는 원자를 사용하여 이를 정확히 수행하는 실험을 설명한다. 이는 원자가 이중 슬릿에 도달하기 전에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에 대한 명백한흔적을 남기면서도 원자의 전진 운동량을 어떤 식으로도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볼' 수 있다면, 그 순간 원자는 분명 입자일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원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알게 되면 원자는 파동이 아니라 입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하고 특징적인 간섭 무늬가 사라진다는 것이 밝혀졌다(양자 지우개 실험으로 알려짐). 더욱 놀랍게도 '어느 슬릿인가?'라는 장치를 켤 것인지의 선택은 원자들이 이중 슬릿을 통과한 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원자들이 검출기에 그들의 무늬를 등록했더라도, '어느 슬릿인가?' 장치가 켜지면 특징적인 파동 간섭 무늬는 사라질 것이다.

 

보어에게 파동과 입자의 속성은 파동과 입자와 같은 특정한 고전적 개념들이 상호 배타적인 관계인 상보성 원리의 일부이다. 보어는 이러한 종류의 문제(EPR 포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어려움이라도 측정 시스템 전체를 고려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고주장했다. 그가 의미한 것은 관심의 대상인 현상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종류의 장치였다. 입자를 찾는 실험을 하게 되면, 보라, 당신은입자를 발견할 것이다. 파동을 연구하는 실험을 설계하게 되면 파동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그것이 방해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물리학자가 실험에서 찾고 있는 현상의 종류가 실험이 설정된 방식에 따라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보어의 관점에 따르면, 고전 역학에서와 같이 측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미 잘 정의된 속성을 가진 독립적인 실재는 없다. 오히려 실험에서 실현되는 상보적 현상(파동 아니면 입자)은 측정 장치 전체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를 고려하는 것에 달려 있다. 버라드는 양자 지우개 실험에서 유령 같은 작용이 발생하거나 과거를 바꾸는 역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어의 관점에서 대상과 관찰의 작용은 분리될 수 없는 전체를 형성하며 공간과 시간 자체가 현상적이다. 고전적으로 기술된 현상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일련의 실험 배치를 고려함으로써, 보어는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자기 일관적인 방법을 제공했다. 이것은 양자물리학을 주관적이거나 신비적이거나 ESP의 원천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보어의 설명이 재현 가능한 결과를 명확하게 기술하고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이라고 설명한다. Jammer(1974)는 보어의 견해를 '관계론'의 한 형태로 묘사한다. 모순을 피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장치 집합들 사이의 관계, 즉 관찰의 전체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보어는 EPR에 대한 그의 대답에서 이것의 대부분을 분명히 했고, 그런 다음 사회과학을 포함한 다른 모든 상황에 상호 배타성의원리를 전면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악명 높은 후기 저술에서 이 문제를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버라드가 지적하듯이,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보어의 견해의 완전한 급진적 본질은 항상 인정되지는 않았으며, 물리학자들이 종종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어떤 종류의 충성을 주장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보어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Collins and Pinch, 2008[1982]). 과학기술학의 독자들에게 이 상황은 우리 분야의 유사한 상황으로 이해될 수있다. 과학기술학의 많은 사람들이 라투르 등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에 대해 어떤 종류의 충성을 주장하지만, 그들 중 극소수만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완전한 대칭성에 대한 라투르와 칼롱의 급진적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2편에 이어서)

  1.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해리 콜린스, 앤디 워윅, 수만 세스, 리처드 스탤리, 사이먼 샤퍼, 데이비드 카이저, 오토 시붐의 작업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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