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집담회> 2010년대 정치/사회운동 조직화의 경험과 곤경
① 2010년대 이후, 그리고 지금은 조직하기/되기 어려운 시대인가?
집담회 진행: 이태영
기록: 김범일, 조준희 / 정리: 이태영, 조준희
이 글은 3월 29일 토요일 오후에 진행된 「조직화의 곤경과 그 너머 - 우리 시대의 정치 조직화 집담회」 1회차 집담회의 기록입니다. 이번 집담회는 대안정치공간 모색과 다정본(다른 정치의 본령)이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두 단체가 함께 연재한 〈녹색당 12년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의 후속 기획으로 마련되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 속, 각자의 자리에서 ‘조직하기’를 고민해온 분들을 모시고, '사람들은 어떻게 모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에너지는 어떻게 조직하는가' 라는 큰 질문을 쪼개며, 우리가 겪고 있는 곤경을 확인하고 극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긴 시간 진행된 집담회에 함께해주신 참여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대안정치공간 모색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자기소개
태영
오늘과 다음 주에 열릴 이 두 번의 집담회는 바깥 광장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움직임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자리가 될 겁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사람들이 모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조직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 속에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초대에 흔쾌히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자기소개 자체가 오늘 집담회의 중요한 콘텐츠이기도 하거든요. 사전에 공유드렸듯이 ‘정치 조직화’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식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현재 서교연(서교인문사회연구실), 신문연(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커먼센스, 다정본 등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당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조직이나 단체라기보다는 좋은 팀의 일원이 되고 싶고, 그런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주로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비슷한 세대와 시대의 고민이 교차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보영
정보영입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고, 청년운동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2019년 동료들과 함께 만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소속 정당은 없고 2016년부터 청년유니온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청년운동이 마주한 위기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중 조직화는 놓쳐서는 안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오늘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희원
정치조직화가 점점 사라지던 때인 200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현장에 나갔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공동체를 안 만들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싫었습니다. 녹색당 당직을 수행할 당시 제가 한 인터뷰에서 “개인주의가 공동체주의를 구원할 것”이라는 헤드라인이 나가기도 했는데 그 말에 책임을 져야할 것 같아요. 요즘은 ‘옛것은 가고 새것도 왔는데, 그것이 우리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현재는 듣는연구소와 오늘의풍경에서 일하고 있고 최근 BIYN(Basic Income Youth Network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을 통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혜민
지금은 대학원생이고 정의당에서 활동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정의당 내에서 청년 여성, 성소수자 정치세력화가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며 당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여성학을 전공하며 석사 논문은 정의당 내 메갈 논쟁 이후 여성 당원들이 소진되고 흩어지나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나가는 현상을 연구했습니다. 정당 활동을 하며 정치 세력화에 대한 회의도 컸고, 지금은 활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즈음 탈당했다가 계엄 다음 날 다시 가입했습니다. 현재는 범죄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문제들을 결국 다시 마주하게 되는 삶을 살고 있고, 오늘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태영
저는 사회학을 공부 중이고, 녹색당에서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한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 당직을 거쳤고 시당 위원장 등 역할을 맡거나 선거에 출마한 경험도 있습니다. 서대문구 신촌에서 체화당이라는 마을카페를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 조직 작업도 해봤습니다. 현재는 제주도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2010년대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심이 많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보코
페미니즘과 생태를 키워드로 시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밀양 송전탑 싸움이 녹색당 운동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민운동과 정당운동 사이 어딘가에서 고민과 관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새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나와 다르게 다가오는 당혹감 속에서, 유사한 곤경을 겪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참여했습니다.
재균
띠모크라시라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활동 중입니다. 지역에서 청년정책 활동을 하다 지금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당 활동 경험은 없지만, 활동하다보니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분들과 만나면서 각 정당의 활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지방의회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현
동료들과 정치 조직화가 가능한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 활동가로 일하다가 녹색당에서 조직팀장과 사무처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작년에는 녹색당-정의당 연합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정치의 효용에 대해 고민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의 관계 맺음과 관용, 존중 같은 키워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범일
‘모색’이라는 단체의 대표이고, 최근까지 녹색당 당직자였습니다. 한국에서 조직화를 가장 잘하는 집단인 교회에서 노동을 하다가, 녹색당에 정착해서 열심히 조직화를 해봤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조직화를 모색하고자 '모색'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이런저런 모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준희
저도 ‘모색’을 함께 운영하고 있고, 작년까지는 녹색당 당직자로 일했습니다. 녹색당에서 일하기 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일할 때부터 스스로를 조직활동가라기보다는 정책활동가로 정체화하려 했는데, 활동을 하다보면 조직 활동과 연결되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왜 사람들을 모으는 게 어려운지 이해하고자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2025년 3월 29일, 서울 마포구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실에서 진행한 집담회 모습(사진=대안정치공간 모색)
우리가 경험한 ‘곤경들’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회피하고 맞춰주는 방식이 오히려 갈등을 더 키우는 결과로”
“‘왜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잃은 채 떠났다는 생각”
“실질적인 이해관계자로서의 ‘계급적 위치’가 애매하단 걸 자주 느껴”
“때로는 ‘성공적인 조직’이 너무 쉽게 시장화되는 장면도 목격”
태영
첫 번째로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을 질문은, ‘각자 조직화 실험이나 협력적인 모임을 만들고 운영했던 경험 속에서 어떤 곤경을 겪었는가’ 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가장 컸을까요? 예를 들어, 갈등이 생겼을 때 그걸 해소하거나 조정하는 것이 어려웠다거나, 열심히 했지만 지속성 유지에 실패했다거나, 다 잘 굴러가는 것 같았는데 결국 성과가 나지 않았다거나 등, 조직화 과정에서 마주했던 여러 고민과 곤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식
모임이나 조직에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는 즐겁고 만족스러운 경험이 많았지만, 갈등으로 인해 관계나 활동이 무너지는 경험이 반복되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막상 갈등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우리는 과연 갈등을 마주할 줄 아는가?” 하는 질문이 제게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이 되었어요.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세대에서 갈등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조직화를 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고 싶을 때만 하자”든지 “안해도 된다”는 식으로 최대한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조직화를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부담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선 갈등이 없는 모임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갈등을 회피하고 예방하려는 방식이 오히려 갈등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희원
저는 그걸 일종의 ‘힘을 빼는’ 전략이라고 불렀습니다. 갈등으로 조직을 떠나는 사례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안 오셔도 돼요”, “하고 싶은 만큼만 하자”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조직이 존재는 하지만, 역동성은 사라진 상태가 되더라고요.
예전에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누군가가 권해준 성경을 읽는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너무 감동적이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책은 왜 읽냐, 이제 노래 부르자”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요. 운동도 그랬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운동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노래도 부르고, 뒷풀이도 하고, 그런 관계적인 순간들이 있어야 뭔가가 가능해진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저는 사회 문제가 있으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토론하고 싶었고, 그래서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동료나 우정, 감정적 연결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의 조건들을 잘 모르면서 단체의 주요 임원을 맡았다는 게, 지금 돌아보면 어려운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준희
저는 스스로를 ‘조직 활동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녹색당에서는 ‘조직 팀장’으로서 행정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행사나 조직 관련 일을 준비할 때 “여기에 왜 사람들이 와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 때도 많았어요.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없을 때는 당원분들께 “꼭 오셔야 해요”라고 말하면서도 진심을 담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획의 완성도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더러 반복되었던 걸 보면 근본적으로는 저 자신에게도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동기’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가끔 전화로 사람 모으는 작업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도 많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리가 왜 모여야 하는가’에 대한 제 스스로의 답변을 찾지 못했던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곤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태영
저도 개인의 성향과 조직하는 일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비슷한 곤경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서대문구 신촌에서 지역 조직 활동을 할 때, ‘원룸 축제’라는 마을 행사를 몇 년간 기획했습니다. 처음엔 원룸이 많은 동네 특성을 살린 기획이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오히려 외부 사람들이 주로 찾는 축제가 되어버렸죠.
오랫동안 그 축제를 함께 만들어 오던 교회 분들 중 몇 분이 “동네 청년들이 아니라 다른 동네 청년들이 오는 축제가 되었다”는 의문을 표하신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고민이 깊어졌어요. 사실 저도 그 동네에 살고 있지는 않았고, 정작 저는 ‘지역 조직’을 직업처럼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죠.
늘 7737번 버스를 타고 ‘이대부고’ 정류장에 내렸는데, 그 정류장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되는’ 느낌이었어요. 누구를 만나든 인사하고 대화하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됐던 거죠. 사실 제 성향과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 자신도 “이런 축제가 내 집 앞에서 열린다면 나는 나갈까?”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사적인 공간이 중요하고 마음먹었을 때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성향과 충돌이 있었어요.
결국은 북적이는 축제가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니고, 그런 자리를 통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어쩌면 너무 이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저 자신도 “모임은 목적이 있을 때 사람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은 늘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보코
저는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꽂혀있던 키워드들이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에요. “활동가의 재생산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속 가능한 운동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나?”, “운동이 너무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가?” 같은 고민들이었어요.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과 기존 운동에 대한 비판 의식도 강했습니다.
그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모으거나 변화를 체감하는 경험도 만들었지만, 정작 그 자리를 조직한 저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남겨지곤 했어요. 어느 순간엔 이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동력이 어렵겠다는 위기감도 들었고, 그래서 참여와 이탈에 과몰입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그때 우리가 했던 운동은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거대한 방향성만 이야기하고, 실제 변화를 체감하는 경험은 없었던 건 아닐까?” 같은 고민을 하게 돼요. 토론회와 간담회는 많았지만, 돌아보면 실질적인 경합의 경험이 아니라 요소요소 비판만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 운동을 만나는 동안,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질문도 다시 떠오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조직이란 과연 자본 없이 가능한 걸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지속 가능해야 할까?” 그리고 때로는 ‘성공적인 조직’이 너무 쉽게 시장화되는 장면도 목격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조직이 단발적인 성공을 거둔 뒤에 그걸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된 것 같아요.
희원
저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2020년까지는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4~5년 전쯤부터는 ‘정치’와 ‘활동’ 그리고 ‘일’을 확실히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자로서의 노동에 집중하며 지내왔어요. 기본소득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한때 저를 설명해주는 키워드였는데, 그걸 의도적으로 지우고 나니 오히려 ‘계급적 정체성’이 제 안에 없다는 걸 더 강하게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은 연구자, 에디터, 기획자 역할을 하며 거의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있으니 저는 파업도 못해요. 노동자로서 사회에 대해 대항 세력화를 이루기도 어려운 위치에 있는 거죠.
저는 서울에서 일하지만 경기도에 살고 있는데, 그래서 서울의 진짜 이해관계자는 아닌 거죠. 그렇듯이 저는 실질적인 이해관계자로서의 ‘계급적 위치’가 애매하단 걸 자주 느껴요. 주식이나 코인 같은 투자도 안 하다 보니 그런 이해관계 집단에도 속하지 않고요. 자각하든 아니든, 그런 감각이 요즘 세대에게는 하나의 정체성이나 집단 감각처럼 작동하는 것 같거든요.
예전 녹색당에서 정책을 이야기할 때도 이런 고민을 해왔지만, 요즘은 더 실존적인 고민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어떻게 엮어야 할까?”. 전통적인 운동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데서 출발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처지’를 설명할 언어가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떤 감각이 있는 건 분명한데,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라고 할까요.
예전에는 “요즘은 이데올로기가 없다”라는 어른들 말에 반발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없어서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재균
저는 지역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인데요.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종의 무기력감을 느껴왔어요.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그 흐름을 따라가기만 해도 벅찬 현실에서 조직 활동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활동을 시작한 이듬해 코로나 시기를 겪었어요. 오프라인 조직화를 해보기도 전에 “온라인에서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냐”는 내부 결의가 있었는데, 솔직히 오프라인에서도 잘 안 되던 게 온라인으로 간다고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조급함이 오히려 조직화를 더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잘 안 되는 구조를 더 망치는 방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또 하나 고민되는 건, 예전에는 저도 선배 세대를 많이 비판했지만, 돌아보면 그분들도 결국 조직화의 당위성을 끝내 만들지 못해서 떠났던 게 아닐까 싶어요.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연대가 느슨해지고 있는데, ‘왜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잃은 채 떠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반성적 고민이 지금 지역에서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의 역량이 부족한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끼는 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 혹은 그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자각이에요. 이런 것들이 조직화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곤경들은 특수한 경험일까, 동시대적인 문제일까?
“조직화를 하려는 사람들이 조직을 더 못하게 되는, 그런 딜레마에 처한 것은 아닐까”
“‘환대’가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윤리적 규범처럼 작동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활력이 서울로 집중되는 흐름이고, 광장의 활력마저 전부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데…”
“결국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게 조직화의 출발점이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잘 안되고 자꾸 윤리와 정의만 이야기하게 되고…”
태영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힘 빼기’ 전략, 조직화라는 규범 자체에 대한 의문 등의 키워드들이 등장했습니다. 또, 시장화된 방식이 가장 잘 작동하는 조직화라는 말이 흥미로웠는데요. 그 이야기 들으면서, “나도 책모임 열심히 해보고 싶은데, 왜 트레바리는 투자까지 받으면서 사람을 모으고 나는 못 모았지?” 그런 생각도 했던 적이 떠올랐어요. 우린 사람들이 잘 안 모인다고 느끼지만, 또 어딘가에선 잘 모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새롭게 열리고 있는 조직화의 규범이 우리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느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 곤경은 각자의 특수한 경험일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동시대적인 문제일까요? 만약 동시대적이라면, 어떤 계기나 흐름이 그 감각을 만들었을까요?
과거의 조직하기와 지금의 조직하기, 그 사이 시간대의 경험들
희원
저는 우리가 겪는 이 곤경이 시대적인 것이라고 느낍니다. 물론 그 전에, 여기서 말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먼저 짚어봐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조직화가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민주당 당원만 해도 2012년엔 200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400만 명 가까이 된 걸 보면요. 그 사이에는 박근혜 탄핵, 문재인 대통령, 그 이전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있었고요.
제 주변 동료들을 보면, 어떤 사회적 흐름보다는 삶의 구체적인 계기에서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저는 이 곤경이 시대적이라고 느껴요. 제가 있던 학교는 뉴라이트 계열이 강한 분위기였고, 그러다보니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려면 뭔가 굉장히 개별적인 맥락과 노력이 필요했던 거죠. 투쟁현장 찾아다니고 어렵다는 책들 구해서 같이 읽고 그런 식으로. 이건 결국 시대적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내가 만약 80년대에 대학생이었고, 똑같이 사회주의 책을 읽었다면 주변에 같이 읽는 친구들이 있었을 텐데, 2010년대에는 그 흐름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운동 자체가 사회적으로 비주류인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 곤경이 단순히 개인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우리 세대 전체가 처한 시대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을 더 확신하게 됩니다.
태영
방금 말씀하신 내용 중에 중요한 논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조직화가 ‘된다’,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건 누구의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말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범위의 조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를 먼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민주당만 봐도, 지난 10년 사이 당원이 200만 명 가까이 늘었다는 거잖아요. 어떤 사람에게 2010년대는 조직화가 전혀 안 되는 시기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속해서 사람이 몰려드는 시기였던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곤경 역시 절대적인 상태라기보다는 특정한 위치와 조건 속에서 생겨난 상대적인 감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유현
이야기 들으면서 얼마 전 한 분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안 모이는 게 아니라, 모이긴 모이는데 다들 관광객처럼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 말을 듣고, 조직화가 안 된다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성’이 유지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은 여전히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 혹은 상징적인 인물 주변으로 여전히 모이긴 하잖아요. 하지만 그 모임은 예전처럼 ‘가족’, ‘동지’ 같은 관계로 이어지진 않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그래서 ‘조직화는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조직이 지속되는 방식에 대해선 각자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겠단 고민이 들었어요.
보코
‘조직’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층위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쉽게 모으는 방식을 만들고 싶은지, 아니면 한 번 들어온 사람이 운동에 전념하고 삶의 태도를 바꿀 만큼 깊게 관여하게 만드는 게 목표인지에 따라 전략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지금처럼 운동 세력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그 선택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식으로 끌려다니다 보니, 결국 다 놓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겪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어떤 조직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한다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실행 경험이 우리에게 실제로 있었는지도, 기존 감각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다른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느껴요.
조직이라는 개념을 너무 막연하게 가져가다 보니, 자원은 없지만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 압박감 같은 걸 만들어내고, 그게 또 다른 어려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식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약간 무리하게 규정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조직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직화를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조직화를 이야기해보자고 모인 분들인데, 그 안에서도 “꼭 조직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고백이 나온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조직화를 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개인적 차원에서도 조직적 차원에서도 그 이유를 못 찾는 상황이죠.
이게 어쩌면 조직화를 너무 합리적으로 접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신념이나 명분에 기대지 않고 ‘합리적인 개인’들이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만 참여하는 구조로 조직화를 생각하는 경향이 지속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흐름은 비합리적이고 우연적인 경우가 많지 않나요?
오히려 조직화를 고민하는 사람일수록 합리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신념 같은 건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여겨지고, 조직화는 좀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조직화를 하려는 사람들이 조직을 더 못하게 되는, 그런 딜레마에 처한 것은 아닐까 싶어요.
보코
‘우리는 과연 조직을 당해본 세대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떠올리게 돼요. 조직을 해보려 하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조직을 ‘당해본’ 경험이 없는데, 조직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그 가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이것도 이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감각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조직’이라는 운동적 규범이나 작전은 어디서 온 걸까. 그건 결국 민주화 이후의 전통적인 방식일 텐데, 그게 여전히 유효하다 믿는 사람들에겐 ‘타인을 신뢰한다’는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어떤 정보를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거고, 언젠가는 나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놓지 않는 거죠. 그런 신뢰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조직 방식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 방식이 지금 잘 되느냐와는 별개로, 문득 ‘나는 그만큼 신뢰하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성찰이 생기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태영
결국 조직화를 고민한다는 건 어떤 ‘기획’의 욕구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그 기획이라는 게 실제로 가질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오신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총파업은 선언하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인상 깊은 말이었어요. 물론 그 말을 하신 분은 노동운동 조직이 자기 정체성인 분이셨고, 조직이 전혀 없이 총파업이 일어날 수는 없지만, 그 위에 뭔가가 덧붙여져서 ‘일어나야’ 진짜 총파업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사회운동 부문이 겪는 곤경이란 생각도 들어요. 조직화라는 것을 기획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다루는 기대가 일종의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보면, 이런 감각은 동시대적으로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것 같고요. 동시에 ‘조직화가 정말 안 되는 걸까?’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직화의 형태가 재편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도 가능하겠습니다. 그리고 숫자적으로 사람이 많이 오는 것과 조직 핵심 인력의 재생산 모두 조직화일 수 있는데, 이 모든 걸 ‘조직화’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릴 때 생기는 혼란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이 곤경들은 동시대적인 조건과 강하게 맞닿아 있는 것 같고, 우식 님이 말한 “조직하고 싶은 사람들이 조직을 못하는 시대”라는 표현이 재밌으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계속 붙들고 이야기해볼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이 지점에서 더 덧붙이고 싶은 분 있으실까요?
보영
제가 참여했던 조직에서도 실제로 큰 이슈파이팅이 성공하면 조합원이 확 늘기도 하지만, 그건 너무 우연적이고 불확실하잖아요. 현실에서는 결국 기존 조합원들이 만나고, 한두 명씩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고 하는 일상적인 작업이 중요한데, 저랑은 잘 안 맞는다는 걸 자주 느꼈어요.
조직에 매력적인 사람들이 계속 오고, 또 누군가를 데려오는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실제 조직은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처럼 느껴졌고, 저에게는 점점 ‘일’처럼 다가왔어요.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보다, 반복되는 피로와 루틴만이 남았던 거죠.
그렇다고 제가 너무 차갑거나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싫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 스스로도 ‘내가 이걸 너무 계산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최근엔 정기적인 조직 사업의 빈도를 일부러 줄여보기도 했고, 조직이 갖고 있는 기존의 인간관계를 한번 털어내야 할 필요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죄책감이 들고,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감정도 생겨요. 말로는 ‘장벽 없는 환대’를 이야기하고, 2010년대에 다들 『사람, 장소, 환대』같은 책을 읽었지만, 현실에서는 어느새 나 자신이 선택적으로 환대하거나 가식적으로 환대하는 사람처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괴리와 어려움이 계속 마음에 고민으로 남습니다.
태영
‘환대’가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윤리적 규범처럼 작동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도 의미 있는 규범이었지만, 그 규범이 작동하면서 생기는 곤란함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환대해야 한다’는 감각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부담이나 죄책감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고요. 개인적인 가설에 가까운 생각이지만, 어쩌면 이런 방식의 환대와 그걸 둘러싼 규범들이 2010년대를 특징 짓는 하나의 특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식
‘배제하지 않는다’, ‘소외시키지 않는다’ 같은 감각도 중요한 규범으로 작동했던 것 같아요. 모두가 환대받고, 모두가 참여하고, 개방적이면서 평등하게 운영되는 공간이라는 게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도 그 이상에 가까이 가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러다 보니 “내가 소외됐다” 같은 감각이 더 크게 다가오고 거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되기도 하죠.
유현
보영님 이야기 들으며 저도 떠오른 게 있어요. 사람들이 모였다가 활력을 잃고, 결국 외로운 사람들끼리 인정 투쟁만 남는 장면을 저도 여러 번 겪었거든요.
요즘 극우개신교는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지 보고 있어요. ‘자유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조직력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의 감정에는 외로움이나 소외감 같은 감정이 꽁꽁 뭉쳐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결국 우리가 말하는 조직화도 감정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건데, 분노나 외로움처럼 절실한 감정이 아니라면, ‘활력’이나 ‘아름다움’ 같은 키워드만으로는 잘 안 모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부터 생계까지, 조직하기의 조건들
재균
‘활력’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모든 활력이 서울로 집중되는 흐름이고, 광장의 활력마저 전부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데 그게 맞나 싶은 고민이 들어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또 “지역 분권”을 말하겠지만, 정작 국가적인 사안이 터지면 광장도, 의제도 전부 서울로 몰리잖아요. 결국 환경이든 노동이든, “서울로 가서 같이 이야기하자”는 방식으로 수렴되고요.
지역 단체들은 분권과 자치를 외쳐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그 가치들이 무력화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대전에서도 매일 집회를 열고 릴레이 단식도 하고 있지만, 그 정보조차 잘 공유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지역은 에너지 흐름에서 계속 배제되고 있고, 이건 단순한 고립감을 넘어서 전체 운동의 구조를 흔드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혜민
정의당에서 활동하면서 당 초창기에, “인천 당원 3명만 있으면 우리도 인천시당 성소수자위원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만큼 숫자보다도 존재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걸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10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며 깨달은 건, 3명을 모으는 것보다 3명을 남기는 게 더 어렵다는 거였어요. 예전부터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진짜 온갖 정당에 흩어져 있어요. 농담처럼 “정의당 출신은 모든 정당에 다 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정당 무리와 함께 나타난 예전 동료가 저한테 “지금 우리가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넌 이해해 줄거라고 믿어”라고 말을 건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미련이 많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고요.
그래서 정치 조직화라는 건 단지 누군가를 데려오는 일뿐 아니라, 갈라설 때 얼마나 쿨해질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잘 서 있는가’, ‘나는 나를 조직하고 있는가’였던 것 같아요. 조직화라는 말 속에서 모순적이고 어렵지만 쿨해져야겠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태영
그건 정말 정치 조직화에서 전형적으로 마주하는 이슈인 것 같아요. 정당이라는 게 늘 ‘항구적인 집단’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론 이합집산이 빠르게 이뤄지고 정체성도 유동적인 공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조직화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현실의 정당은 매우 실용적이고 국면에 따라 계속 재편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결국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혜민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정치 조직화를 하며 살아가더라도 결국 생계가 필요한데, 정치 활동 경력이 오히려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더라고요. 스스로 ‘신분 세탁’을 하듯 해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정당으로 옮겨갈 때 씁쓸함과 동시에, 그 선택이 생계를 위한 현실적인 결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당처럼 자원을 나누는 구조가 있는 정당은 사람들이 머물고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있잖아요. 꼭 시장화란 말까지 안가더라도 누군가를 머물게 하고, 연결하게 하고, 기본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주는 거죠. 그런데 진보정당은 그런 조건을 마련하지 못하잖아요. 남아 있으라고만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죠.
결국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게 조직화의 출발점이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잘 안되고 자꾸 윤리와 정의만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치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안정적인 삶을 가진 사람들만 남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우리는 정말 계급을 기반으로 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정치적 상상은 가능한가,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오게 돼요.
희원
혜민 님 이야기 들으면서 제가 메모해두고 싶은 키워드가 있는데, 바로 ‘운동의 물적 기반’이에요. 이 키워드야말로 가장 시대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세계적인 조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정당이든 사회운동이든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자, 시대적이고 세계적인 공통 조건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운동을 시작하던 무렵엔 구글 문서 같은 툴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커뮤니케이션과 기획, 결과물 생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확 줄어들면서 ‘기획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운동 안에 등장할 수 있었던 조건이 조성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전 세대들만 해도 “우리 이런 일 하려는 데 도와달라”고 하면서 후원을 받아오는 일이 가능했는데 우리 세대에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대신 크라우드 펀딩 같은, 시장화된 모금 방식이 대중화되긴 했죠. 하지만 그런 방식은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은 아니고 이벤트성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장기적 전망을 세우고 “내가 10년은 사무국장 해볼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없고, “내 생계는 내가 책임질 테니, 일단 이건 한 번 해볼게”라는 태도가 우리 세대 운동의 기본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태영
그러게요. ‘물적 기반’이라는 키워드는 정말 이 시대를 설명하는 꽤 명확한 공통 조건 같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N86 세대가 가졌던 모금 파워는 판단 권한과 그 판단에 따라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잖아요. 그 자체가 분명한 시대적 곤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조직화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그게 실패하거나 균열될 때의 곤경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기대와 곤경이 반복되는 구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조직화가 곤경을 겪고 있다고 인지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우연처럼 보이는 폭발적인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흐름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 더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사람들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인-무브 Writing > 인-무브 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 조직화의 곤경과 정당이라는 플랫폼 (0) | 2025.04.22 |
---|---|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파국과 미래 (0) | 2024.11.05 |
장애인 대중 주체의 형성을 위하여: 전장연 박경석 인터뷰 (3/3) (0) | 2022.05.13 |
장애인 대중 주체의 형성을 위하여: 전장연 박경석 인터뷰 (2/3) (0) | 2022.05.02 |
장애인 대중 주체의 형성을 위하여: 전장연 박경석 인터뷰 (1/3) (0) | 2022.04.19 |
대담 <9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여성해방문학론> (3/3) (0) | 2022.03.20 |
대담 <9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여성해방문학론> (2/3) (0) | 2022.03.16 |
대담 <9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여성해방문학론> (1/3) (0) | 2022.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