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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Writing/인-무브 대담

정치 조직화의 곤경과 정당이라는 플랫폼

by 인-무브 2025. 4. 22.

 

 

 

<1회차 집담회> 2010년대 정치/사회운동 조직화의 경험과 곤경

② 정치 조직화의 곤경과 정당이라는 플랫폼

 

집담회 진행: 이태영
기록: 김범일, 조준희 / 정리: 이태영, 조준희

 


 

이 글은 3월 29일 토요일 오후에 진행된 「조직화의 곤경과 그 너머 - 우리 시대의 정치 조직화 집담회」 1회차 집담회의 기록입니다. 이번 집담회는 대안정치공간 모색과 다정본(다른 정치의 본령)이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두 단체가 함께 연재한 〈녹색당 12년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의 후속 기획으로 마련되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 속, 각자의 자리에서 ‘조직하기’를 고민해온 분들을 모시고, '사람들은 어떻게 모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에너지는 어떻게 조직하는가' 라는 큰 질문을 쪼개며, 우리가 겪고 있는 곤경을 확인하고 극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긴 시간 진행된 집담회에 함께해주신 참여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대안정치공간 모색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정당은 조직화의 곤경을 해소할까, 강화할까? 

“오히려 하나의 산업, 직업이라는 시장적인 설명을 통해 정치에 접근하는 상황이 된 건 아닐까요?”
"정치색이 분명하면 오해받거나 활동의 제약을 경험하는 구조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
"그런데 문제는, 힘이 없는데도 힘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이었죠"

 

 

태영
이제 
앞선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된 '정당'이라는 키워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려 합니다. 우리가 정치 조직화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당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곤 하잖아요. 그만큼 정당은 정치 조직화의 대표적인 양상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정당이라는 것을 본격적인 이야기 주제로 삼아보고 싶었어요.

특히 드리고 싶은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앞선 이야기에서 나눈 조직화의 곤경—예컨대 개인과 규범 사이의 괴리, 힘 빼기 전략의 역설, 조직화 개념의 세분화 필요성 같은 것들이 정당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해소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더 강화될까요? 그리고 “조직화를 하려는 사람일수록 조직이 잘 안되는” 곤경의 지점과 정당은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희원
요즘 등장한 ‘뉴웨이즈’ 같은 초당적 정치 플랫폼도 되게 흥미로운 흐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게 젊은 정치인을 길러내고 초당적으로 뭔가를 실험해보려는 시도잖아요. 정당만으로는 정치라는 것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정치 실험과 학습, 재진입의 장이 필요하다는 어떤 공백을 말이죠.

우리는 ‘사회상’을 놓고 경합한다거나 정치적 우정을 맺는 경험 자체가 부족한 채 성인이 된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정당 안에서 갈등만 남는 경우도 생기죠. 그런 가운데, 오히려 하나의 산업, 직업이라는 시장적인 설명을 통해 정치에 접근하는 상황이 된 건 아닐까요? 저 자신도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했던 활동들도 어느 정도는 시장화된 시도였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그 활동이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한다면 저는 독립서점이었을텐데, 또 다른 곳에서는 400만 지지세를 만드는 팬덤 정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정치인 육성 에이전시 같은 방식도 나타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시장의 언어로 설명이 잘 돼요. 그런데 저는 더더욱 정당의 언어, 정치의 언어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런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당위성 차원이 아니라 정당을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라는 생각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재균
저는 정당 바깥에서 활동하면서, 진보정당과 기자회견을 하거나 모니터링 작업을 함께 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느꼈던 건 한국 사회가 ‘기계적인 중립’을 지나치게 요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안의 경우 민주당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시민사회가 민주당과 함께 행동하면 곧바로 “시민사회는 민주당 편”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그래서 형식적으로라도 다른 정당까지 부르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면 본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까지 덧붙이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요. 그렇게 정당과 시민사회 모두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런 맥락에서 요즘 등장한 ‘초당적’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 정치색이 분명하면 오해 받거나 활동의 제약을 경험하는 구조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려는 태도 안에는 “아직 선택하지 않겠다”는 그런 유예라기보다, 선택을 해도 괜찮은 상황이 아니라는 감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지역에서는 정치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마이크’가 없는 상황이 많고, 대학 교수들도 방송이나 토론에 나가면서도 정치적 입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데, 청년들도 그런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 속하는 것의 부담을 느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태영
요즘은 갈등이 극단화되었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당파성을 배제하려는 흐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갈등이 커졌다면 당파성도 드러나는 게 자연스러울텐데, 실제로는 오히려 정치적 입장을 숨기고, 기계적인 중립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이런 갈등의 시대에 그 갈등을 매개할 수 있는 장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조직들이 모두 당파성을 회피하고 있다면 그것도 꽤 중요한 쟁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당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지금 민주당 당원만 400만 명이 넘는다고들 하잖아요. 그럼 이건 정치 조직화가 성공한 사례일까요? 만약 정당이 정치 조직화의 대표적 형태라면, 그렇다면 2010년대는 사실 정치 조직화가 아주 잘 된 시대였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정치 조직화는 이와 같은 맥락일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까요?

 

보코
운동 조직은 결국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데, 시민단체들은 과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성장한 경험이 있다 보니 그 태도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정치와의 결합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기보다는 “우리는 다양한 정당을 활용할 수 있어” 같은 식으로 접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치적 결합도 점점 위축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에, 사람들은 정당에 대해서는 훨씬 더 견고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정당은 힘을 다루는 공간이고, 그래서 “내가 정당 운동까지 한다면 그 만큼의 효용을 느껴야 하지 않나”, 혹은 “왜 그 정당이냐”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는 거죠. 그런 이미지나 환상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정당이라는 공간을 인식하는 건 아닐까요?

지난 10년을 보면 거대 양당은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럼 소위 진보정당들은 왜 점점 힘을 잃었을까. 실질적인 효용감을 주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 정당이 품고 있던 운동들, 더 크게는 사회운동 전체가 점점 더 취약해지면서 함께 길을 잃은 걸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기존의 양당은 극대화된 갈등 안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는 그런 갈등의 신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누구와 함께 어디서부터 이 운동의 ‘텃밭’을 다시 갈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 것 같아요. 요즘 광장을 보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그 막막함 때문인 것 같아요.

 

재균
광장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나는 건, 이번 광장에서 조직화에 가장 성공한 조직은 단연 민주노총이었다고 생각해요. 지역에서도 남태령을 넘은 분들이 많았고, 트랙터가 고개를 넘었다는 상징성은 시민들에게도 큰 효능감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실제로 민주노총이 이번에 굉장히 열심히 했고, 조직적으로도 힘을 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번 광장을 만들었다”는 확신을 갖고 시민들과 정서적 결합도 이뤄낸 것 같았습니다. 강한 위계 질서를 갖춘 조직이 보여줄 수 있는 힘, 명확한 전략, 실행력이 이번에 광장에서 드러난 게 아닐까 싶어요.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있어요. 그렇다면 정의당이나 녹색당, 진보당 같은 정당들이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진보정당들도 그에 상응하는 조직적 무게감이나 결정력을 갖추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신뢰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된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이 이번 광장을 보며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희원
정당 안에서 활동하면서 정치 조직화란 결국 '힘'을 조직하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사회운동은 의제나 사람 중심으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정당은 결국 힘을 만들어야만 하고, 그 외의 모든 건 그 힘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문제는, 힘이 없는데도 힘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이었죠. 사람들에게 “여기서는 뭔가 될 것 같다”는 기대를 줘야 하는데, 실제로 힘이 없다 보니 결국 선언만 남게 돼요. “이번엔 다르다”, “작지만 가능성이 있다” 같은 말만 반복하게 되고, 그런 말들만 쌓여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정당은 늘 ‘이겨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공간이고, 그 점도 조직화의 어려운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겨야 한다’는 승부의 구조가 있기 때문에 정당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고통이면서 동시에 존재 이유이기도 한 셈인데 복잡한 감정이 남는 지점입니다.

 

태영
재균 님 이야기 들으면서 저도 한편으로는 이게 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연적인 정치적 국면’—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벌어지고 판이 흔들리는 그런 순간들—그때 힘을 발휘하는 조직화 방식이 정말 우연성을 기반으로 한 것일까?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거예요. 그런 순간에는 빠른 판단과 집중된 결정력, 위계적 명령 체계를 가진 조직이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은 거죠.

그렇다면 우연적인 상황에서 유효한 건 우연적인 조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우연을 흡수하고 증폭 시킬 수 있는 위계적인 조직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 역설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걸 우리가 여전히 ‘조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건 또 다른 질문이겠죠.

또 희원 님 말씀 들으면서 궁금해졌던 건, ‘정당은 결국 힘을 조직하는 공간이다’ 라는 말이 정당이라는 형식에만 해당하는 건지, 아니면 정치 조직화 일반의 정의로 볼 수 있는 건지 였어요. 정치 조직화는 결국 힘을 향해야만 하나, 아니면 다른 방향성도 가능한가—그 자체도 중요한 논의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정당이라는 물음을 떠나지 못하는가? 

 

“정당이라는 물음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지금 가능한 정치적 실천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정당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랐다기보다는, ‘나를 대변할 사회적 깃발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
“정당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분들은, 운동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해야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하곤 해요”

 

우식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오히려 왜 우리가 ‘정치 조직화’라는 논의에서 이렇게까지 정당이라는 질문을 놓지 못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어요. 정당이 마치 계륵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데, 버리자니 아까운. 이건 제가 정당 활동 경험이 많지 않고, 성취나 효용감을 느껴본 적도 별로 없어서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당은 언젠가 적극적으로 활동해보고 싶은 영역이지만, 타이밍도 안맞았고 좋은 동료를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기회가 되면 하는거고, 안되면 만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당 말고도 다른 할 게 얼마나 많은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정당 활동을 오래 하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확실히 정당의 특수성과 그에 대한 애정, 고민이 선명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정당은 힘을 조직하는 곳”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모든 조직은 결국 힘을 조직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그렇게 정당과 사회운동, 정치운동이 분명하게 나눠지는 게 저한테는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가 저한테는 더 자연스럽고 잘 맞는 옷처럼 느껴져요. 물론 뭔가 애매한 자리에 있다는 느낌도 있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소개하기도 어렵지만, 지금 가능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정당은 분명 현실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조직이죠. 하지만 정당이라는 물음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지금 가능한 정치적 실천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함께 가지고 있어요.

 

보코

정당 조직이 아닌 다른 방식의 정치 조직화라면, 그게 어떤 방식이든 분명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유의미한 결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형태는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현실 세계에 얼마나 깊숙하게 개입할 수 있느냐' 일 텐데요. 그렇다면, 정당이 아닌 방식으로도 정치 조직화가 가능하다면 그게 어떤 형태일 수 있을지, 그리고 정말로 현실을 바꾸는 정치적 개입력을 가질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우식

음, 그러니까 저는 그러니까 결국 ‘정치 조직’과 ‘정치 조직이 아닌 것’ 을 구분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 걸까, 그게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치 조직이라는 걸 정당과 바로 연결 지어서 동일시하는 사고 방식이 정말 당연한 걸까, 지금 시대에도 그게 여전히 유효한 감각일까, 그런 질문이 자꾸 떠오르게 돼요.

정치 참여라는 걸 꼭 정당을 통해서 해야 하느냐는 고민도 함께 이어지는 거고요. 저 같은 경우는 선거나 제도 정치에 그렇게 깊이 몰입하지 않는 편이라, 아무래도 정당이나 선거라는 장치가 현실을 바꾸는 데 굉장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과는 시선이 조금 다를 수도 있어요. 물론 선거가 아주 강력한 수단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의 제 상태에선 그게 아직 크게 와닿지 않는 거죠.

물론 언젠가 제가 진심으로 지지하고 싶은 후보나 정당이 나타나면 저도 달라질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체감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 조직은 무엇이고 정치조직화의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코님과 같이 저는 정당 조직이 아닌 정치 조직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다만 저는 좀 더 그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는 편이죠.

 

희원
물론 정당은 감정적·물리적으로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공동체이기도 해요. 하지만 운동의 매체로는 꽤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녹색당처럼, 소수여도 당을 꾸리고 발화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아주 작은 논의도 언론이나 선거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발화될 수 있거든요. 저 자신도 그런 흐름 속에서 사회 변화의 경로를 경험하며 배웠고, 그 경험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좋겠다고 희미하게나마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혜민
저는 정당이 아닌 정치 조직이 과연 가능한가 하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뉴웨이즈처럼 새로운 정치 실험이 있어도, “그 조직이 과연 저를 대변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할 수 없거든요. 정당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엔 정당이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아요.

시민사회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정당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어요. 제가 정당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정당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랐다기보다는, ‘나를 대변할 사회적 깃발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작은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도 결국은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잖아요. 저는 정당이 그런 역할—사회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MBTI처럼요. 물론 그 이름표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그 자체로 지금도 정당은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고 있어요.

 

우식
논쟁을 조금 더 이어가보자면, 혜민님 말씀을 들어보면 정치 조직의 핵심은 ‘대표할 수 있느냐’ 여부인데, 저는 정당이 아니라 뉴웨이즈 같은 경우도 정치적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젊은 국회를 보고 싶다’, ‘기존 정당이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인을 원한다’는 유권자들의 바람을 뉴웨이즈가 분명히 대표하고 있다고 봐요. 물론 그것이 “뉴웨이즈 후보 ○○○” 이런 식으로, 제도적으로 명확한 형태는 아닐 수 있지만, 정치적인 요구를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 조직의 효능은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이라는 플랫폼은 물론 총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죠. 그런데 동시에 소수정당일수록 그만큼의 괴리도 크다고 생각해요. 제도정치라는 판에 들어가는 순간 ‘큰 변화’에 목표가 맞춰지고, 의석수에 무관하게 ‘총체적인 변화의 패키지’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를 남발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총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이 정당 외부에서 더 효과적인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정당은 물론 강력한 제도적 플랫폼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고, 변화의 경로는 더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당은 ‘대표’하는 조직이지만 계속해서 ‘대표되지 않는 변화’만 추구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정당이 아니더라도 보다 효과적인 변화의 경로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어요. 총체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적인 변화를 추구하자는 뜻이 아니라, 총체적인 변화를 더 실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방식의 질문이라는 점에서요.

 

태영

그럼 제가 질문을 하나 추가해볼게요. 예를 들어서, 청년 할당제 50%를 단일 의제로 내세우는 정당이 새로 등장한다고 해볼게요. 충분히 현실에서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잖아요. ‘청년 할당 50% 정당’, 말 그대로 ‘청년 할당당’ 같은 이름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게 단일 의제를 중심으로 한 정당이 나타난다고 했을 때, '그 정당과 뉴웨이즈라는 플랫폼은 같은가, 혹은 다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우식

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희원
아니에요. 그건 정말 전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정당은 당원이라는 성원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총회나 대표, 어떤 경우에는 이사회까지 갖춘 구조에서 성원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요. 그 차이가 바로 정치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정당을 통해 정치 무대에 오른다는 건 단순히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부터 자기 정치를 해낸다는 의미가 있거든요. 반면 뉴웨이즈 같은 조직은 정치인을 길러내고 돕는 비영리 플랫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기존 정당에서 청년 정치인이 홀로 서는 것은 너무 불리한 조건이니까 그 과정을 돕는 조직인 거죠. 그런 역할은 분명히 의미 있는 것이지만, 제가 앞서 말한 정치 조직화의 제한적 의미, 즉 힘을 실제로 조직해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혜민
계속 언급되는 효능감이라는 게 사람이나 조직, 정치적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정의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활동했던 단체는 일종의 여성 정치 세력화 연대 같은 조직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정치 운동이란 뚜렷한 의제를 갖고 움직이는 NGO는 많지도 않고, 저희 단체도 회원이 많지 않았어요. 당시 미투 운동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커져도, 사람들은 피해자 지원 단체에 기부하는 쪽을 더 효과적인 선택으로 여겼죠. 저도 그랬을 것 같고요. 그건 어떤 운동이 효능감을 주는 방식과 구조가 정당, 시민단체 그리고 의제별로 다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같은 정당 안에서도, 누군가는 의제가 사회에 전달되는 방식에서, 또 누군가는 선거 승리에서 효능감을 느껴요. 예를 들어 어느 성소수자 당원에게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성소수자 의제가 당에서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치적 효능감이란 것도 고정된 게 아니라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진보정당은 더 엄격한 기준에 놓이고, 탈락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죠. 예를 들어 민주당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실망하면서도 그 정당은 유지되지만, 정의당은 그러기 쉽지 않죠. 한편 누군가 '그러면 그게 가혹하냐'고 묻는다면 저 역시 마땅하다고 생각하구요. 그게 정의당에 거는 기대니깐요. 결국 기대하는 정치적 윤리, 정치적 효능감의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정당이나 정치 조직이란 것도, 우리가 말하는 ‘힘’이라는 것도 모두 사람마다 굉장히 다르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고 느껴요.

 

태영
어쩌면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이야기들은 결국, 동시대 정치 감각과 경험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이른바 '천만 당원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 정당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 공동체로 느껴지기보다는, 점점 하나의 플랫폼처럼 작동한다는 느낌도 들거든요.

예컨대 민주당은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이해보다는 당파성을 감추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흐름도 보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자당을 보수 정당이라고 언급하거나, 국민의힘과 국민연금 안을 같이 내고 합의하는 걸 보면, 두 정당 모두 당파성이 희미한 정당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뚜렷한 이념 중심의 정치 공동체들이 그걸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 다시 말해 정치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싸우는 피로가 너무 커진 시대가 된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 정당 외부의 조직들이 새롭게 역할을 맡고 있는 것도 하나의 흐름이고요.

한편으로는 거대 정당이 천만 당원을 모았다는 사실도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정치 조직화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말 흥미롭죠. 일종의 팬덤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 지지일 수도 있고요. 결국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정치 조직화'라는 개념이 과연 여전히 유효한 건지, 아니면 새롭게 다시 구성되어야 하는 건지—그런 질문입니다.

 

보코
저는 지금까지 정당 운동이 충분한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정당이 아닌 방식의 정치 조직이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여전히 있어요. ‘뉴웨이즈를 정치 조직으로 볼 것이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긴 했지만, 저한테는 오히려 그건 정리된 문제에 가까워요. 저는 정치 조직화를 위한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정당이 아닌 다른 형식이 가능하냐는 데 확신이 없거든요. 물론 이런 고민에는 ‘정치’라는 걸 어떻게 상상하고,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상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고요.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이 계엄과 같은 위급한 국면에서 ‘우리는 이 결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 결정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내렸는지, 그 조정 과정에 누가 참여할 수 있었는지에 따라 그 조직이 정치 결사체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당만이 갖는 특수한 공적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요.

사회운동 조직은 비슷한 가치관, 유사한 정치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지만, 정당은 그렇지 않아요. 나와 감각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공통의 사회적 방향성을 그리면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죠. 그 안에서 설득하고 경합하는 것, 그런 공론장이 열리고, 내가 그 공간에 들어가 있는 건 굉장히 독특한 정치적 경험이에요.

정당은 사회적 가시성을 만들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함께 정치를 학습하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의 정당들이 그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그 가능성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정당이라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보고, 만약 정말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면 그게 뭔지 너무 알고 싶은 마음이에요.

 

보영

그런데 저는 그게 정당의 특성이긴 해도, 정치적 결사체의 필수 조건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어요.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운동도 정치이고, 정당도 정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늘 정당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분들은, 운동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해야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하곤 해요. 그럴 때마다 “운동도 정치예요”라고 계속 설명하고 설득해야 되는 순간들이 자주 생기죠.

그러다 보면 문득,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결사체’의 요건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요. 왜 어떤 결사체는 ‘정치적’이라고 분명히 인정받고, 또 어떤 곳은 마치 정치 바깥에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걸까? 도대체 그 기준이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감 나누기 

 

태영

자, 이 정도로 하고 오늘 이야기는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앞서 논의한 특정 쟁점에 계속 머물기보다는, 지금부터는 각자 마음껏 풀어놓는 이야기로 오늘을 마무리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이야기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생각이나 아직 다 풀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들을 마음껏 열어주셔도 좋고요. 혹은 오늘 대화를 정리하는 느낌으로 전체적인 소회를 나눠주셔도 좋아요. 

 

우식
오늘 제가 논쟁적으로 제기한 이야기들이 논의를 풍성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점은 잘 전달되었다고 믿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도 사실 굉장히 정치적이잖아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의견이 조율되고, 때론 대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도 있으니까요. 물론 기업은 이윤을, 정당은 권력이나 힘의 조직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그걸 근본적인 차이로만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어쩌면 기업스러운 정당도 있고, 정당스러운 기업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저 역시 오늘 참여하면서 새삼 깨달았어요. 저는 제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나 정당 활동가라고 명확히 규정해본 적이 없고, ‘정치 조직화’도 본격적으로 고민해본 주제는 아니었어요. 최근 5~6년은 연구자로 살아왔지만, 사실 저한테는 그것도 완벽히 잘 맞는 옷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새삼 깨달은 건, 저는 결국 ‘모임을 잘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좋은 팀의 일원이 되고 싶고, 좋은 흐름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제 근본적인 욕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은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게 머쓱하기도 하고, 정치 조직화라는 거대한 주제 앞에서 제 이야기가 너무 작게 느껴질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면 좋은 팀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제가 정치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 모임의 리듬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나만의 언어를 찾고 싶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 자기이해의 지형을 조금 넓힐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준희
이 주제로 집담회를 준비하면서, 저희도 본격적으로는 처음 다뤄보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떤 흐름으로 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관점들이 나와서 흥미로웠고, 이 대화를 잘 정리해서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중간에 더 깊이 끼고 싶었지만, 시간 제약 때문에 망설인 게 조금 아쉽고요.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치 조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진 않았지만 그 가능성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이에요. 특히 정당이라는 조직 형태는, 우리가 2010년대에 경험했던 ‘임시적이고 느슨한 연대’ 방식과는 여전히 잘 맞지 않는다는 감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임시적 연대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예컨대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처럼, 임시적인 형태로도 분명한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들이 지금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정당은 그런 유연함을 지니기 어려운 구조이기에, 지금의 위기와 변화하는 시대적 감각 속에서 정당주의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범일

최근 뉴웨이즈 모임에 자주 참가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뉴웨이즈에는 뉴웨이즈의 역할이 있고, 정당은 정당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갖고 봤었어요. 그러다가 돈을 내고 뉴웨이즈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들어봤는데, 알차더라고요. 제가 당에서 기획했던 선거/정치 교육보다 촘촘한 구성이었어요. 그래서 잘 모르면서 비판적으로 봤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어요. 저는 뉴웨이즈가 정당이나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준수한 정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정당에서 해야하는 역할의 일부를 맡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녹색당은 대중 조직화에 약했는데, 뉴웨이즈는 그 대중 조직화를 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오늘 정치의 다양한 층위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는 대화를 들을 수 있어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유현

저는 정당주의자로서, 굉장히 자극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고요. 다음 집담회 때 또 와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재균

저도 오늘 이야기 정말 재밌게 들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시민운동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활동은 '낙선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누가 후보로 나와 있든, 무소속이든, 범시민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든 간에, 그건 운동의 연장이자 또 하나의 정치적 실천인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정당과 시민사회, 노조, 노동운동 등은 결국 다 연결된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물론 지금의 정당, 특히 지역에서 정당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솔직히 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이런 지점들도 앞으로 더 넓게,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코

저는 정당주의자는 아니고요,(웃음) 그런데 오늘 대화 속에서 자꾸 그렇게 비춰진 것 같아서 꼭 그 오해를 풀고 싶어요. 요즘 계속 반복되는 탄핵 국면이나 점점 더 공고해지는 정치적 양극화 같은 현상들을 보면서, 뭔가 답답함과 갈증이 내 안에 꽤 깊이 농축되어 있구나—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그걸 더 뚜렷이 느낀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경험한 여러 답답함이나 곤경과는 별개로, 정치적 결사체가 이래서 필요하구나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고, 저 역시 그런 필요를 학습하는 과정 중에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다만, 그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 당장 어디에 가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좀 막막한 감정이 남더라고요. 아마도 그런 갈증이 오늘 제 이야기 안에도 많이 묻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렇지만 저는 서로 다른 생각을 확인하는 건 늘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혜민

사실 저는 탈당하고 다시 입당한 이후에도, 주변의 당원분들이 “그럼 활동 다시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올 때,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내가 정당에 기대하는 바가 뭐였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우리가 흔히 “정당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오늘은 “나는 정당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했나” 라는 질문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꼭 당원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어떤 방식으로는 정당이나 정치적인 운동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혹은 혐오하듯이 거리를 둔 건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결국, “쟤네 왜 이렇게 못해?”라고 말할 때, 그 말 안에는 내 안에 있는 책임의 회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정당이라는 것도 결국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나의 태도나 관계맺음도 이 흐름에 영향을 주는 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희원
오늘 대화를 들으면서 ‘내가 정당에 이렇게 애정이 있었나?’ 하고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정당 없이 이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정당은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 지향을 자기 설명과 책임으로 연결 짓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점이 늘 아쉽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을 요구하고, 책임을 묻는 힘이 작동하는 공간—즉, 정당 같은 곳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걸 오늘 다시 깨달았어요.

오늘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도, 저한테 그 감정을 꺼내게 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드리고요. 다음에 꼭 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기획을 하고 싶은 사람의 조직화’에 대한 부분이에요. 예전에는 제가 기획을 잘하고 있을 때 조직화도 정말 잘 됐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늘 기획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걸 여러 번 느꼈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보영

오늘 대화는 정말 너무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좋은 시간이었어요. 특히 저한테는 2010년대라는 시대의 조건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사회운동이 점점 더 분화되고, 개인들이 여러 조직에 동시에 소속되기조차 어려운 구조적인 현실 속에서, 이제 조직화에 대한 상 자체도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예전처럼,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만을 조직화의 성공으로 상상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도 들었고요. 물론, 그럼 앞으로 어떤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건, 이제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에 대해서 단순히 아쉬움으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오늘 얻은 가장 중요한 배움이었습니다.

 

태영

결국 오늘 이야기의 마지막 논점은 정치 조직화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느냐였던 것 같아요. 그것이 ‘힘’이냐, ‘민주주의’냐, 혹은 다른 어떤 것이냐는 질문이 오늘 끝까지 따라왔고, 그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동시대적 경험과 어긋나면서 이 논의가 더 분명하게 제기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이 어느 시점에서 정당을 만드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정말 정당이 맞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 건, 분명히 어떤 동시대적 위기와 부딪힌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오늘은 뉴웨이즈라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논의가 더 활발해지긴 했지만, 사실 정당이 아닌 조직도 정치 조직이 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시민단체는 정당인가? 같은 질문들도 앞으로 계속 논의해 볼 만한 주제라고 느꼈습니다. 

안내드렸던 것처럼, 다음 2회차 집담회에서는 2010년대 정치 조직화의 맥락에서 ‘조직의 권한과 대의,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오늘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모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