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바깥, 소설의 안쪽>
3화 만국의 오타쿠여, 덕질하라!
지영(국문학 연구자)
1. 대잉여의 시대
1997년 7월 연재를 시작한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는 2014년에 3억 부 이상을 발행하여 “가장 많이 발행된 단일 작가의 단일 만화 시리즈”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원피스>의 세계는 해적왕 골드D 로저가 죽으면서 남긴 “나의 보물?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 이 세상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라는 말로 인해서 ‘대해적 시대’를 맞이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밀짚모자 루피와 그의 친구들 역시 각자의 보물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다. 이 작품이 대해적 시대를 표방하고 전개될 수 있는 이유는 작품의 배경 공간이 육지가 거의 없는, 즉 주로 섬들로만 이루어진 행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적과 해군이라는 설정이 개연성을 지니며 작품 속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2017년 한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면 이 시대를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선 위의 통계를 보자. 이 통계는 2017년 8월 통계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제활동인구조사」로, 매월 15일 현재 만 15세 이상 29세 미만 인구 중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고용지표를 조사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 2월에 실업자의 수와 실업률이 모두 최고치를 찍었고, 그 이후로는 모든 항목이 점차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통계에 사용된 ‘개념’들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통계에서 ‘취업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조사 대상 주간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자”이거나 “동일 가구 내 가구원이 운영하는 농장이나 사업체의 수입을 위해 주당 18시간 이상 일한 무급가족종사자”, 혹은 “직업 또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나 일시적인 병 또는 사고, 연가, 교육, 노사분규 등의 사유로 일하지 못한 일시 휴직자”이다. 반면에 ‘실업자’는 “조사 대상 주간에 수입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던 사람으로서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을 뜻한다.
얼핏 보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지만 이 통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취업자’와 ‘실업자’에 대한 개념 규정은 두 대상에 대해 동일한 강도의 기준을 적용한 것이 아니다. 주당 1시간 이상을 일한 자, 무급가족종사자, 일시 휴직자까지를 포괄하는 ‘취업자’ 개념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포함할 수 있게 설정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실업자’ 개념은 (1) 수입이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2) 4주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했으며, (3)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 가능한 사람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성립될 수 있다.
청년을 비롯한 전반적인 실업률이 높은 것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실업률이 통계상으로 낮게 잡히게 하기 위해 통계에 사용되는 개념을 임의적으로 설정하는 문제는 한국에서 취업률이 낮은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이다. 이 통계 속에서 시간제 노동자, 가족기업 속 무급 노동자, 일시 휴직으로 인해 벌이가 없는 노동자의 현실은 가시화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은폐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개인의 소망은 환상에 불과함이 밝혀진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은 노동자나 국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보다는 삶의 창조자 혹은 향유자이기를 선호하면서 일명 ‘덕질의 세계’로 빠져든다. ‘노동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라는 표어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으며 경제 성장을 주도한 세대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만고에 쓰잘데기 없는 짓’을 많은 시간과 온 마음을 다해 아주 열심히 한다. “지금 뭐 해?”라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덕질!'이라고 대답하면서, 이 나라의 “젊은 세대 전체가 오덕화(오타쿠화)하고 있다. 일자리는 없고, 취향은 다양해졌고, 인터넷은 싸니까.”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되풀이해서 즐기고 또 즐기면서 파고” 든다.
2. 신인류 오타쿠(オタク)와 <에반게리온>의 세카이계(セカイ系, 世界系)
‘덕질’이란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 말의 기원에 해당하는 ‘오타쿠’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타쿠’라는 말은 일본의 로리콘 만화잡지 <만화 브릭코> 1983년 6월호에 게재된,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나카모리 아키오의 기사 <‘오타쿠’ 연구>에서 유래했다. 나카모리는 오타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그의 어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가 사용한 ‘오타쿠’라는 말은 일종의 멸칭(蔑稱)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보세요, 어느 반에나 있을 겁니다. 운동은 젬병이고, 쉬는 시간에도 교실 안에만 있고, 그늘에서 꼼지락거리며 장기 같은 것에 열중하곤 하는 놈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에반게리온> 붐으로 후끈 달아올랐던 1990년대 후반에 단행본 《오타쿠학 입문》(1996)을 출판한 오카다 토시오는 멸칭이자 차별어로서의 ‘오타쿠’를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오타쿠학 입문》에서 오타쿠를 “영상의 시대에 과잉 적응한 시력과 장르를 가로지르는 고성능 레퍼런스 능력을 바탕으로 창작자의 암호를 하나도 남김없이 읽어내려는 탐욕적인 감식자”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곧 오타쿠란 “능력과 교양을 기초로 작품을 감상”하는 주체, 다시 말해 작품 수용 태도에 의해 정의되는 것임을 뜻한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해독 능력과 비판 능력, 더 나아가 이후의 창조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이 바로 오타쿠인 것이다.
오카다의 노력은 ‘오타쿠’가 가지고 있던 노동과 생산에서 소외된 자, 범죄적 성향을 지닌 자라는 낙인을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해외에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일본은 콘텐츠 강국, 쿨재팬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제 ‘오타쿠(おたく)’라는 말도 고유명사처럼 ‘오타쿠(オタク)’라고 가타카나로 표기되면서 오타쿠에 대한 인식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오타쿠라는 말은 “오타쿠→오덕후→오덕/덕후”의 형태로 변화한다. 그리고 오덕/덕후에서의 ‘덕’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덕심=오타쿠들의 심리. 덕부심=오타쿠들의 자부심. 덕질=오타쿠 활동. 덕력=오타쿠인 정도. 덕친=오타쿠 친구. 양덕=서양인 오타쿠. 밀덕=밀리터리물 오타쿠. 탈덕=오타쿠이기를 그만 둠." 휴덕=덕질을 잠시 쉼.
일본에서 본격적인 오타쿠 문화의 문을 연 작품은 1995년 10월 4일부터 1996년 3월 27일까지 TV도쿄에서 26부작으로 방영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다. 이 작품은 서기 2015년을 배경으로 ‘에반게리온’이라는 생체 로봇을 타고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는 소년・소녀 파일럿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주인공은 열네 살의 소년인 ‘신지’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에반게리온 초호기에 탑승하여 사도의 공격으로부터 인류를 지킨다. 하지만 그는 에반게리온에 탑승하는 것을 매번 두려워하고 마지못해 그 일을 수행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세계의 종말’이라는 설정과 소년 소녀의 ‘사랑’이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두 소재를 버무려 오타쿠 문화의 신기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에 ‘세계’를 뜻하는 일본어 ‘세카이(せかい)’를 가타카나로 표기한 ‘세카이(セカイ)’가 고유명사처럼 통용되면서,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세카이계 작품’이라는 분류도 등장한다. ‘세카이계 작품’에서는 사회나 중간영역이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작품 속의 세계가 왜 그런 모습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오지 않는다. 왜 세계가 종말의 위기를 맞이했고, 사도는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장면은 이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세계의 위기 속에서 소년 소녀들의 목숨을 건 고투가 그려질 뿐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지금의 십대는 “연애냐 세계의 종말이냐” 둘 중 하나밖에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쿠하라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이 말이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에 나타난 일본 서브컬처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문화를 향유한 세대가 지닌 의식의 특징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관계 맺기를 통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사회는 사라진 지 오래고, 작품 속에서는 메마른 감성을 지닌 개인들과 파국 직전의 세계만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개인들은 사랑의 불가능성과 그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이 세계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3. <에바 로드>, 오타쿠의 길
신지, 레이, 아스카 등 동갑 소년 소녀들이 생체 로봇의 파일럿이 되어 적과 싸우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굉장히 난해한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사람은 숫자로 불리는 ‘사도’, 세컨드 임팩트, 핏빛 바다, 어색한 비율의 로봇 등을 보면서 계속해서 의구심을 갖지만, 단지 화면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그 의문들을 풀 수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의 열렬한 팬들은 작품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쾌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미소녀 캐릭터인 레이와 아스카를 좋아하면서(이를 ‘모에(も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녀들을 현실 속 연인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오타쿠가 가상공간에 사로잡혀 현실의 문제는 외면한 채 삶을 낭비하는 이들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오타쿠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을 뜻하는 ‘덕질’은 단순히 소비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반해서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에 참여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박현복과 이종호의 <에바 로드>와, 영화 <에바 로드>를 만든 두 인물과 인터뷰한 내용에 그들의 삶과 허구적 상상력을 엮어서 소설로 각색한 장강명의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바로 그 예이다.
일본에서 초기 오타쿠 계층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만”든 ‘크리에이터’였다. 반면에 요즘 젊은 세대는 “항상 받는 입장에 머물”며 ‘유저화’되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유저 입장에서 “하나의 작품을 다 소비하고 나면 또 다른 작품으로 이동해서 그 타이틀을 소비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것은 분명 부정적인 현상이지만 여기에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로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에서 현실화되고 있었다.
2012년 6월 22일. 일본의 <에반게리온> 공식 홈페이지에 이벤트 공지가 떴다. 프랑스·미국·일본·중국 4개국 특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오면 상품을 주겠다는 공지였다. 그날 밤, 동네 친구인 이종호 씨(31)와 박현복 씨(31)가 만났다. “봤냐?” “그걸 누가 하겠어? 당장 2주일 뒤에 프랑스에 가서 도장(스탬프)을 받아야 하는데.” “너, 이민 가겠다며? 그 돈으로 이거나 해라. 네가 안 하면 누가 하냐?” “그러면 넌 왜 안 하는데?”… “그럼 우리 둘이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에반게리온 4개국 스탬프 랠리’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본격 덕질 로드 다큐’ <에바 로드>의 시작이었다.
“오타쿠 유전자를 감춘 채 평범한 직장인 코스프레로 살아가는” 종호와 “패배자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현복. 이 둘은 사춘기 시절 <에반게리온>을 보며 꿈을 이야기했었지만, 지금은 배불뚝이 어른이 되어 때론 나약하게 때론 치열하게 살아간다. 이런 이들에게 꿈과 행복을 찾아줄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 소식이 전해졌다. 처음엔 ‘이런 걸 누가 해?’라던 이들은 결국 전 세계에서 단 두 명의 랠리 완주자가 된다.
이 과정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이 바로 영화 <에바 로드>이다. 영화의 제목인 ‘에바 로드’는 이들이 만든 신조어로 ‘에반게리온의 길’이라는 뜻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오덕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내용”으로 보다 보면 “한심하다며 혀를 차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는 오타쿠의 에너지가 집중되어 만들어진 것답게 ‘쓸데없이 고퀄리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어떤 진실성의 힘 같은 것”도 담겨 있다.
행복한 오타쿠
https://www.youtube.com/watch?v=C3Alox690KY
이들이 에반게리온의 팬이 된 것은 <에반게리온>이 자기의 이야기를 대신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팬들에게 “‘싫은 일로부터 도망치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라든가, ‘행복해질 기회는 어디에라도 있어’”라는 말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모두 나의 고민과 삶을 무시하지만 <에반게리온>은 개인의 괴로움이 세계의 존망과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고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에바 로드>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한심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은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가치로 환원되긴 어렵더라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열정’을 되찾고 타성에 젖은 삶을 회복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깨달음은 자신이 놓인 자리와 자신이 가고자 하는 자리, 경제적 안정과 정신적 만족감 사이의 괴리를 부각시키면서 영화 속 인물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타성에 젖어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갖게 만든다.
4.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에반게리온은 오덕이 만든, 오덕을 위한, 오덕의 작품이었다. 오덕 문화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 오덕들을 등쳐먹는 데도 단연 최고봉이었다.
박현복과 이종호가 <에바 로드>를 찍은 것도, 장강명이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쓴 것도, 그리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심지어 창작자마저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오덕질은 인생의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다’라는 다큐멘터리의 기본 주제가 정해진” 것도 다 <에반게리온> 덕분이었다. 덕력 좀 있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은 봐야 하는 <에반게리온>이 새로운 창작들로 이어졌다.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와는 달리 돈과 몸과 시간과 노력을 모두 다 들여야지만 이룰 수 있는 바로 그것! 세상에 없을 뿐 아니라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창안하는 힘을 자타공인의 오타쿠들이 발휘한다.
영화 속에는 작곡하는 법을 전혀 몰랐던 이들이 작곡하는 법을 배워서 만든 OST가 중간중간 흐른다. 특히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들리는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어. 하지만 많은 날을 흘려보냈지.”라는 가사에서는 고단한 인생과 그 인생에 파묻혀 소소한 즐거움을 상실한 사람의 애수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서 주저앉지 않고, 계속해서 “흘려보낸 나를 찾아” 에바 로드를 걸어간다. 그리고 이미 자신은 이 길 위에 있음을 노래한다. 이 길 위에서만 ‘착한 아이’에게도 ‘헛된 희망’에도 ‘안녕’을 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함투성이이고,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만화였다.” 이 애니메이션은 영화를 만든 박현복과 이종호의 “청춘과 비슷했다.” 장강명이 소설 속에 삽인한 이 구절로 인해 <에반게리온>과 등장인물의 삶은 유사한 궤적을 그리게 된다. 사실 ‘결함투성이’고 ‘실상은 아무것도 없’기는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무결하고 의미로 가득 찬 삶을 현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삶은 비루할 뿐 아니라 특정 시기에는 고통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휴덕’을 할 수는 있어도 ‘탈덕’을 할 수는 없다. 현실 속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고통을 하찮게 여겨도, <에반게리온>은 ‘나의 고통'과 그 고통을 느끼는 내가 '특별하다’고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생산하기보단 소비하는 자들, 공부하기보단 놀이하는 자들, 진중하기보단 산만한 자들, 규범에 얽매이기보단 새로운 궤적을 만드는 자들, 그들이 바로 오타쿠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는 아직까지 인간의 삶을 기능과 쓸모라는 기준을 적용해 평가하는 시선이 만연하다. 그래서 일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냉혹한 비판을 가한다. ‘오타쿠=잉여=쓰레기’라는 등식을 만들고, 이 등식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이런 인식틀이 작동하는 한 우리의 삶은 빠른 속도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쓰레기’가 되어 갈 것이고, 오타쿠들은 ‘사회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사회의 바깥'과 '소설의 안쪽’을 배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