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6화 우리집 살인마

 

지영(국문학 연구자)

 

1. 대중문화 속 재벌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대중문화 속에 재벌이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감정적인 위안을 받으려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 부절적한 욕망과 그에 대한 응징 등이 주된 서사를 이루었다. 드라마마다 한두 명의 부유층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들도 중소기업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 시기 드라마에서 재벌은 말 그대로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재벌은 백마 탄 왕자의 모습으로 가난하고 씩씩한 여주인공 앞에 자주 나타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여성과 강력한 재력을 지닌 재벌 남성이 만나 여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신분상승을 하는 신데렐라형 서사가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IMF 이후 국가 차원의 긴축재정과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가계의 경제적 상황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들은 여주인공이 가난과 고통에서 한 번에 벗어나는 신데렐라형 드라마를 보며 대리만족을 얻었다. 그러니 이 시기 드라마 속 재벌은 꿈을 현실이 되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재벌, 그 중에서 재벌 2~3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이코패스의 형상으로 재현된다. 물론 <힘쎈여자 도봉순>의 범인처럼 사이코패스가 재벌이 아닌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친형과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죽인 <별에서 온 그대>의 신성록, 자신의 살인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도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 <리멤버>의 남궁민, 형을 죽이고 형인 척 연기까지 하며 형수와 동거하는 <피고인>의 엄기준, 아예 비밀공간까지 만들어놓고 수시로 살인을 하는 <보이스>의 김재욱처럼 대부분의 드라마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는 재벌들이다. 이들은 얼핏 보면 훈훈한 외모를 지니고 예의도 바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잔혹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대중문화 속에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경영 전략을 짜는 재벌의 속성이 악역으로 인격화된 것이라고 진단할 수도 있다.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타인의 인격을 체계적으로 말살하거나, 타인의 생명을 가차 없이 제거할 수 있는 이 인물들은 거대자본이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만들어진 사이코패스이다. 이들은 도덕 체계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다시 말해 도덕과 무관한 삶을 살아도 되는 존재들이다.[각주:1]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과의 대처 켈트너 교수는 권력이 우리 뇌에 미치는 변화가 전두엽 외상 환자가 입은 손상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공감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전두엽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변한다. 권력을 가졌다는 인식은 다른 사람과의 교감을 방해하고, 공감 능력을 손상시킨다. 이러한 특성은 사이코패스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러니 대중문화 속에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로 그려지는 것은 꽤 개연성 있는 설정이다. 사이코패스 재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공감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자 권력에 잠식되어 공감할 능력을 상실한 인간이다.[각주:2]

 

2. 사이코패스,선택적감정 불능 상태

지금까지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 사이코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대중문화 속 재벌 사이코패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역할이었다. 그의 열연으로 어이가 없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고,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의 분노는 치솟았다. 맷값을 빌미로 자식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구타한 후 사건을 은폐하고, 마약과 술, 여자에 취한 향락적 삶을 사는 그는 체력적으로도 강해서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정신의학적으로 정확한 진단명은 아니지만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이코패스는 희로애락 등 상황에 적합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한 이들은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양심이 부재하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하는 세계를 만들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다. 냉담하고 거짓말에 능한 사이코패스들은 정상적인 사회관계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강한 권력을 지니게 될 때 착취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갈등을 해결할 필요도 없고 상대를 공정하게 대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사이코패스는 왜 등장한 것일까? 사이코패스를 규정하는 요소에 환경적 요소와 더불어 유전적 요인이 포함된다면 사이코패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상용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정신이상을 뜻하는 사이코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이 역시도 의학적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이와 관련된 용어들이 세분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이기적인 태도와 자신의 즐거움이 타인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사회가 되면 사이코패스와 같은 인간 유형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들은 양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면서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를 점유할 것이다. 양심에 따라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보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 이루어지는 병적인 사회에서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코패스 재벌과 관련된 사례 중 하나로 유투브에는 <베테랑><리멤버>를 교묘하게 편집해서 유아인과 남궁민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 올라와 있다. 영상은 편집본인 만큼 분노를 내뿜는 둘의 모습을 잘 담아내긴 했지만 영상 속에서 싸움의 승패가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최악의 악인인 이 둘이 실존인물이라면 과연 이 둘이 싸움을 할까? 서로가 상대의 존재를 알고 있더라도, 자신만큼의 지위를 가졌고 그 잠재력이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상대와 이들은 아마도 싸우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분노와 공격성은 대부분 약자들을 향한다.

이 둘은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상상하지 못한다. 게다가 남궁민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재벌 2~3세인 이들은 아버지의 말에는 찍소리도 하지 못한다. 공격성을 드러내지 못함은 물론 분노조절장애도 아버지 앞에서는 발휘되지 않는다. 즉 사이코패스로 그려진 이들의 감정 불능 상태는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변하는 선택적감정 불능 상태가 바로 이들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할 때 이들은 분노를 조절할 필요가 없다. 그 무엇도 잃을 리 없는이들의 분노가 더 이상 그 무엇도 잃을 게 없는사람들의 삶을 손쉽게 파괴한다.

 

3. 가해자의 기억 찾기

이제 소설 속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사건의 서사를 구성할 때 가해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잡는 일은 위험하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좋든 싫든 주인공의 삶에 정서적으로 밀착될 수밖에 없다. 선량한 주인공이 고통 받는 이야기를 읽고 독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이입하거나, 고통을 주는 악인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얼개가 잘 짜인 이야기일수록 독자들은 작중인물들에게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 사건의 명백한 가해자인 한유진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는 정유정의 종의 기원[각주:3]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살인자들이 사후적으로 자신의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여기에는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동기나 독자의 연민을 자아내기 좋은 감정적 요소들이 삽입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자칫하다가는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구성은 가해자에 대한 비판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살인자인 주인공을 사이코패스로 설정함으로써 그런 위험에서 벗어난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상위 1%에 해당하는 프레데터’, 순수 악인인 한유진은 그의 잠재된 공격성을 약물에 의존해서 억누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기에, 게다가 약물의 힘까지 작용했기 때문에 그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다. 그래서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더라도 주인공의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독자들은 주인공에게 심리적인 거리를 둔 채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가해자의 기억을 찾아가는 구성인 만큼 역순행적으로 진행된다. 어머니가 죽어 있는 집에서 깨어난 유진은 그 전날의 기억을 차츰 회복해 가고, 어머니의 비밀노트를 통해서 어린 시절 자신이 형과 아버지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 속 시간은 큰 틀에서는 현재에서 점점 먼 과거를 향해 가고 중간중간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유진의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일상적 에피소드에 녹이고, 유진이 자신의 어두운 면에 차츰 다가갈수록 소설의 긴장감은 커진다.

어머니의 시체를 목격하고 유진은 가장 먼저, 집 안에 몰래 들어왔을 누군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머리가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채 이상한 게임에 휘말린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어머니 주변에 있는 단서들을 찾고 기억을 더듬으면서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이모와 친구이자 입양된 형인 해진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로스쿨에 입학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모든 증거가 해진을 범인으로 가리키도록 조작한 후 해진마저 살해한다.

소설은 유진이 전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상태로 끝난다. 그러므로 유진의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망각은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말이자 유진의 머리가 내놓은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그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망각을 택했다. 유진의 기억 찾기는 소설의 진행 방향인 동시에 거짓에 의해 은폐되었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4. 악은 어디에나 있다

기억이 돌아온 유진은 어젯밤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어머니가 보는 데서 살인을 저질렀고, 어머니는 나를 경찰에 맡기는 대신 함께 죽기로 계획했지만, 면도칼에 머리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당신만 죽어버리게 된 것이 어젯밤 사건의 전모였다. (209)

이런 서술이 이어지는, 즉 감정이 없는 살인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소설을 따라 읽다 보면 작가는 왜 이런 소설을 썼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코패스를 형상화하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은 탁월하다. 그는 이 탁월함을 이용해 사람들이 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에 저항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본 적 없는 누군가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악인은 나를 비롯해 누구나될 수 있다. 이것이 작가가 악에 대한 성찰후에 내놓은 결론이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도 인용하고 있는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에서는 이것을 분명히 한다. 버스는 살인이 생존과 번식의 진화적 경쟁 속에서 인간이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도전들에 대한 매우 효과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한다. 살인에 대한 기본적인 충동은 우리의 삶에 여전히 만연하다. 지구상에 완벽하게 안전한 장소는 없으며 살인자들은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살인자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각주:4]

소설 속에서 유진이 주로 살해하는 대상은 가족이기 때문에, 유진을 이웃집 살인마가 아니라 우리집 살인마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유진이 사이코패스라는 증거는 작품 속에 흩뿌려져 있다. 유진은 흥분의 역치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집중할 일이 생기면 오히려 호흡이나 맥박의 속도가 뚝 떨어진다.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유진은 사이코패스답게 마음만 먹으면 거짓말쯤은 자동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보고 난 후에 그게 실화라는 게 무섭고, 산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라고 평한 영화를 보면서 혼자 낄낄 소리까지 내며 웃는다. 형과 아버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자살을 시도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초등학생인 그는 새로 산 큐브와 어머니의 핸드백에서 꺼낸 지갑을 함께 챙길 만큼 주도면밀하기도 하다. 또한 해진이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졌을 때도 가슴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해진에게 위로 한 마디 건네지 못한다.

사실 이 정도 일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종종 나타날 수 있다. 유진이 사이코패스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겁먹은 것에 끌린다는 사실이다. 그는 밤에 조깅을 하면서 혼자 길을 걷는 여자들을 뒤쫓고, 그 여자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고 짜릿함을 느낀다. “등에 대한 육감이 남자보다 두 배로 뛰어나면서 겁은 두 배로 많다는 점때문에 그는 여자들을 따라간다. 그가 여자를 쫓는 놀이를 하는 동안 모든 법칙은 그가 정하고 이동경로는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결국 그 놀이터 안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유진은 환경적 요인보다는 선천적 요인에 의해서 사이코패스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자신이 사이코패스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어머니와 이모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통제는 유진에게 폭력적인 학대의 일종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형을 벼랑 아래로 밀어버린 유진이 사이코패스임을 알면서도 격리시키지 않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녀는 유진이 자식이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과 큰아들을 죽인 유진과 생사를 함께 할 것을 결심한 후 유진의 폭력성을 통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통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순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5. 적자생존 = 부적자사망

다윈의 종의 기원에 담긴 사유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적자생존일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자 혹은 그 환경에 적합한 성질을 지닌 자가 살아남는다.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주어진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이 세상에 적합한 자는 살아남고 부적절한 자는 죽게 되어 있다. 이것이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우리에게 말하려고 했던 핵심이다.

그렇다면 정유정이 종의 기원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책의 표제와의 연결선상에서 작품의 결말을 생각해 보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삶은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것이다. 소설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명석한 두뇌와 건강한 신체를 지닌 20대 남성이면서,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한유진이다. 아버지, 어머니, 이모, 친형, 입양된 형까지 그의 가족을 몰살하고도 그는 법망을 피해 아직도 살아있다.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기업처럼 경영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의 감정은 없느니만 못한 존재가 되었다. 순간순간 분출되는 감정은 경쟁의 순간에 이익이 되기보다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다보니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 위기의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재계의 유명인사들 중에 사이코패스가 많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 한유진만이 살아남은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가장 먼저 죽은 인물들부터 검토해 보면 그 이유는 보다 분명해진다. 유진의 형은 동생과의 경쟁을 단순히 놀이로만 생각했다. 그에게 승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이런 유민은 이 사회에 적합한 인간형이 아니다. 이런 유민을 구하려다 사망한 유진의 아버지 역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과는 거리가 있다. 아들이긴 하지만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일을 감수하는 인간 역시 이 사회의 적자는 아니다.

그 다음으로 유진의 어머니와 이모를 떠올려보자. 정신과 의사인 유진의 이모는 유진에게 필요한 의학적 방법은 격리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의 어머니가 자신이 아들을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막지 못한다. 대신 이들은 유진이 사이코패스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유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 둘이 유진의 아버지나 형보다 죽음을 그나마 더 유예할 수 있었던 것은 경계심과 긴장감을 가지고 대상을 지켜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잔혹함을 견디면서 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진의 어머니와 이모는 타산성과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이 사회의 부적자에 가깝다.

유진과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죽은 사람은 두 명이다. 하나는 길을 가다가 유진에게 살해된 여성이고, 다른 하나는 유진의 친구이자 입양된 형인 해진이다. 길을 가던 여성은 늦은 시각에 길에서 만난 유진에게 공포를 느낄 만큼 약했고 약한 만큼 겁이 많았기 때문에 살해당한다. 한편 유진에게 순전하고도 온전하게 감정적인 존재인해진은 유진과 친가족처럼 살았지만, 유진의 악한 의도를 전혀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유진의 살인을 눈치 챈 이후에도 그의 악이 계도 가능한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살해당한다.

정유정은 자신이 창조한 소설 속 세계에서 양심이나 혈연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자, 즉 사이코패스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자가 먹이사실에서 최상위 포식자라는 사실은 사회적 진화의 결과이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살인이라면 주저할 필요 없다. 거리낌없이 상대를 그냥 죽이면 된다. 인간의 악함에 대해 방심했던 자들, 악을 경계했으나 그럼에도 견뎠던 자들, 그리고 나약한 자들은 사이코패스와의 대립 속에서 죽을 살아남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정유정이 다윈의 적자생존 = 부적자사망한유진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1. 이승한, 「재벌의 속성을 악역으로 의인화하다」, 『시사인』, 2017.3.31.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692 [본문으로]
  2. 김병수, 「권력이 사이코패스를 만든다」, 『인물과사상』, 2015.5, 177-179쪽. [본문으로]
  3. 정유정, 『종의 기원』, 은행나무, 2016. [본문으로]
  4. 데이비드 버스, 『이웃집 살인마- 진화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 홍승효 역, 사이언스북스, 2015, 9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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