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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시민성: 니코스 풀란차스에 대하여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 진태원 | 철학자


  [옮긴이] 이 글은 1999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니코스 풀란차스 기념 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2006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학술지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에 실렸다.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니코스 풀란차스에 의거한 해방의 정치에 대한 성찰」이었으며, 풀란차스의 딸에게 바치는 “아리안 풀란차스Ariane Poulantzas를 위해”라는 헌사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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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무익한 정념을 배제하고서 내가 “우리 사이의 쟁론”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근저에서 1960년대~70년대에 전개된 우리의 토론 대부분과 외연을 같이 하는 그 쟁론―이 어떤 것이었는지 환기함으로써 시작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쟁론을 비판적 ‘유로공산주의’와 다소간 정통파적인 ‘신레닌주의’ 사이의 갈등의 한 변형으로 위치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분류법은 우리의 실제 입장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서로를 그런 식으로 지각하곤 했던 그 방식을 표현하는 것이며, 시간을 두고 되돌아볼 때 근본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을 은폐한다는 불편함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사실은 “구조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기획에 우리가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인데, 싫든 좋든 간에 이러한 기획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비롯된 국가 및 당 모델들의 와해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의미심장한 증거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두 번째 사실은, “좌파 연합”[각주:1]이 붕괴한 이후인 1978년 프랑스의 정치적 위기가 일어난 긴박한 정세에서 우리는 서로가 근저에서 동일한 실천적 입장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재회는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이루어졌지만, 아, 그것은 [풀란차스의 죽음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고 말았다.[각주:2] 이 만남을 주선해준 분이 앙리 르페브르였는데, 여기에서 그 분을 기억하며 경의를 표하고 싶다. 따라서 나는 오히려 국가라는 중심 문제에 관한 논쟁의 관점에서 이 쟁론을 언표해보고 싶은데, 이는 곧바로 오늘날의 정치 및 정치적인 것에 관한 질문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쟁론의 흔적은 니코스의 마지막 저작인 국가, 권력, 사회주의(1978년 초판, 1981년 재판)[각주:3]에서 두 개의 비판적 명제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 명제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에서 정치이론의 부재라는 문제를 “국가의 일반이론”에 대한 단순한 요구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를 잘못 제기하는 셈인데, 마르크스주의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종별적 이론이기 때문이다. 다른 명제는 “종말론적이고 예언자적인 교조주의”를 문제삼는데, 이러한 교조주의의 두드러진(그리고 돌이켜보면, 가소로운) 최근 표현들 중 하나가 다름 아니라, 공산당들이 공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령을 폐기하던 바로 그 시기에 그것을 “방어”하거나 “다시 사고”하려고 했던 우리들 중 몇몇의 시도였다는 것이다. 물론―특히 나 자신이 거명되고 있음에도(p. 21, 137)―이는 결코 인신공격을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이 시기에 우리들 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은 바로 이 문제들을 둘러싼 쟁점 때문이었다. 이 문제들은 한편으로 마르크스ㆍ레닌주의 국가 개념에 대한 비판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헤게모니적인 부르주아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의 국제화(당시에는 아직 “세계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에 의해 동요를 겪으면서 점차 하락하는 경제적 효율성에 대하여 얼마간 두드러진(그리고 “자유주의적” 담론으로 치장된) 권위주의적 전환을 통해 반응하던 그 시기의 새로운 세력관계의 틀 속에서 나타난 제도들 내지 정치 형태들에 대한 분석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를 계급들 사이의 “세력관계의 물질적 응축”(이 계급들 중 하나의 전략적 헤게모니를 표현하지만 또한 다른 세력들의 대립 및 저항도 표현하는)으로 정의하는 풀란차스의 명제는 이러한 균열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이 명제가 우리들 중 몇몇에게는 단지 국가 장치들의 역사적 물질성의 징표를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이점에 대해 풀란차스는 부인했다) 국가의 “자율성”에 대하여 지배 계급 및 그 배후에 있는 자본의 이해관계에 대한 상대적 독립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민중들의 대중운동에 함축된 급진적인 민주주의 요소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할 것이냐 여부가 아니라(이 점에서 우리는 서로 일치했다) 앞으로 있을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이러한 운동이 국가 형태에 대해 미칠 영향을 사고하는 매우 상이한 두 가지 방식이 나오게 된다. 곧 국가장치의 “파열” 및 잔존하는 국가에 맞선 “비(非)국가”의 생성인지, 아니면 새로운 권력관계 및 중간계급 분파들에 대한 새로운 헤게모니의 생성과 연관하여 국가의 작동방식을 “급진 민주주의적으로 전환하는 것”인지 여부가 문제인 것이다.

  만약 니코스가 성찰할 기회를 계속 가질 수 있었다면 그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 당시에 논의를 주고받았던 이들에게 새로운 논거들을 추가로 제시하려는 데는 무언가 독단적인 측면이 존재하며, 아마도 예의에도 어긋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특히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옹호했던 테제들과 정식들을, 몇몇 질문들이 제기하는 쟁점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징표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오늘날이라면 과연 내가 그의 테제들과 정식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나 자신에게 소리 높여 질문해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이러한 테제들과 정식들이 여전히 그 시의성을 잃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한 방식이다.

  따라서 나는 “세력관계들의 응축” 내지 “관계적인 국가 개념”에 관해서는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풀란차스의 입장을 지지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이는 무엇보다도 풀란차스 자신이 밝힌 근거에 대해 그런데, 그는 이를 암묵적으로 그 자신과 알튀세르의 상위점의 척도로 삼은 바 있다. 그것은 곧 오직 이러한 관점만이 선진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작동방식과 관련된 혁명 세력들(당이나 운동)의 “외재성”이라는 신화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말미에서 외재성과 내재성이라는 주제를 다시 다뤄볼 생각인데, 내가 보기에 이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지했던 두 번째 근거의 경우는 국가에 내재적인 변증법, 곧 계급갈등의 번역과 전환의 변증법과 관련된 것인데, 이는 나를 당시의 풀란차스보다 훨씬 더 멀리 밀고 나아갔다(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는 당시의 풀란차스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내가 “개량주의자”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곧 나는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분석 내에 지배계급의 “권력 블록”에 내적인 계급관계의 전략적 효과들 및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과 노동자들 사이의 투쟁의 “성과”를 포함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러한 투쟁의 제도적 조절양식과 이것이 역으로 노동자 계급을 필두로 하여 계급들에 대한 “정의” 자체에 대해 미치는 효과 역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반면 내가 보기에 풀란차스는 정확히 “계급적 입장” 때문에, 권력 블록의 형성에서 국가의 구성적 기능이라는 관념에 그친 채 (잠시 E. P. 톰슨의 어법을 사용하자면) 노동자 계급의 역사와 형성에서 국가 제도가 수행하는 규정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나로 하여금 매우 제한적인 용법이기는 해도 국민사회국가Etat national social라는 범주를 제안함으로써 풀란차스 작업의 요체를 이루었던 정치적 장의 전환들에 관하여 몇 가지 문제제기를 확장하도록 이끌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이론”과 그것이 제기하는 인식론적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오늘날 “관계적 이론” 또는 여러분이 원한다면, 구조적 이론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이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말해두고 싶다. “국가의 구성과 재생산의 역사”(p. 27) 바깥에 국가 권력의 주어진 “실체” 내지 객관성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형세와 관련한 국가의 “분리” 같은 것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가 계속하여 기동인(起動因)으로 자처하고 있음에도(자기 자신이 지휘하는 권력으로 지각되고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지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어에서는 이 두 가지 통념이 아르케archè라는 한 단어 안에 융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각주:4]), 국가는 효과들의 질서 및 효과들의 연쇄에 속해 있을 뿐이다. 비록 몇몇 효과들이 매우 지속적이고 그것들 모두 제도적 물질성 속에 기입되어 있다고 해도 그렇다.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덧붙여 두어야 한다. 곧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계급관계 내지 착취 생산관계 및 재생산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이다(역으로, 이는 우리가 이 후자를 “망각한” 척하거나 폄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적 관계는 또한, 자율적인 또는 (여러분이 원한다면) “과잉결정된”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적” 관계이기도 하다.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환원주의적 도식과 너무 깊게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집합적인 상상계의 요소 안에서 구성된 상징적 관계 내지 연관이라고 말해두겠다. 그런데 규정된 제도적 작용 속에서 계급관계와 상징적 관계의 결합 효과―나는 언젠가 이것을 역사 속에서 정치의 “이중적 토대” 또는 “이중적 무대”라고 부른 바 있다―는 장기적이든 정세적이든 간에 어떠한 불변적 도식에도 상응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령 국가의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실천으로서 국민주의(여기에는 내가 “초국민적 국민주의”라고 부르는 것, 가령 유럽적인 국민주의도 포함된다)의 현행적 양상 및 귀결을 명확히 파악하려는 우리의 시도에서 명백히 본질적인 것이다. 강한 의미에서 국가실존하지 않는다고, 곧 국가는 분리된 심급으로서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하는” 것, 그것은 국가라는 형식 속에서 물질적으로 결합된 세력들 및 세력관계들이다(여기에는 상징적이거나 “비물질적인” 세력들도 포함된다).


2


  이런 전제들을 제시해둔 가운데 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보고 싶다. 첫째, 나는 국가 및 국가적 실천들의 위기에 관한 니코스 풀란차스의 몇몇 정치적 명제들을 환기한 다음 이를 활용하여(시간이 허락하는 한) 우리의 담론에서 “위기”라는 주제가 편재해 있는 것(이는 특히 풀란차스의 글이 입증한다)에 대해 몇 가지 논평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그 다음 나는 시간을 들여서 자본주의 국가를 “국민사회국가”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그것의 위기는 국민사회국가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더 분석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결론삼아 나는 이 글의 제목에서 제기한 질문, 곧 시민성과 공산주의라는 이중의 영역에 늘 준거해야 하는 해방의 정치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소묘해보겠다.

  󰡔국가, 권력, 사회주의󰡕에서 제시된 몇 가지 명제에서 시작해보자. 나는 이 명제들을 내가 방금 제시한 비판적 목표에 맞춰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논의해볼 텐데, 인용문 내용이나 참고문헌을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식별하고 검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선 “국가와 민중 투쟁”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 따라서 국가 내부에서 피지배계급의 “위치” 및 이러한 위치가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낳는 귀결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풀란차스의 명제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국가의 국민적 형태”라는 문제, 따라서 국가와 자본주의의 관계 및, 곧 나타나게 될à l'horizon 혁명 투쟁과 국민적 형태의 관계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국가와 피지배계급을 보자. 풀란차스는 알다시피 (국가권력에 대한 도구적 표상 또는 역으로 초월론적 표상에 맞서) 국가 내부에 있는 피지배계급의 이러한 위치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리는 역사적으로 진화하는 계급투쟁의 효과의 양상(여기에 사회운동 전체를 절합해야 한다) 속에서 동역학적인 방식으로만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동역학과 관련하여 우리는, 국가 형태는 항상, 끝/목적(fin) 없는 과정 속에서 구성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풀란차스는 이렇게 쓴다.


이론적으로 긴급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국가의 제도적 골격 속에 계급투쟁, 특히 정치적 투쟁과 지배가 기입되는 것을 (...) 이러한 국가의 상이한 형태들 및 역사적 전환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포착하기. (...) 이를 진지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만이 아니라 피지배계급들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수행하는 이러한 역할을 해명해야 한다.[각주:5]


그리고 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단지 권력 블록 분파들 사이의 세력관계만이 아니라 또한 권력 블록과 피지배 계급들 사이의 세력관계도 응집한다. (...) 사실 민중의 투쟁은 국가를 완전히 가로지르며, 이는 어떤 내재적인 실재를 외부에서 관통하듯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만약 국가와 관련된 정치 투쟁이 국가 장치들을 가로지른다면 이는 이러한 투쟁이 이미 국가의 몸통 안에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투쟁은 국가의 전략적 형세configuration의 모습을 그려낸다.[각주:6]


조금 더 뒤에서는 “이중 권력”[부르주아의 지배 권력 대 민중의 권력]의 모델이 혁명적 이행의 도식으로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긴장과 모순에 대한 서술로서도 부적합하다고 정당하게 거부하면서 풀란차스는 이러한 일반 테제의 함의를 축소한다. 또는 이 테제에 모종의 비대칭성을 부여한다.


피지배계급들은 그들에게 고유한 권력을 응집하는 [국가] 장치를 매개로 해서 국가 안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지배계급들의 권력에 대한 대립의 거점이라는 형태로 국가 안에 실존하는 것이다. (...) 국가의 물질적 골격은 지배-복종 관계 재생산의 내적 메커니즘에 놓여 있다. 이러한 골격 내부에는 피지배 계급들이 현존해 있지만, 그들은 정확히 피지배 계급들로서 현존해 있는 것이다. (...) 민중 계급은 항상 국가 안에 현존해 왔지만, 이 사실은 국가의 핵심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했다. 국가 안에서 인민대중의 활동은 국가 변혁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각주:7]


  우리는 풀란차스가 여기에서 단지 계급들을 넘어서는 국가의 중립성과 관련된 미망들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더욱 미묘한 점이지만, 또한 모종의 “마키아벨리적인” 도식, 곧 국가의 구성이 피지배계급 자신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투쟁 및 요구의 동역학적 형세, 그리고 이것들이 발전시키는 역량을 “지주”로 삼는다는 점을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한 도식도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의 마지막 장(특히 pp. 205 이하 및 272, 280~81)과 결론에서―여전히 마르크스주의적 도구주의에 대한 비판의 관점에서―풀란차스는 민중 계급의 투쟁이 국가를 가로지르는 방식에 대해 길게 재론하면서, 특히 이러한 효과가 “국가의 경제적 기능”의 중심에 기입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이는 자본 축적 과정에 삽입되어 있는 유기적 국가를 외부에서 보완하고 이 국가의 결함을 보충하는 순수하게 “사회적인” 기능을 갖춘 복지국가라는 표상을 넘어서도록 강제한다). “한편으로 인민대중에 의해 강제되어 부득이하게 작동하는 그들에게 우호적인 국가의 기능과 다른 한편으로 자본에 우호적인 경제적 기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각주:8] 풀란차스는 “정치적 민주주의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각주:9]의 긴밀함을 환기하면서 일반적인 테제로 나아가는데, 이 테제는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옹호에서 명백히 본질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민중 계급의 투쟁 강도와, 대의 민주주의를 포함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 사이에 항상 존재해온 역사적 연관성에 관해서는 얼마간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서 잠시 멈춰서 풀란차스의 용어법에는 정치 전통에서 핵심적인 용어 하나가 부재해 있다는 점을 강조해두자. 그것은 오늘날 도처에서 사용되고 있거나 다시 사용되고 있는데, 나는 조금 뒤에서 최근 이 용어의 남용이 야기하는 혼란 중 일부라도 피해보기 위해 이 용어에 관해 거론해볼 생각이다. 이 용어는 바로 시민성/시민권이라는 용어다. 우리는 적어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양자택일과 관련하여 이 용어가 논의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지만, 이 용어는 조심스럽게 회피되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머리에 떠오른다. 나는 되는 대로 이 이유들을 열거해보겠다. 아마도 풀란차스의 언어적 의식 속에는 시민성, 곧 폴리테이아politeia 개념과, [현재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 현실인 그리스 폴리스 사이의 내밀한 연관성이 떠올랐을 것이고 그는 그 모델 내지는 신화를 오늘날의 현실에 외삽하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다(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카스토리아디스를 보라). 우리와 더 가까운 이유를 들어보자면, 시민성citoyenneté/Bürgertum이 마르크스주의 전통 일부(장 조레스Jean Jaurès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에서 수행했던 결정적인 기능을 풀란차스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풀란차스 작업에서 헤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무게(더욱이 그가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을 따르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달리 이를 그 내부에서부터 살펴보려고 했으니 더욱 더 주목할 만한 점이다)가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전통은 세력관계 및 사회적 형세에 대한 분석을 중시하고 “법적 형식주의”를 비판했으며, 결과적으로 헌법적인 주제를 폄하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더 사소하다는 뜻은 아니다) “권력”과 “대항권력” 사이에서 정치적 균형을 이룬 체제라는 관념, 시민성에 대한 어떤 전통(특히 미국의 공화주의 전통)의 유기적 일부를 이루고 있는 이 관념을, 풀란차스는 계급적 노동조합이 발전한 국민적 틀 속에서 이를 고려하려는 수정된 형태의 경우에도 숙고 끝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곧바로 두 번째 그룹의 테제들로 이끌어간다. 종종 관찰되어온 것처럼, 국민 형태 및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적 성격,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정치적 귀결에 대한 성찰은 풀란차스의 마지막 저서의 독창성 중 하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단지 그의 이전 저작만이 아니라 당대의 마르크스주의적이거나 비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학 대부분(몇몇 예외가 있기는 했다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한다)과 관련해서도 독창적인 것이었다. 몇 년 전 유럽 및 특히 프랑스에서 국민주의/민족주의의 재발흥에 관한 논쟁이 이루어졌던 정세에서 나 자신이 이러한 성찰의 부재를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맹목점”으로 지목한 적이 있으며, 이에 대한 탐구를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론화의 결정적인 장소들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간단히 니코스의 두 가지 정식만 언급해두기로 하자.

  우선 정확히 「국민」에 관해 논의하는 장에서[각주:10] 풀란차스가 상품 형식 및 자본 순환의 조건에서 출발하여 국민적인 국가 형태를 “연역” 내지 도출Ableitung하려는 모든 시도를 극히 명쾌하게 비판했다는 점을 상기해두겠다. 풀란차스에 따르면―그는 여기에서 의도적으로 알튀세르의 최선의 정식과 가까운 정식을 택하고 있다―“주체 없는 계급투쟁의 과정”[각주:11]에서 또는 자본주의의 역사성을 만들어내는 전환의 세력들 및 요인들의 정치적 형세 속에서 자본주의와 국가, 국민 사이의 절합의 비밀, 곧 이 세 가지 항들이 서로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으면서 동시에 실천 속에서는 항상 함께 주어지게 만드는 그러한 비밀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근대 국민은 국가와 부합하는 경향을 지니는데, 왜냐하면 국가가 국민을 통합하며 국민은 국가장치들 속에서 구현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사회 속에서 국가 권력의 정박점이 되며, 국가권력의 윤곽을 그려낸다. 자본주의 국가는 국민에 입각하여 기능한다.”[각주:12]

  그 다음 나는 풀란차스가 국민 문제에 대한 탐구에서 피지배자들 또는 피지배계급의 관점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진정한 문제는 노동자 계급이 근대 국민과 맺는 관계라는 문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깊은 관계를 놀라울 정도로 과소평가해 왔다 운운.” [각주:13]알다시피 이 문제는 과거에 대한 분석만이 아니라 뜨거운 쟁점이 되는 “전략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풀란차스의 가장 모험적이면서 가장 양의적인 정식들에 이르게 되는데(이러한 양의성이 존재함을 분명히 지적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의성은 저자의 개인적인 약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이 정식들이 처음 보기에는 대립적인 두 개의 테제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이행과정이 이루어지는 틀로서 국민적인 정치적 구성체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해야 하며, 사회주의 자체에 대하여 “국민적 내용”을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계급의 국제주의 또는 “노동자들의” 국제주의를 민중적인 민주주의 투쟁의 기본적인 성격으로 간주해야 한다. 풀란차스가 자본의 초국민화 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유형의 대중투쟁 및 이러한 투쟁이 작동시키는 직접 민주주의에 이민자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환기하면서 이러한 국제주의를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더 혁명적 실천의 동력이자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더욱 더 그렇다. 나는 안정된 정식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러한 난점은 본질적으로 코민테른 조직 형식의 유산이 부과하는 무게, 곧 자신의 적수의 기본적인 특징을 곧바로 재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대항 제국주의contre-impérialisme의 형태 속에서 국제주의가 탈취되고 전도되어버린 것(역사적 공산주의는 이를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과 국민 형태에 입각한 그들의 정치 사이의 종별적 관계라는 문제에 대한 “변증법적 해결책”은 “모종의”, “정당한”, “진정으로” 같은 수식어들로 피신하는 데 그치고 만다. 


노동자 투쟁의 쟁점이며 목표인 국민적 국가는 노동자 계급에 의한 그 자신의 역사의 재전유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는 국가의 전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이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시기에 이 국가가 국민적인 측면에서 갖게 되는 모종의 영속성certaine permanence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 노동자들의 국민적 이데올로기는 국제주의의 정당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부르주아 국민주의가 노동자 계급에 미친 효과로 [간주되어야 한다.-발리바르의 추가] 하지만 이러한 부르주아 국민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구성 및 그 투쟁의 물질성을 근거로 삼지 못했다면, 국민적 이데올로기 중에서 진정으로 노동자적인 측면과 절합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국민적-제국주의적 전쟁에서 노동자 계급을 살육으로 내몰았던 그러한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각주:14]


문제는 제기되었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이 첫 번째 논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논평을 제시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싶다. 내가 방금 상기한 두 계열의 명제들 중에서 첫 번째 명제들은 국가 내에서 민중계급의 위치 및 투쟁의 효과들이라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며, 다른 명제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적 형태와 관련된 것들이다. 두 계열의 명제들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정초하려는 하나의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지만, 하나의 균열과 따라서 해소되지 못한 긴장이 남아 있다. 내가 보기에 이는 풀란차스가 의도적으로 권력과 국가에 대한 “관계론적” 관점(그 자신이 정초하는 데 기여한)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가 계속해서 “계급투쟁은 제도를 초과한다”고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전략적 규정(민중 계급의 재생산과 저항이 “권력 블록”의 구성 자체를 규제하는réglant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을 사고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정확히 말하면 “국민 형태”의 의미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기능적 요소라는 의미를] 초과한다는 사실을 국민주의의 노동자 내지 민중적 성분이라는 것으로 절하하려는 데서 기인한다(이러한 성분이 지속적으로 부르주아 국민주의에 의한 헤게모니화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한편으로 그는 자본주의 국가의 전화의 역사에 미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충분한 영향력을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부르주아적인” 또는 지배적인 국민주의에 대하여 그 자신에 대한 지양의 길을 열어놓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부과하는 바로 그 순간에 아마도 이러한 지배적 국민주의와 관련하여 “노동자” 국민주의에게 너무 많은 자율성을 허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토론을 시작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문제가 니코스 풀란차스의 말년의 글들에서 “위기” 개념에 관해 논의할 때 나타나는 까다롭지만 흥미로운 용어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이 글들에서 낭만주의(마르크스 자신의 낭만주의를 포함한)에서 유래하는 묵시론적 정식들, 곧 위기의 강화 자체를 임박한 “해법”의 원인이자 징표로 만드는 도식을 멀리하려는 결연한 시도(이는 특히 국가의 파시즘화와, 권력의 내적 위기에 대한 독재적인 해결책, 그리고 권위주의적 국가주의 등을 섬세하게 구별하려는 그의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와 동시에 국가의 권위주의적 표류에 내재해 있는 “헤게모니의 위기” 내지 “국가의 정당성 위기” 자체 안에 사회주의로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이는 무엇보다 국가의 완전한 사회 민주주의화에 대한 노동자 운동의 저항에서 목격할 수 있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이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3


따라서 나는 이제 나의 두 번째 논점으로 넘어가 볼 텐데, 여기에서 나는 우선 왜 풀란차스가 제기한 질문들 중 일부를 ‘국민사회국가’의 용어법에 따라 재정식화하는 것이 유용해보이는지 설명해볼 생각이다. 나는 이러한 시도가 사후에 풀란차스의 논의를 [나의 문제설정으로] 병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전개되고 여러 연구자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집합적 성찰의 연속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이해되기를 바란다. 내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국민사회국가’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우선 두 개의 상호 연관적인 역사적 명제들로 규명해보겠다. 한 가지 명제는, 내적이면서(사회적, 종교적, 민족적 갈등) 동시에 외적인(전쟁, 식민화) 적대와 위기로 인해 때로는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던 국가의 국민적 형태, 따라서 국가의 헤게모니를 보존하기 위해 19세기 말 이래 적어도 임금 노동자들 중 일부의 집단적인 생활보장sécurité을 위한 사회정책과 제도를 통한 계급투쟁의 조절(간혹 사람들이 그릇되게 주장하듯이 “통합”이 아니라)을 “섭리국가”État Providence[각주:15] 내지 복지국가 또는 사회국가Sozialstaat라는 이름 아래 설립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자연적” 영속성이나 관성 작용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일정한 정치를 통해 국민을 “재생산”해야 했으며 이러한 정치의 본질적 일부는 사회정책이었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계급투쟁 자체에 의해 강제되었고, 부분적으로는 마키아벨리적인 방식으로 “위로부터”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 명제와 상호연관적인 다른 명제는, 최종 분석에서는 지배 계급에 이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 더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의 조절은, 국민 형태라는, 신성시되면서도 동시에 세속화된 특권적인 공동체 형태(그람시의 “민중의 국민적 의지”나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같은 정식을 떠올려보자)를 작동시키고 부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명제다. 근대의 정치적 역사가 적어도 일정한 시기 동안 몇몇 장소에서 일정한 한계 내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해준 (아마도 수많은 폭력과 제약, 미망의 대가를 치르고서) 것이 바로 이러한 “선순환”일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제도적 결과를 “국민사회국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며, 이 표현의 도발적 성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곧 이 개념은 국가 사회주의national-socialisme[나치즘]의 변장한 형태가 아니라 반대로 동일한 정세 내부에서 국가 사회주의가 대표했던 “해결책”에 대한 대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개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 역사 전 시기에 대하여 “유기적인” 국가의 역사에서 고유한 한 단계이며(뒤에서 상론하겠지만, 비록 [국가들ㆍ지역들마다] 매우 불균등하게 발전하긴 하지만), 계급들의 구성 및 이러한 계급들에 부여될 수 있는 역사적 전망들에 대하여 불가역적인 효과를 산출한다는 점을 강조해두겠다.

  이 명제는 곧바로 내가 보기에는 근본적인 두 가지 해명을 요구한다. 하나는 시민성 문제의 전환과 관련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중심”과 “주변”의 대립과 맺는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시민성과 관련해서는 우선 국민사회국가의 구성이 시민성과 국적 사이의 등가성[시민성=국적]을 재정초하고 “공고화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는 점을 말해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등가성은 이미 국민국가들, 특히 고전주의 시기에 대중혁명(이른바 “부르주아적인” 혁명)을 통해 성립한 국가들의 토대 자체에 경향적으로 기입되어 있었지만, 이는 결코 아무런 [중세적인] 잔여 없이 그리고 모순 없이 획득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시민권citizenship이라는 용어의 다의성이 감탄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시민성=국적이라는] 이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거대한 등식(전자본주의적 구성체들에서는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은 인민[국민]의 형식적인 “주권성”만이 아니라 사회권들 일체를 자신의 내용으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회권들은 시민성 그 자체 속에 경향적으로 통합되어 왔으며(이러한 통합이 계속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는 해도), 순수 “자유주의적인” 전통이 주장하듯이 정치권들과 대립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시민성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시민성을 사회적 시민성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사회권들의 보증과 확장이 국가에 의해 인정된 조직적인 사회적 투쟁의 힘에 달려 있는 만큼 사회적 시민성은 분명히 더욱 더 실질적인 것이다. 역으로 국민적 소속은, 교육, 거주, 건강(푸코가 “생명정치”라고 부른 것 전체)에서부터 실업과 노령화를 대비한 사회보험에 이르는 사회권들의 귀속의 토대를 구성한다. 비록 국민적인 공간 안에 현존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사회권에서는 다소간 완전하게 포함되는 반면 정치권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매우 강력한 긴장의 온상을 만들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을 산출한다고 해도 그렇다.

  하지만 국민적 형태 속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헤게모니적인 국민사회국가의 틀 속에서 시민성의 새로운 역사적 형식, 곧 “사회적 시민성”의 실현으로 인해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제도적 정치]과 계급투쟁의 관계의 새로운 변증법적 형태가 개시된다는 점을 지적해두어야 한다. 자본과 국가 간의 관계의 복잡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연역” 내지 “유일한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지배적인 관점을 역전시켜 “아래로부터의”, 다시 말해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 입각한” 정치 형태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점이 바로 이곳이다. 더욱이 양자는 한 쌍을 이루고 있다. 풀란차스는 여러 곳에서 현대 국가는 주체들의 개인화 과정을 실현한다고 지적한다.[각주:16] 이것은 시민성의 근본적 차원 중 하나이며, 헤겔은 이미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이론 중심에 이를 위치시킨 바 있다. 하지만 사회적 시민성의 발전이 보여주는 것은 개인화 과정과 자신들의 의식 및 문화(노동자 계급의 경우 이러한 계급의식과 문화의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저항 및 투쟁과 결부되어 있다)를 갖춘 집합체의 생성 사이에는 대립이 아니라 반대로 엄밀한 상보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역으로 우리는 국민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노동력 과잉착취의 새로운 단계에 의해 산출된 사회적 시민성의 위기가 집합적 소속 관계를 해체함과 동시에 개인적 권리들을 후퇴시키면서 결국 로베르 카스텔이 “소속 박탈”désaffiliation이라고 부른 배제 형태들 속에서 인격성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때,[각주:17] 이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국민사회국가의 설립은 근대 정치에 특징적인 보편성의 여러 측면들 사이의 모순을 전위시키고 강화한다는 점에 주목해둘 필요가 있는데, 보편성의 이 측면들은 항상 상징적 수준과 동시에 현실적 수준(또는 이렇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경제적 수준)에 위치해 있으며, 이 두 수준 각자는 다른 것 못지않게 결정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범세계적 모순들의 내면화”를 번역하는 일이다. 한편으로 사회적 시민성(또는 각각의 개인을 비록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집합적인 유산의 일부에 대한 준 소유자로 만드는, 시민성 내에 기입되어 있는 사회권들 전체)의 생성은 우리가 내포적 보편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간명하게 말하자면 평등. 하지만 이것은 단지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잘 규정된 물질적 내용을 갖는 평등이다)의 독창적이면서 결정적인 발전을 표상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조직된 노동자 계급의 투쟁(노동조합,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당시 정치적 승인이 긴급히 요청되었던 전쟁 노력에 그들이 참여한 것이 결합된 효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부과된 집단적인 사회보장 체제가 특별히 빈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역차별 방식 및 원조 체제로 구상되지 않고 관련된 나라의 모든 시민, 어쨌든 임노동 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시민이 혜택을 누려야 하는 보편적 체제로 제시되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이로 인해 임노동 활동은 “정치체”cité에 대한 소속의 토대인 것으로 인정받았는데, 대량 실업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으로 인해 오늘날 다소간 심층적으로 의문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도널드 서순이 베버리지 플랜과 관련하여 아주 정당하게 관찰한 것처럼,[각주:18] 이러한 보편주의(이것의 원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강력한 “노동자주의적”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는, 노동자들을 원조받고 후견받아야 하는 계급의 “서발턴적인” 조건에서 구해내어 그들과 그들의 노동에 대해 존엄성을 인정하게 만든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착취를 폐지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회적 시민성이 국민적인 “사회협약”의 형태 아래 국민사회국가의 틀 안에서만 실존할 수 있었으며(역으로 사회적 시민성은 국민사회국가 재생산의 토대를 형성했다) 그것도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실존했다는 사실 자체는 명백히 그것의 보편성에 대한 제한을 함축했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외연적 보편성의 시각에서 볼 때 특수주의적인 것을 함축했다. 실로 ‘중심’과 ‘주변’으로 세계 경제가 분할된 데서 기인하는 물질적 조건의 구속에 대해 강조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비록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국민사회국가가 한동안 이상적 모델이 되었지만(그리고 탈식민화 및 어떤 시각에서 보면 동유럽 국가들의 “개혁” 운동에 의해서도 촉발된 “발전 정책”이 지향하려고 애썼던 이상화된 모델), 이것이 제국주의적인 중심부 국가들 내에서만 실질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완전하게 정착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정도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이러한 정착 흐름의 선두에 있지 않고 오히려 현재 전개되는 “세계화”의 형태를 선취했던 특징들로 인해 그 뒤쪽에 처져 있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그런데 국민사회국가의 보편성의 이러한 제한성 및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불균등한 발전[각주:19]은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으며, 몇몇 자본주의 정책은 노동자 계급을 대대적으로 “재(再)프롤레타리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 결과를 강화하고 의도적으로 활용하려고 했지만, 이는 국가의 구성constitution[헌정] 및 정치적인 것의 제도화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내가 바로 위에서 환기했던 이유들로 인해 그런데, 왜냐하면 사회적 시민성의 생성은 시민성=국적 등식 및 헤게모니적인 국가 형태로서 국민의 재생산 과정의 중심에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심과 주변, “발전한” 나라들과 “저발전” 나라들 간의, 점차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에서 빠져나온 노동자 계급과 초과착취에 허덕이는 노동자 계급 간의 생활 조건의 격차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산출하는 국제적 긴장만이 문제인 것은 아닌데, 이러한 긴장은 몇몇 “국경들”(프랑스-알제리 국경이나 미국-멕시코 국경과 같은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이, 이러한 국경은 과거의 식민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을 분리하면서도 동시에 결합시킨다) 주위로 응결되기 쉬우며, 이주와 같은 사회적ㆍ인구학적 과정을 낳게 된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심”-“주변”의 구별(또는 다른 용어법을 사용하자면, 남쪽-북쪽)이 단순히 국민 구성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결정적인 방식으로 동일한 구성체들 내부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함에 따라, (독일 경제학자 게오르크 포브루바Georg Vobruba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유함의 차이Wohlstandsgefälle, “번영의 편차”가 이제는 각각의 정치적 단위 내부에서 벌어지게 되면서 이러한 정치적 단위의 재생산의 동역학적 균형 상태를 무너뜨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국민국가들이 개인적 권리 및 사회적 권리를 다소간 완전히 박탈당한 값싼 이주 노동력 도입 효과와, 규제 완화 및 사회적 보호망 붕괴 효과의 결합 하에 자기 내부에서 “사회적 시민성” 이념에 대한 부정과 다르지 않은 생활 조건의 불균형과 배제 형태들(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조직된 계급운동, 특히 노동조합운동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그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박탈하는 것을 전제한다)을 재창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기해볼 수 있다. 곧 국민적인 틀을 상대화하고 따라서 국민사회국가를 우회하면서 동시에 (유럽연합이 전형적으로 그렇듯이) 상위의 수준에서 사회적 갈등의 국가 통합 메커니즘을 재생산하기 위해 설치되고 있는 “초국민적” 정치-경제 집합체들은 삶의 조건 내지 부유함의 편차, 내적 불평등과 배제 메커니즘 위에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더욱이 이 집합체들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감소시키려고 하지 않으며, 통화정책과 사회보장 정책을 통합하게 될 “공동의 사회정책”을 추구하겠다는 관례적인 선언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필요할 경우에는 유럽공동체 공간의 새로운 “확장”[각주:20]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것을 일정한 시간 동안 연장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다시금 정치의 공간 중심에 “위험한 계급들”이 기입된다. 또는 더 일반적으로 보자면, 이 상황은 정치의 장 안에 조직된 폭력들, 곧 인종주의적 차별 및 사회적 배제에 기초를 둔 “치안적인” 관리 방식들에서부터 결국 사회 질서의 군사화를 강화하게 만드는 민족적인 반발과 범죄 현상들에 이르는 폭력들의 유령 전체를 기입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20년 전에 풀란차스가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의 출현에 관해 제시한 성찰을 조금 더 진전시켜볼 수 있다. 세계화 및 그것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금융자본주의의) 지배 계급들 편에서 보면 그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재프롤레타리아화 과정과 상관적인 국민사회국가의 위기는 예방적인 반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속하는 일련의 국내 및 국제적인 정치적 기획을 산출한다. 이는 신제국주의보다 훨씬 더한 것인데, 왜냐하면 목표는 영토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생산 과정 및 잉여가치 추출이 지속적으로 외주화되는 시기에는 별로 의미가 없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이러한 풋내기 마법사의 정치가 포함하게 되는 모든 위험과 더불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곧 관국민적이고 다민족적이며 다문화적인 사회운동을 구성하는 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는 만성적 폭력과 불안이 일반화된 상황을 창출하고 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 전체는, 다소간 숙고되었지만 그 귀결에서 완전하게 식별될 수 있으며, 금융과 군사, 인도주의적 측면이 결합되어 있는 이러한 “정치”가 “혁명”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반-반혁명을 불러오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19세기의 봉기들에 대한 경험 이후 “사회주의적 이행”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및 레닌주의적인 표상들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극단주의”[각주:21] 도식에 입각한다면 그럴 것이다. 반복하거니와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배 계급 내지 그 한 분파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지정될 수 있는 일종의 정치인데, 이것이 특히 의미하는 바는 전 세계적인 노동자 계급의 재프롤레타리아화 효과는 경제적 숙명과 무관하다는 점이다(이러한 효과는 심지어 경제적으로 반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는, 노동자들, 억압된 사람들, 혁명적 지식인들 및 다른 저항과 해방 운동들처럼 진보주의 전통이 “좌파” 내지 “민중”이라고 부르는 사회 세력들에 의해 모방적인 방식으로 간단히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비극적인 역사적 경험―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은 적어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가르쳐줄 수 있다. 곧 정치의 현실은 전략적인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배자들의 전략과 피지배자들의 전략 사이에는 대칭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이미 마키아벨리가 가르친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점에 대해 간략히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4


  비록 국민사회국가의 구성이 시공간 상으로 제한된 사실이었긴 하지만(그래도 이것은 자본주의 체계의 “중심”에 기입된 사실이었다), 불가역적인 역사적 사실을 이루는 것이다. “역사의 바퀴”는, 일체의 퇴보 현상에도 불구하고,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역사를 특징짓는 착취와 억압 메커니즘의 주기적 재생산 현상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회전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내가 다른 곳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라고 부른 바 있는 체제에 종속되어 있던 동유럽 나라들의 민중이 소비에트 유형의 체제를 종식시킨 근본적인 이유는 야생의 자유주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도 사회적 시민성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세계 정치를 특징짓는 “절멸적인” 성격을 지닌 극단적 폭력의 현상들(착취하는 데 “쓸모가 없게” 된 인구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경향이 있는 경제적ㆍ인구학적 폭력과 민족적ㆍ종교적 성격을 지닌 “이데올로기적” 폭력이 분리할 수 없게 결합되어 있는[각주:22])은 대부분, 지구의 많은 지역에서 국민사회국가를 구성할 수 없는, 따라서 많은 경우 국가 자체를 구성할 수 없는 불가능성을 표현하며, 이러한 불가능성은 세계 도처에서 국내적인 사회적 상황과 집합적 대표 및 정치적 조직화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권리들”이라는 통념 자체를 변용시킨다는 점 역시 유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듯 의사일정에 올라 있는 문제는 오늘날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회적 시민권을 방어하고 확장함(사실 사회적 시민권을 확장하지 않고서 방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과 동시에 특히 국민사회국가의 근저에 놓여 있는 모순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시민성 개념, 그것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는 문제다. 이러한 상황은 명백히 우리를 실천적으로 해결하기 매우 어렵고, 심지어 정식화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봉착하게 만든다.    

  나는 특히 유럽에서 “사회주의” 전통이 두 개의 담론 유형(이 양자는 각자 다른 것의 이면을 이룬다)으로 분열되는 방식에서 이러한 딜레마의 증거를 발견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령 하버마스 내지 “좌파” 하버마스주의자들에게서 보듯이) “포스트 국민적인 정치”라는 관념이 제기되는데, 이러한 관념의 동력은 국경을 넘어 인권의 이념 및 집합적인 협상을 위한 법적 형태를 확장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실제의 사회세력의 동원과 무관하게 본질상 도덕적인 토대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사회적 시민권의 “기존 성과를 방어하는” 운동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국가(또는 프랑스에서 말하듯 “공화국”)의 보증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사실로 인해 국민 및 신성화되고 이상화된 국민주권 원리를 방어하는 운동이 되고 있다(이 때문에 이들은 “적색-황색” 결합[각주:23]이라고 불리게 된 것 속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실천적으로 또는 이론적으로 “국민 우선”[각주:24]을 옹호하게 되고, 이주자들에 맞선 차별 정책을 정당화하게 된다). 사회적 시민권에 대한 방어를 새로운 시민성 형태의 발명과 결합함으로써, 따라서 국민사회국가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구성함으로써 이러한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야 한다. 나로서는 잠정적이고 비배타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대안은 적어도 세 가지 기본적인 차원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첫째, 이는, 지구상의 상이한 지역들을 대립시킬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동일한 대륙 내의 지역들 및 같은 국가 내의 지역들까지 상호 대립시켜, 결국 자연적ㆍ인간적 자원이 황폐해진 지대와 “쾌적한” 생활 환경 관리가 이루어지는 지대 간의 균열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는 부유함의 편차를 강력하게 감축시켜야 한다. 특히 쟁점이 되는 것은 저발전 및 생태적 재앙에 맞선 공동의 (“계획된”) 투쟁이다. 하지만 또 다른 쟁점은, 오래된 도시와 농촌의 이율배반 또는 산업 공간과 거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근대적인 이율배반을 새로운 방향에서 극복할 수 있는 도시 정책 또는 도시화로서의 문명 정책인데, 이러한 정책이 없이는 국가적이고 비국가적인 집단적 폭력을 감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졌던  민족정화의 폭력들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도시와 도시문명에 맞선 “전쟁”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둘째, 이는 또한 관국민적 시민성(포스트 국민적 시민성이라기보다는)의 차원을 포함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러한 시민성은 (비록 이것이 때로는 여전히 관료제적인 “유럽적 시민권” 같은 정식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해도)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곧 이러한 시민성은 국경의 민주화, 이주 흐름에 대한 이해당사자들 및 출신국들과의 공유된 관리 및 협상, 각 나라에 거주하는 이주자들(차라리 거주 외국인들이라고 말하자)에 대한 개인적ㆍ정치적 권리의 인정, 문화적 다원주의 및 그것이 각 나라의 국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바에 대한 인정을 포함해야 한다.

  셋째, 이는 국민사회국가가 개인들에 대한 보호 내지 그들의 해방에 대한 요구를 제도화하는 형태 및 그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을 포함해야 한다. 개인들에 대한 보호 내지 그들의 해방에 대한 요구는 대부분 사회적 범주화, 곧 윤리적 차이들이나 인간학적 차이들(성적 젠더, 건강과 질병, 연령과 교육의 차이 등)을 양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사회적 차이들로 전환하는 것을 함축하는데, “여성들의 권리”나 “소수자들의 보호” 같은 표현에서 이러한 사회적 범주화를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운동의 이른바 “개인주의”나 “자생주의”는 대개 이러한 범주화(들뢰즈가 “코드화”, “영토화”, “통제사회”라고 부른 것)에 맞서 발전되었다. 따라서 사회적 보호 및 그 확장이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사회적 시민성을 그것에 고유한 사회학주의, 개인이 사회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범주들을 사물화하려는 관료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들은 민주주의적인 목표들인가?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고, 심지어 이 목표들은 그것이 없이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으며 단지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의 조합주의적인 “대표”만 존재하게 되는 민주주의의 발명 또는 새로운 기본권들의 발명의 장구한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들은 “사회주의적인” 목표들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목표들을 공식적인 마르크스주의(정통이든 이단이든 간에)의 세기를 넘어서 공산주의 정치의 이념을 영속시키고 쇄신하려는 운동과 절합하는 것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데,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적 이행” 또는 “사회주의로의 이행”, 곧 자본주의의 단순한 전도는 아닐지 몰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순수 대안이라는 프로그램의 한계 속에 공산주의 정치의 이념을 가둬버렸다.[각주:25]  우리가 오늘 풀란차스의 기억 속에서 이 질문을 토론하고 있고 그의 미완의 작업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정치의 이념이 철학적으로 본다면, 익명적인 방식으로는 제시될 수 없는 윤리적 이념이기 때문에, 나는 3중의 문제제기라는 형식으로 질문을 제기해보고 싶은데, [문제제기는 세 가지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답변만 존재할 수 있다. 3중의 문제제기란 다음과 같다. 국민사회국가를 넘어서 시민성을 재개하고 재정초하기 위해 공산주의적인 입장이 필수불가결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떤 점에서 풀란차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란 누구인가?

  따라서 나는 “니코스 풀란차스의 공산주의”에 대해 말할 것이며, 그것을 단수로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제는 “무엇”Was이 아니며(공산주의는 무엇인가Was ist der Kommunismus?), 제기될 필요가 있는 것은 “누구”Wer이기 때문이다(누가 공산주의자들인가Wer sind die Kommunisten?). 니체와 하이데거에 의해 유명해진 주제와 “유희를 하는” 이 정식을 통해 나는 또한 공산주의당 선언의 유산도 들어보도록 초대하고 싶다. 실로 마르크스는 이 저작에서 주어진 정세에서 누가 공산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자일 수 있고 또 공산주의자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및 목표를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현재의 운동에서 그들은 동시에 운동의 장래를 옹호하며 대표한다. (...) 한 마디로 말하면,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에서 기성 질서 및 정치에 맞서 모든 혁명 운동을 지원한다. (...)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당파들의 통합 및 상호 일치를 위해 도처에서 작업한다 운운.[각주:26]


  분명히 마르크스가 1848년 “당”이라고 불렀던 것의 의미는 15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전도됐다. 따라서 강조점을 바꾸면서 그 이념으로 되돌아가봐야 한다. 모든 정치 운동, 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그 급진성으로 인해 서로 환원 불가능한 해방의 이해관계들의 복수성과 다양성을 “대표한다”, 곧 실천한다. 그들은 자유를 개인들과 집단들의 분리로, 평등은 획일성으로 옹호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평등과 자유를 개인성들의 상호성으로 또는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독특성들(singularités)이 서로에게 선사하고 서로에게 제공하는 그러한 “공동성”(communauté)으로서 옹호하고 실행한다. 여기에는 물론 (마르크스의 경우에 그렇듯이) 시민성과의 본질적인 연계가 존재하지만, 이것은 형식적 규칙들과 행정적 제약들을 통해 “다원성”을 관리하는 국가적인 형태에 맞서는 것이다. 어제 발표문에서 아니 르클레르크(Annie Leclerc)[각주:27]는 니코스 풀란차스를 “세계시민”(cosmopolitès)이라고, 더 정확히 말하면 “환대하는 이”(philoxenos)[각주:28]라고 부른 바 있다. 나 역시, 니코스의 공산주의를 이처럼 이해하는데, 이는 그의 근본적인 민주주의적 성향(군사독재 국가 출신인)과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그의 애착(그는 전 유럽에 걸친 사회주의의 역사와 그 변형태를 탐구했다)을 넘어서는 것이며, 이 양자의 통합을 위한 조건 자체이기도 하다.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의 결합 속에서.

- 그의 실천적 국제주의(“이론적” 국제주의를 훨씬 넘어서는), 국경들을 초월한 해방운동들 사이의 마주침과 소통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추구는 공산주의공동체주의 사이의 대립 지점을 아주 명쾌하게 예시해준다.

- 또한 그는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순수한 전통 속에서 국가 및 당의 “관료주의”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그리고 제도적인 “대의 민주주의”와 결사체적인 또는 민중적인 “직접 민주주의” 사이의 예견된 종언이 존재하지 않는 열린 변증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시민성이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세계화의 전개와 경제적ㆍ문화적 권력의 집중, 그리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민족주의는 이러한 두 가지 요구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배가시켰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장애물들은 또한 국민사회국가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의도적으로 [언어유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해보겠다. 니코스 풀란차스는 전형적으로 “내적인 공산주의자”였는데, 단지 그의 나라에 대해 내적인 공산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비록 그가 [망명객으로서] 그의 나라 외부에서 살아가긴 했지만) 사회적ㆍ지적ㆍ정치적 실천에 내적인 공산주의자였다. 외적인 공산주의가 자신의 모든 현실적인 지시체를 상실한(하지만 상상계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왜냐하면 유령들은 여간해서 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 내적인 공산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풀란차스는 투쟁들에 내재적이고 투쟁들 사이에서 순환하는 공산주의 투쟁의 이처럼 아주 특수한 위상학을 (외적인 공산주의의 상징으로서 “이중 권력”이라는 관념에 맞서) 아이러니컬하게 “이론화”했다. “마치 정치 투쟁이 절대적 외부에 위치할 수 있는 것처럼 ...”[각주:29]이라고 말함으로써 말이다. 여기에서 외부는 국가, 제도들에 대한 외부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들을 지탱하는 실천들에 대한 외부이기도 하다. 좀 더 뒤에서 그는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쓴다. “국가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또는―내 자신의 관점에서 말하면―능동적 시민성을 위한 투쟁, 따라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결코 국가에 대해 외재적일 수 없는 투쟁은,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국가의 소멸이라는 전체적 전망”[각주:30]에 입각해 있다. 오늘날 풀란차스와 다른 이들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다. 하지만 공산주의자 시민들, 시민 공산주의자들 또는 시민성의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거기에 있다. “비가시적인” 존재자들로 거기에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군대도 진영도 당도 교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존재 방식이다.



  1. [옮긴이] 이는 1972년에서 1977년까지 지속되었던 프랑스 사회당과 좌익급진운동Mouvement des radicaux de gauche 및 프랑스 공산당 사이의 선거동맹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프랑스 공산당의 세력이 약화됨에 따라 1977년 좌파 연합이 붕괴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2. [옮긴이] 1936년에 아테네에서 태어난 풀란차스는 1979년 10월 3일 파리에서 자살했다. [본문으로]
  3. Nicos Poulantzas, L’État, le pouvoir, le socialisme, PUF, 1978(19812); 니코스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박병영 옮김, 백의, 1995. [본문으로]
  4. [옮긴이] 그리스어 archè에는 1) 기원, 근원이라는 뜻과 2) 명령, 지휘라는 뜻이 들어 있다. [본문으로]
  5. Nicos Poulantzas, Nicos Poulantzas, L’État, le pouvoir, le socialisme, p. 138; 『국가, 권력, 사회주의』, 162쪽. [본문으로]
  6. Ibid., pp. 154~55; 『국가, 권력, 사회주의』, 179~80쪽. [본문으로]
  7. Ibid., pp. 157~59; 『국가, 권력, 사회주의』, 182~83쪽. [본문으로]
  8. 『국가, 권력, 사회주의』, 237쪽. [본문으로]
  9. Ibid., p. 238; 같은 책, 278쪽. [본문으로]
  10. Ibid., pp. 102 이하; 『국가, 권력, 사회주의』, 119쪽 이하. [본문으로]
  11. Ibid., p. 125; 146쪽. [본문으로]
  12. Ibid., p. 109; 127쪽. [본문으로]
  13. Ibid., p. 130; 151쪽. [본문으로]
  14. Ibid., p. 132; 153~54쪽. [본문으로]
  15. [옮긴이] “섭리국가”라고 옮긴 “l’État-providence”는 ‘복지국가’의 프랑스식 표현이다. 이 개념은 단어 뜻 그대로 이해하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잘 통치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런 명칭의 기원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는 노동헌장을 통해 당대 자본주의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한 상태를 고발하면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 및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는 국가를 제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본문으로]
  16. pp. 71 이하, 116 등; 81쪽 이하, 134쪽 등. [본문으로]
  17.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18.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강주헌 외 옮김, 황소걸음, 2014. [본문으로]
  19. Nicos Poulantzas, L’État, le pouvoir, le socialisme, p. 117 외; 니코스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135쪽 외. [본문으로]
  20. [옮긴이] 곧 유럽 공동체 신규 회원 국가들을 받아들이는 것. [본문으로]
  21. [옮긴이] “극단주의”라고 옮긴 것의 원어는 “montée aux extrêmes”인데, 이것은 양 편에서 서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22. [옮긴이] 발리바르는 다른 곳에서는 이 두 가지 폭력을 각각 “초객체적 폭력”과 “초주체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의 세 개념」,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폭력과 시민다움』 ,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그린비, 근간 참조. [본문으로]
  23. [옮긴이] 곧 극우 민족주의를 지칭하는 “황색”과 (보수적인) 좌파를 지칭하는 “적색”의 결합을 가리킨다. 1990년대 초에 소련이나 유고슬라비아 같은 구 사회주의 국가 내부에서 과거 공산당 소속의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결합하거나 그쪽으로 전향하는 현상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본문으로]
  24. [옮긴이] “국민 우선”은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우선의 대표적인 정치적 구호다.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에티엔 발리바르, 「국민 우선에서 정치의 재발명으로」, 『정치체에 대한 권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1 참조. [본문으로]
  25. Etienne Balibar, “Quel communisme après le communisme?”, in Marx 2000: Actes du congrès Marx international II, Paris, PUF, 2000; 에티엔 발리바르,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오는가?」, 윤소영 옮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 2002. [본문으로]
  26. 칼 마르크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 1996, 431~33쪽. [옮긴이] 번역은 발리바르를 따라 약간 수정했다. [본문으로]
  27. [옮긴이] 아니 르클레르크는 풀란차스의 부인이었다. [본문으로]
  28. [옮긴이] 단어 뜻 그대로 하면 “이방인을 사랑하는 이”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29. Nicos Poulantzas, L’État, le pouvoir, le socialisme, p. 288; 니코스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337쪽. [본문으로]
  30. Ibid., p. 291; 341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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