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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Project/정치적 수사학

[정치적 수사학] 장혜영의 대중정치

by 인-무브 2026. 9. 9.

장혜영의 대중정치

- 장혜영. 2026. 『평등한 평범: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 후마니타스.

 

 

현우식(서교인문사회연구실)

 

 

장혜영은 어떤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쉽게는 정의당의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당과 페미니스트라는 두 단어는 그가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인기 없는 소수정당의 정치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장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한다. 자극적인 말과 행동으로 우리의 이목을 매번 사로잡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존재감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대학을 자퇴하고, 동생 혜정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연출했으며,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국회의원으로 일한 그의 이력은 진보정치의 미래를 기대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평범한 다수를 대변한다고 하기에 장혜영은 너무 특별한 사람이며, 그가 하고자 하는 정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소수자 정치가 아닐까?

 

『평등한 평범』(후마니타스, 2026)은 이러한 편견이 상당 부분 오해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장혜영이 평범한 다수의 삶에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어떤 정치를 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차별금지법이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이 사회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책이다. 따라서 이 글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당의 페미니스트 정치인 장혜영보다는 민주주의자이자, 대중정치인으로서 장혜영이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걸고자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장혜영이 어떤 정치를 해왔고, 또 어떤 정치를 하고 하고 싶은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등한 평범

 

먼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평등한 평범’이 무엇을 뜻하며,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수사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평범함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마저도 어렵다. 평범하게 별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부분 평범해지고 싶지만,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평범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평등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도 불평등은 존재한다. 그럭저럭 언젠가 평범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러한 희망이 박탈된 채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범함이 특권이 되어버린 이 사회가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다수가 자신의 처지에 불만족하는 사회에서는 남의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우리는 소수에게 차별적으로 분배되어 있는 평범함을 되찾기 보다는 평범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탓하곤 한다. 이 책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함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고, 끊임없이 남과 자신의 지위를 비교해야만 하는 비정한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혜영은 “평범함을 다수의 것으로 되찾고 싶다”고 말한다(22). 그는 우리 사회가 다수가 평범해지는 사회, 평범하다는 점에서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획일화되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평범해지고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가 평범해지는 사회는 모두가 동일한 생활 수준을 누리는 사회라기보다는 각자의 고유성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평범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에 가깝다. 즉, 모두가 평범해진다는 것은 각자의 방식대로 특별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평범해지고 싶은 욕망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평범해지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가 주입한 거짓 욕망이며,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평등함을 추구하는 당신의 욕망이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평범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삶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범함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평범함을 다수의 것으로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차별금지법은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저자의 정의를 인용하고 싶다.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부당한 차별의 경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여 이 사회가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18). 이 정의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은 차별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사회가 차별받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 차별받는 사람들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이 되어주고, 사회에는 그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되어주는 법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좀 더 평등하게 평범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평범함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나의 일상적인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바늘구멍을 통과해 소수가 되지 않고서도, 다수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데도 기여한다. 이런 법을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 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확산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맘에 들지 않는 일들을 모조리 차별이라고 트집잡아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차별을 반대하는 일에는 동의하지만, 시급한 현안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진보정당에서도 괜히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우려가 상당부분 비현실적이며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무식한 사람이라거나 음모론자로 몰아 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이 법에 찬성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회의적인 시각을 갖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동의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등한 평범』 이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들을 독자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 달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운좋게 들어준다 하더라도 입장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자이자 대중정치인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의지가 없다면, 그 사람은 직업이 정치인일지라도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없다. 21대 국회의원 장혜영의 임기는 끝났지만, 그는 국회 바깥에서 여전히 정치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 정치의 내용을 들어볼 차례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바를 관철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문장 하나를 꼽자면 바로 “중요한 것은 원하는 바를 관철하는 것이다”(101)라는 문장이다. 비슷하게 “서운함은 접어놓고 일을 하기로 했다”(104)도 있다. 모두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대사(?)들이다. 이런 저런 시련을 겪은 영화 속 주인공이 비장하게 의지를 다지는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책에는 저자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이 나와 있다. 놀라운 점은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상당 부분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소수정당이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가 겪는 문제들을 급진적으로 제기하기 위한 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형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과 법률에 관한 당대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외 사례를 2003년부터 3년간 연구해 만든 ‘차별금지법안’이다. 이후 발의된 모든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 안에 기초해 만들어졌다(103).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4개의 차별 금지 영역(고용, 교육, 재화나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행정 서비스의 공급이나 이용)에서 일어나는 23가지 차별(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을 금지하는 법이다. 범위가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열거하기도 어렵다. 살아가면서 이 차별을 겪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차별금지법은 그런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이 법은 민주당은커녕 진보정당 안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간명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먼저 듣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법 반대 주장의 원조로 노무현 정부 말기 ‘동성애차별금지법안저지 의회선교연합’의 주장을 예시로 든다. 이들은 당시 법무부가 예고한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이 윤리 도덕에 어긋나는 성적 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회악’인 동성애를 조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121). 이 주장은 현재까지도 차별금지법 반대 진영의 대표 주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들이 문제 삼은 ‘성적 지향’이라는 차별 금지 사유는 이미 2001년 5월에 제정되고 11월에 시행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정확히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로 포함된 바 있다. 그렇다면 ‘성적 지향’은 왜 이 시기에 그토록 문제가 되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133)고 이야기하지만, 이 현상의 배경에 한국 교회의 교인 수 감소와 교세의 하락이 있다는 사실을 짚는다. 한국 교회가 내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동성애라는 외부의 적을 설정했다는 것이 배경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퀴어문화축제 등에서 교인들이 보이는 ‘신념’은 사실 조직적 지원이 뒷받침된 정치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풀뿌리 조직과 네트워크를 보유한, 조직된 정치 집단이기도 하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갑자기 종교를 찾는 이유, ‘신천지’와 ‘통일교’와 같은 마이너(?) 종교조차도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물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개신교는 어떻겠는가. 정치는 종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교회는 보수정치의 ‘거룩한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차별금지법 이야기를 할 때 자연스럽게 동성애와 관련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유는 이 법이 편향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렇게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상황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교인들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다양한 법안을 동시에 추진하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법안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정의당의 21대 총선 공약이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정의당은 노동 중심 정당이고 산재 사망 문제가 심각하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1호 법안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토론 끝에 여러 법안을 묶어 ‘1호 법안 패키지’로 제시하는 안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장혜영은 차별금지법 대표 발의 의원으로 나섰다.

 

예상대로, 혹은 예상하지 못할 만큼 ‘진정한 평등을 바라는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 전국연합(진평원)’ 등 반대 세력의 반발이 거세게 제기되었고, 정의당은 흔들렸다. 발의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었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바를 관철하는 것이다”라는 대사는 바로 이 시점에서 나온다. 장혜영은 누군가의 평가에 따르면, “발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100)에 가까운 태도로 지금이야말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그는 입장을 관철했고, 2020년 6월 29일 월요일 21대 국회 개원 한 달 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차별금지법은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알다시피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에서 제정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차별금지법은 2026년 1월 9일 진보당 손솔 의원 등이 발의하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반대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법안 제정 절차에 탄력이 붙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대중의 동의가 필요하기에,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왜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지를 설득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저자는 코로나19 사례를 들면서 “차별과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115)고 말한다. 차별과 혐오가 방역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 확진자 개인과 확진자들이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특성을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중국이라는 사실은 중국에 대한 혐오를, 대구 지역의 집단감염은 대구 지역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기독교 예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소식은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이태원의 클럽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했다. 결국 국민 대다수가 확진자가 되어버렸지만, 코로나19 발발 초기 확진자를 색출하고 사회적으로 처벌하겠다는 국민적 열기는 과도할 정도로 높았다.

 

저자의 주장은 혐오로 말미암아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방역 정책의 핵심인 자발적 검사 참여를 꺼리게 되고, 이것이 전 사회적 보건 위기를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권위 차별금지법 초안을 예시로 들면서, 이 법이 우리 헌법의 핵심 원리인 평등 이념의 실현을 도모하며,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보호와 “국민 인권의 전반적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사회 통합 과제의 해결”에 기여한다는 점을 언급한다(116).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법은 (모든 법이 어느정도 그러하듯이) 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까 차별과 혐오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국익’을 해친다는 이 주장은 보건의료 정책에 한정되는 주장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비처럼 느껴진다. 부당한 차별로 인해 당사자와 그가 속한 집단의 사적이고 공적인 삶이 위축되었을 때, 사회는 통합이 아닌 분열의 길로 나아간다. 가장 보수적인 의미에서의 국민 통합,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마스크를 벗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서로를 향한 ‘차별적 거리두기’를 멈춰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저출생 고령화 위기를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저자는 약간의 위트를 섞어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결혼율과 출산율을 높이고 HIV 감염률을 낮추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동성애자들이다라고 말한다. 이성애자들은 결혼을 점점 멀리하고 있는데, 동성애자들은 결혼하려고 사회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혼율 상승 역시 오로지 이성애자들의 몫이다. 레즈비언들은 정부가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아도 막대한 자비를 들여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HIV 예방과 치료는 동성애자들에게는 자신의 생명과 건강이 달린 문제다. 이 세상에서 HIV를 가장 근절하고 싶은 사람들은 바로 동성애자들이다(132).

 

이 주장은 차별금지법이 당장의 인구와 보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기 보다는, 차별금지법 반대 주장이 얼마나 공동체의 공적 이익에 대해 편향된 관점을 갖고 있는지를 뒤집어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다. 동성애가 확산되면 HIV가 퍼지고, 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익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오래된 주장은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무지와 차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나는 높은 이혼율과 저출생 문제가 ‘이성애’ 때문이며, 이성애를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을 본 적이 없다. 주장이 터무니없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성애가 유일한 젠더규범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농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차별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식투자와 ‘3대 메가 프로젝트’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그것이 실제로 나의 삶에 어떠한 도움이 될지 불확실함에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받는 차별을 보호해주겠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이 법에는 유독 인색하다. 여기서 저자는 억울해하기보다는 설득하기를 택한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예상된 반박들을 신중히 고려하면서, 이 법을 제정하는 것이 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지를 차분히 설득해 나간다.

 

대중정치인 장혜영

 

이 책은 조금 속되게 표현하자면, 차별금지법 제정 확률을 1%라도 높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한 정치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저자 장혜영은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사회 문제들을 다루어 왔고, 또 그래야 하는 정치인이다. 차별금지법 역시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하나의 법’일 뿐이다. 왜 이렇게까지 이 법에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 많은 국회의원들이 임기 동안 자신이 얼마나 다양한 일을 했는지 소개하기도 바쁜 것과 달리 저자는 왜 이 법 하나를 위해서 책 한권을 할애해야 했을까.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차별금지법이 하나의 법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이 책의 부제는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운 법 제정의 필요성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그것이 모두가 평범하면서 특별해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 역시 이제는 진화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음모론을 멈추고, 이 법을 막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득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이 법을 둘러싼 논쟁이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얼마나 읽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이 책이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꾸준히 말을 걸고 있다. 그리고 정의당의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력과 대중정치인으로서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평등한 평범』은 차별금지법 문제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임과 동시에 장혜영의 정치가 어떻게 시작되고, 변주되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21대 국회의원 장혜영의 임기는 끝났지만, 그는 아직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 역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