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의 시대착오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1995년 낸시 프레이저는 「재분배에서 인정으로? -‘포스트사회주의’ 시대 정의의 딜레마」라는 글을 통해서 젠더 정의에 있어서 재분배와 인정의 두 축 중에서 무엇을 우선으로 하여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포스트사회주의’라는 시간을 당면한 상황에서 인권 존중과 평등권을 모두 충족시키기엔 재분배-인정 양쪽의 이해관계가 상호 모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꽤나 까다로운 논의가 되어버립니다. 이 글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긍정적 개선책/변혁적 개선책이라는 문제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재분배와 인정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일종의 ‘사고실험’을 진행합니다. 이 작업물이 발표된 이후, 주디스 버틀러, 리처드 로티, 아이리스 매리언 영 등의 이론가들이 합세하여 다소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2004년 낸시 프레이저는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지구화하는 세계에서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틀의 설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될 강의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케인스주의적-베스트팔렌적 틀’(지리상의 경계를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난 지구화시대에서 재분배와 인정의 이분법적 문제에 더하여 제3의 항을 추가합니다. 이젠 정치적인 정의에 대하여 질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젠더 정의를 포함한 사회적 정의를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 ‘당사자’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는 성찰인 것입니다. 정치적인 것은 대표의 문제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을 통해 ‘당사자’(주체)의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
네, 여기는 <이상한가역반응>이 맞구요.
시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더니 왜 갑자기 젠더 정의와 사회학자의 논의 이력에 대해서 읊고 있을까요.
저는 오늘 고정희 시인의 시집을 통해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룰 시간이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완수되지 못한 혁명과 통일에 대한 되돌려보기이고요. 이미 제출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와 『여성해방출사표』 에 대한 재독이며 출사표의 행방 돌아보기이기도 하지요.
1991년 고정희 시인은 본인이 사랑하던 지리산 뱀사골 자락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인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비평사, 1992)의 가장 마지막 시는 「독신자」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기묘한 느낌을 줍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본래 이 시집은 시인이 지리산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시영 선생에게 전달되어 “창작과비평”에서 엮여서 출판되기로 되었었는데요. 시인이 사고로 떠나게 되면서 유고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두 편의 시, 「사십대」와 「독신자」는 시인이 건넸던 것은 아니고요. 시인이 쓰던 마지막 책상에서 발견된 작품입니다. 특히 「독신자」는 시인의 마지막 장면을 예언하는 것 같기 때문에 자기자신에 의해서 미리 씌어진 미래같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작품이죠. (물론 사인은 ‘실족사’입니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독신자」(188-190) 부분
마지막 장을 자신의 마지막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시인의 유고집은 서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합니다. 어머니가 아니라 마치 그녀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스스로 염하는 것 같은 이 장면, 시간이 엉켜버린 것 같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위와 같이 현재에 미래가 먼저 도착하는 언명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이 시집은 1990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 종교음악 연구소의 초청으로 1년간 ‘탈식민지와 시와 음악 워크샵’에 참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을 모은 책입니다. <밥과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씌어진 연작시, <외경읽기>라는 주제로 묶인 신성과 인간에 대한 질문이 담긴 연작시, 그리고 통일에 <몸통일 마음통일 밥통일이로다>라는 통일에 관한 전망을 담은 연작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나절을 일한 자나 하루 종일 일한 자나 똑같이 최대생계비를 지불함이 하늘나라 은총이다 선포하셨건만, 반평생을 뼈빠지게 일한 자나 일년을 혼빠지게 일한 자나 똑같이 임금을 체불당한 채 밀린 품삯 받으러 일본으로 미국으로 다국적기업 뒤꽁무니 쫓아간 우리 딸들이 임금 대신 똥물을 뒤집어쓰고 울부짖을 때 당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온갖 제국주의 음모와 죽음의 쓰레기들이 자유와 정의와 평화라는 식품 상표를 달고, 당신의 이름으로 배고픈 나라의 백성을 향하여 무한대로 수출되고 있는 작금에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님,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신지요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 쟈니 윤의 쇼 프로그램에서 미국식 웃는 법을 익히고 계십니까, 아니면 힘이 무지무지 센 나라의 현대판 노예 수출선에 팔려가고 계십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용용 죽겠지 꼭꼭 숨어라 목하 종말론이 생산중인 페르시아 만이나 바빌론의 무기창고에서 재고를 헤아리는 무기 상인들을 격려하고 계십니까? 아니아니 당신의 이름을 교수형에 처한 공산대륙이나 모스끄바 뻬레스뜨로이까 전철 속에 앉아 이단의 풍물을 감상하고 계십니까?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님, 당신은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교회의 창고부터 열어야 합니다
「밥과 자본주의 –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부분
상품과 문화의 형식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편에서 저개발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그리스도를 소환하면서 신성(神性)이 사라진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의 구원과 은혜는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겠죠. 신의 정의(正義)가 사라지고 폭력의 무기들이 파송되고 있을 때 한편엔 억압을 받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고정희의 연작시 「밥과 자본주의」는 한편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화가 재현되고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식민화되어가는 서발턴이 재현됩니다.
특히 필자가 자세히 읽어보길 권유하는 부분은 <밥과 자본주의>와 <외경읽기> 연작시 부분입니다. 1990년 마닐라로 떠나면서 시인은 “나는 여성주의 시각의 핵심을 한국에서, 그리고 아시아 여성들의 삶과 수난에서 찾으려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또한 한국의 정치 역사 현실 속에서, ‘성억압이 얼마나 비참하고 참혹하게 전개되어 왔는가’ 하는 출발점을 ‘원나라에 바쳐진 고려 공녀 사건’에 두고 있으며, 왜정치하 위안부로 군수공장으로 끌려간 ‘정신대 여자 사건’을 그 정점으로 삼고 있다’”라는 글을 남깁니다. 이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이 유고집의 <밥과 자본주의>와 <외경읽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에이즈 혈청을 휴대한 백인 남자들, 배 위에 배 하나를 더 얹은 듯한 배불뚝이 남자들이며 백발이 성성한 늙다리 남자들이 젊고 가냘픈 아시아 여자들을 사타구니에 끼고 합법적인 윤간을 즐기는 동안, 아아 아시아 남자들은 문 밖에서 담배 같은 희망 혹은 희망 같은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득 사이판이나 오끼나와 섬으로 끌려가 수중고혼이 된 아시아 여자들이 남긴 비명소리, 아슬아슬한 절벽에 몸을 던지며 최후의 일성으로 외쳤다는 어머니~ 어머니~ 하는 울부짖음을 푸에르토 갈레라 파도 소리 속에서 들었습니다
「밥과 자본주의 – 푸에르토 갈레라 쪽지」부분
자본주의의 지구화는 전쟁을 동반하며 진행되었고 현대사에서 그 대표적인 장면이 2차 세계대전이었겠죠. 재난이 벌어지면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노인·아이들이 먼저 희생되지요. 위의 시에서는 전쟁이 동아시아 여성들을 어떤 취급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는데요. 자본주의의 팽창은 상징적으로 ‘밥’이라 상징되고 있는 존엄성이랄까요. 그걸 침해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서발턴의 입장을 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이 작품의 직전에 배치되어 있는 「밥과 자본주의 – 구정동아 구정동아」를 보면 성서에서의 예수의 모습으로 비유되곤 하는 ‘가난한 자’가 구정동이라는 부유한 동네 어디에서도 쉴 곳을 찾지 못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예수는 ‘강남’을 가리키면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곳이라 한탄합니다. 마지막 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축언을 내리려고 합니다. “자매여, 네 사랑이 믿음을 구했다/그대 속에 인류의 어머니가 있노라/세상은 여자도 구원받는다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가자, 그대 처마 밑에서 하룻밤을 묵으리라/그대 거처를 근심하지 말라/나는 대접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내 백성의 고난을 싸매러 왔다/그대 고통이 서려 있는 처마 밑이면 족하다”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가난한 자를 구원하겠다던 신의 목소리와 언약은 「밥과 자본주의 – 푸에르토 갈레라 쪽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에이즈 혈청을 휴대한 백인 남자들”에 의해서 그녀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은 요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시인은 신의 구원의 약속은 미래에도 현재에도 과거에도 속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신이 우리의 시간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리게 된 이 파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정치적이거나 신성에 해결을 구하는 방법을 통해선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버린 시인은 자신의 자리에서 전망을 선취하려고 합니다. 이미 그 전망이 사라져버린 혁명의 힘을 시라는 세계 안에서 믿는 것,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묘하게도 신의 자리에 더해서 ‘민족’의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한반도에서의 민족모순의 해결이 세계 자본화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동아시아의 여성이 서발턴이 되어간다든지, 서양신이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의 시효가 끝난 것이 현실을 파악한 뒤, 우리가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시간에서의 혁명이란 민족적 해방의 미래를 열어내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쟁취 방식이 민족통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 어쩐지 겸연쩍어집니다만)
통일염원 오십년 만에 드디어
해방절 운동이 시작되었다
감옥에 갇힌 자가 풀려나고
빚에 묶인 자가 빚을 탕감받으며
억울한 자가 그 억울함에서 위로받는가 하면
소작인이 자기 땅을 되돌려받고
권력을 쥔 자가 권력을 내놓으며
교회와 부자가 곳간문을 열어
여자나 남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 모두가
완전한 평등
온전한 권리와 밥을 되찾게 되는 해방절,
이 어마어마한 희년운동이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으니,
(……)
똥줄이 타는 어느 진보노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부디 오셔서 우리를 도우소서”
서둘러 텔렉스를 하늘나라에 보냈고
시간을 벌고 싶은 어느 보수노선 교인들은
“내탓이오 내탓이오” 스티커를 자가용 유리창에 부착했다
이에 마음이 약해지신 예수께서는 행장을 꾸리시고
해방절이 준비중인 도성에 들어와
아무도 모르게
달동네에서 하룻밤을 묵으셨다
그러나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예수께서 머무신 이 달동네에는
미증유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해방절은 구십오년 팔월 십오일이었고
때는 아직 구십삼년 유월,
이름을 알 만한 한 성직자가
예수 앞으로 걸어나왔다
「밥과 자본주의 – 해방절 도성에 찾아오신 예수」부분
시인은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개인의 구원보다는 민족 차원의 해방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해방의 원년을 선언하죠. 1990년 당시 아직 오직 않은 1995년 8월 15일을 해방의 원년이라고 하는 것이죠.
해방절은 자기 몸에 칼을 대는 혁명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 나라 해방절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몸에 칼을 대는 혁명이다
교회가 곳간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닫지 않는 혁명이요
주린 자가 다시는 주리지 않게 되는 혁명이요
억울하게 갇힌 자가 다시 갇힐 일이 없는 혁명이다
당연히 누려야 할 사람의 권리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의 대우
당연히 차지해야 할 사람의 밥그릇
당연히 지녀야 할 사람다움의 세상을
내 백성에게 되돌려주는 혁명이다
해방을 되돌려주는 혁명이다
해방을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혁명의 주체이자 해방의 주체들이 호명되어야겠죠.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억압받는 가난한 서발턴들이 해방의 주체가 될 것입니다. 고정희가 소환한 해방의 신은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일방적으로 구원해주는 자가 아니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주체가 되기로 한 억압받는 민중입니다. 이 해방은 주체로부터 시작하여 주체에 의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1990, 1991년의 고정희 시인의 전망과 변방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고정희 시인이 한국 여성주의 운동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매체인 <여성신문>의 편집주간을 맡았으며 <또하나의문화>의 동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시에서 는 당대의 동아시아 여성문제나 강제동원된 정신대 및 오키나와의 여성들의 문제는 해방적 사유의 구체적인 대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방신학에 이해가 남달랐던 그녀는 빈민이나 민족모순에도 가열차게 반응할 수도 있었죠. 여성의 해방이 민족의 해방과 순서를 다투는 일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운동사에 있어서 과히 낭만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여성해방출사표』(동광출판사,1990)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습니다. 이 시집의 짜임은 황진이, 이옥봉, 사임당, 허난설헌 등이 시간을 거슬러 서로에게 서신을 교류하면서 역사 속에서의 ‘여류’라는 멸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1990년 현재의 여성의 인권에 대해 평가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갑자기 전환되어 해방 이후의 여성해방운동의 현실이 어떻게 ‘정실부인’을 통해서만 이뤄지게 되었는지 보여주게 됩니다. 결국 이 해방도 가부장제가 허락하는 한에서만 이뤄지게 되는 해방이라는 점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황진이를 비롯한 조선의 여성문인들이 '여류'로 불리게 된 그 세계의 틀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한계점을 '정실부인'을 통해 가리키는 것이죠.
지금처럼 설명한 내용만 봐서는 시에 대한 개괄이 아니라 단편소설 여러편에 대한 소개 같지는 않으신가요? 알만한 독자들은 알고 있겠지만 고정희 시인의 시는 행간과 행간 사이에 호흡을 두고 음미하는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야기시의 모양새와 리얼리즘적 미덕을 갖춘 작품이라는 것이죠. 전형적 인물들이 나타나서 과거와 현재의 여성문제의 총체성에 접근하려한다고 말하면 될까요. 좀 불친절한 표현이지만 여성과 역사에 대한 시각과 현재성을 모두 챙기려는 시인의 의욕이 형태적으로는 장시(長詩)이며 내용적으로는 현실을 다루게 했던 것이죠. 이 부분이 고정희 시인이 문학사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확보하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970년대의 김지하 시인은 시적 폭력을 통해 현실의 폭력을 드러내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 주장했었는데요. 장시의 형태라거나 전통가락의 '신명'의 글쓰기와 같은 점을 가졌기에 시의 언어가 계산되었다는 인상, 단정하다는 상식은 기각하고 단정하지 못한 ‘말잔치’와 같은 것이 고정희 시인의 언어랄 수 있겠습니다. 「초혼제」(창작과비평사, 1983)의 경우도 민중해방과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굿을 원고지 위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외경읽기>연작에서는 굿과 민속신앙의 언어를 쓰지 않았다뿐 그리스도와 예수를 향하여 인류의 불행의 책임을 묻는 재판과 같은 서사장면이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특징은 고정희 시인이 활동했던 1980년대의 시대적 감각이 형식적으로 재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해방이란 여기에 지금 있는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은 그녀가 예언한대로 1995년에 이뤄졌을까요. 여성, 빈민, 노동자들에게 해방원년이라는 것이 도래했나요. 그게 뭔소리냐는 지청구가 먼저 나오기 좋을 말입니다. 1980년대에 성취한 민주화의 경험과 그 흥분이 다소 남아있었던 당시에는 희망의 부스러기라도 남아 독자와 시인에게 상상의 군불을 지피는 역할로 남아있을 수 있었겠죠. 마찬가지로 해방의 신에 의해서 하달되었던 신의 예언과 구원을 믿고 행동할 주체에 대한 믿음도 잔존할 수 있었을 것이고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해방되었다는 존재는 누구일 수 있을까요. 지난 2016년의 광장의 촛불은 인권상까지 받으며 ‘혁명’이라 불리고 있는데요. 이때 뛰어나온 다종다양한 ‘당사자’성을 가진 주체들 중에서 해방을 얻은 이가 있을까요. 여성, 장애인, 노동, 청년 등등. 여기에 누가 해방을 얻었죠?
고정희 시인은 다소 이르게 미래를 혁명이란 이름으로 불러냈던 것은 아닌지. 그것은 지나친 시대착오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소략히 다룬 내용이지만 고정희 시인의 시세계는 이야기시와 사실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형식은 1980년대말에서 1990년대까지 혁명에 대한 구체적 언어가 남아있었던 그 시절에 이어진 리얼리즘시에 대한 논의와 궤를 같이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만해도 진보와 해방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었죠. 그 전망을 제공하고 있던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시는 시대착오적으로 현실에 개입할 알리바이였던 시절이 있었던 거죠.
나중에,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저는 고정희의 시집을 읽으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성평등정책 발표회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2017년 2월 16일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며 발표를 시작했죠. “성평등을 인권의 핵심가치”라고 설파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본인의 딸도 ‘경력단절여성’이 되어 육아노동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이 맥락에서의 ‘여성’은 아이를 낳고 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신체를 가진 이성애자 유권자를 대상으로 성평등을 실현하시겠다고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선거 후보자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젠더의 사각지대가 있었던 것이죠. 이때 자신은 ‘동성애자’, ‘여성’, ‘서울시민’인데 어떻게 나의 권리를 반으로 나눌 수가 있느냐며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행사장에 있던 다른 여성단체 회원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따른 양성평등은 중요하지만 2+n에서 2개의 성 이외의 n의 존재들은 아직 몫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보할 것 없는 사람들이라 뛰어나왔는데 ‘지금’은 우선 양보를 하라는 거지요. 참 더럽습니다. 잘 아는 사람들끼리. 알만한 사람들끼리 이러는 거 아니죠.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만)
그런데 이 상황은 1995년 낸시 프레이저가 말했던 젠더 정의에서 재분배를 선택할 것이냐 인정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문제제기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낸시 프레이저의 입장만을 참고하여 시간을 대비해보자면 한국의 2017년 성평등정책 발표장은 1995년도의 젠더정의의 문제제기와 2004년도의 젠더정의의 문제가 경합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젠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물러날 곳이 없는데 이성애·가임 여성의 재분배의 문제를 먼저 말하고 LGBTQ를 향한 혐오 문제 및 분배 문제는 양보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사자’의 구축이란 것을 사회적 정의를 다룰 때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는 낸시 프레이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와 주체의 문제는 이분법도 아니고 양분되는 것도 아니라 정치적인 ‘당사자’성을 공유하면서 기성의 영역을 넘어설 것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리고 고정희 시인이 1990년도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하면서 도약할 수 있었던 아시아 여성의 구원문제와 해방 주체의 소환이라는 혁명에 대한 사고는 지금 우리가 ‘당사자’를 상상하는 것과 무척 닮은 전사(前史)같습니다. 민족주의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해방을 넘어서 프레이저의 용어라면 '탈베스트탈렌적'이며 여성 해방 논의에 있어서 자신 스스로가 '종속'되었다는 감각을 가지게 되어버린 것이 1990년의 고정희 시인의 자리였던 것이죠.
하지만 이제껏 여성의 해방은 민족적 해방에게 늘 양보하고 '정실부인'이라는 허용된 범위에서만 추구될 수 있었던 것인데요. 그런데 민족이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해방이 이뤄졌습니까?
2017년 성소수자의 요구는 '나중에'라는 말에 대항한 시대착오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성별 이분법의 시간에 따라 선후관계에 배치되어야 하는 '나중에'라는 말은 새로운 주체를 단일화하려는 폭력이겠죠. 그런 식으로 역사는 여성의 '현재'를 진보적이어야 하는 그 미래시간에 복속시키겠다는 '빈 말'이 되어버리곤 했었던 것이죠. 이 지점에서 시대착오적 당사자성의 구축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긴급한 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말이 어렵게 풀려버렸네요)
오늘도 자기비판을 하자면 저는 고정희 시인의 시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정희 시인에게서 나타나는 시적 주체는 세계의 불의에 반응하는 혁명적 주체가 있었다는 것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도 써놓고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대착오’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해만 끼치는 것일까. 떨쳐내야 하는 망상인 것인가. 그것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섣불리 미래를 우리가 선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될 수 있을까요. 이 상상력 없이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마감을 ‘착오’하는 점 부끄러워하며 졸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