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 이 글은 『인문예술잡지 F』 23호(2016년 12월호)에 "이단적 지식과 빈자의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게제된 적 있음을 알립니다.
이단적 앎과 빈자의 해방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배세진
카뉘의 이름
학교에서 사회사를 배우는 모든 초등학생들은 1831년 11월 리옹에서 자부심에 찬 카뉘들이 노동자 계급을 보편사의 장면에 등장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 계급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은 그들의 깃발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다. 노동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거나 싸우면서 죽음을 맞이하기. 이후에도 매력적인 후렴구[즉, 카뉘의 반복적인 봉기]가 이 문장에 금빛 제의, 누더기 옷 그리고 낡은 시대의 수의가 지니고 있는 대조되는 이미지들을 결합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의 윤곽은 이 이미지들을 통해 상당히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인물들이 만든 기관지 『공장의 메아리 L’Écho de la Fabrique』를 읽는 것은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기관지에 대한 독해는 깃발에 쓰여진 저 문장에 더욱 정확하고 놀라운 언어적 맥락을 복원해줄 것이다. [『공장의 메아리』에 따르면] 봉기가 일어난 지 몇 개월 후, 이 기관지는 공모전을 연다. 공모전은 다양한 전문분야로 나뉘어져 있는 리옹 공장의 노동자 계급 모두를 통칭할 수 있는 일반명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 당시에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이라곤 카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카뉘라는 이름은 사실 모욕적인 의미를 지닌 별명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그 모욕적인 의미의 별명을 직물의 한 종류에서 가져온 이름인 페랑디니에(ferrandiniers)라는 명칭으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려는 이러한 시도에 모두가 합의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 시도는 기관지의 한 필자에게 노골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영웅적인 인민들이 온 나라에서 떨쳐 일어난 이 진보의 시기에, 나는 그들이 자신의 행동 속에서 약해지지 않았듯이 그들의 언어 속에서도 퇴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한 나는 우리 도시의 존경스러운 일단의 노동자들이 막 채택한 이 명칭이 우리가 맞이한 쇄신의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페랑디니에라는 이름은 그것이 명주의 직조와 관련됐다고 말해주는 어떠한 흔적도 우리의 머릿 속에 남겨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최소한 “그 이름을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의 머릿 속에는 정확한 관념을 남겨놓는” 이름인 라틴어 세리카리우스(sericarius)에서 유래한 세리카리앙(sericarien)을 제안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모든 혁신가들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인민과 관련한 거대한 언어철학적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경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왜 이 존경스러운 필진이 내놓은 해결책 또한 멀리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필자가 제안한 명칭인] 세리카리앙이라는 단어의 접미사는 직능의 이름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공모전이 실시되고, 인민의 벗이자 문헌학과 문법학을 공부한 노동자들이 몇 개월에 걸쳐 명주 노동자의 활동을 매우 풍부하게 표현해주는 가장 적절한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논쟁하게 된다. 어느 노동자는 세리카리앙을 비판하면서 수아리페브르(soierifèvre)를 제안하지만 이 또한 탈락하는데, 왜냐하면 이 단어의 접미사가 망치를 쓰는 노동자들에게만 적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이 노동이 과연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거나 그 노동의 신성한 기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폴리미트(polymithe), 봉빅시앙(bombixien), 팡필라리앙(pamphilarien), 아라크네앙(arachnéen) 그리고 또 다른 서른여 개의 단어들이 모두 탈락한다. 이 와중에 한 외국 필자는 과거 스칸디나비아의 많은 왕들이 명예롭게 사용했던 이름이라는 이유로 카뉘를 다시 지지하기도 한다. 한편 리옹 공장의 창설자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튀르케트나리스트(Turquetnariste)라는 이름이 제안되는데, 이 이름은 이러한 감사와 인정이 노동자의 덕목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마지막 제안은 기관지의 위원회가 “진보적이고 보편적인 운동의 결과”를 표현하는 이름을 제시해달라고 강하게 권고한 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알려져 있듯 위원회는 이름을 정하지 못 한다. 1833년 1월에 있었던 마지막 회의 소집 이후, 우리는 그들이 이 문제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다.
반면 우리는 이 기관지의 핵심인물인 공화주의 변호사 마리우스 샤스탱(Marius Chastaing)의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1846년 『리옹 트리뷴 La Tribune lyonnaise』의 책임 편집자였던 그는 떨리는 어조의 한 담화에서 『마그네티즘 저널 le Journal du Magnétisme』의 책임자가 리옹에 방문하는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그네티즘은 신 자신으로부터 유래한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생기의 정신에 대한 지식이며, 또한 이는 끊임없는 하나의 연쇄에 의해, 비록 우리의 감각이 [우리 몸 내부에서 순환하는] 그 다양한 원환들을 지각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이를 삼라만상의 지고의 원인(auteur)과 연결해주는 의술이다. (…) 마그네티즘은 보편의학이며, 대학에서 가르치는 의학은 이 보편의학에 대한 조잡한 복제품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싸우던 투사가 마그네티즘의 신비 속으로 도피해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당시 사회주의 노동자 운동이] 1830년 이후 언어의 문제로 일탈한 것, 그리고 그 이후에는 1848년 이전까지 마그네티즘으로 일탈한 것은 언어와 인정투쟁의 영역으로부터 삶과 연대의 희망으로 변화한 사회정의라는 관념 때문인 것이다. 1848년에 마리우스 샤스탱은 『아스트레올로지 Astréologie』 또는 『사회문제의 해결책 Solution du problème sociale』이라는 저서를 집필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별들에 관한 책[Astrologie, 즉 점성술에 관한 책]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미스의 딸인 아스트라페에 관한 책이며 국가교육, 은퇴자 기금 그리고 상이 노동자의 비속한 모습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나는 이러한 사회주의의 독특한 궤적으로부터 내 논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는데, 왜냐하면 이는 나에게 1830년에서 1850년 사이에 학자(savants)의 공간과 인민의(populaires) 공간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여러 관계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막 등장한 사회과학을 비롯하여 의학, 이단적 교육학, 지방의 문법학자들(이들은 그들이 임의로 선택한 학생들에게 프랑스 운율법의 개념과 함께 보편언어와 신성한 정의의 개념들을 설파한다)로부터 노동자 형제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하는 기업인들과 괴짜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인정된 제도들(기초 교육을 위한 협회, 폴리테크닉 연합, 방법 협회 등등) 안에서 인간과 관념 사이의 만남이 야생적인(sauvage, 인민적인) 방식으로 점점 더 많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절반의 학자(demi-savants)인 프롤레타리아와 절반의 프롤레타리아(demi-prolétaires)인 학자 간의 만남을 통해서 해방의 관념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하나의 축은 언어의 이론이라는 축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과학이라는 축이다. 첫 번째 축은 프롤레타리아를 사회적 행위자로 명명하는 것과 관련되고, 두 번째 축은 프롤레타리아의 활동 공간을 규정하는 것과 관련된다. 사회적 해방의 관념은 어떤 이중적 요구에 응답함으로써 인민이 지적 세계(univers)를 전유하는 방식의 몇몇 형태들을 거쳐가거나, 또는--이렇게 말하길 원한다면--과학에 대한 특정한 관념을 경유한다. 즉, 평민적인(plébéien) “자기에의 관심”(souci de soi)의 구성(이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 개인이라는 관념(이는 또한 존재들 사이의 연대성이라는 관념이기도 하다)이라는 이중적 요구 말이다.
지성의 징후(signe)
나는 여기서 앎에 대한 평민적 전유 형태들의 몇몇 두드러진 특징들을 검토해보고 싶다. 나는 몇 가지 애매함을 피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적(prolétaire)이라는 형용사보다는 평민적(plébéien)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몇몇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적”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산업 유형의 노동자를 지시하기를 고집스럽게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평민적”이라는 단어가 노동의 한 유형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관계를 지시한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평민은 역사를 구성하는 말(parole)로부터 배제된 존재이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의미는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그 시기 동안 완전히 현재성(actuelle)을 띠고 있다. 1829년에 피에르-시몽 발랑슈(Pierre-Simon Ballanche)는 잡지 『파리 리뷰 La Revue de Paris』에 고대 로마의 아벤티누스(Aventin) 언덕에서 발생한 평민 투쟁인 성산사건을 대표적 이야기로 제시했다. 거기서 평민들의 봉기는 말하는 주체로서 스스로가 인정받는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어떤 이름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이다. 귀족권력은 평민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말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결합관계에서 나오는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혈통의 이름을 물려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토지에 대한 소유를 침해하는 것은 그 한정된 영역에 대한 소유가 하늘에 새겨져 있는 그러한 소유를 실제로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역으로 생각하자면 [농민들이 투쟁을 통해 획득한] 농지균분법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상징적 혁명, 즉 하늘에 이름을 새기는 것이다. 이로써 평민들은 그들이 “말이라는 지성의 징후”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한다(reconnaissent). 이러한 소유에 관해 의식하게 된 평민들은 계약상의 상호 동등한 말을 귀족들에게 부과할 수 있는 힘을 자신의 지도자에게 줌으로써 감히 그에게 이름을 부여하려 한다.
위와 같이 묘사된 이 시초적 장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830년 이후의 노동자들이 만든 팜플렛과 잡지의 배경인 이 갈등의 무대에서 노동자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평민들이 사회적으로 재인정되는 것(réhabilitation)은 이름을 위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적 재인정 과정을 거쳐간다. 이러한 지적 재인정에 대한 요구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인민의 교육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현재의 교육(enseignement)에 관한 문제틀은 교육을 사회적 긴장을 감축하는 데에 어느 정도 적절한 통합의 도구 정도로 사고한다. 한편의 사람들은 인민을 계몽하는 지도(instruction)와 인민을 그들의 자리에 계속 남아 있게 하는 교육(éducation) 각각의 몫에 대해 토론한다. 다른 편의 사람들은 앎의 분배라는 문제를 이해관계의 조화라는 경제 모델에 기초하여 해결하는 “유용한 지식들(connaissances)”을 특권화한다. 이 문제틀의 한 켠에서 훨씬 더 날카로운 관심, 즉 프롤레타리아의 물질적 세계에서 지적 결정 작용들의 세계로의 변형을 거치는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재인정(réhabilitation)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다.
“무언가를 배우고 이를 나머지 모든 것과 연관시켜라.” 이는 조제프 자코토(Joseph Jacotot)의 지적 해방의 방법이 제시하는 위대한 교훈이다. 이 “무언가”는 [뒤에 잠시 등장할 열쇠공과 같은 여러 분야의] 장인들의 경험 속에서 매우 깊이 있게 공명하는데, 자코토는 우선적으로 이 장인들을 다루기로 한다. 어느 누구든 출발점에서는 이론적으로 아무런 지적 차이가 없다는 점은 지적 해방을 달성하느냐 마느냐의 결정 여부가 이러저러한 것을 행하는 현실에서의 실천이 가지는 우연성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코토에게 있어 어떠한 것이라도 글(écriture)로 구성할 수 있고 어떠한 글이라도 배움을 위한 교과서로 구성할 수 있는 자는 스스로를 해방한다. 자기 안에 “지성의 징후”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다시 명명하는 것(requalification)과 동시적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 렌즈콩 포대의 포장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백과사전의 두꺼운 조각들로 바꾸는 어린 아이 고니(Gauny)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아름다운 텍스트 하나에 관해 논평했었다. 우리는 평민의 삶의 경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평민에 의한 지성의 전유(이는 정반대의 의미에서는 지적 세계의 결정 작용에 대한 신체적 획득이다)라는 쟁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텍스트를 고니의 다른 텍스트들과 연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빈자의 자연사 연구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해 이해해야 한다. 고니는 자신과 같은 나이의 동료와 함께 성공적으로 수행한 “과학 연구 프로젝트들”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의 연구를 해나가기 위한 재정적인 자원 없이, 우리는 광물학, 식물학, 화폐학, 고고학, 그리고 우리가 채석장에서 슬쩍 훔칠 수 있었던 화석들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 원석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원석의 색과 그 형태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한 정신 나간 추측들에 몰입하면서 행했다.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고 점이 박혀있으며 다양한 색을 띠며 응집체, 황철광, 조개껍질, 크리스탈을 포함할 뿐 아니라, 유사성(analogies) 속에서 나타나는 이례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질적 결합체까지도 포함하는 이 부싯돌들은 우리를 매혹시켰던 마노의 줄을 통해 때때로 그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빈자의 광물학과 식물학은 계몽주의적 사유와 유사성의 신비적 계시론 전통에 속하는 자연사에 대한 관심, 사물들이 주는 수업(leçon)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길에 놓인 자갈들에게 앎의 대상으로서의 품격을 부여하는 “정신 나간 추측”을 자신들의 공통된 버팀대로 다시 활용한다. 사물은 그것이 글(écriture)이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와 상호적으로 학자의 언어는 그 언어가 하나의 사물처럼 이해되고 이야기되는 한에서 빈자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니는 어느 젊은 군인 덕택에 언어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언어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그는 나에게 문장의 화려함이 분출하게 되는 기원인 단어의 어간과 비유적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문자가 표현하는 웅변조의 음색을 지적하면서 그 구조 앞에서 멈춰서기를 좋아했고, 그 끝없음으로부터 우리는 그 문자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것에 대해 질문하면서 보편적인 것을 향해 나아갔다!”
문자의 구조와 음색 그리고 부싯돌의 줄과 유사성 사이에서, 즉 자연사와 언어의 지리학 사이에서, 지적 세계에 대한 물질적 전유 활동이 전개된다. 해방은 일상의 물질적 경험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 사이의 번역가능성을 형성해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번역가능성이라는 관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번역에 관하여: 분석과 유사성
첫 번째 차원에 있어서, 번역가능성은 공통감각(sens commun)의 철학과 언어에 관한 분석적 개념화에 기초한 지적 배움의 평등주의적 개념화를 규정한다. 그래서 자코토에게 있어 지성의 평등이라는 관념은 이 관념을 본질적으로 번역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는 지성론과 일치한다. 세 가지의 패러다임이 해방된 개인이 취하는 배움의 물질적 방식들을 이러한 개념화의 틀 내에서 정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첫 번째는 모국어라는 패러다임이다. 모든 인식은 모국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시 말해 설명하는(explicateur) 스승의 매개 없이 획득될 수 있어야 한다. 자코토에게 있어서 설명, 즉 교육학의 실천에서는 일상적인 이 설명은 무엇보다도 불평등을 연출(mise en scène)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결국 이는 빈자에게 있어 빈자 스스로 배우는 것과 빈자의 자식들을 교육하는(apprendre) 것의 이중적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설명자[즉, 스승]에게 지게 되는 상징적 부채는 무한하기 때문에 빈자가 그 대가를 열심히 지불한다고 해도 이는 사소한 거스름돈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모국어는 빈곤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들 스스로 그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국어에 대한 특권화는, 빈자 고유의 좋은 문화를 그 문화의 변질된 형태인 교양과 학식이 떨어지는(demi-lettre) 문화와 대립시키면서 어떤 이들이 의도하려는 바와 같은 “구술문화”에 대한 특권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배움의 두 번째 특징, 즉 두 번째 패러다임은 글쓰기(écriture)의 패러다임이다. 이 방법은 개인이 암기하고 있는 것--노래, 기도, 그 무엇이든…--으로부터 출발하여 주변 사람들 중에서 이를 글로 쓸 수 있는, 즉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자”(lettre)를 찾고 그에게 그가 알고 있는 텍스트를 그가 지금 보고 있는 텍스트와 비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는 문자를 다루는 과정, 문자의 형태와 그 차원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쏟는 과정을 거친다. 자코토가 마음 깊이 경애했던 그 열쇠공은 왕자들부터 빈자들까지 모든 이를 위해 쓴 탁월한 책인 『텔레마코스의 모험 Télémaque』의 첫 글자 칼립소(Calypso)를 배우면서--O를 동그라미라고 부르고 L을 직각자라고 부르면서 그는 한자 한자 더듬거리며 읽어나간다--그렇게 했다(아마 프루동도 [A부터 시작해서 Z로 끝나는] 노동 용어사전을 쓰면서 이를 떠올렸을 것이다…).
최초의 글(écrit)을 쓴다는 것은 학생에게 있어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학생이 필사하는 모든 쓰여진 텍스트는 사전과 백과사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사전과 백과사전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것을 배우는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방법”은 무엇보다 하나의 철학이다. 자코토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Phèdre』가 제시하는 불평등의 철학에 용어 하나하나에 있어서까지 전부 반대한다. 플라톤은 문외한들의 자만심에 관하여 쓴 편지 속에서도 글(écriture)을 죽은 사고로 간주하여 비난했다. 자코토는 사유하는 것이 “직업(affaire)”이 아닌 이들[즉, 인민]의 손에 닿기 위해서는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플라톤과는 반대로 모든 학파와 모든 설명자의 독점을 파괴하는 데에 적합한 글, 기억술, 기호의 물질적 취급을 특권화한다.
세 번째 패러다임은 바로 사물(chose)이다. 자코토는 다음과 같이 쓴다. “물질적인 사물은 두 정신들 간의 소통을 위한 유일한 다리이다.” 사물들은 언어세계로의 진입이라는, 누구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제공하는데 그것과 설명자의 말이 대립한다. 이 수업에서 우리는 모든 의견을 전달하는 연설가들의 기술(art)을 우리의 것으로 획득하고 학자로서의 스승 또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학자로서의 스승이 정확히 사물로서만 취급된다는 조건 하에서 가능하다. “선생으로서의 학자에게는 가르치는 행위들만이 가득하다. 들으세요, 보세요, 주의 깊게 관찰해보세요, 분해해보세요. faciatis experimentum in professore. 그로부터 배우세요, 그가 맞는지 확인해보세요, 그를 따라해 보세요, 그를 번역해보세요. 그는 그의 과학적인 작업을 해냈습니다. 이제 당신의 작업을 해보세요.”
그러므로 번역이라는 관념은 말(mots)과 사물 사이의 상응이라는 관념을 포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응이라는 관념은 두 가지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자코토는 계몽주의적 이성과 이데올로그들의 분석에 따라 이를 이해한다. 그의 “방법”이 전제하는 것은 모든 배움의 논리가 발명의 논리와 동일하다는 것, 다시 말해 배움의 논리와 발명의 논리는 분석의 합리성에 속한다는 것이다. 자코토의 “무지한 스승”은 학자의 논리, 다시 말해 모든 말하는 주체에게 있어 동일한 인간 정신의 아주 적은 수의 근본적 소여들로부터 출발하여 앎의 세계를 편력하는 그 논리를 작동시킨다. 하지만 만약 자코토식 수업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배움을 가능케 한다면], 이는 이러한 받아들임[배움]이 계몽주의자들의 단순한 논리에 더 이상 속하지 않는 상징적 전유의 경험과 사유, 즉 이성이 인간 생애의 굴곡들과 유사하게 부싯돌의 줄들에 기입되어 있는, “모든 것이 말하는” 세계 속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mot)과 관념 사이의 관계는 여기서 말(mots)과 사물 사이의 날 것 그대로의 유사성 속에서 소진된다. 이는 말하는 주체의 초감각적 운명이 어디에나 기입되어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이 말하는 주체를 지양하는 이성의 서명이다. 그러므로 인식 행위는 원초적 관계의 모습을 취하고 인식가능한 것의 세계는 새로운 발견(révélation)의 세계의 모습을 취한다.
발랑슈는 “신은 끊임없이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목소리를 인지(reconnaître)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작은 논쟁을 통해 이 지점에서 “신비주의적 사회주의(occulto-socialisme)”, 즉 어리석은 19세기의 휴머니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열망이 감추었던 어두운 모습일 악마를 찬양하는 마법 의식이나 몽매주의적 교령술이 형성되었다. 계몽주의를 반복하는 신비적 계시론은 계몽주의의 그늘진 진실일 것이다. 이 이중체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덜 단순화된 논리를 볼 수 있다. 평등에 관한 사회주의적 이론이 공통감각과 이성적 본성의 사고를 삶, 언어 그리고 역사 사이의 관계들에 관한 고전적인 관점들과 연결시키고, 분석의 합리주의를 유사성의 초합리주의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실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무엇보다도 우선 이 둘 사이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는 학자의 논리와 인민의 논리 사이의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선출된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관대한 이들에 의한 앎의 분배의 실천과 배제된 자들 중에서 가장 완고한 자들에 의한 전유의 실천 사이의 만만치 않은 접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자적 공간과 인민적 공간의 경계에서 탄생하는, 그리고 사회주의에게 자신의 불안정한(boiteuse) 철학을 선사하는 초합리주의는 이 근본적인 상징적 관계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 사유하는 것이--플라톤적인 관점에서--직업(affaire)이 아닌 이들에게 있어, 자연적 이성의 세계 안에 자연적으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신에 단지 강제(forçage)에 의해 그 안에 진입하는 것만이 가능할 뿐이다. 초합리주의가 계몽주의의 단순한 이성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계몽주의가 예외로 남겨놓은 이들이 상징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계몽에 접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에 대한 권리는 부싯돌에 관해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함으로써 억지로[강제forçage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과학
하지만 여기에는 지적 전유를 위한 이와 같은 야생의[즉, 인민의] 실천이 “두 개의 과학”이라는 정치적 테마의 폐해에 대해 민감한 이들에게 (온당하게도) 다소 불편한 반향들을 남긴다는 문제가 남는다. 1830년대에서 1850년대까지의 시기는 공식적 과학과 마주한 다양한 전선에서 공식적 과학에 반대하는 전쟁이 선포되던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앞서 살펴보았던] 자코토의 방법에 따른 근본적 배움(apprentissages fondamentaux)이라는 전선, 대안과학들이 증가한다는 점에서(유사요법, 라스파이유주의, 마그네티즘, 르루아Leroy 의학 등등), 그리고 기존의 과학이 이러한 경쟁자들에 대항하여 법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민감한 전선이었던 의학이라는 전선이 존재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다소간 반체제적이었던 이 혁신들의 목록에 다음을 추가해야 한다. 갈랭(Galin)과 슈베(Chevé)의 음악적 방법, 예술과 과학 또는 건강을 위한, 방법 협회가 주관했거나 인민교육을 위한 여러 협회들을 통해 전파된 아모로스(Amoros)식 체조와 백여 개의 새로운 방식들. 독점자들의 과학(대학, 국립 의학 아카데미 등등)에 대한 이러한 공격의 격렬함은 공식적 과학의 “어려움”에 기반하고 있는 특권과 인민의 과학, 즉 모든 이에게 “독점자들”의 비밀을 누설하고 독점자들의 도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수단들을 알려주며 결국에는 독점자들에 의해 무시당한 영혼과 육체에 관한 진짜 과학의 원리들을 제공하는 이 인민의 과학 사이의 대립을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인민의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 사이의 대립 또는 어떤 신비주의적 토대와 사회주의적 이성 사이의 대립을 보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 전투의 특징적인 몇몇 윤곽들을 강조해야만 한다. 나는 이단적 과학의 획득, 확산, 사용에 관하여 각각의 중요점을 지적해보겠다.
우선, 이 전투는 배움의 양태를 둘러싼 전투이다. 그 전투에서 우리는 개인이 타인들로부터 받아들이는--수업이라는 부드러운 양상으로든 외과적 개입이라는 난폭한 양상으로든--앎과는 대립되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가지게 되는 앎을 특권화한다. 빈자가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앎의 경우 이는 학자들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을 근거 짓는 역할을 하는 앎이기도 한데, 이 앎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 향상과 특권화는 학자가 수행하는 이해관계를 초월한 객관적 연구와 그 휴머니즘적 헌신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인민의 앎에 이와 같은 엘리트의 앎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교육과 건강을 자율적으로 책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해방의 개인적 차원은 자코토에 의해 끊임없이 강조된다. 자코토는 대중에게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려고 하는 모든 제도들을 거부한다. 그는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빈자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반면에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빈자들이 그들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자코토의 계승자들이 행해야 할 과제는 오직 가난한 집안의 가장들에게 그들이 그들 스스로 해방한다는 유일한 조건, 다시 말해 그들이 사회질서 내에 속해 있고 그 사회질서를 만드는 이는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것을 의식한다는 그 유일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들이 그 자식들을 직접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특정한 의식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민들에게 발랑슈가 제시했던 격언은 “당신 자신을 스스로 인식해라”이다. “죽는 것들(les mortels,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생물로서의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지한다면, 그들은 인간 존재에 아주 가까워진 것이다.” 해방은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그 조건이다.
우리는 라스파이유에게서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동일한 호소를 발견한다. 각자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감각(bon sens)으로 접근 가능한 합리적 관념들”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환자의 맥박만을 더듬거리면서 병의 위치를 추측하기 힘들어하는 의사에게 그가 그 위치를 가리킬 수 있도록 해주는 “내감(sens intime)”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며칠 동안 150에서 200여 명의 환자에게 습격 받았던 라스파이유는 글을 읽을 줄 아는 프롤레타리아들에 관하여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의학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상적으로는, 그는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에게 그가 빈자들이 스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직접 구성한, 각자가 공부를 통해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연례 건강개론서(Manuel-annuaire de la santé)”만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 “경탄할만한 경쟁심을 가지고 지성의 연마에 몰두”하고 있었던 리옹에서, 그는 “그 개론서를 소유하고 있고 자기 스스로 자기 약을 제조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자가 자기 뿐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능력은 개인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율적 관심을 획득하는 것을 전제한다. 해방된 개인들이 행하는 건강에 관한 자율적 실천은 공식적 과학의 승리를 뜻하는 질병의 타율적 운동에 개입해야 한다.
지적 해방이라는 관념이 사회적 해방이라는 관념에 그 원리와 모델을 제시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자들의 자기-해방 속에서 성찰된 것들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노력 속에서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하기, 스스로를 내어주기(se donner), 각각의 자유로운 존재에게 있어 필수적인, 이 존재들을 위한 과학을 타인에게 선사하기인데,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지점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해방은 집합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는 집단의 자기-해방이 아니다. 이 자기-해방은 “죽는 것들”에서 “인간”으로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각자가 짊어지는 의무이다.
가정 내에서의 해방
이 지점에서부터 앎의 확산은 핵심적으로 두 가지 방향을 취하게 된다. 우선, 앎의 확산은 하나와 하나 사이의 관계를 특권화한다. 우리는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상태에 놓이기 위해, 그리고 타인들이 언어나 의학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코토나 라스파이유가 각기 개별적으로 행한 것을 살펴볼 것이다. 우선 자코토에게 있어 교사는 여기서 이중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교사는 해방의 욕망을 지지하는데, 이 해방의 욕망을 통해 무지자는 스스로를 타인의 해방에 대한 욕망을 뒷받침해주는 지지대로 만들 것이다. 교사는 또한 사물들의 수업을 제공하기도 한다. 교사는 책을 제공하는데, 이 책을 가지고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이렇듯 매우 특별한 가르침의 관계는 그 당시 매우 의미심장했던 앎의 확산의 한 형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사회적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입문과정[즉, 심오한 교리의 전수]이라는 형상(역시 발랑슈가 그러했다)인데, 이 입문과정은 해방된 프롤레타리아들 간의 우애 속에서, 혹은 발걸음이 닿는 곳 어디든 바람의 우연에 따라 씨를 마구 뿌리는 필라델프(philadelphe,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의 산책 속에서 끊임없이 확산된다. 앎의 확산은 하나와 다수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앎의 확산은 개인에서 개인으로 이어지는 대화와 약속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특히 어떤 하나의 관계가 결정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는 바로 가족관계인데, 자코토는 그의 방법이 설명자로서의 학자들에 의해 제도 내에서 주어진 “사회적” 방법과는 대립되는 “가장(père de famille)”의 방법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에 대한 이러한 특권화는 어머니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코토는 어머니를 아버지와 같은 직책, 즉 아버지--정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머니--가 모르는 지식을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호명한다. 게다가 자코토의 방법에 대해 “공식적인” 반론을 제기한 저자조차 다음을 강조한다. “감동적인 발견이다! 여자들, 어머니들, 인간 종의 가장 아름다운 절반인 그녀들이 그녀들 스스로 아이들의 교사가 된다는 발견 말이다. (…) 보편적 가르침(enseignement) 속에 이미 모두를 위한 충분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학자의” 유사요법가들이 “인민의” 유사요법가들에게 그들이 과학을 “여자들 치마의 보호 아래” 종속시킨다고 비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라스파이유 또한 어머니에게 그녀가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 가지는 관심을 자율적 역량으로 변화시키기를 요청한다.
그러므로 가정은 아버지에 대한 호소를 통해 빈자의 해방과 앎의 전유에 관한 자연적 장소로서의 가치를 획득한다. 여기서 가정에 부여된 개념적 역할은 인민들 사이에서 “가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행하는 역할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19세기의 노동자 담론 속에서 가정에 가치를 과잉부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커다란 설명방식이 존재해왔다. 몇몇은 거기서 노동의 세계에서의 지위 하락과 박탈에 대한 보상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권력을 가정 내에서 남성적 방식으로 재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분할의 심화와 관련된 착취와 기능상실[특히 기계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의 악화는 노동자가 가족을 권력을 회복하고 자기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장소로 만들려는 경련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다른 이들은 거기서 인민의 도착성과 전복성을 억제하는 데에 적합한 가족 질서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인민 한가운데에 주입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빈곤 가정은 해방의 생성과 연관된 또 다른 역할을 떠맡게 된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우리는 발랑슈의 원론적인 텍스트와 평민 또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의 자체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참조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아이를 낳는 존재인데, 이들은 그 어떤 가족의 이름도 자식들에게 전해줄 수 없으며 단지 이렇게 아이를 낳는 것에만 만족해야 하는 존재이다. 결혼의 정당성으로부터 배제된 프롤레타리아는 조상도 없고 자손도 없다. 그러므로 “지성의 징후”에 대한 요구는 가족적 정당성에 대한 요구와 하나가 된다. 이 모델에 따를 때, 가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특정한 감정의 장소이기 때문에 교육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이성적 존재의 자기 자신에로의 귀속은 가족적인 공동-귀속 속에서 규정될 것이다. 자코토는 가장이 스스로를 자식들에게 지성의 빵은 나눠줄 능력이 없는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 육체의 빵은 나눠줘야 하는 그 모순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든다. 그는 모국어, 직능적 지식, 저항의 레토릭과 같이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의 일람표 자체인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행위에 의해 스스로 해방된다. 이로부터 그는 자기 자식들에 대한 무지한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가정에서의 권력 사이의 관계는 질병과 죽음에 관한 인민의 경험 속에서 극대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라스파이유에게 있어서 가정 내의 어머니는 모순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자식들의 건강에 대해 그녀가 가지는 관심의 힘은 의학적 역량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이는 공식 의학의 위협이 가해지는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방법”은 병자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병자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이들[즉, 가족]에게도 적합한 임상적 앎을 현재화해야 한다. 이 임상적 앎은 의학적 앎의 독점자들과 인민의 육체를 착취하는 자들의 요새, 즉 병원과는 대립적인 방식으로 정의된다. 병원은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자식들과 분리되는 동시에 자기 자신 또한 박탈당하는 장소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 빈자 자신이 질환의 대상이 되는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빈자는 순수한 실험대상, 즉 “학생들을 교육하기에 적절한, 거기에다 모든 실험들을 하기에 적절한 재료”가 된다. 이러한 박탈은 죽을 때까지도 끝나지 않는데, 왜냐하면 여전히 부검을 할 때 병원은 시체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고(“당신이 찾으러 온 아버지와 남편 대신에, 우리는 당신에게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살 덩어리들만을 돌려줍니다.” 또한 행정기관에게 지불해야 할 27프랑이 없어서 고인의 육신을 찾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라스파이유의 잡지가 독특한 필체로 쓴 기사들에서 관례에 따라 의학적 신체 훼손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구식 의학에 따르면 잘라버려야 할 다리들은, 새로운 방법에 따르면 자르지 않고 보존될 수 있다.”), 쉬잔느 보알캉(Suzanne Voilquin)은 자신의 병원 침대를 의대생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아야만 하는 어머니-딸의 고통을 묘사한다. 그래서 가족적인 임상적 앎을 재인정하고 가정적 공간으로 병자가 귀환하는 것은 인민의 육체를 압수하고 훼손하는 것에 기반한 공식 의학에 맞서 인민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되찾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듯 빈곤 가정은 아버지가 자식들을 기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들을 교육하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간호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들을 치유하는 이러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재생산 활동이 스스로를 초월함으로써 과학의 장소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초월은 학교의 스승에게 고유한 교육의 기능과 가정에게 귀속된 교육(éducation)의 임무 사이의 고전적 분할에 반대하는 것이다. 고전적 도식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혹여나 교육이 타락시킬 우려가 있는 학생을 그 사회적 기능의 방향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윤리적 객관성의 원리이다. 가정은 모든 앎을 직능의 실행 속에 투여하는 장인의 “자기에 대한 인식”과 가족적이고 사회적인 의무의 이행을 학생에게 가르친다. 이 지점에서 자코토는 장인에게 “자기 고유의 직업”에 집중하라고 명령하는 플라톤의 논리를 역전시킨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사회 내에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고하면서, 장인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완전한 활용이 각자의 의지에 달려있는 바로 이 지성, 이 지성의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훈육이라는 교육(éducation)의 역할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신의 자식을 위해--무조건적인 의지의 요구를 구현하는--무지한 스승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해방의 결정자로서의 역할로 변화한다. 다시 말해, 자기-배움 속에서 자식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자식을 가르치려는 그 노력이 가지는 근본성을 확인한다면, 지성의 평등을 확인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자기에 대한 초월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의식의 장소, 즉 자기 고유의 직업이 공통 이성의 온전한 실행이 될 정도로까지 각자의 “고유한 직업”이 확장되는 장소이다.
가정에 대한 이러한 활용은 가정을 그 자체 내로 한정하지 않는다. 이 활용은 가정을 집합적 허구들과 제도적 전유물들의 사회성과는 다른 사회성의 출발점, 즉 그에게 있어 해방되는 것과 해방자가 되는 것이 동일한, 자기 자신에게 이성과 삶의 권력들을 실험하는 것과 이를 존재들 사이의 연대성의 원리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 동일한 그러한 개인이 형성되는 장소로 만든다. 해방의 사회주의는, 사회조직의 과학을 통해 개인과 가정의 이기주의적 경향을 억제하거나 공통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기를 원하는 사회주의 교육(éducation) 모델과는 용어 하나하나부터가 전부 다른,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영역으로부터 출발한다. 교리, 계급, 정치 사이에서 이미 보편화된 이항대립들을 가로지르는 이러한 [또 다른] 이항대립은 하나의 동일한 근본적 텍스트, 즉 지성으로부터 기원하는 평등과 교육(éducation)의 전능함에 관한 엘베티우스의 이론으로부터 출발한다. 벤담의 공리주의와 오웬의 유물론을 통해서 이 이론을 결정론적 조건들과 교육의(éducateur) 사회적 권력에 관한 이론으로 해석하는, 이기주의의 무질서와 가족적 몽매주의와 싸우는 하나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해석에 교육(éducation)의 힘이 자기-교육(auto-éducation)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엘베티우스에 대한 또 다른 독해가 대립한다. 개인적 의지의 무능은 역으로 이성적일 수 있는 공통의 권리를 획득하고 지성의 평등을 현재화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으로 변화한다. 자코토에 따르면 모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혹은 공화주의적이고 생시몽주의적이고 골상학적인 등등의 “좋은 방법들”이 억압하고 있는 “해방된 자들의 무리”에 끊임없는 해방의 원리가 대립한다.
그래도 여기서 몇몇 구별점들을 명확히 해야만 한다. 자코토 스스로는, 개인들의 해방의 힘을 신뢰하면서도 이성적 사회의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그러나 자코토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사람들 혹은 [파리에 위치해 있던 건물] 알 오 드라(Halle aux Draps)에서 그의 제자인 빅토르 라티에(Victor Ratier)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곳 혹은 저곳에서 스스로가 그들 일터의 동료, 그들의 이웃, 그들의 피고용자 혹은 그들의 피통치자의 선생님이나 의사가 되는 독학자 노동자들과 공화주의 사장들, 의사들 혹은 빈자의 사제, 변호사, 공증인, 문법학자 등등--이 자코토와 동일한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리옹에서 라스파이유 의학으로 그의 형제들을 치료하던, 그리고 그 형제들에게 방금 막 새로 배운 문법을 가르치던 공산주의자 카뉘 세바스티앙 코미세르(Sébastien Commissaire), 선생이 되었지만 공화주의자로 남아있던, 그리고 그의 노동자들을 자신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교육하고 싶어하던 프리메이슨 염색업자 보비자쥬(Beauvisage), 클럽의 회장 역할과 소방관들의 대장 역할, 그리고 노동과 라스파이유주의 의학 사이의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맡았던, 베르시(Bercy)의 구세주인 아르텔(Hartel) 자동차 기업인들이 그들이었다. 사회적 대의를 위해 싸우는 이 모든 투사들은, 자신의 동류인을 도움으로써 새로운 사회성의 연결선들을 직조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제시되는 수단인 해방된 인간 정신을 위한 투쟁만큼이나 새로운 방법들의 활용에도 전념한다.
형제의 과학
핵심적인 세 번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렇듯 오직 해방된 개인들에게만 적합한 과학은 또한 기꺼이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그들의 성향을 위한 과학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프루동이 전제하는 정의와 자선(charité) 사이의 대립, 또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이 형성한 노동자들의 자기-해방과 박애주의적 온정주의(paternalisme) 사이의 대립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빈자의 해방에 관한 이론이 학자의 공간과 인민의 공간이 만남으로써 형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천의 수준에서 사회주의라는 직물은--부르주아이든 프롤레타리아이든, 개혁가이든 혁명가이든--도움과 자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짜여 지는 것이다. 위와 같은 단순화된 이항대립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에서, 자코토주의의 팜플렛은 두 개의 제목을 달고 있다. “지적 해방. 자선.” 더욱이 1848년 11월 당시 모든 사회주의 극좌파를 대표하는 후보였던 라스파이유는 자신의 의학의 혜택을 받았고 이 혜택을 나누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자선을 요청하면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자선을 일종의 투쟁 활동으로 명명한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그 자신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으며 자신들 안에 “기쁨의 눈물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공감의 눈물이 나게 할 만큼의 참을성을 가진”, “즐거움보다는 고통을 겪었던 아름답고 훌륭한 영혼을 각 지역에서 만나기”를 원한다. 개인적 해방의 혜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줌으로써, 우리는 자연이 모든 생명체들 사이에서 직조해내는 연대성의 관계들을 현실화하는 새로운 사회성에 기여한다. 해방된 과학은 땔 레야 땔 수 없게 삶의 과학과 헌신의 도덕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모든 의학 논쟁의 중심에도 존재해 있다. 예를 들어 유사요법 의사들은 이로 인해 두 진영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과거의 생시몽주의 사제 레옹 시몽(Léon Simon)의 지도를 받은 상당수의 유사요법 의사들은 생시몽주의 프롤레타리아 라피트(Lafitte)와 푸리에주의 의사 뮈르(Mure)에 의해 지도받은 “속인의” 또는 “인민적인” 유사요법 의사들을 비난한다. 첫 번째 진영의 의사들에 따르면 이들은 유사요법을 “인민들에게 전파”하고 “여자들 치마의 보호 아래에” 가둬버리며, 또한 이를 “길거리와 카페에서 써먹기 위해 의학의 신전으로부터 끄집어내 극단적으로 속류화”시켜버린다. 또한 “빈민 계급이 (…) 안느만(Hahnemann)의 고귀한 박애주의가 자기 마음대로 아낌없이 퍼줄 수는 없었던 그 도움을 무료로 찾을 수 있는” 무료 보건진료소가 이 박애주의의 “가능성의 원환[한계]”을 부숴버린다는 이유로 속인들은 오히려 이를 자부하기까지 한다.
한편 모든 진지한 의학들의 지탄과 교령술·협잡의 범람 사이에 갇힌 마그네티즘주의자들은 감각적 존재들 사이의 공감에 관한 최소한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합의 원리들을 활용하는 일에 전념한다. 메스메르를 기리는 연회가 열리는 봄마다 그 원리들이 재확인된다. 이러한 점에서 1850년 5월 23일의 연회는 특히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연회는 모순적인 정세 속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마그네티즘은 2년 간의 위태로운 시기를 막 통과했다. 한편에서 1848년 2월의 혁명은 마그네티즘의 성공적 확산을 갑작스레 중단시켰다. 반면에 6월 이후의 억압과 혼란은 마그네티즘의 일부 지지자들이 가짜 견자들과 가짜 몽유병자들의 협잡과 같은 교령술로 도피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징후들이 합리적 마그네티즘의 미래에 다시 희망을 선사한다. 거장들에 의해 버림받은 이 이론은 인민 대중들 속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그 생기론적 믿음이 사회주의적 믿음과 긴밀히 결합하게 되었다. 1850년 4월의 부분선거에서 좌익이 승리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플로트(Flotte)와 비달(Vidal)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당선자들이 또한 마그네티즘의 지지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낙관적 배경 하에서, 150명의 사람들이 이 교리의 벗인 한 건축물 복원자가 훌륭하게 장식한 방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월계관을 쓴 설립자의 흉상 아래에서 『마그네티즘 저널』의 책임자인 포테(Potet) 박사가 교령술과 몽유주의에 빠졌던 것을 회개하고 있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는 마그네티즘이 마그네티즘 현상들에 있어 두 가지 층위로 나뉘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하나는 “과학의 기초 역할을 하는 모든 물리적 사실들”과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효과”와 관련된다. 이 때 도덕적 효과의 다양성은 무한하며 박애주의가 인도하는 경험에 열려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모순이다. 협잡과 사기들부터 마그네티즘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리적” 측면들을 특권화해야 하는데, 반면 보편적 공감의 추구로부터 그 도덕적 가치 또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생시몽주의자들의 고백, 자연과 공감의 언어, 여성들에 대한 호소 사이의 결합에 그 음색을 부여하면서 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은 바로 인간성(humanité)이라는 감정이다. “이론적-실제적 메스메르학의 트로이의 아테네(Athénée Troyen de mesmérologie pure et appliquée)”라는 단체의 대표자인 한 여성은 처음으로 그 교리의 이름으로 발언권을 가진다. 그리고 이 여성은 새로운 과학 학파와 새로운 휴머니즘 교회를 모범적인 방식으로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한다. “아! 사제들이 인류의 은인이자 불행한 자들의 살아 있는 섭리이며 자연이 주는 마르지 않는 보물의 분배자이자 신성의 해석자인 이 종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통 받으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잃지 않는 모든 이들의 은신처인 이 교회는 항상 부유하고 존경받을지어다. 공감이 만들어내는 선으로 서로 연결된, 모든 존재의 보편적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이 만찬의 자리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신자들의 사회는 동일한 원천으로부터 소생한다.”
회장인 로베르(Rovère) 박사가 “공화주의 연대(Solidarité républicaine)”의 회원이라는 이유로 기소를 당했을 때, “트로이의 아테네”는 자신의 과학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소명을 다시 드러내게 된다. 트로이의 아테네는 “과학적이고 인민적인 학파이다. (…) 우리는 이곳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나갈 때에도 단 하나의 사유, 즉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일깨워준다는 사유만을 가진다.” 상호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 학파와 그 상호부조에 대한 관심이 그들의 활동들 가운데 몽유 교육과정(cours d’éducation)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몽유 교육과정은 “동류인들에게 이롭고자 하는 욕망을 깨달은 사람들이 순수하고 영원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들”을 제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마그네티즘은 결국 합리주의자 라스파이유가 마그네티즘 일반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언어와 동일한 언어를 가지고 몽유 실험에 관해 말한다. “마그네티즘이 자비의 활동으로 인정되기를, 마그네티즘이 물욕의 충족과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선을 행하기를. 그러한 부적을 가진 자는 마술사의 속임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신비한 혜택을 위해서 그 부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믿지 않는 자든 믿는 자든 그들 모두를 호명할 수 있기를. (…) 그러한 영향력을 소유하는 사람은 공간의 약동점에 집착하는 아나크레온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모든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의 창조자 영혼과 같이 세계(monde)의 거대함 속에서 기쁨을 관조하는 루크레티우스와 같은 방식으로 기쁨을 인식해야 한다.”
동류인의 존재이유
이렇듯 해방된 독학자의 방식과 휴머니즘적 투사의 방식은 그 둘 사이의 몇몇 공통된 개념들(notions)의 애매성으로 경계지어진 그 단단한 기반과 모험 가득한 길과 마주하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자(connu)로부터 “여전히 전혀 알지 못하는 자(immense inconnu)”로 향하는 길에서 안내자의 역할을 행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동류인에 대한 감각(sens)이다. 부싯돌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어린 아이 고니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코토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교육하는 무지한 자의 배움에 봉사하고, 타인을 위해 해방적 앎의 목표를 설정하고, 공감이라는 감정에 대한 다소간 제어된 표현을 가능케 하는 자가 바로 동류인이다.
동류인에 대한 감각을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자로부터 여전히 알지 못하는 자로 나아가는 것, 이 공통의 원칙이 해석의 서로 다른 수준을 규정한다. 자코토의 “해방자”는 데카르트적 사고에 가깝게 공통감각을 해석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동류인에 대한 모든 범신론적이고 정신주의적인 사유의 과잉을 거부한다. 반면에 고니와 같은 독학 노동자는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와 같은 방식으로 공통감각을 이해하면서 합리적 사회에 대한 요구를 발랑슈의 윤회에 관한 관점과 결합한다. 발랑슈는 소크라테스와 디오게네스에 준거하면서 필요한 경우 자신의 마그네티즘적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좋은 감각(bon sens)이라는 원칙에 있어 그 도착지점과 출발지점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편에서 분석적 방법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첫 번째 사람(connaissable)”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첫 번째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독학자의 배움의 세계에 자신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른 편의 극단에서, 분석적 방법은 보편적 공감과 영혼의 초감각적 숙명의 목적론에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들”의 존재는 이를 신비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성급한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발랑슈의 윤회는 [영적 교신을 위해 교령술이 이용하는] 교령 원탁과는 관계가 없고, 마그네티즘 저널에 발표된 사회조직에 관한 메스메르의 원고들은 [교령술과 교령철학의 창시자인] 알랑 카르덱(Allan Kardec)보다는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피에르 장 조르주 카바네(Pierre Jean Georges Cabanais)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가 르네 데카르트의 방식으로 이해하든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방식으로 이해하든 어찌 됐든 지적(savant, 학자적) 합리주의의 방식에서 기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관념이 서로 결합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합리성의 여러 수준들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합리성의 수준들 사이에서, 그 중간항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인간성이라는 관념이다. 데카르트적 공통감각의 합리주의와 보편적 마그네티즘의 사회주의 사이에서, [달리 말해] 프롤레타리아 개인의 야생적 배움의 이편과 평민이 지고 나갈 인간의 숙명들 저편 사이에서, 학자적 합리주의와 평민적 초합리주의가 합의하게 되는 중간 지대, 즉 개인의 삶에 대한 양식화(stylisation)의 노력 자체에 투사되는 윤리적 공동체라는 관념이 정의된다. 언어와 삶이라는 핵심 테마들을 통해서, 교육(éducation)과 연합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관심을 통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대하는 개인들의 사회에 소속돼 있는 말하는 존재와 자율적 주체의 어떠한 본질을 실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