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verso books 블로그에 2019년 2월 15일에 올라온 글을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원문 url : https://www.versobooks.com/blogs/4242-understanding-the-gilets-jaunes
노란 조끼 이해하기
엔조 트래버소
박상빈(서교인문사회연구실) 옮김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이 특이한 형태, 특이한 상징, 특이한 실천은 보는 이들에게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우리는 모두 시위대의 급진주의, 투지, 그 놀라운 지속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운동이 여러 지점에서 낯설고 분류하기 힘든 것임은 여전하다. 때문에 이들의 운동은 혁명의 전조라고 순진하게 이상화되거나 잠재적인 ‘파시즘의 씨앗(proto-fascist)’이며 위험하다고 둔탁하게 낙인찍히기도 한다. 노란 조끼 그룹은 좌파와 우파 모두가 지원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독립성을 주장했다. 어떠한 정치적 대표나 정치적 ‘회유(recuperation)’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형태의 대표성도 거부하는 이 태도는 그들의 강점이자 취약점이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말이다.
노란 조끼 운동이 전통적인 정치 분석 카테고리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을 반동적인, ‘푸자드주의(Poujadist)[프랑스의 포퓰리스트 정치인 ‘푸자드’의 이름을 딴 것. 낮은 세금과 협동조합주의를 옹호한 민족주의, 배외주의적 경향의 운동을 말한다.]’ 운동이라고 묘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노포비아, 인종주의, 급진적 민족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정치적 정세 속에서 노란 조끼 운동은 희생양을 찾아 내세운다거나 난민과 이주민을 추방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노란 조끼 운동은 추정상 위협받고 있다는 ‘국민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지켜내길 원하는 그런 운동도 아니다. 차라리 이 운동은 민주주의와 사회적 일체성의 위기로서 사회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란 조끼는 민족성(ethnicity)이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을 더 앞에 내세우고 있다. 미디어가 그들을 인터뷰했을 때,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어떤 인종이고 어떤 민족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어느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 노동자, 간호사, 강사, 자영업자, 상인, 운수업자, 실업자 등등.
사회적 평등은 역사적으로 좌파가 내세우던 가치였다. 하지만 노란 조끼는 좌파 문화에 귀속되지 않는다. 좌파의 심벌을 사용하지 않을뿐더러—시위현장이나 로터리 점거에 붉은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좌파적 조직 형태를 차용하고 있지도 않다. 노란 조끼 봉기는, 최근 제한적으로 집합점을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노조 운동의 바깥에 있다. 노란 조끼는 동질적인 집단(homogeneous body)이라는 의미에서 계급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에 이질적이고 복수적인 집합체(heterogeneous, plural body)라는 의미에서 공동체로서 행동한다. 이들 중에는 살면서 시위대의 일원이 되거나 저항 행동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심벌은 붉은 깃발이 아니라 노란 조끼다. 노란 조끼는 사회적 고통과 공공연한 비가시성 속으로 그들을 밀어넣어왔던 세계에서 바로 그들을 가시화한다. 그들은 노란색의 정치적 상징을 알고 시작한 것 같지 않다. 제브 스터넬(Zeev Sternhell)의 신중한 연구에 의해 밝혀진 사실은 노란색이 19-20세기 전환기 무렵 프랑스의 ‘혁명 우파(les Jaunes)’ 그룹의 요소였다는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난 뒤, 노란색의 의미가 달라졌다. 빨간색이 그 상징적 힘을 잃었던 것처럼.
몇몇 역사가에 따르면, 사회적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저항 운동은 군중의 ‘도덕적 경제(moral economy)’의 베일을 벗겨내는 일이었다(‘도덕적 경제’ 개념은 영국 역사학자 E.P. 톰슨이 산업 혁명 시기 사회적 봉기를 묘사하기위해 만들었다). 이런 비교는 유의미하지만, 거대한 정치적 퇴행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좌파 역사의 두 세기가 무용한 과거로서 간단히 잊혀지고 무시되고 버려졌다는 해석 말이다. 노란 조끼 운동은 1848년 파리 코뮨, 1968년 5월의 저항과 어떤 연결지점도 없다. 대신에 프랑스 혁명의 어떤 상징을 취하고 있기는 하다 : 상퀼로트(sans-culottes)[프랑스 혁명의 추진력이 된 사회계층. 수공업자, 장인, 소상인 등이었고 주로 빈곤층이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왕의 처형 등등. 구체제에 대한 사회 저항이 귀환한 것인가? 글쎄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기억의 결여는 확실히 수많은 좌파의 상징이 힘을 잃고 풍화되었음을 증명하고 있기는 하다.
다른 한편, 노란 조끼는 구식 운동이 전혀 아니며, 굉장히 현대적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운동을 조직하면서, TV채널에 대한 대항-정보 도구로서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고, 인터넷을 집단 조직책으로 활용하고 있다(2011년 아랍 혁명처럼). 노란 조끼는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변형시키면서 그들의 반달리즘에 가까운 행위를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캠페인으로 만들고 있다. 최근 집회에서는 경찰한테 맞아 부상당하거나 상해를 입은 노란 조끼 수십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노란 조끼는 프랑스 혁명을 잇고 있음을 주장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나 스페인의 15M운동[2011년 5월 15일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거대한 시민운동], 그리고 프랑스 뉘 드부(Nuit debout)[2016년에 있었던 밤샘시위 운동]와 더 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논자는 노란 조끼 운동을 새로운 포퓰리즘 형태로 보기도 한다. 여러 면에서 이는 사실이다. 인민이 권력 엘리트, 그러니까 금융 엘리트의 화신이자 ‘초부자(ultrarich)’들의 대통령 마크롱에 대항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전적인 포퓰리즘의 많은 특징이 분명 거부되고 있다. 특히 민족주의와 카리스마적 리더쉽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마린 르 펜이나 장-뤽 멜랑숑은 그들을 대표할 수 없다. 노란 조끼는 자기-대표를 집요하게 고수하고 있고 수평 민주주의 형태를 실천하고 있는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한다. 에티엔 발리바르를 참고해 말하자면, 노란 조끼 운동을 ‘대항-포퓰리즘(counter-populism)’ 형태를 발명하고 있는 운동이라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포퓰리즘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포퓰리즘, 정치적 지지자들의 포퓰리즘이 아니라 행위하는 자의 포퓰리즘 말이다.[발리바르가 노란 조끼 운동을 대항-포퓰리즘이라고 칭한 맥락은 다음을 참고하라. url : https://www.versobooks.com/blogs/4191-gilets-jaunes-the-meaning-of-the-confrontation ]
노란 조끼 운동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예측 불가능하다. 모든 여론조사가 그들이 지극히 대중적이며 프랑스 시민 대다수가 옹호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노란 조끼는 시민 사회의 한 부분만을 대표하고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부분은 확실히 거대하고 이질적이며 이론적으로 경계를 구획할 수 없는 것이긴 하다. 그들이 ‘인민’을 체현하고 있다고 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노란 조끼가 대표하는 그 부분은 홀로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 성공적인 운동은 프랑스 사회의 다른 부분들까지 포함하고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 임노동자와 공무원에서부터 교외 지역의 청년(les jeunes des cites)[파리 교외지역에는 빈민/이민자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까지, 그리고 대학생과 고등학생들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람시의 개념을 빌려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적 블록(social bloc)’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사회적으로는 경제적 신자유주의 모델을,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인류학적 신자유주의 모델(소비, 소유, 개인주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인간 모델)을 부과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역사적 블록(historical bloc)’을 창설하려 했던 엠마뉴엘 마크롱의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사실 말이다. 의기양양하게 선출된 게 채 2년도 되지 않은 미래의 남자(man of the future) —지적이고 교양있으며(그에게 아부하는 많은 저널리스트는 그를 철학자라고까지 한다), 정력적이면서 현대적인— 마크롱은 ‘초부자’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생기면서 급속도로 경멸과 혐오를 감내해야 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현재 사회 저항 운동은 ‘부유세’(ISF) 폐지를 완고하게 고수하는 그의 정책에 집중되어 있다. 그 정책은 사회 불평등의 상징이 되었다.
마크롱은 이 ‘초부자’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진보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있다. 마크롱의 진보 비전은 부유한 자들로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낙수효과(trickle down, le ruissellement)’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노란 조끼 시위대로부터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에서 승리하는 유럽 자본으로 프랑스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마크롱의 프로젝트는 이미 산산조각났다. 대통령이 의회에서 굉장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프랑스 제5공화국 제도에 감사하자. 그는 아마도 임기를 다 채우긴 할 것이다. 하지만 마크롱주의는 실패했다. 마크롱은 그의 정책이 가져올 이익을 설명하고 일정부분 양보하는 방법으로 시위를 멈추게 만들기를 이미 포기했으며, 폭력적 진압이 합법성을 결여했다면서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 폭력적 진압이란 ‘비상상태(state of exception)’ 대처수단을 강화시키는 2015년 테러 이후 도입된 최근의 ‘폭동진압(anti-riot)’법을 말한다. 마크롱의 ‘쥐피테리안(Jupiterian)[로마신화에서 주피터는 모든 인간과 신 위에 군림하는 신중의 신으로, 마크롱의 권위주의적 개혁을 비꼬아 붙인 별명이다. 국내 일부 언론에는 ‘목성인’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는 권위주의적 보나파르티즘의 형태로 유질될 것이다. 마크롱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알제리 전쟁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억압적인 시기임이 확실하다.
사회적 프로젝트로서 마크롱주의의 실패는 노란 조끼 운동의 가장 큰 성취다. 노란 조끼 운동에 참여한 많은 이는 이 운동이 자신들의 주장을 이미 초월해버렸다고 말한다. 로터리 점거는 운동 형태 이상의 의미였다. 그곳은 새로운 사회 실천의 영역이 되었다. 사람들은 홀로 살아가는 데에,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에 길들여져 있었다. 로터리 안에서 사람들은 연대와 상호부조라는 집단적 가치를, 자크 랑시에르가 ‘감성적인 것의 나눔(le partage du sensible)’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해냈다. 그들은 개인주의에 맞서는 공동체의 느낌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해방의 열쇠다.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주요한 대안은 보수정치, 국민주의, 포스트-파시즘적 포퓰리즘이었다. 작금의 노란 조끼 운동은 다른 출구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평등과 수평적 민주주의에 기반한 출구이다. 그들은 새로운 행위 형식과 새로운 집단 숙의민주주의(deliberation)의 실천을 경험하고 있다. 그 실천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지성과 창조성뿐만 아니라 나이브함과 편견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 양가성의 신호는 그들이 ‘반정치(antipolitical)’ 운동을 참칭할 때, 복수적이고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 성명서를 발표할 때 잘 드러난다. 어떤 전통적이거나 역사적인 기억도 없이 자기-조직된 운동은 자신의 경험과 실수를 통해 배워나간다. 외부로부터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수습기간을 가지면서. 유감스럽게도 난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저자 Enzo Traverso : 코넬 대학교 수잔&바톤 위노커 인문학과[유대인인 위노커 부부가 코넬 대학교에 기금을 기부하면서 만들어진 학과. 홀로코스트, 파시즘, 나치즘 등을 연구한다.] 교수. The Marxists and the Jewish Question, The Jews and Germany, Understanding the Nazi Genocide and The Origins of Nazi Violence 등을 쓰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