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만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미래에도 하청노동은 위험하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서교인문사회연구실
멀게 만 느껴졌던 법이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광장에서 헌법을 외치며 수십만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랬다. 하지만 가장 법이 절실히 다가올 때는 법의 한계로 부정의한 자를 처벌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지 못할 때다. 작년 12월 우리는 태안화력에서 일어난 김용균의 사고를 함께하며 제대로 된 법, 특히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2018년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산업화와 함께 일 하다가 죽은 수만의 사람을 땅에 묻었지만 수십년 굳건했던 그 법은,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에 추모의 거대한 물결이 생기고, 태안화력 김용균 사망 이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故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님의 노력과 시민사회, 노동조합, 전문가들이 합심한 결과였다. 정부와 언론은 이 법을 김용균 법이라 지칭했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을 통해 김용균과 같이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가 위험한 일을 떠맡아 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법이라는 의미였다. 주요 부분만 9개, 개정 32개, 신설 및 강화 조항의 숫자 60여개 이상이라는 큰 변화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개정 이유처럼 연간 천 여명에 이르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 수와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2020년 1월 16일 시행을 앞 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지난 4월 22일,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시행령이 입법예고 됐다. 법 제정 당시부터 문제가 되었던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란 우려는 기준도 알 수 없는 정부의 제멋대로 시행령에 의해 현실화되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자 원청의 책임강화를 외쳤던 법의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고 김용균 3차 범국민 대회 이후 행진하는 김미숙 어머니와 시민들 @한겨레
2018년 포스코라는 이름을 단 회사에서만 16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 인천, 경기, 충남, 전남, 경북, 부산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16명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하청노동자라는 점이다. 구의역 김군도 은성PSD라는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 소속이었고, 김용균도 한국발전기술이라는 서부발전의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다단계로 내려가는 우리나라의 만연한 하청고용 구조에서 그간 위험작업에 대한 각종 안전보건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흘러갔고, 하청노동자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포스코, 서부발전과 같은 큰 회사들은 그들이 일을 맡긴 하청업체들보다 많은 인력 갖추고 있고, 그에 따른 각종 안전보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기업이자 원청회사인 그들이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를 안전장치 설치와 각종 조치로 그 업무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험하단 이유로 특정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을 최소화하고, 하청업체에게 일을 주더라도 가장 많은 자원과 그것에 따른 이윤을 얻어가는 원청회사가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좀 더 안전한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에 대한 하청을 금지하거나 승인 받아야만 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급 금지 및 도급 승인), 각종 하청업체와 건설기계를 운행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만연한 건설업에 대한 다양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것, 프렌차이즈 가맹본부의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확대 혹은 추가한 것은 실질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취할 수 있는 원청 회사의 역할을 강제하고 위험이 하청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하지만 4월 22일 발표된 시행령에는 이러한 확대와 추가가 무력화되었다.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의 작업 그리고 매해 많은 사망이 발생하는 조선업에 대한 위험의 외주화. 즉 하청을 주는 일이 금지되지 않은 것은 물론 승인조차 받을 필요가 없는 작업으로 분류되었다. 그 뿐만 아니다. 방사선을 다루는 업무, 전기설비 관련 업무, 감염관리 업무 등 이미 산업재해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업무들이 하청금지나 승인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더불어 도급을 허용한 “일시·간헐적으로 하는 작업”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정의하지 않고 남겨둠으로써 더욱더 불안정한 위치에 처해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를 정부가 도외시하고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하청에 대한 금지와 승인과 더불어 하청을 준 업무에 대한 책임 확대도 무력화되었다. 개정법을 통해 확대하려 했던 원청 업체가 관리하는 작업장의 범위가 기존과 전혀 다르지 않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법은 좋게 바뀌었다는데 실상 따져보니 변경된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의무가 있는 곳에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원청에 대한 책임 범위 확대, 즉 장소적 확대와 하청을 줄 수 없는 업무의 확대한다는 것은 원청업체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청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이로 인해 사고가 났다면 그 책임을 원청업체까지 물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시행령에 따르면 이러한 원청 책임 범위의 확대가 없어진 것이다.
김용균이라는 빛/빚
정부의 4월 22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은 산업재해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과 법조문 하나하나를 따지며 현장에서 보다 안전한 노동을 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기대를 저버렸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8년 만에 통과되었던 것은 모두가 기대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위험의 제공자, 즉 위험한 작업을 시킴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가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바램이다. 그것이 무너져 겪었던 구의역, 태안화력의 사고를 다시금 일어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청의 책임 강화라는 말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을 제공하는 자에 대한 안전과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기업의 애로사항이라는 말로 이러한 법의 목적과 이러한 법의 목적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려했던 개정안을 후퇴시키는 일을 멈춰야 한다.
법 하나가 우리의 모든 희망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를 통과한 이번 전부 개정안이 모두 우리의 바람대로 된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 사망을 지켜보며, 함께 사회가 공유했던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실질적인 이익을 취하는 원청회사가 하청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라는 입법취지가 정부의 시행령을 통해 좌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생명안전 시민넷 안전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