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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일곱 번째

반차별 독트린페미니즘 이론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킴벌리 크렌쇼

번역: 단호&느루/페미니즘 번역모임

검토: 단감&마리온/페미니즘 번역모임

 

 

백인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협소하게 구축된 일부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예시로는 공사 이분법 문학이 있다. 공사 구분 이데올로기가 가정과 공적 생활에서 어떻게 여성의 역할을 형성하고 제한하는지 비판하는 작업은 페미니즘 법률 사상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이다.[각주:1]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여성에게 이질적으로 부과되는 사회적 역할을 전통적으로 정당화해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내고 비판함으로서 공사 구분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해체하려했다. 하지만 여성의 종속에 대한 정당화를 폭로하려는 이 시도가 흑인 여성에 대한 지배에 대해서는 별다른 통찰을 제공하지 못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기대고 있는 현실적 기초는 백인의 삶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도출된 이론적 진술은 좋게 봐도 과장된 것이었고, 아예 잘못된 경우도 있었다.[각주:2] 이런 문학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여성이 의존적이고 제한적 능력을 가졌으며 수동적이라고 배웠다[각주:3]는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관찰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의 교차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변칙을 간과하고 있다. 흑인 남성들과 여성들은 생물학적 성을 기반으로 한 규범과 기대를 생산하는 동시에, 인종차별로 인해 이런 규범과 기대가 부정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흑인 남성들은 강하다고 여겨지지 않고, 흑인 여성도 수동적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흑인 사회에서 젠더 지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로 교차하는 힘들이 젠더규범을 만드는 방식과 이때 흑인을 억압하는 조건들이 젠더규범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흑인 여성들이 여성 가장이라는 병리적 스테레오타입에 붙잡혀 있는 이유[각주:4]나, 흑인해방운동 내에서 의도적으로 가부장적 제도와 전통을 만들려는 시도가 꾸준히 존재하는 이유를 집어볼 수 있을 것이다.[각주:5]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설명적인 정의는 대개 백인 여성의 경험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및 페미니스트 문학을 접한 사람들은 가족 및 여타 흑인 제도에서 흑인 여성의 역할이 백인 공동체 기준의 친숙한 가부장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흑인 여성은 가부장제 규범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면제된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은 전통적으로 백인 여성에 비해 집 밖에서 일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각주:6] 백인 여성이 직장에서 배제돼 온 역사를 중심으로 가부장제를 분석하면, 흑인 여성에겐 젠더에 따른 사회적 기대가 제약이 되지 않았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흑인 여성의 바로 그 상황이 여성은 일해선 안 된다는 규범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개인적, 정서적, 관계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흑인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 아닌 부분을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그 상황이 때때로 흑인 사회 안에서 흑인 여성이 젠더규범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나, 인종 차별이 흑인 사회에 끼친 또 하나의 재앙이라고 해석되면서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짊어졌다.[각주:7] 이것은 백인 경험에 뿌리를 둔 가부장제 분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교차성의 여러 측면 중 하나이다.


백인의 맥락에서 형성된 이론이 흑인 여성들의 삶이 가진 다차원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사례는 강간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페미니즘 의제에서 핵심적인 정치적 이슈는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강간 문제였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지적·정치적 노력의 일환으로 발달한 것은 규범적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정하고 여성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법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비판이었다.[각주:8] 이런 담론에 따르면 초기의 간음 및 강간 관련 법률의 목표는 여성을 강압적 성행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순결을 마치 재산처럼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있었다.[각주:9] 이런 목적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올바른 측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강간법을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반영하는 것으로만 분석하는 것은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부적절한 설명이다.


강간법이 일반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가 아니라,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백인 남성의 규제다.[각주:10]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의 순결을 규제하고자 하는 제도적 노력은 없었다.[각주:11] 몇몇 주()법원에서는 배심원단에게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과 달리 순결하지 않다고 알려주는 경우까지 있었다.[각주:12] 또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제는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법의 보호 밖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했지만, 가해자가 흑인 남성일 경우 인종주의는 손상된 백인 여성의 순결을 복원시킬 수 있었다.[각주:13] 흑인 여성에겐 이렇게 순결을 복원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강간을 오직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 권력의 증거로만 해석하면, 강간을 인종적 테러의 무기로 사용하는 측면이 은폐된다.[각주:14]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강간당한 사건은 피해자가 보편적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특정하게 흑인 여성으로서 강간당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 즉 인종주의적 지배 하에서 흑인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처하는 동시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백인 남성의 권력은 흑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백인 남성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어려운 사법체계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각주:15]


종합하자면, 순결에 대한 성차별적 기대와 성생활이 난잡할 것이라는 인종차별적 가정이 결합해 흑인 여성을 둘러싼 별개의 이슈들을 만들어냈다.[각주:16] 이런 이슈들은 페미니스트 문학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못했고 반인종주의 정치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던 제도적 관행인 흑인 남성에 대한 린치는 예나 지금이나 섹슈얼리티와 폭력에 대한 흑인 운동의 의제이다. 결과적으로 흑인 여성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소송 시도들을 당연히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흑인 집단과,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만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의심을 부채질하는 페미니스트 집단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각주:17] 이 의심은 백인 여성 섹슈얼리티의 보호가 흑인 공동체를 위협하는 구실로 작동하곤 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의해 더욱 증폭된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강간반대 의제가 인종차별 철폐의 목표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 이것이 인종과 젠더의 교차점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정치적,이론적 딜레마이다. 흑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들춰냈다가는 감춰버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흐름들 사이에 갇혀 있다.



  1. 페미니스트는 젠더 기반의 스테레오타입과 규범이 공적 생활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을 합리화하고 사적 영역에서 그들에게 맡긴 역할을 찬양하며 여성의 종속을 강화하는 양상에 대해 논해 왔다. 역사적으로 법은 공적 생활에서 여성의 배제를 강화하고 그들의 범위를 사적 영역으로 제한하며 이러한 종속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가령, Deborah L. Rhode, Assosiation and Assimilation, 81 Nw U L Rev 106 (1986); Frances Olsen, From False Paternalism to False Equality: Judical Assaults on Feminist Community, Illinois 1869-95, 84 Mich L Rev 1518 (1986); Martha Minow, Foreword: Justice Engendered, 101 Harv L Rev 10 (1987); Nadine Taub and Elizabeth M. Schneider, Perspectives on Women’s Subordination and the Role of Law, in David Kairys, ed, The Politics of Law 117-39 (Pantheon Books, 1982) 를 보라. [본문으로]
  2. 이 비판은 페미니즘이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을 전제로 한다는 좀 더 일반적인 주장을 개별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예를 들어,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W. W. norton, 1963)와 같은 초기 페미니즘 텍스트는 페미니즘의 중심에 백인 중산층 문제를 배치하면서 흑인 공동체가 이를 거부하게 되었다. 다음을 보라. Hooks, Ain’t I a Woman at 185-96 (33번 각주에서 인용) (백인 중산층 의제가 흑인 여성들의 문제를 무시했기에 흑인 여성들도 페미니즘을 거부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3. Richard A. Wasserstrom, Racism, Sexism and Preferential Treatment: An Approach to the Topics, 24 UCLA L Rev 581, 588 (1977). 이 구절은 공사 구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전형적 논평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논의는 여기에 제시된 대담한 진술처럼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Taub and Schneider, Perspectives on Women’s Subordination and the Role of Law at 117-39 (36번 각주에서 인용) [본문으로]
  4. 예를 들어, 흑인 가정은 흑인 여성이 중산층 백인 가정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매우 병적인 형태로 간주되었다. 이런 견해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많은 흑인 사회의 폐단이 병적인 가족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비난한 모이니한 보고서(Moynihan Report)이다. 보고서와 그것의 현대적 맥락은 뒤에서 계속 논하겠다. [본문으로]
  5. 다음을 보라. Hooks, Ain’t I a Woman at 94-99 (cited in note 33) (1960년대 흑인 해방운동에서 고조된 성차별적 이미지에 대한 논의). [본문으로]
  6. 다음의 전반적 논의를 보라. Jacqueline Jones, Labor of Love, Lavor of Sorrow; Black Women, Work, and the Family from Slavery to the Present (Basic Books, 1985); Angela Davis, Women, Race and Class (Random House, 1981) [본문으로]
  7. 엘리자베스 히긴보텀의 지적처럼, “적절한 성역할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더 넓은 사회에서 남성이 가질 때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특성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충분하게 묘사되어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여성들은 기대되는 성역할을 지키지 않는 것이 가치체계에 대한 위협으로 보이기 때문에 낙인찍힌다.” Elizabeth Higginbotham, Two Representative Issues in Contemporary Sociological Work on Black Women, in Hull, et al, eds, But Some of Us Are Brave at 95 (1번 각주에서 인용). [본문으로]
  8. Susan Brownmiller, Against Our Will (Simon and Schuster, 1975); Susan Estrich, Real Rap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를 보라. [본문으로]
  9. Brownmiller, Against Our Will p.17;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Estrich, Real Rape를 보라. [본문으로]
  10. 백인 여성의 경험을 보편화함으로써 상당히 모호해진 페미니즘의 핵심 이론적 딜레마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술되는 경험들이 사실은 모든 종속집단에 대한 지배집단의 통제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지배적 위치에 놓여 있는 다른 남성들의 경우 문제가 되는 행위나 신념을 공유하고 있지 않거나 동참하지 않았을 수 있으며, 오히려 “남성” 권력에 의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맥락, 특히 사적 영역의 맥락에서는 “권위를 가진 남성”에 비백인 남성이 포함될 수도 있다. 흑인 여성이 여성으로서 지배당하는 경우와 흑인 여성으로서 지배당하는 경우를 더욱 명료하게 구분해 생각하려는 노력은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남성이냐 백인 남성이냐의 질문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본문으로]
  11. Rape, Racism and the Law, 6 Harv Women’s L J 103(1983)의 pp. 117-123 각주를 보라. (일반적으로 흑인 여성은 순결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과거 및 현재의 증거를 다룸). 또한 Ain’t I a Woman 중 p.54 각주 33번 (노예제 시기에 ‘흑인 여성은 전부 부도덕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낭설에 입각해 형성된 흑인 여성성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기술함); Beverly Smith, Black Women’s Health: Notes for a Course 각주 1번(Hull 외 편, But Some of Us Are Brave p.110) (“… 백인 남성은 수세기 동안 흑인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면서도 우리는 음란하고 언제든 성관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정당화해왔다.”라고 언급함) [본문으로]
  12. 다음은 아주 솔직하다는 점 외에는 매우 익숙한 진술이다: “몇몇 법원이 백인이 대부분인 곳에서는 순결하지 않은 여성이 비교적 드문 예외라고 발언한다면 그것은 분명 사실이겠지만, 만일 대개 부도덕한 다른 인종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에 이 법칙을 적용한다면 이는 곧 실제 상황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일 뿐이다.” (댈러스 대 연방 사건, 76 Fla 358, 79 So 690 (1918), 6 Harv Women’s L J p.121 각주 47에서 재인용) 이런 견해를 지지하며 1902년에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고결한 니그로 여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지만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 고결한 니그로 여성이라는 존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같은 책 p.82) 흑인 여성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대중문화에도 만연하다. Paul Grein, Taking Stock of the Latest Pop Record Surprises, LA Times § 6 p.1 (1988년 7월 7일) (1970년대 후반, “흑인 여자애들은 그냥 밤새도록 당하고 싶은 거 뿐이야”라는 가사를 포함한 롤링 스톤즈의 음반에 대한 논쟁을 회고함) 이런 부정적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 성적 보수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악랄한 낭설에 대해 반드시 필요한 반응은 … 가부장적 도덕률을 그 누구보다 엄격히 따르는 것이다.” (Smith, Black Women’s Health, Hull 외, 재개정판, But Some of Us Are Brave p.111 각주 1번) 이런 반응은 흑인 학교의 태도와 정책에 일부 반영되어, 여성 학생들의 행동을 악명 높을 정도로 통제했다. Gail Elizabeth Wyatt, The Sexual Experience of Afro-American Women (Martha Kirkpatrick 편, Women’s Sexual Experience: Exploration of the Dark Continent 24 (Plenum, 1982) 중,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학은 훨씬 엄격히 성적 행동을 감독하는 반면, 백인 대학의 기숙사에서는 보다 느슨한 통금과 규제가 적용되는 차이”를 언급함). 흑인 여성에게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덕목을 요구하는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에 먼저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흑인의 순결을 강조하는 행태를 이해하고 비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모두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것이 될 것이다. [본문으로]
  13. 사법체계가 순결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르면 흑인 여성은 강압적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한 평론가는 “지배적 고정관념에 따르면, 흑인 여성은 순결할 리 없었다. 따라서 흑인 여성의 강간 기소는 자동적으로 무시되었고 순결 이슈는 원고가 백인 여성인 사건에서만 제기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6 Harv Women’s L J, p.126 각주 47) 흑인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는 주장은 가해자의 인종과 상관없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12년 한 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법원은 [강간과 관련해] 백인 남성의 말에 도전하는 깜둥이(nigger)의 말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편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을 때에는 린치가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통용되었다.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범죄”였기 때문에, 사회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여성을 다시 온전히 되살리기 위해서는 오직 흑인 남성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같은 책 p.125) [본문으로]
  14. The Rape of Black Women as a Weapon of Terror (Gerna Lerner 편, Black Women in White America 172-93, Pantheon Books, 1972에 실림)과 Brownmiller, Against Our Will 각주 44번을 보라. 강간이 인종적 테러행위로 활용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브라운밀러는 백인 여성도 KKK단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이를 흑인 여성이 겪는 “특수 사례”로 보지 않으려 한다. (같은 책 p.139) 누군가가 흑인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적 강간을 “특별한 사건”으로 인정해주든 아니든, 흑인 여성의 이런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이런 문제를 다루는 브라운밀러의 태도는 가부장제가 인종주의와 다양하게 맺고 있는 교차적 측면을 이해하지 않고도 가부장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본문으로]
  15.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6 Harv Women’s L J, p.103의 각주 47을 보라. [본문으로]
  16. 폴 기딩스(Paul Giddings)는 성적 고정관념과 인종적 고정관념이 결합된 결과에 주목한다: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의 열등한 특징을 전부 가지고 있지만, 백인 여성의 고결함은 전혀 없다고 여겨졌다.” (Giddings, When and Where I Enter, p.82 각주 32) [본문으로]
  17. 수잔 브라운밀러가 에밋 틸(Emmett Till) 사건에 대해 내린 진단을 보면 일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강간 반대의 정치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브라운밀러가 그간 흑인 여성의 강간 문제 및 흑인 남성의 위협에 대한 히스테리적 반응에 담긴 인종주의를 논의하고자 노력해왔다는 점은 충분히 높이 사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종적 테러리즘보다는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중심에 놓고 에밋 틸 사건을 분석한다. 브라운밀러는 이렇게 서술했다: “틸 사건만큼 여성에 대한 접근권을 둘러싸고 남성 집단 내에 존재하는 적대를 분명히 보여 주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우선 브라이언트 가게에서 시작된 일을 순수한 추파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모든 백인 여성에 대한 접근가능성을 재보고 있었던 것이다.” (Brownmiller, Against Our Will, p.272 각주 44) 나중에 브라운밀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리고 틸이 냈던 늑대 휘파람 소리(역자 주: 남자들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성희롱하며 내는 휘파람 소리)가 ‘청소년기의 허세’일 뿐이라고? 그 휘파람 소리가 살인의 이유였을 수 있다는 사실에 당연히 경악하면서도, 우리는 또한 에밋 틸과 윌리엄(J. W. William)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휘파람이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미끈한 발목을 칭찬하는 의미도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악화된 상황까지 모두 고려할 때 … 이는 신체적 폭행에 준하는 의도적 모욕이자, 이 흑인 소년 틸이 캐롤린 브라이언트(Carolyn Bryant)를 소유하려 한다는 뜻을 상대에게 알린 마지막 신호였다. (같은 책, p.273) 브라운밀러는 이를 소유권을 빼앗기 위한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분류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는 이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미국 남부의 병적인 혐오와 공포를 비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여겼다. 신원파악이 힘들 정도로 훼손된 틸의 몸은 만천하에 공개되어, 틸의 모친의 말대로 “세상이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가 볼 수 있었다.” (Juan Williams, Standing for Justice (Eyes on the Prize, Viking, 1987, p.44)) 틸의 비극은 흑인 민권 운동의 직접적 시초가 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사건은 학교 인종분리금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방향으로 미국 흑인 사회를 움직였다.” (같은 책) 윌리엄스의 말처럼 “에밋 틸의 죽음은 흑인 세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미국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정의와 자유를 요구할 세대는 바로 이 세대, 그러니까 틸이 살해됐을 때 청소년이었던 이들이었다.” (같은 책, p.57) 틸 사건에서 브라운밀러는 백인 여성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맹렬한 투쟁을 보았던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극도로 치달은 흑인에 대한 억압의 상징으로 보았다.이 비극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가부장적 태도에 보조적 역할을 맡기고 백인 여성을 무대 중앙에 세운다는 것은, 인종주의를 둘러싼 혼란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백인들의 강간반대 운동이 흑인 여성들이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것까지 감안해 보다 미묘한 인종 간 긴장에 더욱 세심할 수 있다는 점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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