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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물신화된 규율과 폭력의 문화적 과정


유신정권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에서도 부랑인 정책의 기조는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내무부 410호 훈령은 전두환 정권의 말기인 1987년 2월에서야 폐지된다. 같은 해 1월 형제복지원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의 일이다. 형제복지원 역시 기본적으로는 내무부 410호 훈령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랑인의 타자화와 배제의 전략 속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자로 규정되어 ‘건전한 사회질서’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야만적 폭력’의 지대였다.


그곳에서 행해진 잔혹한 폭력과 끔찍한 인권유린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형제복지원은 야만이 지배하는 상태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 ‘야만적’이라는 느낌은 정확히 문명적인 것의 반대편에 있어야 하는 어떤 거서에 대한 느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문화와 질서가 존재하는 문명의 공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에 우리는 ‘야만’이라는 용어를 붙인다. 하지만 과연 형제복지원은 문명과는 무관한, 문명의 바깥에 위치한, 다시 말해 문명화되지 못한 곳이었기에 그러한 폭력이 횡행하는 공간이었을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란 결코 서구 사회의 문명화가 미진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바 있다. 그에 의하면 홀로코스튼 오히려 그러한 문명의 산물이다. 이때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던 문명이란 합리성에 바탕을 둔 근대의 문화와 질서이다. 바우만에게 문명화과정이란 일찍이 엘리아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폭력이 일상생활로부터 제거되는 과정이 아니다. 폭력에 의해 일상이 지배되던 야만상태로부터 폭력이 제거되고 예절(civility)이 지배하는 문명화된 상태로의 이행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우만은 문명화 과정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파악한다.


우리는 문명화 과정이 무엇보다도 폭력의 사용과 전개를 도덕적 고려에서 분리하는 과정이며 합리성이라고 하는 절실한 요구를 윤리적 규범이나 도덕적 금기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과정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안적 행위 기준들을 배제하도록 합리성을 장려하는 것과 특히 폭력을 합리적 계산에 종속시키는 경향이 오래전부터 현대 문명의 구성적 특징으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와 같은 현상들은 문명화 경향의 정당한 결과로 그리고 그것에 상존하는 잠재성으로 인식되어야 한다.6)


바우만에 따르면 서구의 현대를 지배한 합리성에 있어서는 목적이 설정되면 그 목적을 성취하는 최고의 효율적 수단을 찾아서 실행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의 실현과정에서 도덕적 고려라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또한 목적의 성취를 위한 가장 효율적 수단이 폭력이라면 그 폭력은 더 이상 어떤 도덕적 고려와 무관하게 합리적 원칙에 따라 선택되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우만에게 문명화 과정이란 폭력의 제거 과정이 아니라 폭력과 도덕의 분리 과정이 된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극단적 폭력은 문명의 바깥에서 이루어진 것, 혹은 야만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문명 안에서 이루어진 철저히 문화적인 것, 합리적 질서에 의해 자행된 것이었다.


바우만의 이러한 입론은 형제복지원의 폭력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종선의 증언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형제복지원의 일상은 빈틈은 없는 일과로 짜여 있었고, 철저하게 조직화되어 있었다. 짧게 깍은 머리, 짧게 자른 손톱, 단정한 복장, 정돈된 생활공간이 요구되었다. 대략 4시 기상에서부터 20시 취침시간까지 계획된 일정대로 수용자들은 움직여야 했다. 또한 수용자의 질서 잡힌 일상을 관리하기 위한 조직 역시 체계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원장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 조직이었다. 수용자들은 중대, 소대, 조라는 조직으로 관리되었고 각급 단위조직에는 중대장, 소대장, 조장이라는 책임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수용자 조직을 총무가 관리하였고 총무 위에는 원장이 존재했다.





이러한 질서는 한눈에 알 수 있듯이 군대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군사적 질서는 당시 한국의 군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공식적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폭력을 권력의 차등적 배분에 따라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군사문화를 형제복지원이라는 수용소 안에서도 작동하게 하였다. 한종선의 증언에는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폭력이 얼마나 군사문화에 입각한 위계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어느 추운 겨울 한종선은 얇은 추리닝을 입고 식당 근처에서 배식 시간을 기다리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추리닝 소매를 길게 빼서 손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원장이 보게 되었다. 이후 상황을 한종선은 이렇게 증언한다.


원장은 바로, “이곳 소대장이 누구야?”라고 고함을 쳤다. 바로 옆 중대장이 27소대 누구 소대장이라고 귀뜸했다. 원장은 중대장 조인트를 까면서, “애들 관리가 왜 이모양이야? 똑바로 안 해?”라고 했다. 중대장이, “예, 시정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원장은 천천히 어디로 향했다. 중대장은 소대장이 보이지 않자 조장을 불렀다. 중대장은 우리 조장의 귀싸대기를 때리며, “나중에 소대장 나에게 오라고 해?”하면서 바로 원장을 따라갔다. 조장은, “이런 니미 씨발.”이런 욕을 하면서 나보고, “소대 가서 대가리 박고 있어!”했다. 난 그날 밥도 먹지 못한 채 소대에서 원산폭격 자세로 있다가 식사를 하고 온 조장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다. 우리 소대원들은 모두가 나 때문에 전체 기합을 받았고, 빳다를 맞았다.7)


이 장면은 군대를 경험한 사람에게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병사가 군대의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고급 장교가 보게 되면 그 병사가 소속된 중대장이 깨지고, 그러면 중대장은 소대장을 깨고, 소대장은 분대장을 깨고 분대장은 결국 그 병사를 깨는 군대의 위계화된 폭력의 전달구조. 우리가 군대를 결코 문명 밖의 공간이라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형제복지원 역시 문명의 밖에 자리 잡은 공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군대, 특히 군사정권 하에서 군대의 문화는 매우 폭력적이었다. 공식적 규정이 금지하는 폭력이 규정된 질서의 위계, 즉 계급질서에 의해 임의적으로 자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군대조직이 그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공식적 제도에 의해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제도가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용인됨과 동시에 요청되는 규범이 바로 문화의 또 다른 기능이다. 군사정권 시대의 군대는 흔히 ‘군사문화’를 그러한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규범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군사문화는 단지 군대라는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공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관철되는 문화였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선배와 후배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도 군대와 같은 계급문화가 작동했다. 강력한 권력의 서열구조에서 권력관계 상 우위를 점한 자가 열위를 점한 자에게 임의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암묵적으로 묵인되고 요청되는 문화. 그런 의미에서 군사정권 하에서 군대는 일상의 관계와 질서가 조직되는 문화적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군사문화가 위계적 권력구조의 각급에 위치한 이들이 임의적으로 폭력을 하급자에게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이 된다는 것이 곧 한국적 군사문화가 일상적 폭력으로 발현되는 권력을 각 개인의 자의성에 온전하게 맡겨두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문화의 기능은 한국적 발전주의, 즉 개발독재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비록 군사정권이 국가권력을 사용하여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며 부정축재를 일삼은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군사정권은 국가의 경제력을 제고한다는 분명한 목표 하에서 작동했던 권력형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목표는 매우 ‘합리적’으로 관리되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동도의 노동을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규율되어야 했고, 학생들은 지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습득해야 했으며 시민은 개인의 권리 주장 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유보하는 순종적 존재가 되어야 했다. 군사정권 하의 한국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군사적 모델이 채택되었고 그것이 사회의 질서를 관리하는 모델, 혹은 암묵적인 문화적 규범이 되었던 것이다.


형제복지원은 한국적 군사문화가 극단적으로 실현된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설에서 군사문화의 ‘쌩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수용된 이들이 사회질서에 포함될 자격을 박탈당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폭력 이전에 자격의 박탈이 먼저 있었다. 부랑인들이 ‘건전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자들로 규정된 이상 그들은 사회질서 안에 머무를 자격을 잃게 되며 그 사회가 그나마 인정하던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다. 그들은 모든 법적,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단순한 생명체, 아감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벌거벗은 삶’이 되는 것이다. 또한 아렌트의 말대로 모든 법적,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하여 벌거벗은 삶이 된 자들이 갇혀있는 수용소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8) 더 이상 아무런 권리도 없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권리에 대한 그 어떤 고려나 주저 없이 군사주의적 폭력이 수용자들에게 행해지게 된다.


이러한 폭력은 철저히 수용자들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와 관리라는 목적에 입각해 허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군사문화에 입각한 폭력의 전달 구조는 시설의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수용자들 내부로 이식되어야 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을 교정하여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의 목적은 부랑자들에 대한 영구적 격리에 있었다. 수용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시설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형제복지원에 군사주의적 모델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용자들이 자신들의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권력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수용자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서 수용자들을 군대조직을 모델로 조직했던 것이다.


그것은 수용자들을 분할하여 그 내부에 권력의 위계를 수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중대장, 소대장, 조장 등의 직위를 가진 수용자들은 “자기 직위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9) 군사모델에 따라 조직된 체계 속에서 수용자들 역시 철저하게 위계화되며 그 위계에서 상대적으로 상급에 위치한 자들은 하급에 위치한 다른 수용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그 체계의 담지자이자 공모자가 되었다. 이렇게 수용자들 내부로 깊숙이 침투한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군사문화는 수용자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시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매우 효율적인 통제와 관리의 기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형제복지원의 폭력이 문화와 질서와 무관한 , 문화와 질서의 외부에 존재하는 야만성으로 규정될 수 없다. 분명 나치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동일성도 있다. 양자는 모두 당시 각 사회의 권력이 설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 방식으로 폭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형제복지원은 군사정권 시절 한국 사회의 문화와 질서의 산물이었다.


4.‘질서’를 보호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은 과거의 유물이 아닌가? 민주화를 통해 대한민국은 그 야만성을 극복하고 이제는 그런 배제와 타자화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해 형제복지원은 군사정권이 배태한 군사적 폭력성의 산물이고 군사정권을 극복한 지금은 그저 과거의 아픔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형제복지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활동했던 이들은 하나 같이 형제복지원은 ‘현재 진행형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단지 형제복지원만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양지마을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시설들에서 아직도 인권유린과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지적한다. 1987년 형제복지원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결국 당시 원장이던 박인근은 기소를 당한다. 하지만 그는 그저 시설 운영과정에서 저지른 비리만이 문제가 되어 징역 2년 6월이라는 형을 받았을 뿐이다. 그곳에서 저질러진 잔혹한 폭력과 인권유린, 직,간접적 살인, 시체유기 및 시체장사 등은 모두 묻혀버렸다. 이후 박인근은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 '욥의 마을', '느헤미야 복지원'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지속적으로 운영하다 2011년 아들에게 재단을 물려준 뒤 2015년 뇌출혈로 쓰러졌으며 2016년 사망했다. 형제복지원은 이후 2014년 부산시가 사회복지업법에 따라 법인설립허가를 취소하는 처분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벌였다. 그러던 중 부산지역의 독지가 서종범에게 약 45억원 상당으로 팔려나갔다. 2016년 1월 대법원 판결에서 대법원이 부산시의 손을 들어주면서 형제복지원은 사실상 해산되었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문명의 탈을 쓴 극단적 폭력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아무튼 이러한 가벼운 형벌은 형제복지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수용자들의 인권을 유린해온 다른 시설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양지마을의 경우, 원장 노재중을 기소하면서 검찰은 “강제납치, 폭행, 집단감금, 암매장, 성폭행, 강제불임수술 같은 인권유린은 기소항목에서 빼버렸거나 축소하였다.”10) 


양지마을 사건은 1998년 세상에 알려졌고 원장은 기소되었다. 소위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부의 집권기이다. 하지만 그 ‘민주정부’ 하에서도 시설의 반인권적 폭력은 법에 의해 묻혀버렸다. 형제복지원장 박인근의 경우처럼 양지마을원장 노재중도 그들이 저지른 잔혹한 폭력으로 인해 처벌받은 것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처벌에서 법이 확인해 준 것은 그들의 죄는 수용자들에 대해 저지른 반인륜적 폭력이 아니라 금전적 비리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법은 무엇보다 ‘질서’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와 법이 내세우는 국민의 인권이니 복리니 하는 명분은 차치하고라도 국가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적으로 저질러 지는 임의적 폭력을 통제하고 그러한 폭력이 가시화되었을 때에는 제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가시적 통제와 제제를 통해서 국가는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법이 천명하고 있는 질서의 보호와 유지는 바로 그와 같은 정당성 확보의 핵심적 기제이다. 그런데 왜 법은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원칙, 그 스스로 내세우는 정당성의 근거를 배반하면서도 이런 시설들을 단지 비리사범 정도로 가볍게 처벌하고 말았을까? 이는 원칙에 대한 배반, 사회질서 유지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이는 국가와 그 법이 지키려는 사회질서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대한민국의 법이 수호하려는 근본적 질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는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강고한 기득권 동맹의 이해관계를 위한 질서이며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리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과 고통을 얼마든지 활용해도 된다는 원리. 오히려 타인의 고통과 희생이 커질수록 자신의 이익도 그만큼 커진다는 원리. 이 원리가 만들어낸 질서가 바로 대한민국의 법이 지키고자 하는 질서, 한국사회의 지배질서이다. 승자독식의 원리는 신자유주의 시기 대한민국의 특징이 아니라 이미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후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던 지배질서의 원리였던 것이다.


이 질서는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기득권자들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자본가, 관료, 정치인, 언론인, 전문가 엘리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이익추구의 네트워크가 바로 이 질서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상층부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층부에서도 형성되어 있고 상층과 하층은 또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결망이 한국사회의 기득권연합을 구성하며 그들의 이익추구의 기회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법이 지키려는 사회질서란 바로 기득권 연합의 이익추구를 위한 기회구조이다.


형제복지원이나 양지마을과 같은 시설은 기득권 연합의 이익추구의 기회구조가 얼마나 타인의 희생과 고통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구타, 강제노동, 암매장, 시체장사 등을 통해서라도 시설장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고 그 이익의 일부는 또 다른 권력자들에게로 유입되었으며 그 권력자들은 시설장을 보호했다. 이러한 시설들에서 벌어진 잔혹이 폭로되었을 때 권력자들은 자신과 시설장의 공모관계를 감추어야 했고 시설장의 죄는 단순한 금전적 비리로 축소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축소를 통하여 이들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질서의 본질을 또한 은폐하려 하였다. 타인을 파괴하는 참혹한 폭력을 통해서라도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성공을 구가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모습을 비가시화하려 한 것이다.


법은 그 의미에 대해 다툼이 있는 사실을 하나의 의미로 결정하는 장치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자 그것의 의미를 두고 사회적 쟁론이 시작되었다. 이 쟁론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한국사회의 지배질서가 그 뿌리부터 드러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법은 이 형제복지원 사건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시설장의 개인적 비리로 결정하여 공식화함으로써 이 쟁론을 종결시켰다. 그럼으로써 지배질서의 그 잔혹한 ‘쌩얼’이 드러날 수 있는 작은 틈 역시 닫혀버렸다. 이렇게 법은 질서를 지키고 사회를 보호했다. 법이 정의나 인권과 같이 자신이 지킨다고 표명한 질서 배반하는 방식으로 법은 진정으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질서를 지켜냈다.

 



5.아직도 타는 목마름을 해갈되지 않았다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바우만은 홀로코스트에 대항하는 길은 결국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매우 뻔한 결론인 듯 보이지만 이는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수용시설의 폭력과의 투쟁에서도 결국 관건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물론 일차적으로 시설에 대한 민주적 감시와 통제를 의미할 것이다. 또한 과거에 저질러진 시설의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규명과 법적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하여 살펴보았듯이 시설의 폭력은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의 문제이며 그로부터 연원하는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의 사회 체제는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체제이다.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 체제 하에서는 사회조직의 기본모델은 더 이상 군사모델이 아니며 차라리 기업이 그러한 모델로 작동하고 있다. 더불어 그러한 조직운영을 위해 요청되는 문화역시 군사문화라기 보다는 기업적 경영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과 희생을 활용하는 지배질서의 근본원리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이 원리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시설과  유사한 삶의 조건 혹은 환경으로 추방당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작동해야하는 지점은 바로 이 원리와 질서, 혹은 문화에서부터 이다. 이 수준이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여전히 아직도 타는 목마름으로 불러야 하는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통해 작동하는 사회의 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조직모델과 그 조직운영을 위한 문화적 차원을 민주화하는 것을 통해 사회질서의 근본원리를 재편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혹 구체적인 시설들이 민주화되어도 시설과 유사한 또 다른 배제와 폭력의 장치들은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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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그문트 바우만, 정일준 옮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새물결, 2013, 63쪽.

7) 『살아남은 아이』, 44쪽, 45쪽.

8) 한나 아렌트, 이진우, 박미애 옮김, 『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사, 2006, 218쪽.

9) 『살아남은 아이』, 44쪽.

10) 같은 책,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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