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 프랑스어 번역(엥겔스가 수정한 부분은 각주로 처리)
프랑스어 번역: 조르주 라비카(Georges Labica)
한국어 번역: 배세진 (파리 7대학)
[옮긴이 앞글: 이 텍스트는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의 프랑스어 번역과 이에 대한 상세한 철학적 주해로 구성된 조르주 라비카의 저서 Karl Marx: Les Thèses sur Feuerbach에 실린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원본으로 삼아 번역한 뒤 이를 철학연구자 강유원의 신뢰할 만한 한국어 번역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이론과실천, 2008)과 비교하여 수정한 것이다(강유원은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또는 「포이어바흐에 관하여」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 텍스트에 대한 편집수정본을 각각 따로 번역하여 수록했다). 또한 이 텍스트를 번역함에 있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윤소영 교수가 『알튀세르의 현재성: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공감, 1996)와 『마르크스의 ‘자본’』(공감, 2009)에서 제시한 이 포이어바흐 테제에 대한 해설을 참조했다. 독자들 또한 이 테제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위의 두 책을 적극 참조하길 바란다. 특히 윤소영 교수가 지적하듯, 테제1에서 Gegenstand와 Objekt는 구분해서 번역해 주어야 하는데, Gegenstand는 ‘앞에 놓여 있음’, 즉 ‘현실대상’을 뜻하며 Objekt는 ‘사고대상’을 뜻한다. 아래의 번역에서는 원어를 병기해 줌으로써 이 둘을 구분해 주었다. 대괄호는 모두 독자의 이해를 위한 옮긴이의 것이며, 라비카의 원문에 강조의 누락과 오식이 조금 있는 부분은 옮긴이가 독일어 원문과 대조하여 수정했다.]
테제 1: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요한 결함은 [현실]대상(objet, Gegenstand), 유효한 현실(réalité effective), 감성(sensibilité)이 [사고]대상(objet, Objekts) 또는 직관(intuition)의 형태 하에서만 파악되며, 감성적으로 인간적인 활동(activité sensiblement humaine)[각주:1], 실천으로는, [그러니까] 주관적인(subjective, 주체적인) 방식으로는 파악되지 않아왔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활동적 측면은 유물론과의 대립 속에서 추상적인 방식으로 [유물론보다도 오히려] 관념론 -당연히 관념론은 감성적인, 그리고 유효하게 현실적인 활동 자체를 인식하지[는] 못한다- 에 의해 전개되었다(développé)[각주:2]. 포이어바흐는 사고대상(objets pensés, Gedankenobjekten)과는 현실적으로 구분되는 감성적 대상(objets sensibles)을 원한다[‘감성적 대상’에서 ‘대상’의 원어는 Objekt이다]. 하지만 포이어바흐는 인간적 활동 그 자체를 [현실]대상적(objective, gegenständliche) 활동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이론적 태도를 참된 인간적 태도로 간주하고, 그에 반해 [포이어바흐에게 있어] 실천은 그 추잡하게 유대인적인(sordidement juive)[각주:3] 표현(manifestation, Ercheinungsform, 현상형태) 속에서만 파악되고 고정될 뿐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포이어바흐는 “혁명적” 활동, “실천적-비판적”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테제 2: [현실]대상적(objective, gegenständliche) 진리를 인간적 사고에 귀속시켜야 하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바로 이 실천 속에서 인간은 진리, 즉 유효한 현실과 역량(puissance, 힘), 자신의 사고가 지니는 세속적 특징(caractère terrestre)을 증명해야만 한다. 사고 -실천으로부터 고립된-[각주:4] 의 유효한 현실성 또는 유효한 비-현실성에 관한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주의적인 문제이다.
테제 3: 상황(circonstances, 사태)과 교육의 변화에 관한 유물론적 독트린(doctrine, 학설 또는 교리)은 상황이 인간에 의해 변화하며[각주:5] 교육자 스스로도 또한 교육받아야 한다는 점을 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유물론적 독트린은 사회를 두 부분 -그 중 한 부분은 사회를 넘어서 있다[각주:6][각주:7]- 으로 나누어야만 하는 것이다[각주:8].
상황의 변화와 인간적 활동 또는 자기변화[각주:9] 사이의 일치(coïncidence)는 혁명적[각주:10] 실천으로서만 파악되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테제 4: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자기-소외라는 사실, 종교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로의[각주:11] 세계의 이중화(redoublement, 중첩)로부터 출발한다. 포이어바흐의 작업은 종교적 세계를 그 세속적 기초로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적 기초가[각주:12]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스스로를 구름 속 하나의 자율적 왕국 내에 고정시킨다는 것은 이러한 세속적 기초의 자기파열과 자기모순에 의해서만[각주:13]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후자[세속적 기초] 그 자체는 그 모순 내에서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혁명화 되어야만 한다[각주:14]. 그러므로 예를 들면 일단 세속적 가족이 신성한(céleste, 천상의) 가족의 비밀로 폭로된 다음, 이제부터 우리는 전자[세속적 가족] 그 자체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파괴해야만 한다[각주:15].
테제 5: 추상적 사고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 포이어바흐는 직관을 원한다[각주:16]. 하지만 포이어바흐는 감성을 실천적인 인간적-감성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못 한다.
테제 6: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로 해소한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개별적 개체(individu singulier)에 내재하는(inhérente) 추상물이 아니다. 그 유효한 현실에 있어, 인간적 본질은 사회적 관계들(rapports sociaux)의 앙상블(ensemble)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효한 현실적 본질에 대한 비판으로 들어가지 않는 포이어바흐는
1) 역사적 과정을 사고하지 못하고 종교적 감정(sentiment)을 그 자체로 고정시키며, 하나의 추상적 인간 개인 -고립된- 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2) 그러므로 본질은[각주:17] “유類”로서만, 내적이고 침묵하며 많은 수의 개체들(individus)을 자연적인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보편성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테제 7: 바로 이 때문에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감정”이 그 자체로 사회적 산물[각주:18]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하는 추상적 개인[각주:19]이 규정된 사회형태에 속한다는 것을 보지 못 한다.
테제 8: 모든[각주:20] 사회적 삶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함(mysticisme, 신비주의)으로 인도하는[각주:21] 모든 신비(mystères)는 그 합리적 해결을 인간의 실천과 이러한 실천에 대한 이해(compréhension, 개념적 파악)에서 발견한다.
테제 9: 직관적[각주:22] 유물론, 다시 말해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같이]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 개념화(conçoit)하지 않는 유물론이 이르는 최고의 정점은 [기껏해야] 개별 개인들(individus singuliers)과 부르주아-시민사회[각주:23]의 직관[각주:24]이다.
테제 10: 낡은 유물론의 관점(point de vue)은 부르주아-시민사회[각주:25]인 반면, 새로운 유물론의 관점은 인간적[각주:26] 사회 혹은 사회적[각주:27] 인류이다.
테제 11: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각주:28]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changer) 것이다.
- ‘감성적으로 인간적인 활동’을 ‘감성적 인간 활동’(activité humaine sensible)으로 변경 [본문으로]
- ‘바로 이 때문에 유물론과의 대립 속에서 활동적 측면은 관념론에 의해 전개되었던 것이다 - 하지만 추상적인 방식으로만 전개되었는데, 왜냐하면 당연히 관념론은 감성적인, 그리고 유효하게 현실적인 활동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로 변경 [본문으로]
- ‘추잡하게 유대인적인’을 ‘추잡한 유대인적인’(sordide juive)으로 변경 [본문으로]
- ‘실천으로부터 고립된 사고’로 변경 [본문으로]
- ‘인간이 상황과 교육의 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화된 인간은 다른 상황과 변화된 교육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적 독트린은 정확히 이 상황이 인간에 의해 변화해야 하며 또한’으로 변경 [본문으로]
- ‘사회를 넘어서 있다’로 변경[마르크스의 원문에서는 ‘사회’ 대신 이 ‘사회’의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엥겔스는 이 대명사를 ‘사회’로 바꿔 주었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 '(예를 들어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의 경우)' 추가 [본문으로]
- ‘바로 이 때문에 유물론적 독트린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둘로 나누게 되고 마는데, 그 중 한 부분은 사회를 넘어서 있다’로 변경 [본문으로]
- ‘자기변화’ 삭제 [본문으로]
- ‘변혁적’(renversante)으로 변경 [본문으로]
- ‘상상적 세계와 실재적 세계로의’로 변경 [본문으로]
- 한 문장을 추가하여 ‘그는 이 작업을 완수한 이후에도 주요한 작업이 여전히 수행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특히 세속적 기초가’로 변경 [본문으로]
- ‘정확히’ 추가 [본문으로]
- ‘그러므로 후자 그 자체는 우선은 그 모순 내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모순의 제거를 통해 실천적으로 혁명화 되어야만 한다’로 변경 [본문으로]
- '이론적으로 비판하고 실천적으로 변혁(renverser, 전복)되어야만 한다'로 변경 [본문으로]
- '감성적 직관에 호소한다'로 변경 [본문으로]
- ‘바로 이 때문에 포이어바흐에게 있어서 인간적 본질은’으로 변경 [본문으로]
- ‘사회적 산물’에 강조표시 [본문으로]
- ‘사실은’ 추가 [본문으로]
- ‘모든’ 삭제 [본문으로]
- '이끌고 가는‘(entraînent)으로 변경 [본문으로]
- ‘직관적’에 강조표시 [본문으로]
- ‘사회’(société)의 앞 글자 s를 대문자 S로 바꾸고, ‘부르주아-시민사회’라는 단어에 큰 따옴표 추가(“부르주아-시민사회”) [본문으로]
- ‘~의 직관’ 대신에 ‘최고의 정점은 “부르주아-시민사회” 내에서 각각 분리된 개별 개인들의 직관’으로 변경 [본문으로]
- ‘부르주아-시민사회’를 ‘“부르주아-시민”사회’로 변경 [본문으로]
- ‘인간적’에 강조표시 [본문으로]
- ‘사회적’을 ‘사회화된’으로 변경 [본문으로]
- ‘그러나’ 추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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