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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첫 번째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옮긴이] 페미니즘 학자 킴벌리 크렌쇼는 1989년에 발표한 이 논문을 통해 '상호교차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상호교차성은 흑인 여성이 인종 차별과 성차별 양쪽 모두를 경험한다는 사실이 여성으로서의 삶과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그는 인종차별, 성차별,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억압이 각각 개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차별을 감당하며 다중 전선에서 싸워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이 성차별과 동시에 맞서야 하는 여러 차별을 누락시키지 않기 위한 관점이다.


킴벌리 크렌쇼

번역: 마리온/ 페미니즘 번역모임

 

얼마 안 되는 흑인 여성들의 연구서 가운데 여자들은 죄다 하얗고, 흑인들은 죄다 남자라네, 하지만 우리 중에는 용감한 이들이 있지All the Women Are White, All the Blacks Are Men, But Some of Us are Brave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각주:1]. 나는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발전시키려는 내 노력의 출발점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각주:2]. 왜냐하면 그것은 인종과 젠더를 서로 배타적인 경험 및 분석 범주로 취급하는 문제적 경향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각주:3]. 이 글에서 나는 어떻게 이런 경향이 일차원적 틀(single-axis framework)이는 반차별법에서 지배적일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이론과 반인종주의 정치에도 반영되어 있다에 의해 영구화되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 분석에서 초점은 흑인 여성인데, 그 목적은 흑인 여성들의 경험의 다차원성과 이런 경험들을 왜곡하는 일차원적 분석을 대조해 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나는 흑인 여성들이 이론적으로 어떻게 삭제되는지 보여 주고, 또 그 틀이 가진 이론적 한계가 어떤 식으로 작용해 페미니즘적이고 반인종적인 분석의 확장을 약화시키는지 기술해 보고자 한다. 흑인 여성을 출발점으로 삼을 경우, 지배적 차별 개념들이 어떤 식으로 종속을 단일 범주 축을 따라 일어나는 불이익(disadvantage)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더 나아가 나는 이런 일차원적 틀이 그 외의 측면에서는 특권을 가진 집단의 경험에 대한 질문을 제한함으로써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개념화, 구분, 개선에서 흑인 여성들을 지워버린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 인종 차별의 경우 차별은 성이나 계급에 있어 특권을 가진 흑인들과 관련된 일로 비치는 경향이 있고, 성차별의 경우 초점은 인종적으로나 계급적으로 특권적 지위에 있는 여성들에게 있다.

이렇게 가장 특권적인 집단에 초점을 맞출 경우, 다층적인 억압 상황에 있는 이들이 주변화될 뿐만 아니라, 별개의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볼 수 없는 차별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다른 차원에서는 특권을 가진 집단에 초점을 맞출 경우/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대한 왜곡된 분석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인종이나 성에 대한 operative한 개념들이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의 아주 일부만을 대표하는 경험에 근거를 두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차원적 틀의 교조적 징후들을 검토해 본 후 나는 그것이 어떻게 페미니즘 이론과 반인종주의 정치에서 흑인 여성들의 주변화에 일조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 볼 것이다. 내 주장은 흑인 여성들이 종종 페미니즘 이론과 반인종정책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이는 양자가 모두 인종과 젠더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별개의 경험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배제의 문제는 단순히 흑인 여성을 기존의 분석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차적 경험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의 합보다 훨씬 더 크며, 교차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분석도 흑인 여성이 종속되는 특정 방식을 제대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이론이나 반인종정책 담론이 흑인 여성들의 경험과 관심사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험이나 흑인의 경험을 구체적인 정책 요구들로 현실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온 전체 틀을 재고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교차성을 고려하지 못해 흑인 여성이라는 과녁을 빗나간 이론적·정치적 발전들의 예로 나는 간단히 강간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과 이데올로기의 분리된 차원들, 그리고 흑인 공동체 내의 여성 가부장과 관련된 공공정책 논쟁에 대해 논의해 볼 것이다.

 

<계속>


  1. Gloria T. Hull, et al., eds.(The Feminist Press, 1982). [본문으로]
  2. 법에 대해 흑인 페미니즘적 관점을 피력하고 있는 다른 연구들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Judy Scales Trent, Black Women and the Constitution: Finding Our Place, Asserting Our RightsJudy Scales Trent, Black Women and the Constitution: Finding Our Place, Asserting Our RightsJudy Scales Trent, Black Women and the Constitution: Finding Our Place, Asserting Our Rights(Voices of Experience: New Responses to Gender Discourse), 24 Harv CR-CL L Rev 9 (1989); Regina Austin, Sapphire-Bound!, forthcoming in Wisc Women's L J (1989); Angela Harris, Race and Essentialism in Feminist Legal Theory (unpublished manuscript on file with author); and Paulette M. Caldwell, A Hair Piece (unpublished manuscript on file with author). [본문으로]
  3. 이런 분석적 딜레마를 보여 주는 언어적 징후들 가운데 가장 흔한 사례로는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흑인과 여성”이라는 말의 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흑인”이나 “여성”이라는 말에 흑인 여성을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이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은 보통 흑인 여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Elizabeth Spelman, The Inessential Woman 114-15(Beacon Press, 1988를 보라(군대 내 흑인과 여성에 대한 글을 논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성’으로 정체화된 이들의 인종적 정체성은 흑인 여성에 대한 참조점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명백해진다. 이 지점에서 여성이라는 범주가 흑인 여성을 배제하고 있음 또한 분명해진다”). 만약 흑인 여성이 명백히 포함되는 것이었다면, “흑인과 백인 여성” 혹은 “흑인 남성과 모든 여성들”이라는 말을 썼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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