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두 번째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킴벌리 크렌쇼
번역: 마리온&단감/ 페미니즘 번역모임
I. 반차별의 프레임
A. 교차성의 경험과 교조적 반응
교차성의 문제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은 법원이 흑인 여성 원고의 이야기를 어떻게 프레임화하고 해석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다음에서 논의할 사건들의 기저가 되는 상황들을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흑인 여성의 주장을 법원이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흑인 여성의 경험의 일부이기 때문에, 원고가 흑인 여성인 사건들을 대강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차성을 사법적으로 고려할 때 내재하는 난점을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민권법 7조와 관련된 세 가지 사건―데그라펜레이드 대 제너럴모터스, 무어 대 휴즈 헬리콥터, 그리고 페인 대 트래브놀 사건―을 살펴볼 것이다.
1. 데그라펜레이드(DeGraffenreid) 대 제너럴모터스 사건
데그라펜레이드 사건에서 다섯 명의 흑인 여성들은 제너럴모터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용자의 연공서열 체계가 흑인 여성에 대한 과거의 차별 효과를 영속화한다는 주장이었다. 재판에서 제시된 증거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는 1964년 이전까지 흑인 여성들을 아예 고용하지 않았으며, 1970년 이후 고용된 흑인 여성들은 이후 불황기에 실시된 연공서열 기반 해고 정책에 의해 일자리를 잃었다. 지방법원은 흑인이나 여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려는 원고 측 입장을 기각하면서 피고 측에 유리한 약식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원고는 흑인 여성이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특별한 계급이라는 점을 진술하고 있는 판례를 전혀 인용하지 못했다. 법원의 조사도 그런 판결을 찾아내지 못했다. 원고가 만약 차별을 당했다면 분명히 구제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적법한 법령의 입안자들이 의도했던 바를 넘어 그들에게까지 보조금을 제공해 줄 새로운 ‘강력구제책’을 만들어 낼 목적으로 법에 명시된 구제책들을 결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소송은 그것의 원인이 인종차별인지 아니면 성차별인지에 대한 진술을 검토해야하며, 양자가 모두 원인이라 해서는 안 된다.
제너럴모터스가 1964년 이전까지는 흑인 여성들을 고용에서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제너럴모터스가 “1964년 민권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수년간 여성 노동자들을 고용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그 기간 동안 여성, 즉 백인 여성을 고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흑인 여성은 고용된 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관점에서는 연공서열 체계에 의해 영속화될 수 있는 성차별 자체가 없었다.
법원은 원고의 성차별 주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기각한 후, 인종차별 주장도 기각하면서 제너럴모터스를 상대로 한 다른 인종차별 사건과 병합할 것을 추천했다. 이런 병합 요구에 대해 원고 측은 자신들의 주장은 인종차별만을 문제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송 목적에 위배된다고 답했다. 그들의 목적은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이랬다.
민권법 7조를 둘러싼 입법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 법령의 목적이 (예를 들면 흑인 남성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흑인 여성’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순열조합이라는 수학적 원칙에 따라 보호받는 소수자 안에서 다시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진다면, 진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법원은 의회가 흑인 여성이 ‘흑인 여성’으로서 차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나 그러한 차별이 일어났을 때 그들을 보호할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복합적으로 겪는다는 사실을 알린 법원의 데그라펜레이드 소송 기각 판결은 성차별 및 인종차별 정책의 범위가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경험 각각에 기반하여 결정된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런 관점에서, 흑인 여성은 그저 두 그룹과 일치하는 범위의 경험만 보호받을 뿐이다. 이와 다르게 흑인 여성만이 겪는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가려져있던 교차성이라는 문제가 핵심이었던 데그라펜레이드 사건에서 그랬듯 보호를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2. 무어 대 휴즈 헬리콥터 주식회사 사건
무어 대 휴즈 헬리콥터 사 사건은 법원이 흑인 여성의 주장을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무어는 법원이 인종차별 및 성차별 문제에서 흑인 여성을 계급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은 여러 사건 중 전형적 사례이다. 무어 사건에서 원고는 고용주인 휴즈 헬리콥터가 노동자가 상급 숙련공 직책 및 감독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승진하는 데 있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가했다고 진술했다. 무어는 감독 업무를 맡을 때 남녀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있지만, 흑인 남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서는 격차가 다소 감소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통계적 증거를 제시했다.
성차별 고소에서 휴즈 사의 모든 여성을 대신하여 무어를 계급적 대표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대한 지방법원의 기각을 확정하면서 제9구역 법원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전략) 무어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차별받고 있다고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에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오직 흑인 여성으로서의 차별만 주장했다. (중략) 이는 무어가 백인 여성 노동자를 적절히 대표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무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논리는, 반차별 정책의 범위가 협소하고 교차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성차별을 개념화할 때 백인 여성의 경험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의아하다. 무어의 항의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 주장이 온전히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에서 우리는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성에 대한 차별보다 다소 덜 중요하다는 전제를 추론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법원은 무어가 모든 여성이 아니라 오직 흑인 여성만 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암시하려 했다. 설령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법원의 근본적 근거는 흑인 여성에게 문제적이다. 분명 법원은 자신의 인종을 분명히 밝히려는 그녀의 시도가 고용주가 그저 ‘여성’을 차별했을 뿐이라는 표준적 혐의와 불화하는 듯하다는 이유로, 모든 여성을 대표하려는 무어의 시도를 기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