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일곱 번째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킴벌리 크렌쇼
번역: 단호&느루/페미니즘 번역모임
검토: 단감&마리온/페미니즘 번역모임
백인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협소하게 구축된 일부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예시로는 공사 이분법 문학이 있다. 공사 구분 이데올로기가 가정과 공적 생활에서 어떻게 여성의 역할을 형성하고 제한하는지 비판하는 작업은 페미니즘 법률 사상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여성에게 이질적으로 부과되는 사회적 역할을 전통적으로 정당화해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내고 비판함으로서 공사 구분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해체하려했다. 하지만 여성의 종속에 대한 정당화를 폭로하려는 이 시도가 흑인 여성에 대한 지배에 대해서는 별다른 통찰을 제공하지 못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기대고 있는 현실적 기초는 백인의 삶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도출된 이론적 진술은 좋게 봐도 과장된 것이었고, 아예 잘못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학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여성이 의존적이고 제한적 능력을 가졌으며 수동적이라고 배웠다”는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관찰’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의 교차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변칙을 간과하고 있다. 흑인 남성들과 여성들은 생물학적 성을 기반으로 한 규범과 기대를 생산하는 동시에, 인종차별로 인해 이런 규범과 기대가 부정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흑인 남성들은 강하다고 여겨지지 않고, 흑인 여성도 수동적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흑인 사회에서 젠더 지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로 교차하는 힘들이 젠더규범을 만드는 방식과 이때 흑인을 억압하는 조건들이 젠더규범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흑인 여성들이 여성 가장이라는 병리적 스테레오타입에 붙잡혀 있는 이유나, 흑인해방운동 내에서 의도적으로 가부장적 제도와 전통을 만들려는 시도가 꾸준히 존재하는 이유를 집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설명적인 정의는 대개 백인 여성의 경험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및 페미니스트 문학을 접한 사람들은 가족 및 여타 흑인 제도에서 흑인 여성의 역할이 백인 공동체 기준의 친숙한 가부장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흑인 여성은 가부장제 규범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면제된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은 전통적으로 백인 여성에 비해 집 밖에서 일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백인 여성이 직장에서 배제돼 온 역사를 중심으로 가부장제를 분석하면, 흑인 여성에겐 젠더에 따른 사회적 기대가 제약이 되지 않았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흑인 여성의 바로 그 상황이 여성은 일해선 안 된다는 규범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개인적, 정서적, 관계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흑인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 아닌 부분을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그 상황이 때때로 흑인 사회 안에서 흑인 여성이 젠더규범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나, 인종 차별이 흑인 사회에 끼친 또 하나의 재앙이라고 해석되면서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짊어졌다. 이것은 백인 경험에 뿌리를 둔 가부장제 분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교차성의 여러 측면 중 하나이다.
백인의 맥락에서 형성된 이론이 흑인 여성들의 삶이 가진 다차원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사례는 강간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페미니즘 의제에서 핵심적인 정치적 이슈는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강간 문제였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지적·정치적 노력의 일환으로 발달한 것은 규범적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정하고 여성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법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비판이었다. 이런 담론에 따르면 초기의 간음 및 강간 관련 법률의 목표는 여성을 강압적 성행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순결을 마치 재산처럼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있었다. 이런 목적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올바른 측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강간법을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반영하는 것으로만 분석하는 것은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부적절한 설명이다.
강간법이 일반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가 아니라,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백인 남성의 규제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의 순결을 규제하고자 하는 제도적 노력은 없었다. 몇몇 주(州)법원에서는 배심원단에게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과 달리 순결하지 않다고 알려주는 경우까지 있었다. 또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제는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법의 보호 밖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했지만, 가해자가 흑인 남성일 경우 인종주의는 손상된 백인 여성의 순결을 복원시킬 수 있었다. 흑인 여성에겐 이렇게 순결을 복원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강간을 오직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 권력의 증거로만 해석하면, 강간을 인종적 테러의 무기로 사용하는 측면이 은폐된다.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강간당한 사건은 피해자가 보편적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특정하게 흑인 여성으로서 강간당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 즉 인종주의적 지배 하에서 흑인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처하는 동시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백인 남성의 권력은 흑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백인 남성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어려운 사법체계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종합하자면, 순결에 대한 성차별적 기대와 성생활이 난잡할 것이라는 인종차별적 가정이 결합해 흑인 여성을 둘러싼 별개의 이슈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이슈들은 페미니스트 문학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못했고 반인종주의 정치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던 제도적 관행인 흑인 남성에 대한 린치는 예나 지금이나 섹슈얼리티와 폭력에 대한 흑인 운동의 의제이다. 결과적으로 흑인 여성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소송 시도들을 당연히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흑인 집단과, 백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만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의심을 부채질하는 페미니스트 집단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이 의심은 백인 여성 섹슈얼리티의 보호가 흑인 공동체를 위협하는 구실로 작동하곤 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의해 더욱 증폭된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강간반대 의제가 인종차별 철폐의 목표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 이것이 인종과 젠더의 교차점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정치적,이론적 딜레마이다. 흑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들춰냈다가는 감춰버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흐름들 사이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