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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정치적 인간의 귀환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의 형성

 



고준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세미나 회원





몇 달 만에, 아니 거의 꼬박 1년 만에 나의 학생운동원고를 붙잡습니다. 확인해보니 가장 최근에 연재된 글인 막막함들2018426일에 게재되었더군요. 그 사이에 저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법학적성시험)을 치르느라, 또 새로 대학생은 처음이라라는 책을 쓰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또 막상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나니 법학전문대학원 학업에 적응하기만도 벅차서 더욱 글을 따로 쓴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중간고사라는 폭풍이 휩쓸고 들어오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써내야 된다는 생각에 지금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당초 나의 학생운동6편의 본편과 1편의 프롤로그, 1편의 에필로그로 구성될 예정이었습니다. 8개의 글이 나의 학생운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발행이 될 예정이었던 셈입니다. 그 중에서 실제로 계획대로 연재된 것은 프롤로그 1, 본편 3편이었습니다. 그 외에 외전으로 1편이 연재되어 총 5편이 연재된 셈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이번 편을 포함해 총 3편의 원고가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다룰 글은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의 목적과 의의에 대한 것이고, 다른 2편의 원고는 국가와 복수에 대한 내용(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임대차상인 투쟁)이며, 마지막 1편은 에필로그입니다. 이렇게 두고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1년 만에 다시 글을 써내는 만큼 이번에는 짧은 호흡 안에 모든 글들을 써낼 생각입니다. 필요하다면 외전을 몇 편 더 연재할 수도 있겠지요.


다시 연재를 재개하면서 문체에서 한 가지 변화를 주고자 했습니다. 문어체 대신에 하십시오체를 바탕으로 한 구어체를 채택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어체 특유의 독백하는 느낌 대신에 구어체의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의 학생운동의 목표가 결국에는 학생운동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우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가급적이면 흥미진진하면서도 편안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 과거에 박제된 이야기, 글쓴이가 경험하고 의미부여한 맥락에 견고하게 붙들려 있어 내 것으로 전유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글쓰기의 편의를 고려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렇듯 제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주장을 전개해야 할 때에는 이야기를 하듯 글을 써내려가는 편이 훨씬 쉽게 느껴지더군요.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사실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소인위’)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소비자 혹은 표백된 주체편에서 짤막하게 다룬 바 있습니다.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반정치적인 주체화의 맥락 속에서 정치적인 것들을 작동하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성격이 있었다는 내용의 언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연재를 결심하면서 소인위에 대한 내용을 넘겨버리고 곧장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와 고민이 심화되고 있는, 즉 최근의 고민거리인) 국가와 복수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지 않고 소인위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소인위 활동에 대해 저 스스로 반성적 숙고를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활동내용을 결산하는 느낌으로 대학생은 처음이라를 썼습니다. 그런데 분량의 문제로 책 안에 소인위에 대한 평가나 회고를 충분히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자료와 기억에 의존해 비교적 더 선명하게 소인위 활동의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을 때 나의 학생운동지면에서 소인위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로 대학생은 처음이라북콘서트에서 한 학우 분께서 제게 소인위에 대해서 질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소인위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지금도 잘 활동하고 있느냐고 말이죠. 질의응답 시간의 한계로 인해 길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소인위 활동에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제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소인위를 소개하는 내용의 글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소인위 구성원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회고적 기록이 하나쯤 있어서 나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초 이 조직이 왜 구성되었고 스스로의 목적과 기능을 어떻게 형성해나갔는지를 안다면 후에 이를 비판적으로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소인위 창립의 역사는 2016년 여름 여러 단체들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2015년 겨울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고려대학교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 회장단의 공약 중에는 인권운동의 허브로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의 설치가 있었습니다. 학소위 설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당시 동연 부회장은 학내 여러 인권 관련 활동가들과 단위들에게 학소위 설립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준비모임 결성회의가 열리게 되는데요. 여기에 모였던 단위 중 이후 소인위로 활동이 이어지는 대표적인 활동가들이 고려대학교 성소수자모임 사람과사람, 고려대학교 철학과 K교수 혐오표현 대책위 등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사람과사람의 경우 20154월 퀴어영화제를 준비하던 중에 학교 측에서 근거 없이 대관을 거부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활동을 했었고, 대책위의 경우에도 철학과에서 수업을 진행하던 시간강사 K교수가 강의 도중에 내뱉은 혐오표현에 대해 가해자 책임과 재발방지를 목표로 조직된 단위였습니다. , 이들 단위 모두 2015년도 인권침해 사건에 대응한 경험이 있었고 또한 학교에 대응하여 학생 단위들의 연대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높았던 것입니다.


당시 학소위 준비모임의 문제의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학내 인권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늘 인권침해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학내 인권운동단체들은 각자 임시조직을 꾸렸지만 임시조직은 말 그대로 임시방편에 불과해서 초기에 적절한 해결책에 도달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별다른 성과 없이 해체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대책위가 해체되어버리면 대책위의 활동에 대한 평가나 고민지점들은 제대로 남지 않고 공중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인권침해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건대책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역량만을 믿고 0(제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쌓아올려야 하는 상황이 매번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인권침해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임시조직보다 체계화된 조직적 역량이 필요했습니다. 전문적이지는 못해도 장기적으로는 노하우나 반성지점들이 누적되는, 그래서 길게 보면 휘발되지 않는 인권운동의 역량이 집중되는 허브(hub)가 필요했습니다. 더불어 그런 허브가 있어야 각각의 인권운동단체들도 단발성 사건들에 휘둘리면서 역량을 낭비하거나 무력감에 위축되지 않고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둘째로 인권침해문제의 다층적·복합적 측면에 대응하기 위해서 여러 인권운동단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존재양식이 단 하나가 아닌 것처럼, 인간의 권리를 위협하는 요소 역시 복수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보통 혐오발언이나 인권침해사건에는 이런 복수의 요소들이 착종되어 있죠. 예컨대 선후배 간의 성희롱 문제는 젠더불평등이라는 맥락과 더불어 선후배간의 위계라는 맥락이 함께 개입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어느 하나로 환원시켜서 단순화시키기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폭력과 인권침해를 만들어내는 구조 전반을 바꿀 것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이른바 교차성(intersectionality) 내지 과잉결정(overdetermination)의 문제를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이 인권운동단체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권감수성 내지 인권적·사회학적 상상력은 단순히 학습으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입장과 관점을 가진 우리 학내 인권운동단체들이 실천의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만나고 토론하는 과정이 있어야 이러한 인권감수성이 정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죠.


이와 같은 큰 두 가지 문제의식을 골자로 학소위 설치에 공감하는 단위들이 모여 학소위 준비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흐름에서 저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느냐, 저는 동아리연합회로부터 제안을 받아 학소위 준비모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려대학교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이하 수레바퀴’)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2015년 수레바퀴는 주력사업 중 하나로 학내 페미니즘 학회 연합회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페미니즘의 대중화이후로 많은 페미니즘 학회들이 학내에서 결성되었고 이들의 역량이 모이면 보다 다양한 페미니즘적 실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죠. 수레바퀴 역시 페미니즘을 배우는 학회로서 그런 학회 연대체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획은 당시 여러 사정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페미니즘 학회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고 의견을 조율할만한 역량이 없기도 했고 민중총궐기에 결합하는 것이 보다 당면한 실천과제로 떠오르면서 관심이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탓이기도 합니다. 1년이 지나고 2016년이 되어 미처 진행하지 못한 사업을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저는 동아리연합회로부터 학소위 준비모임에 참여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동아리연합회의 인문·과학분과장[각주:1]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동아리연합회 공약 실천에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죠. 원래도 페미니즘 학회 연합체처럼 특정분야의 학내 운동단체들이 모여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만큼, 학소위 준비모임에 참여해보자는 제안은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학소위 준비모임의 주요 참여단위들이 모두 결정되었고 논의를 통해 많은 것들이 정해졌습니다. 먼저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서울대와 동일하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던 것이 내부의 논의를 통해 바뀌게 되었죠. ‘고려대학교라는 표지에서 이미 학생조직이라는 부분이 드러나므로 우리의 활동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소수자인권이라는 표현을 부각하자는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렇게 학소위는 소수자인권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당연히 준비모임도 소인위()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조직의 형태가 결정되었습니다. 학내 인권운동단체들의 대표 1인씩(소인위 위원장 포함)을 소인위 활동의 큰 방향과 사업을 인준하고 함께 논의하는 운영위원회 위원들로 위촉했고, 운영위원회의 결정사항을 받아 구체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집행위원회를 따로 꾸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는 인권단체들의 연대를 꾀하면서도 동시에 각 단체들의 역량을 흡수해버려 독립성을 해치지 않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할 수 있는 길을 꾀한 결과였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소인위의 창립을 함께 한 인권단위들이 고려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 고려대학교 성소수자모임 사람과사람,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이주노동자 한글교실 레인보우스쿨(후에 이주민인권연합동아리 위드MI’로 개편),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인권연대국이었습니다. 또 그 외에도 회칙()과 인권침해사건 가이드라인 구성,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에 돌릴 인권 질문지 작성, 새내기새로배움터 인권교육사업 등의 정기사업들도 이때 처음으로 결정되었고요.


소인위()준비모임이라는 글자를 떼게 된 것은 1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2017년에 들어서였습니다. 그동안은 정식으로 인가된 학생회조직이 아니라 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산하의 특별위원회[각주:2]로 존재했다면 이제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인준을 거쳐 상설기구인 특별기구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죠. 당시 저는 학생대표자들에게 소인위의 필요성을 호소했던 글을 작성하면서 인권담론의 공고화, 인권담론의 확장, 인권 관련 전문역량의 확보라는 세 가지 측면을 들어 소인위의 존재의의를 밝혔습니다. 당시는 페미니즘 담론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만큼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시기였기도 했기 때문에 많은 학생대표자들이 전문 인권기구의 창설에 공감했습니다. 이에 소인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특별기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가 정식으로 성립하게 되었죠.


2017년은 소인위 창립의 조그만 결실들을 거둬드리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느슨하게 묶여있던 운영위원회 참가 단위들이 함께 총학생회 인권주간 사업에 참여하면서 공통사업을 논의하고 꾸려보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고, 2016년 정기사업으로 결정했던 사업들을 무사히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1년마다 치르는 대표자 선거를 기점으로 모든 구성원들이 물갈이 되는 학생회 구조에서 1년을 버텨내는 것은 새삼 의미를 둘 만큼 뜻깊은 것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집행위원들을 받아 활동가를 확대재생산하는 데에도 성공했죠. 여러모로 신생학생자치기구가 거둘 수 있는 성과로서는 최선을 거둔 셈이었습니다.

 


소수자인권위원회, 질문을 던지고 답하다


저는 20178월까지의 활동을 거치고 소인위를 은퇴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소인위의 활동에 대해서 감히 평가내리기에는 곤란한 입장에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지평을 소인위의 결성과 초창기 활동에 한정한다면 여러 가지 논의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희망적이든 다소간 비관적이든 말입니다.


첫째로 동네축구를 넘어선 인권운동의 자생적 탄생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2018년 초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는 정정훈 선생님의 진보적 인권운동사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흥미롭게 들었던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류은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던 동네축구론이었습니다. 동네축구는 먼저 운동의 아마추어리즘을 표상합니다. 축구를 프로답게 한다는 것은 자기 활동의 조건(경기 규칙, 목표, 득점상황, 선수들의 배치, 감독의 지시 등)을 이해하면서 자기의 전문적 역량에 맞는 분업과 유기적 공동행동을 전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동네축구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분업과 공동행동이 잘 이뤄지지 않으니 신뢰가 없고, 신뢰가 없으니 개별 단체가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할 부담을 짊어집니다. 결국 팀 사이의 경합보다 팀 내 경합이 치열해지다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죠.


이것은 우리가 당초 소인위를 만들게 된 문제의식 중 하나였던 단발성 대책위들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마땅히 연대할 단위가 없고 협력과 공조가 안 되니 매번 대책위가 생길 때마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부터 사건해결에 필요한 전문성 전체를 쌓아올려야 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를 부여받았습니다. 개별 인권운동단체로 나뉘어 있는 조건 역시 한몫 했습니다. 상시적으로 공통된 사업을 논의하거나 정치적 의견 교환을 할 매개가 없으니 학내 인권운동단체들은 각자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때로는 이익을 두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제한된 학생회비, 좋은 사업 아이디어, 때로는 다른 조직의 역량을 자신의 활동에 귀속시키려는 다툼들이었죠. 소인위 활동을 진행하는 중에도 이런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운영위원회 단위들 사이에서 사업을 제안했음에도 왜 미온한 반응을 보이느냐, 사업에 꼭 참여해야만 하느냐라는 불만들이 나올 때마다 그 문제를 단순한 관계단절이 아닌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이 난제로 주어졌습니다.


또한 동네축구는 수세적이고 대응적인 운동을 상징합니다. 분업이 없다는 것은 정해진 포지션에서 공을 효율적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동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축구공이 떨어지면 모두가 공을 한 번이라도 차보기 위해서 우르르 몰려다니게 됩니다. 우리의 운동도 공통된 전망이나 비전을 산출하지 못하면서, 적극적(positive)으로 뭔가를 구성하거나 하도록 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에만 몰려 소극적(negative)으로 뭔가를 해체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집중되기 십상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개별 운동단체의 이기심이나 잘못된 태도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인권보호에 취약하고, 사회운동단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빈약한 한국의 현실에서 인권침해 문제는 늘 개별 운동단체의 힘만으로 대응하기에 벅찬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공이 튀어 다니는 대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만 함께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몰리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동네축구를 지배하는 것은 공을 가진 아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을 가진 아이가 축구를 하고 싶으면 축구를 하는 것이고, 공을 가진 아이가 어떤 이유로 토라지거나 시간이 다 돼서 집에 가게 될 때에는 축구도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또 공을 가진 아이가 축구를 지배하기 때문에 공을 가진 아이에 감정이입을 해서 다른 아이들을 비난하는 아이들도 생기게 되죠. “내가 축구를 못하게 되면 이건 다 공을 가진 친구를 마음 상하게 한 너 때문이야!”라는 비난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문제를 만드는 역량도, 문제를 해결할 역량도, 심지어 그 문제를 이해하고 대중들의 언어[각주:3]도 모두 국가기관에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운동은 그래서 언제나 법과 국가기관의 문제로 끝맺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측면들은 대학 내 인권운동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를 만드는 권위·힘도 대학이 갖고 있고(ex. 교수의 성추행, 인권침해대응기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거나 가해자 처벌·피해자 보호에 소극적인 부작위 등), 문제를 해결할 권위··언어도 대학이 갖고 있는 것(ex. 인권센터를 지원할 금전·인력, 교수를 통제할 학칙 등)이죠.


결국 소인위는 이런 조건 하에서 어떻게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운동을 할 것인가를 묻고 스스로 답하는 조직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학교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안이 굴러가는 데로, 후발적으로 쫓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문제 발생 자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문화, 관습을 만드는 것이 필요함을 소인위는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학내 인권운동단체들의 연대로, 각종 교육·강의사업으로 표현된 것이죠. 특히 운영위원회나 총학생회와 함께 진행한 반성폭력연대회의체를 통해 각 단체들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조율하는 경험을 쌓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반정치적 구호가 지배적이 된 학생공간에서 공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논하고 해결하는 정치가 작동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권리(인권)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적대(구조적 불평등)를 드러내고 공동의 실천들을 모아내기. 소인위는 구체적으로는 인권운동의 발전을 위한 대범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보다 추상적으로는 학내에서 멸종되어 가는 정치적 인간의 귀환을 위한 프로젝트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나, 정치적 인간의 귀환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를 진지하게 되물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대표자들로부터 많은 찬성표를 받고 특별기구가 된 소인위이지만, 이것이 정말로 학생대표자들에게 어떤 진지한 고민을 촉발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소인위의 존재 자체가 각 학생공동체들의 문제를 외주화하고 고민하지 않게 하는 방편을 제기한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인권은 그 자체로 문제적인 개념으로서 사람들을 고민하게 하는 주제였다기보다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그저 그런 말정도에 불과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급속도로 해체되어 가는 학생사회와 인권 백래시가 점점 불거지는 현실을 보면 소인위의 실천이 갖는 유효성을 낙관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럴 때일수록 소인위가 소인위인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권이라는 단어 앞에 소수자란 단어가 올 때 인권은 더 이상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말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정상인’, ‘일반인’, ‘평범하고 평균적인 시민으로 내세우는 다수자의 논리에 맞서 소수자 역시 인간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각종 혐오발언, 인권침해에 맞서 적극적이고 선명한 입장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그 선명함이란 단순히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 혹은 감정에 숨겨져 있는 보편의 코드를 끌어냄으로써 불평등을 옹호하고 은폐하려는 주장을 위축시키는 것이죠. 때론 우리가 건조한 논쟁만이 아니라 예술적 실천, 사회학적 상상력 등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갈 필요가 있는 이유도 이런 까닭입니다. 옳은 것은 사람을 움직이지만 옳으면서 또한 좋은 것은 대중들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명함은 내부의 깊은 숙고와 토론을 요구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라는 질문을 보다 자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책임으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개인은 도덕적·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징계나 처분을 받아야겠죠. 하지만 우리의 판단은 너무나 쉽게 거기서 중단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왜 상대방을 존엄한 인간으로서 보지 못하는 맹점이 발생하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은 왜 도덕적 비난의 가능성을 간과했을까요? 아마 어떤 사회적 문화나 구조가 그로 하여금 상대의 존엄성을 보지 못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물론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말이 개인의 책임을 지우거나 구원하거나 속죄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질문을 더 끝까지 밀어붙일 것을 요구하는 말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물론이고, 나아가 그 상대방의 행위를 재생산하고 부추기는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늘 하나의 사건 뒤에는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와 피해자에 대한 치유, 그리고 가해-피해의 위치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한 적극적 변화의 제안이 뒤따라야 합니다. ,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철저하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행위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던져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고민은 저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입니다. 20176월 소인위에는 (그것도 준비모임 시기부터 활동하던) 대외협력국장이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사자와 피해자 대리인 모두로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결과적으로 대외협력국장이 성추행 발언을 한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따라 소인위에서는 대외협력국장의 지위를 해제하고 소인위 위원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건 피해자에 연대하여 사건해결을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권침해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이 정작 인권침해를 했다는 것은 무엇보다 신뢰의 붕괴를 불러옵니다. 이는 비단 소인위를 믿고 소인위에게 사건상담을 의뢰하는 학우들의 신뢰만이 아니라 내부 활동가들의 상호 신뢰를 붕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단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었고 지위 해제와 나아가 자격 박탈이라는 징계로 귀결된 것이죠.


그러나 그것으로 족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인위에서 활동하겠다고 할 정도로, 나름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조차 인권침해에 무딜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어떻게 직시하고 단체 차원에서 극복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소인위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이 당면과제로 떠올랐습니다.[각주:4] 하지만 제가 소인위 활동을 은퇴할 때까지 그 작업은 수월하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인권자료집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소인위 위원들에게 필요한 고민거리들을 담기엔 아직 턱없이 분량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게으른 탓에 충분한 공력을 들이지 못한 까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불찰이자 동료 활동가들의 몫으로 남아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의 선명한 입장을 토론을 통해 구체화해나가고, 향후 발생할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확실한 위원 교육 커리큘럼 말입니다.

 

마지막은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소인위는 조직의 대체불가능한 핵심요소로서 ‘(물리적) 공간의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소인위 활동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물리적 공간의 부재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 예컨대 활동한 내용들, 사람들이 모이고 쌓이려면 물리적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의 학생자치공간은 이미 포화상태였고 소인위는 이렇다 할 공간도 얻지 못한 채 이런저런 임대공간을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고려대학교 창업지원공간인 파이빌에 6개월짜리 사무실을 얻어야 할 정도였을까요. 총학생회에도 여러 번 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유력한 대안이던 홍보관 건물 내 공간은 홍보관 자체를 철거해버리면서 사라져 버렸죠. 결국 소인위는 애써 발간한 인권자료집의 보관공간도 확정하기 힘들었습니다.


자치공간의 중요성은 바로 이 점입니다. 공간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을 매개하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행위가 일시적인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성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공간은 우회할 수 없는 문제가 됩니다. 공간이 없을 때 우리는 정보를 누적하기도 어렵고, 소속감을 갖기도 힘듭니다. 정보야 클라우드가 있고 소속감은 친목모임을 자주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보라는 것은 인터넷 매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형태로도, 출판되거나 메모되어 있는 형태로도, 공간의 배치로도 암묵지(tacit knowledge)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정보들은 인터넷상에 문자언어로 정리된 형태로 업로드된 것보다 풍부한 자료들을 내포하고 있죠. 그리고 이런 것들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조직을 발전하게 하는 기반이 됩니다. 더욱이 소속감의 측면에서도 생활공간이 겹치지 않는 사람들끼리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많은 측면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 이뤄집니다. 우리가 종종 친한 고등학교 동창을 찾게 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한 반을 공유하는 생활공동체 속에서 서로에 대해 애착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발전적인 조직이 가능하려면 서로에 대한 애착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정보와 소속감이 누적된 공간은 때론 그 공간자체만으로 조직을 지속하게 하는 관성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에 든 정 때문에, 공간이 상기시키는 어떤 삶의 모습과 추억 때문에 우리가 활동에 헌신하게 되는 동력을 얻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뒤늦게 신생 단체로 시작한 소인위는 여전히 디아스포라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간을 얻어내는 투쟁 역시 우리가 정치적 인간의 복귀를 위해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단순히 소인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정치적 인간으로, 스스로의 자유를 주장할 줄 아는 한 사람의 존엄한 주체로 거듭나는 것을 교육으로 보지 않는 대학교에 맞서서 대학의 교육을 바로잡는 일이자, 그런 의미에서 인권-교육-정치가 교차하는 대학 내의 한 쟁점일 수도 있습니다.

 


나가며


소인위는 수레바퀴와 함께 제 학생운동, 아니 제 학부생 시절을 설명하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였습니다. 비록 제 부족함으로 인한 많은 후회들이 있었지만 이들 단위가 여전히 학내에 남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제게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특정 젠더, 특정 민족, 특정 국적, 특정 인종에게만 인간다움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이 점점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오늘날, 소인위를 비롯한 학내 인권운동단체들이야말로 대학 내 지성의 등불로 어둠을 밝히고 있는 거점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불을 꺼트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 공간에서 흔들림 없이 선명한 불꽃으로 타오를 것을 약속할 테니까요.




  1. 동아리연합회는 동아리들을 그 성격에 맞게 짝지어 그 내부에서의 사업을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하는 자치조직을 하부조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를 분과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란 고려대학교 단과대학 학생대표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는 의결기구를 말합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다음으로 높은 의결기구로서 주로 단과대를 넘어선 전체 고려대학교 차원의 학생회 이슈를 다룹니다. 중운위 산하의 특별위원회는 중운위의 안건심사를 돕기 위한 임시단체로 매년 단과대 학생대표자들의 의결로 활동기간을 1년씩 갱신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해산되는 임시기구입니다. [본문으로]
  3. 예컨대 “너희가 고통 받는 것은 그렇게 불법집회나 일삼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력해서 좋은 학벌, 정규직 직장을 얻지 못했으니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등의 사고관은 법, 능력주의(내지는 수월성 교육 중심의 교육체계) 등에서 비롯하는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죠. [본문으로]
  4. 저는 인터넷 공간의 지리멸렬한 논쟁들 속에서 인간의 성장과 변화라는 고귀한 일들이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런 고귀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상호신뢰가 있는 조그만 집단에서의 오랜 기간에 걸친 토론뿐이죠. 그 토론의 방향과 내용들을 누적시킬 수 있는 기반이 곧 커리큘럼인 것이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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