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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가 아닌 혁명에 대하여


 

고준우 / 학생활동가


지난 이야기들이 내가 학생운동에 들어서게 된 계기에 대해서, 사회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틀을 갖춰나가는 과정을 다뤘다면 오늘은 그 학생운동을 직접 실천해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경험담이자 반성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과 조직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가 대면하고 있는 (혹은 대면해야 할) 균열과 모순들의 증언이 될 것이다.

 

고려대학교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고려대학교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는 내 활동의 중심이었다. 이론을 공부하고 사회에 적용하고 실천을 모색하는 일 모두가 수레바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20141학년 당시에는 수레바퀴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세계체계분석을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대활동 역시 수레바퀴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각종 집회에 참여할 때는 물론이고 사회의 빈곤문제들(예컨대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장애인 등)에 연대하는 반빈곤연대활동(소위 빈활’)에 참여할 때에도 나는 대부분 수레바퀴의 이름으로 참여했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들에 관심을 갖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직접 바꾸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접하게 된 것이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는 수레바퀴의 회장으로 일하면서 이런저런 정치적 실천들에 매진했다. 연인(硏人)[각주:1]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고자 여러 책들을 들춰보기도 했었고, 학내에서 정치적인 이슈와 관련된 캠페인이나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연말에는 학내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민중총궐기에 연대해보고자 시도하기도 했었다. 나는 마치 조그마한 학과의 학생회처럼 수레바퀴를 여겼고 그만큼의 사업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과 함께 다소 무리해서 일들을 벌려나갔다. 일주일에 4-5번씩 기획회의와 평가회의를 진행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만족감이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2016년에는 수레바퀴의 회장직을 다른 연인에게 물려주었지만 수레바퀴의 세미나에는 꾸준히 참가했다. 다른 연인들의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레바퀴 활동은 2016년 말부터 침체기에 빠지고 말았다. 함께 집행부를 꾸려나가던 연인들이 수레바퀴를 이탈하고 떠나갔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인간관계의 문제와 각종 불미스러운 인권침해 사건이었다. 먼저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두고 연인들을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분위기가 수레바퀴 안에 형성되면서 갈등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학구적인 연인들은 어쩌면 마르크스에 대한 컬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내부 문화를 주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것이 연인들 사이의 위화감을 증대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선배의 지적 권위라는 이름 아래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고 또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인해 이러한 갈등이 공론화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연인들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깔보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위화감을 조성하는 내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연인들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충분한 신뢰를 쌓지 못했던 나는 이러한 갈등을 연인들이 속으로 삭히며 감정노동을 해왔다는 것을 너무나 뒤늦게 알아버렸다.

결국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일부 연인의 인권침해 사건 연루가 방아쇠가 되어 급격한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게 되었다. 몇몇 남성 연인들이 성 인권침해 사건에 연루되어 제명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들 연인들이 평소에도 다른 연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는 사실들이 뒤늦게 폭로되었다. 평소에 수레바퀴 안에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다 쉽게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연인들 사이의 갈등·폭력적인 언행과 그로 인한 상처들이 뒤늦게 폭로되는 일은 없었으리라. 인권침해에 연루된 연인들을 제명할 당시에 수레바퀴는 이미 너무 많은 연인들에게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은 곳’,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만 아끼고 대우해주는 곳(혹은 그런 사람들),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내용들 하나하나가 내부 집단의 독특한 기호가 되어 위화감을 만드는 곳(혹은 그런 사람들), 그리고 이런 갈등들을 품고 있는 연인들이 지적 권위라는 이름 아래 숨죽여야 했고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감정노동을 감수해야만 했던 곳(혹은 그런 사람들). 이것이 냉혹하지만 수레바퀴가 지나온 궤적이었다. 궤적의 끝에서 수레바퀴를 지탱하고 있던 연인들은 이미 마음속에 상처만을 안은 채 서로를 등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보수적인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 진보적인 의제들을 갖고 공부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큰 부담과 더 많은 헌신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런 고달픔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은 그 실천들이 모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꿔나간다는 확신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연대 속에 만들어지는 공동체 의식이다. 그러나 수레바퀴는 평등한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데 실패했고 그 실패를 잘못된 권위의식을 빌어 은폐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인간관계에 서툴다는 이유로, 나에게 직접 하대하거나 폭력을 가해오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이유로 다른 연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나는 수레바퀴에 헌신했지만 동시에 수레바퀴의 방조자였다. 내가 원하는 수레바퀴의 어떤 한 측면에만 헌신했을 뿐, 진정으로 그것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말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더라도 진정으로는) 외면하고 있었다.

이것이 결국 수레바퀴가 침체된 원인이었다. 나의 유아(唯我)적인 태도, 수레바퀴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사랑과 헌신이 사람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파열에 다다르자 나 역시 지쳤고 힘이 들었고 많이 슬펐다.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일주일에 회의를 4-5번씩 하던 시절에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그때서야 비로소 온 몸에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지금껏 대면해왔던 것은 단 한 번도 진정으로 타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자 허무함이 몰아닥쳤다.

 

혁명은 기관차가 아니다

 

사슈, 이제 우리가 뭔가 조직해야 할 때가 아닌가?”

뭘 조직해야 하죠?” 드바노프가 물었다.

뭐라니? 그러면 우리가 이곳으로 온 이유가 뭔가? 구체적인 전체 공산주의를 조직해야지.”

드바노프는 서두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곳에는 말입니다. 표도르 표도로비치, 기계가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들 스스로가 대오를 정비하기 전에는 그들을 조직할 수 없습니다. 나도 이전에는 혁명이 기관차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그건 아닙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체벤구르중에서

 

허무감 속에서 나는 깊이 되물어야 했다. 한때 정말 사랑했고 아꼈던 단위가 어떻게 위기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나의 잘못은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했던 나의 태도, 혹은 수레바퀴의 분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게 단순히 개인들의 성격 차이로, 취향 차이로 모두 환원되어 설명될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이론서가 아니라 문학에서 찾고 싶었다. 이전까지 이론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 바라보고 분석하려던 내 안의 편향을 내려놓고 조금 더 진지하게 느껴야진짜 문제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체벤구르를 읽게 된 건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우연이었다. 서평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교양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를 읽으면서 괜찮은 문학작품이 없을까 찾던 중에 우연히 눈에 띈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플라토노프의 명성답게 소설 체벤구르의 내용은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등장인물인 사슈(사샤 드바노프)와 코푠킨이 지상 위에 구현된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인 체벤구르를 찾아간다는 줄거리가 무척이나 흥미로워서 끝내 다 읽고야 말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위의 구절이었다.

뭔가 새롭고 정돈된 형태로 농촌의 낙후된 사회를 조직하고 전체 공산주의를 조직해야 하지 않느냐는 공산당원 고프네르의 말에 사샤는 혁명은 기관차와 같은 것이 아니며 그들 스스로가 정비하기 전까지는 조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답한다. 여기서 기관차는 체벤구르의 전반에 걸쳐서 되풀이되는 삶과 역사, 운동과 진보를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런데 혁명이 기관차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사샤는 마치 인간이란 거대한 역사적 운동을 위해 복무하는 하나의 기계 부품처럼 동원되고 인위적으로 조직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스탈린 시대에 플라토노프의 소설들이 금서로 지정된 것을 생각해볼 때 이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읽을 수 있겠다.) 만약 그들 스스로가 진정으로 타인을 위해, 삶을 위해 운동하지 않는다면 그 운동은 지속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샤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

위의 구절로부터 지나지 않아서 체벤구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야코프 티티치라는 병든 노인을 위해 체벤구르의 기타 인간들이 힘을 모으는 광경이다.

 

이 시간, 체푸르니는 이미 풍차와 펌프를 작동시켰다. 펌프의 피스톤은 건조한 나무 실린더를 마찰하면서 체벤구르 전체로 쇳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야코프 티티치를 위한 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프네르는 노동의 경제적 만족을 지닌 채 지쳐 가는 기계의 쇳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야코프 티티치의 위장에 뜨겁고 영걍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어 그를 위해 선한 일을 한다는 예감으로 입속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간 체벤구르는 고요했는데, 드디어 처음으로 비걱거리면서 노동하는 기계의 쇳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체벤구르 사람이 기계 옆에 모여들어, 한 명의 고통 받는 인간을 위해 기계가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연약한 한 노인을 위해 기계가 열심히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들은 놀랐다.

, 여러분 가난한 전사들이여!” 불안한 소리를 듣고 그게 뭔지 확인하기 위해 최초로 달려온 코푠킨이 말했다. “정말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가 또 다른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기계를 고안하고 설치했다! 동지에게 선물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프롤레타리아는 송풍기와 이 자력 펌프를 만들었어.”

아하!” 모든 기타 인간이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체벤구르중에서

 

그 이전까지는 이윤을 위해 움직이던 기계가 이제는 인간을 위해 움직이게 된 것이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산자들은 이제 다른 무산자를 위해서,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서 노동하고 나누는 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체 공산주의를 조직하기 위해서 공산당에서 파견한 관리에 의해서 이뤄진 일도 아니고 오로지 체벤구르의 사람들 스스로의 의지가 움직여서 이뤄낼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들은 기관차가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으로서 운동하고 있는 셈이다.

체벤구르는 내가 운동을 바라볼 때 놓치고 있었던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론적으로 단련된 사람, 실천적으로 경험이 풍부한 사람, 그리하여 전체 운동을 바라보고 조직할 수 있는 뛰어난 대중간부가 되어 사람들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의 문제와 필요에 공감하고 그 유예될 수 없는 삶으로부터 소리치기 시작할 때 운동이 동력을 잃지 않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나는 수레바퀴를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모여 있는 연인들 하나하나에게는 너무나 무지하고 서툴렀다. 고고하게 역사의 바퀴를 움직여나가는 동력(실천)과 그 엔진의 구조(이론)로 이뤄진, 하나의 완전한 기관차만을 상상하고 있었다. 거기에 타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혁명은, 운동은 기관차가 아니다.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조건에 귀 기울이고 그로부터 맥박이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라면 그 운동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외부에 존재하는 목표를 위해 내부에서 부품처럼 소모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레바퀴가 겪었던 길이 그 길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아무리 사람이 ‘(언제든 털어낼 수 있는) 비용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운동들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필요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것, 운동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론적 지식, 실천)을 잣대로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엄격히 평가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거꾸로 사람들이 등 돌리고 떠나게 만든 원인이 되었던 게 아닐까.

 

이론과 실천, 그리고 관계의 윤리

 

결국 수레바퀴 활동은 운동에는 추상화된 이론과 실천만이 아니라 관계의 윤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보다 덜 폭력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분투하고 힘을 모으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긋남을 직시하고 해결하면서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거나 대의로, 대의를 빙자한 권위들로 감추려고 하면 언젠가 그 상처는 피할 수 없이 커져서 모두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폄훼하거나 도구로서 간주하지 않고 존중하고 타자로서 대면하는 윤리가 필요하다. 윤리 그 자체가 세상을 바꿔주지는 못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단단히 묶어줄 수는 있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는 비록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함께 내후년을 기약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 역시 졸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언제까지 수레바퀴의 연인으로 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새롭게 들어올 연인들에게, 또한 새롭게 운동의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다 솔직하게 다가서고 싶다. 우리가 만약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길 원한다면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마주쳐야 한다. 그 누구도 갈등을, 고민들을, 부담을 전부 감내할 수 있고 감내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혁명은 기관차가 아니고 당신 역시 부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에서는 학회 구성원들을 '연인'이라고 칭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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