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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힐 콜린스 심포지엄

 

교차성의 초국적 여정[각주:1]

 



주해연(토론토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hy.choo@utoronto.ca)

번역: 박주현(버클리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수료생 jp53@berkeley.edu)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으나, 

그곳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 나는 나의 생각이 미국 국경을 넘어 여행하기를 바란다. 

미국이 아닌 나머지 세계에 또다른 지식 수출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전세계에서 비슷하게 억압받는 그룹들 간의 대화이자, 

생생한 다민족 사회를 만드려는 모든 이들 간의 대화의 시작으로서 여행하길 바란다. 


- 패트리샤 힐 콜린스(2009), 『흑인 페미니즘 사상』 한국어 번역본 서문 중[각주:2]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미국 국경을 넘어 이동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경계를 뛰어넘는,  교차성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에세이에서 나는 콜린스 저작의 여정에 번역가로서 참여하는, 그리고 초국적 맥락에서 교차적인 이론과 구조를 다루려는 젊은 사회학자로서 이 책의 여정을 그리려 한다. 미국 학계 “내부의 외부인(outsiders within)”인 나와 동료 디아스포라(diaspora)[각주:3] 페미니스트 학자들에게 콜린스의 학문 세계가 의미하는 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더불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한국에서 번역되고 출판된 과정을 소개하고, 교차적이고 초국가적인 페미니스트 분석 간의 풍성한 대화를 위한 나의 생각을 제안하고자 한다.

 

내가 콜린스의 저작을 알게 된 것은 위스콘신-매디슨 사회학과 대학원 첫 학기 때였다. 당시 나는 사회학 이론 필수 수업에서 마지막 주에 가서야 정전에 속하지 않는(non-canonical) 이론의 일부로 찬드라 모한티 저작과 더불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중요성에 대한 콜린스의 논문(1986)을 읽게 되었다. 나는 “[연구자 자신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일대기를 지식의 중요한 원천으로 삼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기를 독려하는 논문에 곧바로 압도됐다. 그 첫만남 이후 “의구심이 들면 콜린스를 읽는다”는 것은 나의 대학원 생활 원칙이 되었다. 내가 분과로서 사회학을 계속하고 싶은지 의구심이 들 때면 나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되새기기 위해 콜린스를 다시 읽었다. 깊고 넓은 학문세계를 통해 그녀는 내게 읽을거리에 있어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 많은 책과 논문 중에서도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내게 언제나 특별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고, 결국 훗날 나는 이 책이 한국으로 향하는 초국적 여정에 참여하게 됐다.  

 

번역은 초국적 지식 생산의 필수 요건이다. 원문의 예상 독자를 넘어서는 독자 그룹을 만들어내고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독자의 매끄러운 독서를 위해 번역자는 글에 (가끔 각주를 통해서를 제외하고는) 드러나지 않지만, 번역은 내가 연구를 바라보고 수행하는 방식을 바꿔놓은 생생한 과정이었다. 영문학자 박미선 교수는 2007년 『흑인 페미니즘 사상』 번역에 관심을 갖고 내게 공동 번역 작업을 부탁해왔다. 영문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이론 전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판사의 거절을 겪고서야 박미선 교수는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할 수 있었고 나와의 협업을 원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사회학자”이기 때문이었다. 대학원 예비 시험을 막 마쳤을 즈음이었던 나는 자문했다. “제가요?” 그때 나는 스스로를 사회학자라고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후 10개월 동안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글자 하나 하나 옮기고 콜린스의 학문 세계를 익히면서 나는 분명 사회학자가 되어 있었다. 번역하는 10개월은 내가 한국에서 논문을 위해 현장 연구를 하던 시기와도 맞물렸는데, 그 시기는 내가 사회학을 배워나가는 데 중심이 되는 시간이었다.

 

번역하는 동안 나는 미국뿐 아니라 내가 나고 자란 한국 학계의 디아스포라 일원으로서의 내외부자적 위치와 그 위치가 갖는 독특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학계에서 내 “고국”의 젠더 문제에 대해 디아스포라 페미니스트로서 이야기하는 것은 종종 미묘한 일이었다. 미국 학계가 글로벌한 제스처의 일부로 더 많은 비서구 사회의 이야기와 사람들을 원하는 와중에도 서구 중심적인 문제 의식과 설정이 품는 보편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나는 내게 익숙치 않은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때로는 전략적으로 때로는 원치 않게 수행해야만 했다. 나는 “외교 특사”가 되기도, “거울”이 되기도, “진정한 내부인”(Narayan 1997)이 되기도 했다. 가끔 나와 내 디아스포라 페미니스트 동료들은 서로 문화민족주의자가 되었는지를 놀리며 웃었다. 우리는 “제 3세계 여성”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재현에 반대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가부장적인 “조국”의 문화적, 제도적 관습을 때로는 비하했고 때로는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또 우리는 때로 “나쁜 서구” 세계의 해악에 대한 흔한 비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집합적인 주체를 강조하기 위해 “고향”의 저항적인 움직임들을 낭만화하기도 했다.     

 

디아스포라적인 위치에서 나는 “국가와 초국가적인 문맥을 가로지르며 동시에 특권적이고 주변화되는 경험”(Purkayastha 2010, 29)을 하게 됐고 이러한 문맥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중재”(Mani 1990)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중재의 과정으로 초국적 페미니스트 학문의 발전에 있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Alexander and Mohanty 1997; Kim-Puri 2005), 디아스포라 학자들로 이어진 초국적 연결고리에 조응하는, 경험에 뿌리 내린 학문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학문의 예로 한국에서는 타국으로의 이민(N.Kim 2008; Yuh 2002), 초국적 입양(E.Kim 2010), 신자유주의 통치(Song 2009), 미군 네트워크(Hohnand S. Moon 2010; K. Moon 1997) 등에 대한 연구를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한국에 콜린스의 교차성 작업을 소개하면서 사회학적인 대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곳에서 내부의 외부인으로서의 나의 디아스포라적 위치는 유별났다. 미국 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교수님은 내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왜 미국이지? 민족사회학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녀의 비판적인 입장은 전세계적인 패권적 지식 생산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한국 진보파에게 드문 입장은 아니다. 그녀에 따르면 나는 식민지 본국의 학계에 참여함으로써 패권적인 생산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었다. 좀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의 결정은 개인적으로는 잘 팔리는 선택으로 보였고, 심지어는 서구적/제국주의적 학문 소비를 위해 국가를 파는 행위이기도 했다. 나는 지식 생산에 있어 비판적인 수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을 하는 데 있어 민족주의적인 학문이 얼마나 적합한지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민족국가로서의 한국은, 공통된 국민성의 부재 위에서, 점점 이주민의 권리와 그들의 소속에 대한 질문들을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나의 경험 연구는 동화와 배제라는 압력을 통해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드리우는 한국에서 이주민들이 어떻게 일방적인 부담을 지는지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단일민족과 국가의 신화를 반박하는 교차적인 시각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나는 한국에서 자신의 시민권 문제를 헤쳐나가는 이주민 여성들이 처한 주변화된 공간의 젠더 거버넌스를 연구했다. 나는 특별히, 서로 겹쳐지기도 하는 세 그룹에 주목했다. 공장 노동자, 한국 남성과 결혼한 아내, 미군 기지촌 클럽의 호스티스 그룹이다. 현장 실습 동안 나는 구미코를 만났다. 40대 중반의 일본인인 그녀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17년 동안 한국에 살았다. 20세기 초반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경험과 더불어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진 구미코의 본가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반일 감정 역시 마주해야 했다. 나는 구미코에게 내 일본인 할머니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의 일본인 할머니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모국어도 잊은 채 인생 대부분을 한국인인 것처럼 살았다. 구미코는 이야기를 듣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건 정말 좋겠네요.” 나는 그녀가 말을 덧붙이기 전까지 그녀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일본어를 까먹으려면 한국어를 완벽하게 할 줄 알아야하죠!” 그건 내가 전혀 예상한 답이 아니었다. 한국 국가와 시민 사회는 점점 다문화주의적인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구미코의 말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끊임없이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숨긴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구미코와 나의 할머니와 같은 이주민 여성들의 다름의 표현이 위험, 부정, 그리고 침묵에의 강요로 뒤덮여 있을 때, 어떻게 그들에게 공정한 방식으로 그 경험에 귀기울일 수 있을까?

 

나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한국으로 옮기는 일을 도우는 과정에서, 소수자 집단이 어떻게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에 바탕을 둔 주장을 만드는지 한국 대중이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기를 바랐다. 콜린스의 한국어판 서문은 이렇게 말한다. “소수자 집단이 다르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들의 특별한 경험을 이해하고 나아가 포괄적인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중요하다.”[각주:4] 내가 논문 작업 동안 만난, 미등록 이주 노동자인 필리핀 여성 로젤의 목소리는 이러한 소수자 목소리 중 하나다. 로젤은 작은 공장 도시의 가구 공장에서 15년 동안 일한 경험을 되돌아보던 중 사포질 도구를 들던 오른손을 가리키며 외쳤다. “보세요, 내 엄지뼈가 여기서 여기로 옮겨졌죠. 이 정도면 적어도 어느 정도 자격이 있지 않나요?”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한국 정부가 그녀에게 존중의 표시로 적어도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 자신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로젤의 주장은 [흑인 노예 출신의 여성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의 잘 알려진 행동을 떠오르게 한다. 그녀는 팔근육을 보여주기 위해 맨살을 드러내며 “나는 여성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두 여성은 시공간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둘 모두 콜린스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아름답게 이어낸,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을 대표한다.

 

아직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출판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한국 독자가 어떻게 읽었는지 논하기는 이르다. 몇몇 한국학자들은 처음에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 번역 작업에 의구심을 갖고 이를 “그저 또다른 미국 이론”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공통된 분투를 발견하고 연대·연합을 만들어가는 가능성을 찾으리라 자신한다. 나는 사회과학적 연구에서 교차적인 시각(Choo and Ferree 2010)을 통해 가질 수 있는 분석의 힘을 믿는다. 그것은 한국 학문 담론에 더 많은 풍성함과 다양성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나는 한국의 로젤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생한 삶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다뤄지는 흑인 여성의 경험과 맞물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함께 국가적 경계를 넘어 새롭게 나타나는 교차적이고 초국적인 페미니스트 학문과 활동에 받침돌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비-서구적인 논쟁과 정의에의 투쟁과의 협력은, 전세계 국가의 위계질서를 교차적인 분석의 핵심으로 통합시키고, 서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교차적인 학문을 풍성하게 하리라, 나는 믿는다.
























참고문헌


Alexander, M. Jacqui, and Chandra Mohanty, eds. 1997. Feminist genealogies, colonial legacies, democratic futures. New York: Routledge. 

Choo, Hae Yeon, and Myra Marx Ferree. 2010. Practicing intersectionality in sociological research: A critical analysis of inclusions, interactions and institutions in the study of inequalities. Sociological Theory 28 (2): 129-49. 

Collins, Patricia Hill. 1986. Learning from the outsider within: The sociological significance of Black feminist thought. Social Problems 33 (6): 14-32. 

Collins, Patricia Hill. 2009. Black feminist thought, translated by Hae Yeon Choo and Mi Sun Park. Seoul: Alterity Press. 

Höhn, Maria, and Seungsook Moon (Eds.) 2010. Over there: Living with the U.S military empire from World War Two to the present.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Kim, Eleana J. 2010. Adopted territory: Transnational Korean adoptees and the politics of belonging.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Kim, Minjeong. 2008. Gendering marriage migration and fragmented citizenship formation: "Korean" wives, daughters-in-law, and mothers from the Philippines. Ph.D. dissertati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lbany. 

Kim, Nadia Y. 2008. Imperial citizens: Koreans and race from Seoul to LA.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Kim-Puri, H. J. 2005. Conceptualizing gender-sexuality-state-nation: An introduction. Gender & Society 19 (2): 137-59. 

Mani, Lata. 1990. Multiple mediations: Feminist scholarship in the age of multinational reception. Feminist Review 35:24-41. 

Moon, Katharine. 1997. Sex among allies: Military prostitution in U.S.-Korea relation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Narayan, Uma. 1997. Dislocating cultures: Identities, traditions, and Third World feminism. New York: Routledge. 

Purkayastha, Bandana. 2010. Interrogating intersectionality: Contemporary globalization and racialized gendering in the lives of highly educated South Asian Americans and their children. Journal of Intercultural Studies 31:29-47. 

Song, Jesook. 2009. South Koreans in the debt crisis.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Yuh, Ji-Yeon. 2002. Beyond the shadow of Camptown: Korean military brides in America.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 이 논문은 Choo, Hae Yeon. 2012. “The Transnational Journey of Intersectionality.” Gender &Society 26(1): 40-45. 의 번역본입니다. 번역본은 웹진 인-무브(en-movement.net)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 및 감수에 도움 주신 주해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본문으로]
  2. 역자 번역 부분으로 원문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흩어지게 하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특정 민족이 자발적 또는 강압적으로 고국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 또는 그 이주 집단을 의미한다. 디아스포라는 식민주의의 주요한 역사적 산물로, 노예 무역과 도제살이(indenture) 계약 등을 통해 임시적·영구적인 흩어짐이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이뤄졌다. 디아스포라 후손들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본질주의(essentialism), 토착주의(nativism), 중심-주변 모델, 일원화된 ‘자연스러운’ 문화적 규범을 문제시하며 그들만의 특정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최근에는 (과거) 식민화된 민족이 식민지 중심 도시에서 스스로의 혼종성(hybridity)을 긍정하며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 - 역자 설명. Bill Ashcroft, Gareth Griffiths, and Helen Tiffin. 2013. Post-colonial Studies: The Key Concepts – Third Edition. Routledge. pp.81-83 참고. [본문으로]
  4. 역자 번역 부분으로 원문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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