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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의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 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주하는 763인의 제안”을 돌아보며.

 

 

박기형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어둠 속에서 땅을 파며 두더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두말할 것 없이 빛이다. 밭이나 정원의 단단한 지면을 뚫고 나오게 될 순간, 분화구에서 돌연히 튀어나올 순간, 눈부신 햇빛 속에서 보게 될 기름진 땅의 윤기, 그는 이를 몽상한다. 그러나 이것이 꿈꾸기는 아니다. 그는 목적지와 갈 길에 대한 생각으로 분주하게 바삐 움직인다.”
- 다니엘 벤사이드, 『저항』(김은주 역, 2003, 이후), p.49

 

2021년 봄, 인권운동사랑방의 제안으로 <사회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가기 위한 집담회>가 열렸다. 제안에 응한 활동가들이 모여, 각자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사회운동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주어진 틀에 갇히지 않는 사회운동을 만들려 했으나 어딘가에 갇힌 듯한 불확실함, 더 나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싸웠는데 제자리인 것 같은 답답함, 운동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향하는 곳이 맞나 싶은 망설임 등. 투쟁하는 자리와 의제는 달랐지만, 공통되게 느끼는 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차례의 집담회와 토론회를 거치면서, 앞으로 사회운동의 전망을 함께 지속해서 모색해나갈 공동의 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2021년 겨울,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이 꾸려졌다. 이후 2022년 1월, <2022 대선과 사회운동 집담회>를 열고, 대선 국면을 마주하는 활동가들의 심경과 의견을 나눴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와 마음을 모아 성명서를 썼다. 일주일간 연명을 받아,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 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주하는 763인의 제안>을 2022년 3월 4일 발표했다.

 

연명 과정에서, 그리고 성명 발표 이후에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대선 정국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줘 감사하고 환영한다는 입장도 있었지만, 대선 국면에 적절한 성명인지, 누구를 향한 어떤 제안인지 불분명하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누가 되든 우리는 우리 갈 길 가자는 자기다짐이나 우리의 길을 잃어버린 거 아니냐는 자기반성으로 읽힌다는 반응부터, 옳은 말만 내세울 뿐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거냐며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 공허한 주장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덜 나빠지고 더 좋은 기회를 찾아내려고 고심 끝에 투표하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계몽적 태도를 띠는 건 아닌지, 그동안의 사회운동에 대해 더 면밀하게 평가해야 하는 데 너무 쉽게 단정짓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회운동 진영에서 ‘비판적 지지’와 ‘비판적 지지에 대한 비판’은 87년 민주화 이후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그래서 뻔한 것 같고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왜 이 구도는 변화하지 않은 것일까? 거칠게 말해, 선거는 ‘경쟁’이다. 주어진 선택지에서 누가 더 나은지를 골라 뽑아야 한다. 더 나은 선택지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상, 누구라도 선택을 하든가 선택을 하지 않든가 할 수밖에 없다. 이 국면은 좁다란 길이다. 비켜설 곳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은 왜 굳이 ‘다른 길’을 외치는 걸까?

 

이 성명을 통해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다음의 질문이 아니었을까. ‘왜 사회운동은 이번 대선을 마주하며 ‘곤혹스러움’에 빠지게 되었는가?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높은 투표율과 정치적 열망에도 불구하고, 왜 ‘역대급 비호감 선거’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가 마주한 이 곤혹스러움의 출처를 돌아보고, 다시는 곤혹스러움을 겪지 않겠다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질문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외로운 외침처럼, 누군가에게는 무력한 다짐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성명을 통해, 우리가 던지고 싶은 근본적 질문은 ‘사회운동의 몫과 과제는 무엇일까?’였다. 선거를 앞두고 당장 눈에 보이는 답을 찾기보다는, 선거 이전의 고민을 나누고 선거 이후의 방향을 함께 모색할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성명에 함께 한 활동가의 표현을 빌리면, ‘암담한 대선구도에 내몰린 구석이 아니라, 다른 미래의 설렘을 품은 너른 자리로’ 사회운동의 공간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벤사이드가 날카롭게 지적했듯, “무기력해진 건 상상이 아니다. 결여된 건 이상, 제안, 계획들이 아니다.” 사회운동은 차별과 혐오, 불평등에 맞서 삶을 지켜내려는 긍정의 몸짓에 연대해왔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일궈내기 위한 투쟁을 만들어왔다. 우리가 품고 있는 상상, 이상, 제안, 계획이 신뢰받고 설득력을 얻고 종국에 성취되기 위해서는, 힘의 역관계를 바꿔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은 사회운동의 몫을 거기서 찾는다.

 

저항은 멈춘 적이 없다. 우리는 이미 싸우기 시작했다. 우리의 반성과 다짐, 그리고 제안은 먼 미래에 대한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운동은 ‘원시안’적이지 않다. 오히려 마치 두더지처럼 ‘근시안’적이다. 지금 여기에서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저항에 함께 한다. 충실하고도 참을성 있게, 성급하지만 느리고도 완강하게, 지속해서 활동해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김용균과 함께, 김지은과 함께, 김잔디와 함께, 변희수와 함께’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이토록 곤혹스러운 선거와 상관없이, 우리는 늘 저항의 순간과 투쟁의 자리에서 사회운동의 소명을 발견할 것이다. ‘언제가 올 그때’를 기다리지 않고, 후에 ‘때맞음’이라 평가할 계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것이다. ‘잘 파냈다, 늙은 두더지여!’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칠 그날을 위해, 사회운동은 두더지처럼 묵묵히 길을 내어나갈 것이다. 이 성명의 취지와 고민이 그 길을 함께 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닿기를 바란다.

 

 

 

[공동성명]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주하는 763인의 제안

 

 

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주한 지금, 사회운동에 내리깔린 그림자는 유난히 짙습니다. 이번 선거를 지배하는 프레임은 ‘정권 교체’와 ‘정권 재창출’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실패는 ‘정권 교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요인입니다. 그러나 노동권 축소와 여성, 이주민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이끄는 정부가 지난 5년보다 나을 리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민사회의 일부 원로들은 '최악'을 막기 위해 민주당이라는 ‘차악’을 다시 선택할 것을 유도합니다. 이들은 민주당 정권을 ‘진보’ 혹은 ‘그래도 우리편’으로 묶어 사회운동의 혼돈을 부추길 뿐, 사회운동의 독자적 전망을 구축하고 재건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 민주당 정권의 민낯은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번 정권의 책임 있는 인사들은 사모펀드 및 부동산 투기, 입시비리, 권력형 성폭력 등을 일으키고도 책임없는 자세로 일관했고, 민중들은 이들의 ‘내로남불’ 앞에서 절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기득권 세력을 대변할 뿐, ‘차악’으로도 고려될 수 없습니다. 친자본과 정치실용주의를 서슴없이 내세우는 후보가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만드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5년의 과오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 없이 촛불의 표상을 독점하려 시도하며, “촛불혁명의 연장”을 운운하는 것은 사회운동에 대한 기만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의 부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운동은 단지 분열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운동을 조직화·세력화하지 못했기에 후퇴해왔습니다. 체제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정치적 힘을 사회운동과 함께 만들기보다, 사회운동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닌지 진보정당에 묻고 싶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중경선’이 실패한 이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정치적 힘을 조직하기 위한 일상적인 노력 없이 단순히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정하는 방식으로는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회운동에 몸 담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은 부단히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마주한 사회운동의 책임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사회운동은 당면한 투쟁들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일을 넘어 대안과 전망을 부상시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제도권과의 분별을 불명확하게 하고, 개인의 제도 진출을 실용적이고 사적인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사회운동의 자산을 유실하기도 했습니다. 5년 혹은 10년 후 오늘의 참담함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꽤나 긴 시간 사회운동을 날카롭고 풍부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 이후에도 우리의 삶과 투쟁은 이어질 것입니다. 선거가 억압적인 시스템을 포장하는 껍질이 되느냐, 사회운동이 자신의 요구를 대중적으로 분출하고 또 대중들의 요구가 모이는 정치적 공간이 되느냐의 문제는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우리의 분석과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상황 자체를 바꾸지 못하면, 우리는 이보다 더 최악의 선거를 맞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도 정치와 선거에 대한 환멸감을 넘어 이 공간에 보다 능동적으로 개입해야만 체제 전환을 위한 사회운동 역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회운동의 성장은 곧 우리 사회가 마주한 오늘의 착취에 맞선 저항과 대안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후퇴할 수도, 외면할 수도, 기만할 수도 없는 난처하고도 비상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직시하며, 최소한 세 가지를 함께 다짐할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같은 미래를 반복해선 안 됩니다. 반MB, 반박근혜 전선 등과 같은 함정에 함몰되거나,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으름장에 속지 맙시다. 정권의 폭력과 탄압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득권 정당 중 한 쪽과 공동 전선을 만드는 대신, 우리 자신의 대안을 만들고 세력화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둘째, 제도 개혁을 넘어선 체제 전환을 정치적 목표로 삼읍시다. ‘진보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무더기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조금 더 진보적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민주당 정부에 일말의 기대를 갖고 참여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미래의 꿈과 목표가 있는 운동은 결코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 꿈을 포기하지도 누군가에게 의탁하지도 맙시다. 우리 앞의 5년 다가오는 10년, 우리가 전선과 구도를 만들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미래를 조직합시다. 운동 바깥의 대중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운동의 목소리를 확장하는 사업을 함께 기획합시다. 우리가 함께 모여 만들어 나갑시다.

 

2022년 3월 4일

 

연명 참가자 일동

*성명 전문 및 참가자 명단: http://bit.ly/our-propo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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