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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노동자의 ‘조용한 죽음’과 529명의 부고

 

2017년 노동건강연대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종종 아주 썰렁한 장례식장을 갈 때가 있다. 화환 하나 없이, 달랑 사망한 분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가족 몇 명 이외에는 드나드는 사람도 없는 그런 장례식장들이 있다. 화재로 9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한 병원의 장례식장이 가득 찼지만 찾아오는 이가 없어 적막이 돌던 곳도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가족의 울음소리, 조문객들로 적막함이 깨지기도 하지만 발인을 하고 화장터에서 화장할 때까지 몇 몇의 가족과 동료, 친구만이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례식들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해 일을 하다 사망하는 2,000여명의 죽음은 이렇게 조용히 가족과 친구들의 추모와 애도로 끝이 난다.

 

장례식장의 적막만큼이나 노동자 사망소식은 사회 속에 조용히 묻힌다. 언론에 단신으로 보도되거나 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소식, 소방서의 공지로 알려지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때로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처럼, 태안화력 김용균처럼, 평택항 이선호처럼 우리의 사회에 알려지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고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들은 적막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만큼이나 조용한 침묵 속에 사라진다. 2021년에도 2,080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망했고, 애도할 시간도 알려질 틈도 없이 또 다른 죽음들로 앞선 죽음들이 잊혀져간 세월이 계속되었다.

 

노동건강연대가 기획하고,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의 운영자 이현이 쓴 책 『2146,529』은 2021년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소식을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다. 해설을 제외하면 170페이지에 불과한 책에는 529명의 사망소식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노동자의 조용한 사망을 조금이라도 사회와 나누기 위해서였다.

 

 

529명의 사망사고 단신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이야기는 대부분 가시화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오랫동안 사회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담고 있기보다는, 개인의 부주의나 불운, 기업 활동의 부수적인 결과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2-3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지만 ‘뉴스’가 되지 못했다. 뉴스가 된 경우조차 ‘작업자, 인부, 근로자’로 시작해 ‘떨어져, 부딪혀’를 거쳐 ‘사망, 숨져’로 끝나는 단신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노동자의 죽음이 ‘그나마’ 가시화된 언론 단신을 한 해 동안 정리해 만들어졌다. 책 본문은 별다른 설명조차 없이 2-5줄에 불과한 노동자의 죽음이 날마다 적게는 한 건에서 많게는 4건씩 나란히 적혀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 여백이 많은 페이지를 보고 안도할 정도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날을 바꿔 나열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한 명 한 명의 산재사망 노동자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무엇을 기억해야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짧은 한 노동자의 부고는 장소와 시간만 바뀌어 170페이지 내내 계속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모여 529명이 되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529명이 되어야 그것이 문제라고 여겨질 수 있었기에 단신들을 나열 할 수밖에 없었다.

 

반복되는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고, 책을 낸 것은 책머리에 쓰인 말처럼 “누구나 우리 사회의 산재사망자 숫자가 ‘1년에 2100명, 하루에 5~6명’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그리고 그 숫자가 지난 20여 년간 크게 변치 않았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12일, “도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던 환경미화원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라는 짧은 소식을 통해 우리가 그를 온전히 애도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는 없겠지만 한 명의 노동자가 고작 한 줄로 설명디는 사고로 매해 2,100명씩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산재사망의 심각성만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책을 내고, 노동건강연대가 매월 지난달 ‘가시화’된 산재사망을 모아 오마이뉴스와 함께 ‘이달의 기업살인’ 연재기사를 쓰고, 이현이 트위터에 기사를 올리며 산재사망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사실의 조각을 모으는 이유는 “이러한 조각과 파편으로 ‘조각보’를 만들고 ‘퍼즐’을 맞춰주실 분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노동자 사망의 파편적 사실들 속에서 노동자 사망의 ‘총체적인 진실’을 함께 찾고 그것을 ‘사건’을 만들 때 노동자 죽음의 공고한 구조가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곳이 학술적 실천의 장이던, 노동 현장이던, 우리 모두의 일상적인 실천의 장이든 말이다.

 

 

529라는 숫자를 지나 더 큰 애도로 나아가기 위해

 

이 책을 함께 만들며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숫자를 통해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지만 “사망노동자를 수백 명으로 묶어 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산재로 인한 죽음을 비정치적인 문제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단신을 찾고, 기록하면서도 늘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사실은 숫자가 아니라 ‘숨져’, ‘떨어져’라는 말 뒤를 봐야했다. 사망사고를 보다보면 사망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겪은 노동조건, 기업 안에서 겪어야 되는 문제, 더 나아가 빈곤과 불평등, 이중노동시장의 모순이 보였기 때문이다.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한 노동자의 사망사고에 대해 진실로 ‘재난의 목격자’가 되려면 한 사람의 노동자를 더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하지만 529명이라는 숫자로 시작해보려 했다. 이 숫자를 시작으로 정부에 알려진 것만 2021년 828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질병까지 포함한다면 208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숫자에 조차 포함되지 못하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하는 사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은 고작 529명의 짧은 소식을 전할 뿐이지만 조만간 숫자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산재사망 이야기가 알려지고, 그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산재사망 노동자의 가족들과 동료 그리고 산재에 대해 더 많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매해 4월 28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날이다. 그 날만큼은 우리사회가 포털의 수많은 기사 한 귀퉁이에 올라올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기억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가족과 동료와 친구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픔을 한 번씩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애도는 절망보다 희망과 나란히 있으려는 관성에 따른다”

 

오늘도 일하다 사망하는 노동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오늘도 기록하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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