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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과 함께 머물기: 대지세 시대의 친족 만들기》서문 & 1, 5,6,7장 (2/5)

 

 

번역          연구공간 L. 

 

 

 

 

 

 

 

 

 

 

 

 

 

* 텍스트 서지사항
- Donna J. Haraway, Staying with the Trouble: 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6, pp. 9-29.
- 도나 해러웨이,《트러블과 함께 머물기:대지세 시대의 친족 만들(가제)
- 관악여성주의비평동인 ‘오프매거진’의 소현의 번역을 참고해 재번역함. 
  https://offmagazine.cargo.site/playing_string 

 

 

 

1장 반려종과 실뜨기 놀이하기  

 

에블린 허친슨(G. Evelyn Hutchinson, 1903-1991)과 베아트리스 다 코스타(Beatriz da Costa, 1974-2012)를 기리며.

내 박사학위논문의 조언자인 허친슨은 《친절한 대지의 열매들》이라 불리는 회고적 자서전을 썼는데, 이는 1장의 “믿을만한 항해사들”을 모두 품는 제목이다.

 

 

1.1 다종 실뜨기. 2011년 나세르 무프티(Nasser Mufti)의 도안.

 

 

 

다종 이야기하기와 반려종들의 실천

 

실뜨기는 마치 이야기들 같다. 실뜨기는 지구 위에 어떻게든 거주하려는 취약하고 상처받은 참여자들에게 패턴을 제안하고 실행한다.[각주:1] 나의 ‘다종 이야기하기(multispecies storytelling)’는 살기만큼이나 죽기로, 시작만큼이나 끝으로, 심지어 대량학살로 가득찬 복잡한 역사들에서의 회복에 관한 것이다. 반려종 매듭 안에서 역사적으로 특정한 무자비한 잉여고통과 마주한 나는 화해나 복원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부분적 회복과 ‘함께 지내기’라는 더 겸손한 가능성들에 몰두한다. 이를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라 부르자. 그래서 나는 사변적 우화이자 사변적 리얼리즘이기도 한 진짜 이야기들을 찾아본다. 이 이야기들에서 차이를 가로지르면서 부분적이고 결함이 있는 번역에 휘말려 있는 다종 참가자들은 아직 가능한 유한한 번영과 아직 가능한 회복에 맞춰, 살고 죽는 길을 다시 낸다.‘SF’는 공상과학소설, 사변적 페미니즘, 과학 판타지, 사변적 우화, 과학적 사실, 그리고 또한 실뜨기에 관한 하나의 기호이다. 실뜨기 놀이는 패턴을 주고받고, 실을 떨구고 실패하지만 간간히 어떤 모양을 내고 그 결과로 나온 아름답기까지 한 전에 없던 뭔가를 발견하는 일에 관한 것이며, 문제되는(matter) 연결을 잇는 일에 관한 것이자 땅과 대지 위에 유한한 번영의 상태를 만들려고 손 위에 손을, 손가락 위에 손가락을, 실과 닿는 부위에 다른 부위를 얹으면서 이야기를 말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실뜨기는 실을 받고 넘기기 위해 가만히 자세잡고 있기를 요구한다. 실뜨기 놀이는 주고받기의 리듬이 유지되는 한, 여러 사람이 사지(四肢)를 써서 할 수 있다. 학문과 정치도 이와 같다. 열정과 행동을 필요로 하는 꼬이고 뭉친 실을 넘기고, 가만히 있고 움직이고 고정시키고 닻을 내리고 배를 띄우고 등을 하며 말이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경주 비둘기들은 그들의 다양한 사람․지리․다른 생물체․테크놀로지․지식과 더불어, 내가 실뜨기 놀이라고 생각한 풍부한 세계짓기(worlding) 안에서 살고 죽은 실천을 형성한다. 다양한 실제 비둘기들과 그들의 풍부한 행적으로 가능해진 이 장은 한 덩이 매듭의 시작 패턴이다. 내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물체들은 테라폴리스[땅-정치]라 불리는 n차원의 틈새 공간에 거주한다. 내가 우화화한 테라폴리스의 다중 적분방정식은 하나의 이야기나 사변적 우화이자 동시에 다종 세계짓기를 위한 실뜨기이다.

 

Ω

∫ 땅[x]n = ∫∫∫∫ . . . ∫∫땅(x1,x2,x3,x4, . . . ,xn,t) dx1 dx2 dx3 dx4 . . . dxndt = 테라폴리스[땅-정치]

α

x1=재료/자연, x2=능력, x3=사회성, x4=물질성, xn=아직-오지-않은-차원들

α(알파) = 생태진화발전론적 생물학의 다종 후성설(epigenesis)

Ω(오메가) = 땅의 다원우주(pluriverse)를 회복하기

t = 컨테이너 시간이 아닌 세계짓기의 시간, 과거/현재/‘아직 오지 않은’이 얽혀있는 시간 

 

테라폴리스는 허구적인 적분방정식이며 사변적 우화이다.

테라폴리스는 다종 종 ‘함께-되기’를 위한 n차원의 틈새 공간이다.

테라폴리스는 열려있고, 세계적(worldly)이며, 불확정적이며 다-시간적이다. 

테라폴리스는 물질․언어․역사들의 키메라다.

테라폴리스는 ‘한 상에서 빵을 나눠먹는’(cum panis) 반려종에 관한 것이며, “포스트휴먼”이 아닌 “거름/이후를-함께하기”에 관한 것이다.[각주:2]테라폴리스는 장소 안에 있으며, 예상치 못한 동반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테라폴리스는 구만(guman), 부식토, 토양, 진행 중인 위험한 감염, 트러블의 조짐이 있는 전염병, 영속농업(permaculture)에 관한 방정식이다.

테라폴리스는 응답-능력(response-ability)의 SF 게임이다.[각주:3]

 

 

반려종은 테라포밍[각주:4]이라는 오래된 기술에 관여해 왔다. 반려종은 테라폴리스를 묘사하는 SF 방정식의 참여자이다. 칸트의 지구화하는 세계시민적 정치와 인간을 예외로 두는 우울한 하이데거의 세계짓기와 단호하게 관계를 끝낸 테라폴리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뿌리에 붙은 균류와 그 공생자들을 거름삼아 나온 잡종어이다. 테라폴리스의 세계에는 결코 어떠한 빈곤도 없으며, 항상-너무-많은 연결의 SF 그물망이 있다. 하이데거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론화한 실존론적이면서 연고가 없고 외로운 인간-생성의 간극에서와는 달리 이 그물망에서는 응답-능력이 반드시 함께 꿰어 맞춰진다. 테라폴리스의 세계는 풍요롭다. 포스트휴머니즘을 막는 예방주사를 맞아 거름/‘이후를-함께하기’로 풍요로우며, 인간 예외주의를 막는 예방주사를 맞아 다종 이야기하기로 숙성한 부식토로 풍요롭다. 이러한 테라폴리스는 호모(Homo)로서의 인간의 고향, 즉 늘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발기했다 쪼그라드는 동일자의 남근적 자기-이미지가 아니다. 테라폴리스는 인도-유럽 어원의 혀 놀림을 거쳐 흙으로 이루어진 노동자이자 흙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구만’으로 변신하는 인간의 고향이다.[각주:5] 나의 SF 생물체들은 하늘보다는 진흙으로 이루어진 존재지만 테라폴리스에서는 별들도 반짝인다. 남성주의적인 보편자과 그들의 포함/포용의 정치로부터 탈피한 테라폴리스에서 구만은 불확정적인 젠더와 장르, 만들어지고-있는-부류들, 중요한 타자성 등으로 가득하다. 언어학과 고대문명을 전공한 나의 학자-친구들은 이러한 구만이 이용이 가능한 모든 젠더와 장르가 뒤섞인 거름인 아다마/아담(adama/adam)으로,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를 위한 고향을 만들 적임자라고 말해주었다. 이 테라폴리스는 친족-만들기, 실뜨기, 이자벨 스텐저스식의 살의 범세계정치(fleshy cosmopolitic)와의 SF 관계, SF 작가의 세계짓기의 실천 등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마릴린 스트래선—그녀는 파푸아뉴기니 산악지대(마운트하겐)의 민족지 연구에 기초한 《선물의 젠더》를 썼다—은 내게 “우리가 어떠한 관념들을 (그와 함께) 다른 관념들을 생각하는데 이용할지가 중요하다”고 가르쳐줬다.[각주:6] 스트래선은 생각의 관행(thinking practices)을 다루는 민족지학자다. 나에게 스트래선은 학술적인 방식으로 페미니즘적인 사변적 우화를 표현한 예술을 상징한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들을 그와 함께 다른 문제를 생각하는데 이용할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떠한 이야기들을 그와 함께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려고 얘기할지가 중요하다. 어떠한 매듭들이 매듭들을 매듭지을지, 어떠한 사유가 사유들을 사유할지, 어떠한 묘사가 묘사들을 묘사할지, 어떠한 끈들이 끈들을 묶을지가 중요하다. 어떠한 이야기들이 세계를 만들지가, 어떠한 세계들이 이야기를 만들지가 중요하다. 스트래선은 가차 없는 우발성의 위험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썼다. 그녀는 인류학을 관계들과 맺는 관계들을 연구하는 지식 실천으로, 예상치 못한 다른 세계들로 인해 관계들을 다른 관계들과 맺는 위험에 빠뜨리는 지식 실천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나의 세계짓기의 감각에 영향을 준 과정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1933년에 《관념의 모험》을 저술했다.[각주:7] SF는 정확히 이러한 모험들로 가득하다. 화학자이자 화이트헤드와 질 들뢰즈의 연구자이며 과학에서의 물질성에 대한 급진 사상가이자 드센(unruly)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이자벨 스텐저스는 나에게 풍부한 “사변적 사고”를 주었다. 스텐저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상 세계의 이름으로 세계를 탄핵할 수 없다. 스텐저스는 페미니즘적인 공동체주의적 아나키즘의 정신과 화이트헤드 철학의 관용구에 기대어, 결단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결과를 감당할 이들의 참석 하에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것이 그녀가 의미하는 범세계정치이다.[각주:8]

 

 

SF는 내 글과 연구 안에서 전해주고 되돌려주면서 사변적 우화와 실뜨기로 변한다. 잇기, 실뜨기, 앞뒤로 모양내기, 주고받기, 모양잡기, 청하지 않은 모양을 손으로 잡고 있기, 응답-능력. 이것들이 바로 내가 의미하는 ‘심각한 다종 세계에서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의 핵심이다. 되기가 아니라 함께-되기가 이 놀이의 이름이다. 뱅시앙 데스프레의 용어로는, 바로 함께-되기가 파트너가 가능해지는 방식이다.[각주:9] 존재적으로 이질적인 파트너들은 관계적인 물질적-기호적 세계짓기 안에서 누군가가 되거나 무엇인가가 된다. 자연․문화․주체․객체들은 그들이 얽혀있는 세계짓기들에 앞서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반려종은 가차 없이 함께-되기이다. 반려종이라는 분류는 내가 포스트휴머니즘을 들먹이지 않고도 인간 예외주의를 거부할 수 있게 돕는다. 반려종은 세계 안에/세계에 대해 있는 누군가(들)이 내부-작용과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실뜨기 놀이를 한다.[각주:10]파트너들은 매듭에 선행하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종들은 얽히고설킨 세계의 주체-형성과 객체-형성의 결과이다. 인간-동물의 세계들에서, 반려종은 집, 실험실, 들판, 동물원, 공원, 트럭, 사무실, 감옥, 목장, 공연장, 마을, 인간 병원, 숲, 도살장, 하구(河口), 동물병원, 호수, 경기장, 헛간, 야생동물 보호구역, 농장, 바다 협곡, 도시의 거리, 공장 등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존재다.

 

 

 

실뜨기가 인류의 가장 오랜 놀이 중 하나지만, 모든 곳이 같은 놀이를 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 역사와 제국주의 역사의 자손들 모두가 그랬듯이, 나—우리—는 세계를 보편자나 특수자가 아닌 부분적 연결과 결합시키는 법을 다시 익혀야 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유럽인 및 유럽계 미국인 민족지 학자들은 전 세계의 실뜨기 놀이를 수집했었다. 이 분과의 창시자들이 여행 중에 놀랐던 것은 그들이 어릴 적 집에서 배웠던 실뜨기 놀이를 현지인에게 보여주면, 이미 현지인들은 이 놀이를 잘 알뿐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실뜨기 놀이가 더 뒤에 온 것은 유럽이며, 아시아 무역로를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인류학의 역사에서 이 시기의 모든 인식론적 욕망과 설화는 유사성과 차이로 불이 붙어 있었고, 이는 “원주민”의 실뜨기 놀이의 패턴과 “서양”의 실뜨기 놀이의 패턴을 경쟁시키는 가운데 손(만들기)인가 두뇌(생각하기)인가의 실로 한데 묶인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문제인 독립적 발명인가 아니면 문화적 확산인가라는 문제로 나타났다. [각주:11]비교의 긴장 속에서, 실뜨기는 같으면서도 같지 않았다. SF는 여전히 세계짓기와 이야기하기의 위험한 게임이다. SF는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이다.

 


1.2. Ma’ii Ats’áá’ Yílwoí(엇갈려 달리는 코요테). 도나 해러웨이가 찍은 사진.

 

 

그림 1.2는 ‘마이 앗샤 일뤄이(Ma’ii Ats’áá’ Yílwoí)’(“엇갈려 달리는 코요테”)라 불리는 나바호족의 실뜨기를 배우고 있는 과학 작가이자 자연사 라디오 프로듀서 러스틴 호그니스의 손을 보여준다.[각주:12] 코요테는 끊임없이 무질서의 먼지를 불의 신이 만든 정갈한 별 문양으로 흩트리는 속임수꾼으로, 땅의 생물체들의 삶을 모양내는 무질서와 질서가 뒤섞인 순진하지 않은 세계-만들기 퍼포먼스를 해낸다. 나바호족 언어에서 실뜨기는 나아틀로[거미집짓기](na’atl’o’)라 불린다. 나바호족의 실뜨기 놀이는 나바호족의 ‘추로 양’(Churro sheep)과 그 양들로 인해 그리고 양들과 함께 생계를 이어왔고 또 이어가고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에 관한 나의 ‘다종 이야기하기’에서 재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이 놀이들도 필요하다. 로스앤젤레스와 그 너머의 비둘기를 생각하기 위해서 말이다. 실뜨기의 영어식 표현인 ‘고양이 요람’이나 프랑스어 표현인 ‘끈놀이’로는 충분하지 않다. 테라폴리스에서 매듭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구별되고 또 되돌려져야 한다. 나바호족의 실뜨기 놀이는 “계속 엮기(continuous weaving)”의 한 형태로, 이는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들, 사람(People)과 디나이(Diné)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실천이다.[각주:13]

 

 

이 실뜨기 모양은 교육학적 실천이자 우주론적 퍼포먼스이며, 만들기의 실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생각하기의 실천이다. 몇몇 나바호족 사상가들은 실뜨기 놀이를 호조(hózhó)를 회복하는 일종의 모양잡기로 묘사하는데, 호조는 영어에서는 불완전하게나마 “조화”, “아름다움”, “질서”, 인간들과 비인간들의 올바른 관계를 포함하는 “세계의 올바른 관계” 등으로 번역된다. 세계 (in)이 아니라 세계(of) 관계이다. 이 영어 전치사의 결정적 차이가 나로 하여금 나바호족의 실뜨기, 즉 ‘나아틀로[거미집짓기]’를 SF 세계짓기의 거미집으로 엮어내게 한다. SF 세계들은 [틀이 주어진] 그릇이 아니다. SF 세계들은 모양잡기들이고, 위험한 함께-만들기이며, 사변적 우화이다. 테라폴리스에 기반한 SF에서 회복/치유는 ‘호조’와의 부분적인 연결 안에 있다. 우리가 어떤 관념들을 생각하고 또 그와 함께 다른 관념들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나아틀로’와 함께 ‘고양이 요람’을 생각하거나 만드는 것은 순진무구한 보편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아니라 가차 없는 역사적․관계적 우연성 안에서 위험천만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연들은 정복, 저항, 회복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풍부한 역사들을 포함한다. 역사적 상황에 처한 생물체들과 함께 이야기들을 말하는 일은 좀 더 살만한 범세계정치를 이루는 위험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비둘기들이 내 첫 길잡이일 것이다. 테라폴리스의 시민인 비둘기는 무수한 시간들과 공간들 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살고 있는 기회주의적인 사회종(opportunistic social species)의 일원이다. 비둘기는 아주 다양하며, 여러 언어에서 여러 범주를 차지한다. 비둘기는 영어에서는 야생종[산비둘기]과 사육종[집비둘기]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런 특수한 대립은 이른바 서양에서조차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다양하면서도 증식하는 비둘기의 종적 특성들은 놀랍다. 사람들과 함께 길들여진 이 인간-과는-다른 생물체는 나에게는 중요한 일종의 트러블을 양성한다. 비둘기는 인간과 함께-되기의 아주 오랜 역사들을 가지고 있다. 이 새들은 자신의 사람들과 계급․젠더․인종․민족․식민지․탈식민지 그리고 (아마도) 아직-오지-않은-땅을 회복하는 일 등의 매듭으로 묶여 있다.

 

또한 비둘기는 “제국의 피조물”, 즉 다른 여러 종류의 비둘기가 이미 잘 자리를 잡고 있던 장소를 포함해 전 세계를 식민화하고 정복한 유럽인들과 함께 움직였던 동물로, 다종의 몸뚱이와 경쟁적 풍경을 거쳐 여전히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모두의 생태와 정치를 변화시켰다.[각주:14] 늘 식민지인이기만 했던 것은 아닌 비둘기는 셀 수 없이 많은 살기와 죽기의 배치 속에서 여러 품종에 속하면서도 여러 장소들에서 토종 비둘기들로 길러져왔다. 수천 년 동안 자연문화적 경제를 세우고 삶을 일궈온 이 생물체들은 또한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생물사회에 격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비둘기는 귀중한 친족이자 경멸되는 유해동물이며, 구출의 주체이자 욕먹는 자이며, 권리의 담지자이자 동물-기계의 부품이며, 음식이자 이웃이고, 일과 놀이의 동반자이자 질병의 매개체이고, ‘근대적 진보’와 ‘후진적 전통’이 경합하는 주체이자 객체이다. 그 밖에도 비둘기 종류는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며, 땅 위의 거의 모든 지점에 여러 종을 두고 있다.

 

 

수천 년 간 사람과 함께-되기를 한 집비둘기(학명: Columba livia domestica)는 유럽 서남부, 북아프리카, 그리고 서남아시아의 토착 새에서 유래한다. 바위비둘기(rock doves)는 1606년 유럽인과 함께 ‘노바스코샤 포트로얄’을 통해 북아메리카로 들어왔다. 어딜 가든 이 범세계정치적 비둘기는 열정적으로 도시를 차지하여 인간의 사랑과 증오를 과한 정도로 불러일으킨다. “날개 달린 쥐”로 불린 도심의 비둘기들은 독설이 향하고 몰살될 주체들이지만, 또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열렬히 먹이를 주면서 지켜본 기회주의적 동반자로서 소중히 여겨지기도 한다. 사육 바위비둘기는 전보를 나르는 스파이로, 경주용 새로, 박람회장의 장식용 비둘기로, 일하는 가족들의 식량으로, 심리학 실험 대상으로, 인위적 도태의 힘을 이야기한 다윈의 대변인 등등으로 일 해왔다. 도심의 비둘기는 송골매와 같은 도시의 맹금류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로, 이들 맹금류들은 새의 알 껍질을 얇게 만들어 부화율을 낮추는 DDT로 인해 멸종 위기를 겪었다가 회복한 뒤로는 다리들이나 도시 고층건물의 돌출부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비둘기는 사절단이자 배우라는 이중적 의미에서 유능한 행위자로, 비둘기 서로와 인간으로 하여금 상황에 따른 사회적․생태적․행태적․인지적 실천을 할 수 있게 한다. 비둘기의 세계짓기는 광범위하다. 이 장에서 다루는 SF놀이는 이 새들로 묶인 그리고 이 새들에 의해 묶인 실의 전부는커녕 그 대부분을 건드리지도 못한다.[각주:15] 나의 SF놀이는 회복/치유를 위한 겸손하고 대담하며 동시대적이고 위험천만한 기획들을 추적한다. 이 기획들에서 사람과 동물은 혁신적인 방식으로 함께 얽히는데, 이는 서로 유한한 번영(지금이자 아직 오지 않은)을 누릴 수 있게 만들 수도, 아주 겨우 누리게 만들 수도 있다.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 간의 협력은 사람과 동물 간의 협력만큼이나 결정적이고, 또 사람과 동물의 협력에 의해 가능해질 것이다. 비둘기들은 일반적인 협력으로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엮기 위해 익숙한 세계에서 불편하고 낯선 세계로 넘어가는 특정한 교차로서 우리에게 날라 오는데, 이 무엇인가란 매듭이 풀려질 수도 있지만 또한 테라폴리스의 n차원의 틈새 공간에서 살기와 죽기를 아름답게 길러낼 수도 있다. 나의 희망사항은 이 매듭들이 진행 중인 트러블 내부에서 다종의 응답-능력을 위한 희망찬 패턴을 제시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경주 비둘기와 그들의 사람들: 

세계의 번영을 위한 협력 예술

함께-되기, 할 수 있게 되기(rendering-capable)

 

비둘기들의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놀라게 하고 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인간은 그들 자신이 어떻게 사물이나 생명체에 의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잊곤 한다. 응답-능력을 형성하는 사물과 생명체들은 다양한 규모의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의 몸과 비인간 몸의 안팎에 있을 수 있다. 이 행위자들은 다함께,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존재하는 누군가를 떠올리고 촉발시키고 불러낸다. 다 같이 함께-되기와 할 수 있게 되기는 n차원의 틈새 공간과 그 거주민들을 발명해낸다. 그 결과물은 종종 자연이라 불린다. 이렇게 공동-생산된다는 의미에서 비둘기의 본성들은 나의 SF이야기에서 중요하다.

 


1.3 새-인간 선교사, ‘론 스타 스완’이라 불리는 행려 정신병자의 벽화.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디스트릭트 거리에서 도시 비둘기들은 그의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이 벽화는 ‘클라리온 골목 벽화 프로젝트’ 소속의 다니엘 도허티가 2006년에 그린 것인데, 아주 심한 꼬리표가 붙어 2013년에 완성될 수 있었다. ‘SF 거리예술팀’의 제인 브레그먼이 쓴 「새-인간 선교사」 이야기는 ‘SF 거리예술 웹사이트’에 2014년 10월 7일에 게재되었다.[링크 참조] 사진은 제임스 클리포드(ⓒ2009)가 찍은 것으로, 다니엘 도허티와 ‘클라리온 골목 벽화 프로젝트’의 양해를 구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장소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는 흐린 날씨에도 자기 집 다락방을 찾아 되돌아온다.[각주:16] 길 찾기 감각과 방향 감각을 가진 비둘기들은 그들을 경주시키는 비둘기 애호가, 행동신경생물학적으로 비둘기의 성향과 항해술을 연구하는 과학자, 적의 영토를 가로질러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스파이, 비밀을 실어 나를 양질의 비둘기를 필요로 하는 추리 소설 작가 등에게 사랑을 받았다.[각주:17] 대체로는 항상 남자나 소년인 전 세계의 비둘기 경주광들—비둘기 경주는 카이로나 이스탄불 같은 도시의 지붕과, 베를린 같은 유럽 도시의 무슬림 이민자 이웃의 지붕 위에서 펼쳐지는 어쩌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은 재능이 보이는 새끼를 선별해 세심히 키워내서 비둘기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출발지로 귀소하게 만든다. 물론 평범한 도심 비둘기들도 훌륭한 귀소능력을 가진다.

 

비둘기는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길을 찾을 것이다. 비둘기는 비행 중 자기 아래로 보이는 사물과 무리를 탁월하게 인식하고 식별해 낸다. 1970~1980년대 미국의 해안 경비대는 비둘기와 함께 해상 구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비둘기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사람과 장비를 인간보다 더 잘 찾아냈기 때문이다.[각주:18] 실제로 같은 상황에서 인간의 정확도가 38%라면, 비둘기의 정확도는 93%였다. 비둘기들은 헬리콥터 하단 관측함에 앉아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신호판을 쪼아댔다. 비둘기가 고립되지 않고 사람과 함께 일한 경우 정확도는 100%에 근접했다. 확실한 것은 비둘기와 해안 경비원은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비둘기들은 함께하는 사람이 무엇을 찾고 싶어 하는지를 배워야 했다는 점이다. 사람과 비둘기는 교육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문제 안에서 서로를 유능하게 만들 방법을 독창적으로 고안해내야 했다. 그러나 비둘기들은 훈련을 끝내고 실제로 해상 난파 피해자들을 구하는 일에 투입되지 못했는데, 1983년에 헬리콥터 두 대가 충돌해 정부 지원이 끊기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이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에 미심쩍어하는 인간 회의론자들을 설득했던 비-인간 생물체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과학자들은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몸 위 페인트 자국이나 그 밖의 다른 표식을 골라내는 행동 여부로 이 재능을 알아보았다. 비둘기는 이 능력을, 최소 두 살 배기 아동, 히말라야 원숭이, 침팬지, 까치, 돌고래, 코끼리 등과 공유한다.[각주:19] 서구에 영향을 받은 심리학과 철학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 이론과 방법에서 개인주의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이른바 ‘자기-인식’에 굉장한 무게를 둔다. 누가 자기인식을 할 수 있고 누가 못하는지를 가려내는 실험을 고안하는 일은 일종의 경쟁적인 인식론적 스포츠이다. 비둘기는 1981년 스키너의 실험실에서 첫 거울 시험을 통과했다.[각주:20] 《사이언스 뉴스》는 2008년 게이오 대학 연구진이 거울과 라이브 비디오 이미지를 이용해 진행한 자기인식 실험에서, 5~7초의 시간지연이 있었음에도 비둘기가 세 살 배기 아동보다 더 뛰어났음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각주:21] 비둘기는 사진 속 여러 사람도 아주 잘 골라내는데, 게이오 대학 와타나베 시게루 교수의 비교 인지신경과학 실험실에서 비둘기들은 모네와 피카소의 그림을 분간해내고 나아가 이를 일반화해 서로 다른 유파에 속한 다양한 화가의 낯선 그림들을 식별할 수 있었다. [각주:22][이 결과를 바탕으로] “내 새의 뇌 인지능력은 너의 유인원의 뇌 인지능력보다 더 낫거나 같다”는 식의 뻔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위 사건들은 그보다 더 흥미로우며, 서로 잘 지내면서 새롭게 나타날 유사성과 차이 모두를 돌보는 데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담고 있다. 비둘기, 사람 그리고 [기계]장치(apparatus)는 다종 관계의 세상에서 서로 새로운 뭔가를 할 수 있게 하려고 함께 뭉쳤던 것이다.

 

 

일정한 설정상황에서 자기인식적인 자기-되기의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주 좋지만, 생물체들이 해나갈 삶의 방식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서로와 다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중요하다. 경주비둘기의 다락방에서든 도시 광장에서든 말이다. 과학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를 하지만, 그 대신 여기에서 나는 타냐 베로코프의 온라인 에세이 「경주 비둘기 포스트」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언어 소통의 선생님이자 다른 동물들의 평생의 동반자인 그녀는 남편 존 베로코프와 함께 캘리포니아 팔로마 경주비둘기 클럽의 회원인데, 그녀의 남편은 주로 다른 남자들과 새를 경주시키는 일을 한다. 타냐 베로코프는 자신이 가진 사회과학 지식과 미국의 대중문화에 의지해, 심리학자 존 보울비의 ‘애착이론’과 티나 터너의 노래 〈사랑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야〉의 가사를 드러내놓고 활용해서 어떻게 비둘기 애호가들이 부모 비둘기들을 도와 자식 비둘기들을 키우는지를, 그리고 자식 비둘기들을 차분하고 자신감 넘치고 믿음직하며 사회적으로 유능한 경주 전서구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 그 비둘기들이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끼도록 돕는지에 관해 말한다.[각주:23] 베로코프는 비둘기의 인식방식 및 사회적 관습을 이해하기 위해 비둘기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비둘기-사람(pigeon people)의 의무를 묘사하며, 그래서 베로코프는 ‘인식’이라는 말의 관용구로 ‘사랑’, 그것도 도구적 사랑이라는 의미만 가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말을 쓴다. 비둘기이자 사람인 이러한 행위자는 종과 종의 관계이자 종 내부의 관계를 맺는다. 베로코프는 비둘기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몸짓과 자세, 비둘기끼리 보내는 시간, 그리고 비둘기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베로코프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우리 비둘기들은 서로 일종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꽤 잘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우리 비둘기들은 진짜 사랑하는 일을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베로코프가 보기에 “진짜 사랑하는 일”은 “사랑에 빠지고 싶은 감정적 욕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각주:24]베로코프가 말하길, 비둘기들이 하고 있는 일은 자신들의 비둘기적인 사회적 파트너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일이며 그래서 그것은 또한 비둘기-인간이 비둘기들에게 빚을 지는 일이다. 베로코프는 어린 비둘기의 성장 욕구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보울비의 애착이론을 이용하는데, 이 어린비둘기의 파트너들은 다른 비둘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비둘기에게 응답할 수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베로코프가 묘사하는 장면이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둘기 간 왕따, 비둘기와 인간 모두에게 고된 경주의 노동, 관심과 사랑을 두고 벌이는 경쟁, 일부 비둘기들을 요리하는 요리법 등 이 모든 것이 베로코프의 글에 담겨있다. 나의 논점은 이러한 글 혹은 이러한 스포츠가 결백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관계의 엄청난 복잡성과 활발한 다종 SF실천의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비둘기블로그

 

회복과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는 내 SF실천의 주제들이다. 비둘기를 향한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혹은 다른 생물종이나 인간이 세운 건축물에 해악을 끼치는 비둘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모두 다 가능하다. 나는 그보다는 도시 공기 오염의 차등적(differential) 부담이라는 문제로 방향을 돌리고 싶은데, 이 문제는 인간의 사망률과 질병발생률이 대체로 인종과 계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이는 인간-과는-다른 존재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지만, 그것은 비율로 나타나지 않는다.) 폐허가 된 동네나 사회관계 모두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캘리포니아 <환경정의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비둘기들은 우리의 동반자들이다. 우리는 ‘비둘기-블로그’라 불리는 예술 액티비즘 기획의 세포조직들 안에서 트러블과 함께 머물 것이다. ‘비둘기-블로그’는 예술가이자 연구자인 베아트리즈 다 코스타와 그녀의 학생들인 시나 하젝와 케빈 폰토가 진행한 기획으로, 그들은 SF 패턴을 여러 인간, 동물, 그리고 사이보그 공동제작자로 엮었다.

 

2006년 8월 경주비둘기는 도시 사람과 도시 경주 비둘기를 통신기술과 긴밀히 연결시킨 세 번의 공공 사회 실험의 참여자로서 비행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에서 진행한 실험적 비평이론 세미나의 일원으로 한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산호세 캠퍼스에서 열린 ‘일렉트로닉 예술을 위한 사회 간 예술 및 상호연결’이라 불리는 7일 간의 축제에서 두 번 비행했다. [각주:25]비둘기-블로그는 “전서구, 예술가, 엔지니어, 그리고 비둘기 애호가들” 간의 폭넓은 협력을 필요로 했으며, 이들은 “대기질 상태에 관한 정보를 모아 일반 대중에게 배포하려고 고안된 풀뿌리 과학 데이터 수집 계획에 참여했다.”[각주:26] 전 세계적으로 경주 비둘기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다. 그들이 경쟁적인 남성 스포츠와의 관계, 그리고 교차 종들의 깊은 애정관계 안에서 노동계급 인간과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감시, 통신 기술, 네트워크 분야에서 경주비둘기의 역사적 능력은 유구하고 또 매우 중요하다. 수십 년 동안 조류학 연구실과 심리학 연구실에서 이 경주비둘기들은 노동자이자 주체였다. 하지만 경주 전서구들은 비둘기-블로그가 있기 전에는 이 축제에 다른 참여자들인 예술 활동가들과 함께 초대받는 적이 없다. 이 기획은 “저항 행동을 추구하려고” 시민과학 기반의 저렴하고 기술적응력이 높은 DIY(do-it-yourself) 전자기기와 여러 종들이 공동 생산한 예술과 지식을 결합하고자 했다.[각주:27]데이터를 수집한 이유는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증폭시키고, 영감을 주고,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지, 대기오염에 관한 전문 과학과 모니터링을 대체하거나 능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데이터들은 여러 실천 영역에서 더 나은 창의적인 지적 행위를 낳으려고 생산된 것이었다. 다 코스타는 대기오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색다른 어떤 것 안에서 협동을 촉발하기 위해서 이 기획에 착수한 것이다. 즉 그 결과로 나올 차이를 인정하며 회복을 필요로 하고 또 회복할 수 있는 평범한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다종 예술 안에서 협동을 촉발하기 위해서이다.

 

 

캘리포니아 남부, 그 중에서도 특히 로스앤젤레스 주의 대기오염은 악명이 높다. 대기 오염은 특히 고속도로, 발전소, 정제공장 인근의 사람과 다른 생물체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장소들은 대개 노동계급․유색인종․이민자(이것들은 서로 배타적인 범주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가 사는 동네 혹은 그 주변에 모여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공식 대기 오염 측정 장치는 교통량이 많은 지역과 잘 알려진 오염 진원지로부터 떨어진 지점에, 그리고 사람과 다른 많은 식물 및 동물이 호흡하는 지대보다 더 높은 고지에 설치되어 있다. 각각의 측정 장치는 수 천 달러를 호가하고 기기 인접지의 가스만 측정할 수 있는데, 이때의 측정은 분지(basin)의 공기량을 추정하는 다양한 모델에 의존한다. 장비를 잘 갖춘 경주 비둘기는 귀소 비행을 위해 날려 보내진 땅뿐만이 아니라, 정부 기기가 접근하지 못하는 주요 고도를 비행함으로써 실시간으로 대기 오염 데이터를 연속해서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또한 인터넷을 경유해 시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될 수 있다. 비둘기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협력을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종류의 돌봄과 응답-능력이 그러한 협력을 촉발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이는 누구인가? 

 

 

다 코스타는 장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기획을 위해 개발한 비둘기 ‘배낭’은 GPS (위도․경도․고도)와 GSM(이동전화 통신)이 결합된 유닛과 안테나 한 쌍, 일산화탄소/산화질소(CO/NOx) 오염을 측정하는 차량용 이중센서, 온도계, 가입자 인식모듈카드(SIM) 접속기, 미세제어장치와 표준적인 전자기기 부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결국 이런 식으로 고안된 SMS가 가능한 개방형-플랫폼 휴대전화를 개발했고 관심 있는 누구나 다시 제작하고 목적에 맞게 변경할 수 있게 했다.”[각주:28] 연구자-예술가-엔지니어들은 기본 기술을 설계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지만, 배낭이 비둘기에게 알맞도록 작고, 편하고 그리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약 1년간 직접 다종 신뢰를 형성하고, 새, 기술, 사람을 결합하는 데 필수적인 지식을 쌓았다. 프로젝트의 일원이 아닌 기회주의적 매가 짐을 잔뜩 실은 전서구를 공중에서 낚아채가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소한 자신의 경주 비둘기를 사육하고, 기르고, 길들이고, 사랑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강요를 받아 집에 느릿느릿 돌아오는 불안하고 불행한 새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연구자들과 비둘기 애호가들은 자신감과 기술을 가진 새들을 필요로 하기에 서로를 상호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수많은 합 맞추기, 새장에서의 무수한 균형 잡기 훈련, 정통한 지식을 가진 관대한 비둘기 애호가 밥 마츠야마(그는 중학교 매점 주인이자 과학교사이기도 하다)와 그의 재능있고 숙련된 비행사들에게 배우고 익힌 수많은 배움을 의미했다. 비둘기들은 인식모듈 카드가 아니라 살아있는 공동생산자였다. 예술가-연구자들과 비둘기들은 비둘기 애호가 남성들의 지도하에 교류하고 훈련하는 법을 함께 배워야했다. 모든 참가자들은 서로를 유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사변적 우화 안에서 서로와 “함께-되었다.” 수많은 실험 비행 끝에, 다종 팀은 공중에 남긴 전자 발자국이라는 실뜨기 패턴을 추적할 준비가 되었다.[각주:29]


1.4 인간, 비둘기, 전기기술로 이루어진 비둘기-블로그 팀. 비둘기-블로그를 위해 데보라 포스터가 찍은 사진이다. 베아트리즈 다 코스타의 예술작품을 사후 관리하는 로버트 니데퍼(Robert Niediffer)의 양해를 구했다.

 

 

2006년의 퍼포먼스와 비둘기-블로그 웹사이트에 대해 수많은 언론기사와 반응이 있었다. 다 코스타는 텍사스에서 온 한 엔지니어가 조류의 공기역학을 응용한 소형 자동 공중 보안 기기의 개발을 위해 〈미 국방첨단과학기술 연구소〉의 협력연구지원에 공동저자로 참여해보자며 접근해왔다고 한다. 농담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인간-과는-다른 동물을 무기나 스파이로 쓰는 오랜 군사적 이용은 21세기 들어서는 동물-애호가가 되거나 더욱 “기술광(techy)”이 되는 정도에 머물렀다.[각주:30]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PETA)은 동물학대를 이유로 비둘기-블로그를 폐쇄시키고자 했다. 페타는 다 코스타가 소속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본관을 항의 방문해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의 반대이유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비둘기-블로그가 비-인간 동물을 이용하는 일이 정당화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과학에 기반한 실험을 한 것(물론 페타는 이 역시 반대할 것이다)도 아니며, 더더구나 최소한의 목적론적이고 기능적인 이유(질병 치료, 게놈 지도 등)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리 주체를 확장하거나 과학을 진보시키는 진지한 작업과 비교했을 때 예술은 그저 하찮은 놀이에 불과했다. 다 코스타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는 누구인가? 누군가가 치러야 할 대가는 어느 정도인가?’와 같은 범세계정치와 예술․정치․과학에서 동물과 협동하는 물질적-기호학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반문한다. “정치[그리고 예술] 행위의 일환인 인간-동물의 작업은 과학의 우산 아래에서 틀지어진 동일한 종류의 활동보다 정당성이 덜한 것인가?”[각주:31] 어쩌면 목적론의 명령이나 안정된 분류 및 기능을 벗어난, 바로 놀이의 영역에서 진지한 세계다움(worldliness)과 회복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분명 이것이 SF의 전제다.

 

 

 

 

동물권 요구자들로부터 동물 및 동물-인간 세계짓기의 여타 옹호자들을 분리하는 투쟁이나 입장이 직선적이고 닫혀있는 양 글을 쓰는 것은 너무 쉬우며 사실과도 다르다. 이 쟁점에 관련해 동물을 사랑하는, 의견이 서로 다른 페미니스트들 간의 논의로, Potts, Annie, in conversation with Donna Haraway. “Kiwi Chicken Advocate Talks with Californian Dog Companion.” In “Feminism, Psychology and Nonhuman Animals,” edited by Annie Potts, special issue, Feminism and Psychology 20, no. 3 (August 2010): 318–336를 보라.비둘기-블로그는 녹색 친환경 활동가들을 포함해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의 반응이 다 코스타로 하여금 캘리포니아의 경주 비둘기들이 훌륭하게 날아 종들을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희망적인 뭔가를 열었다고 느끼게 했다. 코넬대학 조류학 실험실이 다 코스타에게 대학교 시민 과학 계획의 일환인 “도시 새 정원”의 위원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이 든 보행자부터 등교하는 아이를 아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집한 데이터가 대학 연구와 시민들의 애정 및 의문점을 한데 모은 데이터베이스의 일부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되었다. 코넬대학의 시민 과학 계획과 아주 밀접히 연결된 ‘피죤워치[비둘기감시] 기획’(Project PigeonWatch)을 보자. 그들은 흔한 도심 비둘기의 상이한 모집단에서 색깔 유형의 지역별 차이를 조사한다. 이 기획 중 하나가 워싱턴DC에서 있었고, 도시 학교 단체의 협조를 받아 도시 비둘기를 관찰 및 기록했다. 이러한 테라폴리스의 작업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도시 아이들(“소수” 집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은 멸시 받는 새들을 주목할 가치가 있는 소중하고 흥미로운 도시 거주민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도 새들도 도시의 “야생 동물”이 아니다. 두 집단 모두 상호작용하는 시민주체들이자 객체들이다. 하지만 나는 비둘기들과 워싱턴DC의 흑인 아이들이 둘 다 난폭하고, 더럽고, 제자리에 있지 않고, 떠돌아다닌다는 이유로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도상학적 낙인을 이고 살아간다는 점을 잊지 않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날개 달린 쥐”로 보던 비둘기를 삶과 죽음이 있는 사교적인 새들로 보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아이들은 비둘기를 못살게 굴고 때로는 신체를 학대했던 이들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존중해야할지 몰랐던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자 지지자로 변해갔다. 학교아이들이 응답-할-수-있게 된 것이다. 비둘기들이 사람들과 정서적․인지적 관계를 맺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둘기들 또한 아이들을 되돌아봤을 것이며, 적어도 괴롭힘은 당하지 않게 되었다. 내 생각에 이러한 경험담은 성취를 이룬 만큼의 이야기이자 초대장이다. 하지만 멸시당하는 도시 거주자들의 종 상호 간 치유의 공간은 닫힐 것이 아니라 더 넓어져야 마땅하다.[각주:32]

 

뱅시안 데스프레는 전서구와 그들과 협조자들 둘 다를 육성하는 비둘기 애호가 공동체가 소멸될 위기에 직면하여 그들을 결합시킬 또 하나의 예술 기획에 대해 쓴 글에서, 예술가 마탈리 크라세가 2003년 프랑스 쇼드히에서 디자인한 비둘기 새장이 무엇을 기념하는지 묻고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비둘기 애호가의 비둘기 사랑이 없다면, 사람들과 새들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가 없다면, 선별과 도제의 기간이 없다면, 관습의 전승이 없다면, 남은 것은 비둘기들이지 전서구[우편․통신 비둘기]나 항로 안내 비둘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기념되는 것은, 동물만도, 관습만도 아닌 프로젝트의 기원으로 분명하게 기록된 두 “함께-되기”의 활성화이다. 달리 말해 발생하게 된 것은 관계들로, 이 관계들로 인해 비둘기들은 사람들을 재능 있는 비둘기 애호가로 바꾸고, 비둘기 애호가들은 비둘기를 믿음직한 경주 비둘기로 바꿔놓는다. 이것이 바로 이 작업이 기념하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성과를 현재로 연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어떤 기억을 만드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과제를 부과한다. 이것은 일종의 “반복(reprise)”이다.[각주:33]

 

기억하기(re-member) 즉 다시-일원되기와, 기념하기(com-memorate) 즉 함께-기억하기는 적극적으로 반복하기, 되살아나기, 되찾기, 회복하기이다. 다종, SF, 함께-되기의 실뜨기 세계짓기에 헌신한 다 코스타와 데스프레는 동반종들이다. 그들은 기억한다. 그들은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호혜가 없다면 사라질 무언가를 살의 현재(fleshly present)로 유인하고 또 연장한다. 전서구, 경주 비둘기, 도심 비둘기는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과 기존의 사람들 모두에게 응답-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상이한 종이자 살고 죽는 방식이 상이한 사람들인 도시 거주자들과 시골 사람들은 서로를 믿음직한 항해사(voyageurs fiables)와 함께하는 재능 있는 비둘기 훈련사(colombophiles talenteuex)로 만든다.


1.5 마탈리 크라세가 2003년 프랑스의 누보 코망디테(Les nouveaux commanditaires) 재단의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 한 캡슐형 비둘기집. Mediation-Production: artconnexion. Lille, France. ⓒ Andre Morin.

 

 

데스프레와 다 코스타는 마탈리 크라세와 함께 실뜨기 놀이를 하며, 테라폴리스 안에서 매듭된 모양과 매듭될 가능성을 주고받는다. 크라세는 산업 디자이너로, 이는 순수 예술가라면 관여할 필요가 없는 일 즉 파트너에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협업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다 코스타도 예술가 연구자이자 다종 예술 활동가로서 자기의 일과 놀이 안에서 이런 일을 실천한다. 크라세는 ‘보부아-엉-컴브헤시’(Beauvois en Cambrésis)의 비둘기 애호가 연합인 라데팡스(la Défense)와 카드리 공원의 의뢰를 받아 비둘기집을 설계했다. 캡슐형 비둘기집의 내부공간은 기능적으로 나무처럼, 마치 세상의 중심축처럼 조형되었고, 외부공간은 이집트의 옛 비둘기집 디자인을 본 따서 만들었다. 비둘기를 사육하고, 기르고, 날리고 또 그들과 함께-되기를 한 사람들이 의뢰한 이 새들을 위한 집에는 역사, 신화 그리고 물질세계가 작동하고 있다.

 

탑 모양을 띤 다른 비둘기집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즉 제국의 피조물을 위한 또 다른 다종 치유의 제안이 종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붙잡을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이번에는 호주 멜버른, 야라강(yarrar river) 연안에 세워진 배트맨 공원에 있다. 이곳은 유럽인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우룬제리(Wurundjeri) 사람들의 영토였다. 야라 강을 따라 정착이 이루어진 이 식민지는 이후 황무지, 하수처리장, 화물과 철도 수송지가 되었고, 이로 인해 습지(백인 과학의 용어)와 고향(country)(다차원적이고 이야기가 있는 장소를 뜻하는 백인 원주민의 용어)은 파괴되었다. 습지와 고향은 고양이 요람, 끈놀이, 거미집짓기와 ‘마츠카-우마’ 만큼이나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를 하는 데 있어, 그 이름과 모양은 서로에게 필요하지만 이것들은 동형적이지 않다.[각주:34]이 이름들과 모양들은 연결되고 갈라지고 뒤엉킨 역사들에 거주한다.

 

 

규모가 작은 배트맨 공원은 1982년 버려진 화물 열차 역에 지어졌고, 비둘기집은 비둘기가 도시의 빌딩과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게 하기 위해 1990년대에 지어졌다. 이 비둘기집은 시의 도심 비둘기 관리계획의 일환으로 세워진 탑 구조물이다. 이 비둘기들은 비둘기 애호가나 훈련사의 사랑을 받는 경주 비둘기가 아니라, 우리가 방금 몇 문단 전에 만났던, 즉 국제적으로 저명한 코넬대학 조류학 연구실과 연결된 워싱턴DC의 도시공원프로그램에서 등장했던 도시의 “하늘을 나는 쥐”인 그 비둘기이다. 유럽인과 함께 온 멜버른의 비둘기들은, 야라강 습지에 들어서면서 고향을 돌볼 책임을 질 수 있는 전통적인 원주민 토지 주인 대부분의 땅을 뺏은 생태계와 세계 안에서 번창했다. 1985년에 ‘우룬제리족의 토지보상 및 문화유산 위원회’가 창립됐는데, 창립 목적 중 하나는 오늘날의 호주 내에서 우룬제리족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키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 위원회가 배트맨 공원이 자리한 땅의 부분적 치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야라강 연안 지역이 우룬제리족에게는 중요한 장소였다는 점이다. 1835년 사업가이자 탐험가였던 존 배트맨은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우룬제리 원로들과 문서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유럽인이 “원주민 땅의 주둔과 점령을 그 전통적인 땅 주인들과 직접 협상했던” 처음이자 유일하게 기록된 사례이다. “존 배트맨은 현재 멜버른 교외 지역의 땅 대부분을 포함하는 600,000에이커의 땅을 모포 40장, 도끼 42자루, 칼 130자루, 가위 62개, 거울 40개, 손수건 250장, 셔츠 18장, 플란넬 재킷 4벌, 옷 4벌, 밀가루 150 파운드에 사들였다.”[각주:35]뉴사우스웨일즈의 영국 총독은 여왕의 권한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 무례한 조약을 파기했다. 어쨌든 이러한 다사다난한 역사는 간척된 도시의 땅을 회복한 것이며, 눈에 도드라지는 비둘기 탑을 간직한 이 작은 공원 안에서 상속되고 기억(다시-일원되기)되어야 한다.


1.6 멜버른 배트맨 공원에 있는 비둘기 집, 닉 카슨 촬영, 2008년.

 

 

배트맨공원의 비둘기집은 시민과학을 위한 예술 연구나 경주비둘기 공동체가 의뢰한 산업 디자인 작품이 아니라, 산아제한—혹은 더 적절하게는 부화제한—의 기술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도시의 다종 번창을 위한 결정적인 기술이다. 도심 비둘기의 생식력은 그 자체 도시의 물질적 힘이며 또한 땅이 정착민과 이주민으로 포화상태이고, 그만큼 습지 풍토의 새와 원주민의 땅을 약탈했음을 알리는 강력한 기표이기도 하다. 트러블과 함께 머무는 자의 과제는 다종 회복이자, 호주의 관용어가 연상시키듯이, 어떻게든 덜 부정적이고 더 실험적인 정의를 실행하며 “함께 잘 지내기”이다. 나는 이 비둘기집을 소규모의 실천적인 실연(實演/enactment)이자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의 응답-능력에 더 개방적이기를 상기시켜주는 것으로 보고 싶다. 응답-능력은 부재와 현존, 죽이기와 키우기, 살기와 죽기에 관한 것이며, 이 자연문화적 역사의 실뜨기에서 누가 어떻게 살고 죽는지를 기억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비둘기집에 있는 둥지상자 200개는 와서 알을 낳으라고 비둘기를 초대한다. 사람들은 하단부를 통해 비둘기 알을 비둘기가 품을 수 있는 인공 알로 바꿔놓는다. 사람들이 비둘기집 근처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허용 및 장려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먹이를 줄 수 없다. “영속농업, 교육 및 먹거리를 키우는 기획”에 관한 글을 쓰는 블로그인 피치포크(Pitchfork)는 배트맨공원의 비둘기집에 주목했는데, 비둘기집이 비둘기-인간의 갈등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다루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새를 한 곳에 모아 비옥한 생산물 즉 퇴비로 쓸 배설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블로거가 암시적으로 지적했듯이, “비둘기 거름을 식량생산시스템으로 거둬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비둘기가 날아오게 하는 것이다.” [각주:36]얼마 전까지 하수처리장이었던 공원에서, 영속농업 세계에서 나온 이런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 비둘기집은 생명옹호(pro-life[낙태반대])의 기획이 아니다. 내 생각에, 생명옹호라는 말이 지닌 스산한 미국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어떠한 진지한 동물-인간의 함께-되기도 생명옹호의 기획일 수 없다. 그리고 이 시립 비둘기 탑이 불평등한 조약, 정복, 습지 파괴를 보상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획은 순진무구하지 않으며 질문을 던지는 지속적인 ‘다종 함께 잘 지내기’를 위한 패턴 속의 가능한 실 한 가닥이다.

 

 

 

 

믿음직한 항해사들

 

반려종은 늘 서로를 감염시킨다. 비둘기는 세계 여행자고, 이런 여행자는 병원체로서 유익하든 해롭든 많은 것을 실어 나른다. 육체의 윤리적․정치적 의무는 전염시키거나, 전염시켜야 하는 데 있다. 쿰 파니스, 즉 한 상에서 식사하는 반려종. 나의 이런 비둘기 이야기 같은 것을 왜 말해야 할까? 더구나 이 이야기는 결론은 없고 단지 서두만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에서 강화되는 상당히 결정적인 응답-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이 중요하다. 바로 이 디테일이 현실적인 존재를 현실적인 응답-능력과 연결한다. 스파이이자, 경주새, 정보전달자, 도시 이웃, 무지개빛 성애 과시자(sexual exhibitionist), 새의 부모, 사람들을 위한 젠더 조력자, 과학적 주체이자 객체, 예술-공학적인 환경 리포터, 해양 탐색 및 구조 노동자, 제국주의 침략자, 화풍(畵風)의 식별자, 토착종, 애완동물 등으로서 지구를 돌면서 사람을 포함한 여러 종의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 비둘기들은 역사를 만들다. 어떤 이야기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나게 할 때마다 혹은 어떤 이야기가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소개할 때마다, 번영의 돌봄을 위해 꼭 필요한 근육은 어떤 유산소 운동을 하게 한다. 이런 유산소 운동은 집단적 사고 및 운동을 더 복잡하게 향상시킨다. 얼핏 보면 엉뚱해 보이지만 결국 직물에 필수적이라고 밝혀진 엉킨 실 몇 가닥을 뒤따라가 추가할 때마다, 나는 복잡한 세계짓기의 트러블과 함께 머물기가 테라폴리스 안에서, 땅 위에서 다 같이 잘 죽고 잘 살기 위한 놀이의 이름이라고 약간은 더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끔찍한 역사들과 마주하며 그리고 때로는 또한 즐거운 역사들과 마주하며 다종 번영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응답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환경조성의 책임을 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방식의 응답-능력[책임]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 차이들은 중요하다. 생태계에게, 경제에게, 종들에게, 생명들에게.

우리 모두가 요령있는 예술가에게 우리의 새장과 집, 메시지 배낭의 설계를 맡길 정도로 운이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가 트러블로 점철된 시간과 장소에서 항해할 수 있는 방향감각(map sense)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1. 실뜨기는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언어로 옮기자면 영어에서는 고양이 요람(cat’s cradle), 프랑스어에서는 끈놀이(jeux de ficelle), 나바호족언어로는 거미집짓기(na’atl’o’) 등으로 불린다. 이에 대해서는 Haraway, Donna J, “SF: Science Fiction, Speculative Fabulation, String Figures, So Far.” Acceptance Speech for the Pilgrim Award of the Science Fiction Research Association, July 2011. 29:04 minutes. https://vimeo.com/28892350.(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옮긴이] 영상을 문서화한 글로는 다음 링크 https://adanewmedia.org/2013/11/issue3-haraway/를 보라. [본문으로]
  2. [옮긴이] 반려/동반종(companion species)의 ‘컴패니언companion’의 어원은 ‘~와 함께’를 의미하는 라틴어 ‘쿰cum’과 ‘빵’을 의미하는 ‘파니스panis’의 합성어로, 해러웨이는 반려종을 ‘같이 빵을 나눠먹는 자’(with bread)로 부르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반려종이 ‘인간 이후’를 의미하는 포스트휴먼posthuman이 아니라 거름이나 퇴비를 의미하는 ‘컴포스트com-post’, 즉 ‘이후를 함께 하는’ 존재라고 말놀이를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3. 테라폴리스의 수학적인 농담식 해설을 보고 싶다면 Haraway, Donna J, SF: Speculative Fabulation and String Figures/SF: Spekulative Fabulation und String-Figuren. No. 33 in “100 Notes/Notizen, 100 Thoughts/Gedanken,” dOCUMENTA (13). Ostfildern, Germany: Hatje Cantz Verlag, 2011를 보라. [본문으로]
  4. [옮긴이] 테라포밍(terraforming)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및 위성, 기타 천체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말하며, 그 가능성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 통상 화성이 테라포밍의 유력한 후보로 간주된다. [본문으로]
  5. 원시 게르만어와 옛 영어로부터 나온 구만(guman)은 이후 인간(human)이 되었지만, 둘 다 땅과 그 생물체들의 흙이 묻게 되었고 신과 대립하는 땅의 존재인 부식토(humus)와 여성인간(humaine)으로 가득 차 있다. 히브리어에서 아담은 ‘땅바닥’을 뜻하는 아다마(adamah)에서 나온 것이다. 구만의 역사적․언어적인 젠더 어조는 휴먼이나 맨(man)과 마찬가지로 남성적/보편적이다. 하지만 SF 세계짓기 안에서 아담, 구만, 아다마는 점점 더 한 상에서 식사하며 먹고 먹여주는 반려종, 식사 동료, 거름 등 여러 젠더 및 여러 부류의 생명체들을 발효시키는 미생물군이 된다. 영속농업 운동 안에서 토양을 돌봄으로써 땅과 땅에 사는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들을 보살피는 변형적인 생명정치를 논의하는 것으로, Puig de la Bellacasa, “Ethical Doings in Naturecultures.” Ethics, Place and Environment 13, no. 2, 2010, pp. 151–169를 보라. [본문으로]
  6. Strathern, Marilyn, Reproducing the Future. Manchester, U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2. p. 10; Strathern, Marilyn, The Gender of the Gift: Problems with Women and Problems with Society in Melanesi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본문으로]
  7. Whitehead, Alfred North, The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Macmillan, 1933. [한글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관념의 모험, 오영환, 한길사, 1996. [본문으로]
  8. Stengers, Isabelle, Cosmopolitics I and Cosmopolitics II. Translated by Robert Bononno.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0 and 2011. [본문으로]
  9. Despret, Vinciane, “The Body We Care For: Figures of Anthropo-zoo-genesis.” Body and Society 10, nos. 2– (2004), pp. 111–134; Despret, Vinciane, “The Becoming of Subjectivity in Animal Worlds.” Subjectivity 23 (2008): pp. 123–139. 데스프레는 내게 “가능해지기”와 그 밖의 것을 내게 제공해주었다. “함께-되기”는 Haraway, Donna J, When Species Mee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8, pp. 16-17, p. 287에서 발전되었다. [본문으로]
  10.  행위적 실재론과 내부-작용에 대해서는, Barad, Karen,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7을 보라. [본문으로]
  11. 옛 스타일의 민족지학으로는, Jayne, Caroline Furness, String Figures and How to Make Them: A Study of Cat’s Cradle in Many Lands. New York: Charles Scribner & Sons, 1906을 보라. [본문으로]
  12.  Hogness, Rusten, “California Bird Talk.” www.hogradio.org/CalBirdTalk/.(Accessed August 3, 2015) [본문으로]
  13. 나바호족 언어로 ‘나아베호 비나하스죠(Naabeehó Bináhásdzo)’(준자치국가인 나바호국(Navajo Nation)의 법적․지리적으로 정의된 영토) 또는 ‘디나이 비카이우(Diné Bikéyah)’(나바호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는 콜로라도․애리조나․유타․뉴멕시코로 둘러싸인 미국 남서부 네모서리 지역에 위치한다. 나바호족이 자신들의 역사에 관해 연구한 것(이는 디나이의 창조설화 및 학문적 역사 연구를 웹에 기록한 것이다)으로 Denetdale, Jennifer Nez, Reclaiming Dine History: The Legacies of Navajo Chief Manuelito and Juanita. Tucson: University of Arizona Press, 2007을 보라. 다양한 설화와 이름들을 가진 나바호족의 실뜨기 놀이와 실뜨기 모양을 다룬 여러 인터넷 자료, 예를 들어 “디나이 실뜨기 놀이”, 방대한 양의 “나바호족의 실뜨기 놀이 문헌”이 있다. 노회한 나바호족 여성 마가렛 레이 보친클로니가 실뜨기 놀이를 하는 특별 영상으로는, “Navajo String Games by Grandma Margaret”를 보라. 마가렛 레이의 손자 테리 텔러는 나바호족의 실뜨기 별자리 모양을 “So Naal Kaah, Navajo Astronomy”에서 설명한다. 나바호족의 실뜨기 놀이는 거미 여인의 설화를 말하는 계절인 겨울에 주로 한다. [본문으로]
  14. Anderson, Virginia DeJohn, Creatures of Empire: How Domestic Animals Transformed Early Americ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본문으로]
  15. 바위 비둘기는 대략 수만 년 동안 사람과 서로 길들이는 관계를 맺어 왔으며, 오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판에도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장에서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지 않는 한에서 비둘기와 바위비둘기를 구별없이 섞어 쓸 것이다. 집비둘기를 포함한 비둘기 과(科)에는 수십여 종에 달하는 여러 생존 종과 화석화된 종이 있고, 여기에는 서른 종 이상의 현존하는 구대륙의 비둘기 종이 있다. 일부 비둘기 종은 자연에 넓게 분포되어 있고, 또 다른 종은 소규모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특정한 조건을 갖고 있다. 엄청나게 다양한 비둘기 과가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지구에 서식한다. 집비둘기는 수십 가지의 공식적․비공식적인 종류와 품종으로 다양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 도쿄, 런던, 로스앤젤리스, 베를린, 카이로, 케이프타운,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도처에 서식하는 도심 비둘기도 있다. 최신의 “비둘기 품종 목록”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에 언급한 위키피디아 항목을 보라.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igeon_breeds(2016년 3월 20일에 접속했을 때는 2016년 1월 22일까지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비둘기 품종에 대한 구글 이미지 검색은 시각적 만찬을 벌이게 한다. 집비둘기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연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 지역의 일부 품종들, 즉 텀블러 종, 스피너 종, 롤러 종에 관해서는, TurkishTumblers.com을 보라. BBC는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로 바그다드의 비둘기 애호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새와 경주 스포츠의 명맥을 이어왔는지 보여줬는데, 여기에는 인간[남성]들이 자신들의 비둘기를 사랑하고 보살핀 세부적인 몸의 실천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서는 Muir, Jim. “The Pigeon Fanciers of Baghdad.” bbc, March 20, 2009. 2:20 minutes. http://news.bbc.co.uk/2/hi/middle_east/7954499.stm.(Accessed March 20, 2016)을 보라. 비둘기 경주 세계의 사회학적 민족지학 연구로는 Jerolmack, Colin, “Primary Groups and Cosmopolitan Ties: The Rooftop Pigeon Flyers of New York City.” Ethnography 10, no. 4 (2009): 435–457; Jerolmack, Colin, “Animal Practices, Ethnicity and Community: The Turkish Pigeon Handlers of Berlin.”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72, no. 6 (2007): 874–894; Jerolmack, Colin, The Global Pige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3을 보라. 수 세기동안 이란은 비둘기 경주의 열정적인 중심지였다. 여기서는 비둘기 경주가 도박성으로 이뤄지기에 현 정권 하에서 불법으로 취급(하지만 어느 정도 관용된다)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관습으로 남아있다. 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페르시아어/프랑스어의 이중언어적 민족지학으로 다룬 글로, Goushegir, Aladin, Le combat du colombophile: Jeu aux pigeons et stigmatisation sociale (Kasha ya nabard-e kabutarbaz). Tehran: Institut francais des etudes iraniennes, 1997, Bibliotheque Iranienne, No. 47을 보라. 또한 “World Market in Pigeons.” http://www.euro.rml-international.org/World_Market.html.(Accessed August 3, 2015)도 참고하라. 주로 애호가들이 작성한 비둘기 경주와 관련된 글들과 기타 정보를 모아놓은 것으로, “Racing Pigeon-Post.” http://www.articles.racing-pigeon-post.org/directory/articles_index.php.(Accessed February 17, 2012)[현재는 http://racing-pigeon-post.org/]를 보라. [본문으로]
  16. 비둘기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가에 관한 연구로, Walcott, Charles, “Pigeon Homing: Observations, Experiments and Confusion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199 (1996): 21–27. http://jeb.biologists.org/content/199/1/21.full.pdf.(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본문으로]
  17. 경주 비둘기 세계에서 시작되는 범죄 스릴러에 대해서는, Scottoline, Lisa. The Vendetta Defense. New York: Harper, 2001을 확인할 것. 말론 브란도 주연으로 유명한 1954년 영화 《워터프론트》에는 이색적으로 비둘기 경주를 하는 노동계급인 뉴욕의 부두노동자들이 등장한다. 1차 세계대전 중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장에 사는 열두 살 여자 아이가 전서구[우편․통신 비둘기]를 기르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녀들을 위한 감동적인 역사 미스테리 스릴러로, Jones, Elizabeth McDavid, The Night Flyers. Middletown, WI: Pleasant Company, 1999를 보라. 여자 아이는 미군의 정보병이 되기 위한 야간 비행 훈련을 수락한다. 이 소설에서 비둘기들 자체는 생생하고, 살이 붙어 있는(flesh out)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역이다. [본문으로]
  18. U.S. Coast Guard, “Pigeon Search and Rescue Project, Project Sea Hunt.” http://www.uscg.mil/history/articles/PigeonSARProject.asp.(Modified January 12, 2016. Accessed March 20, 2016). [본문으로]
  19.   가령 Prior, Helmut, Ariane Schwarz, and Onur Gunturkun, “Mirror-Induced Behavior in the Magpie (Pica pica): Evidence of Self-Recognition.” plos Biology 6, no. 8 (2008): e202. doi: 10.1371/journal.pbi0.0060202.(Accessed August 3, 2015)을 보라. 거울 테스트는 1970년 고든 갤럽(Gordon Gallop Jr)에 의해 개발되었다. [본문으로]
  20. Epstein, R., R. P. Lanza, and B. F. Skinner, “‘Self-awareness’ in the Pigeon.” Science 212 (1981): 695–696과 Allen, Robert, James DeLabar, and Claudia Drossel, “Mirror Use in Pigeons.” http://psychology.lafayette.edu/mirror-use-in-pigeons/.(Accessed August 3, 2015)을 보라. [본문으로]
  21. Keio University, “Pigeons Show Superior Self-recognition Abilities to Three Year Old Humans.” Science Daily, June 14, 2008. www.sciencedaily.com/releases/2008/06/080613145535.htm.(Accessed August 3, 2015)과 Toda, Koji, and Shigeru Watanabe, “Discrimination of Moving Video Images of Self by Pigeons (Columba livia).” Animal Cognition 11, no. 4 (2008): 699–705. doi: 10.1007/s10071-008-0161-4.(Accessed August 12, 2015)을 보라. [본문으로]
  22. Watanabe, Shigeru, Junko Sakamoto, and Masumi Wakita, “Pigeons’ Discrimination of Paintings by Monet and Picasso.” Journal of the Experimental Analysis of Behavior 63, no. 2 (March 1995): 165–174. doi: 10.1901/eab.1995.63-165.(Accessed August 3, 2015). [본문으로]
  23. Berokoff, Tanya. “Attachment,” “Love,” and “Let’s Hear.” Racing Pigeon Posts. http://www.articles.racing-pigeon-post.org/Attachment.html; http://www.articles.racing-pigeon-post.org/Love.html; http://www.articles.racing-pigeon-post.org/Lets_hear.html.(Accessed February 17, 2012, not available on August 3, 2015). 이 세계 속 결혼의 젠더 구조를 보는 매혹적인 창문을 제공한 「듣자」라는 포스트에서 베로코프는 여러 대륙의 비둘기 애호가들의 아내들이 비둘기 경주, 비둘기, 자신의 남편, 그리고 비둘기를 돌보는 데 드는 시간과 노동 및 비둘기를 돌보는 즐거움에 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를 조사했다. [본문으로]
  24. Berokoff, “Love,”, Racing Pigeon Posts. [본문으로]
  25. 베아트리즈 다 코스타는 2012년 12월 27일에 사망했다. 비둘기-블로그를 포함해 그녀의 작업을 보려면, da Costa, Beatriz, “Beatriz da Costa’s Blog and Project Hub.” http://nideffer.net/shaniweb/pigeonblog.php.(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그리고 또한 da Costa, Beatriz, with Cina Hazegh and Kevin Ponto. “Interspecies Coproduction in the Pursuit of Resistant Action.” N.d. http://nideffer.net/shaniweb/files/pigeonstatement.pdf.(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다 코스타의 작업, 그 중에서도 특히 그녀의 마지막 프로젝트 《타자들을 위한 죽음》에 관한 논의로는 Haraway, Donna, Catherine Lord, and Alexandra Juhasz. “Feminism, Technology, Transformation.” Talks on the life and work of Beatriz da Costa. Laguna Art Museum, September 2013. FemTechNet. https://vimeo.com/80248724. 44:51 minutes.(Accessed August 3, 2015)과 da Costa, Beatriz, Dying for the Other, selections, 2011. https://vimeo.com/33170755.(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본문으로]
  26. Da Costa, Beatriz, “PigeonBlog.” In “Interspecies.” Special issue. Antennae, no. 13 (summer 2010): 31. 여기서 인용한 것은 모두 이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집단 기획을 위해 요구된 기술에 의미를 부여한 인간 팀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베아트리즈 다 코스타(예술가, 연구자), 리차드 데로지에(Richard Desroisiers/비둘기 주인), 루퍼스 에드워즈(Rufus Edwards/과학 컨설턴트), 시나 하젝(Cina Hazegh/예술가, 연구자), 케빈 폰토(Kevin Ponto/예술가, 연구자) 밥 마츠야마(Bob Matsuyama/비둘기 주인), 로버트 나이데퍼(Robert Nideffer/교열담당자), 피터 오스터홈(Peter Osterholm/비둘기 주인), 제이미 슐테(Jamie Schulte/전기컨설턴트이자 친구), 워드 스미스(Ward Smith/영상예술가). 또한 da Costa, Beatriz, and Kavita Philips, ed. Tactical Biopolitics: Art, Activism, and Technoscience. Cambridge, MA: mit Press, 2008를 보라. 또한 이 책에는 나의 스토리텔링에 영감을 준 훌륭한 SF 작가 귀네스 존스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Jones, Gwyneth. “True Life Science Fiction: Sexual Politics and the Lab Procedural.” In Tactical Biopolitics: Art, Activism, and Technoscience, edited by Beatriz da Costa and Kavita Philips, 289–06. Cambridge, MA: mit Press, 2008. [본문으로]
  27.  Da Costa, “PigeonBlog”, 32. [본문으로]
  28. Da Costa, “PigeonBlog”, 35. [본문으로]
  29. 나는 생물체들과 그들의 사람들이 협력하여 일과 놀이를 해내는 이야기에 큰 욕심이 있어서, 그 협력의 거친 면과 트러블이 계속되는 일을 잘 보지 않는다. 비둘기-블로그 팀원 중 한 명은 배낭을 메고 나는 법을 익히면서 깃털이 엉클어져 발작적으로 몸부림치는 비둘기들을 지켜보는 일이 이따금씩 힘들었다고 내게 비공식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비둘기들이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자부심을 갖길 희망했다. 하지만 그가 내게 상기시켜준 것은 예술이나 과학을 위한 것이든 정치를 위한 것이든 — 아니면 셋 모두이든 — 일과 놀이는 순진무구한 활동이 아니며 그로 인한 짐을 구성원이 공평하게 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었다. [본문으로]
  30. 최근에 이란의 비둘기 스파이와 관련된 보고서로 Hambling, David. “Spy Pigeons Circle the World.” Wired, October 25, 2008. http://www.wired.com/dangerroom/2008/10/stop-that-spy-p/.(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다 코스타의 비둘기-블로그 프로젝트와 이란의 핵시설을 감시하는 스파이 새가 연결되어 있다는 햄블링의 추측은 최대한 말을 아껴 표현하자면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하지만 미국이 첨단기술 원격 조종 스파이 드론과 장비를 잘 갖춘 스파이 비둘기 분야에서 이란에 뒤처져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슬람의 정치지도자(mullah)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만하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또한 Denega, Danielle M. The Cold War Pigeon Patrols: And Other Animal Spies. New York: Children’s Press/Scholastic, 2007를 보라. [본문으로]
  31. Da Costa, “PigeonBlog”, 36.  [본문으로]
  32. 1990년대 말 워싱턴DC의 학교 단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던 코넬대학의 마가렛 바커는 이러한 낙관적 관점의 보고서를 제공한다. 이에 대해서는 Youth, Howard. “Pigeons: Masters of Pomp and Circumstance.” Smithsonian National Zoological Park. Zoogoer 27 (1998). http://nationalzoo.si.edu/Publications/ZooGoer/1998/6/pigeons.cfm.(Accessed February 17, 2012)를 보라. [본문으로]
  33. Despret, Vinciane, “Ceux qui insistent: Les nouveaux commanditaires.” In Faire art comme on fait societe, edited by Didier Debaise, X. Douroux, C. Joschke, A. Pontegine, and K. Solhdju. Part I, chapter 7. Dijon: Les Presses du Reel, 2013. 인용한 내용은 데스프레의 글을 도나 해러웨이가 번역한 것이다. 마탈리 크라세가 디자인 한 비둘기 집의 이야기와 그림에 대해서는 Crasset, Matali. “Capsule.” Artconnexion, November 2003. http://www.artconnexion.org/espace-public-public-realm/37-matali-crasset-capsule.(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본문으로]
  34. 호주는 유럽인이 실뜨기를 기록에 남긴 최초의 대륙이다. 호주의 여러 원주민 언어에는 실뜨기를 지칭하는 여러 이름들이 있다. 가령 이르르칼라족(Yirrkala)은 마츠카-우마(matjka-wuma)라고 부른다. Davidson, Daniel Sutherland. “Aboriginal Australian String Figures.”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84, no. 6 (August 26, 1941): 763–01. http://www.jstor.org/stable/984876.(Accessed August 3, 2015)와 “Survival and Revival of the String Figures of Yirrkala.” http://australianmuseum.net.au/Survival-and-Revival-of-the-String-Figures-of-Yirrkala.(Updated March 19, 2015. Accessed August 3, 2015)를 보라. [본문으로]
  35. “Batman’s Treaty.”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Batman’s_Treaty.(Modified July 5, 2015. Accessed August 3, 2015) 나는 한편으로는 내 무지함을 표시해두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결함이 있지만 훌륭한 도구에 감사한 마음으로 별도의 꾸밈없이 위키피디아를 참고문헌으로 남겨둔다. [본문으로]
  36. Downing, Samantha. “Wild Harvest—ird Poo.” Pitchfork Projects. December 16, 2010. http://pitchforkdesign.blogspot.com/.(Accessed August 3, 20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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