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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퀼린 바르뱅의 일기]에 붙이는 서문:  미셸 푸코(1/2)

 

 

 

 

번역       백소하

        정규식

 

 

 

 

 

 


      미셸 푸코의 서문을 읽기 전에 


  푸코가 에르퀼린 바르뱅의 회고록에 붙인 서문은 성에 관한 근대적 이해를 역사화한다. 개인적이든 절대적이든 성별이 진리를 담지하는 것으로 고정되고, 이렇듯 진리로서의 성별을 결정할 권한이 전문가들의 손으로 넘어간 것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었다. 19세기 말 “반음양자”의 성별을 확립하려는 탐문이 궤를 달리한 것은 단일한 성별이 부과되더라도 보호자의 의식적인 선택을 거친 중세의 규범만이 아니다. 이름도 정체성도 못 박을 수 없지만 감정을 향유한 이에게 성별이 강요되었고, 이것은 죽음을 택해야 할 정도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푸코는 살아온 경험이 ‘진정한 성별’의 판정을 통해 기각되는 에르퀼린의 경험을 통해, 엄숙주의가 만연했으리라 여겨지는 빅토리아 시대에 성 자체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확립되었다는 본인의 논지를 재확인하는 듯하다.



  다만 푸코가 에르퀼린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 과연 에르퀼린이 마주한 부조리에 얼마나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이 서문을 읽는 내내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일례로 트랜스젠더 운동가이자 저술가인 줄리아 세라노는 푸코가 서문을 쓰고 회고록을 구성하는 방식이 “착취적”이고 “뻔뻔스럽게도 관음증적”이라고 비판한다. 몇 가지 특별한 지점이 없었다면 “진부한 것으로 치부했을 것”이라며 에르퀼린의 회고록에 묻어나는 비애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채, 푸코가 자신의 분석을 입증하기 위해 한 사람의 생애를 독특한 표본으로 사용하고, 나아가 에르퀼린의 삶을 푸코 본인도 인정하듯 동떨어지고 어슴푸레하게 묘사한 파니차의 각색과 엮어 출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르퀼린이 죽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던 ‘진정한 성별’의 요구는 푸코도 인정하고 있듯, 노골적인 부분은 개선되었더라도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을 염두에 둘 때, 푸코의 서문을 밑절미 삼아 진정한 성별에 대한 강박의 구체적 원인을 지목하고, 이를 어떻게 들어낼지를 고민하는 것이 불가피한 과제일 것이다.

                                                                                                                                                         
                                                                                                                        번역자를 대표하며 백소하

 

 

 

 

에르퀼린 바르뱅

 

 

 

진실로 우리에게 진실한 성별(sex)이라는 것이 필요할까? 서구 사회는 이 질문에, 고집에 가까울 정도로 지속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해왔다. 서구 사회는 이 ‘진실한 성별’에 관한 질문을 사물의 질서 안으로 완고하게 끌고 들어왔다. 그 질서 안에서 개인은 어쩌면, 중요한 것은 몸의 실재성과 그 쾌락의 세기뿐이라고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학과 법이 반음양자(半陰陽者, hermaphrodite)에게 인정해온 지위를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때 증명되듯, 이 질문은 오랜 시간 동안 제기되지 않았다. 반음양자가 단일하고도 진실한 성별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형성되기 전의 시간은 실제로도 매우 길었다. 반음양자가 두 개의 성별을 가졌음은 몇 세기 동안 꽤 간명하게 동의되는 바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단순히 어떤 합법적인 고문이 요구되는 무서운 괴물이었을까? 사실 상황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고대에도 중세에도 반음양자에 대해 몇 차례 사형이 선고됐다는 증거가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결을 띠는 판결문도 상당수 존재한다. 중세의 규범과 시민법이 정한 규칙은 이 지점에서는 극히 명료했다: “반음양자”라는 명칭은 두 개의 성별을 나란히 가진 자들에게, 각 성별의 비중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부여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세례식에서 둘 중 어느 쪽 성별이 유지될지 결정하는 것은 아버지 또는 대부(代父), 곧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이들의 몫이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더 나아보이는 쪽의 성별, 즉 “가장 활기찬 쪽”이나 “가장 따뜻한 쪽”을 선택하도록 조언을 받기도 했다. 단, 이후 성인의 문턱에서 반음양자들은 결혼할 시기가 되면, 자신에게 배정된 성별이 그대로이기를 바라는지, 혹은 그와는 다른 쪽 성별을 더 선호하는지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지켜야 할 점은, 이때 선택한 성별을 다시 바꿔서는 안 되고 평생 간직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동성애자로 낙인찍히는 고통과 함께 말이다. 프랑스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기에 관해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두 개 성별의 해부학적 혼합보다는 선택한 바를 뒤집는 것이 반음양자들에 대한 비난의 대부분을 불러일으킨 요인이었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생물학적 이론들, 개인에 대한 사법적 이해들, 근대 국민국가의 행정적 통제 형태들은, 하나의 몸에 혼합된 두 개의 성별이라는 개념에 대한 점진적 기각으로, 종내에는 성별 측면에서 불확정적인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졌다. 이후로는 모두가 단 하나의 성별만을 가져야 했다. 모든 이가 그의, 또는 그녀의 본래적이고, 뿌리 깊으며, 단호하고도, 확실한 성적 정체성을 지녀야 했다; [하나의 성별을 지닌 하나의 몸에서 ─ 역자] 나타날지도 모르는 다른 쪽 성별의 요소는 오로지 우연한, 사소한, 심지어는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일 수만 있게 됐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반음양자를 마주할 때 의사들이, 병치되어 있거나 섞여 있는 두 개 성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나 그 두 개 성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세한지를 알아보는 것에 관해 더는 고려하지 않게 됐음을, 그보다는 모호한 겉모습 아래 숨겨진 진실한 성별을 판독하는 것에 관해 고려하게 됐음을 뜻했다. 의사는, 말하자면, 해부학적 측면에서의 눈속임을 몸에서 벗겨내고, 반대쪽 성별의 형상을 가장하고 있을지 모를 신체기관 배후의 하나의 진실한 성별을 발견해야만 했다. 이에 대한 관찰 및 검사시행 방법을 아는 이들에게, 혼합된 성별은 자연의 변장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반음양자는 언제나 “가성 반음양자(假性 半陰陽者, pseudo-heremaphrodite)”[각주:1]였다. 이러한 논지는, 격론이 벌어졌던 몇몇 중요한 사례들을 거치며 적어도 18세기에는 신빙성을 얻어가는 경향에 있었다.

 

 

 

 

 

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분명히, 자유로운 선택의 소실을 의미했다. 사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본인이 어떤 성별에 속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개인의 몫이 아니게 됐다. 대신, 개인에게 어떤 성적 본성이 선택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어떤 사회가 개인에게 자신의 규범을 따르게끔 결과적으로 요청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 됐다. 한편, 법적인 호소가 필요한 경우에는, (예컨대 자신의 진실한 성별에 따라 살고 있지 않다거나, 부적절한 혼인을 했다고 의심되는 이가 있는 때) 법은 아직 충분히 잘 인정되지 않았던 성적 구성(constitution)의 정당성을 정립, 또는 재정립해야만 했다. 그런데 만약 자연이 그 환상이나 우연을 통해 관찰자를 “속이고” 잠시나마 진실한 성별을 숨긴다면, 그때 개인은 또한, 자신의 진실한 성별에 대한 가장 내밀한 앎을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마치 다른 쪽 성별에 속한 것처럼 그 몸을 이용해먹고자 일정한 해부학적 기이성들로부터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심을, 강력히 제기받을 수 있다. 요컨대 자연의 환등상[각주:2]은 개인의 음탕한 행동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로써 진실한 성별에 대한 의학적 진단에 내재된 도덕적 관심사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19세기, 20세기 의학이 위와 같은 환원주의적인 과잉일반화 논리의 많은 지점을 바로잡았음을 잘 알고 있다. 반음양자는 모두 “가성 반음양자”라고 말할 이는 오늘날에는 없을 것이다. 과거 다양한 해부학적 예외들이 아무 차별 없이 받아들여졌던 영역으로 화두를 상당히 제한하더라도 말이다. 나아가, 많은 어려움이 따를지언정, 개인은 생물학적으로 그 개인의 것이 아닌 성별을 택할 수도 있음이 합의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사실상 최종적으로는 진실한 성별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관념이 완전히 폐기된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생물학자들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성과 진실 간에는 복잡하고 모호하지만 중요한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는 관념은,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심리학뿐만 아니라 여론에서도, 적어도 분산된 형태로라도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확실히 우리는 법을 위반하는 행위들에 대해 더 관대해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행위들 가운데 몇몇은 “진실”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수동적인” 남자, “남성적인” 여자, 동성애자가 이미 정립된 질서를 심대하게 어지럽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할 준비는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행위에 무언가 “오류” 같은 것이 엮여있다고 여길 준비 역시 충분히 되어있다. 이때 가장 전통적인 철학적 의미로 이해되는 “오류”란 실재에 적합하지 않은 행위 방식이다. 그리고 성적 이상성(異常性)은 거의 키메라[각주:3]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비춰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러한 행위가 범죄라는 생각에서는 쉬이 벗어나지만, 그러한 행위가 비자발적이든 자발적이든 간에 쓸모없는 것이자 폐기됨이 나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의심에서는 쉬이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한낱 미몽일 뿐인 쾌락에서 깨어나라, 젊은이들이여; 변장을 풀고 그대 모두가 하나의 성별을, 하나의 진실한 성별을 가졌음을 기억하라. 

 

 

그 다음으로 우리는 또한, 우리가 찾아야만 하는 개인의 가장 비밀스럽고도 심오한 진실들이 성의 영역에 있음을, 개인이 어떤 존재이고 또 무엇이 그 개인을 결정하는지를 성의 영역에서 가장 잘 발굴해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울러 몇 세기 동안 성적인 것은 곧 부끄러운 것이기에 숨겨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면, 이제 우리는 개인이 가진 환상의 구조, 자아의 뿌리, 실재와 개인이 맺는 관계의 형태 등 개인의 가장 내밀한 부분은 성 그 자체에 감춰져 있다고 알고 있다. 성의 가장 깊은 곳, 바로 그곳에 진실이 있다.

 

 

자신의 성별을 생각함에 있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성이 우리 안의 가장 진실된 바를 품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 관념의 교차점에 정신분석학은 그 문화적 활력의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성별, 그러니까 우리의 진실한 성별은 물론이고, 비밀스럽게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 관한 모든 진실을,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동시에 약속하는 셈이다.

 

여기 우리의 “진실한 성별”에 관한 기이한 역사에서 끌어낸 문서 하나가 있다. 독특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희귀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19세기 의학과 법이 그 진정한 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캐물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남긴 일기, 더 정확히는 회고록이다.

 

 

 

  1. (역자주) 가성 반음양은 실제로 사용되었고 최근에야 폐기되고 있는 진단명이다. 북미간성협회는 이러한 명칭이 생식샘을 진정한 성별의 터로 본 빅토리아기의 철 지난 명법이며, 이러한 표현이 진정성을 둘러싼 함의를 남겨 강력한 정서적 응어리를 남기기에 문제적이라고 비판하였다. (“On the Word Hermaphrodite,” Intersex Society of North America, Accessed September 26, 2022, https://isna.org/node/16/.) 2022년부터 효력을 발휘하는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에서는 이러한 지적을 수용하여, 해당 표현을 삭제하였다. [본문으로]
  2. (역자주) 환등상(幻燈像, phantasmagorie)이란, 슬라이드 프로젝터의 전신인 환등기로 투사된 이미지를 뜻한다. [본문으로]
  3. (역자주) 키메라란,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통, 뱀의 꼬리를 가진 신화 속 동물로, ‘망상’, ‘비현실적인 생각’, ‘터무니없는 환상’ 등을 뜻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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