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퀼린 바르뱅은 거의 여성으로만 구성된 신실한 환경에서 가난하고 훌륭한 여자아이로 자랐고, 그녀와 친한 이들에게는 알렉시나라고 불렸으나, 마침내 “진실로” 청년이라고 인정을 받았다. 사법적 절차와 민사상 지위 변경 이후 성별을 법적으로 변경할 의무를 지게 되자, 그는 새로운 정체성에 적응할 수 없었고 결국 목숨을 끊었다. 이 이야기에 특별한 강렬함을 더하는 두세 가지 사항이 없었다면, 난 이 이야기를 진부한 것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날짜가 눈에 띈다. 1860년~1870년경은 바로, 반음양자들의 진실한 성별을 확립하기 위해, 나아가 서로 다른 종류의 도착(倒錯, perversion)들을 밝혀내고, 분류하고, 특징짓기 위해, 성적 정체성에 대한 조사가 가장 맹렬하게 수행된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 즉, 이러한 조사는 개인과 종에서의 성적 예외들이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1860년의 한 의학 보고서에 게재된 「정체성의 문제(Question d'identité)」는 알렉시나에 관한 첫 번째 연구의 제목이었고, 오귀스트 타르디유[각주:1]는 자신의 책, 『정체성의 법의학적 문제(Question médico-légale de l'identité)』에서 그녀의 회고록 가운데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을 공개하였다. 아델라이드 에르퀼린 바르뱅, 혹은 알렉시나 바르뱅, 혹은 아벨 바르뱅은 그의 글에서는 알렉시나 혹은 카미유라고 불렸고, 정체성을 향한 여정의 불운한 주인공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소 산만하고 철 지났지만, 우아하고 꾸민 듯하며, 암시적인 투로(이런 식의 문체는 당대 기숙학교에서는 하나의 글쓰기 방식일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알렉시나의 서사는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좌절시킨다. 알렉시나가 속한 여성적 환경에서는, 나중에 의사들이 그의 불확정적인 신체 구조에 들이댄 어려운 진리 게임을 하는 데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듯하다. 모든 이들이 가능한 한 미루던 발견이 두 남성, 사제와 의사에 의해 촉발되기까지는 말이다. 그가 자란 여아 집단 안에서는 점점 더 비정상적인 것이 되었을 그의 어색하고도 볼품없는 몸을, 그것을 본 이들 가운데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여성들에게는 특정한 매혹의 힘이 작용하여, 이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이들의 입술에서 모든 질문을 멈추게 하였다. 앳된 소녀들의 유희에 가득했던 접촉, 어루만짐, 입맞춤에 이 기이한 존재가 선사한 온기는 모든 이로부터 더없이 다정한 환대를 받았는데, 이는 어떤 호기심도 그에 뒤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진한 체하는 소녀들과 이들이 영악하다 생각하는 늙은 선생들 – 그들의 기숙학교에 숨어있는 이 보잘 것 없는 아킬레우스를,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바라볼 때, 그들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처럼 눈이 멀었다는 점에서는 결국 모두 비슷한 셈이었다.[각주:2]적어도 알렉시나의 이야기를 믿는 이는, 모든 것이 (열정, 쾌락, 슬픔, 따듯함, 달콤함, 쓰림 같은) 감정의 세계에서 일어났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세계는 동반자의 정체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주변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않는 세계, 주인 없는 웃는 입만 걸려 있는 세계이다.[각주:3]
알렉시나는 그녀의 새로운 정체성이 발견되고 확립된 뒤의 삶, 그녀의 “진실”되고 “최종”적인 정체성에 관해 회고록에 적은 바 있다. 그러나 적어도 밝혀진 성별의 관점에서 그녀가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하다. 아직 “그”가 아닐 때의 그의 감각과 삶을 복기하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 회고록을 쓰던 당시, 알렉시나는 자살과 그리 멀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 스스로는 확실한 성별이 아직 없었으나, 그녀는 성별이 없는 데서, 혹은 그녀가 함께 살고 사랑하고 너무도 갈망한 소녀들과 같은 성별을 완전히 갖지 못한 데서 자신이 한때 느꼈던 기쁨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서 떠올리는 것은 비(非)정체성의 행복한 연옥이며, 이는 닫혀 있고, 좁고, 내밀하며, 구성원이 기이한 행복을 느끼는 사회들에서의 삶에 의해 역설적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이 행복은 오직 하나의 성별만을 안다는 행복이며, 의무적인 동시에 금지되어 있다.[각주:4]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성별 전환을 진술하는 이들은 강력하게 양성적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그들의 불안은 다른 쪽, 즉, 그들이 갖기를 갈망하는 성별 쪽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표출되고, 또 그들이 속하고자 하는 자들의 세계에서 표현된다. 이 경우, 서로 비슷한 그 모든 몸 사이에서 성적 비정체성이 빗나갈 때 그것이 발견하고 유발하는 부드러운 쾌락을, 종교적인 삶과 학교생활의 극심한 단성성(單性性)이 증진한다.
알렉시나의 사례나 회고록 모두 당시에 별다른 관심을 촉발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이게바우어는 반음양증에 관한 자신의 방대한 사례집에서 이 사례에 대한 요약과 긴 인용구를 달아두었다.[각주:5]당대에 유명했던 류의 모험담 및 의료외설적 소설들을 써낸 다재다능한 A. 뒤바리는 자신이 쓴 『반음양자』의 여러 요소를 에르퀼린 바르뱅의 이야기로부터 빌려온 것이 확실하다.[각주:6]그러나 알렉시나의 생애가 놀랄 만한 반향을 일으킨 것은 독일이었고, 이는 「수녀원에서의 추문」이라는 오스카 파니차[각주:7]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파니차가 타르디유의 저작을 통해 알렉시나의 글을 알게 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파니차는 정신의학자였고, 1881년에 프랑스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의학보다는 문학에 더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 『정체성의 법의학적 문제』를 손에 쥐게 되었을 것이다. 1882년에 독일로 돌아가 정신의학자로 한동안 일하며 그가 그 책을 도서관에서 찾은 것이 아닌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불확정적인 성별의 프랑스 시골 소녀와 바이로이트의 정신병원에서 죽게 되는 광란의 정신의학자의 상상적 만남에는 뭔가 놀라운 점이 있다. 한편에는 가톨릭 시설과 여학생 기숙학교의 온기 속에서 살찌운 은밀하고 이름 없는 쾌락이, 다른 한편에는 공격적인 실증주의가 빌헬름 2세라는 지배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 피해망상과 기괴하게 결합된 사내의, 교회 권력에 맞선 격노가 있다. 한편에는 의사들과 판사들이 불가능하다고 결정한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사랑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당시 반종교적인 글이 범람한 가운데서도 “괘씸할 정도”의 글인 『사랑의 위원회』를 써 1년 투옥을 선고받은 의사, 망명을 간 스위스에서 미성년 여성에 대한 “잔학 행위”를 자행하고 추방된 의사가 있다.
아르망 뒤바리의 연작 『사랑의 불균형들』 중 한 편인 「반음양자」
그 결과는 실로 놀랍다. 파니차는 알렉시나의 사례에서 몇 가지 중요한 요소, 알렉시나라는 바로 그 이름과 의학 검사 장면을 가져왔다. 내가 알기 어려운 이유로 (아마 수중에 타르디유의 책이 없는 상황에서 책을 읽은 기억에 의존하여, 그는 자신이 접근 가능했던 비슷한 다른 사례의 연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는 의료 보고서를 수정하였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전체 서사에 그가 가한 것이었다. 파니차는 시간대, 많은 물질적인 요소,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었고, 무엇보다도 주관적인 서술방식을 제거하고 이를 객관적인 해설로 채워넣었다. 파니차는 모든 것에 특정한, 디드로와 그의 『수녀』랑 얼추 비슷한 “18세기” 분위기를 주었다. 귀족 소녀들을 위한 부유한 수녀원, 자신의 조카딸에 모호한 애착을 드러내는 관능적인 수녀원장, 수녀들 간의 음모와 경쟁, 박식하고 회의적인 대수도원장, 속이기 쉬운 지방 신부, 쇠스랑을 들고 악마를 뒤쫓는 농민들이 등장한다. 얄팍한 음탕함과 순진하지만은 않은 신앙의 반쯤 천진한 희롱이 작품을 통틀어 나타나는데, 알렉시나가 처한 지역적 진지함은 『사랑의 위원회』에 나오는 바로크풍 폭력과 마찬가지로 이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비뚤어진 용맹의 전체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파니차는 자신의 서사 한복판에 그림자 진 광대한 영역을 의도적으로 남겨두고, 바로 여기에 알렉시나를 배치한다. 자매이자, 여주인이고, 불온한 여학생이며, 방황하는 천사이며, 남성이자 여성인 애인이며, 숲에서 뛰노는 목양신(牧羊神)[각주:8]이고, 따스한 기숙사에 슬그머니 들어서는 인큐버스[각주:9]이자, 다리에 털이 많은 사티로스[각주:10], 그리고 쫓겨난 악마. 파니차는 그녀를 오직 다른 사람들이 보는 찰나의 윤곽으로만 묘사한다. 이 소년-소녀, 이 유한한 남성-여성은 모든 이의 꿈, 욕망, 두려움 속을 밤에 지나는 무엇인가에 불과하다. 파니차는 그녀를 정체성도 이름도 없고, 서사 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오직 어슴푸레한 형상으로만 삼기를 택한다. 파니차는 그녀에게 자살이라는 끝, 그로 인해 그녀가 아벨 바르뱅처럼 시체가 되어 호기심 가득한 의사들이 결국 부적절한 성별이라는 현실을 지정하는 끝조차 정해주지 않는다.
나는 이 두 글이 나란히 출간될 만 하다고 생각하여 붙여두었다. 무엇보다도 두 글이 모두 19세기 말, 반음양자라는 주제에 강하게 홀린 세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마치 18세기가 복장 도착자라는 주제에 홀렸듯이 말이다. 또, 추문도 거의 일으키지 못한 이 작고 지역적인 연대기가 그 주인공의 불행한 기억에, 개입해야 했던 의사들의 지식에,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광기를 향해 나아간 정신의학자의 상상에 간신히 남긴 흔적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80년 1월
(역자주) Auguste Ambroise Tardieu(1818~1879). 프랑스의 의학자, 법의학자. 법의학과 독성학의 전문가로, 다양한 사건을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주제에 관해 저술을 남겼다. [본문으로]
(역자주) 현재는 실전되어 파편으로만 전해지는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스키이로이(Skyrioi)」 등의 이야기에서,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전공을 세우면 죽는다는 예언을 피하도록 그를 트로이 전쟁에 보내지 않고, 스퀴로스섬의 왕 뤼코메데스에게 보내 궁정에서 뤼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서 지내도록 하였다. [본문으로]
(역자주) 주인 없이 입만 남아 웃음 짓는 모습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6장, 「돼지와 후추」 마지막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의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웃음 짓는 주체인 체셔 고양이가 사라졌음에도 웃는 입은 남은 묘사에 빗대어, 감정은 중요성을 지닌 채 남지만 정작 감정을 촉발하는 파트너의 정체성은 하등 중요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영역자주) 이 글의 영역본에서는 알렉시나가 자신에게 쓰는 남성, 여성 형용사를 가지고 논다는 점을 반영하기 어렵다. 대체로, 그녀가 사라를 사로잡기 전에는 여성형이고, 그 후로는 남성형이다. 그러나 기울인 글씨로 표시한 이런 분류는 여성으로서의 의식이 남성으로서의 의식으로 변하는 것을 기술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는 언어가 활용해야만 하나, 서사의 내용과는 모순되는 문법적, 의료적, 사법적 범주들에 대한 역설적인 상기(想起)이다. [본문으로]
F. L. von Neugebauer, 『인간 반음양증(Hermaphroditismus beim Menschen)』 (Leipzig, 1908), p. 748. 인쇄자의 오류로 알렉시나의 것이 아닌 초상에 그녀의 이름이 달려있다는 점을 유념하라. (역자주) Franz Ludwig von Neugebauer(1856~1914). 폴란드의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로, 간성에 관한 당대의 전문가였다. [본문으로]
A. 뒤바리는 『사랑의 불균형들(Les Déséquilibres de l'amour)』이라는 제목 아래 「땋은 머리를 자르는 이들(Le Coupeur de nattes)」, 「내시 여인(Les Femmes eunuques)」, 「동성애자들(독일의 퇴폐) (Les Invertis (vice allemand))」, 「피의 즐거음(Le Plaisir sanglant)」, 「반음양자(L'Hermaphrodite)」 등의 이야기 연작을 저술하였다. (역자주) 에르나 아르망 뒤바리(Ernest Armand Dubarry, 1836~1910). 프랑스의 탐험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색채가 작품에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역자주) Oskar Panizza(1853-1921). 독일의 정신의학자이자 아방가르드 작가. 1894년 반가톨릭 풍자극인 『사랑의 위원회(Das Liebeskonzil)』을 출판하여 신성모독죄로 기소되고 투옥되었다. 출소 후 스위스로 망명하였으나 미성년 여성의 성 구매 혐의를 받고 추방되었고, 이후 광증을 일으켜 오랜 수감 끝에 죽는다. [본문으로]
(역자주) faun. 그리스 신화의 판(Πᾶν),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Faunus)에 영향을 받은 상상적 생명체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염소인 모습을 하고 있다. [본문으로]
(역자주) Incubus. 남성의 모습을 한 몽마(夢魔). 잠든 여성과 성교를 맺어, 마녀, 악마, 기형아들을 잉태시키는 것으로 여겨졌다. [본문으로]
(역자주) σάτυρος. 그리스 신화의 상상적 생명체로, 반은 인간이고 반은 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체의 정령이다. 본래 6세기경에는 귀와 꼬리만 말을 닮았고 상시적으로 과장된 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이후 목양신의 이미지와 섞여 염소의 모습이나 말의 다리를 하고 있는 특징이 부각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