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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팽창과 제국주의
: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정치학적 의미

 

 

김종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정리: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여는 말

 

이 글은 2022년 9월 13일 서교연 포럼 <체제 전환을 위한 정치학적 모색3>에서 진행한 김종철의 "화폐 팽창과 제국주의 -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정치학적 의미"라는 제목의 발표를 녹음하고 녹취록을 푼 것이다. 녹취록 내용과 그래프는 모두 김종철의 발표문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아래 발표 내용과 관련해 더 정리된 내용을 보거나 인용을 하고자 한다면, 2022년 <경제와사회> 제136호에 실린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제국주의 :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라는 논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논문을 볼 수 있는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04951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제국주의 :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정치사회학적 의미

선진국들이 경기침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양적완화와 재정확장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에서 기아와 빈곤이 발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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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표자 소개

현대 자본주의의 기원과 모순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하고 있다. 다학제간 접근법으로 재산권, 신탁, 주식회사, 자본주의 화폐 제도, 현대 은행업 등을 분석하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상상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저서로 <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개마고원, 2019)>, <기본소득은 틀렸다 - 대안은 기본자산제다(개마고원, 2020>, <Modern Money and the Rise and Fall of Capitalist Finance: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usts, Personae and Indebtedness(Routledge, 2022)가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나는가?

 

현재 일어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관해 현재 학자들의 견해는 대략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어요. 첫째는 인구변동과 세계화의 쇠퇴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둘째는 높은 원유가격과 원자재 가격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글로벌 동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견해고요. 세 번째 의견은 양적완화 등에 의해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발표에서 위의 세 가지 견해를 통합적으로 검토해야 현재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양적완화와 그것이 초래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제국주의 문제와 연관시키려 합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둘러싸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에 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해요. 앞서 제시한 세 견해 중에 두번째 주장, 대표적으론 닛잔과 비클러의 연구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관계 중 어느 한 측면을 지적하고 있어요.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상승하고 하강하였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의 후퇴, 부와 소득의 큰 불평등, 인구학적 변화, 미국 정부의 높은 수준의 부채와 재정 적자,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의 특권,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양적완화 등 간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간의 관계를 제대로 조명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관한 첫번째 견해에선 미국 등의 서구 선진국들이 양적 완화와 재정 확장을 통해 유동성을 급격히 증가시키면서 초래한 결과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후퇴와 인구학적 변화만으로는 현재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현상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보다 통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견해의 약점은 국제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혹은 국제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경우가 있다는 점이에요. 국가 간 정치적, 군사적 갈등과 통화 문제를 긴밀히 연관시켜 분석해야 하죠. 세 번째 견해의 약점은 서구 선진국이 양적완화와 재정확장 정책으로 유동성을 확대한 것이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정당화할 여지가 있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서는 양적완화와 재정확장 정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제국주의적 특성임을 보이고자 합니다.

 

제국주의 얘기를 잠시 해봅시다. 제국주의는 한 물 간 이야기, 이제는 철 지난 얘기로 취급되기도 해요.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에는 제국주의적 면모가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를 날카롭게 포착해야만 합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은 주로 20세기 초에 이뤄졌지요. 힐퍼딩, 룩셈부르크, 카우츠기, 레닌 등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주로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적 틀로는 현재 제국주의적 수탈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건 잉여가치론이 현대 금융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서구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잉여 자본은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의 생산성이 향상된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금융 시스템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순수하게 금융적인 것이죠. 더 정확히는 잉여 자본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대의 측면으로 설명하는 게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네요. 그에 관해 더 얘기하는 어렵겠군요. 여기서 주장하려는 것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금융적 조작을 통한 수탈이 가능한 배경에 세계 기축통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이지요. 미국이 누리는 기축통화국의 지위는 미국의 군사력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동맹 덕분에 가능한 것이에요. 마르크스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주의적 수탈의 원천이자 결과인 잉여자본은 정치적 산물입니다. 우리는 그 정치적 관계와 그것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의 역사적 경로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거기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는 사태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 시대

 

인플레이션은 20, 21세기에 나타난 독특한 현상이에요. 20세기 들어 인플레이션이 크게 발생한 것은 1차대전 직후와 2차대전 직후이지요. 하지만 <그림 1>이 보여주듯, 이후 1960년대  말까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소비자  물가지수가 본격적으로 급등한 것은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 금본위제가 붕괴되고 난 이후입니다. 즉,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는 인플레이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으로 볼 수 있어요. 1970년대  초 이전에  소비자  물가지수가 안정적이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석유, 밀, 옥수수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었던 덕분이었습니다.

 

<그림 2>에서 <그림 4>를 한번 보시죠. 이러한 안정성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금본위제나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금, 석유, 밀 등 다양한  원자재의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 이유는 미국 정부가 석유, 밀, 옥수수  등 주요 원자재에 대한 정부 비축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주요 원자재의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후, 즉 달러의 구매력이 더 이상 금에  고정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더 이상 다른 원자재에도 고정되지 않게 되자 원자재 가격이 극도로 불안정해졌습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국제 금융 시스템이 변화한  결과이자, 미국 달러의 가치 절하로 인해 발생하는 세계 기축통화의 구매력이 상실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미국 인플레이션 사이의 상관관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정하지 않았어요. 2003년과 2018년 사이에 원유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낮게 유지되었어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의 결과로 세계가 인플레이션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주장을 철회해야 하는 걸까요?

 

 

다르게 말해보죠. 1970년대에 들어서 어마어마한 오일 쇼크와 그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요. 신자유주의 시대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게 있어요. 신자유주의 시대 때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나라들은 서방 선진국뿐입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그러지 못했어요. 이 차트를 보시죠. 여기 보이는 건 미국의 실질 원유 가격하고 소비자 물가입니다. 굵은 실선이 원유 가격, 실질 원유가격입니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기간을 보시죠. 전반적으로 원유 가격이 떨어지죠. 그렇죠? 근데 인플레이션이 좀 생기기도 했죠.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를 보시죠. 이때 인플레이션이 생겼지만, 이건 원자재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에도 인플레이션이 생겼지만, 원자재 가격하고 관련이 없어요.

 

다음 그래프, <그림 5>를 보시죠. 1948년부터 1973년까지는 실질 원유 가격과 소비자 물가가 –0.3 정도로 역의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그런데 1974년부터 2002년까지는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강화됩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만든 거죠. 그런데 2003년부터 2018년까지는, 즉 우리가 얘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다시 이 상관관계가 약해집니다. 거의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죠. 차트를 보시면 원유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폭등했죠.

 

2008년과 2010년에 주목해보십시오. 많은 저소득 국가에서 식량 가격 급등으로 극심한 기아를 경험했던 게 이 시기입니다. 세계 식량 위기라 불렸죠. 이를 견디다 못해 이집트, 튀니지 등에서 정치 불안정이 심해지다 결국 우리가 얘기하는 아랍의 봄이 일어났죠.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격화되어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었죠. 반면에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어떻죠? 굉장히 낮죠. 오직 서방 선진국만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다시 2019년부터 2021년 근래를 보시죠. 이 상관관계가 굉장히 강화됐습니다. 그래서 서구 선진국조차도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부터 더 이상 자유롭지 않게 되었죠. 

 

 

제가 앞서서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종말은 오늘날 우리 세계가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대로 진입한 일종의 계기,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서방 선진국의 소비자 인플레이션이 왜 없었냐는 문제에 관해 설명해야겠죠. 이 시기가 왜 예외적이었는지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그 답변은 앞서 말씀드린 찰스 굿하트와 마노즈 프라단이 쓴 『인구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이라는 책에서 일부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변화에 주목합니다. 바로 인구 변동이죠.

 

제 연구에서 신자유주의 시기로 분류한 2000년대에 세계 인구 연간 성장률이 당시에 굉장히 높았어요. 하지만 2010년대부터 점차 굉장히 낮아지고 있어요. <그림 6>과 <그림 7>을 한번 보시죠. 세계 생산 가능 인구도 보면 2015년에 피크를 칩니다. 그때까지 굉장히 늘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세계 생산 가능 인구 또한 줄어듭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200112월에 중국이 WTO에 가입했죠. 굿하트와 프라단은 중국의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세계 자본주의로 편입되면서 생산 가능 인구가 두 배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잠시 제 개인적 경험을 돌아볼께요. 저는 캐나다에서 공부를 했는데요. 캐나다에 살 때, 생필품을 사러 코스트코에 갔거든요. 거기서 전자레인지를 사려고 하는데, 제품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든 것들이었죠. 이거를 캐나다나 다른 서구 국가들에서 만들면 소비자 가격이 100불이 넘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만든 거는 무척 쌌죠. 그러니까 그 가격 차이가 바로 세계 시장에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편입되는 현상을 함축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와 같은 나라들이 세계 경제, 특히 생산을 책임지게 되었죠.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싼 임금, 싼 노동력으로 서구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해줬던 거죠. 아까 차트를 다시 보시면 물가, 특히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잖아요. 이 폭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서구 선진국들도 겪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건, 한마디로 중국의 가난한 농민공들, 도시와 공장으로 몰려든 노동자 계급이 대신 떠안아 줬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 이후를 돌아볼 때, 신자유주의 시대는 굉장히 예외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에 고점을 찍은 후로 2018, 2020, 중국의 생산 가능 인구가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인구, 특히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이 언제 격화되었습니까? 대략 2018년을 전후로 발생하기 시작했죠. 중국이 더 이상 값싼 상품을 서구 선진국에 조달하는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면서, 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기 시작하면서, 인구학적으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값싼 세계 공장 역할을 떠받는 데 제한적인 조건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서구 선진국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에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  달러의  구매력(가치)은  왜  떨어지는가?

 

그러면, 다시 원자재 가격과 물가의 관계로 돌아가보죠. 제가 원자재 가격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여러분, 지금까지 잘 따라오셨나요? 지금 보시는 <그림 10>은 굉장히 재밌는 그래프입니다. 유가하고 달러 가치의 관계입니다. 달러의 구매력를 의미하는 것이죠. 이 그래프를 보시면, 이렇게 완전 반대로 가죠. 둘 간의 상관관계가 –0.82입니다. 아까 상관계수의 절대값이 0.72보다 크면 상관관계가 굉장히 강한 걸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죠? 여기선 마이너스니까 역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큰 것입니다. , 실선이 유가, 점선이 미국의 달러 가치입니다. 오른편 축이 미 달러 가치를 표시해주고 있고요. 여기 보시면 달러 가치가 조금만 떨어져도 유가가 폭등하죠.

 

그래서 긴축해서 달러 가치가 굉장히 높아지니까 우리나라 화폐, 그러니까 달러 대비 원화가 굉장히 약세잖아요. 그래서 달러 가치가 강해질 때 우리가 목격하는 게 뭐예요. 유가가 많이 떨어지는 거죠. 이건 장기적으로 2000년대부터 나타난 추세입니다. 단기적인 게 아니에요. 이런 장기적인 추세가 왜 생긴 걸까? 왜 그럴까? 이런 역의 상관관계가, 그것도 강한 역의 상관관계가 왜 나타날까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많아요.

 

제가 생각한 주요 견해가 뭐냐면요. 달러 약세가 되면 산유국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그들은 원유를 팔 때 달러만 받기로 미국하고 동맹을 맺었잖아요. 예전에는 1배럴당 80불을 받았다고 해보죠. 그런데 미국의 달러 가치가 떨어졌다면 어떤가요? 80불을 똑같이 받는데 미국 달러의 구매력이 떨어져 버렸어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금을 걷지 않는 나라입니다. 원유로 번 돈을 자국 사람들에게 배포하죠. 그런 나라에서 원유를 판 대금의 가치가 떨어지면 굉장히 곤란에 처하겠죠. 명목상 금액은 같아도 실질 수입은 줄어드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요. 예를 들어, 과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한테 협박한 적이 있어요. 대놓고는 안 하고요. 석유 팔 때 유로화를 좀 받을까 고려했던 거죠. 미국이 그냥 놔둘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유가가 폭등하는 거를 좀 용인합니다. 유가를 올리도록 허용해준 거죠. 그러면 실질 수입이 보전되겠죠.

 

OPEC은 카르텔이잖아요. 독점이잖아요. 그런데 미국이 왜 그걸 용인할까요. 국내 정책만 보면, 미국은 오래전부터 독과점에 무척 민감했는데 말이죠. 반도체를 예로 보죠.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만드는 대표적 회사가 세 개잖아요. 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로소프트. 이들 세 회사만 합치면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카르텔을 형성하면, 미국이 과연 용인할까요? 하지만 OPEC은 용인했습니다. 거칠게 말해, OPEC은 미국의 용인하에서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렇게 형성된 카르텔이 미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 가격을 올리는 식으로 협력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미국에게도 좋은 게 뭐냐면요. 미국 입장에서는 두 가지가 좋아요. 미국도 어마어마한 산유국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원유 가격이 오르니 미국이 자원을 팔아 얻는 이익이 굉장히 많아졌겠죠. 이를 통해 미국은 우리가 얘기하는 쌍둥이 적자, 즉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 중에서 특히 무역 적자를 많이 줄일 수 있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돈을 어마어마하게 쓰고 수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해도 원자재 수출 때문에, 특히 천연가스와 원유 수출 때문에 무역수지가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미국이 산유국이기 때문에 OPEC의 행동을 용인하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고요.

 

그리고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죠. 만약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1,000달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죠. 100달러짜리 종이 10개를 가지고 있는 건 똑같은데, 만약 미국의 달러 가치가 너무 많이 또는 급격히 떨어지면 제가 미국 달러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려고 할까요? 달리 말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받아요. 그럴 때는 어떡합니까? 원유 가격을 올려버리면 되겠죠. 예를 들어, 원유 가격이 올라 원유를 사려면 10,000달러가 있어야 한다고 쳐봐요. 그러면 예전보다 미 달러를 더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렇게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를 높일 수가 있어요. 그래서 미국이 기축통화국이자 산유국이기에 원유 가격 상승은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해도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산유국으로서도 무역수지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원유 가격의 상승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너무 많이, 급격히 상승하는 건 안 돼요. 지금처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굉장히 심하게 나타나면 미국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선까지는 원유의 가격 변동을 용인하지만, 미국의 이해관계와 패권이 흔들린다면 그때는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원유와 미 달러 사이의 관계가 굉장히 밀접하다는 걸 의미하고요. 경제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정치적인 성격이 있음을 밝혀야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달러본위제의 폐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다시 <그림 10>을 보시죠. 달러 대비 유로의 가치, 달러 대비 위안화의 가치가 변동하는 것에 따라서 원유 가격도 변동하는데요. 그 역관계가 굉장히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미국의 달러 가치, 즉 달러의 구매력은 왜 떨어지는 걸까요? 잘 생각해 보세요. 기축 통화국은 어마어마한 이점이 있어요. 언뜻 보면 기축 통화국의 통화 가치, 즉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걸 이해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국내 중앙은행이면서도 실질적 의미에서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잖아요. 그래서 경기가 안 좋으면 가장 돈을 먼저 풀죠. 그것도 저금리로 풀죠. 그 돈을 누가 갖고 가겠어요. 미국 기업들이 다 저금리로, 아주 좋은 금융 조건으로 받아 가죠. 만기도 굉장히 길어요. 미국 기업이 얼마간 돈을 빌리면 평균 몇 년 빌릴 수 있는지 아세요? 보통 10년 빌립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단기로 빌리죠. 길어야 3년이에요.

 

미국에서 주택담보대출은 몇 년으로 빌리는지 아세요? 그것도 고정금리로요. 일반 가계가 대부분 30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신혼부부나 생애 첫 주택 매입이 아니라면, 그만큼 길게 빌리기가 쉽지 않아요. 우선은 대부분 변동금리죠. 생계에 필요한 자금을 주택담보대출로 빌린다고 할 때, 아주 잘해도 5년이죠. 이렇게 금융 환경 자체가 미국에선 돈 빌리기에 굉장히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애플이나 구글 등의 회사들이 왜 미국 기업이냐 묻는다면요. 저리에 만기도 길게 해서, 그러니까 아주 좋은 조건으로 달러를 가장 먼저 빌려서요. 가장 좋은 기술과 인력, 원자재를 모아서 시장을 선점하는 거죠. 반도체라면, 인도에서 인력을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어서 R&D로 기술 특허를 내고 중국 등에서 원자재를 사서 시장을 주도하는 거죠. 이런 나라의 통화, 그러니까 미국 달러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왜 떨어질까요? <그림 5>를 다시 보시죠. 이거 제가 그린 거거든요. 앞에도 제가 다 그린 건데. 이 차트는 조나단 닛잔이라고 저의 지도 교수가 그린 거를 업데이트한 것입니다. 닛잔의 2014년 논문에 실린 차트를 202221년까지 확대해서 본 것이에요. 어쨌든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게 무엇일까요? 실선은 미국의 재정 적자하고 무역 적자를 합친 게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얇은 선은 미국의 통화 가치입니다. 보시면, 장기적으로 1992년부터 근래까지 상관관계가 굉장히 강하죠. 상관계수가 0.71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그렇게 경쟁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가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얘기하는 쌍둥이 적자, 즉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 때문입니다.

 

<그림 11>을 보세요. 2020년에는 GDP15.26%에 달하죠. 전대미문의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가 났고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졌죠. 미국 달러 가치가 왜 떨어지느냐에 관한 답을 한마디로 한다면요. 분수에 맞지 않게 흥청망청 소비한 결과입니다. 이건 케인스의 표현을 빌린 겁니다. 케인즈가 1940년대에 브레튼우즈 시스템을 만들 때 미국하고 협상할 때 쓴 논문들이 있거든요. 거기서 케인즈는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통화체제의 기획을 가리켜서, 어떤 한 나라가 분수에 맞지 않게 흥청망청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혀요. 바로 미국이었죠. 지금도 미국만이 이렇게 분수에 맞게 흥청망청 소비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죠. 그 결과로 미국 달러가 떨어지는 거에요.

 

 

미국 달러가 떨어지면 원유 가격이 올라가죠. 원유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원자재 지수 중에 원유가 50% 비중을 차지해요. 아까 봤듯이, 원자재 가격은 원유하고 거의 같이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원유 가격의 폭등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만들어요. 나아가 저소득 국가의 기아와 빈곤을 만들어내요. 이걸 경제학적으로 얘기하면 굉장히 어렵죠. 흔히 인플레이션, 달러 가치, 소비자 물가, 뭐 이런 경제 지표들로 복잡하게들 얘기하지만요. 사실은 간단해요. 뭐냐면요. 어떤 소수의 사람이, 북미의 어떤 나라가 어마어마하게 쓰는 거예요. 흥청망청 쓰는 거죠. 그러면 다른 나라는 쓸 게 없게 되겠죠. 이런 사태가 글로벌 물가 인상 형태로, 가격 급등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가난한 저소득 국가의 사람들이 빵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논리는 아주 간단해요. 이걸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달러 인덱스, CPI, 물가지수 등등 이런 용어들이 나와서 좀 어렵게 보이지만 내용은 아주 자명합니다.

 

요약하면, 미국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돈을 재정 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를 통해 대는 방식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거죠. 그중 특수한 형태가 소위 양적 완화라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거죠. 양적 완화 얘기는 들어보셨죠? 워낙 유명한 단어죠. 그러니까 양적 완화는 뭐냐면요. 신자유주의적 금융에서는 돈을 찍어내는 역할을 일반 은행들이 했어요.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미국 금융기관들, 즉 일반 은행들이나 투자은행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자본 규제가 많아졌어요.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일반 은행이나 여타 금융기관들이 통화량을 창조하는 걸 제한합니다. 돈을 찍어내는 역할을 굉장히 제한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변화를 가리켜, 신자유주의 금융이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하는 거예요. 신자유주의의 반대는 그거잖아요. 국가가 나서서 한다는 거죠. 2008년 이후에는 국가가 나서서 돈을 찍어내는 거죠.

 

 

***Part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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