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은 위험과 위기를 관리하는 법과 제도, 매뉴얼과 그 작동성을 포함한 재난대응시스템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다.[각주:1] 즉 재난의 원인 규명은 ‘실패’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실패를 등록해 위험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재난의 원인이 규명되었다는 것은 ‘과거청산’과 같은 수준에서 위험이 해결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둘러싼 복잡성과 갈등이 보다 전면화되는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재난의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2016년 ‘세월호 참사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는 역대 재난을 기록한 정부 기록물( 백서 )를 분석했다.
대형 재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성찰을 담고 있는 공식적인 재난 보고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검찰 등 조사기관, 시민사회단체 등 여러 곳에서 재난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 대부분 자신들의 활동을 정리 · 홍보하는데 치중되어 있다.[각주:2]
재난에 대한 불충분한 진상조사는 재난을 ‘불운’한 것으로 서사화한다. 재난을 실패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불운의 극복’으로 서사화하기 위해서는 재난의 원인과 책임을 특정한 인물에게 전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재난을 신속하게 봉합하기 위해서라도 재난의 원인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과 규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에 대한 일종의 ‘희생양’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지하철참사의 경우, 이전 참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해서사가 특정 인물에게 집중되면서 과잉되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방화’와 ‘마스콘키를 빼고 도주한 기관사’ 서사를 중심으로 참사의 모든 책임이 전가되었다. 당시 방화를 저지른 ‘김 아무개’의 경우 뇌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정부는 정신질환자를 관리해야 한다’, ‘정신질환자를 관리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 등의 여론이 들끓으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일었다. 뒤이어 192명의 사망자 중 14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080호 전동차를 운전한 기관사에게 참사의 원인이 돌아갔다. 승객들이 전동차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채 사망했기 때문에 ‘마스콘키를 빼고 도주해 승객들이 갇혀 사망했다’라는 내용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고, 법적 처벌 역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최고형량( 5년 )을 받았다.[각주:3] 참사의 모든 책임은 ‘정신질환자’와 ‘기관사’에게 돌려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대구지하철참사의 기관사’는 다시 호출된다. 세월호의 선장과 대구지하철 기관사가 등치되며 참사 초기 세월호 선장의 모든 책임이 전가된다.
배 버린 선장과 먼저 탈출한 기관사 — 두 사건이 대형참사로 이어진 배경에는 ‘나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과 기관사가 있었다. 세월호 선장은 해상교통관제센터( VTS )로부터 탈출 준비 지시를 받은 뒤에도 승객들을 대피시키기는커녕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배가 침몰하는데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선내에 흘렀고, 그 사이 선장과 항해사 등은 탈출했다. 차분하게 안내방송에 따랐던 승객들은 구조의 손길조차 받지 못한 채 차디찬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외신들은 그를 ‘세월호의 악마’라고 불렀다.
11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그랬다. 당시 방화로 불이 났던 1079호 전동차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안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해 초기 탈출 기회를 앗았다. 반대편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전동차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자 출입문을 닫은 후 마스터키까지 뽑고 탈출했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원인도 모른 채 메케한 연기를 마시며 숨져갔다.[각주:4]
이러한 가해서사는 이태원 참사에서도 반복된다. 2022년 11월 7일 이태원 참사 관련 국회 현안질의 과정에서 장제원 국민의 힘 국회의원은 이임제 용산경찰서장을 향한 비난 여론을 더욱 강화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이임재 용산서장 이 사람 문제입니다. 참사를 고의로 방치한 것 아닌가. 참사 방조, 구경꾼, 살인 방조, 세월호 선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이임재 미스터리 푸는 게 진상규명의 핵심이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반복되는데, 특히 국민의 힘 의원들은 이임재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그리고 닥터카 논란을 일으킨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비판과 질의를 집중했다. [각주:5]
또한, 참사 초기 시민운동 진영에서 주요 정부 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도 세월호 선장의 비유는 반복된다.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경찰청, 행안부 장관, 용산구청장, 서울시장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의 혼란에 대해선 정치적 책임과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현 정부가 세월호를 버리고 떠난 선장, 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각주:6]
재난에 대한 구조적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재난이 발생할 경우, 재난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식된다. 즉 재난을 이해할 수 있는 축적된 부재한 상황에서 재난은 쉽게 망각되며, 또다시 재난이 발생할 경우 재난을 이해하는 틀이 재난의 경험과 함께 등장한다. 한 편에서는 재난을 그저 ‘교통사고’와 같은 우연적이거나 대수롭지 않은 개인적 불운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재난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가 이뤄진다. ‘재난’의 당사자로 자신을 위치지으며, 재난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구조적 원인보다 재난을 야기한 인물을 향한 보복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향하게 한다. 피해자와의 동일시 차원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것은 ‘그 날’ 그리고 예측하지 못했던, 철저하게 끔찍한 폭력으로서의 재난의 경험이다. 특정 인물에게 과잉된 책임과 비난을 귀속시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서사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러한 재난서사는 중층적인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보다 더 듣기에 편하다. 동시에 이러한 재난서사는 우리가 재난에 대해 더 광범위한 설명을 구성하고 말하고 전달해야 하는 책임성에서 손쉽게 면책된다.
2 ) 1인칭 중심의 피해서사와 국가주의 재난서사
20세기 후반부터 트라우마 이론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폭력이나 테러, 재난과 같은 사건을 이해하는 틀이 되어왔다. 그 중 ‘사건 중심 트라우마 이론’은 트라우마에 대한 주류적인 이론으로 자리매김 되었는데, 이론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단 한 번의 이례적 대참사’를 주체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때 생겨난다. 이는 피해 생존자의 경험 구조를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우발적이고 예외적인 사건에 무방비로 노출된 피해자의 위치에 집중하면서 폭력의 구조적 원인이 간과되고, ‘고통 수기’ 중심의 피해서사를 중심으로 재난서사가 과잉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각주:7]
이러한 1인칭 중심의 재난서사는 피해-가해의 이분법으로 재난서사를 납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참사 희생자들의 고통을 침묵과 수동성의 상태로 끌어내리기 위해 고통의 담론이 활용되며 희생자에 대한 담론이 오히려 희생자들을 지워내고 부당함을 은폐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피해와 가해의 위치는 손쉽게 뒤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이분법에 기초한 트라우마 모델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활용될 경우 국가는 참사 피해자의 위치를 탈취하게 된다.
9 · 11 테러 당시 미국 부시정부는 1인칭 서사의 시점에서 미국을 피해자로 위치짓고, 9 · 11 테러의 모든 책임을 이슬람 테러국에 전가시키며 미국인의 분노를 투사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였으며, 9 · 11 테러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검열하고 통제했다.[각주:8] 또한 일본의 3 · 11 재난에서는 ‘재난=국난’으로 등치시켜, 재난서사를 국난극복의 서사로 구성해내고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 대신 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가통합 서사가 형성되었다.[각주:9]
버틀러는 이러한 1인칭 서사를 “거대한 나르시시즘적 상처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서사 형식”[각주:10]으로 정의하며 우리 사회의 취약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에 대해 국가의 ‘리더십’으로 전환하고, ‘자기방어’의 논리로 폭력을 순환한다고 비판한다. 재난의 경우 9 · 11의 경우처럼 국가 간 전쟁으로 전환되지는 않으나 ‘우발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재앙’ ‘재난을 일으킨 가해자’ ‘국가 주도의 재난극복 서사’를 중심으로 재난에 따른 국가 실패와 책임을 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협소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3 ) 국가주의 재난서사 : 국민성금과 국가애도
이러한 국가화된 재난서사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재난에 대한 공식기억이 ‘수습과 복구’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전국민적인 자선 활동이 적극적으로 동원된다. 이는 재난에 대한 ‘선별적 망각’을 통해 완성되는데, 참사의 희생자를 사회적으로 구성해내는 과정에서 고통의 담론이 특정하게 사용되며, 타인에 대한 취약성과 온정을 도덕적 의무로 강제하는 인도주의적 규범이 강화된다.
한국사회에서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국가 주도의 ‘국민 성금 운동’은 재난=국난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서 적극적으로 배치되어왔다.
○ 역대 재난 참사 국민성금 현황
코로나19 : 국내 재난 사상 최고 모금액.
2020년 3월 18일 기준 2,015억 원
2019년 강원도 산불 : 560억 원
2018년 포항 지진 : 384억 원
2014년 세월호 참사 : 1,273억 원
2010년 천안함 침몰 : 672억 원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 669억 원
1995년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 : 192억 원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 20억 1000만 원( 서울시 ), 9,800만 원( 서초구 )
1994년 성수대교 붕괴 : 6억 8,500만 원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 96억 원
※ 1986년 평화의 댐 국민성금모금 : 639억 원
※ 외환위기 금 모으기 운동 / ‘타이타닉 안보기 운동’
통상 공동체 문화의 해체와 개인주의의 강화로 이해되는 흐름과는 달리 재난 관련 국민성금액은 점차 증가해왔다. 특히 대구지하철참사 관련 국민성금이 669억 원, 세월호 참사의 경우 1200여억 원을 넘어섰고,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성금액은 2천억 원을 넘어서면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성금을 납부하는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국민성금이 점차 증가하게 된 이유는 유가족들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의 영향을 포함해 재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인식이 확산되면서 ‘안전담론’이 국가적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재난이 국민통합의 서사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재난이 국가화될 때 재난의 위계화는 이뤄진다.[각주:11] 가령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국민성금 모금은 민 · 관의 적극적인 주도로 이뤄진다. 당시 김성호 보건복지부장관과 최학래 전국재해구호협회장은 참사 이틀뒤에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국민은 불의의 재난이 있을 때마다 모두가 나서 불행을 당한 이들에게 삶의 힘과 용기를 주었다”[각주:12]고 모금을 독려했으며, 각 신문사와 방송사를 통해 20일간 대대적인 모금현황을 홍보하고 목표 목금액을 200억으로 제시했다.
반면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의 경우, 행정자치부는 내부 회의를 통해 “공동모금방법으로 모금시 시민들의 호응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 교육청을 중심으로 학생들 스스로 모금하는 방법( 1인당 1,000원 검토 )”[각주:13]을 검토, 추진한다. 재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정도에 따라 국민성금 모금액, 목표액, 기간, 모금방법 등이 모두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성금은 국가위기 극복 및 일상 회복을 위한 조기 수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국가 차원의 책임과 배상의 문제를 대체하며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시민적 공감과 애도를 대체하는 ‘자선의 담론’을 확산한다. 또한 모금액 사용의 기준과 절차가 허술해 유가족 단체들은 보상액 사용을 둘러싸고 내분과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러한 유가족 내부의 갈등은 시민들의 지지를 철회하게 하며 국가와 재난 피해자와의 갈등이 피해자 내부의 갈등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러한 보상 프레임이 국가 통합서사로 작동하는데 균열이 발생하게 된 시점은 세월호 참사부터다. 2014년 4월 26일 한국PD연합회는 KBS가 계획한 세월호 모금방송에 대해 “재난사고 성금 모금은 해당 재해의 1차적인 수습이 완료된 뒤에나 가능하다. ( … ) 사태 수습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일부 정치인의 비상식적 언행으로 여당과 청와대에 대한 비판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시기에, 모금방송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마저 있다”며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틀 뒤인 4월 28일에는 표창원 당시 범죄과학연구소장이 “모든 종류의 성금과 모금에 반대합니다. 취지의 순수성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발견과 책임소재의 명확화, 그에 따른 처벌과 배상이 먼저입니다. 책임자 탈탈 다 털고 나서, 성금 모금합시다. 성금 모금은 책임 덜어줄 수 있습니다.”[각주:14]라는 입장을 SNS를 통해 공개했고, 많은 언론이 이를 앞다투어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확산되었는데, 4월 24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성금 모금을 지시하자 유가족들은 “우린 성금 모금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사지가 멀쩡할 때 끌어내는 것이 먼저다”라고 비판했다.[각주:15]
세월호 참사에서 성금 모금을 활용한 국가주의 재난서사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지만, 이태원 참사에서도 국가 주도의 국민 성금 모금 운동이 기획되었다. 참사 이틀만인 10월 31일 경찰청 내부 문건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다.[각주:16] 이 문건( ‘정책 참고자료’ )에서는 참사의 빠른 사고수습을 위한 언론과 사회운동의 동향을 포함해 보상금 관련 갈등을 사전에 해소하고 국민 애도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성금 모금이 검토되었지만 문건의 언론 유출과 비난으로 성금 모금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신 행정안전부는 참사 이틀 뒤에 ‘사망자 장례비 최대 1,500만 원 지급, 이송비용 지원, 부상자에 대해 건강보험재정으로 실 치료비 우선 대납, 유가족, 부상자에 대해 구호금과 세금, 통신요금 등 감면하거나 납부 유예’ 등을 발표하는데, 이는 즉각 유가족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반발을 야기하게 된다. 이태원 참사의 세금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동원 청원이 일어나면서 6일 만에 5만 명을 돌파하게 된다. 청원 글은 “국민의 혈세를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사용하는 것으로 여론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우는 것으로 사용하거나, 관습적으로 지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 원인 규명과 이런 사고가 있을 때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보다 더 나은 지원과 환경을 갖추고 향후 재발 방지에 쓰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참사의 진상규명을 은폐하고 조기 수습을 비판하는 맥락이 ‘국민의 혈세 남용’으로 활용된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이태원 참사는 ‘국가 애도 기간’ 선포로 인해 애도의 국가화에 대한 논란을 야기한다. 한국사회에서 국가애도 기간은 이태원 참사를 포함해 총 세 번에 국한되었는데, 김대중 정부 당시 9 · 11 희생자 2,977명을 애도하기 위해 9월 14일 ‘애도의 날’을 선포한 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사고로 사고 발생 한 달 뒤 5일간 국가애도기간을 공표한 이후 이태원 참사가 세 번째다. 천안함 침몰사고 때와 달리 참사 바로 다음 날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은 ‘애도가 우선이고 진상규명은 나중’이라는 논리를 유포하게 되며 참사의 진상규명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의 장을 봉쇄했다.
그러나 국가애도기간은 오히려 재난=국난의 서사가 이전처럼 피해자에 대한 자선과 온정주의의 통합으로 이어지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게 된 계기로 작동했다. ‘유흥을 즐기던 사람들이 놀다 죽은 사고에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는 게 맞냐’는 비판은 국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비난으로 전환되면서 ‘나라를 구하다 희생했냐’는 혐오가 확산된다.
다음 원고 3.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작동 실패?: 애도의 등급화와 피해자 혐오 / 4. 대항적 재난서사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전주희, 「중대재해 사고 조사보고서의 사회적 의미: 조사와 수사의 이분법을 넘어」, 김용 균재단 교육자료, 2021. [본문으로]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회, 「국내 해양재난사고와 대형재난사고의 원인 및 정부대책의 적정성 조사」, 2016, 25. [본문으로]
1079호 전동차에 불이 붙고, 3분여 뒤 도착한 맞은편 1080호 전동차에 불이 붙었다. 1080호 기관사는 종합사령실로부터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조심히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운행을 멈추고 대기하라’는 지침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승강장에서 승객들이 담배를 피다가 제대로 끄지 않아 휴지통에 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정도의 화재라고 생각했을까. 종합사령실에도 화재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다. 1080호 기관사가 중앙로역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매캐한 연기가 승강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동차가 멈추고 전동차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연기가 전동차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기관사는 급하게 다시 문을 닫고 중앙로역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전동차는 전원이 들어왔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1080호 기관사는 출입문을 개방하고 마스콘키를 빼고 주변 승객과 함께 대피했다. 그러나 이미 불이 붙은 1080호의 전원이 차단돼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고, 전동차 안에는 더 많은 승객들이 갇혀 있었다. 그 결과 192명 사망자 중 1080호 전동차 안에서만 140명이 사망했다. [본문으로]
「“나부터 살자” 승객 버린 선장·기관사 ‘닮은꼴 인재’」, 『매일신문』, 2014. 4. 25. [본문으로]
그는 “책임은 없는데 도의적으로 돈을 주는 ‘보상’과 책임이 있어 강제로 물어내야 하는 ‘배상’은 차원이 다릅니다. 청해진 해운 유병언 일가, 한국선급과 해운조합 등 안전관리사, 국가 등 책임 반드시 따져 철저히 ‘배상’하게 해야 합니다. 사상 최고 배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나 기관, 법인 등이 ‘배상’하게 되면 그 배상의 원인인 개인 위법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물어내라는 것”이라며 “대통령부터 관제사까지 모든 책임공무원 책임만큼 구상해야 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모두 물어낼 수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에 대해 “총리는 재난관리법상 중앙재난대책위원장, 사고 원인 못지않게 참사로 번진 ‘국가재난대책의 부실’ 최고 책임자”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퇴가 아니라 수사 내지 조사받고 직무상 과실에 따른 치사상 죄 등 법적 책임을 철저히 지고, 개인 배상 및 국가배상에 따라 구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표창원, 「세월호 참사 성금 모금 반대한다”…이유는?」, 〈JTBC 뉴스〉, 2014. 4. 28). [본문으로]
“지자체 실무자들은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더라도 정부 예산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국민 애도 분위기 속 성금 모금을 검토하고 정부도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단독] 참사 이틀 뒤 ‘시민단체 탐문’…세월호 언급하며 “정부 부담 요인 관심”」, 〈SBS 뉴스〉, 2022. 11. 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