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정의로운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흔히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진다. 폭염에 동반되는 땡볕과 습도는 사람을 가리지 않기에 우리 모두 푹푹 찌는 더위를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각자가 경험하는 폭염은 매우 다르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 폭염은 에어컨이 빵빵한 건물을 오가는 사이 틈틈이 느끼는 짜증과 불편함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찜통 같은 날씨에도 지하 주차장에서 26킬로를 걸어야 하는 생사의 문제가 되기도한다.[1]
이렇듯,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평등 문제와 직결된다. 즉, 불평등이 재난인것이다.[2]또 다른 예를 보자. 작년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르던 시기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침수된 차량 위에 체념한 채 앉아있는 남성의 사진이 각종 밈으로 화제가 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다음 날 밤새 내린 폭우로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어 숨진 3인 가족 뉴스 역시 화제가 되었다. 사고로 숨진 3가족 중 홍 모 씨가 그동안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언니와 13살 딸을 보살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계층을 불문하고 피해를 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누군가에겐 외제차가 침수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을 잃는 재난”인 것이다.[3]실제로 폭우로 인해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이 반지하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 그중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노동자, 청소년이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매우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2021년 9월 기록적인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 아이다(Ida)로 인해 뉴욕에서는 많은 지하 주택이 침수되었고, 이로 인해 11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이들 피해자 중 대부분이 저소득층 아시아계 이민자라고 밝혀진 것은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4]영어가 익숙하지 못해 재난 경보가 발동되어도 알아들을 수 없어 피해를 볼 만큼 사회적으로 취약한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큰 인명피해를 본 것이다.
이렇게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지닌 사회적, 경제적 특징들은 이들을 재난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재난은 사회의 불평등과 매우 밀접히 얽혀있기때문에기후변화는정의롭지못하다. 올해발표된한연구는 2100년까지지구온도가 2°C 이상오를경우, 부유층의탄소배출로인해서빈곤층10억명이조기사망할수있다는예측했다.[5]2019년 유엔에서 발표한 '기후변화와 빈곤'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기후 불평등 현상에 대해 "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과 자원이 있는 사람들과 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간의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기후변화가 정의롭지 못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기후변화의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상당 부분은 북반구 국가들에게 책임이 있다. 산업화 이후부터 2021년까지 탄소배출의 41% 이상이 미국과 유럽이 배출했기 때문이다.[6]하지만 현재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남반구 위치한 국가들로 이들은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배출량이 가장 낮다.
이러한 탄소 배출량의 격차는 국가 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내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2015년 Oxfam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세계 소득수준 상위 10%의 계층에서 발생하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약 35억 명의 인구가 배출하는 양의 다섯 배에 해당하고, 소득 수준 상위 1%는 하위 10%보다 탄소 배출량이 175배 많다고 한다.[7]유사하게, 영국에서는 영국 소득수준 상위 1%의 영국인들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하위 10%의 영국인들이 무려 20년 넘게 배출한 양과 맞먹는다고 보았다.[8]소득수준에 따라 이렇게 탄소 배출량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부유층의 경우 빈곤층과 비교했을 때 더 큰 집을 소유하고, 비행기와 자동차를 훨씬 더 많이 타는 등 자원 집약적인 삶을 누리기 때문이다.오염의 주범인 엘리트층(polluting elite)의 막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빈곤층에게 더욱더 극대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기후 변화의 부정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의 기후정의와 쪽방촌 사례연구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매우 문제가 많다.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2021년 기준 6억 1600만 톤으로 세계 10위 규모이고, 1인당 탄소 배출량으로 보면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다.[9]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당 석탄 발전 탄소 배출은 세계 평균의 3배로 G20 국가에서 두 번째로 높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그 어떤 나라보다 “국격”을 앞세우며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실상은 계속해서 기후 악당을 자처하고 있으며 우리는 계속해서 남반국 국가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후정의가 매우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서 기후정의에 관한 실증 연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필자는 한국 사회의 기후정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최대 취약계층 중 하나인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례연구를 진행하였다. 기후변화는 다층적으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흔히 우리의 일상과 연결 지어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후 위기는 곧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 사례연구는 필자가 1년 동안 쪽방촌에 거주하면 진행한 현지 조사의 일부로 탄소 배출량 조사, 인터뷰 및 관찰을 통해 진행되었다. 탄소배출량를 통해 실제 주민들의 기후 위기에 대한 기여도를 대략적으로나마 산출해서 탄소배출 불평등을 살펴보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현지 조사 중 진행한 인터뷰와 참여관찰을 통해 이들 수치가 빈곤의 일상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논의해 봄으로써 기후 위기 논의에 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후정의 문제를 조망해 보고자 하였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한여름 쪽방촌 건물 온도는 60도가 임박할 정도로 덥다. 실제로 서울에 있는 다섯 곳의 쪽방촌은 도시에서 제일 더운 도심 한 곳에 있어서 온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낡은 자재로 지은 건물이 많아 폭염과 한파에 특히 더 취약하다. 창문 하나 없는 0.5에서 2평 정도되는방에서살고 있는주민들의 삶을 상상해보았을 때그들의 탄소배출량이 낮은 것은 너무나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쪽방촌 주민들의 탄소 배출량을 직접 측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책임을 논의할 때 국가별 배출 책임에 근거해서 국가별 1인 평균 탄소 배출량이 흔히 사용된다. 이는 국가별 비교를 하거나 혹은 탄소 배출량의 격차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빈곤층의 탄소배출량이 적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주지 못한다. 즉,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 지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단순히 빈곤층의 탄소 배출량이 낮다를 넘어 구체적으로 탄소 집약적 사회에서 탄소배출량의 격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해 보고 싶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탄소 배출량 측정을 위해 2020년 8월부터 한 달 동안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기 위해 영국의 Carbon Footprint Ltd에서 개발한 측정 도구[10]를 사용했는데, 크게는 에너지 소비, 교통수단, 그리고구체적인소비항목을통해1인탄소배출량을측정하였다.[11]천여 명의 동자동 쪽방촌 주민 중 서울역 쪽방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4개의 저렴쪽방[12]건물에 사는 98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총 48명이 설문을 완료했다.[13]설문조사는서면으로준비했지만, 실질적으로모든질문은설문조사원[14]이큰소리로읽고작성하는인터뷰형식으로진행되었다.[15]
앞서 교통 부분과 마찬가지로, 비교를 위해서 도시 1인 가구의 월 지출과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 3> 도시 1인가구의 월 평균 지출액은 1,851,748원으로,이 수치를 대입해 탄소배출량을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 도시 1인 가구의 소비로 인한 연평균 탄소 배출량은 4.13톤으로 나타났다.
[5]Pearce, J. M., & Parncutt, R. (2023). Quantifying Global Greenhouse Gas Emissions in Human Deaths to Guide Energy Policy. Energies, 16(16), 6074. https://doi.org/10.3390/en16166074
[7]Gore, Timothy. "Extreme Carbon Inequality: Why the Paris climate deal must put the poorest, lowest emitting and most vulnerable people first." (2015).
[8] Garcia, Luiz & Stronge, Will, A Climate Fund for Climate Action: the benefits of taxing extreme carbon emitters (Autonomy, 2022).
[13]저렴쪽방건물에 사는 주민들로 한정한 이유는 탄소배출량측정에 큰 부분인 에너지 사용 내역에 관한 데이터의 접근성 때문이다. 쪽방의 특성상 방별로 에너지 사용내역을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건물의 총 에너지 사용내역을 총 세입자 수로 나누어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데, 쪽방 건물의 에너지 사용내역은 알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쪽방은 건물주가 직접 관리를 하거나, 관리인이 건물을 임차하여 쪽방을 운영하거나, 건물주가 세입자를 관리인으로 고용하여 운영되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의 경우 서울의 다른 쪽방촌에 비해 건물주가 거주하거나 관리인이 건물에 직접 거주하며 밀접하게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건물의 에너지 사용 내역을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저렴쪽방의 경우 서울시립 서울역 쪽방상담소가 관리인의 역할을 하고 있어 기관의 협조를 받아 2019년 6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저렴쪽방 4개의 건물의 에너지 (전기, 가스, 수도) 총 사용량에 대한 자료를 제공 받을 수 있었다.
[14]설문조사는 필자가 현지조사를 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은 주민들 중 저렴 쪽방에 거주하고 있는 두 명의 주민을 연구 조사원으로 고용하여 함께 진행했다. 설문조사에 앞서 연구조사원에게 연구의 취지, 설문지 내용, 조사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전교육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두 명의 연구조사원이 각각 10명 씩 설문조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