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은 왜 폭염과 한파에 취약한가 ? (1/2)
강준모 | 캔자스대 사회복지학과 조교수
취약성이란 ?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잦아지면서 기후 취약계층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 취약성 (vulnerability) 은 기후 변화 , 재난 연구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개념 중 하나이다 . 실제로 1967 년부터 2005 년까지 자연과학 , 사회과학 , 인문학에 걸친 기후변화 / 재난 취약성에 초점을 맞춘 논문의 수가 900 편이 넘는다고 한다 . [1] 이렇듯 다양한 학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다 보니 , 각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이를 개념화하고 해석하는 접근 방식이 달라 혼란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 이는 크게 결과적 취약성 (outcome vulnerability) 과 맥락적 취약성 (contextual vulnerability) 으로 살펴볼 수 있다 . [2]
결과적 취약성은 자연과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개념으로 , 취약성을 어떠한 요인들의 결과로써 수량화하고 측정할 수 있다고 본다 . 대체로 이러한 선형적인 관점에서의 취약성은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을 평가한 양적 데이터로 산출된다 . 예를 들어 우리는 폭우에 대한 취약성을 평가할 때 , 폭우의 규모 , 지속 기간 , 노출 정도 , 폭우에 대한 사회적 제반 시설 준비 정도 등의 변수를 고려하여 그 예상 인명피해나 경제적 피해 규모 등을 산출할 수 있다 . 이렇게 예측된 피해 규모가 바로 폭우에 대한 취약성이 되는 것이다 . 흔히 유엔이나 월드뱅크와 같은 대형 국제 비정부기구가 발행하는 기후변화 취약성에 관련된 연구 보고서에서 이러한 결과적 접근이 많이 사용된다 .
이에 반해 기후변화의 취약성을 맥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식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며 흔히 사회적 취약성 (social vulnerability)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얼마만큼의 취약성이 발생했는지보다는 ( 피해의 규모 ), 피해가 왜 발생했는지 ,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의 맥락이 더욱 중요한 정보가 된다 . 이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 사회적 , 환경적 요인에 초점을 두고 , 이것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역량을 어떻게 제한하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 실제로 취약성 (vulnerability) 의 라틴 어원인 vulnerabili는 전장에서 부상을 입어 추가 공격의 위험에 처해 있는 병사를 뜻하는 것으로 , 원인 ( 전장 ) 과 현 상태 ( 부상당함 )를 함께 내포한 다 .
지난 2022 년의 발생한 기록적 폭우의 취약성을 논의할 때 , 결과적 관점에서는 폭우로 인한 피해의 규모를 , 맥락적 관점에서는 왜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는지를 주거 불평등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두 가지 접근 방법은 해결책 논의에 있어도 차이를 보이는데 , 결과론적인 접근에서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해결책에 집중한다 .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집중 호우 대비 대심도 배수 터널 계획 건설이 결과적 취약성에 기반한 해결책의 예가 될 수 있다 . 이와 반대로 맥락적 관점은 사회구조적 해결책에 집중한다 . 2022 년 폭우로 인한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반지하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이라는 점 , 즉 기후변화와 재난을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불평등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 그 해결책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 ( 예 , 반지하 침수 방지 시설 의무 설치 ,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통한 주거권 보장 등 ).
취약성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 두 가지 접근 모두 중요하다 . 하지만 기후변화와 취약성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결과론적인 접근에 기반하고 있다 . 이러다 보니 대부분의 해결책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모델링 연구 등이 주를 이룬다 . 이것 역시 중요하지만 ,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치 , 사회적 근본적인 원인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될 것이다 . 재난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인 Ribot 의 논문 제목처럼 “ 취약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Vulnerability does not fall from the sky)”, 재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사회의 문제에 집중 해야한다 . 이에 필자는 쪽방촌의 기후 취약성을 맥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
쪽방촌의 폭염 / 한파의 취약성
이 글에서는 맥락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재난 취약성 분석 틀인 Pressure and Release (PAR) 모델 [3] 을 활용해 , 쪽방촌이 왜 폭염과 한파에 취약한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 PAR 모델은 재난위험을 높이는 압박 요인 (pressure) 과 재난 위험을 낮추는 완화 요인 (release) 을 구분하는데 , 사회적 취약성 (vulnerability) 은 이 중 압박 요인에 해당된다 . 이 글에서는 사회적 취약성을 일상에서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인 중 ( 자연 환경적 , 환경적 , 인적 ,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요인 ), 자연환경을 제외한 다섯 가지의 요인들이 어떻게 쪽방촌을 폭염과 한파에 더욱더 취약하게 만드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4] .
1) 환경적 요인
여기서 환경적 요인은 인간 생활과 관련된 물리적 구조인 건조 환경 (built environment) 을 말한 다 . 쪽방촌의 열악한 건조 환경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 예들 들어 , 동자동 쪽방촌에는 주민들 사이에서 ‘ 거지 아파트 ’ 라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 필자가 현지 조사를 할 당시 쪽방촌 사회복지기관인 쪽방 상담소의 간호사 선생님과 이 건물로 아웃리치를 몇 번 나간 적 있다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 거지 아파트 ’ 는 쪽방촌에서도 가장 열악한 건물로 꼽힌다 . 임시 지지대가 받치고 있는 이 건물의 외부 시멘트벽에는 본 건물이 재난 위험시설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노란색 알림판이 붙어있다 . ( 그림 1)
그림 1. 거지아파트 ’ 의 외부 모습 ( 왼쪽 ) 과 재난위험시설 안내문 ( 오른쪽 )
연구 중 진행한 인터뷰에서 간호사님은 거지 아파트에 들어갈 때마다 심호흡을 몇 번씩 하고 무너질 상황을 대비해 매번 탈출 경로를 생각하고 들어간다고 밝혔다 . 이처럼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곳에는 (2020 년 기준 ) 여전히 약 20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
서울시가 매년 실시하는 쪽방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상당수가 건물 상태가 열악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 참여자의 66%), 일조량이 부족하며 (63.6%), 방의 방음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응답하였다 (82%). 또한 건물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으며 (79.7%) 화재 위험도 있다고 (56.3%) 응답했다 . 주민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쪽방촌은 특히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5] . 서울시가 발표한 쪽방 등 화재 취약 주거시설 소방 안전대책 (2013) 에 따르면 쪽방촌의 화재 취약성의 원인은 크게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화재 예방 시설 부족 및 노후된 전기 설비, 2) 열과 화재 연기에 취약한 건물, 3) 소방차의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과 쪽방 건물의 복도, 4) 주민들의 화재위험 인식 부족.
쪽방은 두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 이 공간은 주민들의 안방이자 , 마루이자 , 부엌이다 . 그러다 보니 좁은 공간에 다양한 짐이 많은 경우가 많다 . ( 그림 2 왼쪽 ) 좁은 방에 하나 있는 콘센트에 여러 개의 멀티탭을 문어발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 대부분이 방 안에서 가스버너로 요리하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하다 . 또한 많은 쪽방건물이 여러 개의 방을 세를 주기 위해 불법 개조된 경우도 많아 전기설비 역시 위험 요인이 된다 . ( 그림 2 오른쪽 )
그림 2. 쪽방의 좁은 방에 있는 다양한 용품들 ( 왼쪽 ) 과 쪽방 외부에 설치된 복잡한 전기 , 가스설비 ( 오른쪽 )
폭염과 한파가 오면 쪽방촌이 지닌 여러 위험 요소가 더욱더 악화되는데 , 혹한기의 경우 특히 화재의 위험성이 올라간다 . 쪽방 건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쪽방은 난방과 온수가 아예 제공되지 않거나 , 추가 비용을 받고 아주 미약하게 새벽에만 틀어주는 정도이다 .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전기장판 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고 , 장시간 전기장판을 사용하다보면 열이 축적돼 화재로 이어지기 쉬워진다 . 또한 , 추위를 피하고자 가스버너를 켜서 히터로 쓰기도 한다 . 화재에 취약한 물건들로 가득한 좁은 공간에서 가스 버너를 쓰면 화재의 위험도가 배가 될 뿐만 아니라 , 화상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
2) 인적 요인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쪽방촌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대표적인 인적요인이다 . 일반적으로 쪽방촌 주민들의 경우 대부분 고령이고 신체적 ,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다 . 그림 3 은 필자가 현지 조사의 일한으로 도시락배달 사업에 봉사자로 참여하며 찍은 사진인데 , 도시락을 받는 주민이 직접 메모지에 글을 써서 본인의 방문에 붙여놓은 사진이다 . “ 위암 수술해가지고 밥을 된거 못 먹어요 . 밥을 질게 해주세요 .” 라는 메모 밑에 본인이 앓고 있는 질병을 세세하게 적어두었다 .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그 글을 쓴 주민의 절박성이 느껴져 사진을 찍었다 . 실제로 필자가 만나본 많은 주민이 음식 섭취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 쪽방촌 복지관의 간호사는 인터뷰에서 주민들의 40% 정도가 호스피스 / 요양병원에 계셔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만큼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하다 . 실제 쪽방에서는 매년 20-30 명의 주민이 방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데 , 필자가 동자동에 머물던 기간에도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업체를 여러 번 보았다 . 이렇듯 주민들의 고령 이나 건강 상태 등은 주민들이 폭염과 한파 등의 극한 기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인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
그림 3. 도시락 배달 중 방문한 쪽방주민의 건강상태가 적힌 쪽지
이러한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폭염과 한파 등 극한 기후 변화에 더욱 악화되며 장기적으로는 쪽방촌의 취약성을 더 높이게 된다는 점에서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 이미 다양한 연구에서 논의 되었듯 , 폭염은 심혈관 질환 , 뇌혈관 질환 , 호흡기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 탈수 , 고열 , 탈진 , 열사병 및 기타 합병증을 유발해 기존 질환을 악화시킨다 . 실제 폭염과 한파가 주민들의 건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쪽방촌의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여름이 특히 더 위험하죠 . 쪽방촌에서 근무하는 다른 간호사들도 여름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저한테 많이 이야기해요 . 여름에는 열사병이 걸리기도 쉽고 , 냉장고가 없으신 분들의 경우 음식이 상하기도 쉽고 . 그걸 또 먹으면 탈수증상이 오고 . 방은 덥고 . 그러니까 계속 악순환인 거죠 . 그렇게 며칠 방에서 앓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구요 .”
-> 2편에서 계속
[1] Janssen, M. A., Schoon, M. L., Ke, W., & Börner, K. (2006). Scholarly networks on resilience, vulnerability and adaptation within the human dimensions of global environmental change. Global Environmental Change, 16 (3), 240–252. https://doi.org/10.1016/j.gloenvcha.2006.04.001
[3] Wisner, B., Blaikie, P., Cannon, T., & Davis, I. (2004). At risk: Natural hazards, people’s vulnerability, and disasters. Routledge.
[4] 쪽방촌의 경우 도심 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환경은 제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