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당신의 작업에서는 포퓰리즘이라는 주제가 반복됩니다. 추측컨대 여기에는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대한 오랜 경험과 참여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작업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주제는 존재적(ontic) 차원보다는 훨씬 더 존재론(ontological) 차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에서 당신은 모든 정치 이론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중요한 특징으로서 포퓰리즘 이론을 설명합니다. 이 설명은 몇 가지 비판을 불러일으켰지만,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비판은 당신의 개입이 갖는 존재론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묻고 싶은 질문은 있습니다. 먼저, 당신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상을 구성하는 데 있어 명명하기(naming)는 중요합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포괄할 수 있는 명료한 개념적 형식을 갖춘 이론적 연구의 대상을 구축하는 경우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연상적(connotative) 접합으로 인해 포퓰리즘이 이데올로기적 단순화, 반자유주의, 권위주의, 감정주의, 컬트적 리더십과 연결될 위험이 있지는 않습니까? 실용적으로 생각하면, 꼭 포퓰리즘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중적-민주적 정치라든지 등가성의 정치 아니면 그냥 정치적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방식이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부정적 의미를 연상하거나 암시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접근 방식이 가리키는 논리와 과정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둘째, 포퓰리즘에 대한 당신의 접근 방식은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등가 연쇄(equivalential chain)를 구성하기 위해 여러 현장에서의 요구들을 함께 연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각 요구의 중요성이나 강도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이러한 차원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각 요구가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서로 동등합니까, 아니면 다른 요구보다 중요한 더 중요한 요구가 있습니까?
포퓰리즘 이론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세 번째 문제는 이론적 모형에서 수평축과 수직축 사이의 관계입니다. 당신의 이론은 포퓰리즘 운동에서 이질적인 사회적 요구들을 특정한 기표 또는 리더와 연결하는 수칙축이 언제나 요구들 사이의 수평적 연결에 의해 보완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두 요소들은 일종의 균형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포퓰리즘의 위험은 수직축에 의해 수평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에는 언제나 국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구성된 요구들 사이의 과잉결정된 관계를 대중과 리더의 순전히 수직적 관계로 축소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적 포퓰리즘은 컬트적 리더십이나 역사의 종언을 약속하는 초월적 기표로부터 정체성들과 주체성들 사이에 신중하게 구축된 등가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권위주의 포퓰리즘'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적 포퓰리즘은 특정한 제도적 형태와 제약을 요구로 합니까?
EL:네, 첫 번째 요점에 관한 한 저의 포퓰리즘에 대한 견해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미 특정한 형태의 포퓰리즘을 염두에 두고 제가 제안한 범주의 확대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포퓰리즘이 데마고기, 부정적인 리더십에 의한 대중의 조작, 무책임한 정치적 실천을 의미한다면 포퓰리즘을 옹호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일 것입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대답해 보겠습니다. 먼저, 저는 포퓰리즘이 특정한 내용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퓰리즘은 현 상태(status quo)에 대항하는 약자들(underdog)을 동원할 수 있는 호명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것을 구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매우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이루어질 수 있으며, 포퓰리즘은 결과적으로 훨씬 넓은 차이의 복합체가 됩니다. 둘째로, 비판가들의 담론에는 개념을 확대하는 담론적 전략과 축소하는 전략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포퓰리즘을 선동, 조작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와 강하게 연결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정치적 운동과 실천으로 확장하면서 그 의미를 폄하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 반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등장한 국민적-대중적(national-popular) 체제를 폄하하는 방식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저의 영역에서 반포퓰리즘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불명예스러운 것에서 긍정적인 가치로 전환시키고자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승리를 거두어 왔습니다.
두 번째 요점에 관해서는, 동일한 수준에서의 모든 요구가 그 중요성이나 강도에서 차이가 없다면 그것들 사이에서 요구들이 과잉결정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비어있는 기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포퓰리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요구들 사이의 중요도 혹은 강도의 불균등성이 바로 정치-헤게모니 장을 구조화하는 조건입니다. 다른 질문은 이러한 중심성에서 차이들이 결정되는 방식, 즉 과잉결정된 중심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 과정이 내부적인 구조 안에 기입되어서 고립된 일부의 요구들이 일종의 명백한 운명에 의해 주어진 헤게모니적 중심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정치 담론의 장에서 이러한 과잉결정하는 효과의 유일한 원천은 요구들 사이의 상호작용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차이를 결정하는 선험적 규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맥락적인 분석만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수평축과 수직축에 관해서는 당신이 설명하면서 두 축에 부여했던 역할을 뒤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직축이 수평축으로 보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평축이 없으면 수직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등가/수평 축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총체성으로 의미화하고자 하는 필요가 생겨납니다. 그 필요에 대한 해답은 비어있는 기표의 생산, 즉 수직축의 구성입니다. 그러나 수직축은 수평축의 존재와 엄격하게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재현을 필요로 하는 등가 연쇄가 없다면 리더십의 출현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사회적 논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 [역자주: 어떤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려 할 때 그 명제의 결론을 부정함으로써 가정(假定) 또는 공리(公理) 등이 모순됨을 보여 간접적으로 그 결론이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 의 방식으로 생각해 봅시다. 수직축만 존재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민주적 요구들 사이의 어떠한 등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헤게모니적 기표의 구성으로 이어지는 ‘비우기(emptying)’의 실천이 존재하지 않는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여기서는 어떠한 중심도 과잉결정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중심적 요소의 존재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원자화된 모나드적 주체와 순수한 지배 관계를 맺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홉스의 리바이더먼 모델 조차도 커먼웰스(Commonwealth)가 출현하는 의지 간의 계약에서 등가적/수평적 계기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합의적 요소는 미미하지만 존재하며, 이것이 홉스의 리바이어던 모델을 전제군주제와 구별될 수 있도록 합니다. 헤게모니적 실천은 이 수평적/합의적 축의 작동을 확장하고자 하는데, 홉스는 이를 단일하고 고유한 행위로 축소시켰습니다.
물론 두 축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긴장은 사회가 구조화되는 방식에 달려 있는 것이지 제 이론 안에 내재하는 논리적 결함이 아닙니다.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수칙축이 특권화되면서 권위주의 정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더 이상 포퓰리즘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수평적 축이 파괴되어 더 이상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민주적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과 같이 수직축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민주적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립된 요구는 가만히 놔두면 자발적인 기적이나 우연의 일치로 저절로 결집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 방향이 진보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두 축의 공동 작용에 의해 형성된 균형과 긴장 속에서만 구축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긴장이 시작되고 가능하게 해주는 여러 언어 게임들을 우리는 정치라고 부릅니다. 이런 긴장 속에서 경합적인 교류가 가능하게 해주는 제도적 형태는 사회마다 다르며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하나의 아프리카 사례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무가베 정권이 포퓰리즘이 무너지고 권위주의로 이어진 사례라면, 탄자니아의 니에레레(Nyerere) 정권은 앞서 말한 두 축 사이의 민주적 균형을 이끌어 낸 사례입니다.
DH: 마지막 질문은 포퓰리즘과 급진적 민주주의의 관계, 그리고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서 당신과 샹탈 무페는 보편주의 담론이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후기 작업에서는 민주적 다원주의와 다양성을 이유로 보편성 개념을 기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의 변증법적 놀이를 보게 됩니다. 모든 헤게모니 프로젝트, 즉 모든 등가관계의 집합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것과 동일시하기 위해’ 비어있는 기표를 구축함으로써 그들의 담론을 보편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포퓰리즘 이성을 위하여』에서 당신은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내면서 “민주주의는 오직 민주적 주체의 존재에 근거하며, 그 출현은 등가적 요구들 사이의 수평적 접합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견해의 한 가지 함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접합이 우연적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와 대중적 주체성의 문제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재구성의 중요한 결과는 민주주의를 특정한 형태의 제도적 형태와 실천과 연결시키는 관행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이는 포퓰리즘 논리가 특정한 제도적 배치를 초월하고 그러한 배치를 근거 짓기 때문입니다. [역자주: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대안적인 제도적 형태의 구성에 대해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의 접근에는 제도적 결핍(institutional defict)의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EL: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제가 이전에 여러 번 말했던 것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단지 우연적이며, 자유민주주의는 유럽과 앵글로색슨 세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연결을 보편화하려는 헛된 시도일 뿐입니다. C.B. 맥퍼슨은 그의 저작에서 다양한 종류의 민주주의 제도가 존재하며,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9세기 초 서유럽에서 자유주의는 매우 인정받는 정치 조직의 형태였던 반면, 민주주의는 오늘날 포퓰리즘이 그러한 것처럼 군중(mob)의 통치와 연관되어 경멸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럽에서 두 가지가 통합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통합은 언제나 불안정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 통합이 훨씬 더 불안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자유주의 국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이는 후견주의에 토대를 둔 지역 토호들의 과두제의 전형적인 정치적 표현으로 여겨졌으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20세기 들어 등장한 대중들(masses)의 민주적 열망은 비자유주의적 형태, 즉 보수적 과두제의 거점이었던 의회 권력에 대항하는 대중적 지도자의 지지를 통해 표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대중적 표현은 입법 권력 대신 행정 권력을 강화하는 것, 즉 포퓰리즘적 축을 중심으로 민주적 요구를 응집시키는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국민적-대중적 체제는 선거, 권력의 분립과 같은 자유주의적 형태를 의문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대중의 동원을 민주적 발전의 항상적인 조건으로 하는 강력하게 대통령 중심적인 체제입니다. 아랍의 봄을 통해 중동에서 어떤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이 이루어지든, 우리는 그것이 서구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은 특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누가 저의 이론에 제도적 결핍이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저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이는 보편성에 대한 질문과 연결됩니다. 저의 접근은 두 가지 상반된 견해와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버마스주의자들와 같은 강한 보편주의입니다. 이들에게 보편적인 것은 개념적 이해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고유한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극단적인 특수주의입니다. 이는 다문화주의의 형태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저는 보편성의 차원은 지워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어있는 기표의 경향적 논리에 상응하는 보편성의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보편주의적인 접근과 달리 우리는 보편성이 고유한 내용을 갖고 있지 않으며, 특정한 특수성이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것으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출현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엄격한 특수주의와는 달리 우리는 특수성의 정체성이 관계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순수한 특수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특수성은 과잉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보편성과 특수성,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운동은 보편적인 것의 차원이 제거될 수 없으며, 그것의 지위는 언제나 완전한 정체성에 도달할 수 없는 헤게모니적 보편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DH:당신이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정치 이론에 두 가지 놀라운 발전이 있었습니다. 첫째, 1971년 『정의론』이 출간되면서 규범적 정치 철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등의 다양한 비판적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둘째, 해석주의, 해석학, 사회구성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이름으로 (주로 미국의) 행태주의(behavioralism)와 실증주의 정치 과학 모델에 대한 도전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식의 구분은 영미권 전통에 근거한 다소 편협한 구분일 수 있겠습니다. 유럽적 맥락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마르크스주의와, 현상학, 구조주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 탈구축 철학, 포스트구조주의와 같은 다양한 경향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영미권 전통의 학문적 경계를 문제시하고 그것을 초월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연구가 영미권 정치 이론의 경향들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당신은 엄격하게 규범적인 문제들과 이론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현대 정치과학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방법(method)과 인식론에 대한 문제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연구가 인식론이고 방법론적인 문제보다 존재론적 문제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십니까? 일부 사람들이 당신의 연구가 규범적, 방법론적으로 결핍되어 있으며, 당신이 가설적 설명과 규범적 대안의 정당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작업에서 비판적 설명(critical explanations), 혹은 다른 방식의 설명을 할 수 있는 이론적 모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다 질적이고 해석적인 사고와 연구 방식을 옹호해 온 정치학계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운동을 둘러싼 논쟁과 토론에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까?
EL:제가 앵글로색슨 전통보다는 대륙(Continental) 철학의 전통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작업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존 롤스 같은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은 제가 정치적인 것을 다루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저는 비트겐슈타인에 굉장히 많은 관심이 있었고, 명명(naming)과 관련한 기술주의(descriptivist)와 반-기술주의(anti-descriptivist) 논쟁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반 철학(general philosophy)에 관한 것들입니다. 저는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정치 분석에 대한 가능한 전망을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지 정치 철학의 특정한 영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인식론과 방법론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칸트 이전에는 존재론적 질문과 인식론적 질문은 완전히 다른 두 분야에 속해 있었습니다. 존재론은 실재의 구조를 연구하고, 인식론은 그러한 구조를 아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칸트의 초월적 전환은 이 둘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식의 주관적 요소는 더 이상 알고자 하는 대상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구성에 필수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 이후 철학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이러한 경향을 강화했습니다. 실재의 사회적 구성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엄격한 분리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규범적 인식론의 시대가 확실히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파이어벤트 만큼이나 일반적인 방법론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물론 특정 연구 분야에 종사할 때 따라야 할 규칙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계를 활용한 연구를 할때는 수치 모델(numerical series)의 구조적 특성에 따른 특정 규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들의 복합체들이 ‘방법론(methodology)’이라는 통일된 전체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입니다. 사회과학자는 자신의 직관이나 상식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하며,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무오류의 방법론이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는 하급 노동자(underwoker)입니다.
DH: 당신의 작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사상가와 이론가들과 공개적으로 논쟁해왔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는 그런 논쟁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당신의 논적(interlocutors)들 중 일부가 이러한 교류의 과정에서 경합적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 대한 노먼 제라스(Norman Geras)의 비난이나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kek)이 당신의 작업의 일부 측면에 대해 더욱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증주의와 행태주의 정치과학자들이 보이는 이론적이고 비판적인 연구에 대한 적대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오늘날 특히 좌파들 사이에서의 일반적인 학술적 토론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점점 더 폐쇄적이고 서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흐름에 계속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EL: 사람은 항상 친구뿐만 아니라 적도 선택해야 합니다. 역사적 시기마다 복수의 지적 패러다임이 존재하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대안적 사유와 대면하지 않고 자신의 접근 방식에 스스로를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상은 상대방과의 경합적 대결을 통해 더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개방적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접근들은 너무 이질적이어서 대화를 하지 않아도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행태주의적 전통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 전통과의 지적인 교류를 꿈도 꾸지 않을 것이며, 제 생각에는 그들도 그럴 것입니다. 라캉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아주 극단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현대 사상에는 저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많은 조류들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지젝의 경우는 조금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나의 친구였고, 우리는 많은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적 불일치도 있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헤겔을 라캉에 동화시키는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저는 늘 그것이 완전한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겔과 라캉은 유사한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헤겔에게는 변증법적 매개를 통한 보편적 재현의 수단이 존재하는 반면 라캉의 접근에서 핵심적인 것은 ‘실재(Real)’의 개념이며, 그것은 모든 재현의 과정을 급진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일치는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게 만들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그것들이 우리 사이의 정치적 괴리를 넓히는 것과 동반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지젝의 정치적 입장은 점차 변화했으며, 그의 주장은 유치한 레닌주의(Leninism of kindergarten)에 휩싸인 광적인 극좌파적 입장(frantic ultra-Leftist)에 의해 점진적으로 지배되어 결국 그와 어떤 소통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요약하자면, 데이비드, 저는 조금도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로부터 지적 감사의 표현을 많이 받았으며, 많은 뉘앙스와 차이점을 가지고 사회 발전과 정치적 해방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거대한 정치 및 학문적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