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

정치와 탈근대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

번역: 연구공간 L 기획, 주현이승준 옮김

 

지난 5월 25일, 신촌에 있는 '더 컬처럴'에서 현대정치철학연구회와 마포신촌학술단체 네트워크가 주최한 안토니오 네그리 추모 학술대회 "네그리의 주제와 유산"이 열렸습니다. 서교연도 이 행사에 참여하여 정정훈 회원은 "한국 마르크스주의와 네그리: 제국 전쟁에서 삶정치적 생산론으로"라는 발표를, 김강기명 회원은 "전복적 스피노자 이후, 네그리의 스피노자"라는 발표를 선보였습니다.

이날 인-무브 편집팀은 토론을 맡으신 생태적지혜연구소 이승준 선생님과 우연히 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이승준 선생님께서 네그리의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의 영역본을 전부 우리말로 번역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편집팀은 인-무브에 원고를 공개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렸고, 이승준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한글 파일로 60쪽이 넘는 이 책의 번역을 앞으로 조금씩 나누어 웹진에 공개합니다.

이로써 작년 12월에 타계한 철학자에 대한 추모에 인-무브도 뒤늦게나마 동참하려 합니다. 번역 전문을 편집팀에 선뜻 보내 주신 이승준 선생님, 그리고 이 글을 함께 번역하신 주현 선생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다음은 책의 목차입니다. 오늘은 우선 로코 강글의 머리말부터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무브 편집팀)


머리말 - 로코 강글(Rocco Gangle)
영역자 노트 윌리엄 맥퀘익(William McCuaig)
 

서문 : 스피노자와 우리
 
<<야만적 별종>>을 옹호하며
<<야만적 별종>>의 탈근대로의 확장
개체주의를 넘어서는 스피노자
살아있는 유물론이라는 대안
긍정의 존재론을 두려워하는 이는 누구인가?
오늘날 스피노자는 어떻게 사용되는가?

 

1장 스피노자 : 내재성과 민주주의의 이단아
 

2장 역능과 존재론 : 하이데거 혹은 스피노자

 

3장 다중과 특이성 : 스피노자 정치사상의 발전에서
 

4장 스피노자 : 정동의 사회학
 
1. 스피노자 대 사회학?
2. 쿠피디타스와 삶정치
3. 쿠피디타스에서 아모르로

 

 

 

머리말

시간은 쉼이 없다

안토니오 네그리, <카이로스>, <<혁명의 시간>>

 

 

로코 강글 | 앤디콧 대학

 

 

우리가 21세기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를 경유해 17세기 네덜란드 유대인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와 맺는 관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나 간신히 생각할 법한 급진적 민주주의, 즉 우리 시대의 구체적인 역능 및 들끓는 힘이 관련되어 있다. [첫째] 스피노자가 <<에티카>>를 통해 우리에게 제공한 것은, 한편으로는 창조적 관계의 존재론 및 인간학이자, 내재적 존재에 대한 구축적 설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체현된 기쁨과 지성 능력을 통해 성취한 정동적이고 욕망적인 인간해방 개념이다. [둘째] 스피노자는 그의 또 다른 위대한 저서인 <<신학정치론>>에서 근대 정치학의 주류적 전통오늘날이라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면서 자신들이 지닌 모든 힘을 전체적으로 발휘하는 사회”(16)로 이해되는 민주주의 개념으로 우리를 이끈다. 네그리의 지난 수십 년간의 스피노자 연구가 목표로 한 것은 스피노자가 가진 이 두 측면의 관점이 얼마나 일관성이 있고, 또 어떻게 서로를 강화하는지를 증명하는 데에 있다. 네그리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천재성은, 근대가 신기원을 여는 시기에 이제 막 태동한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힘들 가운데에서 끌어낸 두 가지 개념, 즉 내재적·물질적·정동적·구축적인 존재 개념과 민주적인 정치적 구성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파악했다는 데에 있다.

 

네그리가 보기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단순히 여러 정치체계 중 하나의 정치체계, 말하자면 개인이 자기 정부의 대표자를 선택할 자유나 다른 사람들과의 교환관계에 자유롭게 참여할 자유를 허용받는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창조적인 힘, 즉 존재 자체를 계속해서 다시 만들어내는 보편적인 인간의 힘정치적이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적·문화적·언어적·물리적인을 지시한다. 공통적인 것 안에서 작동하는 주체적물질적 힘들의 종합-없는-협력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세계 자체를 창조적 노력의 공통 공간으로 만드는 비가역적인 힘을 드러내며 그리하여 바로 그 힘 자체를 무제약적으로 증폭시키는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형태의 행위는 독특한 시간성인 카이로스의 시간에, 즉 평범한 역사의 연속적 흐름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가능성 및 새로운 이름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열어젖히는 창조적인 순간에 거한다. 이 공통의 힘, 우리의 공통의 힘에는 추상적인 것이란 없다. 그것은 원리상 근대의 도래와 함께 탄생했지만 근대 자본주의의 잔혹한 역사에 의해 즉각 축소되고 왜곡된, 인간 노동과 삶 간의 구체적이고 전지구적인 상호연결성이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분명 손상되는 일도 있지만 무한히 자기-갱신하는 하나의 이름으로, 이 이름은 기쁨과 사랑의 정동 내부로 향하는, 즉 도처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 제공되었다 철회되는 값싼 대체물이 아닌 실재하는 기쁨과 실재하는 사랑의 정동 내부로 향하는 행위(이 정동들을 목표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에 붙여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 세계에 거주하는 욕망하는 다중의 내재성을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네그리는 지난 수십 년간 쓴 다수의 책을 통해 급진적 민주주의관을 발전시키면서 전지구적 공통[]의 비자본주의적 생산 프로그램 안에서 정치와 존재론을 결합한다. 그리고 네그리가 이러한 결합을 이룰 수 있게 만든 핵심 사상가가 바로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가 통상적으로는 구별될 뿐만 아니라 서로 실증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을 지칭하는 두 용어인 신과 자연의 완전무결한 동일시를 표시하려고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 쓴 곳에서, 그와 유사하게 네그리는 중대한 개념의 융합, 즉 철학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민주주의 즉/또는 코뮤니즘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네그리에게 있어 이러한 융합은 어떤 외생적 종합이나 단순한 관념적 근사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성적인 기쁨의 힘스피노자가 최초로 우리 세계의 진정한 실체로서 철학적으로 확인한의 내재적 이름붙이기(naming)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론, 다중의 존재론이며, 또한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적 문법 안에서 목적격 소유격과 주격 소유격을 융합시키는 이론이자 실천인 것이다.

 

현재적인 저작인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는 네그리의 초기 기획 일부에 뿌리를 둔다. 네그리는 이미 <<정치적 데카르트>>와 <<맑스를 넘어선 맑스>> 같은 책에서 철학을 광범위한 사회적역사적 과정에 뿌리내리게 했는데, 이러한 철학사 읽기는 환원주의나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사회적역사적] 과정의 역동성을 참작하는 텍스트 분석 및 엄격한 논증 스타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네그리의 작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가 역사적 자료 및 이론에 강하게 개입해 그것을 즉각적인 정치적 반향을 일으킬 통로로 만들어내는 그러한 내재적인 정치적 글쓰기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전에 마키아벨리가 그랬듯, 네그리도 당면한 정치적 현재 안에서 글을 쓰며, 또한 그의 역사적 대화상대들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분위기에서 그들에 대한 글을 쓴다. 마키아벨리처럼 네그리도 정치적 투쟁의 격렬한 직접성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가장 예리한 지적 간지(奸智)에의 요구를 제거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아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는 반동적/반작용적인 권력이 지닌, 즉 굴복하지 않는 몸과 정신을 짓이기려는 처벌과 투옥의 힘이 지닌 부정성과 잔혹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네그리의 글에서 사유는 리듬감과 추진력을 지닌 공격의 물질성을 구현한다. 논증의 명료함, 문헌검토의 세밀함뿐만이 아니라 빈번한 수사학적 도약의 탁월함과 그러한 도약의 힘 등이 보여주면서도 생산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지적 동지애(intellectual camaraderie)이다. 어떤 이는 그와 함께 책을 읽고, 어떤 이는 그의 논증의 힘과 논증의 서사화에 이끌려 그것의 지닌 비타협적 움직임에 자신의 사고력을 덧붙일 것이다. 네그리의 글에서 사유 자체가 배우는 것은 그 글이 본래 지닌 정치적 추진력이다.

 

 

네그리의 전투성은 도처에서 다양한 원천이탈리아의 인문주의 전통, 근대 철학의 형이상학 및 정치사상, 그리고 후기 근대 및 탈근대의 가장 정교한 이론적 발전 등을 활용한 깊은 학식으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심해야 할 것은 그의 수사학적이고 논쟁적인 힘의 뿌리는 무엇보다도 네그리가 홀로 싸웠던 전선 및 집단적 전선에서 그가 수행했으며 또 계속해 수행하고 있는 구체적인 정치적 투쟁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1970년대 이탈리아의 아우또노미아 운동과의 공동작업, 그 시절 동안의 노동자들의 봉기와 공장 점거에 대한 그의 직접적 참여는 체험해서 알게 된 집단적 저항의 역동성에, 그리고 혁명적 행동의 물리학화학에 그의 사상이 젖어들게 했다. 아우또노미아의 전술과 전략은 당시 이탈리아의 지배적인 좌파 조직인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전략전술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립했으며, 네그리가 보기에 이러한 좌파 내부의 적대적 차이는 명령에 맞서는 창조적 자유’, ‘초월성에 맞서는 내재성’, ‘당과 국가에 맞서는 진정한 코뮤니즘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투쟁의 하나의 축소판 혹은 하나의 제유(提喩)이다. 네그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프랑스 철학자들(특히 푸코들뢰즈가타리 등)의 이론적 발전을 끌어와서, 종합적 몰성(molarity)의 방법에 맞서는 분자적 공명의 방법을 주장함으로써 그것을 자기 시대의 구체적인 정치적 관심사와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혁명적 실천의 이미지가, 즉 당시에 네그리가 적었듯이, 겉보기에는 역설적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블라디미르 레닌넓은 기반을 가진 아나키즘의 전위, 집단주의의 전위였던의 결합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관점은 네그리의 단독 저작과 공동 저작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으며, 두 작업 모두 좌파와 우파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지나가면서 언급할 만한 것은, 제국 개념과 다중 개념이 이러한 초기 작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일인칭의 관점에 입각해서 비판하는 것은 그가 가장 엄격한 학문적 연구를 직접적인 투쟁의 경험과 결합시키고, 고도의 학문적 생산을 효과적인 공장 장악과 결합시켰다는 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급진적인 좌파인 붉은 여단이 1978년 이탈리아 기독민주당 정치인 알도 모로를 납치 및 암살한 여파로, 네그리는 테러를 선동하고 그 살인에 연루되었다는 매우 모호한 구실로 기소된다. 이러한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음에도 그는 결국 그와 별개이면서도 아주 모호한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이후 프랑스로 도피했고 거기서 정치적 망명을 허용받았다. 이탈리아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네그리는 <<야만적 별종: 스피노자 형이상학과 정치학의 힘>>을 집필했는데, 이는 20세기에 쓰인 스피노자에 대한 가장 탁월한 작업 중 하나이며, 스피노자의 학술적 르네상스를 꽃피운 데에 기여한 핵심적인 텍스트이다. 스피노자 르네상스는 1960년대에 마트롱, 모로, 알튀세르, 발리바르, 마슈레이, 들뢰즈와 같은 사상가들의 작업으로 꽃을 피운 이후, 프랑수아 졸라비흐빌리(François Zourabichvili), 로렌조 빈시구에라(Lorenzo Vinciguerra), 워런 몬탁(Warren Montag), 앙드레 토젤(André Tosel), A. 키아리나 코르델라(A. Kiarina Kordela), 조나단 이스라엘(Jonathan Israel) 등등의 작업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만적 별종>>의 핵심 주장은 <<에티카>>에 나온 두 가지 힘 개념의 차이를 일관되게 분석한 것에 따른 것이다. 한편에는 포테스타스(potestas)가 있는데, 이는 작용하면서 효과를 창출하는 능력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나미스(dynamis)가능성으로 존속하며 본질적으로 힘의 억제이자 힘의 자기-제한 안에서 스스로를 모으는 힘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변증법적(이것은 분명하게 초월성과 연결된다)이다. 다른 한편에는 포텐티아(potentia)가 있는데, 이는 운동하고(in actu) 정지하는(in situ) (force)의 행사이자, 진정으로 내재적인 창조 안에서 주체적 욕망과 객관적 구축을 조화시키는 구성적 활동이다. 포테스타스와 포텐티아의 이러한 구분은 미래를 구성하는 혁명적 실천의 현상학이라는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신학정치론>>의 주제와 논증을 조화시키는 토대의 역할을 한다. 네그리는 <<에티카>>의 작성에서 단절이 있음을 파악하는데, 스피노자는 그 단절 기간에 <<신학정치론>>을 저술 및 출판한다. <<신학정치론>>은 스피노자의 일대기에 등록된 우발적인 저작으로 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에티카>>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필수적 이행—<<신학정치론>>을 특징짓는 당면한 정치적 위기를 통과하는의 저작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와 네그리의 실천의 현상학은 사유를 자본주의 위기 내에 직접적으로 위치시키는 것이 된다. 통찰력을 가지고 당대의 정치적경제적 위기와 대면하는 것만이 스피노자 존재론을 사유의 철저한 내재화로 특징지을 수 있게 하는데, 네그리는 논쟁적인 어조로 이를 실체의 통일성과 그 양태들의 복수성이 맺는 관계의 역전으로 해석한다. 네그리가 보기에, 실체의 통일성에 맞서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양태들의 구성적 관계성의 우위성은 스피노자의 사상을 그의 초기 저작들인 <<소론>>과 <<지성교정론>>에 분명하게 남아있던 초월성의 잔여로부터 벗어나 최종적 이행을 하게 만드는 척도가 된다. 따라서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저술의 역사 안에 있는 이러한 구성적 양태로의 전회, 이러한 정치적 전회를 비가역적인 존재론적 사건이 철학 내에서 전지구적 공통[]의 내재적 특이성을 개시하는 바로 그 순간으로 확인한다.

 

1997년 네그리는 자신의 잔여 형기를 자진해서 채우기 위해 정치적 망명을 했던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그는 2003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가택연금으로 보냈는데 수십 년 간 투옥, 망명 그리고 이동이 극히 제한된 기간을 보낸 후에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여행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학술 장소와 정치적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직접 발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1997년부터 현재[2013]까지의 시기 동안 네그리는 마이클 하트와 공동작업해 세 편의 글—<<제국>>, <<다중>>, <<공통체>>을 출판했는데, 이 글들은 그의 작업을 널리 알리고 토론하게 했으며, 그가 쓴 여러 다른 텍스트들을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이 시기 동안 네그리가 했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 자주 반복적으로 과거에 나를 버티게 해주었고 현재에도 계속 나와 함께 하는 동지는 스피노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놀라운 건 없을 것이다.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2005년과 2009년 사이에 여러 콜로키움과 컨퍼런스에서 네그리가 스피노자에 대해 발표한 네 개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 글들은 그가 1992년에 출판한 <<전복적 스피노자>>에 실린 글들을 이어가면서도 보완한다. <<전복적 스피노자>>는 다른 주제들 중에서도 특히 스피노자의 미완성 저작인 <<정치론>>의 위상, 스피노자 사상과 레오파르디 시학의 잘 드러나지 않은 연관성, 스피노자와 하이데거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철학적 접근법의 핵심적 비교 등을 다뤘다.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에는 네 개의 발표문에 앞서 여러 가지 작업을 겸하는 네그리의 긴 서문—<<야만적 별종>>의 주요 주제를 다시 논의하기, 지난 수십 년간 대륙[유럽] 스피노자 연구의 주요 인물들을 검토하기, 그가 진행하는 철학적 기획을 대륙[유럽]의 정치철학이라는 더 넓은 현대적 무대 위에 세우기이 실려 있다. 마지막 작업을 부연하면, 알랭 바디우와 엠마누엘레 세베리노(Emanuele Severino), 그리고 칼 슈미트에게 영향을 받은 데리다와 아감벤의 정치신학이 네그리의 고유한 기획과, 그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그의 하트와의 공동작업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면서 직접 대치된다. <<야만적 별종>>의 기본 방향이 이러한 현재 유행하는 철학적 경향에 맞서 다시 강력하게 주장되며, 이러한 방식으로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는 어쩌면 보다 더 잘 알려진 <<제국>>,‧<<다중>>,‧<<공통체>>의 분석을 명확히 하면서 강조하는 쪽으로 향한다. 따라서 이 책의 서문은 일정 부분 철학적-정치적 기획의 연속성을 증명할 의도로 쓰인 것이며, 이는 네그리를 그의 초기 저작 및 정치활동에서 오늘날의 국면으로 나아가게 한다.

 

뒤이어 실린 네 편의 논문이 전반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서문에서 개괄한 오늘날의 논쟁과 스피노자가 맺는 관련성에 일관되게 개입해 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1장 <스피노자: 민주주의와 내재성의 이단아>는 <<야만적 별종>>의 주요한 철학적·역사적 주제들을 재검토하고, 초기 근대철학에서 스피노자 사상이라는 별종적 사건이 오늘날의 전지구적 정치와 맺는 연관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서 네그리는 날카로운 이분법을 주장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그의 분석이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다거나 거칠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한편에는 보댕과 홉스를 다른 한편에는 스피노자를 두고, 그것을 초월성에 근거를 둔 정치적 시각과 내재성 안에서 작동하는 시각으로 명확히 분리시키는 단절이다. 네그리는 이러한 차이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구분, 즉 사회적 생산관계와 생산력 자체 사이의 구분전자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변형된다면 후자는 원리상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과 관련되는지를 보여준다. 네그리는 주류 사회계약 전통에, 초월성을 통한 필수적 우회를 거쳐 생산을 이데올로기적반동적으로 억압하는 일이 속해 있음을 입증한다. 이와 대립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비대칭적이고 비변증법적인 대립이다하는, 스피노자의 윤리적 존재론(존재는 곧 실천이다)은 힘들 간의 협력과 충돌을 사회적 질서의 바로 그 실체로 만들며, 그에 따라 그것이 그 자신의 현실성과 유효성 안에서 관여하는 정치적 대상을 추적한다. 공통적인 것은 공적인 것을 대체하는데, 이는 모든 구성된 질서와 관계하는 공통적인 것의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면서도 생산적인 초과를 통해서이다.

 

오늘날의 철학적 경향과 관련해 좀 더 논쟁적인 것은 2장 <역능과 존재론: 하이데거 또는 스피노자>이다. 이 제목은 피에르 마슈레이의 영향력 있는 연구 <<헤겔 또는 스피노자>>에서 따온 것이지만, 네그리는 그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스피노자의 내재성 기획이 지닌 특이성을 보여주는데, 그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내재성 기획은 그 자체 초월성에 대한 모든 재긍정특히 헤겔과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이 보여준 정교한 형식 안에서과 강하게 대립한다. 2장에서 네그리는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시간성 해석 및 그의 방향전환(Kehre) 이후의 시간성 해석을 공격하고, 하이데거의 이른바 근대의 형이상학적 시간성 개념과의 단절이 사실상 이른바 영원주의자스피노자의 것[시간 개념]보다 훨씬 덜 급진적이라고 주장한다. 네그리의 도발적 해석에 따르면 스피노자에게 있어 시간은 새로운 존재를 생산하는, 구성적인 힘 있는 시간”(이는 하이데거의 허무주의적인 무력한 시간과는 대립한다)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헤겔에게서 정점에 이른 관념론적 전통과 단절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자신의 전환을 통한 부분적인 자기-극복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는 네그리에 따르면 여전히 근대를 특징짓는 현실성과 긍정의 분리에 본질적으로 묶여 있다. 이러한 대조는 투박하지 않으며, 결정적이고 분명하다. 하이데거와 스피노자는 둘 다 땅으로의 귀환”, ‘존재에 속하는 인간을 보여주지만, 하이데거의 경우 이러한 소속은 예기치 않은 사건에 대한 포기(giving-up) 혹은 양도(giving-over)로서만 결단 및 긍정될 수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더불어, 세계를-창조하는 인간의 협동적 경험은 특별할 것 없지만 강력한 차원으로, 다시 말해 민주적 행동의 기반이자 그것의 창조적 대상인 공통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출처: Benedictus de Spinoza: Zoeken naar en #Spinoza vinden in Heidegger (bdespinoza.blogspot.com)

 

이러한 스피노자와 하이데거의 대조를 3장의 주제인 <스피노자 정치사상의 발전에서 다중과 특이성>과 연결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인 인물은 니체이다. <예루살렘 스피노자 연구소>가 주최한 강연에서 발전시킨 이 글은 내재적 일원론 속에서 스피노자의 급진적 민주주의의 존재론적 토대를 주장하는데, 이때 내재적 일원론은 초월성을 민주적 정치형태의 외부적 보장자로서 재삽입하려는 모든 신학적 방향설정과는 구별된다. 네그리는 니체의 글에서 스피노자가 관념론자이자 생의 긍정을 부정하는 자로 부정적인 용어로 표현되는 사례를 출발점으로 삼아, 생산적인 사회적 욕망의 계보를 <<에티카>> 안에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네그리는 욕망을 특이성들을 연결하는 것으로 특징짓는 변이”(mutation)의 순간, 공통적인 것 안에서 작용하는 특이성들 사이에서의 그리고 특이성들을 가로지르는 생산적 관계성의 출현, 헤겔과 같은 이후의 사상가들이 매개의 장으로 좌천시킨 이러한 연결의 역할을 엄격하게 내재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실천 자체 등을 강조한다. 네그리에게 본질적인 이러한 변이의 순간은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물질적창조적이고 진정한 생명의 생산성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합리주의의 엄격함을 유지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돕는다. 따라서 인간의 [자기보존] 노력의 정치적 본질은 내재적인 ()자연주의유기체의 재건이 아니라 공통체의 구축가 된다.

 

마지막 장 <스피노자: 정동의 사회학>은 스피노자의 핵심 개념 코나투스, 쿠피디타스, 아모르에 의지하며, 또한 스피노자의 구성적인 사회관을 모든 추상적개체주의적 모델과 대립시키는 푸코의 계보학으로의 전환에 의지하는데, 이러한 추상적개체주의적 모델특히 지배적인 근대 자연법 전통의 모델과 같은에서는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들이 1차 독립행위자 및 제도들에 의해 발생한다. 초월성과 내재성의 대립이라는 후렴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데, 이번 경우에는 정적이고 비시간적인 사회성 모델이,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며 시간화된 사회적 변형의 담론과 대조된다. 이 장에서 이러한 구분은 우리가 스피노자에게서 보게 되는 것은 […] 현실에 대한 관점과, 지금 현재 진화하고 있는 사회구조 및 권력구조를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의 개시이다라는 식으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네그리가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이론가들짐멜, 베커, 부르디외, 시몽동, 알튀세르, 마슈레이, 푸코을 언급한다는 점인데, 이들은 그러한 사회적 분석의 내재적 영역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이 모든 이들에 대한 참조는 뒤이을 경로, 즉 추가 연구 및 창조적실천적 배치(deployment)를 위한 통로를 지시한다.

 

네그리 사상의 비판적긍정적인 힘이 이 모든 장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표준전략은 간단하면서도 전염력이 있다. 즉 구축적이고 혁명적인 정치적 이론 및 실천을 억제하는 몇 가지 사유 형태를 식별하고, 그것의 이론적 전제들을 스피노자의 긍정적이고 구성적인 존재론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역사적이고 존재론적이면서도 또한 정치적이다. 이 책 전체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네그리의 관점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다음 세 가지 해석 축의 협력이다. [첫째] 스피노자가 작업했던 초기 근대 유럽의 사회적정치적 맥락에 대한 관심. [둘째] 스피노자 글의 복잡함, 특이성, 그리고 전반적인 지형학에 대한 깊은 몰입. [셋째] 현재와 미래의 정치적 탈근대성에 대한 지속적인 참조를 경유한 긴급성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감각.

 

<<스피노자와 우리 시대>>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일반화된 집단이나 협소한 학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별되는 정체성들의 합성보다는 주로 창조적 저항의 내재적 힘에 의해 규정되는 새로운 종류의 협동적인 사회적정치적 주체의 특이한 횡단면(cross-section)을 지시한다. 어쩌면 네그리는 살아있는 그 어떤 지식인들보다 그러한 주체의 구성적 역동성과 긍정적 예후(prognosis)를 가장 잘 도표화한 사람일지 모른다. 한편으로 이 글들의 상대적인 비형식성(가령 <<야만적 별종>>과 비교해서)은 이 책을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을 아주 독특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네그리 철학의 훌륭한 입문서로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기서 제시된 주장은 스피노자 사상을 현재 안에서 현재에 대해 다루는 점점 커지는 진보적인 스피노자주의자들의 학문공동체, 즉 스피노자 철학에 걸린 판돈이 오늘날 전지구적인 정치적 국면의 판돈이기도 한 학문공동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사유, 우리 시대를 위한 사유이다. 2008년의 전지구적 경제위기의 여파로 의심의 여지 없이 유럽,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서 급진적인 정치사상이 부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성장과 번영의] 약속을 깨는 상황이 닥쳐온 오늘날 모든 이성 원리를 넘어서는 긴축이 점점 늘어나는 절망의 통성기도음(faith-cry)이 되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스피노자 시대에 열린 최초의 부르주아적 자본주의의 파열에 응답하고, 또한 이 파열된 열림에 응답하여 스피노자 사상이 보여준 이단적 길에 다시 새롭게 관심을 보일 때이다. 스피노자의 응답은 대개는 한편으로는 형이상학과 존재론의 지배적 전통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철학의 지배적인 전통에 의해 숨겨지고 지연된 그러한 미래를 잉태하고 있다. 오늘날 스피노자그리고 네그리의 정치적 관점 및 존재론적 관점은 현행 질서를 해체하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한 우리의 현재에 추진력을 제공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은, 부정하기 힘든 반동/반작용적인 경제적정치적 권력[포테스타스](potestas)의 공고화에 직면하여, 비자본주의적 생존양식을 탈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으로 구축하는 전략과 결합국지적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수준에서시키는 일에 추진력을 제공한다.

 

 

<머리말 끝>

- 네그리의 글이 다음 편에서 시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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