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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 04




번역: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책소개]

책 “입자선-시간과 생애-시간” (Beamtimes and Lifetimes)은 저자인 샤론 트래윅 (Sharon Traweek)이 참여관찰 방법론을 통해 과학자 사회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당시 과학기술학의 민족지 연구가 주로 다루던 ‘지식의 형성과정’이라는 화두를 넘어 공간배치, 기계, 연구자의 생애과정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다룬 저작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문화에서의 과학연구 양상을 비교하여 국가와 젠더가 과학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젠더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의 3장 “순례자의 모험기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Pilgrim's Progress: Male Tales Told During a Life in Physics) 을 다룰 것이다.

[위의 소개는 데이비드 J. 헤스 저, 김환석 역, "과학학의 이해", 당대, 2004, 256쪽을 참조하였음]

- 번역자


[본문]


대학원생


대학원 기간 동안, 학생들은 각 세부분야로 배분된다. (응집물질물리학, 입자물리학, 플라즈마 물리학, 우주물리학 등) 이론가 혹은 실험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입자물리학자들은 같은 교실에서 서로 어울려 지낸다. 교실에서 정보는 본질적으로 교훈적인 교과서와 인쇄된 글들을 (학술지의 논문 혹은 편지) 통해서 전달된다. 가르치는 사람은 해당 세부분야의 전문가이다. 수업에서 하는 논의의 목적은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숙달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다. 한 대학원 수업에서는 교수가 학생에게 해당 분야의 특수논제에 대해서 발표하기를 요구했다. 그들은 수업에 깊게 참여하지 않는다. 몇몇 학생들은 학과장에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들은 가르치는 이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고, 그들의 동료가 하는 발표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지식을 하나의 상품으로서 습득해왔다. 그들에겐 가능한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목적이다.


실험실에서 대학원생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비를 분해하고, 고치고, 다시 조립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주로 한다. 사실상 초심자들이 하게 되는 것은 모델을 만드는 것을 통해 실재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발리섬의 회화에서 예술가의 능숙함을 확인하는 테스트는 아주 세밀한 수준에서 균일한 배경을 그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만 동적인 전경이 그저 오류가 아니라 계획적이고 성취된 중요한 정보로 보인다. “기능과 일차적 제어가 필수적으로 있어야만 두 번째 단계가 가능하다.” [18] 물리학 실험가들은 이런 일차적 제어를 “결맞는 바닥 상태”라고 (Coherent Ground State) 부른다. 학생들은 자신이 이런 수준의 질서를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결맞는 바닥 상태를 만드는 동안 학생들은 그들의 데이터에서 오류와 의미있는 편차를 구분하는 법, 그리고 보통의 실험과 좋은 실험을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근면, 인내, 집요함, 그리고 이런 감정적 특성이 좋은 물리학을 하는데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다. 또한 물리학에서 “좋은 맛”과 “좋은 판단”, 그리고 “창조적인 작업”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배워가기 시작한다. [19] 이런 미학적 판단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판단에 대해 합당한 감정적 반응도 학습한다. (카타르시스, 긍지, 만족, 기쁨) [20] 그들은 물리학을 향유하고 느끼는 법을 배운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들이 처음으로 진짜 물리학을 한다고 느낀 것이 대학원생 때 부터였다고 말한다.


대학원 기간 동안 학생들은 지도교수를 고르고 또 할당받는다. 보통 이 사람은 초심자의 인생에서 삼촌과 같은 역할을 맡는 것으로 기대된다. [21] 실험실에서 학생이 저지른 오류가 아무리 충격적이고 위험할 지라도 지도교수는 관대하게 베풀어야 한다. 그는 종종 학생들을 데리고 맥주를 마시러 가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초심자들은 그와 농담을 한다. [22] 실험실 미팅에서는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짓궂게 괴롭힌다. 대학원생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지도교수가 인맥을 이용하여 학생의 박사 후 과정 자리를 알아봐 주는 것이 기대된다. 경력이 있는 실험가들은 자주 그들의 지도교수가 자신의 사적인 생활과 전문가로서의 삶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말한다. 대부분 “좋은 물리학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지도교수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면, “작업의 기원은 그것이 만드는 첫 효과에 있지 않다. 오히려 기원은 그것이 수행되는 첫 태도에 있다. 환유를 통해 역할과 기술을 따라하고,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재현함으로서 시작한다.” [23]


대학원 생활의 마지막을 앞둔 젊은 물리학자들의 추천서에서 찾은 칭찬들은 “기꺼이 열심히 수행하는 일꾼”이고, “세심한, 꼼꼼한, 빈틈없는” 사람, 항상 결과를 “내놓고”,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감각이 있는 “좋은 동료”가 이상적인 학생임을 말하고 있다. [24] SLAC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거대 연구단에서는 대학원생이 주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에게 보고한다.) 대학원생은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있는 물리학자는 자신의 그룹에 있는 대학원생에 대한 책임에 대해 불평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확인하고, 실수를 예측하고, 민감하고 위험한 장비 주변에서 자신을 죽이는 일이 없기를 소망해야합니다.” 초심자는 시도, 오류, 비교의 과정을 거치며 배운다. [25]


두 개의 추천서는 추천자의 부인에 대해서 그가 남편이 실험가로서 많은 밤을 검출기와 함께 보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입증되지 않은 근거에 따르면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은 대학원생 때 결혼하며 거의 이혼하지 않는다. 50명의 고에너지 물리학자 부인들의 대화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배우자가 일하는 분야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교육받은 여성이 30년대에 그가 고에너지 물리학자의 부인이 자신의 직업적 성취를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멍청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을 때 몇몇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한 개인이 사회와 문명에 기여하는 방법은 자신의 남편과 같은 사람들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이가 있는 센터장의 배우자는 끼어들면서 남편이 중요한 일을 할 때 귀찮게 하지 않는 방법은 진지하게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통해 나는 젊은 여성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리학자 사회 전체에서 진지하게 자신의 일을 추구하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상당히 크다. 반면에 크게 성공한 물리학자들의 부인들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직업적 성취를 강하게 유지했다. (나는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런 차이는 다양한 요인에 의한 것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세 가지 가능성을 제안한다. (1) 크게 성공하게 될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일을 활발하게 할 여성과 결혼할 공산이 크다. (2) 남편이 크게 성공하게 되면 배우자가 자신의 일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생긴다. (3) 결혼의 가치에 대해 역사적 배경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기간에 결혼한 여성들은 50년대, 60년대, 그리고 심지어는 70년대에 결혼한 여성들보다 더 자신의 이익추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수용적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여성들의 경우조차도 가족이 어디서 살지를 결정하는데 남편의 직업적 요구가 항상 우선적으로 반영되었다. 나는 내 연구 전체를 통틀어서 표면적으로 부부 모두의 직업적 고려가 동등한 부부를 오직 세 쌍 밖에 보지 못했다. 그 중 둘은 부부가 모두 고에너지 물리학자였다.


일반적으로 과학연구에 대한 이와 같은 전폭적인 지지는 연구실 직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26] 가족은 고에너지 물리학자 문화의 일부이며, 군인, 종교인, 예술가와 같이 소명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다른 직업들만큼, 물리학자로서의 직업적 단계는 가족을 규정한다. 대학원 생활이 끝나기 전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혹은 이혼한 사람들은 사생활이 활발하고 복잡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을 제외한 미국, 프랑스, 독일, 소련 등에서 나는 남성 물리학자들이 모여 미혼 물리학자들에 대한 성적 루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남성 물리학자들은 결혼한 동료에 대해서는 그런 루머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 하지 않았다. 불륜은 생활에너지를 낭비하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평가들을 통해 대학원생들은 성공한 물리학자는 결혼한 물리학자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한 물리학자의 모친은 자신의 아들이 사회적 삶 때문에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결혼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원생들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얻고 기록하고 저장한 남성물리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배운다. 한 이야기는 이제는 없어진 케임브리지 전자 가속기의 (CEA) 거품상자에 대한 것이다. 거품상자는 매우 정교하고 강력한 압력장치를 가지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밤 프로판 가스가 들어있는 탱크가 폭발했고, 그것에 의해 학생들이 밖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죽을 수도 있었다. 한 학생이 그의 박사논문에 필요한 데이터를 잃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연구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두 번째 폭발에 의해 그는 문 밖으로 날아갔다. 데이터를 손에 쥔 채.


이런 이야기들은 낭만 보다는 상위모방의 문학적 형식을 따른다. 영웅은 다른 이들 보다는 뛰어나지만 그가 처한 환경보다는 아니다. 그는 자연의 질서를 지배받는 강력한 지도자이다. 자연의 질서를 재편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낭만영웅은 신전 안에서 안전하게 있으며, 상위모방을 하는 약한 영웅은 패배한다. 만약 이야기가 비극이라면 그의 패배는 영웅으로 독해되거나 영웅적인 것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약한 상황에서 강한 기질을 가진 것이다.” [27] 상위모방을 통해 보통 형성되는 감정은 동정심과 공포이다. 이런 형식은 역사적으로 “귀족이 자신의 권력을 빠르게 잃고 있지만, 자신의 명성이 적당히 유지될 때” 나타난다. [28] 물리학 초심자들은 이제 막 교과서와 가르치는 자들의 힘에서 벗어나서 자신들만의 영웅을 그리고 있다.




[그림] 이번 번역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남성 군인의 가족과 남성 물리학자의 가족이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남성'과 그것을 '내조'하는 여성이 기본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또한 남성의 직업적 성취와 강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군인 아파트에서 계급이 낮은 남성의 부인이 계급이 높은 남성의 부인에게 음식을 해서 바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한 적이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식의 남성중심의 공적 위계질서와 사적 영역의 위계질서가 공명하는 현상은 매우 만연하다. 그리고 남성이 왜 결혼하는지에 대한 분석에도 시사점이 있는데, 남성에게 결혼은 남성중심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편입되는 과정이지 '사랑' 혹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대등한 교류'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형식이다. 결론적으로 한 직업군에서 성차별에 대항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평가하는 의미체계와의 투쟁 뿐만 아니라 하나의 재생산 시스템으로서 직장과 가부장제 시스템이 함께 재생산하는 관계의 총체를 파악하고 공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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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Gregory Bateson, "Style, Grace and Information in Primitive Art," in Steps to an Ecology of Mind (New York: Ballantine Books, 1972), p. 148.

[19] 창조성이라는 개념의 발명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Roy Wagner, The Invention of Cul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 pp. 140-145.

[20] 위의 2번을 참고하라.

[21] 나는 이 관계를 삼촌에 비유함으로서 인류학의 개념인 “숙권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모계의 삼촌이 그의 여자형제의 아들들에게 가지는 권리와 의무, 그리고 권력”, 이와 함께 이 관계에 있어서 합당한 비공식적이고 의례적인 행동. Robin Fox, Kinship and Marriage: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Harmondsworth, England: Penguin Books, 1976), p. 105. 다음도 참고하라. A. R. Radcliffe Brown, "On Joking Relationships" and "A Further Note of Joking Relationships," Structure and Function in Primitive Society (New York: The Free Press, 1965), pp. 90-132, 그리고 Gregory Bateson, Naven: A Survey of the Problems Suggested by a Composite Picture of the Culture of a New Guinea Tribe Drawn from Three Points of View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958), pp. 35-53, 74-85 등.

[22] 여성 지도교수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다.

[23] Roland Barthes (n.5), p.99.

[24] 표본은 한 그룹리더가 쓴 약 30여 개의 추천서이다. 질적으로 평가하는 92개의 표현 중에서 다섯 표현은 최소한 열번 반복되었고, 둘은 여섯 번 반복되었다. 좋은 판단 (10번), 주의깊은, 세심한, 빈틈없는 (13번), 결과를 내는 (10번), 기꺼이 열심히 수행하는 일꾼 (16번), 좋은 동료 (11번), 좋은 물리학자 (10번), 독립적인 (6번), 똑똑한 (6번). 한 명은 독창적이라고 소개되었고, 둘은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법을 안다고 소개되었다. 또 둘은 연구계획을 위해서 의무를 다 할 준비다 되어있다고 소개되었다.

[25] 학습에서 오류의 역할에 대한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Gregory Bateson Naven (n.21), p. 274.

[26] 과학에서 “결정적인 사회지원 매커니즘”에 대한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Ian I. Mitroff, Theodore Jacob, and Eileen Trauth Moore, "On the Shoulders of the spouses of Scientists," Social Studies of Science, August, 1977, pp. 303-327.

[27] Northrop Frye, Anatomy of Criticism (n.17), pp. 33-38.

[28]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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