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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 02




번역: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책소개]

책 “입자선-시간과 생애-시간” (Beamtimes and Lifetimes)은 저자인 샤론 트래윅 (Sharon Traweek)이 참여관찰 방법론을 통해 과학자 사회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당시 과학기술학의 민족지 연구가 주로 다루던 ‘지식의 형성과정’이라는 화두를 넘어 공간배치, 기계, 연구자의 생애과정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다룬 저작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문화에서의 과학연구 양상을 비교하여 국가와 젠더가 과학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젠더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의 3장 “순례자의 모험기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Pilgrim's Progress: Male Tales Told During a Life in Physics) 을 다룰 것이다.

[위의 소개는 데이비드 J. 헤스 저, 김환석 역, "과학학의 이해", 당대, 2004, 256쪽을 참조하였음]

- 번역자


[본문]


학부생: 물리학이 말하지 않는 주변적인 것들에 의한 가르침 - (1/2)


일본과 미국의 물리학과 학부생들은 모두 같은 과목을 같은 순서로 배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충분히 훈련된 물리학자들은 모두 세부분야와 상관없이 어떤 학부과목도 다 가르칠 수 있다. 학생들은 물리학을 근본적인 지식의 기초로서 그 위에 다양한 세부분야가 분포되어온 것으로 배운다. 이 풍부한 지형을 가능한 철두철미하게 학습하는 것이 학생들의 목표이다.

물리학이 학부생들에게 처음 소개되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서이다. 물리학의 전문가로 표상되는 강사는 (비록 그가 물리학의 모든 세부분야를 동시에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교과서에 있는 내용에 대해서 설명한다. 학생들에게는 문제 세트들이 주어지는데, 그들은 이를 풀어 제출함으로서 내용을 잘 파악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쉬운 문제에서는 학생들이 적절한 공식에 데이터를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어려운 문제에서는 학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데이터 형태를 보고 이미 배운 방식으로 분석하기를 요구하거나, 어떤 알려진 공식이 실제로는 다른 맥락의 데이터를 익숙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지 골라내기를 요구한다. 논의를 통해 학생들이 각자 한 선택들이 얼마나 맞았는지 명확히 하고, 동시에 학생들의 이해수준을 평가한다.

또한 학생들은 고도로 짜인 실험과목에서 정형화된 실험을 배운다. 그들은 거의 자신의 실험을 설계하지 않는다. 대신 실험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한 고전적인 절차에 대해서 배운다. 학생들은 얻은 데이터에서 예상된 오차범위를 계산하는 법, 그 오차를 교정하는 법, 그리고 특정한 알려진 모델에 근거하여 데이터를 분석하는 법을 배운다.

같은 수준의 분석에서는 대안이 되는 다른 해석에 대한 토론은 하지 않는다. (“입자-해석 대 파동-해석”과 같은 몇 가지 예외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학생들은 주어진 맥락에서 어떤 해석을 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제가 이미 익숙한 문제들과 어떻게 유사한지 보여준다. 이런 풀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소개를 통해 학생들은 연역법이나 귀납법이 아닌 유비 추론을 습득한다. [3]

에이빈 위히만의 “양자역학”은 이 연구를 위해 인터뷰 했던 많은 박사-후-과정 연구원들이 학부 3학년 때 사용했던 교과서이다. 이 책은 여러 주제들을 논리적 순서에 따라서 풀어내고 있다. 내용을 논의하는 순서와 부사구들은 (세기가 바뀔 즈음, 그 때, 오늘날, 지금,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의 규범을 구성하는 발상들이 실제로 논리적 순서에 따라 출현했음을 함축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물리학자 사회가 생각하는 역사에 대한 이미지와 물리학의 현재 안에서의 역사에 대해 소개받는다. 활동 중인 입자물리학자들은 현재의 직접적인 선행사건일 경우에 한해서만 과거를 바라본다. 그들은 맞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의 과학적 발상에 대한 영웅적인 발견을 한 직전의 과학자에게 관심이 있다. 그들에게 물리학사란 짧은 칭찬 일색과 기적들의 목록이다. 영웅과 반영웅, 검출기, “좋은 물리학적 판단”의 예시들에 대한 구전설화가 그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이다. 이런 전설들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지식은 그들이 학생시절이었던 과거로 까지 밖에 확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먼 과거의 선구자들에 대해서는 당대의 생각을 앞서간 사람 정도로만 인식한다. [4]

위히만의 저서를 보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부분에서 물리학의 영웅들을 확인할 수 있다. [5] 이 과학의 거인들은 혼자인 연구실에서 찍은 상반신으로 소개되거나 초상화에 나올 법 한 자세로 머리와 어깨만 나온 모습으로 소개된다. 이런 이미지들의 반복을 통해 책은 남성들의 비슷한 신체적 모습, 눈에 띄는 사회적 보수성 (하지만 한 명은 재킷에 넥타이를 매고 있다.), 특수한 사회적 조건들로부터 자유를 (배경은 비어있거나 중간색이다.) 강조한다. 다른 최근의 교과서에는 아주 다른 사진이 포함되어있다. 리처드 파인만이 활짝 웃으며 삐딱한 자세로 봉고드럼을 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전자와 대비되는 아주 친숙한 모습이다. [6] 위히만의 교과서에는 아인슈타인이 구겨진 스웨터를 입은 것이 유일하게 정장을 입지 않은 사례이다. [7] 모자를 쓰고 정장을 입은 좀메르펠트가 유일하게 야외를 배경으로 한다. (배경은 초점이 흐리다.) 이런 이미지들은 모든 잘나가는 과학자는 모두 남성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열은 명상적인 분위기로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다섯은 독자를 향해 도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캡션을 통한 개략적인 설명을 통해 그 남성들의 생일과 태어난 곳, 사망일, 다닌 대학, 박사를 받은 날짜, 교수직을 시작한 날짜, 물리학 분야가 아닐 경우 초창기 연구에 대한 참고목록, 중요한 과학적 업적이 소개된다. 노트 또한 그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주한 기록들로 구성되어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설명들은 은연중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1) 과학은 뛰어난 남성들 개인들에 의한 결과물이다. (2) 이 결과물들은 사회 정치적 맥락들로부터 독립적이다. (3) 모든 지식들은 물리학과 관련되어있거나 물리학으로부터 파생된다. (4)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입자물리학계에 소속될 수 있다. (5) 입자물리학의 경계는 엄격하게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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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On analogic thinking in science, see Mary B. Hesse, Models and Analogies in Science (Notre Dame, I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79)

[4] Eyrind H. Wichmann, Quantum Physics, Berkeley Physics Course, vol. 4 (New York: McGraw-Hill, 1971). 다음도 참고하라. Thomas S. Kuhn, "The Essential Tension: Tradition and Innovation in Scientific Research," in Scientific Creativity: Its Recognition and Development, ed. C. W. Taylor and Frank Barron (New York: Wiley and Sons, 1963), p. 352

[5] 이미지와 사진 캡션에 의한 수사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Roland Barthes, Empire of Signs, trans. Richard Howard (New York: Hill and Wang, 1982); Roland Barthes, trans. Richard Howard (New York: Hill and Wang, 1977); and Image Music Text, trans. Stephen Health (New York: Hill and Wang, 1977).

[6] Richard Feynman, The Feynman Lectures in Physics (Reading, Mass.: Addison-Wesley, 1964), p. xx

[7] 롤랑 바르트는 다음의 저서에서 아인슈타인이 천재로서 대중적으로 묘사된 모습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The Brain of Einstein," Mythologies, trans. Annette Lavers (New York: Hill and Wang, 1972), pp. 68-70. 물리학자들에 대한 연구 도중 내가 가장 많이 본 아인슈타인의 사진은 그가 어색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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