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 사회재생산과 이데올로기: 리즈 보겔과 주디스 버틀러의 알튀세르 읽기(2015)_첫 번째
<젠더 스터디 박사 및 교수 강연 시리즈>, 2015년 12월 1일
앤드루 라이더
번역: 단감 /페미니즘 번역모임
초록: 리즈 보겔의 저서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통합적 이론을 향해』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중 다수가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를 자본주의적 생산 및 착취의 사회적 총체성으로 통합시키지 않고 그저 문화적으로 결정되는 별개의 양식으로 남겨두는 이중 체제 이론(dual-systems theory)에 기대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겔의 통찰은 맑스주의 전통 중 전기 사상, 가장 두드러지게는 루이 알튀세르의 발견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알튀세르를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실증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맑스의 개념적 통찰을 자신의 실증적 설명과 분리한 알튀세르의 방식을 통해 보겔 역시 자본주의에서 재생산이 담당하는 필수적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보겔의 연구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후기 연구와도 비교할 만하다. 알튀세르는 생산 조건의 재생산이 생산 자체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이데올로기가 재생산의 필요를 유지해준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라 가족을 이데올로기의 주된 장치 중 하나로 지목했지만, 그것의 역할을 상세히 다루지는 않았다. 또한 주디스 버틀러가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독해한 알튀세르를 통해 사회재생산의 대안적 구조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낸시 프레이저가 지적했듯, 이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생산양식 간의 관계에 대한 지나치게 즉각적인 이해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이때 보겔에 새롭게 주목하면서 알튀세르적 접근을 읽는 방식을 바꾸어 사회재생산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알튀세르라는 공통의 유산을 매개로 사회재생산 이론과 퀴어 이론 간의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버틀러의 독해는 젠더 정체성의 경험을 풍부하게 설명하는 이데올로기 이론에 기여하며, 보겔은 역사 유물론을 통해 보다 엄밀한 기반을 제공한다.
본문: 1983년에 처음 출판된 리즈 보겔의 저서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통합적 이론을 향해』는 가부장제를 자본주의적 생산과 착취의 사회적 총체성으로 통합시키지 않고 그저 문화적으로 결정되는 별개의 양식으로 남겨두는 이중 체제 이론을 반박한다. 보겔의 통찰은 맑스주의 전통 중 전기에 해당하는 프랑스 사회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연구에 기대고 있다. 보겔은 알튀세르 덕에 자신이 가사노동에 실증적․기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맑스의 개념적 통찰을 자신의 실증적 설명과 분리한 알튀세르의 방식을 통해 보겔도 자본주의에서 재생산이 담당하는 필수적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에 관한 알튀세르의 후기 연구에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보겔의 주장은 알튀세르의 후기 연구와도 비교해볼 만하다.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알튀세르는 생산 조건의 재생산이 생산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이 재생산의 필요를 유지시키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이데올로기의 주된 장치 중 하나로 가족을 지목하면서도 그것의 역할을 상세히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재생산에서 가족의 역할에 대한 탐구는 반드시 사회재생산 이론의 출발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디스 버틀러는 퀴어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알튀세르를 독해하여, 이데올로기적 ‘질문’ - 언어와 권력에 의해 개체화되는 특정 과정 - 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젠더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제시했다.
그러나 낸시 프레이저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생산양식의 관계에 대한 버틀러의 이해가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 구조가 변주되는 양상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Fraser, 2013). 이때 보겔에 다시금 주목하면, 알튀세르적 접근을 독해하는 방식을 조정하여 사회재생산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겔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후기 연구보다는 초기 연구에 집중하면서 노동력을 훨씬 설득력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분별적 인식을 제공하여, 자본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사회재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하여 나는 당대 페미니즘의 알튀세르에 대한 두 가지 독해, 즉 보겔의 사회재생산 이론과 버틀러의 퀴어 이론을 종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겔이 강조하는 측면이 사회재생산의 다양하고 우발적인 요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버틀러가 주목한 이데올로기가 개별화의 매커니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는다.
보겔의 사회재생산 이론
보겔은 북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서 더욱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 독자적 관점을 구축한 바 있다. 그의 책은 맑시즘의 주요 사상가 및 여성 억압에 대한 그들의 접근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엥겔스의 연구에서 ‘불완전한 진술’을 찾아내는 것을 비롯하여 보겔은 이후의 사회주의 사상 전통(특히 어거스트 베벨)은 물론 줄리엣 미첼에서부터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에 이르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에서도 결함을 발견했다(13~29). 반대로 보겔은 맑스와 레닌의 저술에서 여성 억압을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의 유물이나 경제적 결정과 별개인 문화적 문제로 해석하지 않는 대안적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59~76, 121~129). 보겔의 맑스 독해에 따르면, 여성 억압은 최저 비용으로 사회적 조건을 재생산하려는 자본의 욕망에서 기인한다. 자본은 반드시 노동력을 보충해야 하며, 이는 여성의 모성능력에 기대야 한다(146). 즉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활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 떠넘기며 자연화하면, 임금이나 사회적 지원으로 그 노동을 보상해야 할 필요를 제한하면서도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더불어 고도 자본주의의 전통적 시기에 주변화된 역할만 수행하던 여성들은 산업예비군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91~92). 그러나 기술적 발전으로 여성들이 점차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데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고전적 부르주아 가정의 부양자/돌봄자 모델에 대한 진지한 대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63).
보겔은 15년 전에 작성한 논문 「가사노동의 재발견Domestic Labor Revisited」에서 노동력에 대한 맑스의 이론에 재생산의 필요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요약․정리했다. 보겔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생산이란 ‘전유 계급을 위한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노동력을 유지하고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했다(188). 맑스도 이것을 종종 암시한 바 있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재생산을 세 측면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접적 생산자들의 에너지를 회복시켜 다음날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상적 활동, 피지배계급에 속하지만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지 못한 개인(미성년자, 노인, 병자, 무직자)과 관련된 활동,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의 물리적․신체적으로 창조하는 활동(생식)이 그것이다(188~189). 보겔은 이성애 규범적 전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 측면을 구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르주아에 의해 강제된 전통적 가족 질서가 가장 보편적이긴 하지만, 사회재생산은 가정 내 전형적 노동력 분담에 대한 상당한 변형까지도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