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 07
번역: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책소개]
책 “입자선-시간과 생애-시간” (Beamtimes and Lifetimes)은 저자인 샤론 트래윅 (Sharon Traweek)이 참여관찰 방법론을 통해 과학자 사회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당시 과학기술학의 민족지 연구가 주로 다루던 ‘지식의 형성과정’이라는 화두를 넘어 공간배치, 기계, 연구자의 생애과정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다룬 저작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문화에서의 과학연구 양상을 비교하여 국가와 젠더가 과학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젠더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의 3장 “순례자의 모험기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Pilgrim's Progress: Male Tales Told During a Life in Physics) 을 다룰 것이다.
[위의 소개는 데이비드 J. 헤스 저, 김환석 역, "과학학의 이해", 당대, 2004, 256쪽을 참조하였음]
- 번역자
[본문]
박사 후 과정 물리학자 (3/3)
대학원생의 공포는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의 “이중구속” 불행으로 귀결된다. 이 불행은 과거의 공포를 예술적인 성과와 성공으로 몰아붙인다. 한 선임 실험가는 나에게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이 연구실에 온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만약 그가 훌륭하다면 그것은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추가적으로 이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고도 했다. “이것은 마치 알래스카의 야생화를 캘리포니아로 들여오는 것과 같아요. 그들은 뿌리를 그냥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꽃이 뿌리를 내린다면 리더에게 아마도 몇 년 내로 상당히 이득이 될 것이다. 선임 물리학자들은 초심자들을 위해 굳이 내륙을 모두 물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그리고 동경대 출신인지 아니면 알라스카 혹은 홋카이도에 있는 대학 출신임과 무관하게 훌륭한 후보자는 반드시 그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이 말하듯이 “그가 훌륭하다면 그는 그 위치에 갈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과학적 가치에 의해서만 자격을 부여받은 엘리트라고 생각한다. [34] 그들은 모든 사람이 공정한 출발을 한다고 가정한다. 이것은 비공식적으로 엄격하게 유지되는 드레스 코드, 연구실 공간의 유사성, 물리학자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첫번째 명명” (first naming) 에 의해 강조된다. 경쟁적인 개인주의는 정당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35] 이런 계층구조는 물리학자 사회가 훌륭한 물리학자를 생산하는 실력자 집단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미국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과학의 목적은 공동체 내 다수의 통치로 정해져서는 안 되며, 연구실의 자원에 모두가 동등하게 접근해서도 안 된다.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대다수의 일본 물리학자들은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박사 후 과정에 대한 복합적인 설명은 하위모방의 문학적 형식을 따른다. 고통 받는 주인공은 진보를 위해 싸우며 이는 겉으로 보기에 다루기 힘든 장애물에 의해서 차단된다. 이런 역경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한 기회주의적이고 활발한 대응으로 마침내 극복된다. 이런 “영웅”은 동정심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초월적 존재로서 생각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초인 보다는 못하며, [36] 이것은 과거의 영웅-과학자와 현재의 영웅-과학자를 나누는 중요한 차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박사 후 과정 단계에서 사회적 정신적 영향에 대해 전적으로 의식하는 것은 입자물리학자 공동체의 가치에 따라 후보자를 쇠약하게 만든다. 이 공동체에서 “무의식적”인 것은 자의적이고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와 같은 위와 같은 문제들은 다소 과학자답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길러진 사회적 기이함과 어린아이와 같은 이기주의는 합리성, 객관성 그리고 과학에 대한 그의 헌신을 나타내준다. 젊은 과학자들은 마치 그것이 그들의 사명을 확인한다는 양 인간적인 동기 즉 모든 “주관적인” 것에 대한 무지함을 옹호한다. [37] 자신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은 과학에 쏟아야 할 시간과 주의를 전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 실험가는 내게 성공적인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미성숙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성숙한 사람은 질문 없이 훈련을 받아들이고 이미 규정된 영역에 대한 의구심을 제한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전제조건이 여성과 소수자로 하여금 잘 지내지 못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그들의 사회적 경험은 그들에게 권위를 지나치게 의심하도록 가르쳐주었다.
15년의 훈련기간이 끝나면 젊은 입자물리학자들은 연구자 공동체의 정회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미국 학생들 중 약 4분의 1만이 연구를 지속 할 수 있는 주요 대학 및 실험실에서 후원을 받게 될 것이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덜 성공한 박사로서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지며, 그들은 거의 같은 숫자로 분포해있다. 그들은 이 분야를 떠나거나, 유명하지 않은 주변적 학교에서 일하고 연구를 중단하거나, 주요 실험실에서 (한 그룹 리더가 “기술 관리자”라고 부르는) 스태프로 일하며 검출기의 생산과 유지를 담당할 수 있다. 박사 후 과정 기간 동안 젊은 물리학자들은 그들의 그룹리더가 보는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 네 가지 진로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서열이 개인의 능력과 상관관계를 지닌 다는 것을 믿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그룹리더가 내리는 평가가 자신의 미래에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대부분 그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의 “지도에 표기될 만한” 유명한 실험실 그리고 대학은 그 숫자가 매우 제한적이다. 초보 물리학자들은 단순히 학부 교과서 여백에 쓰인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전기에서 언급한 장소를 숙지함으로서 이런 “거룩한 장소들”의 이름 대해 배운다. 카톨릭 교회나 군대 같은 다른 학계 및 산업화 이전 제도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중심부”에서 훈련을 받고 “주변부”로 이동한다. 주변부 대학의 학부 혹은 대학원에서 중심부 연구실이나 대학교 박사 후 과정으로 발탁되는 경우는 있는 반면, 내가 아는 한 주변부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이 중심부로 이동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자리를 얻으려면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진 그룹리더의 지원이 필요하다.
초심자들은 물리학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여백을 읽는 법을 배움으로서 입자물리학 공동체 문화의 유능한 실천가가 되는 법을 학습한다. 대학원 학생들은 공동체의 경계,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내부 차이의 “미세구조 (fine structure)”를 학습한다. 이후 그들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서 이런 차이를 반영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배운다. 주요 연구실에서 그들은 외부인이 평가 절하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정당성을 부여받는지 배우게 된다. 주요 연구센터에서 수행하는 것과 다른 작업은 쉽게 주변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공동체 내의 차이는 기이함이나 일탈로 재정의된다. 즉, 내부자로부터 외부인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직업선택으로서 유용한 외부인이 되는 다양한 방법을 자세히 배운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입자물리학 공동체에서 자신의 최종적인 위치에 대해서 배우기 전에 계층의 “미세구조”를 먼저 학습한다.
명확한 경계선은 포함하고자 하는 것과 배제하고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의함으로서 공동체를 정의한다. 그레고리 베이슨이 구축한 분석적 언어에서 교과서 여백의 문제는 어떻게 (사회적) 텍스트를 읽는지를 통해 문맥 표지 속에서 누가 문화적 단서를 알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문맥 표지”의 역할을 한다. 이는 (사회적) 텍스트보다 더 “상위의 논리적 유형”으로 작동하는 표시이다. 다시 말해, 학부 물리학 교과서의 여백에서 말해지는 불멸의 과학영웅은 취해야 할 자세와 획득해야하는 계보를 정의한다.
전 그룹리더의 도움을 받아 주요 기관에 자리를 잡은 젊은 물리학자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맡고 명성을 쌓기 시작하며 자신의 학부 교과서의 여백을 통해 본 것과 같은 개인의 서사를 만들기 시작한다.
기계의 설계자가 되려면 이런 모든 배타적 삭감에서 살아남아야하며, 내가 “배경 잡음이 아니라 중요한 신호”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초심자들은 시간에 대해서 배운다. 학부과정 동안 학생들은 과거의 고에너지 물리학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동시에 과거의 영웅들은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위대하게 보는 것을 배운다. 이 분야의 형식적 역사에 대한 관심은 구식이거나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에 쇠약한 것으로 간주된다. 과학사에 대한 연구는 시간을 초월한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찬사와 현재의 지식에 귀속되는 설명 아래의 성공적인 실험을 “재현하는 것”으로 응축된다. 대학원생은 입자선-시간이 단축되어 데이터 생산량 감소를 야기하는 컴퓨터 기록이 실험 중에 실수로 삭제되는 상황이나 검출기가 고장 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를 학습한다. 적은 데이터는 질이 낮은 논문을 의미한다. 즉, 좋은 박사 후 과정 자리에 대한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론과 검출기의 디자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에 관련된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미래를 개인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초심자가 실험연구그룹의 일원이 되면 자신의 경력을 검출기의 경력과 동일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10년의 훈련기간 이후 그들은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는데 10년을 더 보낸다. 이는 새로운 그룹 구성원으로서 검출기, 연구 그룹, 실험실, 경력, 아이디어의 수명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이다. 이 다섯 부분에서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가동시간, 가동중지시간, 입자선-시간이 습득하기 매우 어려운 희소성이 높은 상품이며, 권력을 겨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만든다.
[그림] 위의 사진은 2017년 봄 미국물리학회(APS)의 "물리학 분야의 여성" (Women in Physics) 세션의 한 발표 장면이다. 여기서 물리교육 연구자인 발표자는 인터뷰를 통해 흑인여성이 학교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스터디를 하거나 정보를 얻을 기회에서 밀려난다고 말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차별은 분명 문화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며,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의 문화적 코드는 과학이 형성되는 과정에 전혀 이식되지 않는다. 이번 번역 텍스트에서도 드러나듯이 개인에 대한 거의 모든 평가가 사실상 젠더표현, 발화 스타일, 개인의 성장에 대한 특정한 서사구조와 같은 문화적 표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사회 및 문화적 정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사고하기를 터부시 해버리면 불공정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과학이 생산하는 지식은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얼개를 기반으로 형성된다. 그런 지식이 과연 생산자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보편성'을 담보할 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단지 이것은 기존의 사회체제를 강화시키는 부속물이 될 뿐이다. 혹은 과학기술이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더라도 그 변화는 인간의 합리적 의사소통과 민주적으로 합의된 절차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구조가 충돌하는 각축장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건들에 의해 구조가 스스로의 권력적 흐름은 그대로 둔 채 아무렇게나 재조직되도록 내맡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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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미국 상위계층의 “자격 부여 (entitlement)"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Robert Coles, Privileged Ones (New York: Little, Brown, 1977), pp. 361-409. Roy M. MacLeod는 ”과학의 사회사에서 변화하는 관점 (Changing Perspectives in the Social History of Science“에서 과학 엘리트의 연구를 조사한다.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n.14), pp. 106-122.
[35] 나는 이 지점과 관련하여 피츠버그 대학의 (University of Pittsburgh) 에드워드 (S.A. Edwards) 교수에게 빚지고 있다.
[36] Northrop Frye, Anatomy of Criticism (n.17), pp. 39-45.
[37] 왜 과학이 동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지에 대한 하나의 공식화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Kenneth Burke, A Grammar of Motiv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9), pp. 505-507.
[38] Bateson, Steps to an Ecology of Mind (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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