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여섯 번째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킴벌리 크렌쇼
번역: 쏠/페미니즘 번역모임
검토: 단감&마리온/페미니즘 번역모임
Ⅱ. 페미니즘과 흑인 여성: “우리는 여자가 아닌가?”
페미니스트 정치학 및 이론이 흑인 여성 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데 상대적으로 무능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 이론과 전통은 이상하게도 흑인 여성의 역사를 상당부분 차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여자가 아닌가?”는 페미니스트 담론에서 가장 대표적 구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 강력한 웅변의 교훈이 제대로 인식되지는 못하고 있는데, 다들 좀처럼 연설이 이루어졌던 맥락을 검토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그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가 페미니즘이 인종을 대하는 방식의 특징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의 경험을 가부장제 비판의 풍부한 원천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기 때문이다.
1851년, 소저너 트루스는 “나는 여자가 아닌가?”라고 선언하면서 여성의 참정권 박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성 비평가들이 동원하는 성차별적 이미지에 이의를 제기했다. 오하이오 애크런에서 열린 여성 권리 집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반대하는 백인 남성들은 정형화된 “여자다움”의 이미지를 들먹이며, 여성들은 정치적 활동의 책임을 지기에는 너무 허약하고 연약하다고 주장했다. 소저너 트루스가 발언하려고 일어나자 여성 참정권에서 (노예)해방으로 논점을 돌려버릴까봐 두려워하며 그를 침묵시키려 한 백인 여성들도 많았다. 트루스는 발언 허락을 받자마자 노예제의 끔찍함과 그것이 흑인 여성들에게 미친 독특한 영향에 대해 말했다.
: 내 팔을 보세요! 나는 쟁기질을 하고 작물을 심고, 그 작물을 곳간에 쌓아둡니다. 날 능가할 남자는 없어요. –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일하는 것도 남자만큼 할 수 있고, 먹는 것도-먹을 게 있다면-남자만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채찍도 견디죠!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애를 13명 낳았고, 대부분이 노예로 팔려가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예수님말고는 내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죠-그럼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자신의 삶을 예로 들며 여자다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신화와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폭로한 트루스의 연설은 여성이 절대적으로 남성보다 약하다는 주장에 강력한 반증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여자다움의 숭배가 가진 일관성에 균열을 가하려 했던 트루스의 도전이 유용하려면, 백인 여성들에게 그 모순을 합리화하는 인종주의적 시도들을 거부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했다-흑인 여성은 진정한 여성보다 뭔가 부족한 존재이기에, 그들의 경험은 진정한 여자다움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19세기 흑인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에 도전한 것이기도 했지만, 백인 여성들이 자신들이 가진 백인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흑인 여성의 역사를 포용하기를 바라며 백인 페미니스트에게 도전한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트루스의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 남긴 유산보다는 자신의 선조들[즉 백인 여성들]에게 맞섰던 도전이 남긴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페미니즘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종적 특권을 포기할 때 백인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경험했던 어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트루스의 비판적 질문에 민감하다. 여성의 경험과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이론 및 정치학이 흑인 여성을 포함하지 않거나 흑인 여성을 대화의 상대로 삼지 않을 때, 반드시 흑인 여성들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여자가 아닌가?” 만약 여성이라면, 어떻게 흑인 여성들의 필요, 이익 및 경험을 고려하거나 그것에 적용할 수 없는 내용이 어떻게 “여성은 어떠어떠하다” “여성들의 생각은 어떻다” “여성들이 필요로하는 건 뭐다”라는 주장이 될 수 있는가?
흑인 여성에게 페미니스트 이론의 가치는 낮은 편이다. 거의 지적되지 않을 뿐 사실 백인중심의 맥락에서 발전해온 이론이기 때문이다. 백인 여성이 [전체] 여성을 대변할 때, 유색인종 여성은 사실상 간과될 뿐만 아니라 배제가 더 강화된다. 권위적이고 보편적인 목소리 -보통은 인종도 젠더도 없는 객관성을 가장한 백인 남성의 주관성- 가 젠더를 제외하고는 문화, 경제, 사회적 특성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이들에게로 옮겨갈 뿐이다. 페미니스트 이론이 가부장제나 섹슈얼리티 또는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를 분석하여 여성의 경험을 묘사하려 할 때, 인종의 역할은 간과되기 십상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같이 자신의 인종이 성차별의 어떤 면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그들에게 특권을 주어 다른 여성들을 지배하는 데까지 기여한다는 점을 보려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페미니스트 이론은 여전히 하얗다. 특권 없는 여성들에 대해 고심하며 이론의 분석을 확장하고 심화시킬 잠재력은 여전히 발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