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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여덟 번째

반차별 독트린페미니즘 이론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킴벌리 크렌쇼

번역: 단감/페미니즘 번역모임

검토: 마리온/페미니즘 번역모임

 

 

III. 내가 언제 어디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성차별에 대한 분석과 흑인 해방 정치

 

19세기 흑인 페미니스트였던 애나 줄리아 쿠퍼는 인종적 지배에 대한 분석에 가부장제에 대한 분석이 통합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데 요긴한 어구를 처음 제안한 인물이다. 흑인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흑인 여성은 대변하지 못하는 흑인 지도자들과 대변인들을 비판했던 쿠퍼는,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흑인 모두 나와 함께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했던 마틴 딜레이니의 대중 연설을 이렇게 반박했다. “내가 언제 어디에 들어갈 수 있다면, 흑인 모두가 나와 함께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흑인 여성뿐이다.”[각주:1]


쿠퍼의 발언을 보면 로스쿨에 입학한 첫 해에 내가 만들었던 스터디 그룹에 관한 개인적 경험이 떠오른다. 우리 그룹엔 흑인 남성이 두 명 있었는데, 그중 하버드를 졸업한 남자가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백인 남성을 다수 배출했다는 명성 높고 배타적인 남성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했다. 그는 그 클럽에 들어간 극소수의 흑인 남성 중 하나였다. 그는 1학년 시험을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그 클럽에서 같이 술을 마시자며 우릴 초대했다. 전설적인 장소에 직접 가본다니 잔뜩 긴장한 채, 우리는 커다란 문의 황동 문고리를 두드려 도착을 알렸다. 그러나 그 친구는 살짝 문을 열고 쭈뼛쭈뼛 나와서 자신이 아주 중요한 사항을 깜빡했다고 속삭였고, 우리의 영광스런 입장은 무산되었다. 나와 일행은 분노했다. 흑인으로 살아오며 단련된 우리는 또 우리를 배제하는 장벽이 나타났구나 생각했다. 심지어 그 건물에 비공식적으로 흑인 한 사람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클럽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우리의 인종 때문이 아니라 가 여자이기 때문임을 알게 되면서 긴장이 깨졌다. 여자는 뒷문으로 돌아 들어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만약 흑인이라는 이유로 뒷문으로 보내졌을 때 느낄 굴욕과 마찬가지로, 내가 여자로서 당한 굴욕도 똑같이 고통스러운 일이며, 내가 배제된 것도 똑같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난동을 부려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주장해도 다들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이고, 또 소란을 피웠다간 인종 때문에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곤경에 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생각을 접었다. 어찌 됐든, 그 클럽은 최초의 흑인 손님들을그중 한 명은 뒷문으로 들어갔어야 하더라도―환영하려던 차였으니 말이다.[각주:2]


이 이야기가 흑인 여성이 교차성으로 인해 겪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는 흑인 공동체를 보여 주는 최선의 예시는 아닐 수도 있다. 만일 흑인 여성, 오직 흑인 여성만이 클럽의 뒷문으로 들어가야 했다면, 그리고 그 규제가 흑인 공동체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흑인 사회 안에서 일어났다면 더욱 적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인종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성별 차원에서는 여전히 부정되고 있는[각주:3] 특권들을 흑인 여성이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장벽에 대해 정치적·감정적 각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이야기는 또한 젠더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어느 정도의 정치적·사회적 자본을 쏟아부어야 할지의 문제에 대해 흑인 여성 안에 존재하는 양가적 감정을 보여 준다. 특히 이 문제가 반인종주의 의제와 충돌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흑인이 종속되는 양상을 분석할 때 젠더를 직접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반여성적인 것을 포함해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흑인의 삶에서 가장 중심적 억압은 인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각주:4] 인종의 사회적 경험을 통해 주요한 집단 정체성뿐 아니라 집단적 공격을 받고 있다는 공통 감각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흑인 페미니즘 이론 및 정치학이 흑인 정치의 의제 속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5]


여기서 핵심은 미국 흑인이 단순히 더 중요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흑인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일부 시도들이 이런 가정에 입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흑인 집단의 문제를 보다 면밀히 살펴볼수록 젠더 억압으로 인해 무수한 흑인들의 처지가 매우 열악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를 반드시 다뤄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단일 이슈 프레임에 대한 비판을 생각하면,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이 성차별에 맞선 투쟁과 별개이며 그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문제적이다. 그러나 흑인 여성이 흑인 남성과 함께 경험하고 있는 인종적 타자성의 정치로 인해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의식이 백인 페미니즘이 발전하는 양상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백인 여성의 경우, 백인 남성의 의식과는 반대되는 의식을 창조하는 과정이 백인 페미니즘 정치학이 발전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흑인 여성은 흑인 남성과 마찬가지로 피부색과 문화로 규정되고 억압되어 온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다.[각주:6] 흑인 공동체에도 분명 가부장제가 작동하며 그것이 흑인 여성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흑인 여성은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인종적 맥락으로 인해 흑인 남성에 대항하는 정치적 의식을 형성하기 어려워진다.



  1. Anna Julia Cooper, A Voice from the South (Negro Universities Press, 1969 reprint of the Aldine Printing House, Ohio, 1892), p.31. [본문으로]
  2. 공정을 기하기 위해, 그때 일행들은 모두 나와 함께 뒷문으로 들어갔음을 알려 두겠다. 하지만 그것이 연대의 표시였는지, 내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시도였는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본문으로]
  3. 계급적 차원도 마찬가지다. [본문으로]
  4. 이 점을 잘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일군의 여성 법학 교수가 ‘교실에 존재하는 ’…주의들‘’을 논하기 위해 모였다. 그중 팻 케인이 주도한 모임에서 참여자 각각은 자신을 설명하는 주요 요소를 세 가지씩 적어 보았다. 거의 예외 없이, 백인 여성 참여자는 자신의 젠더를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적었지만, 인종은 적지 않았다. 유색 인종 여성은 모두 자신의 인종을 첫 번째로 적고 다음에 젠더를 적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지배 규범과 가장 배치되는 원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듯하다. 다음의 연구를 참조하라. Pat Cain, Feminist Jurisprudence: Grounding the Theories 19-20 (미출간 원고, 이 활동에 대해 설명한 뒤, ‘유색 인종 여성은 모두 인종을 언급한 반면 백인 여성은 아무도 인종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성애 여성은 ‘이성애자’임을 언급하지 않은 반면, 커밍아웃한 동성애 여성은 모두 레즈비언 항목을 포함시켰다’라고 언급함.) [본문으로]
  5. 이런 관찰에 비견할 만한 제3세계 페미니즘 논의로는 Kumari Jayawardena, Feminism and Nationalism in the Third World (Zed BooksLtd, 1986) pp. 1~24를 참고하라. 자야와르데나에 따르면, 제3세계의 페미니즘이 ‘받아들여진’ 것은 국제적 지배에 맞선 중심적인 투쟁에서뿐이다. 여성의 사회적․정치적 지위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더 광범위한 저항을 위해 불가피할 때 가장 크게 신장되었다. [본문으로]
  6. 인종 이데올로기가 흑인을 억압하고 백인에게 특권을 주는 양극화 역학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 대한 논의로는 Kimberle Crenshaw, Race, Reform and Retrenchment: Transformation and Legitimation in Antidiscrimination Law, 101 Harv L Rev 1331, (1988) pp. 1371~76을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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