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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후의 영광을 바라는가?

- 프세볼로트 네크라소프의 시집 리아노조보-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네크라소프 1, 2, 3

러시아 작가들 중에는 네크라소프라는 성을 가진 유명한 세 사람이 있습니다. 우선 19세기 대표적인 리얼리즘 시인인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네크라소프(Н.А. Некрасов, 1821-1877)가 있습니다(‘네크라소프 1’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시 신문풍자시(Газетная, 1865)의 한 구절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각주:1] 1985527.”

 

두 번째로는, 1947년 소비에트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인 스탈린상까지 받았지만 결국 프랑스로 망명했던 산문작가 빅토르 플라토노비치 네크라소프(В.П. Некрасов, 1911-1987)가 있습니다(‘네크라소프 2’라고 하겠습니다). 네크라소프 2가 쓴 작품들은 저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제목들을 열거해 보면 네크라소프 1의 비장함에 뒤지지 않습니다. 스탈린그라드의 참호 속에서(В окопах Сталинграда, 1947), 농어(Судак, 1960), 대양(大洋)의 양쪽을 따라(По обе стороны океана, 1962), 두 번째 밤(Вторая ночь, 1965) 등등.


에릭 불라토프(Э. Булатов) <프세볼로트 네크라소프>, 캔버스에 유화

이번 읽어볼 시들을 쓴 세 번째 네크라소프는 프세볼로트 니콜라예비치 네크라소프(Вс.Н. Некрасов, 1934-2009)입니다(‘네크라소프 3’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가 쓴 다음 시는 리아노조보를 회상하며 1999년에 펴낸 시집 리아노조보[각주:2]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에는 그가 리아노조보를 드나들던 1958년부터 이미 모스크바 개념주의의 창시자로 유명해지고 난 한참 후인 1998년까지 썼던 시들과 리아노조보와 관련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ЧИСЛОВЫЕ СТИХИ

 

Барак просто барак

 

2-х этажный барак

 

3-х этажный барак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

многоэтажный барак

숫자시

 

바라크 그냥 바라크

 

2 층짜리 바라크

 

3 층짜리 바라크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층짜리 바라크



원문의 러시아어는 많다를 뜻하는 므노거인데 가 소리가 웃겨서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배 네크라소프들이 이 시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네크라소프 1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각운은 어디에 있는가? 민중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 네크라소프 2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동지, 대조국전쟁의 피와 눈물을 잊으시었소?” (저도 네크라소프 2의 작품을 안 읽어 보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목이나 연도들을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네크라소프 3은 사뭇 진지하게 다음 시를 읊겠지요. 러시아의 젖줄 오카 강과 모스크바 강에 바치는 시입니다. (보통 볼가 강을 러시아의 젖줄이라 하지만 오카 강과 모스크바 강도 유명합니다


 

***

 

Ока Москва одна река

темна вода

 

темна вода

 

смотри

какая темнота

ты посмотри

 

посмотри

 

сморти какая

как Москва

 

смотри

какая там Москва

 

с Москвы реки

с Москвы реки

 

в Оку реку

в Оку реку

 

куда вода

куда вода

так и текла

 

так и текла

 

так и теку

так и теку

 

так и теки

так и теки

 

только теки

только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

 

теките

***

 

오카와 모스크바는 하나의 강

어두운 물

 

어두운 물

 

보아라

어떤 어둠인지

네가 보아라

 

보아라

 

보아라 어떤지

모스크바가 어떤지

 

보아라

거기 모스크바가 어떤지

 

모스크바 강으로부터

모스크바 강으로부터

 

오카 강으로

오카 강으로

 

물이 어디로

물이 어디로

그렇게 흘러갔는지

 

그렇게 흘러갔는지

 

그렇게 나도 흘러

그렇게 나도 흘러

 

그렇게 흘러라

그렇게 흘러라

 

오직 흘러라

오직 흘러라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흘러

 

흐르시라들



모스크바를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로질러 흘러내려가는 모스크바 강은 콜롬나라는 지방소도시에서 오카 강과 만납니다. 모스크바 강을 받은 오카 강은 니쥐니 노브고로드에서 러시아의 젖줄 볼가 강과 만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리적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흘러 흘러 흘러가 우스꽝스러우니 말입니다. ‘흘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의 중반부 이후(‘그렇게 흘러갔는지부터 끝까지)를 우리말 발음으로 옮겨 보면 더 웃깁니다. ‘따끼찌끌라 // 따끼찌꾸 / 따끼찌꾸 // 따끼찌끼 / 따끼찌끼 // 똘꺼찌끼 / 똘꺼찌끼 // 찌끼찌끼찌끼찌끼 / 찌끼찌끼 // 찌끼찌끼 / 찌끼 // 찌끼 //// 찌끼쩨’ (‘/’는 행 구분, ‘//’는 연 구분입니다) 이 시를 소리 내서 읽어보면 러시아 젖줄이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이 민망해 집니다.

 

위키피디아에 프세볼로트 니콜라예비치 네크라소프를 검색해보면 러시아 시인이자 화가로 2차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리더이며 모스크바 개념주의의 창시자라고 소개됩니다. 이렇게 각 잡힌 설명보다 그에 대한 삽기르의 묘사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프세볼로트 네크라소프는 일찍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찾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 자신의 시학도 만들어냈고, 비평도, 문학연구도 했다. 괜히 사범대에서 공부했던 게 아니다. 스스로 학생이자 선생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코 예브게니 크로피브니츠키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리아노조보와 돌고프루드나야에 드나들었던 것은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해졌기 때문이다. 평생 자기 원칙에 충실했고 그의 시처럼 하나의 스타일만 고수했다.[각주:3]

 

두 편의 시만 봐도 그의 스타일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시어를 반복해서 괴상한 효과를 만들기. 그런데 네크라소프는 시집 리아노조보의 부록에 다음 시를 수줍게 넣었습니다. ‘다 다 다 다거리고 찌끼찌끼하던 시들과는 사뭇 달라서 마치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И Я ПРО КОСМИЧЕСКОЕ

 

Полечу или нет не знаю

До луны или до звезды

Но луну я пробовал на язык

В сорок первом году в Казани

 

  затемнение

  война

  тем не менее

  луна

 

  белый

  свет

  белый

  снег

  белый

  хлеб

  которого нет

 

 никакого нет

 

Я давным давно вернулся в Москву

Я почти каждый день обедаю

 

А на вид луна была вкусная

А на вкус луна была белая

 

1959

우주적인 것에 대하여 나도 한 번

 

날아갈지 말지 모르겠어

달까지 갈지 별까지 갈지

그런데 혀로 직접 달을

맛본 적이 있어 사십일 년 카잔에서

 

  소등(消燈)

  전쟁

  그럼에도

  달

 

  하얀

  빛

  하얀

  눈

  하얀

  빵

  없는 빵

 

 아무 것도 없어

 

아주 옛날 모스크바로 돌아왔어

거의 매일 점심을 먹지

 

달은 눈으로 보기에 맛있고

달은 맛을 보니 희었어

 

1959



소련은 1957104일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닉-1호를 쏘았습니다. 그해 113일에는 개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닉-2호를 쏘았습니다. 그리고 1959913일에는 루나 2호를 발사해 최초의 무인 달착륙에 성공합니다. 소련 인민의 염원이 달에 가 닿았으니 네크라소프 3도 뒤쳐질세라 우주적인 것에 대해 시를 써본 것 아닐까요? 소련과 미국의 우주 경쟁을 깡그리 무시하듯 자기는 이미 1941년에 달을 맛본 적 있다고 합니다. ‘다 다 다 다찌끼찌끼의 맹아가 보이기도 합니다. ‘하얀 / / 하얀 / / 하얀 / / 없는 빵 // 아무 것도 없어



루나-2호     소련 포스터 "신이 없네"(1962)

최초로 우주에 간 개 '라이카'


라빈의 일요그림모임

시집의 제목이 리아노조보이기는 하지만 세 편의 시들만 보았을 때는 어째서 이게 리아노조보인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숫자시에서 바라크가 언급된다는 것 말고는 말입니다. 다음 시 역시 말장난만 할뿐 홀린의 시에 나타나는 묵직한 바라크의 언어, 삽기르가 포착한 일상의 그로테스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리아노조보인 것일까요



*** 


Лондон  Донн

Биг      Бен

 

Общий Тон

Всё Туман

 

Рабин Гуд

Рабин Гуд

                      1960

 

Рабин Гуд

Гуд

 

Рабин Гуд Бай

                        1980

 

Вери вери гуд

но только

В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е

                         1993


(Вот

верите вот

Вот )

***


런던  던

빅    벤

 

전체적인 톤은

온통 안개

 

라빈 구드

라빈 구드

                  1960

 

라빈 구드

구드

 

라빈 구드 바이

                      1980

 

베리 베리 구드

근데 딱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만

                            1993


(

당신들은 믿는다 자

)



요즘 모스크바에는 장 자크라는 술집과 존 던이라는 체인점 술집이 있습니다. 같은 계열인지 항상 나란히 있습니다. 네크라소프는 런던이라는 말을 해보니 시인 존 던이 생각났나 봅니다. 영국이면 역시 안개이고, 영어라면 역시 굿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러시아어는 외래어의 ‘h’ 발음을 g’로 옮깁니다. 해리 포터는 가리 포르테르(Гарри Портер)’, 헤겔은 게겔(Гегель)’입니다. 그래서 굿(good)’, 구드(Гуд)’후드(Hood)’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로빈 후드까지 떠올랐습니다. 마침 로빈은 리아노조보의 화가 오스카르 라빈과 비슷합니다. 로빈 후드의 리아노조보 버전 라빈 구드가 생겨납니다. ‘굿하면 역시 베리 베리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마침 베리믿다를 뜻하는 러시아어 베리쯔와 비슷합니다. 이처럼 이 시에는 온통 영어와 러시아어가 말장난으로 뒤섞여 있고 그 가운데 용감한 라빈 구드의 형상이 돋보입니다.

 

네크라소프는 유독 화가 오스카르 야코블레비치 라빈(О.Я. Рабин, 1928- )을 높이 평가합니다. ‘리아노조보라는 모임이 바로 라빈 덕분에 생겨났다고까지 말합니다. 다음은 시집 리아노조보에 수록된 네크라소프의 글 리아노조보 그룹. 리아노조보 학파의 일부입니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58년도 리아노조보에 있는 라빈의 집에는 아내, 두 아이, 그의 그림들이 있었고, 그리고 누구에게는 있었겠냐마는 전화기가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평범치 않게 유별나게 행동했어야 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원하는 사람들을 누구든 집에 들여 그림을 보여줬고, 독감에 걸렸다 해도 결코 그 누구도 모스크바로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 분명히 그곳에는 볼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리아노조보는 숨지 않았다. 실제로 누구든 방문할 수 있다고 알려진 그런 공간이었다.[각주:4]

 

리아노조보 그룹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부분 예브게니 크로피브니츠키를 중심으로 시인들, 화가들이 모여 들었다고 하지만 네크라소프는 이 모임이 시작된 계기로 라빈을 꼽습니다. 저도 지난 글들에서 그런 설명들을 따라 삽기르와 홀린 등이 크로피브니츠키를 중심으로 모임을 형성했다고 썼습니다. 나중에 뒤돌아보니 라빈의 장인인 크로피브니츠키가 큰 어른이시니 그를 모임의 정신적 지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지만, 모임의 시작은 분명 라빈이 아무에게나 공개했던 일요그림모임이라고 봐야하겠습니다. 그런데 네크라소프는 라빈이 연 일요그림모임을 아주 캐주얼한 것으로 보려고 하여 리아노조보를 그룹 또는 학파로 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리아노조보일 뿐입니다


리아노조보는 그룹이 아니었다. 그저 서로 잘 아는 화가들 몇몇이 라빈의 일요그림 모임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자기 작품들을 가져갔던 것이다. <...> 생활에 관련된 일이었다. <...> 모임의 조건, 선언, 프로그램도 없었다. 자신들을 가리켜 무어라고 부를, 이러저러한 그룹이나 학파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도, 특정한 취향도 없었다. 대신 각자의 진지한 관심사들이 있었다.[각주:5]

 

이렇게 본다면 리아노조보라는 주제로 지금까지 여러 시인들을 읽어온 것 자체가 얼토당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삽기르, 홀린, 크로피브니츠키, 사투놉스키의 시들을 보면 과연 이들을 리아노조보의 시학이라는 것으로 묶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다다다다’, ‘찌끼찌끼’, ‘베리 베리 구드가 난무하는 네크라소프의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라크 시’, ‘리아노조보 그룹또는 학파라는 명칭들 모두 외부에서 그들을 부르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이들은 라빈의 일요그림모임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모인 것뿐이니 딱히 동지들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겠습니다. 다만 직업이 예술이니 동료 정도는가어떨까 싶습니다. 직장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료


리아노조보는 소비에트의 권력, 그리고 반()소비에트의 권력으로부터, 그런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합당하고 슬프게도 매우 필요하지만, 아무튼 그런 권력들로부터 내적으로 자유로운 영토였다. 리아노조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 각자는 이 자유로운 영토의 먼지를 신발밑창에 묻혀 갔을 뿐이었다. 정말 모른다, 그 어떤 반체제적이고 반소비에트적인 테러에 대해서는 정말 모른다.[각주:6]

 

실제로 리아노조보를 그룹이라고 부르며 소비에트 내부의 새로운 예술운동으로 상찬하거나 반체제적 움직임으로 비난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불온한 세력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한 모스크바화가협회(МОСХ)는 리아노조보가 어떤 모임인지 밝히라 했고 크로피브니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리아노조보 그룹의 구성원은 나의 딸 발랴, 나의 손녀 카탸, 손자 사샤 그리고 그 아이의 애비인 오스카르 라빈으로, 그들은 리아노조보에 산다...”[각주:7]

 

오스카르 라빈

오스카르 라빈. <보드카 "스톨리치나야">, 종이에 아크릴, 1961년.

오스카르 라빈. <리아노조보 13>, 유화, 1962년


네크라소프는 소비에트적이냐 반소비에트적이냐는 이분법에 리아노조보가 들어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대신 리아노조보에 모여서 무언가 더 잘 하고 싶었던 예술가들의 마음을 라빈의 그림에서 읽어 냅니다. 라빈의 그림은 동시대 뛰어난 예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의 간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이 검게 그을린 윤곽은 바로 선화(線畫)와 회화 사이의 갈라진 틈을 메우는 덩어리, 살아 있는 직물이었다. 전 세계 미술의 경험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후진성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겨난 절박한 필요, 동시대 예술에 대한 갈망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이었다. [각주:8]

 

라빈의 그림들을 보면 실제로 엄청난 두께의 시커먼 윤곽들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집니다. 네크라소프가 이 윤곽들에서 읽어내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난 더 잘 하고 싶어! 그런데 왜 더 잘 하지 못 하게 막는 거지? - 그래, 그러니 나는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겠어!’ 일등을 뒤좇아 아등바등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애들이 있다는 것을 애써 눈감고 내가 최고야 하는 것도 아닌 독특한 새로움 아닐까요?

 


야코프 아브라미치

시집의 1부가 리아노조보에 모였던 화가들과 관련되었다면, 2부는 시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네크라소프는 지난번에 읽어보았던 사투놉스키에 대한 시를 제일 많이 씁니다. ‘다 다 다다’, ‘찌끼찌끼’, ‘베리베리 구드등 네크라소프의 시에 나타난 특징들을 염두에 둔다면 다음 시가 매우 재밌게 읽힐 수 있습니다. ‘야코프 아브라미치는 사투놉스키의 이름과 성입니다



ПРО САТУНОВСКОГО


- Яков?

Яков Абрамыч?

 

Я -

Яков Абрамыч!

 

(Вознесенский бы сказал)

 

Яков Абрамыч

и Яков Абрамыч

 

И я

как Яков Абрамыч

 

(я сказал)



사투놉스키에 대하여

 

- 야코프?

야코프 아브라미치?

 

-

야코프 아브라미치!

 

(보즈네센스키는 이렇게 말했겠지)

 

야코프 아브라미치

그리고 야코프 아브라미치

 

그리고 나

야코프 아브라미치처럼

 

(내가 말했다)

 


- 야꼬프?

야꼬프 아브라미치?

 

-

야꼬프 아브라미치!

 


야꼬프 아브라미치

이 야꼬프 아브라미치

 

이 야

깍 야꼬프 아브라미치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보즈네센스키(А.А. Вознесенский, 1933-2010)는 한국에서 심수봉 씨가 불러 잘 알려진 노래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가 된 시를 썼습니다. 우리말로 번안된 가사는 러시아어 가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원래 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가난한 화가가 살았는데 그는 꽃을 좋아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 그는 어느 날 집과 그림들을 팔아 백만 송이 장미를 사서 여배우의 집 앞 광장을 채웠다. 그러나 결국 여배우는 그날 밤 기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 아무튼 네크라소프는 보즈네센스키가 사투놉스키의 이름과 부칭으로 어떻게 시를 지었을지 상상해 봅니다. 우리말로 옮긴 러시아어 소리를 보면 매우 비장합니다. ‘를 뜻하는 러시아어 (Я)’가 물음표, 느낌표와 어우러져 어마무시해집니다. 분명 네크라소프는 보즈네센스키의 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음 시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고야!는 러시아어로 고야!‘입니다. 보즈네센스키가 자기 시를 낭독하는 것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GwdfsTDas)




ГОЙЯ

 

Я — Гойя!

Глазницы воронок мне выклевал ворог,

                               слетая на поле нагое.

Я — Горе.

 

Я — голос

войны, городов головни на снегу сорок

                                         первого года.

Я — Голод.

 

Я — горло

повешенной бабы, чье тело, как колокол,

                      било над площадью голой...

Я — Гойя!

 

О, грозди

Возмездья! Взвил залпом на Запад -

                           я пепел незваного гостя!

И в мемориальное небо вбил крепкие звезды -

Как гвозди.

 

Я — Гойя.


                                                          1957

고야

 

고야!

적은 내 깔때기의 눈구멍을 쪼았다,

                                맨살의 들판으로 날아가며.

슬픔.

 

목소리,

전쟁의, 사십일 년 눈밭에 숯 검댕이 된

                                    도시들의 목소리.

굶주림.

 

목구멍,

목 매달린 아낙의 목구멍, 몸뚱이는 종처럼

                              벌거벗은 광장을 때렸다...

고야!

 

, 송이송이 영근

복수들! 나는 불청객의 잿가루를 단숨에 -

                                 서방으로 불어내 버렸다!

영원히 기념될 하늘에 굳건한 별들을 박았다 -

못을 박듯 박았다.

 

고야.


1957




한편, 네크라소프가 사투놉스키의 이름과 부칭으로 쓴 시는 역시 우스꽝스럽습니다. ‘다다다다찌끼찌끼의 변종입니다. 한 문장에서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강조를 달리하며 되풀이하는 우리말의 말장난 같습니다. -코프 아브라미치, 야코-프 아브라미치, 야코프- 아브라미치...처럼 말입니다.

 

야코프 아브라미치 사투놉스키의 이름으로 장난만 치지는 않습니다. 그의 시를 에피그라프로 가져와서 공식문학계의 비평가에게 쌍욕을 퍼붓기도 합니다. 이렇게 에피그라프를 좌우로 배치하는 경우를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왼쪽이 사투놉스키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고, 오른쪽은 예브게니 시바르츠의 희곡 그림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희곡으로 만든 영화 <그림자>(Тень, 1971)도 한 번 보십시오. 주인공이 이 대사를 하자 그림자가 정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N9993CKgvA)



***

Хочу ли я посмертной славы?”

Ха!

А какой же мне еще хотеть?”

 

(Лианозовский

недоживший поэт)

 

““-Тень,

знай свое место!“”

 

(Советский

существующий критик -

 

этому поэту и нам)

 

I

 

Чего чего?

Тень

знай свое место”?

 

Тварь

не забывай

чье корыто

 

Корыто было

Корыто Партии

 

Продажная тварь

теперь

перепродажная тварь



***

 

나는 사후의 영광을 바라는가?”

!

어떤 영광을 더 바라겠는가?”

 

(리아노조보의

다 살지 못한 시인)

 

““-그림자여,

네 자리를 알아라!”

 

(소비에트의

현존하는 비평가가 -

 

이 시인과 우리에게 하는 말)

 

I

 

, 뭐라고?

그림자여

네 자리를 알아라”?

 

개놈아

잊지 말아라

누구 여물통인지

 

여물통은

당의 여물통이었지

 

뇌물이나 쳐 먹는 개놈

오늘도

또 쳐 먹을 개놈




이 시에 대해서 딱히 더 할 말은 없을 듯합니다. 대신 쌍욕을 해 주니 속이 시원할 뿐입니다. 네크라소프는 시집 리아노조보의 부록에 사투놉스키의 원래 시도 옮겨 놓았습니다. 다음이 사투놉스키의 시입니다.  


 

***


Хочу ли я посмертной славы?

Ха,

А какой же мне еще хотеть?

 

Люблю ли я доступные забавы?

Скорее нет, но, может быть, навряд.

 

Брожу ли я вдоль улиц шумных?

Брожу,

почему не побродить?

 

Сижу ль меж юношей безумных?

Сижу.

Но предпочитаю не сидеть.

 

                                           1967

***


나는 사후의 영광을 바라는가?

,

어떤 영광을 더 바라겠나?

 

나는 손쉬운 오락거리를 좋아하는가?

전혀, 근데 또 모르지, 에이 그래도 아니야.

 

나는 소란스러운 거리를 거니는가?

거닐지,

거닐지 못하란 법 있나?

 

나는 미치광이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 있는가?

앉아 있지,

하지만 앉지 않는 걸 더 좋아해.

 

                                                 1967



앞의 시로 돌아가 보면, 네크라소프가 소비에트의 비평가를 욕해 주는데 왜 저의 속이 시원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사투놉스키의 시를 보면 전혀 매우 평범한 생각들의 나열로 보입니다. 우리가 시라고 여길만한 표지들이 딱히 없어 보입니다. 러시아시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는 소란스러운 거리를 거니는가?’라는 구절을 보고 푸쉬킨의 유명한 시 나는 소란스러운 거리를 거니는가?...[각주:9]를 떠올렸겠지만, 딱히 이것이 사투놉스키의 시를 더 시답게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네크라소프는 리아노조보 그룹. 리아노조보 학파에서 사투놉스키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리아노조보의 가장 독특한 표현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성/실제성(фактичность)은 사투놉스키의 시행에서 새로운 위격을 획득한다. 이 새로운 위격은 바로 발화가 발화의 형식적 바탕으로부터 외적으로는 동떨어지지 않으면서, 그 특성상 특별히 시가 되는 경우로 이때, 발화는 의심의 여지없는 시적 특성의 최대치를 지닌다. <...> 바로 여기에 그의 고유한 시행의 비법, 기술의 비밀이 담겨 있다. 시행들은 시행들로서 작동하는데, 시행의 가시적인 특징들 없이도 기억에 잘 달라붙는다. 발화와 발화. 우리 모두의 발화. 이것은 나의 발화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본질상 서정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각주:10]

 


리아노조보에 모였던 시인들의 작품을 떠올려 그나마 특징을 추려보라고 한다면, 사실성/실제성(factuality)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스크바 교외 바라크촌의 일상을 많이 다루니까요. 그런데 네크라소프는 사투놉스키의 시에서 이 팩트다움이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된다고 봅니다. 일상을 소재로 다룬다는 것은 둘째 치고, 사투놉스키의 시는 우리 모두의 일상적 발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 자체가 일종의 팩트가 됩니다. 나는 분명히 사투놉스키의 시를 읽고 있는데 그것이 나의 말이 된다는 것, 특별히 각운이 있지도, 리듬이 있지도 않은데 기억에 잘 남는다는 것. 네크라소프가 공식문학계의 비평가를 욕하는 데 내 속이 다 후련한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네크라소프는 이것을 서정시의 본질로 파악합니다. 아름답게 들리는 말을 안 쓰더라도,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말을 안 쓰더라도 뭔가 기억에 남아 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 ‘나는 시를 읽는다, 고로 내가 말하고 있다, 이건 팩트다.’

 

 

자유는 있다

당의 여물통에서 뇌물이나 쳐 먹는 개놈을 욕하고 난 뒤에 네크라소프는 다음의 두 번째 시를 붙여 넣습니다. 원래는 64년도에 쓴 시라는 주석도 달고, 신조어 프리고타에 또 주석을 답니다. 네크라소프가 직접 낭독한 것도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II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есть свобода

 

(Мои стихи

шестьдесят четвертого года

 

а пригота

она и есть пригота

 

внизу

наверху

 

судя по всему

пригота

и пригота* на всех уровнях

 

судя по результатам

 

____________________

*которая

из мокроты

которая

из-подо все того же

Корыта)

II

 

자유는 있다

자유는 있다

자유는 있다

자유는 있다

자유는 있다

자유는 있다

자유는 자유다

 

(육십사 년도에 쓴

나의 시

 

그러니까 프리고타

그게 바로 프리고타야

 

밑에도

위에도

 

통틀어 보자면

프리고타

모든 층위에 존재하는 프리고타*

 

결과를 따져보자면 말이지

 

___________________

*축축한 것에서

생겨난 것

바로 그

여물통 아래에서

생겨난 것)



자유는 있다...는 네크라소프의 가장 유명한 시들 중 하나입니다. ‘자유라는 단어가 무언가 심오한 의미를 품고 있을 것 같지만 네크라소프가 직접 낭독한 걸 들어보면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기억에 남아 반복적으로 읊조리게 됩니다. 스바보다 예스찌, 스바보다 예스찌...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장 구조상 자유는 / 자유는 ... / 자유는 자유다도 가능합니다. 저는 다만 반복된 소리를 더 많이 만들려고 있다도 넣었습니다. ‘자유는 있다 / 자유는 있다 ... / 자유는 자유다도 가능한 번역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같은 구조의 문장을 여섯 번 반복하고 마지막에 자유는 자유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에 자유라는 말이 나오니 폴 엘뤼아르(P.Éluard, 1895-1952)의 시 자유(Liberté, 1942)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 모래 위에 눈 위에 /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어떤 시가 더 맘에 드시는지요? 일단 네크라소프의 시가 더 기억에 잘 남을 듯합니다. 단어도 두 개 밖에 없고 반복되니까요.

 

네크라소프가 에피그라프로 가져온 시에서 사투놉스키는 왜 나는 사후의 영광을 바라는가? / ! / 어떤 영광을 더 바라겠는가?”라고 자문자답했을까요? 그리고 왜 네크라소프는 리아노조보 그룹이라는 말도, ‘학파라는 말도 거부하고 리아노조보라고만 가리켰을까요? 사투놉스키와 네크라소프는 다만 그들의 시가 읽는 이들의 이 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잘 들러붙어 누구의 말이든지 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죽어서도 영광을 누리는 계관시인이 아닌 서정시인의 자연스러운 직업상바람인 듯합니다


리아노조보는 <...> 결코 그들은 성스럽지 않다. 아마도 어딘가 썩 유쾌하지 않은 무언가다. 분명 그렇다. 그러나 소비에트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반소비에트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다만 직업상...[각주:11] 


PS.

다음에는 어떤 시인의 시를 읽어볼지 고민 중입니다. 소비에트 문단에서도, 그 이후에도 아주 잊혀 졌다가 요즘에서야 다시 읽히기 시작한 게오르기 니콜라예비치 오볼두예프의 시를 읽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1. Cм. “Кто живет без печали и гнева / Тот не любит отчизны своей...” Некрасов Н.А. “Газетная” (1865) // Он же.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и писем: в 15 т. Т. 2. Л., 1981. С. 199. [본문으로]
  2. Некрасов Вс. Лианозово. М., 1999. [본문으로]
  3. http://rvb.ru/np/publication/sapgir2.htm#29 [검색일: 2018.06.10.] [본문으로]
  4. Некрасов Вс. Лианозовская группа. Лианозовская школа // Он же. Лианозово. М., 1999. С. 56. [본문으로]
  5. Там же. C. 64. [본문으로]
  6. Там же. C. 62. [본문으로]
  7. Там же. С. 64. [본문으로]
  8. Там же. C. 67. [본문으로]
  9. См. А. Пушкин “Брожу ли я вдоль шумных улиц...”(1929) [본문으로]
  10. Там же. С. 68. [본문으로]
  11. Там же. C. 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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