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제임스, 「성, 인종, 계급」(1974)_첫 번째
번역: 단감 | 페미니즘 번역집단
[소개]
셀마 제임스는 1972년부터 진행된 국제 가사노동 임금 캠페인의 창시자이며, 2000년에는 ‘전지구 여성 파업의 날’을 조직하는 데 동참하기도 한 여성운동가이다. 1972년에 그녀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와 공저한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은 ‘남성 노동’의 착취에만 주목하는 자본주의 비판은 여성 착취를 묵과하거나 반복한다는 점을비판하며 가사노동을 가치 없는 노동으로 취급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 억압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여 여성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여성운동은 사회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19세기부터 이어져온 흑인 해방 운동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는데, 흑인들의 노예노동이야말로 자본주의 확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착취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근대/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취급되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에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자녀를 키우던 아프리카계 미국여성들이 흑인 민권운동에서 영감을 얻어 자녀 양육에 대한 임금을 국가에 요구했던 투쟁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운동 중 하나였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번역하고자 하는 「성, 인종, 계급」은 셀마 제임스가 1974년에 발표한 글로, 여성운동, 흑인운동, 사회주의 운동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며, 네 번에 나누어 연재할 계획이다.
[본문]
성, 인종 및 계급을 별개의 심지어 상반되는 실체로 대립시키면서 빚어진 혼란은 이미 충분히 겪어왔다. 물론 이들은 분명 별개의 개념이다. 오히려 이 개념들은 분리되지 않으며 분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 내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과 인종을 계급에서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것은 백인 남성 대도시 좌파의 둔탁하고 편협한 종파 정치뿐일 것이다. 나는 최대한 단순한 윤곽을 보여주고자 한다. 첫째, 그러한 노동 계급 운동은 좌파가 상상해오던 것이 아니다. 둘째, 성별, 인종, 계급의 개별적 실체와 계급의 총체성 사이의 모순에 갇히는 것은 노동계급 권력을 향한 길에 거대한 걸림돌인 동시에 그 권력을 쟁취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창조적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어비스 브라운(Avis Brown)이 호의적으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우리 책자는 “우리는 자본과 여성의 관계와 이를 파괴하기 위한 효과적 투쟁의 종류를 (중략) 다루었”(p. 5)으며, 흑인들이 자본에 맞서 투쟁한 경험에서 시사점을 얻어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여성의 (신분계급) 경험에서부터 출발하여 계급의 개념을 여성을 포함한 것으로 재정의했다. 이 재정립 작업은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주부의 가사노동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맑스 이후로, 자본은 임금을 통해 사회를 통치하고 지배한다는 것, 즉 자본주의 사회의 기반이 임금 노동자와 그의 직접적인 착취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노동계급 운동의 조직을 통해 명확해지기는커녕 짐작조차 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 임금을 통해 비임금 노동자의 착취도 조직되었다는 점이었다. 임금이 부족할수록 이 착취는 더욱 효과적으로 은폐되었다. (중략) 여성과 관한 한 그들의 노동은 자본 바깥에서 행해지는 개인적인 서비스로 여겨진다. (p. 28)
그러나 여성과 관련하여 신분과 계급의 관계가 은폐되고 신비화된 형태로 나타날 때, 이 신비화는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종 문제를 마주하기 전에, 잠시 방향을 틀어보자.
이 사회에서 가장 권력이 없는 집단은 마찬가지로 임금노동 사회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 집단인 아동이다. 그들도 한때는 (그리고 부족 사회 등지에서는 여전히) 공동체의 생산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단위로 여겨졌다. 그들이 한 일도 전체 사회적 노동의 일부였고, 그렇게 인정받았다. 그러나 자본이 확장되고 있거나 이미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 아동은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학교에 가야하며, 이에 대한 저항은 매일같이 늘어간다. 아동에게 권력이 없다는 것이 계급적 질문일까? 그들이 학교와 벌이는 투쟁이 계급투쟁인가?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자본이 아동을 통해 그리고 아동을 상대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직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중략) 다른 사람들이 ‘생산적인’ 노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도 아동을 학교에 보냈다. 임금을 통한 자본의 통치는 노동 분업의 법칙에 따라 숙련된 노동자가 모두 제 기능을 하도록 강요할 뿐 아니라, 즉각적이지는 않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지배의 확장과 확대에 유리한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강요한다. 이것이 학교의 근본적 의미이다. 그러나 아동의 이러한 노동은 마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인 양 포장된다. (p. 28)
이렇게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본주의적 임금노동 관계 밖에 있다고 여겨지는 노동계급에는 두 집단이 있다. 하나는 집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활동도 자본주의적 생산과 노동 분업의 일부이다.
먼저 가정주부는 생산에 종사하는 동시에 맑스가 노동력이라고 불렀던 노동자를 재생산한다. 그들은 임금을 위해 일하며 매일 파괴되는 사람을 매일 소생시키는 일에 종사한다. 또한 장차 자라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을 돌보고 훈육한다.
아동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돌봄과 훈육의 대상이 되며, 장래에 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 학교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훈련받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노동력이 아동의 형태로 재생산되기 위해 아이들은 강제로 훈육을 받아들여야 하며, 특히 노동, 즉 먹고 살기 위해서는 착취당해야 한다는 것에 관한 훈육을 받아야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특정한 노동을 수행하도록 훈육되고 훈련되어야 한다.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은 분화되어 있으며, 각 부문은 생업, 운명, 특정 노동자들의 정체성이 되어 국제적으로 분배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문구가 국제 노동 분업이다. 이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테지만, 잠시 서인도인 어머니가 일곱 살짜리 아들의 교육에 대해 아주 정확히 요약한 말을 들어보자. “지금은 환경미화원을 선택하고 있어요.”
자본주의적 국제 노동 분업 속에 은폐되어 있던 여성과 아동의 특수한 계급적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마지막 장막을 찢어버릴 때, 우리는 흑인 운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흑인 운동의 가르침이 어딘가에 써있었다는 뜻은 아니다(실은 어떤 생소한 곳에 적혀있기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대중 운동은 말보다는 실제로 실천될 때의 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며, 피상적 파편을 말끔히 거두고 실상을 보여준다.
물론 여성운동은 여성을 ‘위한’ 것이고 아동의 저항은 아동을 ‘위한’ 것일 뿐 일견 계급에 대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미국(및 그 외 지역)에서의 흑인 운동 또한 백인 남성이라는 지배 집단의 인종 차별에 맞서기 위한 대상은 신분으로서의 지위뿐이라고 생각하며 시작되었다. 백인 좌파가 계속해서 ‘흑인과 백인이 단결하여 싸우자’, ‘흑인과 노동자는 반드시 뭉쳐야 한다’를 외치고 있을 때에도 할렘의 지식인과 위대한 혁명가 말콤 엑스는 모두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삼았으며, 계급문제보다 인종문제를 우위에 두었다. 흑인 노동계급은 이 민족주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계급을 재정의할 수 있었다. 흑인과 노동자는 압도적일 정도로 동의어였으며(혹여 여성을 제외하고는 노동자와 동의어가 될 수 있는 다른 집단은 없었다), 흑인들이 주장한 요구와 흑인이 창조한 투쟁 형식은 가장 포괄적인 노동계급의 투쟁이었다. (후략) (p. 8)
그렇다고 해서 어비스의 말처럼 흑인 운동이 ‘계급 운동 안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계급 운동이었고, 이 사실이 우리의 의식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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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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