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제임스, 「성, 인종, 계급」(1974)_세 번째
번역: 단감 | 페미니즘 번역집단
성, 인종, 국가, 세대의 사회적 권력 관계는 명확하면서도 특수한 형태의 계급 관계이다. 노동계급 내에서 이러한 권력 관계가 발생하면 계급 간 투쟁에서는 우리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자본은 노동계급 중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을 식민지화하게 만드는 간접적인 통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우리 계급 전체에 관철시켜왔기 때문이다. 소위 노동계급 조직이 투쟁을 중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국제적으로 그들이 ‘노동계급’을 고립시키게 우리가 놔두었기 때문이다. 이때 ‘노동계급’이란 다른 노동자를 모두 제외하고 21세 이상의 백인 남성으로만 한정된다. 비숙련 백인 남성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일하고, 투표하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자본의 관점으로부터 점점 더 단절되고 있는 자신을 이러한 체제의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그가 인종차별 및 성차별주의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급의 범위에서 배제된 가정주부, 흑인, 아동 및 청소년, 제3세계 노동자들이 대도시 백인 남성 권력구조에 맞서는 것은 ‘이례적인 역사적 사건’일 뿐이라고 평해졌다. 사회가 자본주의적 조직인 공장, 사무실, 학교, 플랜테이션 농장, 집과 거리로 분열되면서, 우리 역시 우리의 투쟁을 하나의 계급으로서 집합적으로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기구에 의해 분열되었다.
대도시 흑인운동은 노동계급 중에서 대규모로 일어나 이런 조직들로부터 자치권을 빼앗아오고 투쟁을 오직 공장 안으로만 가두려고 하는 움직임을 깨고 나온 첫 번째 부문이었다. 그러나 흑인 노동자가 도시의 중심부를 불 태울 때, 백인 좌파들의 눈, 특히 노동조합의 눈은 계급이 아닌 인종을 볼 뿐이었다.
대도시의 노동계급 중에서 그 다음으로 커다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여성운동으로, 그들은 공장 안 뿐 아니라 밖에서도 힘을 되찾고자 했다. 앞서 있었던 흑인운동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그 제도로부터 조직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들과 여성운동은 자본이 특별히 여성들을 착취하는 데 사용한 ‘노동력의 계층 구조’의 상위계층에서도 벗어나야만 했다. 흑인들에겐 백인이, 여성들에겐 남성이, 흑인 여성에게는 둘 다가 상위계층이었다.
아직까지도 흑인운동이나 여성운동이 자율성을 가지고 저항할 때, 이를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분열 - 공장 대 농장 대 가정 대 학교에 – 은 그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계층 구조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개별적으로 자기 문제에 대한 열쇠를 찾아야 하고, 그 점을 공격하고 부숴버릴 전략을 찾아야 하고, 자신만의 투쟁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흑인운동은 “자본주의의 다원적 사회 모델로 포섭된” 것이 아니며 (비록 운동의 ‘지도자’들 중엔 그런 사람이 많긴 하지만), “백인 노동계급 전략에 포섭된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어비스는 백인 노동계급 투쟁을 노동조합/노동당 전략과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이 둘은 천적임에도 종종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미국 흑인운동은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에 도전해왔고 지금까지도 계속 도전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말이다. 그들이 대도시의 중심부에 불을 지르고 모든 고위 인사에게 도전하자, 다른 모든 영역의 노동계급도 자신의 구체적인 관심사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때 우리 여자들도 움직였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그저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발생한 사건도 아니다.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닌 이유는 제도적 권력이 저항에 맞닥뜨리자 모든 여성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권력의 일부를 위임받은 남성의 딸들도 그들의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바쳐 뒷받침한 교육, 의학, 법의 고귀한 가면을 넘어 본질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연봉이 높은 남자와 결혼하면 갇혀 살게 될 훌륭한 집과 심지어는 흑인 시종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특권은 자기 것이 아닌 그 연봉에 매어있는 한 계속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구조적 권력은 언제까지나 백인 남성의 손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이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흑인운동이 거리에서 싸우고 모든 여성들이 가정에서 일상적 반란을 일으키며 만들어 낸 노동계급 권력의 흐름 위에서 여성운동이 발생하게 되었다.
여성운동이 흑인들의 권력 행사에서 자극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예제 폐지 운동을 결성하고 자유주(역자 : 노예제가 폐지된 주)로 탈출하기 위해 ‘지하 철도(Underground Railroad)’ 운동을 조직한 흑인 노예들도 백인 여성들 – 그리고 자신들보다 더 특권을 가진 계층 - 에게 기회, 즉 갇혀 있던 여성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하도록 훈련되어왔던 여성들은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랬다면 그저 무도한 일이었을 것이다 -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의 집을 떠났다. 그들은 대농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번식자 취급을 받으며 고통받았던 해방노예 소저너 트루스 같은 흑인 여성에 의해 한층 고무되었다. 그러나 일단 여성다움이라는 틀을 깨고 결정적인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백인 여성들은 자신의 상황에 더욱 날카롭게 부딪히게 되었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확보해야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1840년에 런던에서 열린 노예제 폐지 회의에 참석이 거부되는 등의 일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1848년 뉴욕 주 세네카 폴스에서 여성 권리를 위한 회의를 직접 마련했다. 그곳에도 남자 연사가 있었다. 그는 선도적인 노예 폐지론자였고, 과거에는 노예이기도 했다. 그는 바로 프레데릭 더글러스였다.
또 1960년대 초반에 프리덤 라이드(역자 : 버스 투어로 시작된 인종차별 철폐 운동)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젊은 백인 여성들은 노동력 계급 구조에서 자본이 그랬던 것처럼 투쟁의 계급 구조에서도 남성(백인과 흑인) 동지들에게는 특별한 위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역사가 거의 똑같이 반복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투표권이 아니라 매우 다른 목표를 위해 운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운동이었다.
흑인과 여성의 운동 사이에 그려지는 평행선은 늘 ‘누가 더 착취당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의 목적은 평행이 아니다. 우리는 노동계급이라는 힘의 복잡한 얽힘을 묘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 자본의 위계적 지배를 위한 기반이 되어주었던 우리 간의 권력 관계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백인이 흑인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종식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를 대변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페미니즘을 남성들에게 납득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결국 우리의 힘에 의해 ‘납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특권층 여성에게 제안했던 것을 그들에게도 제안한다. 그들의 적을 누를 수 있는 힘. 물론 이를 위해서는 우리에 대한 그들의 특권도 버려야 한다는 대가가 따른다.
**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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