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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제임스, 「인종계급」(1974)_마지막

 

번역단감 | 페미니즘 번역집단

 


지금까지 밝혔듯, 페미니스트 계급투쟁은 가정에 갇혀 일하면서도 임금을 받지 못한 여성들을 기반으로 전략을 마련할 것이다. 집밖에서 임금 노동을 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을 생산 및 재생산해야 하는 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투쟁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일단 시간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임금 계층구조 속에서 여성의 위치는 낮으며, 흑인여성은 더욱 심하다. 혹여 노동력의 계층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위치를 차지한 여성이라 해도(매우 드물지만!), 여전히 남자를 위한 성적 대상으로 규정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여성 대부분이 주부인 한, 그들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에는 남성에게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성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집에서 하는 일에 대한 임금을 요구하고자 한다. 이때 국가에 임금을 요구한다는 것은 첫째, 현재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남성으로부터의 자율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 집밖에서 일하지 않아도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통해, 공장은 물론 가정에서조차 강제 노동은 거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놓는 것이다.

이 전략에서부터 혁명적 흑인 운동과 혁명적 페미니즘 운동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 관점은 가장 권력이 없는 사람들, 즉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자본은 이 산업에서 저 산업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내돌려지는 실업자 예비군을 통해 국제 노동 분업을 강화한다. 3세계는 이러한 산업 예비군의 최대 저장고이다. (두 번째로 큰 저장고는 대도시 가정집의 부엌이다.) 포트 오브 스페인, 캘커타, 알제, 미국 국경 이남의 멕시코 마을에서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및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농장의 험한 일을 맡아 줄 노동력을 공급한다. 혁명에서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임금과 공장의 지렛대 없이 어떻게 투쟁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는 답을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기 위해 비고용자에게 반드시 직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정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임금 없이 집에서 일하는 주부들이 집 밖에서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남자가 벌어오는 임금에 종속되어 있다는 상황과, 본질적으로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가사노동의 성질로 인해 여성들은 임금 노동 여부나 인종에 상관없이 입지가 약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지받든’, ‘지지받지 않든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함께 움직일 수 있었던 기반이다. 인종 대립이 극복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 집단 모두가 임금 및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투쟁을 통해 자율성을 얻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투쟁을 하기 위해 어떤 조직에 참여해야 하는지는(흑인 남성과 함께할지, 백인 여성과 함께할지, 아무와도 함께하지 않을지) 흑인 여성들이 알아낼 것이다.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우리는 미국 흑인들의 투쟁은 혁명적 전위로서의 잠재성을 발현시키지 못했다는 어비스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위’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계급투쟁을 추진하는 부분을 의미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것은 경험의 특수성’(하나의 국가이자 하나의 계급으로서)을 사용하여 계급과 계급투쟁 자체를 재정의했다. 이론가들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그렇다면 그 운동을 혼동해선 결코 안 된다. 그 투쟁이야말로 오직 전위였기 때문에 우리 시대의 중심 문제, 즉 국제적 노동계급의 조직적 단결을 지금 우리가 인식하고 규정하는 것과 같이 명확하게 밝히기 시작할 수 있었다.

레닌주의 전위 정당을 통해서만 조직적 단결을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레닌주의 모델은 전위가 전체 계급의 이해관계를 드러낸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묘사한 현실, , 계급 중 어느 한 부문이 다른 부문의 경험과 이해를 드러내거나 다른 부문을 위한 투쟁을 추구할 수 없다는 분석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게다가 일반적 계급 전략을 조직적이고 형식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성공한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로마에서 남성을 제외하고 페미니스트 심포지엄을 개최하자, 우리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며 신체적으로 공격한 이탈리아의 의회 밖 좌파(extra-parliamentary Left) 조직에게 보낸 항의 서한을 인용해 보겠다.

 

(전략)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전통적인 공격, 오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특히 흑인(혹은 남부 이탈리아인)에게 행해지는 공격은 결국 그들의 존재가 원주민 노동계급의 몫을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이 듣던 것과 똑같은 말이다. 반 인종차별주의자(가령 반민족주의자와 반성차별주의자)의 관점, 즉 투쟁의 관점은 계급의 가장 강력한 부문과 약한 부문을 분열시켰던 조직적 약점, 결국 자본이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우리를 패배시켰던 그 분열지점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이 질문은 사실 오늘날 노동계급이 직면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 중 하나이다. 레닌이 계급을 선진과 후진이라는 주관적인 부문으로 나누었을 때 우리는 이것이 강자와 약자를 분리하는 자본주의적 조직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자의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임금이 없는 여성에 비해 임금을 받는 남성, 흑인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 백인) '승리'를 얻을 때, 상대적 약자에게는 그것이 딱히 승리가 아니거나 심지어 양쪽 모두의 패배일 뿐이었다는 것이 바로 상대적 약자 쪽의 경험이다. 이러한 계급 내 권력 불균형은 정확히 자본의 힘으로 이어진다.[각주:1]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이 조직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우리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줄곧 보다 넓은, 그러나 우리를 포함할 만큼 넓지는 않은 계급 이해를 위해 우리 자신의 필요는 잊어야 한다는 주장만을 들어왔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 그래서 그간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착취당한 각 부분이 자신의 자율적인 힘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단결되고 혁명적인 힘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자매들에게 권력을, 그를 통해 노동계급에게도 권력을!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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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타 페미니스타와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이 발표한 편지에서 발췌. 이것은 󰡔공격(L’Offensiva)󰡕(1972)에 재수록되었다. 여기 인용한 단락은 내가 작성한 부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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