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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자살의 사회적 인정과 배제를 넘어: 과로 개념을 다시 생각하다 (2)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 들어가며: 요약

(2) 국가의 자살예방정책

(3) 과로자살의 법적 이해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로서의 자살

(4) 프랑스 텔레콤 사례를 통해 본 ‘경영상의 학대’에 따른 노동자 자살

(5) 과로자살을 통해 다시, 과로를 생각한다.  

   ① 과로자살의 인정과 배제의 변증법 

   ② ‘집단’으로서의 과로자살, 그리고 과로


(이어서)



(3) 과로자살의 법적 이해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로서의 자살.


과로가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 회자된지 오래지만 법은 과로라는 개념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서는 ‘업무상 재해’라는 단어가 과로로 인한 재해의 법적 규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의 일환으로 자살을 어떻게 위치짓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는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망은 자살이 아닌 죽음을 의미한다. 37조 제2항은 자살을 업무상 재해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항 본문은 “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자살은 노동자가 고의적으로 자해한 행위이기 때문에 재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자살이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를 명시했는데, “그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법 시행령 36조는 세 가지 경우에서 과로자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제1호), 2) 업무상의 지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지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제2호), 3)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제3호) 의 세 경우이다. 

종합해보면 산재보험법에서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시말해 자살이 과로자살로 인정되려면 첫째, 업무상의 사유로 ‘정신이상 상태’가 발생해야 하고 둘째, 이러한 ‘정신이상 상태’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중적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이는 정신이상이라는 상태를 매개하지 않은 과로자살은 법적으로 성립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사실상 과로자살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법안이라기보다는 부정하기 위한 법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로자살을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사회적 요구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과로자살, 업무상 재해로서 자살을 재해로 신청한 사례는 2005년 3건에서 2012년 52건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와 함께 산재보험법에서 과로자살을 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대략 두 가지의 쟁점이 도출된다. 최근에 늘어난 과로자살을 둘러싼 대법원 판례는 이러한 쟁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첫 번째 쟁점은 어떤 기준으로 과로를 규정하고 나아가 과로로 인한 자살을 규정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2007년과 2011년의 대법원 판결은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볼 때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인한 우울증”(대법원 2007두2029 판결, 2011두24644 판결)을 들고 있다. 즉 과로자살의 기준은 ‘사회평균인’이다. 


‘사회적 평균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과로’란 무엇일까? 법원 역시도 의학적, 과학적 근거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사실 이는 불가능한 것에 가까운 것 아닌가.), 불안정노동 사회에서 과로를 일상적으로 견뎌내고 있는 상태란 과로를 과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적으로 신체와 정신이 손상되고 있는 것을 자연적 노화라고 믿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이러한 문제는 최근 판례에서 “자살 또한 재해자 본인 기준으로 판단”(대법원 2011두3944 판결, 2011두11785 판결) 해야 한다는 입장이 증가하고 있다. 즉 노동조건이 동일하게 적용되더라도 과로의 양상은 개별적 특성에 따라 부상이나 뇌심혈관계 질병 등으로 나타날 수 있고, 과로사나 과로자살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조건이 사회적 평균보다 과도한가의 여부보다 개인적 특성과 개별적 조건들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로의 질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김형렬 교수는 현재의 과로 노동시간 기준인 60시간 대신 ‘52시간’을 제시한다. 일단 시간부터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시간을 예시적 기준으로 둘 것을 이야기 한다. 52시간을 넘기면 무조건 과로인 것이고 52시간 이하라면 노동강도와 스트레스 등 다양한 환경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과로의 질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노동부에 관련 지침까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오마이뉴스, "주 60시간 미만 근무도 '과로'일 수 있다." 2017.7.27일자.)

 

둘째 쟁점은 정신이상상태를 매개로 업무와 자살을 연결짓는 ‘이중적 인과관계’의 문제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살을 정신이상 상태에서 행하는 비정상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자살은 기본적으로 재해라기보다는 자발적 의지에 의한 자해행위이다. 하지만 이는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노동관련 법에 그대로 적용하는 모순에서 기인한다. 자살에 대한 통념이 과로자살에 대한 일반적 규정의 토대가 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법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못하게 된다. 노동에 대한 법적 규제는 일반적인 법적 규제와는 달라야 한다. 노동법의 의미는 모든 사람은 평등한 시민이라는 전제, 즉 근대 자유주의국가의 전제 위에 성립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평등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토대로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한 시민이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적 전제를 인정하는 한에서 노동법은 성립된다. 

다시 말해 작업장에서의 자살은 자유로운 시민의 자발적인 자해행위가 아니라 이미 노동에 대한 결정권이 기업에 속한 상태에서의 자살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와 자살과의 관련성에 대한 임상연구들은 직무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거나 낮은 직업을 가진 경우 및 높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 자살율이 높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박창범, 2016).

또한 ‘정신이상’이라는 결정적 매개는 과로나 스트레스가 정신이상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살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각한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자살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진료를 본 경우는 거의 없는 반면, 상당수가 두통이나 어깨통증, 설사, 변비, 허리통증 등과 같은 비특이적인 증상을 호소했고, 이런 증상으로 정신과가 아닌 다른 과의 진료를 보는 경향이 있다는 임상연구 보고서도 존재한다.


일본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자살한 22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서 68%가 불면증을 겪고 있었고 두통이나 어깨통증, 설사, 변비, 허리통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81%이었다. 이런 증상은 주로 직원이동 2-3개월 후 발생하였고 자살하는 시점까지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중 45%만이 자살전 흉통이나 복통, 열감 등과 같은 비특이적 증상으로 의사를 만났지만 어느 누구도 우울증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정신과의사와 면담하거나 입원한 것은 없었다고 보고하였다.(박창범, 2016 : 300) 


비록 일본의 사례이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정도 여부의 차이가 있겠지만 국가적 정책이나 혹은 국가가 재생산하고 있는 자살과 우울증 혹은 자살 위험의 병리학적 담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정신이상에 의한 자살만을 예외적으로 업무상 자살로 인정하고 있는 현행 법의 근거가 노동법의 특수성에 기반한다기보다는 국가가 자살을 다루고 있는 통치술의 연장선에서 법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독일의 경우 사회법전 상에서 자살을 ‘절망자살’과 ‘청산자살’로 구별한다. ‘절망자살’의 경우 정신적 질환을 원인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침해된 경우, 즉 정신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하게 된 경우를 지칭하고, ‘청산자살’의 경우 업무상 스트레스 내지 신체가 부담하기에 힘겨운 작업으로 인한 자살, 즉 정신이상의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생존에 대한 의지의 상실로 인한 자살을 지칭한다.(오상호, 2010: 245, 이달휴, 2009: 22) 이를 한국적 맥락에서 적용하게 되면 기존 산재보험법에 명시된 정신이상에 의한 자해로서의 자살을 ‘정신자살’로, 그리고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을 ‘과로자살’로 정의해 과로자살에 대한 새로운 법제정을 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이달휴, 2009: 28).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 업무상 스트레스의 원인을 지목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와 권동희 노무사가 2000년부터 2016년까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라고 확정한 자살, 정신질환 판결문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업무 변화’가 스트레스 1위로 꼽히고 있으며, 성과주의, 해고와 일상적인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환경등이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원인이다. 이들은 모두 불안정성과 경쟁이라는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구조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원인들이다.

프랑스의 경우 스트레스를 과로자살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 스트레스를 개인적 차원으로 해석하지 않고 ‘경영상의 학대’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려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손상의 정도로 과로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는 것으로 원인의 출발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프랑스 텔레콤 사례를 통해 본 ‘경영상의 학대’에 따른 노동자 자살


프랑스 텔레콤은 2006년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감행하면서 22,000명이 직장을 떠나고, 10,000은 기업내 부서이동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본래 전공직무와는 상관없는 부서로 이동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견디지 못한 노동자 35명이 2008년과 2009년 사이 자살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2008년과 2011년까지 누적 자살수가 70명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2013년 상빈기 동안에도 4건의 자살이 있었으며, 그 중에는 분신자살도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공기업이었던 우체국의 민영화과정과 르노 자동차에서도 앞서 노동자들의 자살이 있었다. 자살은 법령에 업무상 재해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직장 내 자살이 많아지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됨에 따라 판례에 의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노동자 자살에 대한 국가적 개입은 ‘정신적 학대’의 개념에서 보다 진전된 ‘경영상의 학대’ 개념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정신적 학대(괴롭힘) 개념은 2002년에 도입되었으며, ‘근로자의 권리나 존엄성에 해를 입힐 수 있는 근로저건의 악화의 결과를 낳거나 그러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규정하며, 특히 기업이 스트레스를 일으키거나 의도치 않은 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기업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가해자 개인 뿐 아니라 법인으로서의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는 2009년 정신적 학대의 개념을 보다 확장시켜 ‘경영상의 학대’를 포함했다. 노동자에게 정신적 학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기업의 경영방식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는데, 특히 특정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고용주의 악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인 노동자가 따돌림, 소외, 공공연한 무시, 소통부재 등의 행위에 의한 개인의 피해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이는 경영상 학대에 해당한다. 이러한 입증의 책임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 왜냐하면 고용주의 안전보장의부를 ‘과정적 의무’가 아니라 ‘결과적 의무’로 해석하기 때문인데, 고용주의 노동자의 안전보장과 건강보호에 있어서 결과적 의미를 지고 과실이 없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더 나아가 프랑스 대법원은 고용자 자신에 의한 행위 뿐 아니라 고객과 같은 제3자, 또는 수평적 관계가 있는 다른 노동자나 하급직원에 의해 직장 내 학대 행위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고용주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을 내릴 바 있다. 다시 말해 주체가 누구든 직장내 일어나는 모든 학대 행위에 대한 예방 조치를 취할 의무가 고용주에게 있다. 

과로자살은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의 악화를 의미할 수 있는데(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산재보험법 상에서는 노동자의 정신적 건강이상에 따른 자살일 경우에만 과로성 자살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영상의 학대’에는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의 악화 뿐만 아니라 인사이동, 조직개편, 업무의 이동 등 경영상의 방침이 노동자의 권리나 존엄성의 침해, 승진 등 직장 내에서 장래를 해하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과로자살을 포함해 광범위한 과로성 재해 혹은 ‘과로재해’(방준식, 2011)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와 더불어 과로재해와 노동권의 침해라는 측면에서 개별적 피해를 노동권이라는 집단적 권리 침해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요구와 권리의 차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이후에 독자적인 지면을 할애해 다룰 것이다. 



(5) 과로자살을 통해 다시, 과로를 생각한다.  


① 과로자살의 인정과 배제의 변증법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로’는 예외적 현상일까, 일반적 원리일까. 

맑스주의에서 과로는 과도한 착취가 노동자의 정신적, 육체적 손상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착취가 이미 과도노동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면 과로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근대 국가에서 법으로 정당화한 것이 ‘계약’의 논리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은 산업사회 초기부터 산업재해와 노동일을 둘러싼 투쟁을 통해 ‘계약’의 합리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균열을 내왔다. 동시에 자본가는 ‘적정노동일’과 ‘적정노동강도’라는 과학적, 의학적 지식을 자본주의적으로 포섭함으로써 과로의 합리성을 지배적인 규범으로 재생산해왔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과 자본의 ‘계약’은 자본에 의해 재설정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다시금 과로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 단 한번도 합리화되지 않은 장시간 노동은 불안정 노동과 맞물려 과로는 생존의 문제로, 그리하여 자살의 문제화로 이어지고 있다. 

과로자살은 현재 산재보험법에서 매우 예외적인 조항으로 제한하더라도 사회적 흐름상 판례 등의 법적 해석을 통해 더욱더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이것 만으로는 신자유주의에서 과로를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국가-자본이 양보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과로자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과로라는 일반화된 현상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배제할 수 있으며, 과로자살을 예외적이고 병리적인, 혹은 약한 개인들에게 일어난 불운한 사건으로 포용하면서 정상성에 대한 규범을 재생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정상성은 과로하지만 자살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과로는 자살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삶을 창조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수행하는 건강하고 능동적인 유스트레스(eustress)이자 노력으로 얼마든지 번역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과로와 자살은 문제적이지만, 자살이 더욱 문제적이며, 과로는 적정한 수준에서 권장되어야할 미덕이다. 따라서 ‘적정과로’란(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과로의 완화가 아니라 과로를 둘러싼 정상적인 규범성을 재생산하는 것과 동시에 과도한 과로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집단과 이를 둘러싼 표면적이고 가시적인 환경들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가 과로자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조항을 신설하고, 판례를 통해 적극적으로 과로자살을 인정한다고 해서, ‘과로문제에 대한 해결의 첫 걸음’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문제는 과로자살이라는 특수한 사례의 온정적인 해결이 아니라 과로와 과로자살 사이의 연속성이며, 이러한 연속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살이라는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② ‘집단’으로서의 과로자살, 그리고 과로


과로자살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자살이라는 현상이 지시하는 원인은 심리적이거나 개인적 상황이라는 것을 넘어 ‘과로’라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지목한다. 이는 과로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국가가 자살이라는 현상에 중립적으로 개입하는 것의 맥락을 해체한다. 둘째. 과로자살은 과로상태와 자살상태의 외연을 교란한다. 자살에 대한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원인들은 더 이상 말끔하게 규명될 수 없다. 과로상태의 일반화된 조건은 이제 과로자살의 예외성을 조건 짓는 핵심적인 원인이 된다. 

이 글에서는 과로자살을 신자유주의와 불평등, 그리고 과도한 착취의 병리적 결과로 간주하기보다는 하나의 ‘집단’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리스 영에 따르면 사회집단(social group)은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에 의해 불이익과 억압을 경험하는 구조적 집단(structural groups)이다. 사회집단은 단순한 집합체(aggregate)와는 다르다. 보험회사가 통계 자료를 만들기 위해 자의적으로 작성한 흡연자 집단과 같이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체로서의 집단에는 그들 상호 간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사회집단은 자유주의 정치사상에서 중요시되어 온 개인들의 결사체(associations)와도 대비되는 집단 개념이다. 사회집단은 정체성과 친밀성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다. 또 영의 사회집단 개념은 억압받는 소수자로서의 마이너리티 개념과 유사하지만 집단 형성과 변화에 있어 관계성과 동태적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회집단의 특징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 구성원들이 경험하게 되는 역사를 공유하는 동일시과정(identification)에 의해서 형성되는 정체성이 기반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집단의 정체성은 외부적으로 강요되기도 하고 내부적으로 형성되기도 하며 흔히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사회집단은 다른 집단과의 대면과 상호작용에 의해 상대적인 집단의 차이가 관계적으로 구성되며, 그 차이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로—차별이나 억압의 형태도 포함해— 동태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겪는다(지은숙, 2017: 44, Young1989; 1990: 43-44; 2000: 89-99).


장시간 동안 일반적인 경향으로 나타나는 과로자살은 더 이상 병리적이거나 예외적 일탈이 될 수 없다. 또한 과로자살이 과로사회에서 거시적, 미시적 국가장치들에 의해 재생산된다면 이들의 존재는 사회의 바깥이 아니라 사회 안에 존재하는 집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비존재를 존재의 조건으로 갖는 과로자살이라는 집단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과로의 문제를 각성하게 한다. 

과로자살은 국가에서 분류하는 유형의 하나가 아니다. 또한 자살의 범주를 넘어 과로의 장소를 일반화한다. 자살을 행하는 장소, 자살방법, 자살자의 성별과 나이라는 분류는 과로자살의 원인과 특징을 설명할 수 없는 무의미한 범주들이다. 과로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과로의 장소를 지목한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의 발생적 장소를 지목하는 것은 과로자살이 현상(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으로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그 발생의 원인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죽음이 지목하는 장소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이며, 자살이라는 사건은 이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가시화시키는 최초의 증언이다. 


과로자살을 지금까지의 제한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를 넘어 보다 확대해서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과로와 과로자살과의 관계를 다시금 묻게 한다. 과로사회에서 과로자살의 폭넓은 인정은 일반화된 과로를 배제하는가, 아니면 인정하는가. 둘 다 가능하다. 때문에 이것은 법 이전에 정치적인 문제다. 과로자살을 정치화시키기 위해서는 과로자살을 사회적이고 병리적인 결과로 간주해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증언하는 집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8년 연구논문 공모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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